플라톤의 『국가』 강해 ㉘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 ㉘
2. 나라의 기원과 발달(368a-374d)
[368a]
*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의 반론과 요구를 들은 소크라테스는 크게 기뻐하면서 그들을 ‘그 어르신의 자제들’이라 부르며 그들의 자질φύσις을 칭송한다. 그리고 글라우콘을 사랑하는 사람이 메가라 전투에서 그들이 세운 수훈을 칭송하며 지었다는 시의 첫 구절도 인용한다. 그처럼 훌륭하게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을 대변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부정의가 정의보다 낫다ἄμεινον는 것에 설복당하지 않고 있는 것은 실로 아주 비범한θεῖος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나 자신이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가 다름 아닌 그들의 생활방식τρόπος 때문임도 함께 밝힌다.
[368b-c]
*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그들이 그러한 믿음을 가지면 가질수록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과연 정의를 제대로 구조βοηθεῖν해낼 것인지 당혹스럽고 또 걱정이 된다고 말한다. 자신은 트라쉬마코스를 상대로 말로써 정의가 부정의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는 아직 숨을 쉬고 있고 말도 할 수 있는 자로서ἔτι ἐμπνέοντα καὶ δυνάμενον φθέγγεσθαι 그것을 포기하고ἀπαγορεύειν 정의를 구조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믿음ὅσιον이 없는 것이 아닐까라는 두려움τὸ δεδιός을 안겨 주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정의를 구원ἐπικουρεῖν하는 것이 상책κράτιστον 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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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가 아데이만토스 형제를 가리켜 ‘그 어르신의 자제들’ὦ παῖδες ἐκείνου τοῦ ἀνδρός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어르신’을 트라쉬마코스로 보는 주장도 있다.(J. Adam 각주 참고) <필레보스> 36b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필레보스로부터 논의의 권한 일체를 이어받은 프로타르코스를 두고 그와 똑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도 폴레마르코스가 부친의 논의를 이어받듯 아데이만토스 형제 역시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을 마치 자식처럼 이어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데이만토스 형제가 논의를 이어받은 것과 폴레마르코스나 프로타르코스가 논의를 이어 받은 것은 동기와 사정이 전혀 다르고 이곳에서의 소크라테스의 칭찬 또한 짓궂은 말투가 아니라 진지함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그 표현은 바로 뒤에 나오는 ‘아리스톤의 아들’παῖδες Ἀρίστωνος에 대응되는 것으로 그 어르신 또한 그들의 부친 아리스톤Ἀρίστον으로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 플라톤의 어머니 페리크티오네Periktionē는 솔론의 가계를 잇는 명문 귀족 집안 출신이고 아버지 아리스톤은 자진해서 목숨을 바쳐, 헤라클레스 형제들의 아테네 침공 계획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 전설의 인물이자 아테네의 마지막 왕이었던 코드로스(Kodros, 기원전 1089 ~ 기원전 1068년)의 자손으로 알려져 있다.
* 소크라테스가 인용한 시를 지었다는 이른바 ‘글라우콘을 사랑하는 사람’ἐραστής이 글라우콘의 외삼촌인 크리티아스Kritias라는 주장도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이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동성애 관계에서 성인 남성을 가리키는 말 erastēs를 옮긴 것이다. 그의 상대인 소년 애인은 paidika라 불린다. 글라우콘도 관습대로 소년시절 소년 애인 역할을 한 것이다.
*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간 동안 아테네와 메가라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는 기원전424년과 기원전 409년에 일어난 전투가 대표적인 전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언급된 메가라 전투가 그 가운데 어느 시기의 전투인지는 불확실하다. 서두 강해에서도 언급했듯이 <국가>의 대화상정시기를 기원전 410년경으로 추정한 초기 연구자들의 주장이 오늘날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기원전 420년 전후, 또는 멀게는 기원전 430년 이전까지도 상정 가능하다는 것이 오늘날의 연구 결과임을 고려하면 이곳에서 언급된 메가라 전투가 최소한 기원전 409년에 벌어진 전투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렇다고 기원전 424년 전투로 보는 것도 어려움이 따른다. 만약 <국가>의 대화상정시기가 기원전 430년 이전이라면 그 자체로 이미 시대착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생 글라우콘이 기원전 424년 전투에 참여했다면 최소한 18살이 넘어 탄생연도가 기원전 442년 이전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상정할 경우 기원전 427년에 태어난 동생 플라톤과 형들의 나이가 최소한 15살 이상 크게 벌어지는 문제점이 있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들은 이 부분의 언급은 시기와 상관없으며 다만 플라톤이 형들을 <국가>에 주요 인물로 등장시키면서 미화의 일환으로 언급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또 일부 연구자들은 아테네와 메가라 사이에는 위의 두 전투뿐만이 아니라 간단없이 크고 작은 전쟁들이 있었으므로 여기서 언급된 전투를 굳이 위 두 시기의 전쟁 가운데 하나로 국한하여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무려나 이곳의 메가라 전투 시기는 케팔로스와 프로타고라스, 프로디코스의 생존, 다몬, 소크라테스의 추정 연령대, 트라쉬마코스의 전성기, 폴레마르코스와 뤼시아스의 투리오이 이주와 귀환 시기 등과 더불어 대화상정시기를 추정하는 주요 요소들이기는 하나 이들 요소들이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까닭에 대화 상정시기를 추정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낳고 있다.
* 아데이만토스 형제를 비범한(신적인)θεῖος 사람들로 평가하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언급은 아데이만토스 형제가 앞서 366c에서 정의가 최선임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의 두 부류 즉 ‘하늘이 내린 성품θεῖος φύσις’을 가진 자와 ‘지혜를 얻은 자’ 가운데 전자에 속하는 사람들임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생활방식τρόπος은 이들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믿음을 뒷받침 해준다. 절도 있고 훌륭한 생활방식의 중요성은 앞서 케팔로스도 주장하고 있다.(329d)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아데이만토스 형제의 생활방식은 하늘이 내린 성품에 기반한 것인데 비해 케팔로스가 내세우는 생활방식은 부(富)에 기반을 둔 것이다.
* 소크라테스는 앞으로 자신이 행할 일을 ‘정의를 구조βοηθεῖν하는 일’로 표현하고 있다. 구조의 원어 boēthein은 구조(rescue)라는 뜻과 도움(help)의 뜻을 다 가지고 있지만 여기서는 구조의 의미가 더 적절할 것이다.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은 물론 아데이만토스 형제가 실감나게 전해주는 당대 아테네의 부정의한 현실은 그야말로 정의가 나락에 빠졌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도움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구해내야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소크라테스가 정의의 우위에 대한 제1권에서의 자신의 논증이 아데이만토스 형제를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는(358b)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것은 소크라테스 제1권에서의 논의가 갖는 불완전성과 한계를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백은 일시 그를 당혹하게ἀπορῶ 만들었지만 그러한 당혹감은 오히려 정의의 구조를 향한 새로운 다짐과 불퇴전의 각오로 이끄는 발판이자 도화선이 된다. ‘아직 숨을 쉬고 말을 할 수 있는 한. 결코 정의를 구조하는 일은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 정의를 구조하지 않는다는 것은 믿음이 없는 두려운 일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선언은 부정의한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하는 삶을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변명하는 우리들의 비겁한 마음에 준엄한 칼날을 겨눈다.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숨 쉬고 말을 할 수 있는 한, 정의를 구원하라. 정의에 눈을 감고 안주하는 것이 상책(가장 강력한 방책)κράτιστον이 아니라 비난받고 있는κακηγορουμένῃ 정의를 구원ἐπικουρεῖν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들의 삶과 행복을 위한 가장 막강한 방책이다.’
2-1. 나라와 개인의 유비(368c-369a)
[368c]
*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이에 대한 답을 내놓기에 앞서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가 요구한 내용을 아래와 같이 간명하게 정리하여 제시한다. ‘모든 방법을 다해 정의를 구조할 것. 논의를 포기하지 말고 정의와 부정의 각각이 무엇이며τί ἐστιν ἑκάτερον 이들 둘의 이득ὠφελία과 관련된 진실τἀληθὲς이 어떤 것인지 자세히 검토해 줄 것’
[368d]
* 이를 위해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탐구 과제를 보다 잘 탐구ζήτησις하기 위한 방법을 먼저 제안한다. 왜냐하면 착수하려는 탐구 과제가 눈이 나쁜 자가 아니라 예리하게 보는 사람의 것τὸ ζήτημα οὐ φαῦλον ἀλλ᾽ ὀξὺ βλέποντος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유능하지도 않고οὐ δεινοί, 그다지 시력도 좋지 못한 사람들이므로 같은 글자일 경우 큰 글씨를 먼저 보고 난 다음에 작은 글씨를 보면 잘 이해할 수 있듯이 먼저 큰 글씨부터 보자고 제안한다. 즉 누군가가 그다지 시력이 나쁜 μὴ πάνυ ὀξὺ βλέπουσιν 사람들더러 먼 거리에서 작은 글씨γράμματα σμικρὰ로 적혀있는 것을 읽도록 지시했을 경우, 그것과 똑같은 글씨들τὰ αὐτὰ γράμματα이 어딘가 ‘큰 곳에 더 큰 글씨로’μείζω τε καὶ ἐν μείζονι 적혀있다면 먼저 그 큰 글씨를 읽고 난 후 그것들이 작은 글씨와 같은지 아닌지를 살피게 된다면 아주 천행ἕρμαιον이라는 것이다.
[368e]
* 그러자 아데이만토스가 정의에 관한 탐구에서 그런 유사점τί τοιοῦτον이 있는 그 큰 곳을 발견했는지를 묻고 그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그 큰 곳이 다름 아닌 나라πόλις임을 밝힌다. 즉 정의에는 ‘개인의 정의’δικαιοσύνη ἀνδρὸς ἑνός도 있지만 ‘나라 전체의 정의’δικαιοσύνη ὅλης πόλεως도 있다는 것이다.
[369a] 그러므로 먼저 나라들에 있어서 정의가 어떤 것인지를 탐구하고 그런 다음 작은 것과 큰 것의 유사성ὁμοιότητα 을 검토하면서 개인의 정의를 검토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에 아데이만토스는 아무런 이의도 달지 않고 훌륭한 말씀καλῶς λέγειν인 것 같다고 동의를 표한다. 이에 따라 소크라테스는 앞으로 살펴보게 될 나라를 ‘이론상으로 수립되고 있는 한 나라’ γιγνομένην πόλιν λόγῳ라고 부르고 그 나라를 관찰하게 되면θεασαίμεθα 그 나라에서 정의와 부정의가 어떻게 생겨나는지γιγνομένην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36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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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 수행된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의 요구가 앞으로 소크라테스가 해결해야할 과제들임을 고려하면 이곳에서 소크라테스가 간명하게 정리한 내용은 그 자체로 그들 요구의 핵심은 물론 장차 <국가>가 다룰 기본 주제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것을 내용적으로 구분하면 아래와 같다. 1) 모든 방법을 다해 정의를 구조할 것 2) 논의를 포기하지 말 것. 3) 그 각각(정의와 부정의)가 무엇인지 밝힐 것 4) 정의와 부정의의 이익과 관련한 진실이 무엇인지 자세히 검토할 것. 어떤 일을 수행할 때 과제 수행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수행에 임하는 태도와 수행해야할 과제의 내용이다. 아무리 태도가 훌륭해도 내용이 부적절하면 무의미하고, 아무리 내용이 적절해도 태도가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부실을 면치 못할 것이다. 1)과 2)는 과제 수행에 임하는 태도로서 적극적인 의미에서건 반성적인 의미에서건 소크라테스에 의해 여러 차례 표명된 바가 있다.(348a-b, 352d, 354b, 368b-c 등) 앞에서 ‘숨을 쉬고 말을 할 수 있는 한, 논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다짐은 과제 수행자가 가질 수 있는 태도의 극한치를 보여준다. 그 만큼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 특히 3)과 4)는 앞으로 소크라테스가 수행해야할 핵심 과제로서 그 표현부터 매우 중요한 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3)에서 소크라테스는 아데이만토스 형제의 요구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언급한 것이기는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것은 무엇인가?ti esti’라는 물음의 대상에 부정의를 포함시키고 있다. 전기 대화편 이래 ‘그것은 무엇인가?ti esti’라는 물음은 사태를 우연적인 속성의 차원이 아니라 본질 그 자체의 측면에서 엄밀하게 규정해줄 것을 요구하거나 물을 때 쓰는 표현이다. 글라우콘 역시 자기가 말하는 것은 정의의 본질적 규정이 아니라 정의가 갖는 여러 우연적 속성들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여 그 자신이 언급하는 것은 정의의 ‘어떤 것’hoion einai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고(358c) 그 대신 ‘그것이 무엇인지’ti esti라는 표현은 소크라테스에게 엄밀한 의미의 규정 내지 본질을 물을 때 쓰고 있다.(358b) 소크라테스도 제1권을 마무리하며 그간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논의를 이끌어 왔다고 후회하면서(354c) 그 말을 정의에만 한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요컨대 ‘그것은 무엇인가?’ti esti라는 물음은 엄밀한 의미 규정을 자체로 내포하는 실재적 대상에 대해 그것의 정의 내지 규정을 물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이런 이유로 제1권에서 소크라테스는 부정의를 비판할 때마다 부정의가 엄밀성을 결여하고 있는 무규정적 비실재임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아예 ti esti의 물음 대상에 포함시키지도 않았고 하물며 그러한 결함 하나에 기초하여 부정의에 대한 트라쉬마코스의 입장 자체를 부정하곤 했다. 그런데 글라우콘은 이제 제2권에 들어와 제1권에서 소크라테스가 수행한 논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직격탄을 날린 후에(358b) 소크라테스에게 정의의 규정차원에서 정의가 무엇인가를 물을 때나 쓰던 ti esti를 놀랍게도 부정의에 대해서 물을 때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358b) 그리고 이런 연후 아데이만토스도 그에 이어 소크라테스에게 정의가 혼 안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물을 때마다 매번(366e, 367b, 367e, 368c) ‘정의와 부정의 각각’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부정의도 정의와 마찬가지로 실체적인 힘을 갖고 현존하는 것임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앞선 강해에서도 수차례 강조했듯이, 부정의가 근본적으로 형상적 실재성을 가질 수 없는 비존재라는 것에 기초하여 논리적 규정차원에서 그 결핍을 드러내고 비판하는 방식만으로는 결코 현존하는 부정의의 힘을 제거하거나 혁파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 소크라테스와 아데이만토스 형제들 모두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이제 정의의 결핍으로서 부정의의 한계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서, 부정의가 현실에서 그 자체로 가지고 있는 힘과 영향력의 실체적 현존을 인정한 연후에 그것도 함께 규명되고 비판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 역시 글라우콘의 요구를 받는 형식으로 직접 부정의에 대해서도 ti esti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ti esti는 형상적 실재성을 가진 대상에 대한 정의(定義) 차원의 물음을 넘어 비록 형상적 실재성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나 현실에서 엄연히 실재하는 힘으로 현존하는 한, 그것들에 대한 실질적인 구별과 구분, 이해를 확보하고 그 성격을 최대한 실체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물음으로 확대 사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 정의와 부정의의 이익과 관련한 진실이 무엇인지 자세히 검토할 것이라는 요구 또한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다. 정의가 어떤 좋은 것에 속하는 것인지를 묻는 글라우콘에게 소크라테스는 그 자체로도 좋은 것이지만 결과로도 좋은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에 대해 글라우콘은 정의가 그 결과 때문에 값어치가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 때문에 좋은 것인지에 방점을 두고 대답해주기를 요구한다.(367c) 그러나 여전히 정의가 결과 때문에도 좋은 것임이 밝혀져야 한다. 즉 정의는 현실적으로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이어야 한다. 어쩌면 이 점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큰 관심사이다. 4)의 요구는 제1권 마지막 부분에서 단편적으로 다루어진 이익과 행복과 관련하여 정의가 갖는 우위를 이제 본격적이고도 실질적으로 다루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플라톤의 정의론은 이른바 오늘날 윤리학적 기준에 따른 동기주의 내지 법칙주의 또는 결과주의 그 둘의 성격을 모두 함께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그 둘을 함께 통일적으로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천적으로 그 구분 어디에도 선택적으로 귀속될 수는 없다할 것이다.
* 소크라테스는 이처럼 아데이만토스 형제의 요구를 간명하게 정리한 후에 그들의 요구대로 정의와 부정의가 각각 무엇이고 어떤 힘을 갖는 것인지를 보다 잘 탐구하기 위한 방법을 제안한다. 우선 소크라테스는 탐구 과제가 날카로운 관찰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잘 검토할 수 있는 것인데 우리가 그 정도의 유능함을 갖추지 못한 터라 우리 수준에서 해당 과제를 잘 검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한다. 이때 제시되는 것이 잘 알려진 소문자·대문자 비유이다. 즉, 시력이 나쁜 사람이 어딘가 같은 글씨로 큰 글씨가 있을 경우 그것을 본 다음에 나중에 작은 글씨를 보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듯이 큰 글씨에 해당하는 것부터 먼저 살펴보자는 것이다.
* 여기서 ‘탐구 과제가 눈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 예리하게 보는 사람의 것’이라는 역문은 원어 paulon(쉬운, 사소한, 낮은 수준의)을 ‘예리한’oksy에 대비시켜 옮긴 것이지만 그와 달리 ‘일거리’τὸ ζήτημα를 수식하는 말로 해석하면 ‘쉬운 과제가 아니라 예리한 관찰력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거리’로 옮길 수도 있다.
*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흥미롭게도 작은 글씨 즉 ‘개인’ἑνός에 대응되는 큰 글씨가 다름 아닌 ‘나라’πόλις라고 말하고 그 둘의 유사성을 검토해보면서 애초의 과제인 ‘개인의 정의’를 탐구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제안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아래와 같은 측면에서 이해하기 힘든 것이 아닐 수 없다. 1) 개인은 개체인데 반해 나라는 집합체이다. 2) 개인은 유기체인데 반해 나라는 비유기체이다. 3) 개인과 나라는 오늘날 개인주의와 국가주의 내지 전체주의가 그렇듯이 서로 대립적이다. 요컨대 같은 성격을 갖는 것으로 단순하게 대응 확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의아하게도 아데이만토스 형제는 위와 같은 그의 제안에 이의는 고사하고 훌륭한 말씀이라고 호응한다. 어쨌거나 오늘날의 우리로서는 의아하기는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제안과 아데이만토스의 호응 모두가 플라톤의 주도면밀한 의도를 반영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착종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 그곳에 숨겨진 플라톤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 점과 관련하여 일단 최대한 플라톤의 생각을 이해하고 다가가는 방식으로 간단히 음미해보기로 하자
* 소크라테스의 제안은 일단 겉으로는 개인과 나라는 크기만 다를 뿐 같은 성격의 것으로서 1대1로 대응된다는 생각을 담고 것으로 들린다. 도대체 개인은 개체이고 나라는 집합체인데 어떻게 1대1로 대응한다는 것일까? 1대1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만약 대응된다면 개인이 모인 그 개인들의 집단과 나라가 대응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가 유념할 것은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개인과 나라의 유사성은 모든 면에 걸쳐 있는 것이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탐구하려는 과제는 우리가 앞서 살폈듯이 정의와 부정의가 개인의 혼속에서 어떤 힘을 갖고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해서이다. 그렇게 본다면 소크라테스가 개인과 나라에서 서로 비교해가며 들여다보려고 하는 것은 정의와 부정의가 개인과 나라 각각에서 작용하는 방식과 관련한 유사성이다. 이미 제1권에서도 비록 단편적이나마 개인과 개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에서 정의와 부정의가 작용하는 방식이란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가 다루어지고 있다. 즉 개인은 물론 나라이건 씨족이건 군대이건 정의가 그 안에 깃들어 있으면 우애와 협동을 일으키는 작용을 하며 부정의가 깃들어 있으면 대립과 불화를 일으키는 작용을 한다. (351e-352a). 그런데 우애와 협동, 대립과 불화는 복수의 것 즉 여럿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어떻게 개인에게서 그런 작용이 일어나는지 제1권에서도 우리는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그리고 그 대답으로서 우리는 제2권 이후에 펼쳐질 개인 영혼의 3분설이 그곳에 전제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그렇다. 플라톤은 앞으로 드러나게 되겠지만 개인은 3가지 서로 다른 영혼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런 점에서 모종의 집합체이고, 그와 마찬가지로 나라 또한 서로 다른 계층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둘은 서로 유사성을 갖고 있는 집합체인 것이다. 결국 이곳에서 소크라테스가 개인과 나라가 서로 크기만 다를 뿐 1대1로 대응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의와 부정의가 혼들의 집합체로서 개인 내부에서 작용하는 방식과 계층들의 집합체로서 나라 내부에서 작용하는 방식의 유사성인 것이다. 요컨대 개인은 생명체로서는 개체이지만 혼의 구성에 있어서는 나라와 마찬가지로 집합체인 것이다. 이러한 개인 내부에서의 관계방식과 나라 내부에서의 관계 방식 사이의 대응은 이미 본 강해 서두부분에서도 살폈듯이 politeia라는 말 자체가 개인이 자신의 혼들을 다스리는 개인의 삶의 방식이자 동시에 나라가 나라의 계층들을 다스리는 나라의 정치 운영 방식을 의미한다는 점에서도 그 주장은 일단 내적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그러나 모종의 같은 집합체라고 하더라도 생명체로서 개인들의 혼이 갖는 집합적 성격과 비생명체로서 나라의 계층들이 갖는 집합적 성격을 같은 차원의 것으로 비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자는 그 자체로 생명의 보전을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며 협동하는 그야말로 생명체이지만 후자의 경우 생물학적 생명체가 아니므로 서로 다른 계층들이 그 자체로 협동적이고 의존적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그것들은 서로 배타적이고 대립적이다. 그래서 일부 메타윤리학자들은 이것은 사상가 개인의 소망과 당위를 사실과 자연으로 여기는 일종의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 비판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이러한 비판이 갖는 타당성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개인주의적 국가관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미 이곳에서도 글라우콘은 정의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소크라테스와 다르게 사회계약설적 국가관을 내세우고 있다.(358e-359b) 글라우콘에 따르면 개인들은 개인 내부의 영혼들이 그러하듯 서로 의존적이고 협동적이지 않다. 그들이 모여 약정을 맺고 법률을 만드는 이유만 보더라도 그것은 분명한 사실로 확인된다. 개인들은 모여 살면서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그리고 그에 따라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이기적이고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경험하면서 서로에게서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결국 약정을 맺고 법률을 제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글라우콘의 생각에는 당대 아테네 현실은 물론 당대 주류 지식인들이었던 소피스트들의 국가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소크라테스가 이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는 이곳에서 왜 유기체인 개인과 나라를 내적 관계 맺음의 방식에서 동일한 성격을 갖는 것이라 주장하는 것일까? 사실 이곳은 소크라테스가 그 자신의 정의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우선 탐구 방식과 관련한 제안을 담고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제안에는 단순히 탐구 방식의 효율성 차원의 내용만 담겨 있지 않다. 소크라테스는 탐구방식을 위한 제언 자체에서부터 이미 글라우콘의 생각을 뿌리 채 부정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이 부분을 읽어가면서 플라톤의 제안이 갖는 문제점에 대한 의문을 표하기에 앞서 도대체 플라톤은 왜 당대의 주류 지식인들의 생각에 거슬러서까지 유기체인 개인과 비유기체인 나라를 1대1로 대응시켰는가를 들여다보았는지에 대해 우선 숙고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미 탐구 방식과 관련한 제안에는 글라우콘이 대변하는 소피스트 부류의 사회계약설적 국가관과는 정반대의 국가관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플라톤은 나라 또한 생명체인 개인과 동일하게 당연히 유기체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더 이상 부정할 수도, 부정해서도 안 될 중차대한 진실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즉 나라와 법률은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개인들이 관습과 타성에 따라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약정을 맺어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태어날 때부터 본성적으로 서로에게 의존하고 서로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는 개인들이 협동적 본성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성립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국가는 이러한 개인의 자연적 본성에 입각하여 그러한 본성을 최대한 구현할 수 있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국가의 구성원들 모두 그러한 국가의 기능을 유기적으로 극대화할 수 있는 내적인 협동심과 우애 또한 갖추고 있다. 그러한 한, 각자의 행복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계층 구성 내지 공동체의 성립은 그 자체로 본성에 일치하는 자연적 욕구의 발현이다. 혹자는 플라톤의 이러한 생각이 그의 사상 자체가 국가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비난을 한다.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에서는 개인 보다 나라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모든 개인의 행복 또한 나라의 보전과 안녕에 의해 좌우되며 그에 따라 어떤 경우에서건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희생하는 것은 개인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긴다. 플라톤이 말하는 나라와 개인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에만 기초하더라도 플라톤의 생각은 위와 같은 국가주의 내지 전체주의와 거리가 멀다. 우선 나라와 국가가 유기체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한, 둘의 의존성은 선후상하가 없는 하나의 통일체이다. 그리고 그 유기적인 성격을 개인과 나라로 분리하여 생각하더라도 그들 간의 예속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나라가 행복하려면 각 계층들이 계층 스스로의 욕망에 부응하여 자신들의 기능을 가장 잘 발휘하는 방식으로 그들 서로 완벽한 협동과 조화를 이루어 내야 한다. 즉 나라가 행복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각 계층들의 욕망 구현과 그것을 통한 행복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계층들의 욕망 구현은 그 계층을 구성한 개인들의 욕망 구현 즉 각 개인의 내면에서 영혼들 간의 조화가 구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개인의 내적 영혼의 조화는 그 자체로 이미 그 개인의 평화와 행복이다. 결국 나라가 행복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궁극적인 조건이자 전제는 결국 개인이 구현하는 개인들 각자의 내적 평화와 행복이다. 이들이 불행하면 개인의 기능이 제 역할을 못하고 개인의 기능이 제 역할을 못하면 계층의 기능이 제 역할을 못하고 계층의 기능이 제 역할을 못하면 나라의 행복은 담보될 수 없다. 물론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개인이 희생될 수 있다. 그러나 그 희생도 자신의 행복을 위한 그 자신의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하며 그 어떤 강제도 주어져서는 안 된다. 나라의 통치자들 또한 스스로의 본성과 기능에 역행하여 자기만의 권력과 부를 누리면 이미 그 개인 자체가 행복감을 느낄 수 없으며 그 자체로 그 자신은 물론 다른 계층들과 개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리고 다른 계층들은 상처나 위협에 대한 자기 방어 능력 내지 복원력이 그렇듯이 그들 스스로의 행복을 위한 자구 노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그들 각자가 건강할수록 그러한 부정의한 권력을 축출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회복하는 것도 그 만큼 빨라진다.
* 물론 플라톤의 이러한 생각은 그의 소망을 반영한 것이고 현실에서 그의 생각대로 이루어지기는커녕 그 반대의 경우가 다반사이다. 플라톤 역시 그러한 정의로운 개인과 나라를 구축해내는 것이 당대 아테네 현실 자체가 보여주듯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고 설사 그러한 능력이 자신의 생각대로 인간에게 본성으로 구유되어 있더라도 그것의 발현이 필연적으로 담보되는 것도 아님을 익히 알고 있다. 이런 점에서 소크라테스가 바로 이어서 위와 같은 방식으로 한 나라를 관찰하게 된다면 이 나라의 정의는 물론 부정의 역시 생겨나게 되는 걸 보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즉 그는 지금부터 말로써 정의로운 나라를 탐구하되 그저 이상적인 관점에서 낭만적으로 선언하듯 정의를 논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시시때때로 언급하고 있듯이 이제 정의뿐만 아니라 그러한 정의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에 수도 없이 도사리고 장애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부정의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래야만 당대 소피스트들이 내세우고 있는 주장들이 얼마나 단견에 불과한 것이며 종래는 개인과 나라 모두를 불행과 파국에 빠트리는 것인지가 실질적으로 드러난다. 다시 말해 정의로운 나라와 개인이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되려면 부정의와 그것이 갖는 힘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이해가 병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그가 앞으로 펼칠 국가론은 말 그대로 가장 바람직한 상태의 이상적인 ‘정의론’인 동시에 현실에서 늘 정의를 위협하고 강력한 힘으로 그 쇠락과 변질의 힘으로 작용하는 가장 피폐한 ‘부정의론’이기도 하다. 물론 개인과 나라가 유기체라는 진실은 본질적으로 이미 그것을 구성하는 구성 요소들의 본성적이고도 자발적인 협동성을 전제하므로 그 자체로 정의로운 나라와 개인을 실현하는 가장 강력한 실천적 조건이다. 그러나 그러한 진실을 전제하더라도 유기체는 언제라도 질병에 걸릴 수 있는 것 또한 진실이다. 그러므로 그 질병의 실체와 극복 방안 또한 함께 논의되지 않으면 건강을 보전할 수 없다. 소크라테스가 여기서 ‘부정의가 생겨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한 언급은 그러한 배경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정의로운 나라의 구축이 이루어진 후에 제8권에서 제9권에 걸쳐 정의로운 나라가 직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위협들과 타락의 양상들을 구체적으로 살피고 분석한다.
* 혹자는 이 부분에서 장차 수립될 정의로운 나라에서 어떻게 부정의가 생겨나는 것일까? 부정의가 생겨나는 나라라면 그것은 이미 그것으로 그 나라가 아직 정의로운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누이 말하지만 지금부터 거론 되는 정의는 형상으로서 정의가 아니라 현실에서 가장 형상에 가까운 상태로 구현된 정의이므로 그것은 다른 한편 늘 부정의로 변할 가능성에 열려 있다. 존재론적으로 말하면 본질적으로는 무규정적인(apeiron) 것이되 그 무규정적인 상태에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자기 동일적인 것(tauthon) 즉 형상 쪽과 닮은(homoion) 상태가 이른바 앞으로 각각 논의될 대상 가운데 하나로 정의이고, 그 무규정 상태에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타자적인 것(heteron), 즉 형상 쪽과 가장 닮지 않은(anhomoion) 상태가 역시 앞으로 각각 논의될 대상 가운데 다른 하나인 부정의인 것이다. 요컨대 정의도 언제든 부정의로 변질될 가능성에 열려 있는 것이고 부정의 또한 언제든지 정의로 회복되고 극복될 수 있는 가능성에 열려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제8권에 실린 나라의 쇠락과정을 플라톤의 쇠퇴사관으로 해석하는 토인비(A. Toynbee)의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플라톤의 정의론은 결코 필연을 담보하는 낭만적 이상론이나 결정론의 체계가 아니며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언제든 쇠락할 수도,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가능성의 체계인 것이다. 다만 완전하게 열린 비결정론과 차이가 있다면 플라톤은 그 열린 가능성에서 우리가 지향하고 다가 가야할 목적이 무엇이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가는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홍규 선생이 플라톤의 이론을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목적론과 구분하여 ‘동적인 목적론’으로 부르는 것도 그러한 배경에서 일 것이다.(박홍규 <희랍철학논고> 121쪽 참고) 인간은 동적 목적론에 기초하는 한, 끊임없이 결핍에서 충만으로 곧 선을 지향하고 그곳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결핍을 채우려는 노력과 행동이 없거나 참된 지식 대신 무지가 행위를 인도할 경우 인간은 결코 목적으로서 선에 도달하지 못한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행동력과 올바른 지식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도 플라톤의 철학은 해체와 무질서, 부정의에 저항하는 끊임없는 지적 노력과 교육, 실천적 연마가 수반되지 않으면 다다르기 힘든 긴장의 체계, 치열한 지적 긴장의 체계, 끊임없는 분투의 체계이다. 플라톤에게 운명론은 끼어들 자리가 없는 것이다.(이정호, ‘박홍규의 존재론적 사유에 담긴 플라톤의 정치철학’, <박홍규의 형이상학> pp.137-142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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