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피켓2030]
고독
2017년 7월 8일 촬영
MODEL 이나연
PHOTO 신영빈
#1. 체념
나연 : 생의 마지막 순간, 끝내 놓치고 싶지 않은 아름다움을 눈에 담으며 떠날 것인가 아니면 절망과 혐오 속에서 눈감을 것인가. 지금의 나로서는 어떠한 것도 기대할 수 없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것을 떠올리며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영빈 ;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그렇지만 나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어.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모르니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내 자신을 가둬두었지.
이젠 이런 내 모습 나조차 불안해보여. 어디부터 시작할지 몰라서
– 임재범 <비상> 中
#2. 이면
나연 : 사람들은 나를 보며 태어났을 때부터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지 못하는 자들의 무지한 착각일 뿐이다. 나는 여태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영빈 : 스포트라이트가 켜지면 비로소 집중할 수 있는 장면이 있다. 평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지나치던 흔해빠진 모습도, 빛이 비춰지고 그림자가 드리우자 그 이면을 알 수 있을 때가 있다.
#3. 이면
나연 : 쓰레기 더미 옆에 있더라도 나는 악취를 맡을 수 없다. 내가 풍기는 고약한 냄새에 나의 코는 이미 마비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영빈 : 스스로 빛나길 원한다면 화려하고 높은 곳에서 내려와 볼 필요가 있다. 세상의 낮은 곳에서 나의 이면을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4. 이면
나연 : 너를 경멸하는 듯한 나의 시선도 결국 나를 향하는 것이었다.
영빈 : 그의 눈을 봐. 눈은 내면의 창이래. 눈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아.
#5. 이면
나연 : 사라지는 연기를 보며 나는 언제쯤 이곳에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없어질 수 있을지 생각한다. 죽기 전에도 내가 이곳을 떠나면 슬퍼할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 우습다.
영빈 : 가면을 벗어던지는 순간, 어떤 시선으로부터도 억압되지 않는 자유로운 공기 속에서 그의 이면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6. 고독
나연 : 나는 그들에 의해 그리고 나에 의해 가공된 조화의 삶을 살았을 뿐이었다. 내게는 쾌락도, 변화도, 쇠퇴도 허락되지 않았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날 끼워맞춘 틀 속에서 말라 비틀어 죽는 것.
영빈 : 온통 ‘나’에게만 집중하던 생활이 서서히 주변으로 시선을 옮기기 시작할 때. 사소한 것들마저 기억에 담고 싶을 만큼 만족스럽거나, 사소한 것들만큼 부질없이 느껴지는 삶에 한탄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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