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초월적 자기기만 – 진화생물학과 신경심리학적 배후 [자연과 문화 사이에서] -4
최종덕(상지대, 과학철학)의 종횡무진 책읽기 : 서평연재 -4
오늘의 책
트리버스,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살림 2013
Robert Trivers, <The Folly of Fools: The Logic of Deceit and Self-Deception in Human Life>, Basic Books, 2011
1. 위계적 권위의식과 자기기만
사람들은 당장에 처한 위기상황을 모면하기 위하여 거짓말로 속임수를 쓰곤 한다. 그리고 자신의 속임수가 남에게 탄로나거나 남이 알아채지 못하게 속임수의 수준을 더욱 더 강화한다. 속임수 강화의 마지막 단계는 자기 자신이 먼저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즉 남을 기만하고 그런 기만이 들통 나지 않고 성공시키기 위하여 자기기만에 자신도 모르게 빠지게 된다. 기만과 자기기만은 한 개인의 생존과 관련하여 생물학적으로 진화된 것이라는 명제가 바로 이 책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살림 2013; The Folly of Fools, The Logic of Deceit and Self-Deception in Human Life, 2011)의 저자 트리버스Robert Trivers가 이루어낸 사회심리학적 성과이다. 트리버스는 기만행위를 진화생물학과 신경생리학의 시선으로 조명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높이 평가된다.
기만행위의 생물학적 진실을 많이 알면 알수록 기만행위로부터 유래된 인류학적 불행들, 즉 전쟁, 테러, 종교 갈등, 인종차별, 독재권력 등의 사회현실을 방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이 책은 전해주고 있다. 한 개인의 기만행위는 개인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집단의 신뢰도를 추락시킨다는 데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인류사에서 볼 때 인간사회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충돌이 생길 경우, 개인의 자기기만 행위는 집단을 넘어서 집단 간 전쟁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전쟁까지 가지 않더라도 사회집단 내 불평등 구조는 바로 권력자 혹은 권력집단의 기만과 자기기만 행위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권력의 횡포, 일방적 위계구조의 부작용이 심각한 한국사회에서 이 책을 읽는 일은 더욱 의미있다.
이 책은 생물학자이면서 인류학, 심리학, 역사,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다층적이고 포괄적인 학문성과를 보여준 트리버스의 최근 작품이다. 이 책의 한국어 번역제목은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이다. 이 책에서 저자 트리버스는 속임수와 자기기만이 진화적으로 오래된 인간의 행동양식임을 강조한다. 자기기만의 행동양식들이 누적되거나 집단화 되고 혹은 관습적으로 허용될 때 역사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야기된다. 사회적으로는 전쟁과 같은 역사적 파국이 일어나며 개인적으로는 이혼이나 가정파괴로 이어지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임수와 자기기만은 신체적으로 면역력의 약화를 초래하여 결국 건강까지도 훼손한다고 트리버스는 말한다.
이 책에서 자기기만의 흥미로운 사례로 항공기 사고들을 소개하고 있다. 1994년, 모스크바 발 서울 행 에어로플롯 593편에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추락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사고 비행기의 조종사는 아들과 딸을 조정실에 동승시켰다. 조종사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욕심이 있었다. 그런 욕심은 자기기만적인 인정요구에 해당한다. 조종사는 그의 아들에게 조정칸을 맡기고 아버지의 멋있는 행동을 따라하도록 했고 11살 아들의 실수로 결국 비행기가 추락되었다. 탑승자 75명 전원이 사망한 이런 극도의 불행한 사고는 개인의 사소한 자기기만에서 비롯했다.
이 책은 한국의 대한항공의 경우까지 기술하고 있다. 1988-1998년 사이 대한항공의 사고로 인한 사망율은 미국의 일반 항공사 대비 17배였다. 한때 델타항공사와 에어프랑스 항공사는 대한항공과의 협력관계를 중단하기도 했었다. 미군은 대한항공기의 이용을 금지하는 내부명령을 잠시 내린 적도 있었다. 캐나다에서는 대한항공의 비행기가 캐나다 영토 내 착륙권을 금지하는 것을 고려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모두 대한항공의 불안전성 때문이었다. 트리버스는 대한항공 조종사들의 자기기만 요소를 기술했다. 첫째 한국의 고질적인 위계질서는 자기기만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한다. “기내 조종실에는 정/부 두 명의 조종사가 있지만 그들 간의 지배 관계가 확고해서 사실상 한 명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303쪽) 둘째 권위의식 때문에 비행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측하지 못한 오류 발생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에 내재된 이러한 자기기만 요소는 결국 큰 사고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사고내용은 다음과 같다.(주1) 기장과 부기장만 있는 폐쇄된 여객기 조정실에서 기장의 자기기만은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사례를 저자가 대한항공사에서 찾은 것은 정말 씁쓸한 일이다. 1997년 대한항공 비행기가 괌에서 추락하여 무려 228명이 사망한 대참사를 말하고 있다. 당시 기장이 조정키를 맡았었다. 심한 안개로 인해 활주로 1차 착륙시도에 실패한 후 다시 선회하는 중 코앞에 닥친 산등성이에 충돌될 위험을 부기장은 인지하였다. 부기장이 이 위험상황을 기장에게 보고하고 즉시 선회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기장과 부기장 사이에 고착된 위계질서와 권력구조 때문에 기장은 부기장의 말을 무시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이 사고의 원인은 기장에게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괌 공항 항공시스템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문제는 기장의 자기기만적 권력의식 때문에 조종사가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데 매우 취약했다는 데 있다. 조종실과 같은 폐쇄공간에서 자기 과신과 위계적 권위의식은 부조종사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기기만 행태가 더 쉽게 드러난다는 것이 트리버스의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권력구조가 강한 집단일수록 그 집단 안에서는 불의의 사고 및 갈등사태의 발생율을 높인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한국사회의 위계적 권력구조의 문제는 우리 사회를 파국으로 만들 수 있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바로 그러한 상황은 트리버스가 말하는 자기기만으로부터 초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치권력구조에서부터 가부장적인 가족구조에까지 그런 자기기만은 터지기 일보 직전의 위험수위에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의 설명이 더욱 흥미롭다.
주1) 한국어 번역서에는 대한항공 사고내용에 대한 부분이 모두 빠져있다. 출판사가 의도적으로 뺐는지 아니면 번역자의 실수인지 잘 모르지만, 사고내용마저 침몰시킨 세월호에 대한 가슴 아픈 기억 때문에 한국어 번역서에는 없지만 영어 원본에 있는 사고경위를 여기서 기술한다.
2. 한국 대통령에서 드러난 자기기만의 양상
우리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아부, 거짓말, 약자 학대, 가족갈등, 부정부패, 남녀불평등, 조폭사회, 양극화 현상, 경쟁심리조작, 공격성향의 팽배, 종교의 물신화, 이주노동자 학대, 심각한 노조탄압, 마구잡이식 토건개발, 외모지상주의, 사학비리의 천국, 핵발전소 이권 야합, 정치적 매카시즘 등의 개인적 혹은 사회적 갈등구조는 자기기만 행동의 사회적 결과로부터 야기된 것임을 이 책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이 책에서 지적한 자기기만의 양태가 한국의 대통령의 모습과 똑 닮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더해 보자. 남을 속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트리버스는 기만의 비용을 세 가지로 본다. 첫째 인지부하가 크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거짓말할 때 머뭇거리거나 떠듬거린다. 그리고 초조해지는데, 이를 숨기거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시치미를 떼거나 남 탓을 더 한다. 혹은 남을 부정한다. 자기기만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대신에 남의 의견을 거부하고 부정하며 오히려 남의 의견에 대하여 강하고 과잉된 반응을 한다.(33쪽) 박근혜는 최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에 대한 외부의 비판 일체를 부정하면서 그런 행위에 대하여 <일벌백계>한다는 봉건적 왕권의식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박근혜의 일벌백계론은 하나를 본보기로 처벌하여 대중들 모두에게 경각심을 고조한다는 것인데 이런 강한 표현법은 자신의 의도를 숨기려는 과잉반작용의 한 사례이다. 트리버스는 박근혜식의 반응양태를 “과잉통제”라고 한다. 자신의 기만이 들킬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과잉반응을 유도하며 과잉반응을 숨기기 위하여 과잉통제로 자신의 감정을 포장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의 과잉통제는 쉽게 노출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기만이 자기기만으로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자기기만은 기만의 성공도를 높이기 위해 발달된 양상이다. 자기기만으로 나타난 “기만에 능한 사람은 감정억압 기제도 같이 발달한다.”(35쪽) 기만행위자는 자기 자신의 행위를 믿는 정도가 자기기만자보다 떨어진다. 즉 자기기만의 발달단계에서 기만자는 지나친 자신감(과신)을 표출한다.(38쪽) 과신이 있어야만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게 하고 속임수를 계속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신과 과잉반응은 누가 뭐라고 말해도 관계없이 자신의 행위를 지속시키는 기만적 장치라고 트리버스는 잘 말해주고 있다.
자기기만에는 다음과 같은 9가지 양태가 있다고 저자 트리버스는 말한다.(42-53쪽)
1. 자기기만은 자기 부풀리기를 동반한다.
2. 자기기만은 남을 폄하하고 자화자찬하려는 숨겨진 의도를 갖는다.
3. 나와 너, 내집단과 타집단을 분리하여 상대를 배제한다(배제의 원리)
4. 자기기만의 권력은 편향되고 부패해진다.
5. 자기기만은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하다가 결국 도덕적 위선으로 빠진다.
6. 같은 정도의 위험이라 할지라도 불확실한 위험보다는 확실한 위험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
7. 상대방을 통제할 수 있고 통제를 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한다.(통제착각)
8. 자기기만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꾸미면서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9. 자기 자신의 권력에 종속된 집단의 자기기만을 유도한다.
이번 박근혜 게이트의 배우 중의 한 사람인 고영태는 스스로 말하기를 “유명한 대기업 간부들조차 자기에게 굽실거린다“고 말할 정도다. 부도덕한 기만행위자의 개인적 위안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반영한 사례이다. 기만에서 자기기만으로 발달하는 과정에서 기만행위의 신경생리학적 가소성plasticity이 작용한다. 쉽게 말해서 거짓말도 자주 하고 오래 하면 는다는 뜻이다. 저자는 기만의 가소성을 신경생리학으로 설명한다. 두뇌 피질 중에서 백질(white matter) 부위가 있는데, 이 부분은 신경세포체가 아니라 신경세포의 가지인 수상돌기(dendrite)와 그 부위에 양분을 공급하는 신경아교세포 부분이다. 이 부분은 사용하면 사용하면 할수록 더 증가되고 사용을 멈추면 축소되는 성질이 있다. 즉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학습하거나 연습하면 할수록 그 행동연관성 신경세포가 증가한다. 마찬가지로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는다. 거짓말을 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의 백질이 증가한다는 경험보고를 저자는 강조한다.(105쪽) 박근혜 자신은 스스로 기만행위를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깊은 자기기만에 빠질 경우 본인 스스로 기만이라고 판단하지 않거나 기만이라고 판단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기기만이 오래 갈 경우 해리disassociation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광신도적 종교 지도자들은 예외 없이 해리현상에 빠져 있다. 그 스스로 하는 행위의 기만성을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다. 이런 증상은 자기기만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자기기만을 더 깊이 천착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관련자들의 아부와 아첨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게 더 깊이 천착된 자기기만은 자기 자신을 재구성하고 재구성된 자기를 기억이라는 장치로 합리화시킨다. 쉽게 말해서 기억이 조작된다는 뜻이다.(232쪽) 자기의 재구성이란 개인의 서사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서사를 창출한다는 것은 가공의 자기를 만들어서 자기 스스로 자기를 해리disassociation시키는 것이다.
해리상태에 이른 자기기만된 자기는 어리숙하게 굴기도하면서 주변 상황파악을 못하는 척하면서 뻔뻔한 행동을 하는 데 능해진다. 또한 자기가 속한 집단의 분위기(혹은 사회적 이념)를 조작하는 합리화를 한다. 나아가 자신의 기만을 남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먼저 상대를 강하게 공격한다. 저자 트리버스는 이런 증상을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이라고 말했다.(117쪽) 또한 자기기만의 병증은 광신도들이 가지는 극도로 편향된 주술적 성향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자기기만의 주술적 성향이란 자기 개인의 내부적 심리상태를 우주적 통일성으로 대체하는 가상세계에 빠지는 경향을 의미한다. 트리버스는 이를 “우주적 의식의 특권화”라고 표현했다.(461쪽) 우주적 의식으로 가장한 한국 대통령의 초월적 자기기만의 심리상태의 특징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몰이성적 행위를 정당화하며 ‘우리는 옳다“라는 주술적 자기기만의 형태와 유사하다. 이런 자기기만의 양상은 모종의 갈등이 생겼을 때 혹은 자신의 기만행위가 탐지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조직적으로 남 탓을 하고 분리주의를 유도하며 결국 자화자찬과 상대비난에 ’빠진다‘.(463쪽)(주2)
트리버스가 말하는 우주적 의식의 특권화에는 “거짓역사 서사”가 있다.(10장) 거짓역사 서사란 집단수준에서 집단적인 거짓말을 공유하고 집단거짓말에 스스로 참여하여 거짓서사에 동참하는 것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거짓말을 하고 스스로 기꺼이 속는다. 이를 통해 집단의 동일성을 확인한다. 구성원이 어릴 때부터 집단교육을 받으면서 집단의 거짓교육에 순응하게 된다. 자기가 자기 자신의 과거에 대하여 하는 거짓말도 포함한다. 집단 내 극단적 이기주의도 서로 합리화한다. 집단 내 상대의 비리를 묵인하거나 격려하여 자신의 비리를 정당화하려는 의도에서 나온다.
주2) 여기서 서평자는 ’빠진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일반적으로 이는 능동성 행위가 아니라 수동적 행위일 경우에 사용된다. 그러나 실제로 자기기만 행위는 능동성 행위이다. 그래서 기만행위에 대하여분명한 법적 책임이 지워진다. 그 근거로서 자기기만의 경우에도 자기기만 행위자의 전두대상피질(ACC Anterior Cingulated Cortex)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권위기반 자기기만이나 주술적 자기기만 행위 역시 의도적 기만과 같은 능동적 행위이다.
3. 편향과 인지부조화
이 책은 자기기만의 사회-진화심리학적 배경을 다루고 있다. 자기기만은 진화적 형질의 결과이다. 기만의 성공여부는 자신의 기만이 들통 나지 않도록 즉 남이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것에 달렸다. 인간에게서 이러한 기만형질은 인간의 언어 능력보다 더 오래된 진화적 형질이라고 저자 트리버스는 쓰고 있다.
인간 본성 가운데 기만을 알아채는 능력이 따라서 진화되었다고 트리버스 교수는 말한다. 다시 말해서 기만하는 자와 기만당하는 자 사이의 공진화적 투쟁이다. 이런 점에서 지능과 기만은 상관성이 높다고 한다. 사람들이 남들로부터 기만을 당했을 때 더 이상 기만을 당하지 않으려는 경고의식을 배우게 된다. 이는 일종의 지능상승의 효과이다. 성공적인 사냥을 위해서 혹은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탄생한 위장술은 자기 혹은 집단 생존과 번영을 위한 사회적 전략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기만을 당하는 경우 분노를 표현하고 이는 기만을 진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만 방지 사회의 규범을 만들게 된다. 이는 사회적 윤리 형성과 깊이 연관된다고 한다.
자기기만은 신경생리학적 신체기관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무의식적 자기 인정은 자기기만으로 유도되는 경우가 많다. 자기자립심, 자존감은 자기인정 감정에서 시작하며 이는 자기기만에서 극대화를 이룰 수 있다. 드러낸 자기존중과 숨겨진 자기존중 사이의 상관성을 말하고 있다. 이 점에서 트리버스만의 독특한 시니컬한 필체를 엿볼 수 있다. 인간의 어두운 면을 솔직하게 보여준다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사실의 측면에서 아직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자기합리화를 하는 경우는 매우 일상적인 삶의 모습들이다. 자기합리화는 자기기만의 전단계이다. 이런 점에서 자기기만은 마음의 면역계라고 말한다. 자기기만은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를 스스로 창조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한쪽 뇌반구를 자신의 또 다른 뇌반구로부터 숨길 수 있다고 착각하는 데서 오는 것, 그것이 바로 기만행위이라는 것이다.
가족 간 그리고 남녀 간에서 일어나는 자기기만의 현상은 관심이 더 가는 주제였다. 가족 내 자기기만은 분열된 자아를 초래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갈등에서 부모는 자기기만의 증상을 보인다. 어른은 자신이 어른이라는 권력을 이용하여 아이에게 일방적 권리를 주장한다. 부모라는 지위를 더욱 강화하여 양육에 필요하지 않은 지나친 권력의 요소를 가미하여 아이를 통제하고자 한다. 이런 권위와 권력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행사하는 기만의 일종이다. 이는 부부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남편은 남편이라는 주어진 권력구조에 스스로 빠지고 만다. 이로부터 부부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한다. 남녀관계를 다루는 측면은 더 흥미롭다. 남자와 여자는 공진화하는 서로 다른 두 생명종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아주 재미있는 표현이다. 상호 자기기만의 정도가 심하여 마치 다른 생명종과 같다는 트리버스만의 메타포이다. 월경주기에 대한 기만, 성적 관심을 우회하는 방식, 동성애와 동성애를 회피하려는 남성의 억제력, 결혼에 대한 의미, 환상과 그에 대한 배신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기존 임상심리학에서 많이 연구되어 온 편향확증의 문제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다. 편향된 정보해석, 편향된 기억, 편향된 판단, 편향된 추측 등의 편향확증의 문제를 자기기만의 상태와 연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억제와 투사, 즉 부정하려는 억제의 심리상태와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는 투사의 심리상태는 기존의 것을 보전하거나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기인하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회피하려는 의도와 연관한다고 말한다. 이로부터 인지부조화를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 현실을 왜곡하여 자신의 생각으로 현실을 포장하는 일이다. 그리고 포장된 현실을 실제 현실로 굳게 믿어버린다. 트리버스는 이런 구조를 진정으로 이해할 때 개인적 인지부조화의 부작용들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개인의 인지부조화로부터 야기되는 사회적 갈등들을 타개할 수 있는 대안도 마련될 수 있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자기기만 현상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주식시장에서의 성공환상, 국회의원 후보들의 한결같은 승리 도취감, 자신의 일을 멋있게 포장하는 우월감 혹은 허풍의 행위 등등 수없이 많다.
4. 트리버스가 본 정치적 자기기만의 사례
미국인으로서 트리버스는 미국의 잘못된 역사의 이야기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정치적으로 진보적 학자도 아니면서 미국의 편향적 정치외교 풍토를 비판적으로 서술한다. 소규모 전쟁들과 지역 대리전쟁들을 통한 통제의 역할이 무엇인지, 왜 미국 역사교과서는 중립성이 취약한지, 나아가 이스라엘 국가의 창설은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각 나라마다 지난 역사에서 발생한 대학살의 과거를 왜 부정하는 지 말하고 있다. 나아가 나치 등에서 발생한 인종청소의 대학살의 역사, 기독교의 시오니즘과 아랍의 자기기만 형태들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이러한 오도된 역사는 왜 발생하는지 트리버스는 자신의 자기기만 이론으로부터 끌어내온다.
자기기만은 민족 간 전쟁 유발의 요소라고 본다. 이는 침팬지의 기습공격의 연원과 맥을 같이 한다고 말한다. 불행의 역사를 만들게 된 인간의 전쟁은 결국 자기기만으로부터 온다는 점이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도 여기에 속할 수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 가자 지구에서의 학살사태도 여기에 속할 수 있다고 본다. 트리버스가 한 말은 아니지만 서평자의 입장에서 현재 시리아 내전은 현 정권 집단의 자기기만 행위의 절정을 보여주는 사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태들은 지구 곳곳에서 그리고 우리 역사 한가운데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도 이와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고 한다. 어떤 경우 종교는 자기기만의 처방전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우리는 종교에서 자기정당화로 인해 큰 전쟁으로 치닫는 경우들을 보아왔다. 이는 자기기만의 집단적 귀결이다.
현대사회는 곳곳에서 정의를 외치고 있지만, 정의는 권력자의 자기기만의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원시사회 이상으로 자기기만의 부작용이 크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학문적 진실은 이러한 기만적 정의를 폭로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이 트리버스의 생각이다. 생물학에서, 경제학에서, 심리학이나 문화인류학에서 그리고 철학과 역사학에서 그러한 기만의 정체를 대중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자기기만에 스스로 빠지지 않고 또한 타인의 기만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고민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한다. 속임수를 통해 남을 꺾고 이기려는 타인 기만과 타인 기만의 성공도를 더 높이는 자기기만이 팽배해지면 그 사회 전체의 존속이 위태로워진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이는 과잉자만심과 연관한다. 예를 들어 과잉자만심의 사례로서 국수주의 애국심은 역사를 지우려는 집단심리의 폭탄과도 같다고 트리버스는 말한다. 이런 집단성 편향은 결국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길로부터 멀어진다. 자기기만의 허울을 벗는 것이야말로 인간도덕의 지향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스스로 자기기만의 굴레를 벗기가 쉽지 않다. 기만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기만을 느끼지 못하거나 반성 자체가 없는 사람들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 역시 습관화된 자기기만의 결과이다. 트리버스는 자기기만에 맞서야 할 것을 말한다. 그것만이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개인의 정신적 공항, 충동성, 환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집단의 전쟁, 외교 분쟁의 실마리도 여기서 찾아야 한다. 자기의 정신적 편향성을 교정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한다. 트리버스의 표현대로 말해서 “끝나지 않는 광시곡”, 자기기만의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일이 평화로 이르는 길이다. 특히 한국에 사는 우리들은 그런 자기기만의 어리석음에 빠지기 직전이었다. 우리는 평화를 찾기 위하여 기필코 대통령이 연주하는 광시곡의 무대를 하루빨리 철거해야 한다.
<저자 소개>
저자 로버트 트리버스는 러트거스Rutgers 대학교 인류학과 생물과학 교수이다. 트리버스 교수는 생물학에 기반한 대표적인 진화심리학자이다. 그는 갈등구조와 협동성, 권위와 자기기만 행동유형의 연구성과로 2007년도 생명과학 분야 크래이푸어드Crafoord Prize 상을 수상했다. 그는 자신의 자기기만 행동을 스스로 인정하는 등, 시니컬하면서도 사회적 협동성에 관심이 많은 독특한 스타일의 지식인이다. 정치적으로 인종불평등과 편향된 정치권력구조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독설가로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사회과학적 현실 이해방식은 항상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기 때문에 그의 이론은 정당성있는 이론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70년대 이후 진화심리학의 과학적 초석을 마련한 최고의 생물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사회에 관심있는 진화생물학 연구자라면 누구나 읽고 가야할 최근작 <Natural Selection and Social Theory>(2002)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서 역사와 인간과 사회 그리고 생물학을 연결하는 다중적이고 통합적이며 초학제적 학문연구의 범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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