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한국현대철학과 자유의 씨앗
한국현대철학과 자유의 씨앗
최종덕(상지대, 철학)
1. 한국학이 존재하는가?
유럽이나 미국에는 중국학과 일본학이라는 학문체계가 존재한다. 단순한 지역학의 범주를 넘어서 사상사까지 닿아있다. 중국학은 선진유가부터 마오쩌둥에 이르는 광범위한 연구로 진행되고 있다. 일본학은 근현대 지식과 예술 범주에서 많이 다뤄지고 있는데, 서구 학자들에게 의외로 상당한 지적 호기심을 낳게 한다. 그런데 필자는 중국학이나 일본학과 같은 지식체계에 대해 비판적이다. 지식은 보편적이어서 지식의 지역성은 그 스스로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독일 관념론은 있어도 독일학이란 있을 수 없고, 독일 지식인조차도 그럴 필요를 갖지 못한다. 르네상스 사상사는 있어도 그것이 유럽학의 범주 안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1970년대부터 수많은 논쟁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학과 일본학의 현실은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중국학과 일본학이 정작 중국과 일본 안에는 없다는 사실만을 봐서도 그 점을 알 수 있다.
중국학이나 일본학은 유럽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지역 연구기관에서도 많이 연구되고 있다. 쉽게 추정할 수 있듯이 중국이나 일본은 정치경제학적 이유 때문에 그들의 외국 소재 중국학이나 일본학 연구기관에 상당한 재정지원을 해오고 있다. 한국도 외국의 한국학 연구에 지원을 많이 늘리고 있다. 한국학 연구지원을 늘리고 있지만, 연구지원의 내용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한국학이 아니라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수준이다. 유럽 혹은 미국의 대학이나 연구소에 한국어 교실이나 한국문화 교과목이 개설된 경우는 있으나, 정작 한국학은 없다. 한국학의 범주로서 조선 성리학이 연구되는 사례는 있지만 그것도 동아시아학 연구에 포섭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학이 없는 이유가 한국정부 차원의 국제적 지원이 미흡해서인가? 아니, 그 이유보다 한국학의 실질적인 내용이 미흡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한국학이 중국학과 다른 내용이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검토해야 한다. 한국학이라고 해서 기존의 중국학이나 일본학의 내용과 다를 것이 없다면 한국학의 주체적 확립이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 학자가 보기에, 그들은 한국학의 첫 페이지를 시작하는 단군 사상을 전통적인 동아시아 신화와 같은 원류의 하나일 뿐이며, 고려시대까지의 불교문화를 중국불교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조선 성리학은 주자학 이상의 대단한 논쟁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것마저도 일제 강점기 학자들에 의해 왜곡되어 해석되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왜곡된 채로 서구학자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2. 주제의 특수성과 관점의 보편성
한국학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 통로의 조건, 즉 i)주제의 특수성과 ii)관점의 보편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통로로서 한국학의 주제는 특수한 내용이어야 한다. 한국학은 한반도에서 발현한 고민과 아픔을 담아낸 성찰과 비판의 관점을 요구한다. 그리고 중국학이나 일본학과 다르게 한국학이 가질 수 있는 차이의 차이를 드러내야 한다. 둘째 통로로서 한국의 주제를 해명하는 관점은 보편적이어야 한다. 한국학이 성립하려면 한국학이 지역학에서 벗어나 보편학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불교의 최고 전문가가 독일이나 일본의 학자에서 나올 수 있듯이, 노장자 철학의 최고 전문가가 중국이 아닌 한국 학자에서 나올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한국학은 지식의 보편의식을 필요로 한다. 보편성의 지식체계는 반드시 특수성의 차이를 바탕으로 하며, 그 위에서 비로소 종합이 가능해진다. 즉 개별의 차이가 있어야 개별간의 종합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차이가 없는 개체들 사이의 종합은 일방적 종속에 지나지 않으며, 차이를 무시한 개별자간의 종합은 결국 획일적이거나 교리적인 도그마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학 성립에 필요한 성찰과 비판은 반동적 성향을 갖는다. 다시 말해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한국 지식계는 매우 특이적 상황에 직면하는데, 전통에 대한 반동과 일제에 대한 저항이었다는 뜻이다. 세기말 한국 지식계의 반동성은 한국학 성립의 첫째 통로를 열어준다. 불행하게도 i)일제 강점과 ii)그에 이어진 분단 그리고 iii)연이어 우리 시회를 짓눌러온 독재권력은 지식의 보편화로 가는 통로를 막았으며, 문화의 연속성을 단절시켰다.
사상사의 단절과 정지는 한국철학사를 쓰는 데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1970년대 이후 출간된 많은 한국철학사 류는 단군에서 시작하여 성리학을 거쳐 실학과 동학을 기술하면서 끝나버린다. 다행히 한국학 정립의 기초적인 통로를 보여준 책 두 권이 최근 들어 연이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동학 이후에서 해방 이전까지 단절된 철학의 시공간을 채움으로써 한국철학의 완성본을 처음으로 제시한 책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 두 권의 현대한국철학은 한국학 성립의 기본요건인 주제의 특수성과 관점의 보편성의 조건을 충족시킨 최초의 책이다.
그 두 권의 책은 이규성 선생의 <한국현대철학사론>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지은 <처음 읽는 한국현대철학>이다.
‘최초’라는 말을 독자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그리고 되풀이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이 두 권은 정말 i)처음으로 한국현대철학을 정리한 책이며, ii)처음으로 주제의 특수성과 관점의 보편성을 결합시킨 책이며, iii)처음으로 <한국학> 정초를 위한 사상사적 내용을 완성시킨 책이다. 한국철학이 한국학의 전부일 수 없지만 사상사적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현대한국철학의 정립은 한국학 성립의 필요조건이다.
3. 자유를 해명한 이규성의 책
이규성의 <한국현대철학사론>은 자유의 개념을 한국학에 접목시킨 최초의 업적을 낳았다. 세기말 조선 지식인 몇몇으로부터 개인의 자유 개념이 싹텄다. 군주의 천명으로 사회를 해석하는 기존의 유학과 달리 개인의 자유를 통해서 비로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희망을 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평등한 삶에 대한 민중의 희망을 대변하는 지식체계가 등장했다. 그것은 동학과 대종교 그리고 민중화된 양명학이었다. 불행히도 이렇게 힘들게 성취된 자유의 싹은 일제 강점에 부딪혀 꽃은커녕 잎도 피우질 못했다. 이런 한국 지성사를 저자 이규성은 ‘세계상실’이라고 표현했다. 이규성의 책은 <세계상실과 자유의 이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자유와 상실의 혼란은 한국현대철학의 질곡을 보여주는 한마디의 통성이었다. 자유와 상실을 여실히 보여주기 위하여 저자 이규성은 세기말 지식인의 자료를 수집하고 해석하여 단절된 지식의 역사를 복원시켰다. 이 책을 채운 지식인들을 죽 대면 다음과 같다. 동학 사상의 최제우, 최시형, 이돈화, 김기전이며, 대종교 사상의 전병훈, 나철, 이기, 서일, 또한 양명학 계통의 신채호, 이회영, 이건창, 박은식, 나아가 동서양 결합지식계통으로 1960년대까지 이른 철학자로서 박종홍, 함석헌, 신남철, 박치우이다.
저자 이규성은 이들 한국 지식인의 대체적인 공통점을 자유 지향에 있다고 파악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 지향이란 “해방적 자유의 길이며 이러한 자유는 변증법적 이성의 영혼”이라고 이규성은 표현했다.(이규성 765) 이규성이 속으로 생각하는 자유를 서평자 나름대로 재정리하자면, 첫째 개인의 개체 차원의 독자성, 둘째 계급과 성차에서 벗어난 평등성, 셋째 백성은 계몽과 계도의 대상이 아니라 개인 각각이 그 스스로 자유를 인식하고 실현하는 잠재력을 자기 안에 이미 갖추고 있다는 개인의 자기-전성설, 넷째 사회경제학적 자립성, 다섯째 합리적이고 주지주의적인 관점으로 다 해명될 수 없는 구체적 삶의 세계를 사는 현존성이다. 예를 들어 동학사상은 주체적 개체성, 계급 없는 평등성, 자기 안에 우주론적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는 통일된 자아, 그리고 사회경제적 자립성을 지향했으며, 대종교 사상은 평등함과 경제적 자립 및 삶의 현존 그리고 누구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범신론적 종교관에 맞닿아 있었으며, 양명학 사상은 앞서 말한 心卽理에 기반한 양지의 이론으로 개체성-평등성-전성설의 윤리학, 자립성, 실천성 모두를 지향했다.(이규성 3부9장)
이규성의 <한국현대철학사론>은 당대 성리학과 현대철학적 사유 사이의 철학적 차이를 단호하게 구분했다. 그 차이는 “세계의 불안”으로 나타났다고 이규성은 표현했다.(이규성 24) 이 점은 기존의 연구에서 볼 수 없었던 최초의 학문적 진보이다. 실학도 성리학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여전히 백성을 계몽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기존의 성리학처럼 대인은 소인이 지향해야할 범례이며 거꾸로 소인은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계도되어야 하는 그런 명분을 실학도 계승했다. 반면 동학 이후의 세기말 한국현대철학의 반동은 일방향적 군주정치나 성인정치의 그늘에서 벗어나 빈한한 유랑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군자와 성인이 소인과 백성을 훈교하도록 정초된 성리학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의 도탄을 직시했다. “서민적 지성이 시대의 조류에 맞서 자신들의 주체적 자각에 의거 백성과 나라의 자주성을 고민하고 확립” 해야 하는 시대였다고 이규성은 말한다.(이규성 24) 기존의 유가적 수양론에 의하면 성인의 훈교를 통해 무지한 자는 무지로부터 벗어나게 되며, 무지한 자가 훈교되지 않는다면 계속 무지한 채로 남게 될 수밖에 없음을 전제한다. 반면에 한국현대철학의 반동성은 이런 일방적 계몽화의 전제를 부정한다. 개체들 즉 백성은 이미 선험적으로 계몽된 상태이며 단지 미발현 상태일 뿐이라는 철학적 존재론에 있다. 그런 미발현 상태를 발현되게끔 바꾸어 주면 된다는 생각은 한국현대철학의 고유성이며 독특성이다. 그런 철학적 반동의 계기를 준 한국현대철학의 중심을 이규성은 조선양명학이라고 보았다. 양명학에서는 양지良知를 통하여 자기 안에 이미 내재되었던 성인과 군자를 찾아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 양명학의 가능성을 이규성은 “연대의식과 인민주권으로 발전할 잠재성”이라고 표현했다.(이규성 345) 양지의 사유구조는 평등과 주체, 자립과 현존을 세울 수 있는 분명한 철학적 기초이다. 또한 양지는 양명학의 인식론적 기초인 지행합일의 논리 위에 정초되어 있다.
4. 우리에게 철학은 있는가?
현대한국철학의 주제로 또 다른 책이 새로 나왔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축약해서 ‘한철연’) 이름으로 나온 <처음 읽는 한국현대철학>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철학은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한철연의 이 책은 이규성의 한국현대철학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재현되고 있지만, 이규성의 책보다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으며 매우 분명한 문제의식을 세우고 있다. 한철연의 책에서 한국현대철학의 문제의식을 대신한 한 마디의 표현이 있는데, 일본 제국주의자를 비판적으로 흘겨본다는 표현이다. 독립운동가 신규식이 일제에 항거하며 독약을 마시고 한쪽 눈을 잃었는데, 그 이후 그는 자신의 호를 한쪽 눈으로 흘겨본다는 뜻으로 예관晲觀이라고 붙였다.(한철연 344) 예관이란 반성하고 비판하며 행동하는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한철연의 책은 우리에게 철학이 어떤 의미인지 지식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 철학함의 출발이라고 말한다. 출세와 입신양명의 도구로 전락한 지식을 비판하며, 권력에 결탁하는 학문을 거부하는 새로운 비판과 부정, 저항과 혁명의 철학이 현대한국철학의 기초였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한철연 341) 한철연의 한국현대철학은 부제로 “동학에서 함석헌까지, 우리 철학의 정체성 찾기”에서 암시하듯이 철학의 의미를 스스로 질문하며 나아가 분열의 시대를 마주한 현대인의 철학적 지혜를 모색하고 있다.
한철연의 책은 현대인이 한국의 현대철학을 이해하도록 안내하는 입문서로서 최소한의 한국현대철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동학의 최제우, 대종교의 나철, 양명학의 박은식, 민족주의형 무정부주의의 신채호, 사회적 휴머니즘의 신남철, 실천철학의 박치우, 국가주의의 박종홍, 씨알철학의 함석헌의 철학을 잘 풀이해주고 있다. 한철연의 <처음 읽는 한국현대철학>은 이규성의 책 <한국현대철학사론>에 등장한 현대지식인 중에서 부분적으로 선별한 철학자를 중심으로 좀 더 쉬운 표현으로 소개하고 있다. 동학의 최제우에서 씨알 함석헌에 관통하는 철학은 이념적으로 평등과 자유에 있었으며, 방법론으로 저항과 실천에 있었으며, 내재적으로는 주체와 성찰에 있었다고 이 책에서 잘 정리되어 있다. 한철연의 책 <처음 읽는 한국현대철학>에 나온 8명의 한국현대철학자의 고뇌와 혁명의 철학을 요약하여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동학의 철학은 평등사상의 발로에 있었다. “사람이 한울이니 사람을 한울처럼 섬기라”는 평등사상은 누구나 자기 안의 한울님을 찾아내어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했다.(한철연 84) 기존의 성리학에서 주체가 군자이거나 군주이었지만, 이제 백성 한 사람마다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무계급의 철학을 말한다. 최제우(1824-1864)를 단박에 가 깨닫게 한 한마디의 말이 서평자의 마음에 와 닿았다.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한철연 77)는 말이 내 안의 시천주侍天主에 대한 확신의 표현이라고 이 책에서 잘 설명되고 있다.
단군교로 시작한 대종교의 창시자 나철(1863-1916)은 단군을 부흥시키는 일에 머물지 않고 일제탄압에 정면으로 맞서서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한다. 천지인, 혹은 한인-한웅-한검이라는 3의 구성체는 단순히 절대적인 구원의 길을 제시한 단순 종교적 특성을 넘어서서, 인간이 살면서 겪는 “느끼고 숨 쉬고 부딪치는” 세 가지를 가리켜 ‘세 길’이라고 부른다고 하며, 인간은 이 세 길에서 방황하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했다.(한철연 112)
황성신문을 창간한 박은식(1859-1925)은 사회진화론을 도입하여 서양과학에 친화적인 양명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 양명학이 한국현대철학에서 중요한 이유는 앞서 이규성의 자유론에서 언급되었다. 한철연의 책은 박은식이 말하려는 양지를 잘 요약해주었다. 양지는 주자학의 주지주의적 도덕론에서 벗어나 있으며, 오히려 맹자가 말한 측은심의 기반이라고 했다.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이 아닌 내재된 도덕적 정감의 의미를 포함하는데, 공정함과 시비선악의 기준으로서 성선함의 기초라고 설명한다. 특히 박은식은 양지를 자연을 밝게 통찰하는 앎, 순일하고 거짓없는 앎, 끊임없이 유행하며 쉬지 않는 앎, 두루 감응하며 막힘이 없는 앎, 성인과 어리석은 사람과 차이가 없는 앎, 우주와 인간을 합일하는 앎이라고 쉽게 풀어주었음을 이 책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한철연 149)
우리에게 민족 개념이 들어온 역사는 짧다. 그나마도 박정희 군부독재 국가주의를 옹립하기 위한 이념적 도구로서 ‘단일민족’이라는 선전구호로 왜곡되었다. 이념적 도구가 아닌 주체로서의 민족 개념을 처음으로 안착시킨 철학자는 바로 신채호(1880-1936)였다.(한철연 173-6) 신채호는 성균관 박사(교수 지위)로 임용되었지만 과감히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첫째 이유로서 전통이 유교적 세계관으로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으며, 둘째 이유는 자신의 스승 신기선을 포함해서 당시 유가적 전통을 따르는 집단이 친일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분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적 역사와 내적 성찰을 거치면서 신채호는 군주와 양반 중심의 일방향적 군주 사회가 아니라 백성과 민중이 주인되는 민족 개념을 형성하였다. 신채호의 민족주의는 오늘날 해석에 따르면 ‘방어적’ 민족주의에 해당한다. 민족이란 민중이 주인 되는 주체의 국민을 의미하며, 서구식으로 말하면 시민에 해당한다. 신채호는 나중에 국가 차원의 주인성보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더 중시하게 된다. 결국 신채호의 철학적 관심은 1928년 이후 민족주의에서 탈피하고 사회진화론의 영향력에서도 벗어나서 아나키즘으로 변화한다.(한철연 190) 이런 점에서 신채호의 철학은 한국현대철학에서 중요한 위상을 갖는다. 한철연 책은 신채호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민족주의자와 독립투사로만 부각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사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주체들이 자기성찰과 자기각오를 통해 궁극의 자유를 창조하는 사유의 발판”을 신채호가 마련했다는 점에서(한철연 194) 신채호 철학의 의미는 과거에 그칠 일이 아니라 미래의 지표로 될 수 있음을 이 책은 강조했다.
브렌타노 현상학 논문으로 경성제대 철학과를 졸업한 신남철(1907-1958)은 헤겔과 고대그리스 자연철학 연구를 지속해 왔다. 헤겔의 정신철학 연구에서 신남철은 역사철학과 인식론을 연결시켰고, 나아가 철학을 현실역사에 접목시켰다.(한철연 215) 신남철은 헤겔의 정신철학을 단순한 관념의 발전이 아니라 세계와 인식주체 사이의 끊임없는 실천적 상호작용으로 해석한 점이 독특하다.(한철연 215) 결국 신남철의 관심은 서구 르네상스 문화가 조선역사에 출현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묻는 실천적 질문이었다. 신남철은 그 답을 계몽과 인간 그리고 자유라는 세 가지 키워드에 초점 맞추었다. 1942년 7월 1일 매일신보에 실린 신남철의 “자유주의 종언” 은 그의 현실참여형 정치철학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그 글에서 첫째 대동아공연권 개념을 강조한다. 이 점으로부터 신남철을 비롯한 당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을 세계보편주의로 오해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서구 국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위상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셋째 국가를 떠나서는 자유를 실현할 수 없다고 했다. 넷째 자본주의를 비판한다.(한철연 226-7) 이후 중국식 사회주의에 영향을 받고 월북한다. 신남철은 1948년부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서양철학사를 강의하다가, 나중에 자유주의자로 낙인찍힌 후 1958년 사망했다. 결국 그는 정치적으로 남한 정부나 북한 정부에도 적응할 수 없었으며, 자유주의와 이상주의를 영원히 품고 있었던 휴머니스트였을 뿐이다.
총을 든 빨치산 철학자로 알려진 박치우(1909-1949)의 삶은 정말 실천철학의 범례였다. 박치우의 실천은 사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인민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실현하는 데 있다고 한다. 박치우는 경성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숭의실업전문학교 교수와 조선일보기자로 있다가 월북했다. 그는 문학평론가이며 마르크스 철학의 학자였지만 유격투쟁의 일선에서 삶의 실천을 더 중시했다. 그는 빨치산으로 남파되어 활동하다 1949년 태백산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근대철학의 방법론을 배우고 실천하려 했던 최초의 강단철학자로 평가받기도 한다.(한철연 233) 그는 현실에서 실천으로 이행하는 철학적 단계를 그의 책 <사상과 현실>(1946)에서 해명하였다. 그것은 ‘교섭적 파악’, ‘모순적 파악’, 그리고 ‘실천적 파악’의 세 단계이다. 위기의 파악과 극복은 이성에 근거하지만 실제로는 ‘실천’으로만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 박치우의 기본 명제이다. 이를 그는 “로고스와 파토스의 변증법적 결합”이라고 불렀다.(한철연 239) 철학이 이론으로만 머물 때 가장 호사스러우면서도 가장 허울에 찬 것에 지나지 않음을 박치우는 강조한다. 우리는 박치우의 실천 행로가 꼭 옳은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철학의 할 바가 무엇인지를 박치우를 통해 배울 수 있다고 본다. “철학은 오늘. 이 땅, 우리에게 있어서 ,,,, 어떤 책임을 분담해야만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박치우는 한시라도 떨어진 적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한철연 243) 한철연은 박치우에 대한 평가를 다음의 한 마디로 하고 있다. “한국에도 사유와 삶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분투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한철연 267) 박치우의 철학이 이 소절의 제목인 ‘우리에게 철학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면피로 될 수 있는지는 두고두고 생각해 볼 문제다.
이 글을 쓰는 서평자는 어렸을 적 학교에서 박정희 군부독재의 의식화 사업의 하나였던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못해 선생님에게 매를 맞은 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국민교육헌장을 작성한 이가 박종홍(1903-1976)이다. 근대의 폭력적 권력이 전근대의 전제적 왕권보다 더 잔인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퇴행의 역사, 박정희의 ‘10월 유신’이라는 이름도 박종홍이 붙인 것임을 서평자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박종홍은 신남철이나 박치우처럼 경성제대 철학과 출신이었으며, 1968년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평온하게 은퇴했다. 다른 한국현대철학자들이 철학과 현실을 접목시키려 시도한 지식인으로 평가된다면, 박종홍은 철학과 현실에 권력까지 접목시킨 국가주의 지식인이었다. 그의 청년 지식기는 헤겔과 하이데거 그리고 퇴계를 통해서 전통철학과 서구철학을 연결하는 데 있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박종홍은 그의 후반기로 이행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평등보다는 집단의 운명을 강조한다. 집단의 공동체적 운명이 자각과 자유를 지닌 개체로서의 ‘나’보다 선행한다고 했다. 이러한 박종홍의 입장은 그가 향후 왜 독재권력에 적극적으로 승차한 정치적 이유를 알게 해준다. 그의 철학은 보통 ‘부정과 창조의 철학’으로 이름 붙여지기도 하는데, 그 내용인즉 부정을 통해 집단성의 힘을 창조한다는 데 있다. 박종홍에게 주체는 개체가 아니라 철저히 우리 민족이라는 결론에 이른다.(한철연 294-9) 해방 후 미군정 중심으로 경성제대를 편성한 ‘서울국립종합대학안’을 많은 지식인이 반대했지만 박종홍은 관여하지 않았으며 이승만 독재에 대해서도 박종홍은 묵인의 함구를 했다. 이러한 사실과 대조적으로 박정희 군사 쿠데타 이후 박종홍은 대통령교육문화담당 특별보좌관을 역임하는 둥 적극적인 권력참여를 했다.
씨알의 철학자로 알려진 함석헌(1901-1989)은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젊은 함석헌의 오산학교 시절은 일제 저항의 민족적 정신과 스승 유영모를 통한 노자 철학 그리고 개신교와 세계의 문화적 보편성에 다층적으로 영향받은 시간이었다. 이후 일본 유학기에 범신론적 종교성, 평화주의, 반자본주의, 노장 사상의 현대적 해석을 통해 실천적 지식의 지평을 넓혔다. 함석헌의 철학은 평화사상과 생명사상으로 줄여 표현할 수 있다. 평화와 생명은 저항으로부터 온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함석헌 씨알 사상의 핵심이기도 하다. “비폭력, 불복종, 총단결”로 요약되는 ‘민주시민을 위한 헌장’(1974)은 앞서 말한 박종홍의 국가주의 칙령인 국민교육헌장에 정면으로 맞서는 씨알의 지표였다. 한철연의 책에 써진 그대로 씨알의 의미를 서평자가 대신 요약하면, 씨알이란 진보의 역사를 끌고 가는 주체, ‘고난의 역사와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의 역사’의 주체이다. 서평자는 이 책에서 가장 기억나는 함석헌의 말이 있어서 인용한다. “저항하는 것이 사람이고, 저항할 줄 모르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한철연 334) 서평자는 함석헌을 현대 생명사상의 기초를 다져준 지식인으로 평가한다. 나의 이런 평가는 전적으로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겼다. 함석헌의 생명의 원리는 첫째 자연적이며, 둘째 스스로 드러나며, 셋째 환경에 맞서 고난하며, 넷째 자유로우며 능동적이다.(한철연 321-8) 즉 생명 자체가 평화의 근원임을 보여준 것은 함석헌 철학의 역사적 혁명이었다.
5. 샘물과 유전
서평자 자신도 이번에야 깨달았지만, 이 두 권의 책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에게 한국현대철학의 책이 없었다는 점은 놀라우면서 창피한 일이다. 대부분의 한국철학사 책이 동학사상을 끝으로 맺고 있는데, 그 변명을 서평자가 대신 한다면, i)대종교에 대한 인식부족, ii)일제청산이 안 되고 오히려 일제권력이 지금까지 지배적이었다는 점, iii)월북 지식인에 대한 연구가 제한되어 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런 변명을 과감히 깨고 나온 이규성의 책과 한철연 공동저자의 책은 정말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규성의 책은 기초자료와 지식의 체계성에서 거의 완벽에 가깝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이니, 현대한국철학의 전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한편 한철연의 책은 전문서적이기 보다는 대중에 접근하는 책이지만 문제의식만큼은 분명하다. 한철연 책의 문제의식은 철학의 정체성과 우리에게 철학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독자와 공유하고 싶은데 있다.
이규성의 책은 부제 ‘세계상실과 자유의 이념’에서 보듯 이규성은 망국에 대한 역사적 상실을 인간의 상실로 규정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내재된 자유를 통찰하고 현실화하는 데 있다고 한다. 결국 자유를 희구하는 지식체계를 한국현대철학의 특징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적 특징과 모순되는 지식체계가 이규성의 책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박종홍의 철학이 그것이다.
이규성의 책에서 보듯 박종홍의 철학체계 전반은 개체의 자존성보다 집단의 흥성을 보존하는 논리체계로,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의 권력을 옹호하는 지식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는 저자 이규성이 박종홍의 논리와 지식의 체계를 자신의 책 전반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종홍의 철학적 연구범위는 선진유가 철학에서 주자와 성리학을 거쳐 동학사상과 대종교 및 신유학, 나아가 동료라고 할 수 있는 신남철과 박치우에까지 이를 정도로 광범위하다. 한국현대철학의 한 꼭지로서 박종홍을 다루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박종홍이 본 한국철학자를 일반화시켜 소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제목이 ‘박종홍의 철학’이 아니라 현대한국철학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이규성은 자신의 책 <현대한국철학사론>에 등장한 한국현대철학자 16인을 소개하는 모든 소절 소절마다 박종홍의 입장을 매번 서술하고 있다. 서평자가 일부러 일일이 세어보았는데, 본문의 내용 910쪽 중에서 무려 최소 197쪽에 걸쳐서 박종홍의 명제를 소개하거나 해석의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을 정도다. 이 책은 한국의 현대철학자 16인을 소개하고 저자 이규성의 세계관을 주체적으로 보여주는 대단한 성과를 보여주었지만, 책을 자세히 읽는 독자에게 이 책은 ‘박종홍 철학’으로 비춰질 수 있다.
박종홍의 시대적 행적은 많은 논란을 갖고 있으며, 그의 철학을 해석하는 것은 사람마다 자유이다. 박종홍이 이승만 독재에 함구하고 박정희 군부독재를 화려하게 수사했다는 점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해석가들도 있기 때문이다. 서평자도 많은 해석들의 하나를 말할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는데, 박종홍의 철학은 이 책의 부제로 나온 “자유”의 지식계열에 결코 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쨌든 박종홍의 문제만 제외한다면 이규성이 책은 체계성과 창조성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다행히 한철연의 책 <처음 읽는 한국현대철학>은 박종홍의 현대사 행적을 여실히 말하고 있다. 이규성이 깊은 성찰을 통해 흩어낸 내재적 자유는 중요했다. 그런 이규성이 조각해낸 자유는 사막의 땅 밑에 깊이 숨겨진 오아시스의 샘물이라고 말해도 좋다. 한편 이규성에게 개인의 자유와 거리가 먼 박종홍은 땅 속의 유전이었다. 유전도 소중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샘물의 땅속 지도를 그리는 철학지평에 지하유전을 끌어들이면 샘물도 찾아 먹을 수 없게 된다.
서평자는 이 두 권의 책을 꼼꼼히 읽으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나의 한국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몰랐던 것이 너무 많았고, 내가 아는 척 한 것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두 권의 책은 단순히 한국의 현대철학사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삶의 이유를 스스로 묻게 해주었다. 철학은 답변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점을 정말로 실감하게 해 준 책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여름휴가 동안 이 두 권을 읽어 보시도록 주변 사람들에게 강추한다. 편하게 읽고 싶은 분은 한철연의 <처음 읽는 한국현대철학>을, 본격적인 독해를 하고 싶은 분은 이규성의 <한국현대철학사론>을 권한다.
<서평문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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