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서평/특별기고]
강신익(인제대 의대 교수/인문의학연구소장)
이 책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는, 현대 정신의학이 다양한 문화의 자생적 문제해결능력을 무시하고 미국문화의 잣대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재단함으로써 발생하는 사태들에 대한 보고서이다. 저자는 거식증, 외상후장애증후군(PTSD), 정신분열병, 우울증 등 서구에서 발견되고 분류되고 관리되어 온 대표적 정신질환이 홍콩, 스리랑카, 아프리카의 잔지바르, 일본에서 퍼져나가는 양상을 세심히 관찰해 보여준다. 그리고 서양의학은 토착문화의 자생력을 파괴하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중 홍콩과 일본은 우리와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지역이어서 특히 관심이 간다.
아마 현대의학이 인류를 참혹한 질병의 고통에서 구해준 은인이라고 믿는 독자라면 무척 당혹스러울 것이다. <질병 판매학>, <더러운 손의 의사들>, <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의 주머니를 털었나> 등 현대의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많은 책들이 출판되기는 했어도 의학이 인류구원의 보루라는 믿음은 우리 사회에 아직 굳건하다. 이 책들은 제약회사가 처방권을 가진 의사를 합법적으로 또는 탈법적으로 매수해 불요불급한 처방을 남발하도록 조장한다고 폭로한다. 실제로 약을 처방하는 대가로 제약회사가 의사나 의료기관에 지불하는 리베이트의 문제가 여러 차례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00년에 있었던 의사들의 파업은 의약분업을 통해 약품의 유통마진을 줄이려는 정부와 의사집단의 이해가 충돌한 사건이었다. 문제를 이렇게만 보면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조정과 합의가 해결책이다. 실제로 의사파업은 힘에 따라 이해관계를 재분배하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문제를 좀 더 근원적인 곳에서 찾아낸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축적해 가는 삶의 지혜, 즉 공동체마다의 문화다. 그런데 미국의 의사들이 중심이 돼서 만들어낸 정신질환분류(DSM)에는 서양과 다른 세계관과 삶을 담을 공간이 없다. 따라서 서양의 정신의학은 서양인의 삶에서 형성된 정서와 문제를 기준으로 다른 문화권의 삶을 재단할 수밖에 없다. 홍콩의 거식증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날씬한 외모에 대한 무의식적 동경이 이 병의 원인이라는 서양식 설명은 실제 사례와 거의 들어맞지 않는데도 말이다. DSM은 특정 문화권에서만 발견되는 증상을 포함하기도 한다. 한국인에게만 있는 ‘화병’이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서양의 교향악에 국악 가락 한 소절을 집어넣는다고 그 음악이 국악이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은 그런 문화적 불협화음에 관한 것이다.
문제를 이해관계보다 더 큰 문화의 틀 속에서 찾아낸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이로써 우리는 의료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다. 이것은 20세기 중반 이후 현대의학을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대두된 여러 학문 중 하나인 의료인류학의 접근법이기도 하다.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하버드 대학의 아서 클라인만은 대만에서의 정신병 연구를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문화적 연구의 길을 열었다.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서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문화적 폭력일 뿐 아니라 현지민을 새로운 의료상품의 소비자로 만들어 사회경제적으로 수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거식증과 정신분열병의 사례가 주로 문화적 폭력에 대한 것이라면 외상후증후군과 우울증의 사례는 주로 문화적 폭력이 경제적 수탈의 수단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외상후증후군과 우울증은 각각 서구식 훈련을 받은 심리상담사와 거대 다국적 제약기업의 큰 시장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현지인들을 서양인처럼 앓게(미쳐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세계가 미국처럼 미쳐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현지 문화에 대한 무지와 무시라면 다른 하나는 미국인들의 몸과 마음이 되어버린 그들 자신의 문화에 대한 반성의 부재다. 이 책의 초점은 전자에 있지만 후자에 대해서도 마땅히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이것은 의료인류학이 갔던 경로이기도 하다. 최초의 의료인류학자들은 과학에 바탕을 둔 서양의학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식민지와 후진국에서는 건강에 관한 각종 미신과 토착신앙 때문에 서양의학이 잘 수용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위해서는 그들의 신앙과 문화를 연구해야만 했다. 그런데 후진국의 신앙과 거기에 바탕을 둔 토착의학을 연구하다보니 비교분석을 위해 같은 방법으로 서양의학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문화적 장막에 가려 보이지 않던 서양의학의 전제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서양의학의 보급을 위해 시작된 연구가 이제는 오히려 서양의학의 문제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된 것이다. “다른 문화의 믿음들을 깊이 탐구하면 우리 자신의 문화적 편향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다.”
이 책은 서양의 정신의학이 다른 문화권에서 만들어내는 문제들에 관한 것이지만, 거꾸로 다른 문화의 시선으로 서양의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일상에 대한 과도한 의료화가 다양한 맥락 속에서 자동적으로 습득된 문제해결 능력을 무력화하여 오히려 병을 만든다고 주장하는 이반 일리히의 <병원이 병을 만든다>, 그리고 프랑스의 정신의학이 식민지 알제리인의 정신을 파괴하고 지배하는 양상을 비판한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에서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진단명을 쓰지 않지만 50대 이상 세대라면 히스테리와 신경쇠약이라는 서양에서 발명되고 수입된 증세에 익숙할 것이다. 실제로 그런 증상을 앓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유명 연예인들의 잇단 자살은 우울증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고 아마 그 발병을 더 촉진시켰을지도 모른다. 천안함 사건에서 생존한 승조원에 대해 실시했다는 외상후장애증후군 치료는 과연 어떤 문화적 전제에서 출발한 것인지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혹시 치료를 빌미로 틀에 박힌 가치를 주입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책은 이러한 현실적 반성 외에 우리들 자신의 본성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생물학적 존재인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문화에 길들여진 존재라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이 책은 이 점을 상기시켜 준다. 대중은 문화적 권위의 지지를 받는 틀 속에서 질병을 이해하고 경험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그 문화적 권위가 교회였지만 근대 이후 급속히 과학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20세기 이후에는 자본과 소비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19세기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던 히스테리 환자들은 이 분야의 문화적 권위였던 의사 샤르코가 진단하고 분류하고 기술한 그대로의 증상을 겪었다. 오늘날의 소년소녀들은 TV에 등장하는 연예인의 외모와 행동과 소비패턴을 규범으로 삼고 닮으려 한다. 그래서 성형과 미용과 다이어트의 열풍이 분다. 이것은 “무의식이 감정의 고통을 당대에 이해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시도”의 결과다. 이렇게 문화적 기대와 개인적 경험이 상호 작용하고 우리의 생물학적 몸은 문화적 경험과 기대를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한다. 몸과 문화는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생물-문화적(Bio-Cultural) 현실이다.
21세기의 문화적 권위인 자본은 바로 그 생물-문화적 현실을 파고들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새로운 생물-문화적 현실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자율적 문제해결 노력이 아닌 약품의 소비가 규범인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 확대되면 모든 사람이 그 새로운 생물-문화적 현실의 구성요소가 된다. 책 속에 인용된 애플바움의 말처럼 “완벽한 건강이라는 유토피아적 가능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부지중에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에게 우리가 가진 자유의 도구들을 마음대로 통제할 고삐를 넘겨주고 말았다. 과학의 객관성, 의료의 윤리와 공정성, 환자의 이익을 위해 일하겠다는 맹세를 스스로 지키는 한에서 의학에 자율성을 부여할 특권은 이제 그들 손에 있다.”
의료인의 전문가로서의 자율성과 대중의 의료인에 대한 신뢰를 되찾고 환자가 의약품의 소비자가 아닌 자기 건강의 주체로 바로 설 수 있을지의 여부는 바로 이와 같은 사회문화적 메커니즘을 바꿀 수 있을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이 책이 의료와 관련된 모든 논쟁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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