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판단과 법적 판단[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정치적 판단과 법적 판단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지난 주말 두 가지 판단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하나는 민주당 비대위 대표 박영선이 2011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 2012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으로 활동하며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던 이상돈 교수를 비대위 위원장으로 내정했다는 정치적 판단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국정원 선거 개입 관련 재판에서 전 국정원장 원세훈에 내려진 법원의 판단입니다. 둘 다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예민한 문제인데, 저는 판단이라는 의미에서 한 번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 따르면 판단은 보편과 특수를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에는 크게 이미 존재하는 보편을 특수에 적용하는 규정적 판단과 특수로부터 보편을 찾는 반성적 판단이 있습니다. 전자는 도덕적이고 법적인 판단에서 많이 볼 수 있고, 후자는 미적이고 정치적인 상황에서 많이 내려집니다.

 

먼저 특수에서 보편을 찾는 정치적 판단을 보지요. 세월호 정국에서 비대위 대표를 맡은 박영선의 행로를 보면 괴이할 정도입니다. 새누리와의 협상안이 당내에서 두 번이나 부결이 되고, 유족들의 반발도 크게 샀지요. 협상 내용을 떠나서 협상의 기본적인 원칙과 방식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협상에 들어가려면 관련 당사자의 합의를 거친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상대측과 협상하고 와서 당내에서 그리고 유족들의 동의를 구하는 형태인거지요. 본말이 전도된 셈이지요. 비상 상황이라 전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부결되었으면 다시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런 실수를 두 번 되풀이하는 것을 보고 괴이쩍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두 번 실수는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새민련에서 그냥 넘어간 것도 문제이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새민련 내부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이상돈 교수를 영입하려 했다가 당내의 큰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아하, 이 대목에 와서 나는 박 대표가 정말 정치적 판단력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포스트 모던적으로 생각을 해서 여야와 진보/보수의 경계를 넘나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상돈 교수는 직전 대통령 선거까지 적장의 책사 노릇을 했던 자가 아닙니까? 그가 아무리 새누리를 비판하고 있고, 합리적 사고와 중도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적장의 책사를 자당의 비대위 위원장으로 앉히려는 생각을 했을까요?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 그렇게 했을까요? 나는 이것이 정치의 기본도 모르고, 정치적 판단이 전혀 안 돼 있는 데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는 현 상황이 아무런 질적 차이가 없이 무수한 잡다들의 혼재로 비춰진 것이지요. 다 그놈이 그 놈이고, 대신 좀 더 낫거나 좀 더 나쁜 정도의 차이로만 파악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상황의 보편적이고 객관적 의미나 원리가 파악이 안 되는 거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을 못한다는 것이지요.

 

칼 슈미트 이야기처럼 정치란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야 전선이 어디에 있고, 전략을 어떻게 세우며 전방과 후방에 인력을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를 확실히 할 수가 있지요. 이건 강경파니 온건파니 하는 문제와는 상관도 없습니다. 그동안 새민련이 세월호 정국에서 허둥지둥 거리면서 새누리에 면박당하고 유족들 꽁무니를 따라 다닌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니까 어떻게 행동할 지 판단이 서지 않은 거지요. 한 마디로 정치적 판단력의 부재 혹은 무능, 정치에 대한 무감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셈입니다. 이럴 때는 다른 수 없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장수를 갈아치우는 수밖에요.

 

사진-ttp://www.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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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은 앞서의 경우처럼 특수한 상황으로부터 그 객관적 의미를 찾아가는 반성적 판단이 있는 반면, 어떤 원칙이나 규칙을 가지고 특수한 상황에 적용하는 규정적 판단도 있습니다. 국정원장이 지난 선거 정국에서 선거법을 위반했는지를 판단할 때, 국정원법을 위반해서 정치에 개입한 것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했지만 선거에 개입한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겁니다. 게다가 정상 참작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했으니까 사실상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은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명백히 국정원장이 직원들을 동원해서 11만 건이나 되는 댓글 공작을 한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선거법 위반이 아니고 구속도 되지 않았으니 국민의 법 감정이나 여론이 용납하기 힘든 것이겠지요.

 

법적 판단은 사건과 관련된 여러 증거들을 판단해서 해당 법 조항을 적용하는 것이지요. 이 때 이런 판단은 특수한 상황이나 증거에 어떤 조항이나 원칙이 적용되는 가가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상당한 증거 능력과 관련된 공방이 필요하죠. 본 사건의 경우에도 댓글 공작이 2012년 1월 전이고, 야당 후보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 특정 후보의 탈락을 겨냥한 것이 아니고, 이런 댓글 행위가 일상적인 정치 행위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인지 등등을 따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증거가 확정이 됐을 때 검찰의 기소내용과 여기에 적용할 법조항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것이죠. 때문에 법원의 이런 판단은 상당히 정교하고 기술적인 법적 판단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법 실증주의자들이 말하듯 이 판단은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커피를 뽑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사건의 의미와 정치적 성격, 그 파장 등을 바라보는 재판부의 입장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 재벌들이 탈세나 기타 등등으로 법원의 판결을 받을 때 이른바 국민 경제에 미친 공로나 영향 등을 판결 주문에 넣고 정상참작 운운하면서 집행유예로 빼 넣는 경우들이 다반사였습니다. 하자만 이것은 법치와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재판부의 월권이나 다름없는 것이지요.

 

국민경제는 그들이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님에도 판사의 재량권과 해석권이란 차원에서 주관적이고 자의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법원이 재벌에 대해서 이런 봐주기식 판단을 상당히 제한하는 것은 법치와 사법부의 독립이란 측면에서 고무적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무튼 재판부가 법조항이란 보편과 사건이라는 특수를 결합해서 판단할 때 자의성이 개입할 여지, 쉽게 말하면 정치적 판단의 여지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판결문이 문제가 됩니다.

 

이번 판결에서는 국정원의 정치적 개입은 인정했으면서도 집행유예로 빼준 것도 문제가 될 겁니다.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 기관, 특히 정보기관이 조직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것을 인정하고서도 유야무야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판단이지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반 상식적인 정치적 판단을 재판부가 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선거에 개입했는가의 여부를 판단할 때 적용한 법조항이 문제입니다. 법원은 선거법 제85조(선거운동금지)와 제86조(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금지)의 차이를 부각시키면서 기소된 제85조 위반이 아니라고 합니다. ‘선거 또는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와 ‘선거운동’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는 공직선거법의 입법취지 및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지요.

 

제86조는 검찰의 공소장에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법원이 판단할 이유가 없어서 별론으로 처리를 했습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선거운동 한다는 것보다 외연이 넓고 포괄적이죠. 죄형법정주의 운운하는 것은 그만큼 법을 엄격하고 좁게 적용하겠다는 제스처지요. 여기서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을 연상케 합니다. 이미 국정원의 정치 및 선거 개입 여부에 대해 강력 수사하겠다고 했던 검찰 총장을 사생활 문제로 밀어냈고, 수사팀도 완전히 물갈이를 해놓았습니다. 이런 사전 정지 작업을 통해 건드리면 다친다는 무언의 경고를 한 셈이지요. 이제부터 검찰은 자기검열을 하게 된 것이고, 쉽게 말하면 알아서 기는 개가 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지요. 제86조는 이미 민주당에서 고발장을 제출할 때 적용한 법규인데 검찰이 그걸 몰라서 뺐을까요? 당연히 바보가 아닌 바에야 국민은 검찰과 법원, 그리고 그 윗선의 거래에 대해 상상력을 발동할 수밖에 없지요.

 

세 번째로, 선거운동금지에 관한 85조 적용문제를 보지요. 법원은 국정원의 조직적인 댓글 공작을 정치활동으로 인정했으면서도 집행유예로 무력화했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는 판단을 공소장에 없다는 것으로 빼버렸습니다. 이렇게 외연을 좁혀 놓고 나서 마지막으로 국정원의 조직적 댓글이 선거운동도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죄형법정주의 운운하면서 이렇게 좁고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느라 재판부도 고심 많이 했을 겁니다. 한 마디로 재판부는 축소전략을 쓴 것이고 이것이 일관성이 있다고 한다면 뭐라고 하겠나요? 법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하는 것은 법원의 덕목이니까요?

 

그런데 담당 판사는 2013년 야당 시의원의 리트윗 단 한건에 대해 벌금 500만 원이라는 의원직 상실 형을 선고했고, 야당 후보자 배우자가 월간지에 보도된 내용을 인용해 상대 후보자의 부정축재 의혹을 제기하는 이메일 1건을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 쪽에서는 법을 한 없이 축소해서 적용하고, 다른 쪽에서는 한 없이 확장해서 적용한 셈이죠. 이러니 일반 국민의 법 감정은 법원의 판결을 고무줄 판결이라고 생각하고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로 생각하는 거지요. 법관의 자의성과 주관성, 게다가 정치적 판단이 민주주의의 발전에 중요한 판결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겠죠. 당장 현직 동료 판사가 이 판결문을 가지고 지록위마(指鹿爲馬)라고 비난하고 나선 겁니다. 동료의 판결문을 비판한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고 용기 있는 행동일 것입니다.

 

중요한 대통령 선거 정국을 앞두고 정치에 개입은 했지만, 선거 운동은 아니라는 판단은 개도 웃을 일이지요. 손바닥으로 해를 가린다고 해서 가려질 수 있을까요? 법관들이 이렇게 뻘짓을 하니까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법원 판결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판결을 가지고 어떤 이들은 법관들이 형식논리도 모른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문제입니다. 검은 것을 검다 하고, 흰 것을 희다고 하지 못하는 거짓의 문제이지요.

 

나는 모든 법관들이 이렇게 정치성을 띤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물전의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고 소수의 출세지상주의 판사들이 사법부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지요. 당장 이 판결문에 대해 의롭게 문제제기를 하는 판사도 있고, 또 이재현 CJ 회장에 대해 과거의 재벌 봐주기 식과 다르게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는 재판부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번의 원세훈 판결과 2013년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국정원 수사 은폐 사건 판결 같은 것은 법원이 스스로 알아서 기는 개가 되는 치욕적인 판결이고, 사법적 정의를 크게 후퇴시키는 판결이라 생각합니다.

 

검찰이야 행정부 소속이고, 최고 권력자의 입김이 검찰총장을 통해 압박으로 가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삼권이 분리된 법치국가에서 법원이 독립적으로 판단을 하지 못하고 권력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국민으로서 대단히 불행하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와 법치는 헌법이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법을 운용하고 적용하고 또 판단하는 법관들이 법의 정신을 지키려고 노력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무소불위의 권력과 금력이 지금 정치를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국민을 소외시키고 있을 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사법부가 아닐까요? 이 점에서 본다면 법률적 판단은 단순히 보편을 특수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규정적 판단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특수가 지니고 있는 보편성을 알아가는 반성적 판단도 개입하고 이를 통해 법의 정신과 법치주의가 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