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 예술을 알지니 예술이 너희를 자유케 할 것 같으냐? <도봉도서관 나이듦의 철학> 5

Spread the love

헤겔미학:?예술을 알지니 예술이 너희를 자유케 할 것 같으냐? <도봉도서관 나이듦의 철학> 5

이관형(한국예술종합학교)

 

 

근대(modern)?혹은 근대성(modernity)에 대한 비판은 사상의 영역에서는 주로 동일성을 향한다.?이때 집중포화를 받은 것은 헤겔이다.?이 강의는“1)동일성이 무엇이며 동일성이 왜 문제가 되는가? 2)동일성에 기초한 철학이라고 비판 받는 헤겔의 예술관의 특징은 무엇인가?”를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나마 살펴보고자 한다.?이를 살펴봄으로써 철학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개념적 파악이 아니라 미감을 통해)?동일성이 과연 극복 가능한지를,?숨이 막히도록 촘촘히 짜인 근대적 삶의 굴레에서 과연 벗어날 수 있는지를?(답을 내린다기 보다는 오히려)?되묻고자 한다.

DSC09010-2

 

1.헤겔 미학은 그의 철학체계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그런데 그의 철학체계를 이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그의 체계를 흔히?‘동일성’의 체계라고 한다.?그러므로?‘동일성’이 무슨 말인지라도 알아봄으로써 그의 체계에 대한 이해를 갈음하고자 한다.?지나치게 피상적·도식적인 이야기가 되겠으나 체계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헤겔미학은?‘앙금없는 찐빵’, ‘소없는 만두’일 것이다.1)

1)?파르메니데스의 동일성 논리?-?존재의 옹호와?(개념을 통한)?존재 분할의 반대

-존재의 희미한 빛:?존재의 원초성을 옹호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존재의 찬란한 빛:?존재의 종국적 완성인 동일성,?평등성,?충만성의 옹호

“존재는 쪼갤 수 없다.?왜냐하면 모든 것이 같기 때문이다.?그리고 존재의 응집을 막을 수 있도록 여기 또는 저기에 보다 강한 존재가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또 덜 강한 것이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오히려 존재자에 의해 충만되어 있다.”

-“그것들(인간의 잘못된 견해들)에 따라 두 형식들을 명명한다.?이것들 중에 하나는 있으면 안 되는데 이 점에서 그것들은 오류에 빠지고 있다.?그리하여 그것들은 형태를 대립시키고 특징들을 서로서로 분리시킨다.”(파르메니데스 단편)

2)?플라톤의 동일성 논리?-?파르메니데스적 존재의 이데올로기화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 이후 자연철학의 전개-생성(헤라클레이토스),?양(피타고라스),?질(엠페도클레스),?원자들의 양적 결합(데모크리토스)-를 통해 그리고 마침내 아낙사고라스에 의한 존재의 운동에 대한 분리적 파악(운동주체nous와 운동내용)에 이르러 이러한 분리된 자연을 토대로 하여 자신의 철학을 전개한다.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의 원초성)는 이데아가 된다.?즉 진,?선,?미 자체라는 이데아로 규정된다.?현실은 이데아의 모사이기 때문에 진선미의 원형과 같기도 하고(同)?다르기도(異)?하다.

인간은 현실 속에서 이데아와 같은 측면은 긍정·강화하고 다른 측면은 부정·억제하여 원형인 이데아로 부단히 다가갈 수 있다.?이 변증법적 운동을 이끄는 힘은 이데아가 지닌 에로스적 견인력이다.?에로스의 운동과정은 감성적 경험에서 출발하여 감성을 넘어서는 데에 있다.?이러한 운동이 일어나는 곳은 사회(polis)이며 사회는 통치자,?군인,?생산계급이 피라미드 구조로 조직된 노동 분업의 체제이다.?이에 대해 하이데거는?“파르메니데스에 의해 열림을 시작한 존재가 플라톤에 의해 망각되기 시작했다”고 비판한다.

3)헤겔의 동일성 논리?-?시민사회의 이데올로기?

독일관념론(Der deutsche Idealismus)은 이상주의로도 옮기지만 이데아주의로도 옮길 수 있다.?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의 역사라는 화이트헤드의 말이 생각난다.?헤겔은 훨씬 풍부하고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자신의 철학체계를 완성시켰지만 그 골격은 플라톤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DSC09008-1헤겔의 논리학의 내용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유와 무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을,?질은 엠페도클레스의 질개념을,?무한성은 아낙시만드로스의 개념을,?대자존재(F?rsichsein)는 아낙사고라스의 주관성개념을,?양은 피타고라스의 수와 데모크리토스의 양적 원자론을 다루고 있다?···여기까지가 존재론이다.?본질과 현상,?동일성과 비동일성의 카테고리는 플라톤의 철학을 서술한다.?이에 이르러 존재는 본질과 가상 사이의 반사관계로 발전한다.?이데아의 세계는 본질적 세계이며 현상의 세계는 이데아를 반사 또는 반성할 뿐이다.?이러한 논리의 전개는 이념(Idee)의 차원으로 고양된다.?헤겔은 이념이 생명,?인식(진과 선),?절대이념으로 나누어 전개한다고 본다. ···?생명의 이념은?···?인식의 이념으로 이행에 그 의미가 있다. ···?절대이념은 진과 선의 통일이며 생명은 절대이념에 이르기 위한 단계와?···?절대이념의 운동을 위한 장···이다.?헤겔의 절대이념은 주관성인 의지(선)와 객관성인 대상(진)?사이가 막힘없이 소통되는?···체계인 것이다.”2)

 

2.헤겔 미학의 특징3)

헤겔의 철학체계를 크게 논리학,?자연철학,?정신철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예술을 다루는 곳은 정신철학의 맨 뒷부분 절대정신에서이다.?즉 자연과 정신의 발전도정을 거치는 이념의 자기전개가 가장 최고점에 이르러서다.?플라톤 식으로라면 진선미의 이데아에 도달하는 것이다.?예술은 종교,?철학과 더불어 절대정신의 영역에 속한다.

1)예술은 이념의 감각적 현현(Scheinen)이다.

헤겔의 철학은 자유의 이념의 전개과정에 대한 서술이다.?그러므로 예술,종교,?철학은 자유의 이념이 실현되는 지점이다.?그렇지만 이 삼자 간에도 위계는 있다.?삼자 각각에 해당하는 정신능력은 직관,?표상,?사유이다.?예술은 직관을 통해 이루어지며 감각과 대상에 여전히 의존적이다.?그러므로 삼자 중 가장 하위의 것이다.?표상은 직관보다 우월한 것이지만 직관의 내면화일 뿐이다.?표상은 감각적·대상적 직관을 내면으로 옮겨 놓은 것일 뿐 표상의 내용에는 여전히 감각적인 상이 자리한다.?종교는 성경에 기록된 여러 사건들에 대한 표상을 믿는 데서 성립한다.?그러므로 아직 순수하게 정신적인 것은 아니다.?철학은 사유를 통해 절대자를 개념적으로 파악한다.철학에 이르러서야 신은 그것이 외적인 것(직관)이든 내적인 것(표상)이든 어떠한 감각성·대상성에 의존하지 않고 정신의 순수하고 내면적인 활동(사유)을 통해 파악된다.

2)미학은 예술철학이다.?즉 예술미만을 그 대상으로 한다.?헤겔은 자연미에 대한 예술미의 우위를 주장한다.?예술은 이념의 감각적 현현이므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라는 점이며 정신적인 것이 자연 산물보다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술미가 자연미보다?한층?고차적이라는 점만은 이미 주장할 수 있다.?왜냐하면 예술미는?정신으로부터 태어나고 또 거듭 태어난?미이며,?정신과 그 산물들은 그만큼 더 자연과 그 현상들보다 고차적이며,?또 그만큼 더 예술미가 자연미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실로?형식적으로?보면,?인간 머리를 스치는 어떠한 저급한 착상이라도 그 어떤 자연 산물보다?우월하다.”4)

3)내용미학이다.?이념의 내용이 감각적 소재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 예술이다.?그러므로 예술이 드러내고자 하는 아름다움(예술미)의 이념은 다른 말로 이념의 감각적 상,?즉 이상(das Ideal)이다.?각 시대별로 나타난 예술미의 이념,?즉 이상에 대한 개념적 파악이 미학 혹은 예술철학이다.

예술의 형식은 그 내용(즉 이념)에 따라 각 시대적으로 상이하게 규정된다.다른 한편 예술은 이념의 감각화이므로 감각화하는 질료(소재)의 차이에 따라서 각각의 장르를 형성한다.

4)예술형식론과 장르론

상징적 예술형식-이상의 추구,?정신이 자연에 못 미침.

고전적 예술형식-이상의 성취,?정신과 자연의 조화.

낭만적 예술형식-이상의 초월,?정신의 자유는 자연의 제한을 초월함.

①상징적 예술형식

예술형식의 역사는 상징,?고전,?낭만의 삼 단계로 발전해왔다.?상징적 예술형식의 시대는 이상을?‘추구’한다.?신적인 것(절대자)은 아직 분명하게 규정되지 못한다.?이념은 개별 예술작품 속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신적인 것의?“구상화에 대한 한갓된 찾아 헤맴”?내지?“그것을 이루려는 분투와 애씀”만이 있을 뿐이다.?절대자는 개별성의 구체적인 형태 대신에,?정신의 제대로 된 표현이 될 수 없는 어떤 이질적인 자연대상으로 치환될 수 있을 뿐이다.?상장이란 본질적으로 이러한 부정합성을 통해 특징지어진다.?상징을 통해 표현된 것은 낯선 것,?이질적인 것에 머문다.?따라서 이 단계에서 지배적인 미적 범주는 미가 아니라 숭고이다.?왜냐하면 신적인 것을 질적으로 형상화할 수 없는 무능력은 양적인 극단으로,?즉 과도함으로 치닫기 때문이다.?상징적 예술형식의 전형적인 장르는 건축이다.?즉 상징적 예술은 신들을 위한 장소만을 제공할 뿐,?그 신들을 구체적인 형태로 구현하지 못한다.

②고전적 예술형식

상징적 예술형식은 내용에 적합한 형상화를 이룰 수 없는 무능력의 산물이다.?이에 반해 고전적 예술형식에서 이런 무능력은 극복된다.?아름다운 것 혹은 미적 이상은 비로소?‘성취’된다.?표현되어야 할 대상과 표현된 것이 완전하게 일치함으로써 고전적 예술형식은 미의 이상 내지 예술의 이상의 진정한 실현을 이룩한다.?따라서 이 단계는 예술의 정점,?미의 정점이다.?형태는 더 이상 낯선 것,?이질적인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식으로 자기화된다.?절대자는 더 이상 생소한 자연적 형태를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 신체의 형태를 통해 개별성으로 표현된다.?왜냐하면 그리스인들은 신들을‘절반의 인간’으로 여겼기 때문이다.?신들을 신체를 통해 표현하는 것은 따라서 가능한 최고의,?이념의 감각각 현현이며,?그러한 한에서 예술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종교를 위한 어떤 부가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종교이다.?이러한 그리스인들의 종교적 의식에 가장 잘 부합하는 예술 장르는 조각이다.?조각에서는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이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이제 신적인 것은 건축에서와는 달리 그것이 거처하는 공간을 얻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그리스 신상들 속에서 자신을 위한 구체적인 형태를 얻는다.

③낭만적 예술형식

정신의 발전은 고전적 예술형식에서 성취한 미와 예술의 조화와 완성을 넘어서?‘초월’한다.?즉 낭만적 예술형식에서 예술은 완성이 아니라 해체된다.외견상 이러한 해체는 이미 상징적 예술형식에서 볼 수 있었던 내용과 형식의 대립 및 차이로 되돌아 가는 것이DSC09009-1다.?그렇지만 이러한 새로운 부조화는 예술 이전 단계로의 퇴행이 아니라 예술 일반의 한계를 돌파하는 것 내지 넘어서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상징적 예술형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념과 형상의 불일치와 분리,?부조화가 일어나지만 양자 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상징에서는 이념의 결핍이 형상화의 결함을 수반하는 데 비하여 낭만적인 것에서 이념은 정신과 심정으로서 그 스스로 안에서 완성된 것으로 나타나야 하며 이와 같은 더 고차적인 완성에기반하여 이념은 자기의 진정한 실재성과 현상을 오로지 자기 자신 속에서 찾고 또 완성시킬 수 있음으로써 외적인 것과의 통일에서 벗어난다.?장르적으로 낭만적 예술형식은 삼차원적 자연성의 최초의 지양인 회화로 시작하여 시간성 안에서의 순수 내면의 울림인 음들의 질서인 음악을 거쳐,?정신적인 것을 말을 통하여 표상하게 하는 시문학(poesie)에 이르러 종국에는 해체되기에 이른다.

 

3.예술의 종언?

미의 추구인 예술은 이미 고전적 예술형식의 단계로서 종언을 고한다.?그렇다면 숭고로서의 예술은 어떻게 되는가??숭고로써 드러내고자 하는 절대자 역시 앞서 살펴본 대로 예술이 아니라 철학을 통해 더 잘 파악할 수 있다.?그렇지만 절대자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으로서 예술은 사라지지도 사라질 수도 없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우리는 더 이상 예술작품을 신적으로 경배하지는 않는다.?여전히 고대희랍의 신상들을 탁월하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고 마리아가 아무리 존귀하고 완벽하게 예술적으로 묘사되어 있다하더라도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다.?이제 우리는 그러한 예술작품 앞에 더 이상 무릎을 꿇지 않는다.”(헤겔)

“예술은 절대이념의 영역,?즉 자유의 영역이다.?그러나 그 자유는 철학적 사유의 그것에 필적할 수는 없다.”

 

1) ?동일성에 대한 논의는?“이준모,『밀알의 노동과 공진화의 교육』,?한국신학연구소(1994)”에 의한다.

2) ?이준모, 33쪽

3) ?권대중,?헤겔의 미학, (안에)?미학대계 제1권,?서울대출판부.?주로 이 글을 요약함.

4) ?Hegel,?『Vorlesungen ?ber die ?sthetik?Ⅰ』, in Werke in zwanzig B?nden 13, S.14,?이창환 역(미출간)

 

0 replies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