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의 사랑 [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이반의 사랑 [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살다 보면 바뀌는 것도 있고,?안 바뀌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한국사회가 지난 한 세대 동안 너무 숨 가쁘게 달려 왔기 때문에 당연히 외형적인 변화는 말할 필요도 없다.?너무 다이나믹하다 보니 한?2-3년만 지나도 도시의 외관이 달라지고 도로가 달라지고 건물이 달라지는 경우가 숱하다.그러다 보니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마음도 당연히 크게 바뀐 것 같다.?크게 달라진 것 중 하나가 동성애에 대한 태도이다.?종종 토론 주제로 동성애를 다루는 경우가 있는데,?의외로 학생들이 남녀 불문하고 동성애에 대해서는 대단히 관대하다는 것이다.?우리가 대학 다닐 때는 게이나 레즈비언이란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돋고 외계인 취급을 했던 것과는 천양지차다.내가 대학 시험에 합격을 하고 겨울에 고대 타임 반 동계 특강을 다닌 적이 있다.?이 타임 반은 상당히 유명해서 동계 강좌인데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타임>지를 선배들이 읽고 설명해주는 형태로 진행된다.?그런데 그 때 타임지 표지 모델로 여자?2명이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이 나온 적이 있다.?그 중의 한 여자는 가방을 들고 바지를 입고,?다른 여자는 선글라스를 끼고 스커트를 입은 것으로 기억된다.?타임즈 표지 모델이 레즈비언을 처음 화두로 올렸던 것이다. 1976년이니까 미국 사회에서도 동성애자들이 사회의 주목을 받던 초기였으리라.?그 때 강독을 이끌던 고 학번 선배가 이 중에 누가 여자 역할을 하고 누가 남자 역할을 하는가를 맞추어 보라고 주문하는 것이다.?그 당시 나는 그런 장면이 너무나 희한하고,?또 그런 것들이 논쟁거리가 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럼에도 거진?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기억을 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음을 반증한다.?그 뒤로 별로 그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다.?그러다 박통이?10.26?사태로 죽고 나서 교회를 내 발로 찾아간 적이 있다.?지금도 인상적인데 그 교회의 남성 반주자가 피아노도 잘치고 얼굴도 이쁘장한 사람이었다.?신앙생활도 아주 잘해서 교회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가 많았던 사람이다.?그 사람이 당시 중 고등학교 남학생들을 여러 명 건드렸다는 소문이 돈 적이 있다.?혈기방장하던 시절이라 그 문제를 덮지 못하고 교회와 각을 세우다가 혼자 나온 경험이 있다.
그런데?90년대 중반 이른바?PC?통신이 한창 유행할 때였다.?알 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당시 하이텔이나 나우누리 같은 통신망들의 대화 방은 밤만 되면 북적거리던 시절이다.?대화 방에 가면 숱하게 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밤을 새워 밀담을 즐긴다.?입담 좋으면 여자 만나기도 쉬워 이른바 번개도 유행했던 것으로 안다.?그런데 어느 날?’이반’이라 이름붙인 대화 방에 들어가려니까 일반인지 이반인지 묻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모 몇 학년 몇 반 정도로 생각해서 그냥 일반이라고 하니까 일반은 안 된다고 하면서 입장 불허하는 것이다.?하도 이상해서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곳은 동성애자들의 방이라고 한다.?일반은 일반인을 말하고,?이반은 그냥?2반이 아니라 일반을 일탈한?’이반’이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그 사정을 알고는 그 방 근처만 가도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그만큼 당시의 우리 세대에게는 동성애는 여전히 낯선 코드이고,?그만큼 편견도 적지 않다.?이런 편견을 극복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지나서이다.?이 당시?e-Mail을 통한 소통과 연애는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You’ve got a mail’에 잘 나타나 있고,?대화 방은 전도연이 주연한?’접속’처럼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동성애에 대한 호불호는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서구에서 유대 기독교의 영향을 받던 시기는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가부장적이고 남성적인 중심적인 사회에서 동성애는 악마적이고 자연에 거슬리는 것으로 취급된다.?서구에서도 지금까지 가장 동성애에 대해 반대가 심한 곳은 기독교적 전통이 큰 곳에서이다.?기독교가 서구의 중심에 자리 잡기 전만 해도 동성애에 대해 대단히 관대한 문화가 유지되고 있었다.?특히 그리스 문화에서는 성인 남자가 어린 미소년과 사귀는 일종의 원조교제가 유행처럼 번지고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다.?이런 문화는 철학적 정당성도 얻고 있었다.?남녀 간의 사랑은 육체를 매개로 하는 저급한 욕망에 기초해 있지만,?성인 남자와 미소년의 관계는 순수한 영혼의 교류라는 것이다.?그 만큼 더 사랑의 이데아에 가깝다는 이야기일 터인데,?일찍부터 이성이 가방 들고 감성의 욕망을 쫓아다녔다는 증좌일터이리라.?소크라테스의 주변에 늘 젊은이들이 함께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그 중에 한 사람이 나중에 그리스의 유명한 정치인이 되었던 알키비아데스이다.?그는 명문가 출신이고 용모도 수월하고 명민한 두뇌의 소유자이다.?그런 그가 소크라테스를 대단히 연모한 것이다.?한 번은 둘이서 해변 가에서 밤을 지새운 적이 있었다.?하지만 이 사랑은 짝사랑이다.?파도소리가 들리고,?별이 보석처럼 밤하늘을 장식한 해변 가에서 사랑하는 연인이 밤을 새운다고 상상해보라.?얼마나 가슴이 설레 이겠는가??알키비아데스도 그런 대단한 썸씽을 기대했을 것이다.?그런데 돌부처 같은 우리의 소크라테스는 동이 틀 때까지 우뚝 서서 꿈쩍도 안하고 동쪽 하늘만 바라다보았다고 한다.?그러니 이제 막 사랑에 눈뜬 젊은 알키비아데스의 실망이 말할 수 없이 컸다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플라톤의?『향연』에 보면 그가 여러 사람들이 토론하는 곳에서 노골적으로 소크라테스에 대한 연정을 토로하는 장면들이 나온다.?그만큼 동성애가 일반화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의 한 사람인 비트겐슈타인이 동성애자라는 이야기도 낯선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이 집안사람들은 대단한 천재들이고 예술적 재능도 타고 났다.?오스트리아 철강 재벌인 탓에 그의 집에는 늘 당대의 뛰어난 재사와 예술가들이 북적거렸다.?하지만 그의 형제들 대부분은 비극적 운명으로 일찍 죽거나 자살을 하고 또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클림트의 에로틱한 그림에는 그의 누이동생이 모델로도 나온다.?유명한?’볼레로,?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은 전쟁에서 오른 팔을 잃고 돌아온 그의 형인 피아니스트를 위해 작곡가 라벨이 헌정한 곡이다.?약관?21살에?1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틈틈이 메모로 썼던?『논리-철학 논고』라는 책은?20세기 영미 분석철학의 성전 역할을 하기도 했다.?철학 도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 책의 명제 몇 가지. “언어는 세계의 그림이다.”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거의 잠언 수준이다.?집안 내력 때문인지 비트겐슈타인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우울한 감정을 떨치지 못했다.?하지만 그가 캠브리지 대학의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도중에 사창가가 있었는데 종종 그곳을 들렀다는 보고도 있는 것을 보면 동성애자라는 것은 확증된 사실만은 아닌 것 같다.?이 문제는 지금도 논란이 많다.?한 때 포스트모던 철학의 기수로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셸 푸코도 동성애자이다.?그는 친 동성애자 운동,?소수자 차별 반대 운동을 주도하던 행동하는 철학자이기도 했다.?그는 예일 대 교환교수로 있을 때 종종 게이 바를 들렀는데 결국?1984년에?AIDS에 걸려 죽기도 했다.?그는 근대의 정신과 몸을 지배하는 지식과 권력 체계를 비판하는 일에 주력했다.?근대의 합리적 이성이 이성과 반이성을 나누고,?광기를 추방하고,?의학적 지식이 이런 지배의 도구 역할을 한다는 것을 고발했다.?감옥과 병원의 탄생,?그리고 학교의 탄생이 근대적 지식의 담론 속에서 동일한 출생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밝히기도 했다.?미시 권력의 네트워크와 생산적 권력의 개념은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광기의 역사』,?『감옥의 탄생』,?『감옥의 탄생』등은 많이 읽히는 그의 주저들이다.
80년대 후반에 나온 영화?<필라델피아>는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고발한 빼어난 법정 영화이다.?로펌의 잘나가는 변호사인 주인공 톰 행크스가 동성애자라는 것이 밝혀지자 업무 미숙을 이유로 부당 해고 당한다.?그 당시만 해도?AIDS?환자에 대한 무지와 불신이 커서 동료 변호사들도 그의 소송을 대리하려고 하지 않는다.?편견으로 주저하던 흑인 변호사 댄젤 워싱턴이 사건을 맡으면서 톰 행크스와 함께 로펌을 상대로 진행하는 법정 공방은 법과 정의가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일깨워준다.?배심원 측이 회사 측의 부당 해고를 인정하면서 원고의 손을 들어주자 법원은 원고에 대한 피해배상 외에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던 피고에 천문학적인 징벌적 손해 배상을 선고한다.?왜 한국의 법정에서는 이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가 도입되지 않는가??이 영화를 보다 보면 동성애자를 감싸주는 가족들의 태도가 인상적이다.?한국의 가족에서 동성애자임을 커밍 아웃하면 여전히 맞아 죽을 일이고 쫓겨날 일이다.?사실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고,?다만 성적 기호만이 다를 뿐이다.?이러한 차이가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종종 우리들의 편견은 그것을 잊고 있다.?이 영화의 빼어난 장면 중의 하나가 최종 판결 전에 죽음을 예감한 톰 행크스가 변호사 워싱턴 앞에서 마리아 칼라스의?”La mamma morta”(어머니는 돌아가시고)를 들으면서 몸으로 연기하는 장면이다.?안 본 사람은 꼭 한 번은 볼 일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3b0p9mTJOJI?변호사가 동성애자 의뢰인에 진정 마음을 열고 공감하는 계기가 되는 아리아다.?동성애자들의 빼어난 예술적 취향을 보여주려는 뜻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사랑의 종착역은 결혼이다.?사랑이 사랑으로만 끝나면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모든 인륜지 대사의 기초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가정을 이루는 일이다.?나는 굳이 남자와 여자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다.?동성 결혼이 우리나라에서는 인정이 되지 않고 있고,?세계적으로도 네덜란드와 벨기에,?그리고 미국의 매서츄세츠 주 등 아직은 소수이다.?문화적으로 진보적이라고 생각되는 파리에서도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시위가 몇 달 전에 격렬하게 일어난 적이 있을 만큼 아직은 거부감도 크다.?하지만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인정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다.?멀지 않은 미래에는 우리 역시 이 추세를 거부하기 힘들지 모르겠다.?이미 영화감독 김조광수는 공개적으로 동성결혼을 선언한 적이 있다.?그렇다면 결혼을 남녀로 국한시키는 혼인법이나 가족법,?기타 이와 관련된 친족 상속법,?민법 등 많은 법 개정도 불가피할지 모르겠다.?미래의 가족은 우리가 그간 알아 왔던 형태와는 상당히 달라질 것이란 생각이 크다.?일단 결혼이란 이성간의 일이라는 것만이 아님을 받아들여야 될 때가 올 것이다.?이 부분은 문화적인 인정과 사회적인 합의가 있기 까지 진통도 클 것이다.?특히 기독교는 신의 섭리,?창조 질서 등을 앞세우면서 반대가 심할 것이다.?동성 간의 결혼을 인정할 때2세 생산도 과거와는 크게 다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입양과 시험관 아기,정자와 난자의 기증 및 매매, 2중 대리모와 대리부 등 이성 간의 결혼에서 생각하기 힘든 방식이 일상화될 것이다.?무엇보다 자식에 대한 부모들의 과도한 집착과 교육에 대한 태도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미래에는 교육과 관련한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동성결혼으로 인해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본다.?이러한 변화가 긍정적이 될지 아니면 부정적이 될지는 지금 예단하기는 힘들겠다.?덕분에 우리 시대는 죽을 때까지 새로운 변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고민해야 할지 모르겠다.?무조건 귀를 닫으면 꼴통 보수요,?꼰대 소리를 듣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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