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음과 없음의 구분[철학을다시 쓴다]-26
있음과 없음의 구분[철학을다시 쓴다]-26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이제 몇 가지로 정리를 해봅시다. ‘있다/?없다가 가장 위에서 모든 것을 가려주는 근거가 된다.’?라는 이야기를 방금 드렸죠??철학은?‘원인학’(aitiology)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그러니까 왜,?왜,?왜를 끝까지 묻고,그 원인을 밝혀서 맨 위에 있는 놈이 뭐냐,?최초의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철학이라고 합니다.?이제 여기에서 우리가 같고 다르고,?이고 아닌 것을 뒤에서 끈으로 허수아비처럼 놀리는 두 놈이 있다,?그 두 놈은?‘있음’과?‘없음’이다 하는 것까지는 밝혀냈습니다.?그러면 있다/?없다라는 게 도대체 어떤 괴물이길래 이렇게 삼라만상을 다 뒤에서 조종하고 있느냐,?이걸 한번 살펴보죠.
여기까지는 여러분들이 혹시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지만?‘있음과 없음’이라는 제 존재론 강의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이 이야기를 지루하게 반복하는 까닭은 여러분들이 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정리를 해 보죠.
1.?있는 것이 있다.
2.?있는 것이 없다.
3.?없는 것이 있다.
4.?없는 것이 없다.
“‘있는 것은 있다’?하고?‘없는 것은 없다’?하는 것을 참이라 그랬죠. 2번도 아까 말씀드렸습니다.?참말입니까,?거짓말입니까?”
“거짓이요.”
“3번도 이렇게 되면 거짓말이라 그랬죠.?제가 앞에 적은 글 가운데?1과?4번은 참, 2와?3은 거짓의 근거가 된다고 말씀드렸죠.?그런데 정말 그런지 봅시다.
있는 것이 있다는 말,?여러분들 잘 이해하실 수 있죠??그냥 머리에 딱 들어옵니다.?그렇죠??있는 것이 있지.?그다음에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했는데,?이 말에는 뜻이 있습니까 아니면 아무 뜻도 없습니까??이렇게 있다/?없다로 끝나는 말을 논리학에서는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는 말이라고 합니다.?그러니까 임자말과 풀이말이 이다/?아니다로 연결되는 말만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진술’이고, ‘판단’이고, ‘명제’라고 합니다.존재의 영역에 있는 말들은 참과 거짓을 가릴 수가 없고 다만 뜻이 있느냐 없느냐만 따지면 됩니다. ‘있는 것이 없다’라는 말이 뜻이 있습니까,?없습니까?”
“…….”
“지금 여러분들이 못 알아들을 말을 제가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알아듣겠죠??그렇습니다.?이 말에는 분명히 뜻이 있습니다.?무슨 뜻을 가졌을까요? ‘있는 것이 없다’라는 말에는?‘하나도 없다’는 뜻이 담겨 있지요??분명히 대답하십시오.?그 다음에?‘없는 것이 있다’는 말은 거짓이라고 했는데 이 말에 뜻이 있습니까,?없습니까? ‘없는 것이 있다’는 말에도 뜻이 담겨 있지요?무슨 말입니까??혹시 이 말이?‘빠진 것이 있다’라는 말과 같은 말인지 보십시오.?맞습니까?”
“네.”
“그다음에?‘없는 것이 없다’는 말에는 뜻이 있습니까,?없습니까?
“있어요. ‘다 있다.’”
“그렇죠!?똑똑한 학생들이네. ‘다 있다’라는 뜻이죠.
자,?그러면 이제 여러분,?수수께끼입니다.?분명히 이유가 있을 텐데?‘있는 것이 없다’라고 해버리면 부정이 되는데,?왜 느닷없이?‘하나’가 튀어 나오지요??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 사유구조가,?우리 생각이 어떻게 움직여 가길래?‘있는 것이 없다’가 느닷없이?‘하나도 없다’는 말로 바뀔 수 있느냐??그리고?‘없는 것이 있다’고 할 때,?실제로는 이 말도?‘거짓’의 울타리 속에 있는데 왜?‘없는 것’이 갑자기?‘빠진 것’이 돼 버리느냐.?우리 머리가 어떻게 움직이기에 이런 식으로 해석이 되고 이런 의미를 가진 낱말들이 갑자기 도깨비처럼 튀어나오는지,?그리고‘없는 것이 없다’고 했는데 왜 이것이 여럿을,?모두를 가리키는?‘다 있다’는 말로 바뀌게 되느냐,?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없죠?”
“전체를 머릿속에 두고서 없는 것이 있다라고 하고 그 전체성에 없는 것들이 꽉 찬 상태로 있다 생각하면 그 중 빠진 게 있다,?있는 것이 없다,?원래 다 있어야 되는데 그 있는 게 없으니까 하나도 없는 거죠.”
“제가 저 야바위 놀음을 하려고 그랬는데 대신해 주네요.(일동 웃음.)
그런데?‘전체’라고 하려면 최소한의?‘단위’가 있어야 합니다.?여럿의 최소 단위가 있어야 그것들을 모두 뭉뚱그려 전체라고 합니다.?하나 가지고 전체라고는 안 하죠.?그러면 전체라고 할 때 전체를 이루는 최소단위는 몇이어야 합니까??적어도?‘둘’이어야 하지요??여기서 여럿의 최소단위인 둘이 무엇인지 밝혀내야 합니다.?둘 이상이 있어야 좌우간 다(多)라는 말을 쓸 수 있고,전체라는 말을 쓸 수 있어요.?그 둘이 무엇입니까?(대답 없음.)
지금까지 이야기한 가운데 밝혀진 것은?‘있는 것’과?‘없는 것’밖에 없지 않습니까.?이?‘있는 것’과?‘없는 것’이?‘전체’를 구성한다고 봐야죠.?그러면 없는 것이 있어야 합니까,?없어야 합니까?”
“있어야 해요.”
“있어야죠.?지금 우리는 당장 속절없는 거짓말의 수렁 속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없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거짓말을 한다고 그랬죠.?그렇죠??그러니까 우주의 구조,?그것을 반영하는 우리 사유의 구조.?이게 사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없는 것’을 실체화해서 있다고 생각하거나 상상하거나 혹은 그런 것을 실제로?‘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그렇죠.?이제 여러분들 반은 제 거짓말에 넘어갔습니다.?없는 것이 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꼭 필요하다,?없는 것이 있을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는데,?그 말을 여러분이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시간이 저로서는 괜찮습니다.?왜냐 하면 제가 한 스무 해 전에 풀어먹었던 것을 그냥 되풀이하면서 그냥 적당히 강의시간 때울 수 있으니까,?저로서는 이런 강의가 괜찮은데…….?아마 바쁘신 여러분들한테는 시간낭비가 될 겁니다.?이런?‘거짓말’이 바닥에 깔린 이야기를 들어야 하니까.”
“안 바쁜데…….”
“하하하,?안 바쁩니까??그러면 이제 한 단계 더 진전시켜서 봅시다.?있는 것이 하나로 있다고 칩시다.?있는 것이 없다고 했을 때?‘하나도 없다’가 된다고 했죠??있는 것은 하나로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된 거죠.?여러분 가운데?‘선생님 무슨 그런 헛소리하세요??이게 어디 하나로 있습니까??둘로 있죠.?귤과 무화과 둘로 있는데 하나로 있다니요?멍청한 소리 그만하세요.?우리가 하나로 있으면 입이나 벙긋할 수 있고 이것저것 가려나 볼 수 있겠어요??똥,?오줌도 못 가리지.?그러니까 이제 그런 헛소리하지 마세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그런데 여럿의 최소단위는 뭐라고 그랬죠??둘!?여럿의 최소단위는 둘입니다.?그러면 이제 여기 있는 것을 둘로 나눠 보자,?하나는 있는 것 기역(ㄱ)이고,?하나는 있는 것 니은(ㄴ)이다,?그러면 이 있는 것 기역(ㄱ)과 있는 것 니은(ㄴ)을 나누는 경계선이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그렇죠??그래야 나눠지지 않겠습니까?그런데 이 둘을 나누는 선은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있는 거요.”
“예??있으면 하나로 합쳐져 버리죠.?있는 것,?있는 것,?있는 것인데 뭣 때문에 둘로 있습니까??또 다른 대안은 이 경계선이?‘없는 것’이어야 하겠죠??그런데 없는 것은 그 자체 규정상 없습니다.?그러니까 또 하나가 되는 거죠.있는 것은 하나로 있죠.”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세요.”
“다시.?만일에 여럿의 최소단위는 둘인데 있는 것이 둘로 있다고 쳐 보자,그러면 있는 것 기역(ㄱ)과 있는 것 니은(ㄴ)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그러려면 나누어 주는 경계선이 있어야 될 것 아니냐,?있는 것 기역(ㄱ)과 있는 것 니은(ㄴ)을 나누어 주는 것이 있어야 그걸 둘이라 그러지,?달라붙어 있어서 하나로 있다,?그러면 둘이라고 안 하지 않느냐,?그러면 이 나누는 경계선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있다.”
“그렇게 있다고 가정을 한다면 있는 것,?있는 것,?있는 것이 되어서 달라붙어 버린다.?그렇다고 해서 없는 것이라고 가정을 해버리면 경계선이 없는 것이 돼죠??또 달라붙죠??그래서 있는 것은 하나로 있습니다. ‘있는 것이 없다’고 할 때?‘하나도 없다’라는 말과 같아져서?‘있는 것’이 통째로 부정이 돼 버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있는 것은 하나로 있기 때문이요.”
우리 나라 사람들 굉장히 머리 좋죠.?그걸 압니다.?우리는 옛날부터 있는 것은 하나로 있다.?그래서 있는 것이 부정이 되면 통째로 부정되어서 하나도 없다라는 말이 된다.?그 다음에 없는 것이 있다 할 때 이건 빠진 것이 있다고 그랬죠.?그런데 실제로?‘없는 것이 있다’는 말이 서양의 존재론 역사를 이끌어오면서 말썽에 말썽을 거듭해서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이것은 서양 사람들의 사유 구조에서는 실제로 논리적인 사고에서나 초월적인 사유에서나 똑같이 어려움을 불러일으키는데,?기독교에서는 더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이 사람들은?creatio ex nihilo (무로부터의 창조),?무에서 창조하는 것.없는 것에서 있는 것이 생겨난다는 창조를 믿습니다.?없는 것에서 있는 것이 생겨난다는 가정을 우리가 받아들이면 열역학 제일의 법칙이 다 무너져 버리죠.?그렇지 않습니까??무에서 유가 나온다,?그러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무너져 버립니다.?그런데 실제로는 이런 말을 히브리 사람들은 하거든요.?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다,?하나님이 주물럭주물럭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nihil)이 구원을 받으려면 유일신인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있는 것’은 하나님뿐이다,?그래서 유일신(有―神)이다,?하나로 있다,?그러니까?‘있는 것’은?‘하나’고 그래서?‘하나’님인데,하나님만 있고 나머지는 전부 헛되고 헛된 것이다,?없는 것에서부터 만들어진 거니까 헛되다고 하는 건데 그리스 철학의 전통에서 보면,?없는 것은 없는 것일 뿐입니다.?없는 건 없다,?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그러니까 없는 것이 있다고 하지 말고 다른 말로 바꿔 보자,?이렇게 해서 계속 맴도는 쳇바퀴를 만들어 낸 게 그리스 철학의 전통이고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서 현대 실증과학에까지 내려옵니다.
자,?그러면 이제?‘없는 것이 있다’,?거짓의 근거가 되는 말이라고 했지만?‘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우리 사고가 요청하는 거니까 없는 것을 있다고 놓고 한번 가 보도록 하죠.
그러면 우선 여럿(多)은 확보되죠??없는 것도 있고,?있는 것도 있다고 하면 둘이 확보되지 않습니까??이렇게 해서 이 세상은 구제받을 길이 열리는 겁니다. ‘같고’, ‘다르고’, ‘이고’, ‘아니고’,?하는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겁니다.?없다는 것이 전제되지 않으면,?없는 것을 빼놓고는?‘아니다’라는 부정사 쓸 수 없죠??그리고 다르다는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없는 것이 있다고 보면 여기서도 없는 것과 있는 것을 가르는 경계선이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그렇죠??그러면 없는 것과 있는 것을 가르는 경계선이 있습니까,?없습니까?”
“있습니다.”
“경계선이 있으면 있는 것,?있는 것,?있는 것,?해 가지고 없는 것이 차츰차츰 줄어들어서 다 없어져 버려요.?그럼 거꾸로 경계선이 없는 것이라고 치면 없는 것,?없는 것,?없는 것,?해서 있는 것이 다 없어져 버려요.?그렇죠??이 경계선이 누구 편을 드느냐에 따라서 없는 것이 온통 다 삼라만상을 지배하기도 하고 있는 것이 온통 다 이 세상을 지배하기도 하고,?그렇게 되는데 그러면 이게 뭐죠??이 경계선은 어떻게 봐야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으로 보아야죠.?있는 것이 아니니까 있는 것과도 구별되고 없는 것이 아니니까 없는 것하고도 구별되면서 경계선 노릇을 하는 거죠.?그렇죠?”
어떤 것이 끝나는 지점,?이를테면 선분(line)의 두 끝을 그리스 사람들은‘페라스’(peras)라고 합니다.?우리말로 바꾸면?‘끝’입니다.?끝,?갓,?겉,?다 같은 어원에서 나오는 말입니다.?그것과 그것이 아닌 것을 나누어주는 경계 지점에 있는 것을 우리는?‘겉’이라 하고?‘갓’이라 하고?‘끝’이라 하기도 합니다.?그러면?‘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은 뭐냐고 하느냐? ‘아페이론’(apeiron)이라고 합니다.?이것은 끝이 아닌 것,?끝이 없는 것,?경계가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라틴어로는?‘인피니스’(intfinis),?영어로는?‘인피니트’(infinite)입니다.?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하나는 무한한 것,?무한히 연장되어 있는 것이라는 뜻이고 또 하나는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이라는 뜻입니다.?그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이것이 그리스어?‘apeiron’이 지니고 있는 뜻입니다.?그러면 이제 세 가지가 나왔죠??없는 것 하나,?있는 것 하나,?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이 세 가지가 나왔죠??여러분,어떤 원시인들 가운데 수를 셀 때?‘하나’, ‘둘’, ‘많다’?그렇게 표현하는 부족들이 있다고 하죠??그게 아주 정확한 겁니다.?하나,?둘,?그 다음에?‘많다’입니다.?그 이유도 여러분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마는 아마 여기서 밤새 설명해도 못 알아들을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앞에서 있는 것은 하나로 있다고 그랬죠??그런데 없는 것은 하나로 있겠습니까,?여럿으로 있겠습니까??하나로 있습니까?”
“아니요,?여럿으로.”
“이유는?”
“아까 없는 것이 없다 그래서…….”
“‘다 있다’고 그랬죠. ‘없는 것이 있다’는 말은?‘빠진 것’이 있다는 말도 된다고 그랬고.”
“그 빠진?‘디펙트’(defect)가 꼭 하나일 이유는 없어요.”
“그렇죠.?빠진 것이 꼭 요렇게 빠져야 하고 이만큼 빠지게 할 필요는 없다,빠진 것에는 정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없는 것은 말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없는 것은 많다,?있는 것은 하나이지만 없는 것은 무한이 많다,?이래 없고,?저래 없고 없는 사람 죽을 맛이지만 어쨌든 없는 것은 엄청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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