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과 됨’의 차이[철학을다시 쓴다]-⑨
‘함과 됨’의 차이[철학을다시 쓴다]-⑨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함과 됨’: 운동의 난제
여러분들, 서양의 ‘히스토리’(history)라는 말의 어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물리학사, 철학사, 생물학사 같은 ‘역사’를 이야기하고, 서양에서는 그것을 ‘히스토리’라고 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어 ‘히스토르’(histor)라는 말에서 나온 건데 히스토르라는 말은 증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실증적인 증언의 뒷받침이 없으면 신화나 상상, 환상이라고 하지 역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역사는 실증과학이라고 하는 말, 이 말을 널리 퍼뜨린 사람이 누구입니까? 실증과학의 아버지는 누굽니까? 불란서 사람인 오귀스트 콩트(August Conte)입니다. 그 사람은 물리학, 화학뿐만이 아니라 사회학, 철학까지도 실증과학으로 만들려고 애썼던 사람입니다. 근대과학의 밑바닥에는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과학이 깔려 있습니다. 물리현상이나 생물현상이나 화학현상이나 인간현상이나 전부 일정한 법칙이 있다고 보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그 법칙을 설명하지 않으면 전부 헛소리로 치부하는 거지요.
“화학에서는 가장 큰 난제가 무엇이었습니까?”
“불.”
“그렇죠!”
불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리는 간단하게 급격한 산화현상이라고 배웠지만, 산화현상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은 지극히 후대의 일이고, 불이란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이 화학에서 가장 큰 난제였습니다.
생물학에서 가장 큰 난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자연 발생설에 대한 논박이었습니다. 파스퇴르가 나타나서 비로소 아주 조그만 생명체도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에서만 생명체가 나온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 전에는 그냥 세균이라는 것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물리학에서 가장 큰 난제이고 현재까지도 큰 난제인 것은 무엇입니까? 운동의 문제입니다. ‘한다’, ‘된다’, 이런 것이 전부 운동하고 연관된 문제입니다. 크게 봐서 운동에는 몇 가지 운동이 있습니까? 질적인 운동과 공간운동, 두 개로 크게 나눌 수 있죠? 질적인 변화와 공간에서 위치 변화, 물리학자들은 질적인 운동을 어떻게 봐요? 양적인 운동으로 환원하죠? 어찌 보면 물리학자들이 극단의 환원주의자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고대원자론자들이 그랬듯이 단순한 요소를 가지고 전체 우주 삼라만상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그런데 질적인 운동을 양적인 운동으로 환원시킬 수 있는가? 이 운동 문제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지금 현대 물리학자들이 빠진 궁지가 있습니다.(홉킨스도 마찬가지고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고, 저는 다 그 수렁에 빠져 있다고 봅니다.) 원자론자들은 개방된 우주를 상상했습니다. 원자들도 무한하고 우주 공간이 외연적으로도 무한하다고 해서 개방된 우주를 생각했는데 현대 물리학자들은 폐쇄된 우주를 그립니다. 아인슈타인의 통일장 이론이 일차적으로 밑바닥에 깔고 있는 것은 하나의 폐쇄된 우주입니다. 질서 있는 운동을 설명하려고 하니까 폐쇄된 공간이 필요한 겁니다.
“열역학 제1의 법칙이 뭡니까?”
“에너지 보존의 법칙.”
“네, 에너지 보존의 법칙입니다. 이게 철학적으로는 어떤 뜻을 지니고 있습니까?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없는 것에서 무언가 새로 생겨나지도 않고, 있는 것이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거죠? 안 그렇습니까? 어떤 면에서는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습니다. 철학적인 문제를 물리학적인 동어반복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그 다음 열역학 제2의 법칙은 뭡니까?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건 무엇입니까? 무규정성이 늘어난다는 말이죠. 무질서해진다는 것은 무규정성이 늘어난다는 거고, 그리스 사람들 이야기를 따르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이 늘어난다’, ‘인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것이 늘어난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이 늘어난다’, 라는 거고, 그걸 물리학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어떤 말이 되겠습니까?”
“…….”
“이놈 저놈이 질적으로 구별 안 된다는 말입니다. 결국은 등질화된다는 말입니다. 고전물리학의 완성자로 알려진 뉴턴은 운동을 두 개로 나누는데 수평운동과 수직운동이 합쳐져서 무한히 튕겨나가지도 못하고, 무한히 오므라들지도 못하고, 우주에 떠 있는 것들을 둥글둥글 돌게 만든다, 이 두 개가 합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서 우주선도 돌고, 지구도 돌고, 달도 돌고, 해도 돌고, 천체도 운행된다고 이야기하죠. 참 아름다운 이론입니다.”
그런데 중력 중의 중력은 뭐라 그러죠? ‘블랙홀.’ 지금 우주 산지사방에 블랙홀이 있는데, 그 블랙홀을 전부 끌어 모으는 최종 블랙홀이 나올 겁니다. 그게 중력중의 중력이거든요. 중력중의 중력에 중심이 있어서, 흩어지려는 모든 무게 있는 것들을, 성운이라든지 개별적인 별들을 끌어 모아서 통일장을 이룬다는 것이 아이슈타인의 생각이고, 거기에서부터 현대 물리학자들이 한 치도 벗어나려고 들지 않고,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파괴 정도에 있어서 고대 원자론자인 데모크리토스 학파의 이론을 못 따라갑니다. ‘빅뱅’(Big Bang)이든지 ‘블랙홀’(Black Hole)이든 옛날부터 원자론자들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것들을 이론적인 정교함, 섬세함을 더하고 수학을 덧붙여서 새로 정리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실제로 알고 있는 정치경제학 이론이라든지 현대 자연과학 이론, 이 모든 이론들이 물리학 이론을 중심으로 마치 성단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면 중심은 ‘환원’입니다. 소립자로 환원시키든,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환원시키든, 이 모두가 환원론들입니다. 여기저기서 환원론이 지배질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물을 던져서 그 그물에 걸리는 고기만 잡아야 하니까, 그것이 이론적으로 아름답고 깨끗하니까, 이론을 그렇게 만들어 내는데, 도시사람들은 서로 무엇이 닮아 간다 했죠? 생각이 닮아간다, 시골사람들은 손이 닮아 가는데, 도시사람들은 생각이 닮아 간다, 그런데 왜 이렇게 생각을 통일시키려고 듭니까? 왜 모두 이렇게 단순한 걸로 환원시키려고 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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