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병역 비리’가 아닌데 [썩은 뿌리 자르기]
[썩은 뿌리 자르기]
문제는 ‘병역 비리’가 아닌데
글: 한길석(충북대 강사)
‘원숭이’와 ‘람보’
약간 비실하게 생긴 후배가 해준 얘기다. 유학 시절 자신을 ‘조그맣고 머리만 좋은’ 동양인으로 깔보던 미국인과 대화를 하다가, 우연히 군대 얘기를 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이 뺀질하게 생긴 동양인이 제대 군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미국인은 자신을 ‘노란 원숭이’에서 단숨에 ‘람보’로 ‘진화’시키더라는 것이다. 미국은 모병제고, 그 미국인은 군대란 공화국 시민의 안전과 공공의 복리를 보위하는 조직이라고 배웠을 테니 그렇게 보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한반도는 가장 유명한 분쟁지역 중 하나지 않은가. 그런 험악한 곳에서 군 생활을 했으니 ‘전사’쯤으로 보는 것도 당연하겠지.
하지만, 그 미국인이 ‘원숭이’를 ‘람보’로 바꾸는 절정신공을 전개하든 말든, 한국 남성에게 군대란 꿈에서 볼까 무서운 곳 중 하나일 뿐이다(절대 과장이 아니다. 군대 다시 가는 꿈은 악몽계 랭킹 3위권 안에 든다.) 그런데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대한민국 헌법은 권리는커녕, 이 악몽과 같은 생활을 수 년 간 감수하라고 한국 남자들에게 강제한다. ‘강제긴 하다만, 뭐…공화국 시민의 공적 복리를 위해서는 개인의 권리도 잠시 유보할 수 있는 거고, 더구나 멀쩡한 군함이 지뢴지 어뢴지에 쪼개진다는 나라라니, 내 나라 지키는 일은 당연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대충 이래서 국방의 의무는 신성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징집제 시행 이래 줄곧 이 신성의 영역에서 자유로운 ‘자유인’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정·재·계의 전통적 기득권층이, 이제는 연예인과 운동선수들이 ‘자유인’의 대열에 합류하여 ‘자유인’들은 매년 불어나고 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죽여 살려를 반복하는데, 해마다 불거지는 병역 비리 논란이니 이젠 화낼 여력도 없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허술한 나라가 아닙’니까요?
그런데 이 ‘공사다망(工事多忙)’한 정권에서는 정도가 ‘초큼’ 심하다. 대통령, 역대 총리, 장관 셋, 당 대표 모두가 병역을 면제 받은 ‘자유인’들인 것이다. 당·정·청 삼관왕을 휩쓴다는 건 정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인데, 산수유 액즙을 마신 것도 아닌 이 느낌을 “참, 뭐라 말할 수도 없고…표현할 방뻡이 엄네….”
국회의원들과 지방자치단체장들도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니, 현직 국회의원 본인의 병역 면제율은 16.2%, 그 직계 비속은 10.3%라 하고, 지방자치단체장 본인은 20%, 직계 비속은 15%라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면, 군대 가는 건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만 부과된 고역이 된다.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법치(rule of law)의 원칙이라는 것은 민주적 입헌국가의 꼴을 갖춘 나라라면 어디에서나 적용되어야 하는 원리다. 그러나 법치국가 한국에서 헌법 39조와 병역법은 법치의 원칙 밖에 있다. 그러니 한국 남자들의 대부분이 징병절차가 불공정하다고 불평하고, 기회만 있다면 병역 면제를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해 보겠다고 푸념하는 것은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병역 면제를 받기 위해서는 돈과 줄과 정보와 배경이 있어야 하는데, 특권층이 아닌 보통 사람들은 이런 게 없으니 그냥 입영열차를 기다릴 뿐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특권층이 독점하던 ‘혜택’에 마구잡이로 들이대기 시작하는 보통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거다. 연예인과 운동선수들로 이루어진 이들은 이빨과 어깨를 뽑고, 국적을 바꾸고, 체중을 늘리고, 정신병원에서 한 달 간 버티는 등의 고행 끝에 ‘신의 아들’이 되어 군 면제를 받아냈다. 하지만 신검 때만 짝눈이 되는 무공을 지닌 총리 말대로 “대한민국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아서, 이들을 잡아내서 다시 군대로 보내고, 징집 기준을 높이고 있다.
우스운 희생제의
이들은 병역법 위반죄가 아닌 괘씸죄로 처벌된 듯싶다. 특권층에게나 은밀히 허용되던 군 면제를 감히 ‘광대 나부랭이들’이 넘봤으니 얼마나 괘씸했으랴. 더구나 면제 요령은 예비 판검사 영감들이 고시 준비 과정에서 어렵게 터득한 비법인데, 이를 따라하다니 이건 저작권 위반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허술하지 않고, 법치국가로도 믿어지니 법의 이름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연예인 등은 병역 비리를 엄중히 처벌하는 티를 내는 데 딱 좋은 먹잇감이다. 걸렸을 때 뒤를 봐줄 힘이 없는데다가 이름까지 알려져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으니 전시 효과로서는 ‘왔따’다. 그래서 유명한 연예인들은 처벌받고 군대에 가지만, 안(?) 유명한 정치인들과 재벌들은 법적 공방을 벌여 합법의 검증표를 획득한다. 유명세가 없는 이들의 비리 행위는 상품성이 없으니 언론에서도 그리 깊숙하게 다루지도 않는다. 병역 비리 처벌 문제가 만만한 희생양을 통하여 사람들의 불만을 무마하는 우스운 희생 제의로 끝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정에 있다.
구호로서의 공정사회
그런데 저 희생 제의로 피해보는 이는 희생양만이 아니다. 진짜 이와 어깨가 빠지고 신체와 정신이 병역을 수행하는 데에 어려운 가난한 이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병역 비리 사건이 발생하면, 사람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징집 기준은 강화된다. 그 와중에 정말 병역 면제로 보호 받아야할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징집되어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 우려가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어깨와 치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면제였는데, 어깨와 이로 요령 피우던 놈들을 처벌하면서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이제는 이와 어깨로는 면제가 안 된단다. 희생제의와 공정사회론이 합쳐져서 불공정하게도 애꿎은 사람만 잡게 됐다. 이는 위대한 각하께서 휴가 기간 동안 ‘공정사회 단기 속성 과정’을 다닌 효과다.
병역 비리의 근절 방법은 간단하다. 병역을 기피하려는 기득권층이 요령 피우지 못하도록 하면 된다. 진정한 공정사회의 원칙이 일반화된다면 이러한 문제는 발생하지도 않는다. 롤즈는 공정한 사회의 원칙에 대해 각자의 양립가능한 기본적 자유를 평등하게 인정하면서도,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최소수혜자가 최대한 이익을 보게 하고, 공정한 기회 균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정의로운 자유주의 사회가 갖춰야할 요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의원칙대로 하자면 대략, 기득권층이건 서민이건 병역의 의무는 공정하게 지게 되며, 병역을 질 수 없는 최소수혜자들은 예외가 된다.
하지만 공정사회를 경영학 책이나 주변인에게서 주워들은 이들에게 공정으로서의 정의원칙이 공정하게 적용될 리는 만무하다. 정략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에서 주장된 정의원칙은 자기 이익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공정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자기 이익이 다른 이들의 이익과는 양립불가능하다면 자기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것이 공정함의 한 조건인데, 자기이익의 보존을 절대 목표로 하는 이에게는 이러한 조건은 안중에도 없다. 그러니 친정부 신문마저도 공정사회론을 빈정대는 것이다. 병역 비리자의 엄중 처벌이 희생제의 촌극인 것처럼, 공정사회론 또한 그 못지않은 희극이 되었다. 웃음이 헤퍼지면 헛웃음만 나오듯이, 사회에 희극이 만연하면 공허감만 들 뿐이다.
자유주의를 부탁해
병역 비리에 대해 사람들이 민감한 이유는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데에 대한 불만에 있다. 병역 비리는 우리 사회의 불공정성을 몸으로 직접 겪은 문제라서 더욱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분노의 정체는 병역 비리가 아니라 공정한 대우다. 병역 비리 문제만 발생하면 이를 가는 시민들은 다만 지극히 상식적인 믿음이 현실화되기를 바랄 뿐이다. 민주적 입헌국가에서 시민들은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지닌 이들로 대우받아야 함을 상호 인정해야 하며, 사회적 약자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음을 현실에서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자유주의적인 열망이다. 최소한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고 자부하는 이라면, 자유주의 정당의 집권 생명을 연장하려고 한다면, 이 지극히 온건하고도 얌전한 기대를 좌절시키지 말아야 한다. 자유주의로는 성이 차지 않는 필자지만 그래도 저 정도 사회라면 숨이라도 쉴 수 있기에, 부탁한다, 제발. 자유주의라도 제대로 하나 해줘. 나도 좀 살자!!
덧붙임: 징집의 공정한 집행을 주장했다고 해서 필자가 징집 거부자를 백안시한다든가, 남북의 군사적 대치를 당연시한다고 짐작하지 마시길. 난 ‘Imagine’의 존 레논도 좋아하구요, 한반도 평화와 여러 양심적 이유들 때문에 징집을 거부할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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