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법을 개정하라! – 대학의 비정규직 문제 [썩은 뿌리 자르기]
[썩은 뿌리 자르기]
고등교육법을 개정하라!
-? 대학의 비정규직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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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광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1000일이 넘어간 농성장의 외침
지난 6월 2일로 1000일이 된 농성장이 있다.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시간강사에 대한 교원자격의 회복을 요구하는 국회 앞 농성장이다. 솔직히 이 농성이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농성이 시작될 당시 17대 국회에는 최순영?이상민?이주호의 3개 법안이 상정되었으나 17대 국회의 종료와 더불어 사장되었다. 나는 일단 농성이 거기서 잠시 쉬었다가 18대 국회가 시작하면서 다시 시작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김동애?김영곤 선생님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로 농성장을 지금까지 지키고 계신다.
투쟁단위가 있지만 두 선생님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이 농성은 두 선생님이 이어온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구는 단순하다.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을 통해 77년에 박탈된 시간강사의 교원지위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수업의 1/3 이상을 담당하지만 무권리자인 시간강사
개인적으로 대학언저리를 ‘방황’하다보니 시간강사 선후배와 어울릴 기회가 자주 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20학점 넘게 강의하는 선배들에게 ‘강사재벌’이란 자조적인 농담을 한다. 대학 다닐 때 한 학기에 20학점을 따라가기도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 선배들의 전국투어가 얼마나 힘든 길인지 느낄 수 있다.
전봇대를 부여잡고 ‘너는 한 곳에 있기라도 하지’라며 흐느꼈다는 말을 들으면 저절로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반면에 강의가 적은 선배들의 경우 나마저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래서 학기말과 초에는 어디서 강의를 얼마나 하는지를 묻는 것이 예의가 아닌 예의가 되었다.
박사학위자의 경우 후속연구와 경력차원, 비박사학위자의 경우 논문준비와 강의경험이란 차원에서 보면 시간강사제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 오늘날 시간강사는 하나의 직업이며 대학교육의 중요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공개한 ‘2010년도 대학별 시간강사 시간당 강의료 지급단가’에 따르면, 4년제 일반대학 186곳의 시간당 강의료는 평균 3만6천400원이다. 학교별로 보면 시간당 2만원(신경대)부터 6만 4천원(상지대)으로 편차가 매우 심하다. 한나라당 임해규 의원이 공개한 ‘2008학년도 시간강사 현황’에 따르면 2008년도 시간강사 평균 연봉(주당 9시간 기준)은 999만원으로 전임강사 평균연봉인 4123만8000원에 대략 4분의 1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강사가 담당하는 수업시간은 34%정도에 달한다. 일부 지방대의 경우는 의존도가 심해서 50% 전후를 담당한다. 시간강사가 없다면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정도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즉 시간강사는 대학교육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지만,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각 교육주체들이나 정부도 많은 노력을 해왔다. 정부는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을 통해 각종 연구지원 사업을 펼쳤고, 각 대학도 비정규직 트랙이지만 각종 형태의 교수를 채용하여 시간강사의 부담을 줄이려 노력했다. 그러나 시간강사제도 자체에 대한 대안은 지지부진했다.
포장만 화려한 정부정책
지난 5월 25일 조선대 서모 시간강사가 자살하면서 시간강사의 현황과 제도적 문제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에 지난 6월 23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시간강사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핵심은 전업시간강사 가운데 일부를 비정년 강의전담교수로 채용하고, 시간강사료는 전임강사 대비 50%수준까지 인상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첨예한 쟁점인 시간강사의 법적인 교원 지위 회복에 대해서는 전업시간강사 일부를 비정년 강의전담교수로 전환하면서 교원지위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먼저 시행할 것으로 보이는 국립대의 경우 공무원보수규정에 따른 보수와 연금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규모는 5년 동안 매년 4백 명씩 총 2천명을 채용할 것으로 보이며, 평균연봉은 2천600만원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4대 보험도 적용되어 국립대의 경우 국가가, 사립대의 경우 법인의 사업자부담금을 정부가 지원할 예정이다.
또 국립대의 경우 시간강사료는 5년 이내에 4만3천원에서 단계적으로 8만원까지 인상할 계획이다. 그리고 사립대의 경우 최저 시간강사료를 책정하는 방식으로 강의료 인상을 유도하는 정책을 시행할 예정이다.
일그러진 정부정책에 어그러지게 반응하는 교육주체들
그 동안 나왔던 어떤 정책보다 시간강사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해당사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우선 논의를 촉발시킨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의 ‘대학 시간강사 대책 소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고형일 교수(전남대 교육학)가 “국공립은 물론 사립대학에 편파적으로 이익을 주고, 시간강사뿐만 아닌 대학의 교수요원 전체에 막대한 불이익을 주려는 친대학·반교수·반시간강사의 음모가 있다고 의심케 한다”며 위원장직을 사임하였다.
나아가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과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투쟁본부’ 등 전국 시간강사들이 사회통합위원회의 대책에 대해 ‘땜질식 처방’, ‘또 다른 시간강사 트랙’이라며 거센 반발을 하며 잇달아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등의 교수단체들도 사회통합위원회의 대책은 ‘시간제 교원’, ‘반쪽짜리 교원’ 도입이라며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도대체 왜 정부의 정책은 시작하기 전부터 비난을 받을까? ‘한국비정규교수노조’가 지난달 24일 발표한 ‘교육과학기술부는 기만적 미봉책으로 국민을 호도하지 마라!’란 성명서를 보자.
“교과부 대책안 중 비정년 강의전담교수는 전국 국공립대에서 매년 400명을 뽑는다고 하지만 전국에 국공립대가 40여개 있으니 한 학교당 10명 정도 배정되는 셈”이며 “이는 기간제 근무를 하는 비정규직 교수들을 계층화하여 10% 정도만 간택하고 나머지는 현 상태로 내버려 두면서 분할지배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이번 정부의 대책을 국립대부터 시작하려 해도, 강의전담교수 채용비용 외에도 국립대 시간강사료 6만원 인상에 350억원, 4대보험 적용에 365억원, 공동연구실 지원금 300억원 등이 확보되어야 한다. 위 성명서를 보면 “교과부가 내 놓은 강의료 인상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며 “2001년 4월 24일 대통령 보고 자료에서도 거의 같은 내용의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고 2003년에도, 2007년에도 거의 매년 인상안을 내 놓았지만 관철된 것은 거의 없다”며 정부정책의 실천의지를 의문시했다.
화려한 포장 속에 숨은 원하지 않는 선물
제일 의문시되는 것은 대학의 주요 평가지표인 교원확보율에 강의전담교수를 포함한다는 점이다. 물론 정부는 무분별한 강의전담교수의 확대를 막기 위해 전체전임교원의 10%로 제한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이미 겸임교수, 초빙교수, 강의교수 등 다양한 형태로 비전임 교원을 20%까지 인정해주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은 시간강사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한다기 보다는 대학교원 임용의 다변화 전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강의전담교수는 재임용 기회가 원칙적으로 제한된다. 임용형태는 2~3년마다 계약제로 임용되며, 5년의 범위내에서 계약기간이 연장된다. 사립대가 운영하고 있는 비정년트랙 교원의 경우 재임용 심사 신청권을 갖지만, 강의전담교수의 재임용 기회는 법적으로 제한된다.
물론 개별 시간강사의 경우 강의전담교수 중에 전임교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몇 명이 그럴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이번 정부정책은 시간강사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보다는 정년을 보장하는 전임교원의 10%를 비정년트랙으로 전환하여 교수노동시장 체계를 유연화하려는 목적이 뚜렷한 것이다.
시간강사제도의 첫 단추는 1000일이 넘는 요구에 답하는 것으로!
지난 2004년 국가인권위에서는 시간강사의 처우를 전임 교수에 비례하게 하여 차별을 없애라고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에 권고했었다. 그러나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재정을 핑계로 이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17대 국회에서 시간강사의 교원화를 골자로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으나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지되었다. 그리고 현 18대 국회에서 다시 2개의 법안(이상민, 김진표 대표발의)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역시 계류 중이다.
여기에 정부도 개정안을 제출했다. 입법취지 중 하나가 교수, 부교수, 조교수, 전임강사로 되어있는 14조(교직원의 구분) 2항에서 전임강사를 조교수로 통합한다는 것이다. 그 사유가 재미있다. “전임강사인 교원의 경우 ‘강사’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어 해당 교원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입법취지를 읽으면서 강사는 교원이 아니라는 정부의 시각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어 씁쓸했다.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의 김동애?김영곤 선생님은 77년에 삭제된 고등교육법상 시간강사의 교원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1000일이 넘게 농성을 하고 계신다. 고등교육법상의 교원지위가 시간강사제도 문제점을 해소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강사료를 올리고, 시간강사의 일부를 비정년트랙 교원으로 채용하는 것으로 시간강사제도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것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전자의 경우 대학 당국과 교수들의 반발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어려운 길이다.
그럼에도 김동애?김영곤 선생님의 투쟁을 지지하는 것은 시간강사가 ‘보따리 장사꾼’이 아니라 하나의 직업이 되었으며 대학교육의 중요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은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는 것임과 동시에 우리 대학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며, 시간강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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