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옥 이야기[카메라 옵스큐라]
건장한 아지매들의 어깨 사이 저 야윈 영감님은 50년 전통의 해장국집 ‘대중옥’ 사장님이시다. 실제론 더 구부정하고 왜소해서 할배티가 확연한데, 문턱을 넘는 모든 이에게 한결같이 ‘어서옵~쇼’를 외친다. 인터넷사이트 회원 가입시 약관 동의절차만큼이나 일방적이고 예외없는 인사이건만 불쾌하긴커녕 묘한 따뜻함을 준다.
가끔은 몸 가누시기도 힘들어 뵐 때가 있는데 그래도 손님이 들면 ‘어서옵쇼’하는 소리를 반사적으로 앓듯이 내뱉으실 정도니 그 지극한 습관 앞에 말문이 닫힌다. 지난 겨울이던가 아무튼 마지막으로 들렀을 무렵부터 유고한 것인지 더 이상 예의 환영을 받을 수 없어 무척 섭섭했다.
‘어서옵쇼’ 하는 외침을 해장국집 ‘대중옥’에서 들을 때면 구어(口語)에서 사라진 말의 한시적 부활이 애틋한 느낌을 주면서도 한편으로 그 외침이 일제강점기를 통해 일상화된 것들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최근에 ‘라멘’ 등 이른바 정통 일본식임을 자랑하는 식당에 들어설 때 가끔 듣게 되는 ‘이랏샤이마세’ 하는 말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어서옵~쇼’와 ‘이랏샤이마~세’는 의미도 같지만 특히 끝에서 두 번째 음절을 강하고 길게 빼는 특유의 가락도 유사하다. 또 식당 등 가게에서 손님을 맞을 때만 사용하는 말이라는 점도 같다. 집에서 손님을 맞을 때 우리가 ‘어서옵~쇼’ 하지 않듯이 일본에서도 집에 오는 손님에게 ‘이랏샤이마세’ 하지 않는다 한다.
하기야 노인들이 추억하는 평양물냉면 맛에 ‘아지노모도’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건 ‘어서옵~쇼’가 번역된 ‘이랏샤이마~세’이면 뭐 어떠랴? 묽은 국물에 조미료로 맛을 내 배를 채우고, 어서옵쇼를 외치며 조아려 생계를 꾸리고, 뽕짝에 시름을 달래는 일은 자유로운 임노동자로 전락해간 이들이 의지할 동도(東道)의 생활양식이란 애당초 없었던 데서 비롯되니 말이다.
대중옥의 대표 음식은 역시나 해장국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혹은 린네(Linne)를 흉내
내 학구적으로 분류하자면 탕類-우거지국目-선지국科에 속한다. 특징은 꽤나 기름지다는 점이다. 그래서 평범한 입맛엔 주문할 때 ‘기름빼고’ 라는 마이너스 옵션이 필수다. 지금이야 마이너스 옵션이 더 일반적일 수 있겠지만 옵션은 옵션일 뿐 여전히 표준은 기름진 해장국이다.
사실 대중옥 주변은 소규모 공업사 등이 밀집해 있던 지역으로 이른바 기름밥을 먹는 이들의 오랜 터전이었다. 금속이나 기계를 주로 다루었던 이들은 미신처럼 소기름이나 돼지비계가 몸속에 쌓인 불순물을 씻어주는 일종의 정화작용을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토록 기름진 고칼로리 해장국을 표준적인 메뉴로 자리하게 한 것은 그런 믿음보다 그들의 고되디 고된 노동이 요구하는 열량이었다.
해장국 외에 대중옥은 인상적인 메뉴를 몇 가지 더 갖고 있다. 추탕, 설렁탕, 간천엽, 머리 고기, 갈비찜 등 평범한 음식도 있고, 등골, 곁간처럼 약간 특이한 메뉴도 있다. 하지만 송치, 우랑 등의 메뉴는 범상치 않은 수준이어서 사람에 따라 몬도가네 풍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송치는 배냇송아지를 일컫는 것으로 엽기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머나먼 이국 고대종교의 신성한 제사용 희생(犧牲)같은 느낌도 주는데, 대중옥에선 그냥 고기안주다. 우랑은 수소의 성기로 복용(?) 후에 손오공의 의형인 우마왕, 혹은 라비린토스(Labyrinthos)에 갇힌 미노타우로스 같은 힘이 샘솟을 듯한데, 역시나 그냥 고기안주다.
대중옥은 지역적으로 마장동과 가깝다. 이 특이한 메뉴들은 과거 인근의 도축장에서 공수된 값싼 부산물들을 재료로 삼아 ‘대중’적 음식으로 만든 것일 뿐 기괴한 취향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대중옥은 청계천 바로 옆 왕십리 뉴타운 재개발지에 있다. 전국의 희귀한 담수생물들이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마법의 어항 청계천 남쪽으로, 철거가 거의 완료되어 이 식당을 드나들던 이들과 그 터전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 대중옥은 섬처럼 남아 옛동네의 임종을 하고 있다.
철거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는 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며, 그들이 마침내 제 몸뚱이를 허물 때까지 그렇게 민초들의 형단영척(形單影隻), 딱 그 형상으로 말이다.
이병태(춘천교대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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