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과의 만남[고전은 숨쉰다]

인생이 복잡하고 힘들다고 느낄 때 가끔 이렇게 생각한다. 복잡한 인생을 간단하게 네 글자로 정리하면 무엇일까. 결국 생노병사 혹은 희노애락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정리를 하면 비록 잠시일지라도 마음이 초연해지면서 편안한 것을 느낀다. 만약 이 네 글자를 두 글자로 더 줄인다면? 결국 생사일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생에서 시작해서 죽음으로 가는 도정에 있다. 우리는 무덤으로 가는 도정에서 수 없는 도전과 선택에 직면한다. 그리고 이들과 싸움을 벌여야 한다. 비록 싸움을 전문적으로 하는 군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렇다. 인생은 결국 싸움이다. 정도와 크기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인생에서 자신이 직면한 문제와 싸움을 벌어야 한다.

일찍이 마오쩌둥은 “하늘과 싸우니 그 즐거움이 무궁하고 땅과 싸우니 그 즐거움이 무궁하며 인간과 싸우니 그 즐거움이 더더욱 무궁하다”라고 설파했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그렇지 않았다. 늘상 싸움을 회피만 했지 정면으로 부딪혀 싸움을 벌이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고 가끔 반성한다. 또한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었더라도 이겨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부터인지 한번 손자병법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이 책을 손에 집어 들고 읽지 못했다. 왠지 출세를 위한 얄팍한 실용서를 읽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 때문이다. 전략이니 전술이니 모략이라는 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로 결국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손자병법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천천히 하기로 하고 우선 ‘쯔끼다시’ 삼아 손자병법과 마주치게 된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아주 좋아하는 중국의 학자 중에 진커무(金克木)이라는 분이 있는데, 1912년 생으로 십 년 전에 돌아가셨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책을 서가의 아주 좋은 자리에 모셔 놓고 가끔 꺼내 읽는다. 그분의 글은 남자한테 뿐만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참 좋은데 말로는 설명할 수 없고 참 난감하다. 크게 보면 20세기 동서양의 문화와 철학을 주제로 한 다양한 경험과 통찰을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에세이 형식으로 아주 짧게 쓴 것들이다.

그분의 책 중에 연탁춘니(燕啄春泥)라는 정말 작은 책이 있는데 제목이 참 운치가 있다. 제목처럼 제비가 봄 진흙을 쪼듯이, 혹은 제비가 쪼아 놓은 봄 진흙처럼 짧은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봄이 돌아와 그동안 마음에 하나하나 간직해두었을 이야기들이다. 이런 그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읽을 때마다 의외의 소득에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그리고 긴 여운이 남는다. 좋은 차라도 있다면 차를 마시면서 그의 짧은 글을 읽고 있으면 정말 행복하다는 기분이 절로 들었다.

그의 전공은 본래 인도문화인데 북경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이후에도 죽는 순간까지 다양한 글을 쓰다가 88세의 일기로 돌아가셨다. 70세 이후에 컴퓨터를 배웠다는데 돌아가신 후에 그가 글을 쓸 때 사용한 손녀의 컴퓨터 하드를 조사해보니 여러 권의 책의 구상이 나왔다고 한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 세기 30년대에 꽤 유명한 시인이었으며, 여러 대학에서 다섯 개국의 언어를 가르치기도 했지만 한동안 뽕잎을 먹기만 하던 누에가 어느 순간 실을 토해내듯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하다가 만년에 정력적으로 글을 남긴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의 시나 전공 분야의 글은 내가 문외한인 고로 별로 읽지 못했지만 그분의 수필은 우연한 기회에 읽고 빠져들게 되었다. 한 때 이분의 ‘폐인’이 되어 그의 글이 자주 실리던 잡지에 새롭게 발표되면 만사 제치고 구해 읽고 주변 사람들에게 무작정 그분의 일화를 떠들어 민폐도 많이 끼쳤다. 이 자리에서 한 가지만 소개해보겠다.

젊은 날 그는 지방에서 올라와 지인의 소개로 어렵사리 북경대학 도서관에서 사서 보조원으로 잠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는 도서관 카운터에 앉아서 책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서고에 가서 책을 찾아 주기도 하고 반납한 책을 받는 단순한 일을 하였다.

하지만 단순히 그 일만을 한 것이 아니라 빌려 준 책이나 반납한 책을 일일이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빈 시간이 나면 그 책을 반드시 찾아 읽었다. 서고 속의 수많은 책 중에서 왜 저 사람은 그 책을 읽었을까 하는 무한한 호기심을 가지고.

하루는 한 문학 전공의 여학생이 오래된 잡지를 빌리러 왔는데 서고에 간 다른 동료가 책 찾는 시간이 길어져 그 여학생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마침 당시에 썼던 졸업 논문 원고를 가지고 와서 카운터에 올려 놓고 있었는데 오래된 잡지는 지도교수의 지적을 받고 참고하기 위해 빌리러 온 것이다. 그가 그 원고에 관심을 가진 눈치를 보이자 최고 학부의 그 여학생은 자신이 있었던지 보라고 건네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잠시 펼쳐보니 대부분 아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모두 다 아는 내용도 일정한 형식을 갖추면 대학의 졸업 논문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는 이야기다.

그가 이 이야기를 한 것은 대학도 나오지 않은 자신이 당시에 이미 대학 졸업생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말년에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고하면서 당시 책을 빌리기 위해서 건냈던 책 이름을 적은 쪽지로 자신에게 무언의 수업을 하고 간 수 많은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는 한편 호기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언급하면서 한 이야기다. 그는 젊은 시절 도서관에서 일한 1년 남짓한 짧은 기간이 일생 중 가장 공부를 많이 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한 노학자가 풀어놓는 그때 그 시절의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상태가 지나쳐 꿈 속에서 그분을 두 번 만난 일도 있고 급기야 진짜 한번 만나보겠다고 무모하게 중국에 찾아 간 일도 있었다. 결국 만나 뵙지는 못했다.

헌데 중국사상사로 유명한 런지위(任繼愈)라는 학자가 생전에 그를 두고 내린 짧은 인물평에 이런 말이 있었다. “병서에 싸움을 잘 하는 자에게는 가지 않는 길이 있으며 공격하지 않는 성이 있다는 말이 있다. 김공(金公)의 학문을 보면 병서를 잘 읽은 분이다.”

이 말은 원래 손자병법의 「구변」편에 나오는 말이다. 그의 글이나 학문의 어떤 부분이 가지 않은 길이고 공격하지 않은 성이었는지 지금도 잘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인물에 대한 병법을 동원한 이 묘한 인물평이 계기가 되어 손자병법에 대한 흥미가 엉뚱하게 솟았다.

그러고 보니 연암 박지원이 글쓰기와 병법을 연관시켜 서술한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이라는 글이 있다.

“글을 잘 하는 자는 아마도 병법을 잘 알 것이다. 비유컨대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요, 제목이란 적국이요, 고사(故事)의 인용이란 전장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요, 글자를 묶어 구절을 만들고, 구절을 엮어 문장을 이루는 것은 부대가 대오를 이뤄 행군하는 것과 같다. 운(韻)에 맞추어 읊고 멋진 표현으로 빛을 내는 것은 징과 북을 울리고 깃발을 휘날리는 것과 같으며, 조응이라는 것은 봉화를 올리는 것이요, 비유란 기습 공격하는 기병(騎兵)이요, 억양반복이란 맞붙어 싸워 서로 죽이는 것이요, 파제(破題)한 다음 마무리하는 것은 먼저 성벽에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요, 함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란 반백의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고, 여운을 남기는 것이란 군대를 정돈하여 개선하는 것이다.”

연암의 말에 비추어볼 때 그분은 확실히 병법에 능한 분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별다른 인 연이 없던 내가 어떻게 그의 글에 사로잡혔겠는가. 그가 글에서 뿐만이 아니라 실제 병법에 능한 분이었다는 사실은 뒤늦게 깨달았다. 앞서 그분을 만나러 중국에 갔다가 못 만났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전화통화는 나누었다. 미리 준비한 예의바른 말로 뵙기를 청했지만 그분의 완곡한 거절로 결국 만나지 못했다. 팔십 노인의 정중한 거절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아무튼 나는 결국 성을 공략하지 못했고 그분은 자신의 성을 잘 방어하셨다.

그는 한 책의 서문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은 일찍이 명예롭게 강호를 떠나겠다고 ‘금분세수(金盆洗手)’했는데 왜 책을 다시 내서 서문을 쓰고 있느냐 하면 관세음보살을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늙은 자신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고 아무리 거절을 해도 한 출판사의 여성 편집자의 거듭된 요청에 결국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 신세가 되어 결국 책을 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분은 수 십년 동안 곧 죽을 것이라고 온갖 핑계를 대고 곧잘 거절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여성 편집자는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아서 결국 책을 출판하게 만든 것이다. 이에 비해 나는 단 한 수에 무너져 결국 그분 살아생전에 만나보지 못했다. 무엇보다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준비가 부족했다.

타국에서 불원천리 찾아온 독자를 거절한 그분의 냉정함이 섭섭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분의 입장에서 헤아려보면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현명한 처신을 한 것이다. 말도 잘 통하지 않은 무모한 외국 독자를 만나 무슨 곡진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겠는가. 자신을 좋아하는 외국 독자를 만나 기분이 좋아 인증샷의 요구에 응하고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다음에 헤어지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이분과의 만남이 불발했다고 해서 아무런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손자병법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리고 거절을 잘 해야 된다는 것을 배웠다.

물론 손자병법을 읽는다고 병법에 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손자병법을 읽고 나서도 후배의 요구에 단호히 거절하지 못하고 맛도 없는 이 ‘쯔끼다시’ 같은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나중에 정말 맛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아예 ‘회’를 내놓지 않을 작정이다. 왜냐하면 ‘쯔끼다시’가 맛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그래도 견딜 만하지만 ‘회’마저 맛이 없다고 한다면 그 절망에서 어떻게 헤어 나올 수 있겠는가. 그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황희경(영산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