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나를 만나러 가는 길[치유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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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리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1. 한 마리의 귀뚜라미?

날씨는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한낮이라도 웃옷을 걸치지 않으면 서늘함이 느껴지는 계절인데, 할머니의 방문 앞에 귀뚜라미가 한 마리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꼼짝을 하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 마루를 손으로 살짝 두드려도 미동조차 없었다. 나는 그날 아픈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할머니를 찾아갔기 때문인지 그 귀뚜라미 한 마리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인기척을 느낀 할머니가 문을 열었다. “김선생이가? 안 들어오고 그서 뭐하노?” “귀뚜라미가 꼼짝을 안 하네요. 얼어 죽었을까요?” 나의 물음에 할머니는 크게 웃었다. 처음 듣는 웃음소리였다. 언제나 소리 없이 얼굴만 웃었는데, 그날은 크게 웃었다. 하지만 공기를 가볍게 날리는 웃음소리가 아니라 내 주변의 공기들을 무겁게 가라앉히는 웃음이었다.

“어제 밤에 그리 울더라. 그런데 니는 보이나? 나는 안 보여서 어디 간 줄 알았네. 인자 앞도 잘 안 보인다.” 할머니는 백내장으로 시야가 맑지 못하다. 밤새 울던 귀뚜라미가 방문 앞 마루에 있었지만,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할머니는 그렇게 큰 소리로 웃었던 것이다. 눈 앞에 있는 사물을 볼 수 없는 날이 올 때, 나도 그렇게 큰 소리로 웃을 수 있을까?

감기는 낫지 않고 있는데 날씨가 계속 추워지자 할머니의 눈에는 눈곱이 떨어지는 날이 없는 듯이 보였다. 그날따라 할머니의 눈에는 커다란 눈곱이 매달려 있었지만, 그마저도 전혀 감각을 못 느끼고 있었다. 나환자들의 친구로 불리는 폴 브랜드는 고통을 신이 준 선물이라고 했다. 폴은 오랫동안 한센인들을 돌보고 치료하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여 병이 깊어지는 줄도 모르는 그들을 보며 고통이 얼마나 큰 선물인가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통이 꼭 몸의 감각에 의해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견뎌야 하는 마음의 고통은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 탓인지 그날따라 할머니의 모습에서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가 없었다. 나날이 쇠약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바늘에 찔리는 것과 같은 아픔이 밀려왔다.

 

2. 고향의 가을?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상념에 잠겨 말없이 앉아 있었다. 침묵을 깬 것은 할머니였다. “김선생, 집에 뭔 일 있나?” “아뇨” “왜 말이 없노?” 나는 할머니에게 당신 때문에 내 마음이 너무 아파서 말을 할 수 없노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이상하게 당신의 고통이 나에게로 옮겨 와 내가 너무 아프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매주 당신을 마주 하고 앉는 이 시간이 이제 너무 힘들다고 투정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속였다. 웃으면서 “가을이 오니 심란하네요.”하며 가을 탓으로 돌렸다. “하이구, 니도 가을 타나?” “왜요? 저도 여자인데요.” 우리 둘은 쿡쿡거리며 웃었다. 그렇다. 할머니도 여자고 나도 여자이다. 이 세상 모든 여자가 마음속에 비밀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비밀이 불쑥불쑥 밖으로 나오려고 하면 수다스러워지거나 말이 없어지는지도 모른다.

“어머니, 제가 어릴 적에요, 나무가 요술을 부리는 줄 알았어요.” “왜? 나무가 니보고 뭐라카더나?” “그게 아니고, 나뭇잎이 색깔이 변하잖아요. 그것도 이상한데 어떤 것은 빨갛고 어떤 것은 노랗긴 한데 안 예쁜 것도 있고, 신기하잖아요.” “니는 그런 것도 아직 기억하나? 나는 그런 기억이 없다.” “옛날에는 기억이 다문다문 남아 있었던 것 같은데, 인자는 어릴 때는 없고 그냥 한 덩어리로 기억이 남아 있다.”

가을 하늘은 푸르고 맑기만 하더라

산천초목에는 붉은 물 든 단풍들이

장관이더라.

한 고개 내려와 보니

은행나무 잎에는

노리고도 노란 색깔 위에

황금빛을 나타내며

흐르는 잎마다 주워서 책 속에 넣던

옛 추억이 떠오르네.

뒤돌아보니 금수화꽃은

우리 한반도 지도처럼

차분하게도 피어 있더라.

온 들에서는 코스모스가 피었고

길에도 피어 색색가지로

자기를 나타내며

뽐을 내고 웃고 있는 그 모습이

교만해 보이더라.

-부분-

할머니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유난히 나무가 많고 꽃이 많았다. 계단을 한 칸씩 내려올 때마다 나무가 다르게 보였다. 초등학생이었을 때 할머니는 그 풍경이 좋아서 계단마다 서서 나무들을 둘러보았다. 때로는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다리 아픈 줄도 몰랐다. 얼마나 좋은지 심심하면 계단에 갔제.” 학교는 배움터이자 놀이터였다.

할머니 기억 속의 고향 가을은 황금빛이었다. 황금빛 은행나무, 나지막이 피어 있는 금수화(금당화) 등은 많은 시간이 지나도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자연의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기억이 있다. 시간의 벽 속에 갇혀 원래의 모습 그대로 기억되어 있는데, 할머니에게 고향의 가을은 변하지 않는 기억 중의 하나였다.

이러한 기억들은 잊혀지지 않고 그대로 지속되어 현재의 삶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아니면 삶의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해결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마쓰시타, 어머니 그리고 아들에 대한 기억은 할머니의 삶을 고통 속에 빠지게 했다면, 어린 시절의 고향에 대한 기억은 할머니에게 삶의 휴식을 주고 있었다.

 

3. 고통의 강을 건너?

처음 썼던 시에서 자연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이 밤도 뒹구르며/몸부림칠 때/눈물이 강이 되어/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면,에서 자연은 할머니에게 행복했던 시간을 되돌려주고 있었다. “꽃도 많고…. 가을이 되어도 코스모스는 있는 기라.” 60여 년 전에 피었던 코스모스는 할머니 집 마당 앞 공터에도 피어 있다. 그러나 할머니에게 코스모스는 같은 코스모스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치게 되는 문제들은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거나 그 의미가 퇴색한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기억이 있다면 그 기억은 고통이 되거나 행복이 된다. 할머니에게 기억은 고통이자 행복이기도 했다. 우리에게 기억이 없다면 삶은 어떤 양상을 지닐까?

살아가면서 생활의 규칙이나 법은 그대로 지키면 되지만 마음은 지킨다고 지켜지는 게 아니다.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또렷하게 각인되어 현재의 삶을 고통 속에 머무르게 한다.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내 마음이지만 내가 다스릴 수 없고, 자꾸 떠오르는 기억을 지울 수도 없다.

잃어버린 것, 가지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하며 마음이 슬퍼할 때, 나에게 남겨진 것을 생각하고 기뻐할 수 있다면 상처나 고통 같은 단어는 없어지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현재 남겨진 것보다 잃어버린 것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그럼에도 현재의 불행과 나의 고통을 인정하고 그것들의 면면을 들여다 볼 때 고통과 슬픔의 실체를 바로 볼 수 있게 된다. 진정한 부정이란 이런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부정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며 그 과정은 험난하다. 혼란과 고통의 바다에서 스스로 삶의 중심을 잡고 희망의 키를 돌려야 하지만, 당장 살아나가야 하는 시간들은 눈앞에 있고,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할머니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몸으로 낳은 두 아이를 떠나보내야 했고, 그 아이들을 생각하며 딸 하나를 가슴으로 낳아 키웠다.

눈을 뜨면 새벽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돼지우리를 치우고 닭을 기르며 계란을 팔아 생을 이어갔다. 아무도 상처 주지 않았지만 삶 자체가 상처가 되는 시간들이었다. 누구에게나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있지만, 스스로 받는 상처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침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처는 더 깊이 파고들어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런데 자신의 모든 것을 상실한 채 휘몰아치는 시간의 강을 건너 할머니는 이제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의 자연으로부터 쉼터를 발견하고 있었다. 9번 째 시에서 할머니는 비로소 행복했던 유년의 시간을 찾고 있었다. 할머니는 혼란과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이 누구였는지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4. 유년의 기억 속으로?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묻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길이 낯설고 힘들지라도 자신을 오랜 시간 동안 어둠속에 가두었던 고통과 상처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다면, 오히려 그 얼굴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자신의 모습이 고통 받는 타자의 얼굴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로 다가올 때, 상실했던 자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할머니는 지금 잊고 있었던 유년의 기억을 통하여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또 다른 자기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운동장 옆에는

전부 벚꽃나무가 줄을 서서

너무나도 아름답더라.

친구들과 사진 찍던

그 추억이 떠오르며

선생님과 기념촬영도 했건만

모교가 잊혀지지 않고

사무치도록, 꿈속에서도 그리워지네.

-부분-

할머니가 그리워하는 대상은 병과 타인의 질시 같은 오염된 기억이 아니라 순수하고 맑은 유년의 기억이었다. 고통과 상처는 우리가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들의 오만과 교만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우리는 고통으로 아파하고 잃어버린 것으로 절망한다. 그러나 고통과 상실로 다시 일어서기도 한다. 고통은 고통을 경험한 사람이 가장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은 우리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고통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이므로 마치 가뭄에 뿌리가 타들어가는 아픔을 이기고 싹을 틔우는 잡초처럼 우리를 강하게 단련시킨다. 할머니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아들을 떠나보내고 어머니를 여의는 고통과 슬픔의 강을 건너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첫발을 디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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