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해이 vs. 도둑적 해이 [피켓2030]

이진섭(자유기고가)

맴맴맴매~엠~

매미들이 목청이 터져라 울어댄다. 낮에도 밤에도 아침에 눈을 떠도 울고 있다. 매미들은 잠도 안자나. 어제 울던 그 놈들이 아직도 울고 있는 건가. 모르겠다. 내가 알게 뭐냐, 지들도 사람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데. 하긴 그럴 만도 하다. 7년을 땅 속에서 보내고 올라온 매미에게 지상에서 허락된 시간은 단 2주. 그들에겐 오직 짝짓기만 있을 뿐. 사람이 안중에 있을 리 없다.

그래도 그렇지. 연일 이어지는 불볕더위에 매미까지 종일 울어대니 짜증이 날 만도 하다. 뭐 어쩌겠는가. 자연이 언제 사람 사정 봐가면서 돌아가더냐. 화산 폭발도 지진 발생도 제멋대로 예측불허다. 쓰나미도 사람 봐가며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착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그냥 무심하게 다 쓸어버린다. 고3 수험생이 있는 동네라고 해서 매미가 조용조용 눈치 보며 울지 않는 것처럼. 자연은 이렇게 무심하다.

그런데 우리 곁에 자연 말고도 무심한 자들이 또 있다. 우리에게 유심(有心)하겠노라 약속한 자들, 즉 공직자들이 그들이다. 공직자들이 우리에게 무심한 것도 그냥 넘겨야 할까. 지들끼리만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박 터지게 싸우는 모습을 마치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며 짝을 구하는 과정과 같다고 치부하며 관심을 꺼도 될까. 하루에 38분 꼴로 한 명씩 자살을 하든 말든, 175만 명의 노인들이 뙤약볕 아래서 1kg에 46원하는 폐지를 주워 연명하든 말든, 배가 뒤집혀서 학생들이 죽든 말든, 중동에서 이상한 바이러스가 국내로 들어와서 곳곳을 들쑤시든 말든, 산업 현장에서 연간 2,000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목숨을 잃든 말든, 검사/간호사가 일터에서 폭언·폭력에 시달리든 말든, 그로인한 극심한 스트레스에 자살을 하든 말든, 밤낮을 가리지 않는 빚 독촉으로 사람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든 말든… 공공을 돌보는 일을 업으로 삼는 공직자들은 마치 자신이 자연인 양 무심하다.

그런데 얼마 전, 평소엔 이처럼 무심한 정부가 청년들의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시행하는 서울시의 정책엔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최근(2016년 8월) 서울시가 청년수당을 지급하자 기다렸다는 듯 보건복지부가 시정 명령에 이어 직권 취소 처분을 내린 것인데, ‘식물’ 정부가 명민한 촉으로 동물적 감각을 발휘하며 우리를 놀라게 했다. 여기서 직권 취소란, 쉽게 말해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청년수당 사업은 무효이고 이미 지급한 수당은 다시 환수하라는 의미다. 정부는 서울시의 청년수당 사업을 두고 ‘무분별한 현금 살포다’, ‘지급받은 돈으로 술을 마시는 등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다’, ‘국민이 낸 세금이 허투루 쓰일 수 있다’, ‘돈의 용처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아 애초부터 수긍하기 어려운 사업이었다’, ‘서울시가 돈 있다고 함부로 할 문제는 아니다’ 등의 이유를 들며 악착같이 달라붙어 흠집을 내고 있다.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다. “아차! 내가 그동안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청년들을 포함한 온 국민의 삶에 무심한 정부’,라는 그간 나의 생각은 맥을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것임을 깨달았다. 청년들에게 이렇게 지대한 관심을 갖고 깊은 우려를 해온 정부를 자의적으로 매도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꼼꼼하고 세심한 지적을 하는 유심(有心)한 정부를 무심하다고만 간주했으니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래서 나도 이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정부를 향한 유심한 마음을 담아 진지한 관심과 애정을 표하고자 한다. 나의 자의적 판단은 완전히 배제하고 오로지 정부 그대들이 제시한 논리에만 입각하여.
‘도덕적 해이’ 운운하며 청년들이 지급받은 수당을 술 마시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는데, 나 역시 여기에 동의한다. 그리하여 나는 그런 말을 하는 그대들이 속한 집단의 ‘도덕적 해이’, 아니 ‘도둑적 해이’를 걱정한다. 아무렴 6개월 동안 월 50만 원씩 받는 사람이 낭비하는 세금 액수가 국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너희 도둑놈들이 헤쳐 먹는 세금과 비교가 될까. 서울시에서 지급하는 청년수당 90억 원 전액이 음주에 쓰인다 해도 자원외교 비리 22조 원을 비롯한 수십조 원에 이르는 고관대작들의 그간 도둑질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다른 한편으로, 구직 청년이 6개월간 받는 수당으로 혹시 술을 마시진 않을까 걱정하면서 평생 세금으로 꼬박꼬박 월급을 타가는 부장 판사가 술을 처마시고 명백한 불법 행위인 성매매를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묻고 싶다.

돈 있다고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역시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니 한번 물어보자, 개**놈아. 지방정부가 청년들에게 현금을 살포한다 한들 중앙정부가 구제금융이란 명목으로 부실 은행과 기업에 꽂아주는 수십조 원의 대규모 현금 살포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 터.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법인에게 주면 현금 지원, 사람에게 주면 현금 살포인가. 나아가 현금 살포는 안 되고 현물 살포는 허용되는 것인지도 묻고 싶다. 우리가 낸 세금에서 나온 물대포 살포로 납세자를 혼수상태에 빠뜨리는 건 권장할 일이고, 청년들에게 지하철을 타거나 도시락으로 굶주린 배를 채우라며 현금을 살포하는 건 함부로 해선 안 될 짓으로서 지양해야 할 일인지.

그리고 돈의 용처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예산을 편성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하시니 나도 한 마디.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그대들에게 월급이 지급되는데, 그 월급의 사용처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렇게 말하는 그대들은 납세자에게 사용처를 제시하고 월급을 받아가고 있는가.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설마 술을 마신다거나 성매매를 할 목적으로 강남의 오피스텔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그대들의 말마따나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니 앞으론 현직 판사를 포함한 모든 공직자들은 매월 예상 음주와 성매매 횟수를 포함하여 자신이 받아가는 월급의 사용처를 납세자에게 제출해 주길 바란다.

그대들의 말이 다 맞다. ‘무분별한 현금 살포로 인한 도덕적 해이’, ‘돈의 용처가 명확하지 않아 애초부터 성립하기 어려운 사업’ 전적으로 공감하고 수긍한다. 담뱃세를 올린 첫 해인 작년(2015년)에 2014년 대비 3.6조 원이 추가로 걷혔다고 한다. 올해엔 2014년 대비 6조 원이 국고로 더 들어올 것으로 전망한단다. 우리가 이렇게 돈을 갖다 바치는데 어찌하여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빚만 늘어갈까. 도대체 우리가 낸 세금이 어디에 쓰이길래. 늘 궁금했는데 이번에 정부의 입장 표명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정부를 향해 무분별한 현금 살포를 한 탓에 이를 집행하거나 국가 행정을 돌보는 공직자들의 ‘도둑적 해이’가 심화한 것이라는 자성 아닌 자성이 내부로부터 흘러나온 것. 그대들이 내세운 논리가 맞는다면 조세 행정 역시 거둬들인 돈의 용처가 명확하지 않아 애초부터 성립하기 어려운 사업이다. 돈 있다고 함부로 할 일이 아니라는 그대들의 주장처럼 돈 있다고 함부로 세금을 납부할 일이 아니다. 세금을 거둬 수중에 돈을 쥐고 있는 자들이 그 돈을 어디에 쓸 줄 알고 우리가 감히 세금을 낼 수 있겠나. 그대들이 징수한 세금의 용처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니 우린 이제 납세의 의무로부터 자유다.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그대들이 카메라 앞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바다. 공무원인 그대들이 자발적으로 방송을 비롯한 각종 언론을 통해 세금 납부, 즉 그대들을 향한 우리들의 현금 살포 행위에 사실상 정당성이 없다는 근거를 조목조목 제시하며 커밍아웃을 해주셨다. 때마침 사법부에 몸담고 계신 판사께서도 온몸으로 나서 행정부의 발표와 보조를 맞춰 주시니 한층 호소력이 있었다. 무심한 줄로만 알았는데 남몰래 뒤에서 이런 세심한 배려를 해주시다니.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는 그대들을 보니 7년간 어두운 땅 속에 있다가 한여름에 양지로 올라와 잠시 머물다 가는 매미가 생각난다. 맴맴맴매~엠~.

사진출처 : www.flickr.com 참여연대.

사진출처 : www.flickr.com – 참여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