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 누스바움(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16. <혐오와 수치심>, 마사 누스바움(下)

 

유민석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 숨기고만 싶은 치부

 

인간은 누구나 취약하고 부족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걸 인정하는 것은 곧 자신이 부족하고 완벽하지 않은 불완전한 사람이라는걸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까봐 꼭꼭 숨기고 덕지덕지 봉합한다. 잡힐까 두려워 머리만 풀숲에 쳐박는 꿩처럼 그렇게 위장하고 은폐한다.

혹시라도 남들 앞에 자신의 이런 치부가 발각되거나 드러나기라도 하게 된다면, 많은 경우엔 강렬한 수치심이 동반되게 마련이다. 이런 수치심은 자존감을 무너뜨리리게 되고 온전한 인격을 형성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개인의 정체성과 인간 관계를 비롯한 삶의 전반에 위협을 초래하게 된다.

이처럼 수치심은 우리를 압도하면서도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 1947.5.6~)은 저서 『인간성으로부터 숨기: 혐오, 수치심, 그리고 법Hiding from Humanity: Disgust, Shame and the Law』(국역: 『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 조계원 옮김, 민음사, 1995)에서 이러한 파괴적인 감정인 수치심을 예리하게 분석한다. 본 글에서는 먼저 수치심에 대한 누스바움의 설명을 살펴보고, 그리고는 수치심이 법과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그리고 수치심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에 대해서 논의해보고자 한다

 

  • 편안한 자궁, 비극적인 출생

 

“자신의 약점이 노출되었을 때 생기는 고통스러운 감정”인 수치심은 개별 인간의 삶의 발달과정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형성된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수치심은 전지전능함과 완전함, 그리고 편안함을 바라는 유년기의 욕구 속에 이미 자리잡고 있다. 유아는 점차 성장하면서 자신의 유한성, 부분성, 거듭된 무력감을 깨닫게 되는데, 이 때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과 동시에 과도한 욕심과 기대가 두드러지는 존재라는 깨달음 안에 있는 일정한 긴장을 해소하는 일시적인 방법이 수치심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유아기에서부터 형성되는 수치심을 ‘원초적 수치심’이라고 일컫는다. 이 원초적 수치심은 불가피하면서도 다소 보편적인 감정이지만, 그만큼 위험하며 삶의 어느 단계에서는 극복되어야 할 감정이다. 그런데 어떤 외적인 계기로 인해 원초적 수치심을 제어하거나 극복하지 못하고 강화된 채로 존속된다면, 자신과 타인에게 매우 위험한 감정이 된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유아는 태아 상태에서 자궁 속에 있을 때는 불필요한 자극이 없고 자동적으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편안함과 완벽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출생의 순간부터 비극이 발생하게 된다. 엄마의 편안한 자궁과 달리, 세상은 유아에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온갖 고통스러운 자극과 매정함으로 가득차 있고, 돌봄 제공자는 항상 원할 때 자동으로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이런 풍경은 다양한 고전들 속에 그려지고 있다. 이를테면 출생을 거센 파도에 난파되어 낯선 땅위에 표류한 선원에 비유하는 루크레티우스의 시라던지, 노동할 필요도 없고 강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며 날씨는 따뜻하고 대지는 풍요로운 곡식들로 넘쳐나는 황금시대를 이야기하는 헤시오도스의 신화라던지, 인간이 둥근 모습을 하고 있고 힘이 엄청났으며 신과 겉이 강했다가 제우스의 저주를 받아서 둘로 갈라지게 되었다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신화 이야기는, 완벽한 세상인 자궁 안에 있다가 출생과 동시에 비극적인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 유아의 모습을 은유한다.

유아는 예전처럼 세상이 완벽하게 자기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따라서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전지전능하지 않고 결핍되고 부족한 인간이라는 깨닫게 되면서 원초적 수치심을 갖게 된다. 따라서 원초적 수치심은 완전한 자아 이상을 바라는 나르시시즘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들키기 않고 감추기 위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숨어버리고자 하는 방어적인 감정이다. 이런 원초적 수치심은 유아기 이후에도 잠복되어 있게 되며, 이제 부끄럽다고 여겨지는 특성들, 즉 부족하거나 결핍되거나 완벽하지 못하거나 의존적이라는 특성들은 수치스러운 것들이 되어 억압의 대상이 되고 파괴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 수치심을 옹호하는 사람들

 

그런데 수치심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덕적으로 잘못된 짓을 저질러 놓고도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해 사회가 무질서해지소 타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수치심은 좋은 감정이며, 심지어 사회가 법을 통해서 수치심을 주는 형벌을 권장할 필요마저도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공동체주의 사상가 아미타이 에치오니(Amitai Etzioni, 1929. 1. 4 ~)나 법학자 댄 케이헌(Dan Kahan)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케이헌은 노상방뇨를 한 사람에게 직접 길바닥을 솔로 북북 문지르게 한 처벌을 옹호하며, 성매매를 한 사람의 신상을 신문에 공개해야 하고 심지어 음주운전자거나 범죄자임을 알리는 표시를 자동차에 부착해야 하며 얼굴에 낙인찍는 형벌을 복원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이러한 수치심을 주는 처벌들은 범죄에 대한 강력한 억제 효과와 처벌 효과가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미혼모, 약물중독자, 범죄자 같은 일탈적인 사람들에 대한 이런식의 수치심 주기는 사회 질서와 도덕적 가치 구현에 매우 유용하기 때문에 권장되어야 할 좋은 수치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누스바움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이유를 근거로 수치심 처벌에 반대한다. 그 이유는 첫째, 수치심을 주는 처벌은 모욕을 주기 때문에 인간 존엄성을 해친다. 둘째, 수치심을 주는 처벌은 국가의 사법적인 절차가 아니라 인민재판이 된다. 셋째, 수치심을 주는 처벌은 잘못된 대상을 처벌하거나 처벌의 정도를 명확히 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 넷째, 수치심을 주는 처벌은 억제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대상을 소외시킴으로써 더 범죄로 몰아넣는 역효과를 지닌다. 다섯째, 수치심을 주는 처벌은 시민들을 사회적 통제 아래에 둔다.

 

  • 낙인찍히는 존재들

 

무엇보다도 이러한 사회적 수치심 처벌은 주로 역사적으로 억압당해온 집단에 부과되어왔다. 예컨대 옆에 있기만 해도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낙인찍히거나 수치심을 부여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특성들을 상기시키는 사람들은 낙인과 배제의 대상이 되곤 한다. 주로 사회적으로 비정상적이라고 간주되는 존재들, 예컨대 여성이나 동성애자, 범죄자 등이 그런 낙인과 수치심주기의 대상이 되어온 것이다.

누스바움은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형벌과 같은 스티그마나 여성의 치마에 대한 역사등의 고찰을 통해서, 불완전하고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집단들에게 수치심을 주어왔다고 들려준다. 예컨대 여성의 신체는 남성에게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에 성차별적인 사회는 여성들의 패션과 치마 길이를 통제해 왔으며, 범죄나 동성애자는 그 자체로 수치스러운 존재들이지만 겉으로는 그들의 그런 특성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표지를 얼굴에 문신으로 새겨넣음으로써 누구나 인식하게끔 자행되어왔다.

앞에서 원초적 수치심을 다룰 때 이야기됐던 것처럼, 주로 장애인이나 여성, 동성애자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비정상적이거나 약하고 불완전하다고, 즉 수치스러운 특성을 지녔다고 간주됨으로써, 원초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대상이 되어 투사되는 것이다. 그런 낙인을 부여함으로써 그들과 다른 나는 정상적이며 완벽하다고 위안을 삼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야한 옷을 입다니 천해보인다”, “니가 짧게 입고 돌아다니니 그런 일을 당하지”같은 ‘피해자 비난하기’victim blaming나 ‘창녀 수치심주기’slut shaming를 생각해보자. 여성의 몸을 드러내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으로, 경박한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나이든 여성이 예쁘게 꾸미는 것도 수치스럽고 주책맞은 일로 취급하기도 한다. 반면 남성들의 경우엔 감정을 드러내거나 눈물을 보이거나 약해보이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것, 여성스러운 것이므로 수치스러운 것이기에 억누르라는 문화 속에서 성장한다.

누스바움은 이렇게 감정이나 친밀성을 억누르면서 수치스럽게 여기는 이런 사회에서는 남성들이 솔직한 감정의 표현과 타인과의 감정 교류나 공감과 연민의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을 공산이 크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당연히 여성적인 것에 대한 비하의 맥락 안에 놓여 있기에 ‘여성혐오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여성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욕망, 여성이 자신의 통제 밖에 놓여 있는 독립적인 개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통제되지 않는 여성을 향해 분노와 적대를 표출하는 것이다.

 

  • 좋은 수치심도 있을까?

 

이처럼 수치심은 신뢰할 수 없고 매우 위험한 감정이며, 특히 그것이 사회적으로 억압당해온 집단에게 부여될 경우엔 더더욱 위험한 낙인이나 예속으로 기능할 위험이 있다. 그런데 좋은 수치심도 있을까? 누스바움에 따르면 도덕적인 분개나 도덕적 반성에서 기인하는 수치심이나, 아니면 성취한 목표에 대한 열망의 독려 차원에서의 수치심의 경우엔 어쩌면 위에서 언급한 차별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수치심에 비해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이러한 수치심을 ‘건설적 수치심’ 또는 ‘생산적 수치심’으로 일컫는다. 예컨대 작가이자 활동가인 바버라 에렌라이히(Barbara Ehrenreich, 1941. 8. 26~)가 자신의 저서에서 이야기한, 노동자들이 극심한 빈곤과 주거 및 고용 불안, 열악한 노동 조건에 시달리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에 무관심한 탐욕스러운 미국 사회를 향해 수치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변한 것과 같은 수치심이 그런 종류의 건설적인 수치심일 수 있다.

누스바움은 이러한 수치심은 누군가를 낙인찍지 않기 때문에 괜찮은 수치심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런 도덕적 반성을 일깨우는 건설적 수치심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첫째,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규범에 호소해야 하며, 둘째, 나르시시즘(완벽한 자아 이상에 대한 사랑)적인 요소가 없어야 한다고 경고한다. 수치심은 자칫하면 비정상에 대한 낙인과 배제로 기능하기가 쉽기 때문에, 이런 수치심의 경우에도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 수치심과 혐오가 없는 사회

 

수치심을 주지 않는 사회를 만드려면 어찌해야 할까? 누스바움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취약한 비정상성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 1922. 6. 11~1982. 11. 19)의 사회학적인 논의를 끌어들여 인종, 장애, 계급, 지역, 학벌, 외모, 성별, 성적지향 등에서 모두 완벽한 ‘정상적인’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또한 타인의 보살핌을 필요로하고 서로 상호의존할 수 밖에 없는 존재다. 무엇보다도 나이가 들면 누구나 노인이 되고 장애인이 되며,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다. 물론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며, 자신의 이런 취약성과 불완전성을 숨기려하고, 이를 환기시키는 사람이나 집단에게는 수치심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낙인을 찍고 모욕을 준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인간의 취약함과 인간다움을 인정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호해주는 사회다. 이 점에서 그녀는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성과 상호의존성, 그리고 다양한 다원성을 인정하는 존 롤즈(John Rawls, 1921. 2. 21~2002. 11. 24)식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옹호한다. 롤즈에 따르면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는 공공복리 같은 목적을 이유로 수단화 되어서는 안되며, 우리는 서로 타인의 종교, 세계관, 생활방식과 같은 ‘포괄적 교설’(comprehensive doctrin)을 존중해줘야 한다.

누군가는 동성결혼이 도덕적이나 종교적으로 옳지 않으며 수치스럽다고 생각하거나, 여성의 자유로운 옷차림이나 성적인 표현이 도덕적으로 문란하고 수치스럽고 정숙하지 못한 일이라고 통제하고 싶어할 수도 있다. 그런 포괄적 교설은 개인이 가질수는 있지만, 그것이 사회의 법과 제도의 기초가 되어서는 안된다. 특정한 누군가의 세계관이나 종교가 정치나 법의 영역에 들어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롤즈는 그런 모욕과 수치심은 자유주의가 보장하고자 하는 시민의 존엄성과 배치된다고 보았으며, 이를 중요한 문제로 보았기 때문에 ‘자존감의 사회적 기반’(social base of self-respect)가 정의로운 사회가 신경써야할 가장 중요한 기본적 사회재(primary social goods)라고 이야기했다.

롤즈의 이런 자유주의는 누스바움의 수치심에 대한 주장과 공명한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타인을 그렇게 통제하고 싶어하는 그런 도덕관이나 세계관은,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열등함을 참지 못하는 원초적 수치심이 잘못된 사회적 편견에서 강화된 경우일 수 있다. 누스바움은 이처럼 법이나 제도에 수치심이 들어와서는 안되며, 그럴 경우 낙인에 취약한 사회적 약자들이 주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누스바움의 말처럼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존재이며, 타인의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서로 다른 차이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상호존중과 존엄성을 구축하는 자유주의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다시 말해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Avishai Margalit, 1939. 3. 22~)의 주장처럼 모욕을 주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수치심과 혐오로부터 보호받는 사회를 만드는 길이지 않을까.

마사 누스바움(上)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15. <혐오와 수치심>, 마사 누스바움(上)

 

유민석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페미니스트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 1947.5.6~)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철학적 작업을 일구어온 철학자이다. 그녀의 관심사는 주로 고대 철학, 정치철학, 페미니즘, 윤리학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녀가 연구한 주제의 일부만을 거론해봐도 장애인, 동물에 대한 윤리, 생명윤리, 시민 교육, 전지구적인 사회 정의에까지 걸쳐 있다. 특히 그녀는 인간의 취약성에 대한 고찰, 혐오나 수치심 같은 인간의 감정과 정동에 대한 연구, 그리고 여성철학에서는 여성의 자율성이나 성적 대상화나 성노동에 대한 연구 등으로 유명하다. 사실 이 모든 철학적 문제의식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철학적 물음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녀의 대표적인 저서중 하나인 『인간성으로부터 숨기: 혐오, 수치심, 그리고 법Hiding from Humanity: Disgust, Shame and the Law』(국역: 『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 조계원 옮김, 민음사, 1995)에서는, 우리를 지극히 취약하게 만들면서도 압도적으로 휘감아버리는 대표적인 감정인, 혐오와 수치심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혐오는 페미니즘이 많은 관심을 두는 주제였다. 줄리아 크리스테바(1941.6.24~)혐오(aversion)에 대한 고민이 그러하고, 마사 누스바움의 혐오(disgust)에 대한 고민이 그러하다. 이 글에서는 누스바움의 수많은 저서들 중에서 ‘혐오’와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다룬 저서인 『혐오와 수치심』을 중심으로 그녀의 혐오에 대한 사유를 전달해보고자 한다. 먼저 감정(emotion) 일반에 대한 누스바움의 논의를 살펴본 후에, 혐오라는 감정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하겠다.

 

  • 감정의 비밀

 

마사 누스바움은 먼저 두려움이나 분노, 혐오와 같은 감정들은, 배고픔이나 목마름 같은 욕구(appetite) 또는 우울함이나 짜증같은 기분(mood)과는 다르다고 설명한다. 감정은 욕구나 기분과는 어떻게 다른걸까? 먼저 욕구는 내 의지와 다르게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온다. 예를 들어 피곤함이나 배고픔 같은 욕구를 생각해보자. 이 욕구들은 인간이 살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본능에 가까운 것들이다. 그러나 감정은 보다 섬세한 측면이 있다. 예컨대 남편의 가정폭력을 두려워하는 여성은 고통이나 무력감 같은 기분을 동반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어떤 대상, 그리고 그 대상에 대한 믿음과 평가를 동반한다.
먼저 감정은 대상(object)을 갖는다. 북핵과 전쟁에 대한 두려움, 최순실과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 가족에 대한 사랑이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연민을 생각해보자. 이 모든 감정들은 각각 구체적인 명확한 대상들을 가지고 있다. 불법촬영물에 대한 여성들의 공포와 두려움은 불법촬영물이라는 대상을 가지고 있으며, 성범죄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분노는 성범죄라는 대상을 향한다. 철학자들은 이런 대상을 갖는 감정의 특성을 지향성(intentionality)이라고 설명한다. 마음은 마음 바깥의 어떤 대상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대상 없이 발생하는 우울함 같은 기분과 달리, 연민이나 혐오 같은 감정은 구체적인 대상을 향한다.
감정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바로 믿음(belief)이 감정의 본질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누스바움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가져온 페르시아인들에 대한 아테네인들의 분노를 예시로 든다. 아테네인들은 페르시아인들이 아테네를 약탈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향해 분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여성은, 남편이 자신을 죽이거나 상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해 두려움이 증폭되는 것이다. 아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의 슬픔을 떠올려보자. 그 어머니 역시 아이가 사망했다는 믿음으로 인해 슬픔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이 믿음은 사실관계가 틀린 거짓된 믿음일 수도 있다. 예컨대 아이가 사망하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거나 착오에 의해 그런 말을 전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틀린 믿음을 갖게 되었다 하더라도 어머니의 슬픈 감정에는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믿음은 근거없는 부당한 믿음일 수도 있다. 예컨대 화성 외계인의 침공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화성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사람의 믿음은 분명 근거없는 믿음일 것이다. 또한 우리는 칫솔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두려움을 갖지는 않는다. 잃어버리면 사면 되기 때문이다. 치아 농양이라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 역시 부당한 믿음이라고 누스바움은 설명한다. 이 질병은 조기에 발견되면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생소한 이 질병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누스바움에 따르면 감정에는 대상에 대한 가치평가가 들어있다. 예컨대 친구나 가족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생각해보면, 친구나 가족이라는 존재는 한 개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그 슬픔이 극심할 수 밖에 없다. 반면 우리는 먼 외국인의 사망 소식에는 그렇게 별다른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 예컨대 중국에서 지진이 발생해서 사망한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슬픔을 느끼진 않을 것이다. 동일한 감정도 대상에 대한 가치평가에 따라서 그 양상이 다른 것이다. 마찬가지로 외모에 대해 많은 가치평가를 두고 있다면 외모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에 대한 분노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감정의 특성, 즉 감정이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도 감정이 비이성적이거나 비합리적인 것이 아닌, 합리적인 이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시사한다. ‘믿음’은 플라톤의 저서 『메논』이나 『테아이테토스』에서 보듯이, ‘앎’과 함께 전통적으로 중요한 철학적인 인식론의 주제였기 때문이다. 또한 믿음에는 거짓된 믿음이나 부당한 믿음이 있다는 것은 이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역시 간파했던 사실이였다. 예컨대 페르시아인들을 향해 분노하는 아테네인들의 경우, 사실은 아테네에게 해악을 끼친 사람들은 페르시아인들이 아니라 스키타이인들이였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아테네인들은 거짓된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혹은 페르시아인들이 고의가 아닌 미비한 피해를 끼쳤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아테네인들은 정당화되지 않는 근거없는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이처럼 믿음이 감정에 필수요소라는 누스바움의 논의는, 감정에 있어서 판단이나 이성의 중요성을 시사해준다. 아테네인들은 가짜뉴스를 듣고서 부당하게 페르시아인들에 대해 혐오나 분노의 감정을 가지게 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쥐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소한 것에 두려움을 갖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세네카 또한 식당에서 상석에 앉지 못했다고 화를 냈던 자신을 반성했다고 한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누스바움은 따라서 감정에 있어서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교통체증에 대해 쉽게 화를 내는 사람, 혹은 어둠을 무서워하는 아이에게는 감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플라톤은 이미 유명한 영혼 삼분설에서, 영혼이 이성과 기개 또는 분노(thymos), 그리고 욕구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고 말한 바 있다. 플라톤은 이를 각각 몸의 머리, 가슴, 배의 부분과 연결시킨다. 오로지 본능에만 충실하는 욕구와 달리, 기개는 이성의 도움을 받아 이러한 욕구에 저항하도록 사용될 수 있다. 물론 기개가 욕구와 한편이 되어 이성을 따르지 않게 될 수 도 있다. 감정이 욕구와 다르며, 이성의 인도를 받기도 하고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이미 고대철학에서도 사유되었던, 오래된 인류의 지혜인 것이다.

 

  • 혐오스러운 혐오

 

우리는 무엇을 혐오하는가? 누스바움은 우리가 원초적으로 혐오하는 대상이 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우리는 종이, 금잔화, 모래는 혐오하지 않지만, 신체 배설물과 부패한 음식은 혐오한다. 치즈는 냄새가 고약하다고 해서 혐오하지 않지만, 대변은 혐오한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나’라는 속담처럼, 심지어 대변과 형태마저 유사한 된장은 혐오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설탕은 혐오하지 않지만, 바퀴벌레에서 설탕맛이 난다 하더라도 혐오할 것이다.
앞에서 감정은 대상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혐오의 대상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에게서 떨어져나간 부산물들(예컨대 토사물이나 대소변)이거나, 인간의 불완전성과 동물성을 떠올리게 하는 물질들(동물이나 시체)이라는 것이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이러한 대상들은 인간에게 불완전성과 유한성, 동물성을 환기시키면서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혐오의 대상들은 두 가지 법칙, 즉 ‘접촉의 법칙’과 ‘유사성의 법칙’을 따른다. 먼저 접촉의 법칙이란, 혐오의 대상이 다른 대상과 접촉될 경우 다른 대상마저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예컨대 죽은 바퀴벌레가 떨어졌던 쥬스 잔의 경우, 우리는 그 쥬스 잔이 아무리 깨끗하게 세척되었다 하더라도 기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염병이 있는 사람이 입었던 옷 역시, 살균 소독되어 전염병과 무관하게 세탁되어 있다 하더라도 기피한다는 것이다. 또한 유사성의 법칙이 있다. 즉 원래의 혐오의 대상과 유사한 다른 대상 역시 혐오하게 되는 법칙이다. 예컨대 개똥 모양으로 만든 쵸콜렛의 경우, 왠지 꺼림칙하게 된다. 살균한 파리채로 휘저은 수프의 예시도 그렇다. 만일 파리채로 수프를 휘저었다면 그 수프 역시 마시기가 힘들 것이다. 새로 산 빗으로 휘저은 음료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 빗이 공장에서 막 나온 새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으로 휘저은 음료 역시 마시기가 거북할 것이다. 이런 예시들은 혐오가 작동하는 법칙들을 잘 보여준다.
다음으로 누스바움은 혐오와 위험, 혐오와 비정상, 그리고 혐오와 분노를 구분한다. 예컨대 독버섯은 위험한 대상이지만, 우리는 독버섯을 혐오하지는 않는다. 또한 돌고래는 바다에 사는 포유류이기 때문에 비정상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돌고래를 혐오하지는 않는다. 혐오의 대상들은 이것들과 달리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인간의 유한성과 동물성을 환기시키는 존재들로, 나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초래하는 것들이다.

 

  • 혐오스럽다고 감옥에 보내야 할까?

 

누스바움은 다른 감정들과 달리 혐오는 특히 매우 불안정한 감정이기 때문에, 법이나 도덕의 판단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따라서 혐오를 불신의 눈초리를 가지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혐오를 옹호하는 철학자들과 법학자들을 비판한다. 예컨대 생명윤리학자인 레온 카스(Leon Kass, 1939.2.12~)는 혐오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면서 특정한 혐오감이 인류의 지혜를 드러내는 감정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명복제에 대한 직관적인 거부감 같은 것이 그것이며, 그런 혐오는 생명복제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인류의 지혜의 지표라는 것이다. 그러나 누스바움에 따르면 혐오는 편견에 기반한 감정이 되기 쉽기 때문에, 인종간 결혼이나 동성결혼법에 대한 혐오로 악용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억압과 박해에 이용되어왔다고 주장한다.
누스바움은 앞에서 다루었던 배설물이나 동물의 시체 같은 ‘원초적 혐오’와, 동성애자나 장애인에 대한 혐오 같은 ‘사회적으로 매개된 혐오’를 구별한다. 원초적 혐오는 위생과도 관련되어 있고 진화의 산물일 수 있기에 그렇게 위험하지 않으며 인간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반면, 사회적으로 매개된 혐오의 경우엔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같이 매우 위험한 혐오다. 특히 사회적인 혐오는 주로 해당 사회의 문화적 편견의 영향을 받으며, 주로 그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투사적인 성격을 가진다. 원초적 혐오가 사람에게 귀속되어 그 대상이 혐오하는 자의 유한성과 동물성을 환기시킨다는 이유로 낙인이 찍히고 혐오를 당하는 것이다. 예컨대 동성애자 남성은 이성애 남성을 오염시킬 수 있는 전염성을 지닌 존재로 취급당하기 때문에 기피당하며, 역사적으로 여성 역시 역사적으로 유약하고, 끈적거리며, 유동적이고, 냄새나는 존재로 취급당해 여성의 몸이 오염된 불결한 영역으로 상상되어 왔다고 설명한다.
이런 사회적 혐오 혹은 혐오의 정치는 동성애자들의 성관계를 처벌했던 ‘소도미 법’(Sodomy Law)나 군대 내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을 금지했던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 정책 등에도 반영되어 있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가 공적인 영역인 법과 정치로 침투한 것이다. 누스바움은 존 롤즈(1921.2.21~2002.11.24)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따라, 공적인 영역에 사적인 감정이나 선입관이 진입해서는 안되며, 존 스튜어트 밀(1806.5.20~1873.5.8)을 따라 오로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 행위들만 법적으로 처벌해야 하지,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동성애자들의 성관계나 알콜 중독, 약물 중독을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해악 원칙’(harm principle)을 지지한다. 해악 원칙이란 오로지 타인에게 해악을 낳은 행위만이 도덕적으로 그른 행위이며 법적으로도 제재할 수 있는 행위라는 원칙이다. 이러한 누스바움의 주장은 결국 ‘해악 원칙 대 불쾌 원칙이냐’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불쾌 원칙’(offense principle)이란 해악을 낳지 않았다 하더라도 처벌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철학자 조엘 파인버그(Joel fineberg, 1926.10.19~2004.3.29)가 주장한 원칙이다. 누스바움은 혐오를 법이나 도덕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불쾌 원칙을 당연히 반대할 것이다.
예컨대 지적 장애인이나 게임 중독에 걸린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불쾌감 혹은 혐오감을 줄 것이다. 온 몸에 문신을 한 사람은 어떤가? 보기만해도 혐오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보기에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게임 중독에 걸린 사람이나 문신을 한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도 되는 것일까? 뚱뚱해서 불쾌감을 주는 사람은, 특이한 헤어 스타일과 옷차림을 한 사람은 또 어떤가?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인권탄압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과거에 그런 적이 있었다. 부랑자들, 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성들, 장발을 한 청년들을 단속하고 적발한 역사가 있었다. 아직도 군형법에는 동성애 장병들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존재한다.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많은 이들의 반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누스바움의 혐오에 대한 통찰을 따라 혐오는 많은 경우 사회적인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며, 사회적 약자들을 탄압하는 도구로 악용되어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혐오는 잘못된 믿음에 기반한 이성적이지 않은 편견인 것이다.

베티 프리단(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14. <여성성의 신화>, 베티 프리단(下)

“두려움을 떨치고, 평등을 이룩하기 위한 변화로 나서자 ”

 

김은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 프로이트와 마거릿 미드를 비판하다

 

“프로이트의 사상은 교육받은 현대 미국 여성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또 다른 초자아를 만들었다. 바로 여성들로 하여금 과거의 이미지에 사로잡히게 하고, 여성의 선택과 성장을 방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게 하는 새로운 ‘당위성’의 폭정이었다.”

 

그렇다면 이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베티 프리단은 미디어의 영향력을 짚으며, 대부분 남자로 이루어진 여성 잡지 편집자가 행복한 가정주부의 이미지를 이상적인 모습으로 선전하고 전파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신화 형성에 가장 크게 일조한 것은 학계의 이론이었다. 프리단은 특히 대학교육의 교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두 명의 사상가를 겨누어 비판한다. 그 두 사상가는 지크문트 프로이드와 마거릿 미드이다.

페미니즘 운동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중반까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여기지 않는 편견이 여전히 존재하고, 과학 교육 민주주의 정신에 의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 편견의 이론적 근거를 프로이트주의로 삼기 시작한다. 프로이트 심리학은 여성 해방 운동 이데올로기의 한 부분이고, 해방된 여성의 관념에 기여했기에, 여성들은 오래된 굴레를 반박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시몬느 드 보부아르(1908. 01. 09 – 1986. 04. 14)도 지적하듯이, 프로이트의 이론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권위를 부여하여 여성의 본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베티 프리단은 『여성성의 신화』에서 프로이트 이론의 시공간적 한계를 지적하며, 그 이론을 상대화할 것을 주장한다. 프로이트는 여성성의 본질에 남근 선망(penis envy)이라는 이름붙인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빅토리아 시대의 빈이라는 지역에서 계급적으로는 중상층 여성 환자를 남성의 시선에서 관찰한 산물이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이론은 실제로 그가 왜 그런 식으로 그 시대의 여성을 진단했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무비판적으로 프로이트가 설명한 여성성을 마치, 초시공간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프로이트가 보편적인 인간성의 특질로 묘사했던 것은 19세기말 어느 유럽 중산층 남자와 여자의 특성”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프로이트 이론의 주요한 전제가 자기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안나 프로이트에 따르면, 프로이트가 자라난 가정 환경에서 그의 어머니는 아름다웠고 자기 나이보다 두 배나 많은 남자와 결혼하여 평생 복종하며 살았다. 프로이트의 아버지는 유대 집안의 독재적 권위로 집안을 다스린다. 프로이트의 어머니는 이러한 환경에서 첫 아들 지크문트를 특별히 사랑한다. 프로이트 역시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를 질투했던 경험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고, 이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부른다. 프로이트 자신이 어머니의 태양이기에, 프로이트의 욕망에 따라 집안은 배치된다. 누이의 피아노 연습 소리가 연구 방해된다고 투덜거린 후, 피아노가 치워지고 음악가의 꿈을 소망한 누이의 기회는 사라진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상황을 여성의 입장으로 보지 않고, 남자의 지배를 받는 것을 여성의 본성으로 여긴다. 프로이트의 부인인 마르타 역시, 그의 소망대로 사랑스런 어린아이와 같이 자랐고, 그러기에 프로이트가 결혼한다. 그는 배우자의 미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젊고 귀여운 애인, 언제가지나 늙지 않고 한주 정도만 늙은 것 같아야 하며, 모든 신랄함의 흔적을 재빨리 지울 수 있는 여성”이어야 한다. 결국 프로이트의 이론은 소년의 눈으로 시작되어 결국엔 남자의 눈으로만 설명되는 것이다.

프리단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미국에서 프로이트 이론의 무비판적으로 수용된 까닭에 관해, 현실에 나타나는 문제에 대한 쉬운 해결책을 바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실상 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로이트 심리학은 인간의 이상행동에 대한 분석의 틀 그리고 전쟁의 상흔이 빚어낸 고통에 대한 치유로 제시되고, 문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는 안전한 도피 통로이자, 미국의 새로운 종교가 된다. 이에 따라 여성성의 신화는 “이른바 전문가들의 판단이나 대중잡지를 통해 미국 여성의 생활”에 파고든다. 과학적 종교인 프로이트의 이론은 여성의 역할에 관한 이론의 근거로 자리 잡고 ‘여성성의 신화’를 공고히 하면서, 여성을 그 스스로는 미래를 개척할 수 없는 가부장제에게 보호받아야 할 유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단정한다.

프리단은 마거릿 미드 역시 문화 인류학을 프로이트 이론의 틀에 끼워 맞추어 연구했다는 점에서 비판한다. 마거릿 미드는 “왜 우리는 기술이 발달했는데도 미국의 여성들은 석기 시대로 후퇴하는가”라는 의문을 품는 글을 신문에 실지만, 본인의 저작이 그러한 풍토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미드는 인류학 연구의 성과를 통해 프로이트 이론을 보편인류의 특성으로 자리잡게 하는데 일조하고, 남성성과 여성성의 기원을 성립시킨다. 생산성의 측면을 남성적인 것, 자궁을 수동적 수용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즉, 미드는 현대의 상태나 과거 상태를 당위적 상태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프리단은 미드의 이론을 비판하며, 아기를 갖는 것이 인간성의 성취의 절정이고, 생식이 인간 생활의 중요하고 유일한 것이라면, 왜 자궁 숭배가 없는지 되묻는다.

프로이트의 여성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마거릿 미드의 관점을 잘못 받아들인 결과, 50-60년대 미국 여성의 이미지는 한정적인 협소한 틀거리 안에 갇히고 말았다. 교육자들은 이러한 이미지가 ‘정상적인 여성상’이라고 말하며 여학생들 에게 천체를 관찰하거나 새로운 과학 기술을 개발하라고 격려하는 대신에 좋은 아내와 어머니가 되도록 교육한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자신의 능력을 부정하고 다양한 삶의 기회를 스스로 제한하는 결과를 맞는다.

 

  • 가정이라는 이름의 안락한 포로수용소

 

결국 이러한 신화는 미디어가 아름답게 포장하는 안락한 미국 중산층 가정이라는 이상적 이미지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프리단은 이 가정을 안락한 포로수용소라고 주장한다. 가정을 포로 수용소로 설명하는 이유는 실제로 포로수용소에 갇힌 사람들과 가정 주부가 유사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단은 “정신 분석자이자 교육심리학자인 브루노 베텔하임이 1939년 다하우 집단수용소와 부겐발트 집단 수용소에서 죄수로 수감되어 있을 때 했던 연구”를 언급한다.

나치 포로수용소에서 수감자는 수용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자신의 죽음에도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포로 수용소는 수감자들을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도록 강요하고 개성을 포기하도록 하면서 특성이 없는 존재로만 살아가도록 강요한다. 수용소는 수감자에게 수용소 세계만을 유일한 현실로 만들고 원초적인 육체적 욕구만을 충족시키도록 한다. 이로 인해, 수감자들은 스스로 결정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잊어버린다. 이 조건은 미국 주부들에게 자아 정체성 상실시키는 조건과 비슷하다. 포로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주부들도 새로운 상황에 대항하는 능력이 사라지면서, 수동적인 존재로만 머물면서 주체적 의식을 갖지 않는다. 이는 약한 자아만을 유지한 채 관계성에서 단절된 이기심에 곧장 빠질 뿐 아니라, 적극적인 목적이나 야망, 이익을 잊어버리고 추상적인 사고에 대한 무력하며, 바깥세상을 향한 활동에서 후퇴한다.

또한, 베티 프리단은 50-60년대 아이들의 정서장애가 증가하는 현상과 가정이란 포로수용소에 갇힌 주부들의 상관관계를 지적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어린이 가 여성성의 신화에 의해 무기력해진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상호파괴적인 공생으로 나아가고, 이는 다시 여성성의 신화를 통해 악순환으로 구축된다. 특히 소녀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소녀들은 학교와 현실에서 치루는 시험을 기피하고, 결혼하면 결국엔 진정한 목적과 만족을 이룰 것이라는 약속에 순응하면서 이른 나이에 결혼하도록 선동하는 사회에 따른다. 소녀들은 어린애 수준에 멈춘 채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이러한 어머니에게 자라난 아이 역시 개성을 갖춘 존재로 자라기 보다는 환상 속으로 머물 뿐 아니라, 그 딸 역시 또 다시 최악의 희생자가 된다. 프리단은 다음과 같은 예시를 제시한다. 남들 보기에 번듯하고 부유한 삶을 살며 남편이 대기업의 높은 직위에 있는 가정 주부는 딸을 자신에게 수동적으로 의존하게 하고 자기와 동일시하게 만든다. 남편은 바쁘다는 명목하에 사회적 지위와 자신의 직업적 성취에 몰두할 뿐이다. 그럴수록 가정주부는 아이들의 삶에 집착하고, 특히 이 주부에게 딸은 일종의 사물, 즉 또 다른 자아 의탁의 대상에 불과하다.

“가장 나쁜 것은 제가 제 배로 낳은 아이들을 질투한다는 것입니다. 전 아이들을 미워합니다. 아이들에겐 앞으로 자기들의 삶이 있지만, 전 이미 끝나버렸기 때문입니다.”

프리단은 이렇게 수동적인 의존에 갇힌 주부와 아이들 사이에 통제할 수 없는 폭력이 증가하는 징조를 목격한다. 해결책은 어머니들에게 아이들을 더 사랑하라고 촉구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여성들로 하여금 가정과 아이들에게 완전히 헌신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여성성의 신화의 역설을 직시하게 해야 한다. 또 한 여성들이 더 여성적이 되도록 촉구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이는 아이들과의 관계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 아이를 더 수동적으로 성장시키는 의존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여성이 자기 능력을 완전히 사용하도록 사회는 용인해야 하며, 여성이 완전한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고무해야 한다. 이는 오로지 여성성의 신화를 일소함으로써만 가능하다. 프리단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여성은 남성의 성적인 존재이자, 자식의 어머니로서만 존재할 수 없다. 남편이나 아들을 통해 삶의 목적을 이루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성취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이 필요하다. 이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풍기는 병적 징후로부터 벗어나는 첫 걸음이 된다.

 

  • 주입된 여성성에서 벗어나, 2세대 페미니즘의 포문을 열다

 

프리단이 『여성성의 신화』에서 전달한 메시지는 여성운동의 기폭제가 된다. 1966년 폴리 머레이, 케이틀린 클라렌바흐, 도로시 헤너 등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30명의 여성들이 전미여성기구(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 NOW)를 설립한다. 창립 멤버중 한 명인 프리단은 NOW의 창립 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이 창립 선언문은 “모든 여성을 위한 진정한 평등”을 요청하고, “평등하고도 경제적인 성장”에 대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할 것을 요구한다.

프리단은 미국 최대의 여성운동 단체인 전미여성기구(NOW)를 비롯, 전미낙태권행동리그(NARA), 전미여성정치회의(NWP)의 창립자가 되어, 낙태, 출산 휴가권, 승진과 보수에서의 남녀평등을 위한 운동을 펼친다. 『여성성의 신화』의 저 자에서 더 나아가 페미니즘 운동가로서 베티 프리단은 우뚝 서면서, 직장에서의 성차별 폐지와 임신중단권 운동, 여성에 대한 폭력 반대 운동, 여성의 권리 향상 운동 등을 펼친다.

베티 프리단 덕분에 정치인들이 여성의 불만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1963년 여성의 상태를 검토하기 위하여 임명된 위원회는 불평등의 종식을 건의한다. 이에 대한 입법이 뒤따랐으며, 1963년에 디 이퀄 페이 액트 오브 1963(The Equal Pay Act of 1963, 1963년 임금 평등법)은 여성은 동일 노동에 대해서 남성과 같은 임금을 받는다고 명시한다. 프리단의 문제제기는 성평등적 교육 확대와 직장 내 법 ·제도 개선으로까지 이어져 여성의 사회진출을 늘이는 데 이바지한다.

NOW의 전 의장이기도 한 킴 간디는 프리단의 책에 관해, “삶의 실질적인 다른 무언가를 꿈꾸던 여성의 사고를 열어주었으며, 그런 생각들을 비밀스럽게 숨기고 살아온 여성들에게 자신 외의 다른 여성들도 더 나은 삶을 꿈꾼다는 것을 알려주었다”고 평가한다.

제2물결 페미니즘의 파도의 제일 높은 마루에 있는 나우는 미국 여성운동의 역사와 함께 한다. 나우의 활동가인 테리 오닐은 미즈와의 인터뷰에서 “나우는 항상 다양한 중요한 이슈의 현장에 있었으며 지금도 그렇다”면서 “페미니즘이 미국의 규범(norm)이 되도록 돕는 역할”이라고 말한다. 나우는 미국에서 연방대법원이 헌법에 의해 낙태를 처음 인정했던 1973년 ‘로우 대 웨이드’와 ‘도우 대 볼튼’ 소송 현장뿐만 아니라, 1975년 신용기회균등법, 1978년의 강간피해자보호법과 임신차별금지법 등 중요한 양성평등 헌법수정안(ERA)의 법안 통과의 자리에 함께 한다. 1986년부터는 여성의 재생산권 확보를 위한 운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다른 여성단체들과 연합하여 매년 3월 미 전역에서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3월 여성 인권을 위한 행진’을 조직한다.

또한 나우는 1971년엔 성소수자(LGBT) 지원을 공식 발표하며 성소수자 인권 투쟁을 공식 선언한 첫 단체이기도 하다. 나우는 여성운동을 위한 전국 조직 결성을 최초로 시도한다. 중앙 조직이 지침을 결정하고 각 지역 지부들이 나우를 지원한다. 이러한 방식은 자연스럽게 전국으로 여성운동이 확산되도록 하는 것이다. “지역의 활동(actions)이 운동(movements)을 만든다”고 설명할 수 있는 이 방식의 성과로, 오늘날 나우는 50개 주 전역에 500개 이상의 지역 및 대학 지부를 두고 있다.

 

  • 여성성의 신화의 성과와 그 이후

 

“역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앨빈 토플러

“이 책은 1963년 현대 여성운동에 봉화를 올림으로써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사 회조직을 영구히 바꿔버렸다” -뉴욕 타임즈, 베티 프리단 부고 기사 중-

사회가 여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여성들을 인간이기 이전에 ‘여성’으로 만들고 억압하는지 밝혀낸 『여성성의 신화』는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논픽션 책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여성 운동의 선구자였지만 프리단에게도 일정 한계가 존재한다. 프리단은 『미즈』(MS)를 창립한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끄나풀이며 미모를 무기로 여성운동을 독식하는 스타 페미니스트’라 공격할 뿐 아니라, 레즈비언 페미니즘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급진적인 여성 운동가 수잔 브라운 밀러는 그를 ‘가망 없는 부르주아’로 비판하기도 한다.

또한 그의 이론과 행동은 가정과 직장일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는 ‘수퍼우먼’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자가당착적이다. 인종, 성적 지향성, 계급 등의 여성 내부의 차이를 무시하고 프리단 자신과 유사한 여성들의 문제에만 착목한다는 점에서 ‘중산층 백인여성 중심’의 페미니즘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는 1981년 저서인 『두 번째 단계』에서 『여성성의 신화』가 가정과 가족에 대해 너무 신랄한 분석을 했다는 비판을 수용하기도 한다. 그는 이 저서에서 “우리의 실패는 가정에 대한 우리의 간과에 있다”고 서술하여 자신의 첫 번째 저서의 주장을 뒤집기도 한다. 더 나이가 든 뒤에는 건강과 젊음에 몰두하면서 페미니즘을 등진 채 노인 문제를 다룬 책 『노년의 샘』(1993)을 쓰면서 죽음에 대한 혐오, 젊게 사는 비법을 전파하기도 하면서 논쟁에 휩싸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는 출간 이후 다양한 논의 를 끌어냈을 뿐 아니라, 그 영향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국어판 해제를 쓴 여성학연구자 정희진은 다음과 같이 쓴다.

“이 책이 출간되고 나서 5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여성성의 신화』는 지구상 ‘모든’ 여성들이 교육, 법, 고용, 경제적 지위 등 공적 영역에서 평등을 획득하는 ‘그날’까지 유효하다. … 이 시대 여성들의 근본적 고민은 여전히 남성과의 불평등 때문이다. 단지 ‘선택’이 다양해졌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를 출발선에 다시 세운다.”

프리단의 이후 행적과 상관 없이 『여성성의 신화』는 이름 붙일 수 없던 여성들의 문제를 해명하고, 페미니즘 운동의 방향성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변하지 않는다.

 

  • 2회에 걸쳐 연재된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는 여기까지 입니다.
  • 다음으로는 마사 누스바움의 책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

베티 프리단(上)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13. <여성성의 신화>, 베티 프리단(上)

“가부장제가 만든 신화의 허울을 벗겨내다.”

 

김은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당신이 돌아보고 얼마나 먼지, 또 당신이 얼마나 왔는지 알게 되기 전까지는 얼마나 멀리 가야할지 알 수 없는 법이다…지금 수백, 수천 명의 여성들이 그러는 것처럼, 1963년에 어느 여성이 이 책이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 말하며 처음으로 『여성성의 신화』에 사인을 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나는 이렇게 적어줬다. “새로운 길 위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 이 길에서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신의 전 생애를 변화시켰고, 분명 내 생애도 변화시켰다. ”

 

  • 1942년 스미스 대학 입학생과 모나리자 스마일

 

1950년대 미국 동부의 웨슬리 대학을 배경으로 한, ‘모나리자 스마일’이라는 영화가 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줄리아 로버츠가 호연을 한, 영화의 주인공 캐서린 왓슨은 미술사 교수로 새로 부임해온다. 하지만, 왓슨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미래가 열린, 학생들의 인생 목표가 결혼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결혼 이외의 다른 삶의 가능성을 그들에게 제시하려 한다.

당시의 대학은 ‘결혼이 최고의 학생을 만든다’라는 표어를 걸고, 여학생을 완벽한 주부로 가는 길로 이끄는 예비 결혼 학교의 기능을 자처했다. 이 교육을 거치면서, 여성은 가정과 직업 중 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자신의 미덕이자 의무라고 여기었다. 영화에서 왓슨은 학생들의 지성과 감성 그리고 잠재력을 일깨우고, 이러한 노력은 영화 결론부에 결혼 외에 다른 가능성을 긍정하는 학생들로 결실을 얻는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하는 학생 중 하나는 법대로 진학하는 대신 결혼을 선택하며 말한다. “당신이 믿는 삶을 나까지 원해야 한다고 말하지 말아요. 내가 원하는 삶은 결혼이에요. 원하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고 한 건 당신이 아니었나요?” 결혼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삶이라고 되받아치는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 1921. 2. 4. – 2006. 2. 4.)『여성성의 신화』는 시작된다. 바로 영화속 학생과 마찬가지로, 베티 프리단을 비롯한 많은 미국의 여학생들은 졸업 후 결혼을 선택했다. 그 역시 잘 재단된 드레스를 입은, 한 손에는 책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프라이팬을 들고 있는 재원이었다. 멋진 남편의 배우자이자, 귀여운 아이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며, 완벽한 가족의 꿈을 그렸다. 하지만 십여 년이 흐른 뒤, 프리단은 『여성성의 신화』를 통해서 영화 속 결혼을 선택한 그 여성으로 대변되는 많은 여성들의 인생 설계가 정말로 자유로운 선택인 것인가? 그리고 지금 행복할까? 라고 반문한다.

베티 프리단은 10주년 기념판 서문에서 솔직하게 다음과 같이 쓴다. “이 책을 쓰기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여성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을 쓰고 난 후 일생은 달라졌다. 프리단이 말한 것처럼 “내가 이 책을 썼다는 것 자체가 참 믿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내 생애 전체가 이 책을 쓰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 식탁 위에서 글을 쓰다

 

베티 프리단은 일리노이주 피어리어에서 신문기자를 하다 전업주부가 된 어머니 미리엄과 보석상인 아버지 해리 골드스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학년 올 A라는 훌륭한 성적으로 스미스 대학을 우등 졸업한, 프리단은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다. 대학원 졸업 후 그는 심리학과에서 특별연구원 지위를 제안 받았으나 거절하고, 뉴욕에서 노동 전문 기자로 활동한다. 프리단 역시 경력단절의 아픔을 겪었다. 두 번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해고되고, 그 후 여러 잡지에 프리랜서로 글을 기고하지만, 전업 주부가 된 것이다. 프리단은 1957년, 그의 일생을 바꾼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주부의 삶을 살았다. 모교인 스미스 대학의 15주년 기념 동창회 사업의 일환으로 졸업생 동문 조사를 요청받은 것이다. 프리단은 대학 동창을 대상으로, 졸업 후 변화한 그들 삶에 대한 심층 면접 작업에 착수한다.

면접을 진행하던 당시, 프리단 역시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자신의 열의 없는 삶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프리단은 심층 면접을 통해서 남성과 마찬가지로, 공적 영역에 참가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았으나, 소위 ‘미국 정상 여성’의 이미지와 맞추기 위해, 가정에서 머물 수밖에 없는 여성들, 가정과 사회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들을 포착한다. 프리단은 그들 중 다수가 주부로서의 생활에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의 발견은 프리단으로 하여금 다음 질문으로 나아가게 한다. “교육을 받았지만, 왜 여성들은 자신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가. 남편의 아내나 아이의 어머니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왜 여성들이 갖는가.”

프리단은 전업 주부의 삶을 살아가면서, 동시에 위에 대한 답을 얻고자 근 5년간 독학으로 도서관을 찾아가 자료를 찾고 여성성의 신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프리단은 스미스대학 동창생들의 설문조사를 시작으로 고등학생과 대학생, 기혼 여성들을 심도 깊게 인터뷰하고, 각종 매체의 기사와 광고, 전업주부 결혼생활을 추적하면서 방대한 양의 취재와 자료 조사를 실시한다. 또한, 잡지와 광고에 대한 이론과 심리학 저서들을 분석하면서, 사회가 여성들을 어떻게 억압하고 있는지 밝혀낸다.

이 때 그는 사회가 제시한 여성성에는 아내, 어머니로서 여성적 경험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러한 여성성은 여성들이 가정 말고는 아무것에도 관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다시 말해, 여성은 정치, 예술, 과학, 크고 작은 사건, 전쟁과 평화 등 어느 것에도 자신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성은 남성만이 주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소위 여성성에 담긴 의미를 분석하면서, 프리단은 자신이 여성성의 신화에 사로 잡혀, 거짓된 삶을 살아왔음을 자각한다.

여성성을 분석하고 그에 대해 글을 쓰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조롱하고 비난했지만, 프리단은 무시하고, 집안일을 하지 않을 때 외에는 항상 글을 썼다. 식탁 위에서 글을 썼고, 거실 소파에서도 글을 썼다. 아이들을 돌보고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글쓰기를 잠시 멈출 때에도 머리 속에서 이어 쓴 후 아이들을 위한 시간을 마치고, 재운 후에 작업을 계속했다.

이제는 여성학의 고전이 된 『여성성의 신화』는 원래 책의 형태가 아니라 르포 형식의 기사로 기획되었다. 하지만, 어떤 잡지도 프리단의 기사를 게재하지 않으려 했다. 그저, 노이로제 있는 주부들에 대한 특수한 이야기로 치부할 뿐,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삼는 잡지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여겼다. 여성 잡지 조차, 자신의 세계의 근간인 여성성의 신화를 위협하는 프리단의 글을 거절했다. 하지만, 『여성성의 신화』이 출간되자, 여러 가지 우려와 달리, 초판 발행 3000부가 순식간에 매진되었을 뿐 아니라, 260만부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된다. 판매 지수는 갱신되었고, 프리단은 스테디셀러 작가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우선, 『여성성의 신화』는 당시 미국에 결혼한 여성의 40%가 10대였던 1960년대 미국 여성상에 대한 최초의 실증적인 기록이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또한, 방대한 연구는 여성들이 겪는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을 최초로 명백하게 드러냈다. 게다가 이 책은 ‘여성성’이라는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여성에게 부과되는지 그 과정에 대해 충실히 설명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은 당시로는 급진적인 주장을 감히 선언한다. “남편과 아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책은 행복한 현모양처란 없고, 여성은 남편과 육아에서 벗어나 사회적 활동에 뛰어들어 실질적 성평등과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강하게 말한다. 책의 울림은 컸고, 수많은 여성들의 삶과 의식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제2세대 페미니즘 운동의 위대한 서막을 알렸다.

 

  • 여성성의 신화: ‘더 없이 행복한 주부는 왜 그리 불행한가?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 도입부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등장한다. “왜 교외의 크고 멋진 저택에서 네댓 명의 아이를 기르고 남편을 내조하며, 세간의 인식대로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야 할 주부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가?” 왜 더 없이 행복한 주부는 그토록 많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순간 이기적이라고 자신을 여기는가? 왜 여성은 자신의 욕망을 죄악시하는가?

프리단이 주요하게 관심을 둔 중산층 백인 주부들은 소위 안정적이고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온통 공허감과 권태감이 있고, 주부들은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여겼다. 프리단은 당시 여성들이 가정주부로서 겪고 있던 내면적 갈등을 자세히 묘사한다. 교외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집에서 살면서, 직장으로 떠나는 남편을 배웅하고, 아이를 학교로 보내고 난 후, 모두 떠난 빈 집에서 홀로 앉아 “이게 정말 행복일까?”라고 회의한다. 마음의 상태와 눈에 보이는 현실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주부들은 더더욱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더더욱 힘든 것은, ‘자신이 선택한’ 이 아름다운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이 불행은 아무에게나 발설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마음과 현실 사이의 갈등은 오랫동안 침묵의 영역에 머물렀을 뿐 아니라, 여성들을 더욱 더 고통스럽게 했다. 베티 프리단은 미국의 많은 여성들이 이 고통을 겪고 있음을 발견하고,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반에 널리퍼진 여성들의 고통을 오직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들’로 명명한다.

그렇다면,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들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여성성이라는 허구적 신화 때문이다. 당시 미국에 만연해 있던 허구의 이미지, 즉 여성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고 남편을 내조하면서 만족을 느낀다는 것은 통념일 뿐이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선택으로 결혼했고, 그러한 여성성을 추구한다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상 어떤 신화에 불과한 것이다.

프리단이 책 제목으로 쓴 ‘여성성의 신화’란 결국 말 그대로 실재로는 존재한 적 없는, 여성성과 무관한 그저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신화를 지칭한다. 이러한 여성성의 신화는 각종 매체, 광고, 교육, 학자들이 작위적으로 만들어 낸 현대식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 오직 남성 중심적인 학계와 매스미디어가 ‘여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신화로 만들고 사회 전반에 통용 시켜 여성에게 주입한 것이다. 이 여성성은 그 능력과 상관없이, 여성을 재생산 기관으로만 간주하는 사회가 만들어 냈다.

신화의 힘은 강력하다. 여성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인생 여정 외의 다른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다. 주부이자 어머니로서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배운 여성들은 학업을 이어가거나 직업을 가지는 일 없이 이른 나이에 결혼하여 가정주부로 살았다. 이 신화의 강력한 위력 속에서, 주부들은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집안일을 하고 자식과 남편을 뒷받침하는 삶을 살면서 동시에 괴로워했다. 또한, 맞벌이로 일하는 여성들은 자신이 일을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엄마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죄책감을 느겼다. 이 신화는 프리단의 시대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기에, ‘여성성’을 사회가 아무리 찬양한다 하더라도, 여성들은 그 ‘여성성’으로 인해 더 억압받고 원인 모를 고통에 시달린다. 프리단은 더 이상 그러한 여성성의 신화로 인해 여성들이 고통받을 필요가 없음을 강력하게 주창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성은 ‘내가 누구이며, 내가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그것을 죄라고 느껴서는 안 된다. 여성들은 남편과 아이를 넘어서 자기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기를 원하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느낄 필요가 없다.”

 

  • 1950-1960년대 미국 여성들

 

그렇다면, 왜 당시 미국 여성들은 사회가 강요한 여성성의 신화를 의심하지 않은 채 받아들이는가? 밀이 여성의 종속을 쓸 당시만 해도, 미국 여성은 영국 여성의 지위에 비해 훨씬 진보한 여성의 권리를 획득했고, 참정권과 재산권 역시 다른 나라 여성들에 비해 먼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참정권 운동이 끝난 후, 오랜 기간 동안 미국여성운동은 구심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했다. 여성문제를 제기할 중심을 상실한 미국 여성들은 더 이상 여성운동을 지속시켜 나가지 못했다.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1950년대 아이젠하워 시대의 미국은 데이비드 리스먼이 “고독한 군중”으로 칭한, 순응주의적인 미국 시민들의 사회였다. 이들은 사회에 복종하는 존재들로 자신을 자리 매김한다. 이 시기에, 미국은 ‘풍요한 사회(Affluent Society)’로 불렸고, 뉴딜 정책과 제2차 세계 대전을 통한 경제 성장과 소득의 재분배의 효과로 넓은 중산층이 양산이 된다, 이들 중산층은 동질화(homogenization)된 미국적 가치의 상징이기도 하다.

거대한 기업 조직과 관료 조직이 사회를 지배 하면서, 청년들은 순종적인 소시민을 소망하고, 안정된 직업, 전원 주택, 퇴직 계획과 같은 개인의 안전에 관련된 문제에 주로 관심을 가지는 ‘조용한 세대’가 된다. 이 조용한 세대는 다수의 생활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과 같은 대중 매체의 발달은 이 청년 세대의 욕망을 조직하는데 일조한다. 1960년 초 미국 사회에서 텔레비전 보급은 전체 가정의 90%에 이르게 되었고, 텔레비전이 영상으로 전달하는 메세지는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모든 계층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미디어의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소비자들의 새로운 욕망을 만들고, 소비자들의 기호를 조작한다. 이와 더불어, 교육의 대중화 역시 사회의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비할 수 있는 사회 적응의 수단을 제공하는 도구로 작동하는데, 그 과정에는 여남의 데이트 방법, 여남 고정적 젠더 역할, 정상 가족의 가치 같은 것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1950년대와 1960대 초 분위기에서, 미국 사회의 여성 위치는 이전의 여성 해방 운동 시기와는 다를 수 밖에 없었다. 1930년대 미국은 경제 공황을 겪으면서 기혼 여성 취업을 금지하는 입법을 추진했지만, 동시에 전쟁시기에는 여성들의 노동력을 요구했다. 그 사이 많은 여성들은 경제 참여와 가정복귀의 악순환을 경험한다. 이에 따라 기혼여성이 가정 밖에서 일을 하는 것은 남성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라는 인식이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로 자리잡았다. 전 후, 순응주의적 사회 분위기에서 중산층 여성들은 사회 안정의 보루인 가정을 꾸리는 존재로 제시되었으며, 대중문화는 참된 양육자인 가정의 어머니의 역할만을 여성에게 강조할 뿐이었다. (이창신 저(2004), 미국 여성사, (주) 살림출판사)

이러한 환경이 빚어낸 시대에 살아가는 여성은 자신의 임금은 남성보다 낮고, 임신과 출산을 할 경우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자기 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한다. 여성은 “하루를 살아도 아름다운 여성으로 살겠어요”라고 말하는 광고를 자신의 욕망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성들은 시달리고 있고, 결코 이렇게 사회가 선전하는 여성성 덕분에, 행복할 수는 없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에이드리언 리치(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12.  <피, 빵, 시>, 에이드리언 리치(下)

“위치의 정치학을 향하여”

 

정유진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미국 산타 크루즈(Santa Cruz) 길가에 그려져 있는 에이드리언 리치 초상화)

 

  • 니카라과 혁명과 흑인 페미니즘

198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의 페미니즘은 다음과 같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다. 첫째, 무엇보다도 미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로널드 레이건의 집권 이후 1980년대 내내 언론·종교·대중문화·정치 등의 영역에서 페미니즘 운동에 반발하는 백래시(backlash)에 시달렸고 낙태를 둘러싼 이슈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이 가장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둘째, 냉전 체제 속에서 국제적인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타국에 대한 내정 간섭은 국제적인 정세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미국 여성들과 남미 여성들의 국제적인 연대 또한 위태로워졌다. 특히 1979년 7월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 Frente Sandinista de Liberacion Nacional)은 혁명을 통해 니카라과의 소모사(Somoza) 독재정권을 타도했지만, 니카라과의 좌경화를 우려하며 남미를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기를 원하였던 미국 정부는 니카라과 내 반혁명세력인 콘트라(Contra)를 지원하였으며 그 결과 1980년대 내내 니카라과는 내전에 시달려야 했다. 무엇보다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에서 니카라과 여성들은 무장봉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있었으며, 독재정권뿐만이 아니라 가부장제로부터 해방된 사회를 건설하는 기획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반혁명세력과 이를 지원하는 미국정부에 대항할 수 있는 페미니스트들 간의 국제적인 연대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였으나 80년대 페미니즘의 백래시에 시달리던 상황에서 미국의 페미니즘은 니카라과 혁명이라는 이슈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

셋째, 미국의 페미니즘은 내부적으로 여러 분파들로 나뉘었고, 무엇보다도 제2물결 여성운동에 참여하였던 흑인여성들이 흑인운동 내에서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 내에서도 흑인 여성들은 주변화되어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흑인여성들에게 젠더와 인종 문제는 중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단지 백인 중산층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흑인 여성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의 시간 속에서 1984년 에이드리언 리치의 「위치의 정치학을 향하여(Notes toward a Politics of Location)」가 발표되었다. 이 글에서 리치는 페미니스트가 말하는 ‘우리’가 누군지, 그리고 ‘우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여성들이 단일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질문함으로써 여성운동의 위기에 응답하고자 하였다.

(니카라과 혁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여성들)

 

  • 타자와 몸의 위치성

미국이 니카라과 내전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상황에서 에이드리언 리치는 단지 “여성으로서 나에게 국가는 없다”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을 피력했다. 오히려 리치는 “여성으로서 나에게는 국가가 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미국의 국가주의에 동조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지도 위에 그려진 미국이라는 공간에서 태어나고 자라나며 그 속에서 정체성을 만들어 나간 자신에게도 미국이 관여하고 있는 니카라과 내전과 그 내전이 일으키는 비참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리치에게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는 것은 곧 타자에 대한 자신의 책임성을 인식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때의 위치는 단지 물리적인 위치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위치는 언제나 역사적으로 구성된 공간이었으며, 위치의 역사에는 타자들의 역사도 포함되어 있다.

여성으로서 나에게는 국가가 있다. 즉 여성으로서 나는 단지 정부를 비난하거나, 혹은 “여성인 나의 조국은 전 세계다”라고 3번 말한다고 해서 국가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민족적 충성심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리고 국민국가가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다국적 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얻는데 이용하는 구실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지도 위의 한 장소가 어떻게 또한 여성으로서, 유대인으로서, 레즈비언으로서, 페미니스트로서 내가 만들었고 또 만들려고 애쓰고 있는 역사의 한 장소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는 흑인 미국 시민들의 글에서, 그들의 행동, 연설, 설교들에서 내가 그들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있는 한 위치의 지점인 나의 백인성이라는 의미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또한 오늘날의 쿠바 여성들이 쓴 시를 읽으면서부터 누가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나의 시각 및 생각의 방식을 형성했던 하나의 위치, 또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하나의 위치로서 북아메리카인이라는 의미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 나는 작고 가난한 나라이자 빈곤을 뿌리뽑기 위해 4년을 바친 사회인 니카라과를 여행하고 있었다. 니카라과와 온두라스의 경계선이 되는 언덕 아래에서 나는 등 뒤로 북아메리카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무게, 미국의 군사력, 미국의 엄청난 화폐 전횡, 미국의 매스미디어 등을 육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즉 내가 반체제 인사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권력의 부츠를 한껏 치켜올린 미국인의 한 성원으로서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으며, 우리가 남아메리카 전역에 드리운 차가운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지도 위에서 내 몸이 놓인 위치를 인식하는 것은 곧 몸 자체에 대한 질문, 즉 내 몸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 몸은 어디에 있으며, 내 몸은 무엇으로 보이는가와 같은 질문을 요구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는 순간 몸은 단일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으며 특이하고 다양한 것들의 집합체임을 발견할 수 있다. 몸에는 변형되고 변색되고 손상되고 손실된 부분, 그리고 쾌락을 느끼게 하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또한 몸의 피부색, 임신의 흔적 여부, 중산층으로 치과의 진료를 받은 치아의 흔적들은 내 몸이 특정한 역사의 지형을 지나왔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지형은 단일하지 않다. 여성으로서뿐만 아니라 백인으로서, 유대인으로서, 레즈비언으로서 다양한 정체성들이 혼합되어 있는 흔적들이 몸에 새겨져 있다. 이처럼 몸을 통한 사유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이 단지 성별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인종, 계급, 그리고 섹슈얼리티의 관계 안에서 복합적으로 구성되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끔 한다.

위치의 정치. 나의 몸에서 시작한다 하더라도, 나는 처음부터 그 몸이 하나의 정체성 그 이상을 갖는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산부인과 병원에서 세계로 옮겨질 때, 나는 여자로 간주되고 여자로 취급받지만, 또한 백인으로 간주되고 백인으로 취급받는다. 그 사람이 흑인이든 백인이든 모두가 나를 그렇게 취급한다. 한 명의 흑인 아이가 인종과 성별에 의해 위치지어지는 것만큼이나 분명한 것은 내가 인종과 성별에 의해 위치지어진다는 것이다. 비록 백인 정체성이 지닌 의미가 백인은 우주의 중심이라는 가정에 의해 신비화되었을지라도.

(여성운동에 참여하는 흑인여성들)

 

  • 정체성에 대한 인식에서 차이에 대한 인식으로

이 글에서 에이드리언 리치는 더이상 여성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에 대한 믿음이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여성들의 공통성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으며, 전세계의 모든 여성들의 고양된 의식과 함께 해방된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시기에 에이드리언 리치는 더 이상 ‘우리’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오히려 미국의 페미니즘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우리’라고 말하는 경향은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자의 경험을 삭제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타자를 대신하여 말할 수 있다는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에이드리언 리치는 자신의 몸에서, 지도 위의 위치에서,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서 많은 차이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여성운동을 지탱해온 ‘우리’, 그리고 단일한 정체성으로서의 ‘여성’은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타자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또 다른 기제임을 확인한다. 오히려 차이들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타자에 대한 인식 속에서 우리 또한 특정한 위치 속에서는 억압 기제의 일부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갖는 것을 에이드리언 리치는 페미니즘 위기의 시기 속에서 새로이 발견한 페미니즘의 방향으로 이해했다. 이런 점에서 에드리언 리치의 「위치의 정치학을 향하여」는 제2물결 페미니즘 이후를 고민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으며, 주디스 버틀러, 찬드라 모한티, 로지 브라이도티 등 많은 현대의 페미니스트 사상 속에 에이드리언 리치의 언어와 고민들이 스며들게 되었다. 그녀에게 ‘우리’를 상실하는 것, 더이상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공통되게 말할 수 없는 것은 “신념과 희망의 상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우리’의 상실을 “계속 나아가기 위한 투쟁으로서, 그리고 책임을 향한 투쟁”의 토대로 만들고자 하였다. 페미니즘이 단일한 ‘우리’의 정체성으로 확립될 수 없으며, 타자에 대한 책임을 수반해야 한다는 그녀의 생각은 페미니즘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그녀의 생각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증명되고 있다.

 

  • 두 편에 걸친 에이드리언 리치의 글 어떠셨나요?
  • 다음으로는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가 연재됩니다.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8. <여성들과 공동체의 전복>,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 (下)

 

이승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주부들을 계급에 외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한, 계급투쟁은 매순간 모든 지점에서 지연당하고 좌절당하며, 또한 자신들의 행동의 완전한 범위를 찾아낼 수도 없다. … 가사노동이 생산적 노동의 은폐된 형태임을 폭로하고 규탄하는 것은 여성 투쟁의 목표와 형식 모두에 관한 일련의 문제를 제기한다.”

 

  • 핵가족과 그것의 정치경제학

 

그렇다면 이렇게 여성들의 가사노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비생산적 노동’으로 간주되고, 그에 따라 부불노동으로 처리되는 것은 어떻게 형성되고 정당화되게 된 것일까? 왜 오늘날에도 여전히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조차 가정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늘 가사노동이 당연한 것으로 떠넘겨지는 것일까? 달라 코스타는 그 이유를 역사적으로 형성된 ‘자본주의적 가족’에서 찾는다. 그녀에 따르면, 자본주의 이전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족은 주로 농업생산 및 수공업생산에 공동으로 참여했던 데 반해, 자본주의의 등장과 함께 변화된 생산양식은 이전의 봉건제적 가족공동체를 돌이킬 수 없는 형태로 붕괴시키면서 현재와 같은 핵가족 형태를 고착시켰다. 생산의 장소를 농촌의 가족공동체에서 도시의 공장 및 사무실로 이전시키는 사회의 공간적 재배치가 진행되는 동안, 여성, 어린아이, 노인, 장애인 등은 이전까지는 필수적으로 생각되었던 그들 노동의 지분과 그러한 노동참여에 따른 상대적인 권력을 상실했다. 자본은 도시로 떠밀려온(물론 그들은 기존의 가부장제로부터, 농노나 노예 신분으로부터의 기쁨에 찬 해방을 맞이한 것도 사실이다) 이들 중에서 선별한 인간인 남성을 가족으로부터 떼어내 공장과 사무실의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키고, 그들에게 나머지 가족 전체의 생계의 짐을 지웠다. 이렇게 농노제에서 자유로운 노동력으로의 이행은 우선 남성 프롤레타리아트를 여성 프롤레타리아트와 공간적·기능적·이데올로기적으로 분리시켰고, 곧이어 학교제도를 통해 그들로부터 그들의 아이를 분리시켰다. 농촌공동체의 생산과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가부장 남성이 자유로운 임금 소득자로, 그 다음 그들의 자녀들이 예비노동자이자 학생으로 변형되는 동안, 갈기갈기 찢어진 가족 내에는 성별 및 세대간 분리에 따른 뿌리깊은 소외가 자라난다.

이처럼 자본은 가족구조를 재편함으로써 남성 및 아이들을 여성들과 분리시키고, 그들에게 남성과 아이들을 위한 뒷바라지, 즉 무상의 재생산노동인 가사노동의 과업을 할당했다. 이제 가정에서의 모든 일은 여성의 책임이 되며, 자본주의적 생산순환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녀들은 반드시 가정에 남아야만 한다. 자본은 이러한 가족형태에 의지함으로써, 자신의 이윤생산에 성공하고, 또 계급과의 대결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사서비스를 받아 잘 다려진 옷을 입고 충분한 식사를 하고 나타난 공장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은 자들보다 더 많은 생산능력을 발휘해 줄 것이며, 그들이 일하면서 얻은 육체적 피로감과 상실감을 사랑으로 채워줄 사람이 가정에 늘 있을 것이며(단 자본의 관점에서는 이 사랑조차 새로운 노동력의 생산을 가능케 할 삽입섹스로 고정되어야 한다), 그들이 은퇴하면 잘 훈련된(이른바 ‘가정교육을 잘 받은’) 아이들이 나타나 공장과 사무실의 빈자리를 메워줄 것이며, 또 그들이 일하다 다치고 불능상태에 처했을 때면 가정과 여성이 떠맡아줄 것이며, 그래도 일손이 부족할 때라면 집안에 유폐되어 ‘무능력’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받으며 일해줄 것이며, 마지막으로 이 모든 비참한 착취상황에 대한 불만을 가족 내부의 갈등으로 극적으로 전환시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와 아내가 불행한 것은 남편이 쥐꼬리만큼만 돈을 벌어와서이다.’ ‘남편과 아이가 불행한 것은 집안일을 소홀히 한 아내와 엄마 때문이다.’, ‘부모가 불행한 것은 그들 가족 전체를 계급이동 시켜줘야 할 아이가 공부도 못하고 툭하면 학교에서 말썽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등등. 즉 이런 이유로 여성들이 집안과 가족에 머물러 있어야만, 그들이 무상의 노동을 해야만 자본은 자신의 정상적인 생산순환 및 이윤생산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달라 코스타의 ‘자본주의적 가족 비판’은 여성의 자유로운 사회진출이나 그에 따라 직장 내 유리천장을 없애는 것이 여성투쟁의 과제로 보는 ‘자유주의적’ 관점을 경계하면서도, 동시에 여성투쟁을 계급투쟁의 종속변수로 보는 ‘사회주의적’ 관점이 은폐시킨 자본의 정치경제학을 그 근본에서부터 비판할 논거를 제공해준다.

 

“노동계급 여성의 해방이 그녀가 가정 밖에서 일자리를 얻는 데 있다는 점을 옹호하는 이들은 문제의 일부를 보지만 해결하지는 않는다. [공장의] 일관 작업대로의 예속이 부엌 싱크대로의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은 아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또한 일관 작업대의 예속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며, 여성들이 어떻게 착취되는지 모른다면 남성들이 어떻게 착취되는지를 정말로 알 수 없다는 점을 다시 증명하는 것이다. … 가족이 자본주의적 노동 조직화의 바로 그 기둥임을 완벽히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가족을 단지 상부구조로 간주하고, 변화를 위해서 오로지 공장들에서의 투쟁 단계들에만 의존하는 실수를 범한다면, 우리는 계급투쟁에서의 기본적인 모순 그리고 자본주의적 발전에 기능하는 모순을 항상 영구화하고 악화시킬 절름발이 혁명으로 옮겨갈 것이다.”

 

  • 여성들의 힘과 대안적 정체성

 

이 점에서 달라 코스타는 글을 쓸 1970년대 당시의 운동의 한 형태였으며 현재에도 하나의 구호로 사용되는 “가사노동에 임금을!” 투쟁을 지지 및 옹호하는 한편 그것이 가진 한계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려 했다. “가사노동 임금에 대한 요구는 처음부터 하나의 토대이자, 여자가 당하는 억압·종속·고립을 그것들의 물질적 기초인 여자가 당하는 착취로 곧장 연결시키는 데에 본질적인 매력이 있는 하나의 관점”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투쟁이 여성으로 하여금 집에 평화롭게 있으면서도 국가가 지급할 임금을 순진하게 손놓고 기다리게 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으며, 또한 이 투쟁이 여성운동의 다른 형태들과 결합되지 않은 채 제기되거나 또는 자본주의 사회의 핵가족 제도를 근본적으로 문제삼지 않는 한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여성의 노예적 삶을 더욱 공고히 할 위험, 즉 여성의 역할을 가사노동에 고정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사노동임금 투쟁의 목표는 단지 이런 노동을 덜, 적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노동을 부여받은 여성의 주부화를 박살내는 쪽에 맞춰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투쟁의 출발점은 “가사노동을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하느냐가 아니라 이러한 투쟁에서 주인공으로서의 위치를 어떻게 찾느냐에 즉 가사노동의 더 높은 생산성이 아니라, 투쟁에서의 더 높은 전복성”에 두어져야 한다.

달라 코스타는, 맑스가 그러했듯, 이러한 여성들의 전복적 투쟁이 가능한 근거를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그 노동의 형태와 성격 속에서 찾고자 했다. 즉 여성들이 벌이는 “사회적 투쟁의 가능성은 가정에서의 여성노동이 지닌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성격”에서 나온다. 그것은 그녀들에게 “대안적인 정체성”을 제공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때 ‘대안적인 정체성’, ‘사회적 투쟁의 가능성’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즉 자본주의적 생산체계와 가족체계는 여성을 무엇으로 생산하는가? (1) 마녀-되기와 악녀-되기. 여성 주부들은 집안의 벽 안에 구금되어 그녀들에게 부여된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여성성’을 재차 강제당하는데,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본주의의 노동조직화의 전체 구조를 보게 만든다. 즉 자본과 남성 노동자들이 공장 내에서의 적대를 중단하고 동맹관계를 회복하는 곳인 가정에서 여성들은 늘 ‘어디 나다니지 말고 집에만 있어!’, ‘몸가짐을 똑바로 해’, ‘집안 일을 완벽하게 해내라!’와 같은 명령을 듣곤 하는데, 이것은 구금된 여성들 자신으로 하여금 자본과 남성노동자의 은밀한 연합이 자신의 신체를 겨냥해서 이뤄지고 있음을 파악하게 만든다. 사랑스러운 아내, 영웅적 어머니, 조신한 딸로 그녀들에게 부과되는 이미지는 여성투쟁이 집중되고 또 그녀들이 위반할 수 있는 한계 지점이 어디인지를 알려준다. (2) 가족관계 바깥의 자율적 개인. “여성들은 아내나 어머니로서만 자신들의 남편과 아이를 만나기를, 즉 그들이 바깥세상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에 갖는 식사시간에만 만나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 자본주의적 조직화의 모든 영역이 여성의 가정주부화를 전제하는 그만큼, 가정 바깥의 모든 장소들은 여성들에 의한 투쟁의 기회를 제공한다. 즉 공장 회합에서, 반상회에서, 학생총회에서, 심지어 취미모임들에서 여성들이 남성을 어머니 대 아버지나, 아들 대 딸이 아니라 한 명의 독립된 인격체로 만나고 대면하면서 공통 관심사를 다룰 때, 그들은 가정 내에서의 종속된 권력관계를 해체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3) 질 오르가즘의 신화를 파괴하는 사랑의 기계. 여성들이 회사나 공장에서, 노동자총회에서 단지 육체적으로 피곤하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밤에는 잠자는 것 외에 사랑을 하고 싶기에 야근을 금지해야 한다”고 요구할 때, 그것은 노동의 사회적 조직화에 맞서 여성으로서 그녀 자신의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좌파 정당들과 노동조합들은 사랑을 계급의 이해관계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개인들의 낭만적 영역으로 치부해왔다. 하지만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남성들이 아니라 왜 여성들이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계급의 전체 역사에 새로운 빛을 던지는 계기를 준다. 따라서 이때의 사랑은 출산과 육아를 벗어난 사랑, 따라서 삽입성교에 구속되지 않는, 강제된 이성애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사랑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 (4) 생산에서 배제된 자들의 연합. 자본주의적 가족체계 내에서 남성들과 청소년들이 가족들로부터 분리되고, 그들이 근대적 훈육기관들에서 자본의 명령에 익숙해지는 동안, 여성들, 노인들, 장애인들과 같은 자본주의적 생산회로에서 배제된 이들은 자신들의 연합을 강화시킨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어린아이들, 노인, 아픈 사람 등과 시간을 갖기를 원한다.” ‘시간을 갖기를 요구하는 것’, 이것은 단지 자본의 판매시장 확대를 의미하는 가사노동의 자동화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것은 생산회로에서 배제되었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생산회로를 떠받치고 있는 여성들이 투쟁의 주도권을 쥐고 자본과 국가를 향해 다른 모든 배제된 사람들과 함께 사회적 부를 재전유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자신들과 분리된 노동자 남성 및 학생으로서의 청소년들과의 재통합을 추진하는 시초적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 노동거부와 공동체의 전복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자본주의적 생산회로와 가족구조는 여성의 사회적 투쟁의 잠재력을 극도로 팽창시킨다. 자본주의는 부불노동으로서의 여성의 가사노동에 의존해 자신의 거대한 이윤생산체계를 지탱하고, 재생산한다. 이런 점에서 달라 코스타는 여성운동의 투쟁방향과 목표를 좀더 혁명적으로 수립하기 위해, 이 거대한 생산회로의 중심부에 있는 가사노동과 바로 그 경계선 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확인하고자 했다. 여성들은 가정 바깥에서든 안에서든 항상 일하며, 바로 이렇게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바로 그 노동의 성격, 그 노동의 수행과정이 여성의 혁명적 잠재력을 끊임없이 팽창시키는 것이다. 자본은 자본주의 이전에는 한 덩어리로 생산했던 가족적 생산체계를 해체하고 그들 중 일부를 공장과 학교체계로 분리시켜 표면적인 착취관계를 확립했으며, 그 과정에서 모든 생산의 밑바닥에 여성의 부불노동이 뒷받침되게끔 하는 착취와 이윤의 안정된 판을 형성했다. 바로 이 숨겨진 노동, 그림자 노동이 없다면, 자본은 이윤은커녕 현재와 같은 사회형태로의 도약조차 이뤄낼 수 없었을 것이다. 달라 코스타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점에 있다. 즉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는 혁명의 비밀은 바로 이 근본적 밑바탕, 가사노동이면서 재생산노동인 이 잉여가치 생산의 원천인 여성 자신의 노동에서 찾아져야 한다.

심지어 오늘날 이 노동은 이제 숨겨진 노동이 아니라, 표면적으로도 생산관계 전체의 전면으로 부상되었다. 노동의 여성화, 노동의 정동화, 노동의 가사노동화, 그리고 인간 자체, 주체성 그 자체를 생산하는 노동의 삶정치화는 이제 산업자본을 넘어서 오늘날의 인지자본주의 내에서, 임금관계 안팎 모두에서 가장 핵심적인 생산능력이 되었다. 자본은 과거에는 부불노동의 당사자인 여성들에게만 요구했던 것을 이제 남녀 모두에게 예외없이, 심지어 자본 자신의 운동에게조차 명령한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라! 너 자신이자 타인인 저 특이한 인격체이자 감성적이고 정동적인 존재를. 모든 이에게 친절한 인간이 되어라!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타자에게 사랑받으며, 타자를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라!라고. 이 점에서 바로 우리의 시대, 인지자본의 시대에서, 달라 코스타의 혁명적 페미니즘은 다른 어떤 혁명이론도 능가할 가장 근본적이고 해방적인 선언이 된다. (끝)

 

  •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 편은 여기까지 입니다.
  • 다음으론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편이 연재됩니다.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上)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7. <여성들과 공동체의 전복>,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 (上)

 

이승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우리는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는 가정을 거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여성들과 단결하기를 원하며, 여성들이 집에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모든 상황들에 맞서 싸우기를 원하며, 간호실, 학교, 병원, 요양원, 또는 정신병원이든 어디든 게토들에 있는 모든 이들의 투쟁들에 우리 자신을 연결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가정을 거부하는 것은 이미 하나의 투쟁 형태이다.”

 

1943년 이탈리아 동북부 지역 트레비조에서 태어난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는 유럽이 혁명의 열기로 뜨거웠던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까지 이탈리아의 ‘포떼레 오뻬라이오’[노동자의 힘]에서 활동하며 노동자, 학생, 여성들이 연합한 전투적 투쟁에 참여했다.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이 전통적으로 크게 갈등하지 않았던 이탈리아에서 페미니즘 이론은 맑스의 자본 비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그것을 당시에 전개되던 여성들의 사회적 투쟁을 강화시키는 배경으로 삼았는데,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의 글 「여성의 힘과 공동체의 전복」이 그런 흐름에서 가장 선도적인 위상을 차지했다. 이 글은 처음에는 ‘빠도바 여성 투쟁 운동’이라는 서명으로 1971년 6월 팸플릿의 형태로 작성되어 여성 운동가들 사이에서 회람되는 방식으로 이탈리아 전역에 보급되었다. 이후 1972년 3월 이탈리아의 마르실리오 출판사에서 정식 출판물로 출간되었고, 그해 10월 영국 폴링 월 출판사에서 셀마 제임스의 글 「여성의 자리」(1953년에 최초 발표)가 함께 수록된 영어판으로 번역․발간된 이후 지금의 국제적인 명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재생산과 여성의 지위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던 당시의 국제 학계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한편, 지금은 ‘사회주의적 페미니즘’ 계열의 여러 출판물들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으로 수용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여성학의 여러 교과과정에서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채택되고 있다.

 

 

  • 가사노동, 즉 부불노동에 대한 자본의 착취

 

고전적 맑스주의의 전통에서 여성들의 가사노동은 공공의 생산노동인 임금노동과 구별되는 사적인 영역의 재생산 노동으로 범주화된다. 그들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에 의해 착취되는 무산자 계급, 즉 임금노동 계급만이 혁명의 주축이며, 그 밖의 생산자들은 혁명의 보조자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혁명의 적으로 기능한다.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가 도전한 것은 바로 이러한 노동계급의 분할, 즉 생산노동(주로 남성들이 담당하는 공장과 직정에서의 산업생산노동)과 재생산노동(임금노동에 고용된 이들을 포함한 여성 대부분에게 떠넘겨지는 출산․육아를 포함하는 가정에서의 가사노동), 공적 노동과 사적 노동으로 분할된 규정이었으며, 나아가 그러한 범주적 구별에 적용되는 노동의 성격적 분할, 즉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규정이었다.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을 개념적으로 분할하는데, 고전적 맑스주의는 이것에 근거해 가사노동을 ‘생산적이지 않은 노동’, 따라서 자본축적에 동원되지 않는 노동으로 규정하며, 그 결과 여성의 노동은 자본 바깥에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하지만 달라 코스타는 가정주부가 가정에서 생산하는 것은 상품의 교환가치를 생산하는 바로 그 ‘노동력’ 상품이라고 말한다. 가정주부의 노동을 통해 남편은 노동시장에서 자신을 자유 임금노동자로 판매할 수 있게 되며 자본은 그 노동을 통해 자신의 착취적 생산형태를 유지한다. 즉 가정주부의 생산성이 남성 임금노동자 생산성의 전제조건이며, 나아가 미래의 노동력을 생산하는 가정주부의 출산과 육아가 일정량의 노동력을 충원하는 노동시장의 전제조건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에 의해 조직되고 보호되는 가족은 ‘노동력’ 상품이 생산되는 사회적 공장이다. 따라서 가정주부와 가정주부의 노동은 잉여가치 생산과정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시작되는 기초를 이룬다. 다시 말해, 가정주부의 노동은 자본축적 과정의 원천이자 심장이다.

국가와 법적․제도적․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이 협력하는 가운데, 여성은 고립된 가족 안에 갇히게 되었고, 그곳에서 수행되는 노동은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이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의 노동은 강제되고 착취되는 노동이 아니라, 사랑, 돌봄, 감성, 모성 등으로 표현되는 자연화된 노동, 인간의 본능적 활동으로 치부되었다. 정통 좌파들이 놓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달라 코스타는 자본과 국가가 여성의 무상가사노동과 남성의 임금노동을 연계하는 전략적 관계를 창출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자본은 ‘생계 책임자’인 남편이라는 인물 뒤로 숨을 수 있다. 여성은 ‘가정주부’로 남편을 직접 다루면서, 돈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편을 위해 일하리라 여겨진다.

“자본이 남성을 충원하고 그를 임노동자로 전환시키는 한, 자본은 남성과 다른 모든 프롤레타리아들 간의 분열을 만들어냈다. 즉 임금을 받지 않는 이들은 사회적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기에, 사회적 반란의 주체들이 될 수 없다고 간주된다. … 노동계급운동 조직들이 분명하게 밝히지도 않았고, 또한 가정하지도 않은 것은 바로 임금을 통해 임금을 받지 않는 노동자들의 착취가 조직되어왔다는 점이다. 이러한 착취는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임금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착취[당한다는 사실]를 숨기기 때문이다. 임금은 공장의 단체협상에서 나타나는 것보다 더 많은 노동을 지배했다. 여성들이 관련되어 있는 노동은 자본 바깥에서 하는 개인적 서비스처럼 보인다.”

이런 분석에 기초해서, 달라 코스타는 많은 좌파 남녀들이 갖고 있는 통념, 즉 여성은 억압받는 이들일 뿐이며, 여성 억압의 문제는 ‘남성들의 맹목적인 성차별주의’에 있다는 식의 생각도 비판한다. 자본은 임금노동자의 유상노동뿐 아니라, 가정주부의 무상노동도 조종할 수 있기 때문에, 여성의 가내노예화는 단순한 억압이 아니라 ‘노동력’ 착취로 이해되어야 한다. 바로 이 무상노동이 지닌 착취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임금노동에 대한 착취구조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 부불노동으로서의 가사노동과 여성들의 투쟁

 

달라 코스타는 여성의 가사노동을 비생산적 노동으로, 그래서 부불노동으로 만드는 과정이 정치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효과를 생산하며, 또한 그에 따른 당시에도 있었던 여러 형태의 운동 양식들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첫째, 여성 무능력의 신화의 확산.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도래와 함께, 여성들은 고립되고 가정이라는 감방에 갇혀서 모든 측면에서 남성 임금에 의존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여성들에게 가사노동이 전가됨으로 인해, 설혹 직장 여성의 경우일지라도, 업무의 연속성이 가정에서의 일들을 통해 깨지는 경험을 매순간 겪어야 하며, 그것이 직장에서의 업무 배제의 이유나 여성의 취업이 힘든 이유로 기능한다. 가사노동의 시간이 가족 삶의 모든 부분에 대한 관리에 있는 만큼, 여성들은 휴일이나 휴가에도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데, 그것은 역설적으로 가정에서의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할수록 더 무능력해지는 효과를 낳는다. 나아가 주부의 경우, 이웃 이외의 사회생활의 모든 가능성들이 차단되는 만큼 여성들은 사회적 지식 및 사회적 교육의 기회 역시 박탈당하게 되며, 협력과 연대의 경험 역시 차단당한다. 하지만 이것은 여성으로 하여금 공장과 직장 바깥에서의 비공식적인 생활 공동체로의 참여의 기회를 확산시킨다. 임차료 파업, 인플레이션에 반대하는 투쟁들, 생필품 가격 인상에 대한 항의, 건강 및 의료분야에서의 과실로 비롯되는 항의 등의 기반에는 항상 여성들의 비공식적인 조직이 있었다.

둘째, 자본과 국가에 의한 여성의 자궁 관리. 자본주의는 가족을 핵가족으로서 정립했고, 사회적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노동시장에서 독자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으로서 여성을 핵가족 안에서 남성에게 종속시켰다. 핵가족은 여성노동 활동의 발전 및 창조의 모든 가능성들을 없애 버리듯이, 여성의 성적, 심리적, 정서적 자율성의 표현을 없애 버린다. 여성은 어머니가 되어야 하고, 그것도 자녀에게 무한한 사랑을 나눠주는 기계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창조적 능력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차단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여성의 성생활을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기능으로 축소시킨다. 여성들은 자녀를 갖도록 강요받았고 그녀가 자율적으로 실행할 출산 통제의 가장 원시적인 기술조차 금지당하는 효과를 낳았다. 그리고 이것은 여성의 낙태법 반대 운동을 촉발시켰다.

셋째, 노동분업의 동성애. 자본 권력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서 남성들과 여성들 간의 성적 애정 및 친밀감을 명령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동성애 운동은 그런 명령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동성애는 자본주의 사회 자체의 틀에 뿌리박고 있다. 서로가 하루 종일 분리된 채 가정에 있는 여성들과 공장과 회사에 붙들려 있는 남성들. 이것은 이미 자본이 노동하는 이들에게 부과하는 동성애적인 삶의 틀이다. 자본은 한편으로는 이성애를 종교로 끌어올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들과 여성들이 육체적으로 또는 정서적으로 서로 접촉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자본은 노동력 재생산에 유용한 한에서만 이성애를 허용할 뿐 나머지 시간에서는 이성애를 파괴하고 손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달라 코스타는 바로 이러한 자본의 작용이 역설적으로 동성애적 경향들을 촉발 및 폭발시킨다고 보았는데, 동성애 운동은 그런 점에서 자본에 의해 조성된 사랑의 관계를 자본으로부터 명령에 맞서는 방식으로 전환시킨 사례인 것이다.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존 스튜어트 밀 (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이 직업을 선택하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즉 ‘공적 영역’ 진출의 자유와 자격을 논한다. 여성이 (사적 영역인) 가정에 머무는 것은 여성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혹은 그것이[여성이 공적 영역에 진출하는 것이] 부정의하기 때문이 아니라, 대다수 남성들이 가정 내에서 여성이 집안일에만 전념하고, 가정 내에서 여성의 복종이 유지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 전체가 아니라 남성의 배타적인 이익을 위해 지속되어 온 관습이다. 그리고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배제는 여성에 대한 억압일 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해악이다.

인류의 절반이 스스로의 책임 아래 각자가 원하는 대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평등한 도덕적 권리를 부인하는 것은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여성의 투표 행사 권리는 모두가 마땅히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기보호의 수단을 가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헌법의 역할은 사람들의 신탁에 있어 필요한 모든 안전장치와 제한으로 선거권을 보호하는 것이며, 법적 보호를 받는 모든 사람은 누가 어떤 법을 만드는지 알고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밀은 여성이 공적 책임을 맡지 못할 이유가 없음을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공직은 ‘자격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여성이든 공개경쟁에서 승리하기만 하면 그런 일을 할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단지 몇몇 여성이라도 그 자리에 대한 자격이 인정될 경우, 그런 가능성을 막는 것을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또한 밀은 여성의 교육 받을 권리를 주장한다. 그는 남성들 사이에 존재한다고 가정되는 정신적 차이는 그들의 교육과 상황 차이에 의해 비롯되는 것일 뿐이라는 점에서, 남녀 간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생각 역시도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언제나 억압의 상태에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본성이 심각하게 왜곡되고 훼손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여성의 본성을 남성의 본성처럼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놓아둔다면, 그리고 만일 인간 사회의 조건이 남녀에게 공통으로 줄 수 있는 것 외에 어떤 인위적인 성향도 여성에게 가하지 않는다면, 남녀의 성격과 능력 사이에 실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남녀의 차이조차 자연적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후천적인)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또한 밀은 만약 여성이 실제로 열등하다고 하더라도, 약점 있는 남자 또한 많은데, 그들은 [여성과 달리]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그에 의해 교정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여성도 남성과 같은 교육을 받아 교정될 수 있다면, 여성 역시 남성이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라도 완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밀은 여성의 종속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여성 해방을 논했던 최초의 남성 철학자이다. 그 자신은 자신의 성별 때문에 종속의 경험이 없음에도, 그토록 여성 해방을 주장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밀은 여성의 종속이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해악을 끼치며, 여성이 자유로워지면 인류 전체는 진보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여성이 자유로워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혜택은 당연히 여성의 사적 행복이다. 인간은 타의에 이끌려 사는 것보다 합리적 자유에 따른 삶을 살 때 행복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무제약적인 자유가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의무감에 따라 그리고 자신의 양심과 일치하는 사회적 제약에 따라 스스로의 행동을 규율하는 자유를 일컫는다. 또한 각자의 능력을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발휘하는 것도 행복의 한 원천이다.

나아가 여성이 자유로워진다면 남성의 도덕적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밀이 살았던 당시의 남녀 관계는 오히려 남성들에게 도덕적 해악을 끼친다. 정당한 근거 없는 남성의 여성 지배는 모든 이기적 경향, 자기 숭배, 옳지 못한 자기 선호에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 왜냐하면 실정법이 단지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본인보다 우월한 여성들까지도 포함해] 인류 절반보다 우월한 자리에 올라갈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은 이런 믿음이 개인으로서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남성의 삶 전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다른 하나의 성 전체 위에 있다는 느낌과 그들 중 한 여성에 대한 사적이고 개인적인 권위의식이 합쳐지면, 자신의 성취가 아니라 우연적인 이점을 자랑하는 최악의 종류의 ‘자부심’을 느끼게 되고, 이 악덕이 그들과 동등한 다른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도전 받아 억제된다면, 그들은 그것을 인내해야 할 의무가 있는 위치의 사람들에게 분풀이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밀은 여성 해방이 사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 근거로 밀은 그 당시의 도덕과 정치에 있어서 원리를 들어 그의 주장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정의의 원칙의 적용 범주는 행위자가 아니라, 행동만이 존중 받는 것이다. 어떤 신분의 사람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가가, 즉 출생이 아니라, 공적만이 모든 권력과 권위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과 당시의 남녀 관계는 모순적이다. 양립 불가능한 이 두 원칙 중 부정의, 즉 특정 개인이 타인에 대해 지속적인 권위를 지니는 것을 허용하는 것에 봉사하는 원칙을 폐기하지 않는다면, 정의의 원칙을 세우려는 교육과 문명의 모든 노력은 허사일 뿐이다. 여성의 억압, 즉 세계가 소유하고 있는 재능의 반을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심각한 세계의 손실이며, 여성에게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재능의 양을 늘리는 것은 인간사를 위해 유용할 것이다.

 

  • 『여성의 종속』의 이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밀은 자신의 도덕론의 주체와 대상을 명시적으로 여성에게까지 확장할 것을 주장한 최초의 남성 철학자이다. 그는 개인의 자유는 다른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사회 전체의 행복을 늘리기 때문에 이롭다는 공리주의적 관점과 행위자가 아니라 행위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정의의 원칙을 바탕으로, 여성의 권리 보장과 제도적 차별을 없앨 것을 강조했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같은 인간으로 고려해야 함을 호소한다. 밀 이후에 ‘포스트 페미니즘’ ― 접두사 ‘post’(이후)와 ‘페미니즘’이 결합하여 ‘요즘 시대에 여성차별이 어디 있느냐, 페미니즘은 낡은 유물이다, 페미니즘이 필요한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안티 페미니즘적인 맥락에서 사용되는 말 (이와 전혀 다르게, 원래는 포스트 식민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포스트 구조주의 등에 영향을 받은 페미니즘 흐름의 한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 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여성의 공적 영역에의 진출은 확대되었고, 헌법은 여성의 모든 권리를 보장하며, 적어도 제도상으로 여성이 할 수 없는 일은 이제 없다. 기혼 여성들 또한 이제는 배타적인 자신만의 재산을 가질 권리와 결혼 관계를 그만둘 권리를 가지며, 이혼할 때 아이 양육권은 협상으로 분배된다. 어쩌면 밀이 기대한 ‘차별’ 없는 세상이 도래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밀이 기대한 차별 없는 세상에서 여성의 일생은 그 당시의 여성들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은 김지영 씨가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어디에나 갈 수 있도록, 그녀의 성별이 그것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녀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정작 뭔가 하려고 하거나, 어디 가려고 할 때, 이제 ‘맘충’이라는 비난, ‘여자 직업으로 선생님만 한 게 있는 줄 알아?’라거나 ‘그냥 얌전히 시집이나 가’라는 말,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회사에서도 부담스러워’ 한다는 소리와 마주친다. 차별의 시대는 이제 혐오의 시대가 되어, 여전히 여성의 억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여성 해방에 있어 법 혹은 제도의 역할은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자유 실현을 위한 기존 제도에의 도전은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성과 똑같은 ‘인간’으로서 여성의 동등한 권리/기회 보장을 넘어서, 페미니스트들은 사소하고 주관적인 경험으로 생각되어 온 여성의 경험에 ‘성희롱/성폭력’ 등으로 명명하여 하나의 사회 문제로 제도 내에 기입했고, 고용이나 채용 등에서 여성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는 ‘적극적 조치’를 제도적으로 실행할 것을 요구했다. 모든 인간을 동등한 주체로 볼 것과 모든 인간의 (표현의) 자유를 강조한 밀이 이러한 도전들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밀이 『여성의 종속』 서두에서 여성 억압을 유지하는 제도의 유일한 근거로 제시한, 여성을 지배하고자 하는 남성의 ‘강렬하고 뿌리 깊은 감정’을 제거하기 위한 시도로서, 그는 이러한 도전들의 유효함을 인정하지 않을까?

 

  • 두 달에 걸쳐 두 편으로 연재된 존 스튜어트 밀에 관한 글 잘 읽으셨나요?
  • 다음 달(6월)에는 미셸 푸코에 관한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존 스튜어트 밀 (上)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에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페미니즘 이론과 사상을 발전하고 확대하는 데에 기여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한 달에 두 번씩 [매달 초, 중순] 연재할 예정이며, 매달 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다룰 것입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 및 업로드 담당 – 서누)

 

 

서양 근대철학의 이상은 인간에서 시작한다. 그 이상은 인간의 능력으로부터 출발해, 세계를 향하고, 인간에게로 되돌아온다. 모든 인간의 평등에 대한 사상들이 이때부터 생겨났다. 그런데 여기에는 큰 약점이 있었다. 그 ‘인간’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예컨대,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1632-1704)는 모든 인간에게 사유 재산을 가질 권리가 있음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영국에서 여성의 재산권이 온전히 보장된 것은 1882년 재산법 통과에 이르러서였다. 또한 ‘사회계약론’으로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한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의 저서 <에밀>에서 자연적 본성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의 이성 능력이 다르고, 그 차이에 따른 양성의 역할이 다르다고 말했다. 루소에 따르면, 여성은 본성적으로 도덕적 자유를 성취할 만한 정신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구성원 즉 시민으로서의 자질이 결여되어 있다. 루소는 남녀의 차이를 자연적인 것으로 설명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차별 대우를 정당화했다. 그리하여 루소가 주장한 ‘천부 인권’은 여성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었다. 한편 프랑스 대혁명 이후, 1789년 프랑스에서 라파이예트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발표했고, 같은 해 남성 시민들에게 비로소 ‘보통 선거’에 가까운 투표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프랑스 여성들이 투표를 통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무려 1944년에 이르러서였다.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이 <여성의 종속>을 저술하던 19세기의 영국에서 위와 같은 성차별은 제도뿐만 아니라 생활양식 전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성은 생물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주로 남성과의 차이에 의해 규정되었으며, 이러한 차이는 역할 분리로 나타났다.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가 뚜렷해지면서, 남성은 공적 영역에서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여성은 순결한 존재로 사적 영역을 지키면서 남성을 위안하고 돌보는 역할만을 맡아야 했다. 그럼에도 19세기 후반, 20여 년간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여성의 고등교육 기회 확장, 여성 노동시장의 증가, 투표권이나 산아제한에 대한 캠페인 등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반드시 수행해야만 한다는 전통적 관점에 대해 여성들이 자각하고 도전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밀은 ‘남성에의 여성의 종속’은 문명사회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남성과 다를 바 없는 여성의 완전한 자유와 평등의 쟁취를 목적으로 <여성의 종속>을 쓴다. 그리고 여성 억압은 여성을 지배하고자 하는 남성들의 강렬하고 뿌리 깊은 감정 외에 정당한 이유나 근거 없이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지적한다. 특히 그는 ‘모든 인간의 평등’이라는 이념이 확산되어 점차 철폐돼 가던 노예제와, 그에 반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여성 억압을 비교하면서 사회에 탄원한다.

밀에 의하면 자유와 평등의 추구는 선험적 진리이며, 공공의 이익(general good)을 위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떠한 법적 차별도 용납할 수 없다. 그런데 ‘남성의 여성 지배’라는 제도는 이러한 선험적 진리에도 어긋나며, 공공의 이익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도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다른 대안, 예컨대 ‘여성의 남성 지배’나 ‘두 성의 동등한 지배’가 시도된 후에 적극적인 비교를 통해 판단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의 여성 지배’라는 원칙은 힘센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한다는 강자의 법칙 외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러나 문명과 도덕이 발전한 사회에서 강자의 법칙은 인간사회를 규율하는 원리로서 적절하지 않으므로, 이마저도 ‘남성의 여성 지배’의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없다.

한편 여성은 지배 받아야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논거로 남성의 여성 지배를 정당화하는 사람도 있었다. 밀은 일반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은 정말로 ‘그러한 것(본성)’혹은 ‘그러해야 하는 것(당위)’이 아니라, 관습적인 것이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역사적 사례를 들어 반박한다. 봉건 시대에 귀족의 평민 지배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이제는 모두가 정당하게 인정하는 일반 시민(당시의 농노)의 정치 참여는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고대의 스파르타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한 신체적 훈련을 받았고, 이를 통해 당시의 사람들은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능력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남성의 여성 지배’는 여성의 자발적 동의에 의한 것도 아니다. 밀이 <여성의 종속>을 저술하던 당대에는 ‘남성의 여성 지배’에 부당함을 느끼며 직접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을 글로 쓰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었고, 선거권 운동과 더불어 교육권, 노동권 보장을 획득하려는 정치적 집단들이 조직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성은 어떠해야 한다는 지속적인 세뇌와 정치적 운동에 참여했을 때 우려되는 남편의 학대 때문에, 여권 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여성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면서, ‘남성의 여성 지배’는 여성의 자발적 동의에 의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여성의 전반적 지위가 내려가느냐 올라가느냐를 따져보는 것이 한 민족 또는 한 시대의 문명 발전 정도를 가늠하는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밀은 앞선 논의들을 종합하며 불평등한 권리의 구조는 인간 발전의 전 과정, 즉 역사의 흐름과 인간사회의 진보적 경향, 그리고 미래와 조화롭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와 낡은 과거를 가르는 기준은 인간이 출생조건에 의한 억압에서 벗어나 능력과 기회를 이용하여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자신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문제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사자가 스스로 해결하도록 놔두는 것이 발전을 이루는 사회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단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법과 제도에 의해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현대의 사회 원리에 어긋나는 거의 유일한 사례이며, 현대 세계의 진보적 흐름과 대립되는 것이라고 본다.

특히 밀은 당대의 결혼 제도가 여성에게 전적으로 불(합)리한 제도임을 자세히 밝힌다. 결혼한 여성의 법적 지위를 살펴보면 [노예제와 같은 법적인 신분 차별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남편의 노예와 다름없다. 아내는 결혼식 단상에서 남편에게 평생의 복종을 맹세하고 나면, 평생을 통해 그것을 지켜야 한다. 여성은 남편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며, 남편의 허락 없이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나아가 아내는 어떤 것도 소유할 권리가 없다. 상속을 통한 것이든, 노동을 통한 것이든. 여성이 어쩌다 재산을 가지게 되더라도 그것은 결혼과 동시에 사실상 남편의 소유가 된다. 아내의 것은 무엇이든 남편의 것이 됨으로써 ‘법 안에서 한 사람’이 되지만, 그 규정은 반대로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만이 자녀에 관한 법적 권리를 갖는다. 여성은 남편의 대리로서가 아니면,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다.

 

(영화 ‘서프러제트’ 中, 여권 운동에 참여하여 가정을 잘 돌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를 다른 집에 입양 보내는 주인공 모드의 남편. 여기에서 모드는 반대할 권리가 없어 아이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든 남성이 여성을 노예처럼 부리고,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이 실제 결혼생활에서 받는 대우와 상관없이 이 제도는 그 자체로 부조리하다. 이 제도를 악용할, 사악한 남성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이 제도에 의해서 목격되는 불평등은 정당한 것이 아니며 잠재적 폭압을 합법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제도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선한 사람들이 아니라 악한 사람들을 염두하고 만들어져야 한다. 모든 남성은 결혼하는 순간 남편으로서의 완전한 법적 권력이 부여되고 보장되지만, 남편들 중 그 누구도 결혼 전에 절대권 행사에 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고 법도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두 사람 중 어느 한 쪽은 관계를 취소할 수 없는데, 이들의 자발적인 결합에서 한 사람이 절대적인 주인이 되는 것은 옳지 못하며, 특히 법이 누가 주인이 되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아이리스 영 (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정의란 무엇이며, 부정의란 무엇일까? 억압당하는 집단은 부정의를 겪고 있다고 주장하며, 정의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억압이란 무엇이며, 누가 어떻게 억압당한다는 것일까?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차이의 정치와 정의>에서 유명한 ‘억압의 다섯 가지 모습들’을 제시한다. 영은 철학에서 논의되어 왔던 기존의 정의론을 비판하면서, 정의와 부정의는 분배 문제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억압’과 ‘지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억압이란 “사회 구성원의 일부가 사회적으로 인정된 환경에서 좋은 기술들을 익히고 사용하는 것을 막는 제도적 과정 체계”(p.99.)를 뜻한다. 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자기-표현(self-expression)과 관계된다. 한편 지배는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할지 결정할 때 참여하지 못하게 금제하거나 막는, 또는 행위조건들을 결정하는데 참여하지 못하게 금제하거나 막는 제도적 조건들”(p.99.)을 말한다. 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자기-결정(self-development)과 연결된다. 영은 이런 억압과 지배를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정의라고 주장한다.

물론 영이 분배 부정의, 즉 재화나 지위에서의 불평등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배 문제는 정의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분배의 문제가 정의의 전부라고 간주하게 되면, 우리는 그러한 불평등한 분배 부정의를 낳은 생산조건과 제도적 맥락, 노동 분업의 문제, 의사결정 권력 문제, 문화의 문제를 보지 못하게 된다. 또한 분배에만 주목할 경우, 분배와 관련될 수는 있지만 그보다는 더 포괄적이고 구조적인 ‘억압’이라는 문제는 도외시된다.

억압이라는 용어는 우선 전통적으로 독재국가에서 탄압받는 시민들을 일컬을 때 사용되거나, 제국주의 식민지 국가나 공산국가들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영에 따르면 억압은 심지어 발전된 서구 자유주의 국가에서도 존재하며, 반드시 억압하는 자가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억압은 제도적인 조건이기에 단순히 사회적 지위나 생산관계로 인해 누군가가 특권을 얻고 누군가는 차별을 당하는 상황 자체도 억압이 된다.

억압이라는 용어가 부정의의 문제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된 배경은 주로 신 사회 운동, 즉 사회주의 이후의 다양한 정체성 운동인 페미니즘, 게이/레즈비언 해방운동, 아프리카계 미국인 운동, 환경 운동의 약진 덕분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억압을 경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은 이러한 현실 운동의 주장들에서 출발한다. 주로 이들이 억압을 개선하거나 종식해달라고 요청할 때, 어떤 억압의 양상들이 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은 이러한 억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면서, 이 억압당하는 집단들은 착취, 주변화, 무력화, 문화제국주의, 폭력이라는 억압을 체계적으로 겪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착취(exploitation)’는 “일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목적(의도)에 따라서, 그리고 이들의 이익을 위하여 그 통제 하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 즉 “사회집단의 노동 산물이 타 집단에게 이득이 되도록 이전되는 항상적 과정”(pp.123-124)을 일컫는 용어로, 물론 맑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용어이다. 그러나 영은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 문제를 넘어서 여성의 에너지가 남성으로 이전되는 ‘젠더 착취’로 착취 개념을 확장시킨다. 젠더 착취에는 두 가지 양상이 있는데, 예컨대 여성이 보수를 받지 못하고 가사 노동을 하게 되는 것처럼 물질적 노동의 과실이 남성에게 이전되는 것과, 성애화 된 직종에 종사하거나 직장에서 긴장관계를 누그러뜨리는 노동에 종사하게 되는 것처럼 여성의 정서적, 성적 에너지가 남성에게 이전되는 것이 있다. 영에 따르면 이런 착취는 단순히 노동 산물이나 에너지에 대한 착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착취하는 집단은 착취를 통해서 부나 이윤뿐 아니라 권력을 소유하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둘째는 ‘주변화(marginalization)’로, 이는 “노동 시스템이 사용할 수 없거나 사용하지 않으려는”(p.131) 것을 일컫는다. 청년 실업이나 노인, 신체 장애인과 정신 장애인, 재취업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주변화로 인해 고통 받는 집단에 해당된다. 주변화를 경험하는 집단은 불안정한 고용과 실업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복지에 의존한다는 비난 등으로 인해 의미 있는 노동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채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는 억압을 경험한다. 따라서 영은 “어쩌면 주변화야말로 가장 위험한 억압 형태일지도 모른다”(p.132)고 설명한다.

세 번째, ‘무력화(powerlessness)’는 “간접적 의미에서의 권한이나 권력조차도 전혀 가지지 못하는 것”, “명령은 무조건 따라야 하지만 명령을 내릴 권리는 거의 갖지 못하는 상태에 처한 것”(pp.137-138)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의사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할 권력 자체가 박탈당한 상태이기 때문에 무력화인 것이다. 예컨대 비전문직 노동자들은 고소득 전문직 노동자들에 비해 업무에서의 자율성이 거의 없고 독자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불가능하며 상급자의 지휘나 감독만을 받기 때문에 자신의 일에 대한 전문성이나 통제력을 가지지 못한다. 공사장의 인부는 전기 기술자, 건축 기술자 등 숙련 노동자에 비해 천시당하거나 권한을 갖지 못한다.

네 번째 억압은 ‘문화 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이다. “지배 집단의 경험과 문화를 보편화하고 유일한 규범으로 확립하는 것”(p.142)으로서, 이는 지배 집단이 자신들 역시 특수한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관점이나 견해가 보편적인 것인 양 강요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예컨대 백인 이성애자 남성들이 흑인이나 여성들은 열등하다는 레테르를 붙이거나 동성애자들은 난잡하다는 식으로 표지를 붙이는 방식이다. 이러한 피억압 집단을 향한 지배 집단의 편견이나 선입견이 보편적인 문화로 제시됨으로써, 피억압 집단의 관점이나 정체성은 배제되고 차별 당하게 된다.

마지막 억압은 ‘폭력(violence)’로서, 영에 따르면 폭력은 단순히 개별 행위자의 행위가 아닌, 사회적인 맥락에서 비롯될 수 있는 체계적인 속성을 가진다. “폭력이 개인적으로 저지르는 도덕적 잘못이라는 점을 넘어서서 사회 부정의의 한 현상이 되는 것은 폭력이 가지는 체계적 속성, 즉 폭력이 사회적 실천으로서 존재한다는 점이다.”(p.148) 다시 말해, 특정한 제도와 사회적 실천이 특정한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폭력 행위를 부추기고 관용하고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사회적 환경(맥락)이 결국 그 폭력을 재생산하기 때문에,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체계적 폭력(systematic violence)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을 성폭행하거나 동성애자를 구타하는 행위에는 그러한 행위들을 방조하고 묵인하는 제도적이고 사회적 맥락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이렇게 억압의 다섯 가지 양상을 통해 영은 지금까지의 분배 중심의 정의론이 문화 제국주의나 폭력과 같은 억압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이런 억압들은 ‘사회집단’으로서의 약자들에게 가해진다는 특성이 있다. 영은 집단을 단순히 이런저런 속성들로 자의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집합체(aggregate)나, 혹은 가입과 탈퇴가 비교적 자유로운 공식적인 결사체(association)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정의론은 개인이 집단 이전에 있다는 자유주의적인 인간관을 전제한다고 비판하면서, 이처럼 개인들의 묶음들로 집단을 바라보는 관점은 피억압 집단이 발생하게 된 사회․역사적 맥락을 도외시함으로써 억압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존의 정의론은 억압당하는 사회집단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락시킴으로써 차이를 은폐해 왔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집단이 다 억압 받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미국에서 가톨릭 신도들은 독특한 관행과 상호 친밀성을 가진 특유한 사회집단이기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억압받는 집단은 아니다. 영에 따르면 “한 집단이 억압 받는지 여부는 다섯 가지 조건(착취, 주변화, 무력화, 문화제국주의, 폭력) 중 한 가지 조건이나 그 이상의 조건들을 충족하는지에 따라 정해진다.”(p.120). 예컨대 영의 ‘억압의 다섯 가지 조건’을 고려해 봤을 때, 사회집단으로서의 ‘남성 집단’은 인종, 성적 지향, 계급이나 학벌 등으로 차별받을 수는 있어도, 적어도 남성으로 억압을 경험한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영은 이처럼 억압에 대한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집단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억압들을 범주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어떤 제도나 정책이 이 억압의 범주들 중 하나를 강화한다면, 그것은 부정의한 것이 된다. 영은 이 기준들을 통해 차이를 가지는 사회집단들이 경험하는 억압을 제거해 나가는 정의를 주장한다. 동일성을 통해 차이를 없애기 보다는, 차이를 의식하고 이를 인정하는 것이 좀 더 정의롭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녀는 젠더 중립적인 정책보다는 젠더 의식적인 정책을, 집단들의 의사가 반영되는 참여 민주주의로서의 집단 대표제(group representation), 소수자 우대 정책 등을 제시한다. 차이를 고려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분배를 넘어서는 쟁점들을 정의에 수용하라는 영의 이런 주장은, ‘급진 민주주의(radical democracy)’ 개념을 통해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 등의 사회집단 간 차이를 민주주의에 수용할 것을 주장하는 무페와 라클라우의 정의론, 분배/인정의 이원론적인 정의관을 주장하는 프레이저의 정의론, 좋은 삶을 정의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는 역량(capability) 접근법인 누스바움의 정의론과 같은, 분배 정의론이 오히려 차이를 무시하고 억압을 강화하는 지점을 비판하는 다른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들의 입장과도 공명하는 듯하다. 영은 물론 이런 차이가 본질적이거나 영속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차이를 가질 뿐 아니라 억압당하고 있는 집단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현실이다. 결국 영의 입장처럼, 추상적인 원칙이나 동질적이라고 가정되는 시민 공중이라는 망상에 근거할 것이 아니라, 억압당하고 있는 집단들에게 가해지는 부정의를 제거해 나가는 것이 진정으로 ‘정의’가 아닐까?

 

(두 편으로 연재된 영에 관한 글 잘 읽으셨나요-? 4월에는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예속>에 관한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