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이종철 철학박사(연세대학교)의 허락을 얻어 언론에 쓴 칼럼과 여러 글들을 연계하여 게재합니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비트겐슈타인의 딱정벌레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비트겐슈타인의 딱정벌레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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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른바 선사들이 토굴 속에서 수년 동안 참선을 하면서 마침내 무언가 깨달았다고 할 때 그것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오랜 수행 끝에 그들이 우주 만물의 통일적 원리인지 혹은 삶의 궁극의 원리인지를 발견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들이 치열한 수행 끝에 강렬한 확신이나 체험을 얻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의 생각일 뿐 그것 자체가 보편화되고 객관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하면 사적 체험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깨달음을 판정해 주는 구루(Guru)가 있다고 해도, 그 구루가 깨달은 자(Buddha)라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구루가 깨달은 자라는 것을 다른 구루가 판정해 준다고 하자. 하지만 이런 물음을 제기하다 보면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나타나는 ‘제3자 논변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근거 지우는 것을 새롭게 근거 짓는 것의 무한 퇴행 문제이다. 결국 유한자들에서 무한자이자 궁극적 해결사인 신에 이를 때는 일종의 근거 지움이 아니라 점핑(jumping)이 일어난다.

비트겐슈타인의 ‘딱정벌레’도 비슷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자기 만이 상자 속의 딱정벌레를 보았다고 하지만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딱정벌레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 각각이 보았다는 말을 최종적으로 근거지울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사실 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은 빼어난 저서들이나 과학적 발견들을 통해 자신들의 궁극의 연구 결과를 보여줄 수 있고, 예술가들도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그리고 기술자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생산한 기술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깨침을 상징하는 상자 속의 딱정벌레는 누구도 확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백분 양보를 해서 그런 깨달음의 존재에 대해 인정도 하지 않고 부정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그런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치열한 수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 만은 엄연한 ‘팩트’로 인정을 한다. 그런데 이런 팩트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똑같이 한다. 이를테면 최고의 경지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운동선수들도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노력을 하는 것이다.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예술가도 그렇고, 문자를 통해 최고의 작품을 쓰고자 하는 학자의 경우들도 마찬가지다.

깨친 자의 깨달음에 심오한 형이상학적 원리에 담겨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한 자들이 갖는 신비감이고 그릇된 신앙일 뿐이다. 때문에 깨달음을 가장한 자들이 몽매한 대중들을 데리고 사기 치는 경우는 역사에서 수도 없이 많이 있었다. 이런 오류나 그릇된 믿음에 빠지지 않기 위해 혹은 궁극의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깨달음이 진정 무엇인가?”라는 절박한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이를테면 “도道가 무엇인가?” “부처가 무엇인가?”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등 특정한 문제를 가지고 싸울 수도 있고, 만공 스님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처럼 오직 하나(一)를 잡을 수도 있고, 아예 그도 저도 아닌 ‘이 모꼬?’와 같이 무자화두(無字話頭)를 가지고도 수행 정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물음들이 도달하는 것이 무엇일까? 무나 도가 실체가 없듯, 깨달음의 실체도 없고 내용도 따로 없다. 칸트가 현상을 초월한 물자체(Ding an sich)의 세계를 말했지만, 도대체 현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본질이 어디에 있고, 본질을 담지 않은 현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장막 뒤에 무언가 있을 것이라고 들추어 보지만 그저 어둠뿐이 없는 것이다. 현상과 본질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깨달음과 일상도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불교의 언어로 말하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는 것이다.

석굴암 본존불 /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0240000,37&pageNo=1_1_1_0

부처가 오랜 수행 끝에 깨달은 것이 무얼까? 나는 아주 단순하다고 본다. 부처는 생(生) 속에 담긴 고(苦)를 본 것이고,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해탈)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통찰과 깨달음은 너무나 단순한 것이다. 이 단순한 통찰과 단순한 해법을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때문에 부처는 입적을 할 때 자신이 평생 설법한 8만 법문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예수도 마찬가지이다. 예수가 산상수훈에서 던졌던 메시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일까?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단순하다. 예수의 메시지는 너무나 분명하다. 그저 ‘사랑’이란 말이다. 구약이 ‘정의’를 세우고자 했다면 예수로부터 시작하는 신약은 ‘사랑’이 알파요 오메가이다. 사랑만이 우리가 삶을 지속할 이유이고,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이 사랑을 위해 스스로 십자가의 고통을 짊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양의 공자의 정신도 그리 복잡할 것 없다. 공자가 말한 인(仁)은 부처가 말한 자비와 예수의 사랑과 표현 언어는 달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 모두가 베풂과 보살핌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고, 우주 만물에까지 확장을 한다고 하면 생육의 도와 다르지가 않다. 남송의 주자는 리(理) 가 우주 만물의 원리라고 하는 태극도설(太極圖說)을 끌고 들어와 공자의 말씀을 형이상학의 차원으로 체계화해서 성리학을 세웠다. 조선의 선비들은 오로지 그것만이 공자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공부를 했지만 그들은 공자의 말을 너무 번쇄하게 만들고 너무 추상화시켰을 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공자의 사상은 너무나 단순 명확한 인(仁)에 다 들어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남을 내 몸처럼 생각하고, 나를 남들 속에서 보려고 하는 태도이다. 이것은 교양인이라면 누구든지 알 수 있고, 선한 마음을 갖는 자라면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지극히 단순한 말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대접 받고자 하는 바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과 같다. 세분 성인의 말씀이 이처럼 단순 명확한 것은 그들 모두가 삶에서 진실을 끌어 올렸었고, 삶에 깊숙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석가나 예수, 그리고 공자와 같은 성인들이 말씀한 이 단순한 원리가 후대로 갈수록 복잡한 교리로 체계화되고 형이상학적 원리로 추상화되고, 신비한 언설로 간주돼 삶과 유리되고 만 것이다. 그런 필연적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참으로 본질을 볼 수 있어야지 똥폼이나 잡고 허접데기 껍데기만 붙잡고 있으면 되겠는가?

출처: https://contents.premium.naver.com/leejongcheol/knowledge/contents/230121203900063sv

눈치(Noonchi)의 해석학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눈치(Noonchi)의 해석학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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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Noonchi)는 사태를 이해하는 한국인들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눈치가 없다’ 거나 ‘눈치가 빠르다’라는 말들은 거의 일상적으로 한국인들의 이해 방식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런 눈치가 과거에는 자기 검열의 방식이거나 처세술의 의미로서 부정적으로만 이해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상황 전체에 대한 빠른 인식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적극적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이 ‘눈치’의 개념을 생각하다 보면 다양한 해석의 소지가 있다. 이 눈치를 한국적 해석학의 차원에서 해석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눈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고 나쁨이 아니라 ‘속도’이다. ‘눈치가 빠르다’라는 말이 그렇다. ‘눈치가 빠르면 절간에서도 고기 맛을 본다’라는 말이 있다. 절(寺)은 채식을 하기 때문에 고기와는 거리가 먼 곳인데, 그런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이 이 눈치다. 그런데 여기서 ‘빠르다’라고 할 때의 ‘속도’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눈치가 빠르면 그만큼 상황을 빨리 인식하고 그에 따른 후속적 대처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이 말하는 ‘빨리빨리’는 이제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말이 되었지만, 한국인들은 이 특유의 ‘빨리빨리’의 정신에 의해 식민지와 전쟁 폐허의 상황을 겪고서도 이렇게 빨리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 한국인들에게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울지 몰라도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차이가 크다. ‘빨리빨리’의 문화를 반성하자는 말도 많지만, 이것은 디지털 시대에 더 잘 어울리는 정신이다.

뉴턴의 제2 운동 법칙인 f=ma에서 보듯, 가속도가 힘을 결정하는 주요 원인이다. 속도가 빠르면 일 처리도 빠르고 영향력도 클 수밖에 없다. 외국에서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그곳에서 인터넷 라인이 문제가 생겼거나 잘 달리던 차가 고장이 나서 A/S를 한 번 받으려면 얼마나 긴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한지 말이다. 한국의 배달 서비스는 분초를 다툰다. 물론 이것이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의미다. 과거 칭기즈칸의 군대가 빠른 시간에 전 세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빠른 기동력에 있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서 서쪽 끝을 오가는 그의 파발마는 하루 352km라는 상상 불가의 속도로 전달했고, 그의 군대의 이동 속도는 하루에 130km를 이동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현대의 군대들도 따라 잡지 못할 속도이다. 몽골의 기마병의 이동 속도는 너무나 빨라서 유럽의 기사들이 미처 대비책도 세우기 전에 순식간에 몰아쳐 헝가리 평원에서 유럽의 연합 기사단들을 전멸시켰다. 이로 인해 몽골 군대에 대해 유럽인들이 가졌던 공포나 트라우마는 대단했다. 그런데 내가 몽골에서 지내보며 알게 되었지만 이런 빠른 유전자들은 더는 몽골인들에게서가 아니라 한국인들에게 남아 있는 것 같다. ‘빨리빨리’의 정신은 무엇보다 빠른 상황 판단, 즉 눈치가 빠를 때 가능하다. 그 점에서 눈치에서 속도가 갖는 긍정성의 의미가 더 크다.

이런 빠른 눈치가 때로는 자기검열과 차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눈치가 보인다’거나 ‘눈치를 준다’라는 의미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일종의 단절감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상대의 행동을 제어하는 차별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이런 눈치를 남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조심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눈치는 간주관적(intersubjective) 인식 방식의 하나인데, 눈치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눈치에서 ‘속도’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상호 간 혹은 다자 간의 관계에서 아주 미묘한 차이와 기미, 이를테면 눈빛 혹은 얼굴 표정, 미세한 손동작이나 발동작 혹은 헛기침같이 모든 행동거지들이 하나의 해석을 위한 메시지로 작동할 때 나타난다. 그러므로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남들이 알아채기 힘든 것들 속에서 의미 있는 해석의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는 해석학자이고 기호학자이다. 반대로 그런 메시지를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사람들 역시 상당한 고수라고 할 수 있다. SNS의 단추를 보면 그냥 ‘좋아요’라는 버튼 말고도 ‘웃겨요’ ‘멋져요’ 슬퍼요’ ‘화나요’ 같은 감정 신호를 보여주는 버튼이 있고, 최근에는 ‘힘내요’라는 버튼까지 추가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감정 신호를 담은 버튼을 많이 누르는데 어떤 이들은 절대 그것을 보여주지 않고 무조건 ‘좋아요’만 누르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싫어도 싫다고 하지 않는다. 일종의 포커페이스 같은 이들의 행동을 보면서 상당한 고수라는 생각도 든다. 아예 잠행조차 하는 그런 보이지 않는 고수들이 SNS에는 의외로 많다.

그런데 마음을 감추고 눈치를 주지 않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모든 이를 무심코 평정하게 대하려면 무엇보다 내 마음이 평정해야 할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초연'(Gelassenheit)이란 개념이 이런 경지를 말할 수도 있다. 사물이나 인간들 간의 관계에서 특별히 어떤 마음을 내지 않고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 개념은 ‘들어가기(Sicheinlassen)’와 ‘나가기(Sichlosslassen)’의 양면성을 띠고 있다. 전자를 ‘몰입’이라 하고, 후자를 ‘거리 두기’라고도 한다. 이 두 개념을 염두에 두면서 생각을 더 해 보자. 사물이건 인간이건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해와 관심이 요구된다. 이러한 이해와 관심은 사랑과 증오, 거래와 배려 등 모든 관계에서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런 관심이 지나치다 보면 중독처럼 빠질 수도 있고, 집착처럼 상대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도하게 들어가는 것 혹은 몰입은 양자의 정상적 관계를 해칠 수도 있다. 스토커는 이런 거리 두기를 조절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장애라 할 수 있다.

나가기나 거리 두기는 이로부터 역방향으로 이루어진다. 거리를 두다 보면 상대를 더 정확하게 볼 수도 있고 더 잘 이해를 할 수도 있다. 바둑에서도 훈수 두는 사람이 더 잘 보는 경우가 그렇다. 예를 들어 자식의 미래를 걱정한 엄마가 아이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종종 부모 자식 간의 관계 혹은 무촌이라고 할 부부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지나치게 상대에 몰입할 때 나타난다. 이럴 때 상대와 반성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거리는 심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공간적 거리도 포함될 수 있다. 아무래도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다 보면 덜 집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는 SNS가 발달해서 이런 공간적 거리 유지가 잘 안되는 데서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들어가기와 나가기는 인간관계의 밸런스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개념이고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느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언급한 ’실천적 지혜‘(phronesis)에 해당한다. 

금강경에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는 곳 없는 곳에서 마음을 내다. 내 마음이 어떤 것에 머물다 보면 온갖 희로애락의 감정이 솟구친다. 그런 마음이 가라앉는 곳, 무심의 경지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런 마음이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일을 하거나 놀이에 빠지거나 음악을 듣거나 할 때 내가 빠져 있는 그런 상태가 내 마음이 머물지 않은 곳이고 무심의 경지이다. 이런 마음에 희로애락이나 재물욕이나 권세욕이 개입되니까 집착도 생기고 고통도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마음을 키울 수 있을까? 한국인들의 눈치가 결코 간단한 개념이 아니다. 눈치가 빨라야 알 수 있다.

출처: https://contents.premium.naver.com/leejongcheol/knowledge/contents/220602123804205zd

문제는 악의 평범성이 아니다!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문제는 악의 평범성이 아니다!

 

이종철(한철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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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여성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 학살자인 아이히만의 법정을 참관하고 내놓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은 널리 알려져 있다. 본인이 유태인으로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아렌트 입장에서는 도대체 나치 전범들은 어떻게 생겨 먹은 인간들이기에 그런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는가가 궁금했다. 아렌트는 이 법정을 참관하기 위해 한 학기 강의를 반납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법정 진술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나서 내놓은 진단은 너무나 평범했다. 아렌트는 유태인 학살과 같은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아이히만이 괴물 같은 존재가 아니라 그냥 이웃집에서 평범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 좋은 아저씨 같다고 했다. 실제로 아이히만은 대단히 가정적이고, 딸아이들 한 테는 좋은 아빠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런 범죄를 저질렀을까? 여기서 아렌트가 내놓은 진단이 저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괴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이웃들이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렌트에 따르면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행동하다 보니 저런 범죄에 휩쓸리고, 자신의 범죄 행위에 대해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은 것이다. 사고의 부재가 저런 엄청난 범죄를 야기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전혀 사고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아렌트는 여기서 제대로 사고하지 않았다고, 말하자면 반성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를 하지 않다 보니 저런 행동을 했다고 덧붙인다. 아렌트가 여기서 도출한 ‘악의 평범성’은 나치의 행태에 대한 거의 고전적인 해석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젊은 시절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밑에서 철학을 공부한 명민한 학생이 보기에 나치에 부역한 그녀의 스승 하이데거가 별생각 없이 행동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철학자의 나라 독일, 유럽에서도 가장 지성적이라고 자부했던 독일의 국민이 과연 아무런 생각 없이, 비판적이거나 반성적인 사고를 하지 않아서 나치에 열광하고, 유태인 학살과 같은 인종 청소에 동조를 했단 말인가? 나는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라는 진단이 틀렸다고 본다.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 없이 행동해서 저런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을 할 때도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파스칼의 말이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생각과 이성적 사고는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하는 종적인 차이(종차)이기도 하다. 그런 인간이 생각이 없이 행동했다는 말은 그 말의 의미를 백분 이해한다 하더라도 적확한 진단이 아니다. 인간은 생각이 없이 행동하다가 범죄를 저지르고 악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기적 욕망에 휩쓸리고 도덕적인 판단과 행동을 이끌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도덕은 오래전 플라톤이 이야기했듯 인간을 구성하는 이성이나 욕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사(military man) 들의 용기의 원천인 의지(will)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은 원인과 결과를 따지는 이성에 의해 자동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본능적인 감성과 욕구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전쟁터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싸움에 임하는 전사들의 용기와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길래 플라톤은 이성의 덕이 지혜이고, 절제가 욕구의 덕이라고 한 반면 의지의 덕은 전사들에게 요구되는 용기라고 말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 초판(1963) / 출처: 위키피디아

도덕적 행동을 의지에서 찾는 플라톤의 전통은 근대의 도덕 철학을 종합하고자 한 칸트에게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칸트는 ” 이 세계 안에서, 아니 그 밖에서조차 우리가 무제한적으로 선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선의지(Good will)뿐이다.”(도덕형이상학 원론)라고 말했다. 고대인들이 덕(virtue)이라고 간주했던 우수한 두뇌, 강인한 체력, 뛰어난 판단력 같은 것들도 그 밑에 선 의지가 깔려 있지 않다면 오히려 가장 큰 악덕이 될 수 있다. 빼어난 재능을 가진 자들이 가장 나쁜 악인이 될 수 있다는 예를 우리는 수도 없이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대인들이 중시한 덕이 아니라 선한 의지만이 덕이라고 칸트는 말한다. 그런데 이런 선 의지는 저절로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보자. 밤에 산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부상을 당해 신음을 하고 있는 광경을 보자. 산길을 갈 때 가장 두려운 존재는 산짐승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다. 그런데 밤중에 산길에서 부상당한 사람을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 대부분은 머리끝이 솟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자기도 똑같이 저런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설 것이다. 이 경우 감성적 판단은 끊임없이 두려움을 피하고 싶어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하는 이성적인 판단에 따르더라도 이성은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이 합리적 행동이라고 자위하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도덕적인 양심이 있는 사람은 두렵기도 하고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을 내가 구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선한 마음이 앞서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덕적 행동은 감정적 두려움과 이성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부상당한 사람을 돕는 것이다.

도덕이란 이처럼 전사들이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의무감에 따라 행동하듯, 감정과 이성을 넘어서 마땅히 선의지(양심)가 명령하는 바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내가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들이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적 욕망을 나치가 대변하고 있고, 그들이 반대할 경우 닥칠 수 있는 불이익이 두려워서 나치에 동조하거나 적극적으로 부역 행위를 하는 데 있다. 그것은 결코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욕구와 합리적인 이유에 따른 행동인 것이다. 이런 행동에 대해 아렌트처럼 생각 없이 행동한 것이라고 딱지를 붙일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단순화시킨다면 그것은 본질을 크게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 많은 학자들이 앵무새처럼 아렌트의 말을 반복하고 있을까? 정작 생각이 없다는 말,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은 학자들의 그런 태도에 있지 않을까?

아렌트가 말한 것과 다르게 ‘생각 없는 행동’이나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악은 단순히 선의 부재가 아니라 적극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훨씬 더 이기적이고 교활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선과 악을 결단하는 삶의 매 순간에서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하려는 선의지 와 그것을 관철시키려는 전사의 용기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의지와 전사의 용기야말로 플라톤과 칸트가 강조해 마지않았던 도덕의 본질이고 도덕적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출처: https://contents.premium.naver.com/leejongcheol/knowledge/contents/220527103113033qc

신영복 선생의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의 해석에 대한 비판 2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신영복 선생의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의 해석에 대한 비판 2

 

이종철(한철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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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學은 배움이고 탐구라는 의미에서 개별적인 것과 관련됩니다. 논어의 맨 앞에 나오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라는 구절에서도 학은 무수히 개별적인 것들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런 배움은 주로 외부 세계에 대한 경험이나 다른 저자들의 책에 대한 공부를 통해 얻는 것입니다. <논어>를 일관해서 학學은 배움의 과정이지 체계화된 학문(Wissenschaft)의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개별적인 배움의 의미를 이해 못 한다면 지식이나 경험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이고, 그런 수동적 경험은 최초의 경험에 대한 인상(impression)이나 지속에 대한 기억(memory)으로만 주어지지요. 근대의 경험론자들이 지식의 습득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들은 ‘백지상태'(tabla lassa)에서 경험을 통해 하나하나 쌓아 나가는 정도로 지식을 생각했지요. 이런 경험은 아무리 많이 쌓아도 그것이 보편적인 것에 대한 확실성을 부여하지는 못합니다.

반면 합리론자들은 경험 이전에 선험적으로(a priori)으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틀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실 이런 틀을 형이상학적인 것이라 배격할 수도 있겠지만, 인식 과정에서 우리는 일정한 개념적 틀이 없을 경우 이해와 인식을 하지 못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가 말하는 사思는 합리론자들이 말하는 인식의 틀이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칸트가 나중에 <순수이성비판>을 쓰면서 경험론자와 합리론자의 사유를 비판적으로 종합할 때 이런 표현을 사용합니다. 즉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고, 직관이 없는 개념은 공허하다.” 여기서 개념은 지성의 활동이고, 직관은 감성의 활동입니다.

이런 직관이 인식의 재료인데, 공자식으로 표현하면 외부 세계에 대한 배움이지요. 이런 배움이 없으면 아무리 30년 면벽을 해도 사유의 추상성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지요. 공자도 그와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내가 전에 하루 종일 먹지 않고, 밤새 자지도 않고 생각해 보지만 이득이 없었고 역시 배우는 것만 못했다.” (논어, 위령공 30). 주자도 그런 의미에서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해석할 때 격을 사물(대상)에 다가가 그 이치를 탐구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가 성즉리(性卽理)라 했을 때의 리는 세계의 객관적 질서를 함축하지요. 이러한 태도는 실재론 혹은 객관주의로 볼 수 있지요. 반면 왕양명은 격자를 마음 심자를 바로잡는 것으로 이해해서 심즉리(心卽理)라고 했는데, 이는 심학 혹은 관념론이나 주관주의로 발전했지요. 아무튼 사는 이러한 리를 깨우치는 생각의 활동입니다.

다시 칸트와 공자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지요. 칸트에 따르면, 경험적 자료에 일정한 형식을 부여할 수 없으면 그것을 이해하기가 힘들고, 이러한 형식이나 개념도 인식의 개별적 소재들이나 배움이 없다면 그저 공허한 형식에 불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가 말한 학과 사의 대비가 칸트에게서는 직관과 개념의 대비로 유추될 수 있지요. 그런데 신영복 선생은 이런 대비를 이해하지 못하고 뜬금없이 실천 이야기를 끌어들이면서 반대로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물론 모든 이론을 실천의 입장에서 일관되게 해석하려는 선생의 태도는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맥락과 상황을 무시한 채 무조건 실천의 잣대를 들이 대미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선생은 여기서 자신의 이런 실천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끌어온 내용을 인용합니다.

“자기의 경험적 사실을 곧 보편적 진리로 믿는 완강한 고집에서 나는 오히려 그 정수의 형태는 아니라 하더라도 신의와 주체성의 일면을 발견합니다… 경험이 비록 일면적이고 주관적이라는 한계를 갖는 것이긴 하나, 아직도 가치중립이라는 ‘인텔리의 안경’을 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는, 경험을 인식의 기초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공고한 신념이 부러우며, 경험이라는 대지에 튼튼히 발 딛고 있는 그 생각의 ‘확실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경험 고집은 주체적 실천의 가장 믿음직한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몸소 겪었다는 사실이 안겨주는 확실함과 애착은 어떠한 경우에도 쉬이 포기할 수 없는 저마다의 ‘진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선생은 여기서 경험주의적 실천의 신의와 주체성을 인텔리들의 가치 중립보다 위에 놓고 이런 경험 고집을 주체적 실천의 가장 믿음직한 동력으로 생각하고 나아가서 그것을 포기할 수 없는 ‘진실’로까지 신뢰합니다. 이러한 선생의 생각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경험주의의 완고한 고집은 마르크스나 엥겔스도 비판했듯 경험 추수주의에 빠질 수 있고, 공자식으로 말하면 ‘학이불사즉망’이고, 칸트식으로 말하면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blind)에 빠지”는 격이지요. 이들의 입장은 이론이나 생각이 없고 개념이 없을 경우에 빠지는 주관주의적 편견과 맹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점에서 공통성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선생은 오히려 정 반대로 생각한 것입니다. 선생이 이렇게까지 잘못 생각한 데는 사思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를 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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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부를 할 때 혹은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컨셉이나 사유의 틀을 이해하지 못하면 한참을 공부하거나 책을 읽어도 그 의미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선생은 어렸을 때 할아버지한테 제대로 배웠으면서도 감옥의 경험 속에서 오히려 정 반대로 곡해를 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책을 덮고 아무리 생각하거나 사유를 해도 남는 것이 없는 까닭은 아이에게 보편화시키는 개념적 틀이나 사유의 컨셉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지, 그냥 생각만 해서는 남는 것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지요. 선생의 이런 오류는 감옥에서 생각을 가르쳐 주는 선생이 없는 한계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선생의 이런 곡해는 일관되게 학이 경험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해주고, 사물이나 현상 상호 간에 맺고 있는 관계성을 깨닫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학을 특정한 문맥을 벗어나 사용할 때는 그런 의미를 띨 수가 있을지 몰라도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라는 말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지요.

거듭 지적하지만, 선생은 여기서 학을 학문의 체계, 체계적인 인식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학은 학이불사태망에서 처럼 공부를 해도 그것을 이해하게 해주는 개념적 사유의 틀이 없으면 어둡다(망)는 의미일 뿐입니다. 선생이 말하듯 관계성에 대한 자각과 성찰은 단순히 공부만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성과 사색을 통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사유의 형식이나 틀이 만들어져야만 가능한 것이지요. 사思는 개별적인 것에 대한 배움이 아니라 전체성과 통일성 혹은 맥락과 관계성에 대한 반성적이고 개념적인 이해이지요. 그런데 정 반대로 생각을 하다 보니 선생은 이론을 관념적으로만 생각하고 실천은 무조건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포이어바흐의 추상적 유물론에 대해 그것이 대상, 현실, 감성을 단순히 객체로만 파악한 것을 비판합니다. 오히려 마르크스는 그것을 주체적이고 실천적으로 파악한 것은 관념론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이론이나 사思 혹은 개념이 없는 경험 추수주의는 독단, 선생이 말하는 완고한 고집에 빠지는 오류를 보일 수 있는 것이지요.

내가 지금까지 다소 장황하게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에 대한 선생의 해석을 비판해 봤습니다. 물론 나의 이러한 비판으로 인해 <강의>라는 중국 고전에 대한 선생의 빼어난 책의 가치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선생이 살아계셨다고 한다면 이런 형태의 비판을 반기셨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 진리와 진실을 향해 가는 길동무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 길에서 서로 비판을 통해 배우고 새로운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비판에 열린 사유, 끊임없이 타자에게 대화의 창을 열어 놓는 개방성 만이 진리와 진실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출처: https://contents.premium.naver.com/leejongcheol/knowledge/contents/220802074316324ot

신영복 선생의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의 해석에 대한 비판 1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신영복 선생의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의 해석에 대한 비판 1

 

이종철(한철연 회원)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이 종철의 에세이 철학]에 실린 글을 저자의 동의를 얻어 소개합니다.

신영복 선생의 <강의>(돌베개, 2004)를 eBook으로 읽고 있다가 나의 생각과 다른 점이 있어서 몇 자 적어 봅니다. 중국의 고전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선생의 글은 읽기가 좋아 틈나는 대로 보고 있습니다. 동양의 고전과 철학을 감옥에서 독학으로 공부하고 사색한 선생의 사유는 깊이도 있고 단단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간혹 나의 시선으로 볼 때 적절하지 못한 대목이 눈에 거슬리기도 합니다. 그것이 단순한 해석의 차이가 아니라 명백한 오류일 경우에는 반드시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 책에서 선생은 서양의 존재론과 달리 동양은 철저히 관계론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선생이 서양을 존재론으로, 그리고 동양은 관계론으로 해석한 것 자체가 담고 있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존재론은 문맥상 실체론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잘 알다시피 서양의 존재론은 그것을 그것이게끔 해주는 원인, 즉 아르케(arche)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스의 밀레토스 해안 지방에서 최초로 시작한 자연철학은 존재의 궁극적 원인을 물이나 공기나 불처럼 가시적인 것에서 찾거나 혹은 수(number)나 형상(form)과 같은 비가적인 것에서 찾기도 했습니다.

이런 아르케를 개별자와 보편자 같은 실체(Substance)로 볼 것인지 아니면 변화하고 운동하는 관계(Relation)로 볼 것인지에 따라 존재론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존재는 하나이고 무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한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와 “만물은 변한다”(panth rhei)고 한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가 그 각각의 존재론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서양에서는 실체 존재론이 주류를 이루었고, 이런 현상은 근대의 합리론자들이나 경험론자들에 이르기까지 대세를 형성했습니다. 서양의 존재론이 운동이나 변화 그리고 관계를 인정하는 입장은 주로 사회와 역사를 철학의 대상으로 간주했던 비주류의 해석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면 동양의 존재론은 <주역>에서 드러나듯 모든 것을 변화의 도이자 관계의 그물망으로 인식합니다. 주역은 유불도 삼교의 공통된 정신을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영복 선생의 취지를 정확히 반영한다면 서양은 존재를 실체로 이해한 전통이 강했고, 동양은 관계로 이해한 전통이 강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지적한 문제는 아마추어로서 독학한 선생의 연구 배경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데 오늘 <논어>에 나오는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에 대한 선생의 해석은 상당한 오류를 담고 있기 때문에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선생은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라는 제목을 달아 놓았습니다. 중국의 고전을 일관되게 관계론과 실천의 관점에서 해석한 선생의 입장에서 충분히 붙일 수 있는 제목입니다. 선생은 이 부분을 “학學하되 사思하지 않으면 어둡고, 사思하되 학學하지 않으면 위태롭다.”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 번역으로 그 의미를 드러내기 힘든 것은 학學과 사思의 대비 형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요.

“사思의 구성도 전田과 심心, 즉 밭의 마음이고, 밭은 노동의 현장, 실천의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한자의 특성상 이런 글자 풀이가 의미는 있겠지만 그 글자가 들어 있는 문장의 맥락이나 선생이 늘 강조하는 다른 글자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상태에서 단순히 글자 자체를 해석하는 것은 오히려 선생이 경계하는 실체론적 사고에 갇힐 수가 있습니다.

선생은 자신의 이런 해석에 대해 전문 연구자(누군지 밝히지 않습니다)의 반론을 언급하면서 전田은 어린아이의 두개골에 있는 숨구멍이기 때문에 사思는 두뇌와 마음을 합한 것이라고 친절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두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고가 가슴이 아닌 뇌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거의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해석이고 견강부회로 곡해될 위험도 없지 않지요.

그런데 정작 문제는 선생이 학學을 보편적 사고로 간주하고 사思는 관념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하는 과거의 실천이나 그 기억 또는 주관적 관점으로 해석한 데 있습니다. 선생은 學而不思則罔에 대한 개인적 체험 이야기를 끌어들여 자신의 해석의 설득력을 높이려고 합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무릎 위에서 배운 이야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할아버지는 책을 읽고 나서 반드시 30분 정도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나중에 감옥에서 곰곰이 생각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책을 읽고 생각을 해도 머리에 남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뒤에 가서 언급하겠지만 이 대목은 선생이 곡해한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선생에 따르면,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 모두가 실천과 유리된 관념의 소요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思를 경험과 실천의 의미로 읽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선생은 드러 내놓고서 학이 보편적인 것(generalism)이고, 사는 특수한 것(specialism)이라고 규정합니다. 따라서 “‘학이불사즉망’의 의미는 현실적 조건이나 실천이 사상된 보편주의적 이론이 현실에 어둡고, ‘사이불즉태’는 특수한 경험적 지식을 보편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라고 주장합니다. 내가 보기에서 여기서 선생의 해석의 결정적인 오류가 나타납니다. 말하자면 선생은 학과 사를 정 반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 (다음회에 계속)


출처: https://contents.premium.naver.com/leejongcheol/knowledge/contents/220801121307818an

예술가와 철학자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예술가와 철학자

 

이종철(한철연 회원)

 

공공 철학자 김태창 선생님이 페이스북에서 매일 새벽마다 올려주시는 시들이 있다. “새벽 눈뜨면서 생명감각에 공진파동으로 울려 오는 *** 시인의 시 한수”에 여러 시인들의 시를 담고, 그에 대해 선생님이 간단한 느낌을 적은 것이다. 90이 넘은 선생님이 이런 일을 매일같이 하는 마음은 무언가 베풀려는 보살심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시를 읽기 힘든 세상에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시나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나는 ‘시인이나 소설가의 작업과 철학자의 작업의 차이가 어디에 있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모두가 생각의 표현일 텐데 왜 예술가들은 이렇게 표현하고 왜 철학자들은 저렇게 표현할까, 서로 분야는 다르지만, 이들 간에 경계를 넘어서 소통하는 방법은 없을까? 등등이 꼬리를 문다. 과연 이들 간의 차이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철학자의 입장에서 시인이나 소설가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많이 배우기도 한다.

시인들이나 소설가들은 남의 생각을 끌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자 애를 쓴다. 물론 다른 시인이나 소설가의 작품을 통해 영감을 얻고 상상력의 자극을 받기는 하겠지만 그것을 표현할 때는 오로지 자신의 생각 속에 완전히 용해된 상태로 표현한다. 이들은 이러한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언어에 절대적으로 의존을 하기 때문에, 모국어에 대한 이해와 사용이 대단하다. 특히 시인들은 즉물적이고 구체적인 한국어의 특성만으로도 좋은 시를 쓰기도 한다.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가 특히 그렇다. 무엇보다시나 소설 작품 속에는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와 세계, 그리고 일상이 잘 드러나 있다. 황석영이나 조정래, 박경리 등의 대하소설을 읽다 보면 과거 한국인들의 삶과 시대와 생각들은 직접 체험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쉽게 공감할 수가 있다.

반면 동서고금의 철학을 막론하고 한국의 철학자들 대부분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타자의 생각을 수입해서 해설하고 해석하는 일을 많이 한다. 게다가 이들의 언어 역시 타자로부터 빌려온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한결같이 이들은 언어의 국적, 모국어의 특별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서양 철학의 경우는 거의 번역 수준의 개념어들이 난무하고, 동양 철학의 경우는 한자와 한문을 모르고서는 읽기조차 힘든 글들도 많다. 오래전 불교 유식학에 관한 논문 발표에 참석했을 때 유식학의 오랜 전통에서 사용하던 알 수 없는 개념들이 너무 많아서 비판적인 지적을 한 적이 있다. ‘도대체 이렇게 글을 쓰면 다른 전공자들이 어떻게 유식학의 보편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더니 자신들은 그게 훨씬 익숙하며, 풀어서 쓰면 오히려 비판을 받는다고 말한다. 한국 불교는 중국 불교의 영향 아래에서 크다 보니 한자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아 왔다. 하지만 이런 한자어 개념이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의 원어와 같을 수가 없지 않은가? 또한, 시인이나 소설가와 달리 철학자들은 끊임없이 타자의 시대와 역사 그리고 생각에만 매이다 보니 자신들의 시대와 세계 그리고 역사 등이 빠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철학은 사유 속에 포착된 시대”라는 헤겔의 표현을 입에 달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생각하는 시대와 세계 그리고 역사는 서양의 근대일 뿐이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과 영국의 산업 혁명에 대해서는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사는 시대와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 상태이다.

지난주 “K-민주주의는 가능한가?”라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심포지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발표자 중의 한 사람이 “왜 한국의 철학자들은 자기 생각을 못 하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철학자들은 단군 이래 엄청난 논문을 쏟아 내면서도 끊임없이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느끼고 있다. 모두가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에서 예술가들과 철학의 차이가 이렇게 큰 까닭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철학자들은 ‘자기 스스로 독립적으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기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자기가 사는 시대와 역사를 개념화하지 못하는 것들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철학이 여전히 ‘우리 철학’이나 ‘K-철학’을 이야기하면서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을 보면 한국 철학은 아직 사춘기 단계인 듯하다. 왜냐하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인생의 발전에서 사춘기 시절에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의 철학자들이 좀 더 치열한 반성을 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고, 이런 물음을 통해 언젠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자신들의 철학을 할 때가 올 것이라는 의미도 있다. 나는 “K-민주주의는 가능한가?”라는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젊은 학자들에게서 그런 가능성을 보았다. 질문하고 풀어가는 방식이 달랐다.


 

<에세이 철학>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에세이 철학>

 

‘에세이 철학’은 “일상을 철학화하고, 철학을 일상화할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철학을 하는 데 있어 굳이 다른 사상가의 철학을 빌려올 필요가 없다. 내가 네이버 <지식 저술가> 프로젝트에 제출한 ‘에세이 철학’의 목표이다.

이러한 목표를 고려한다면 ‘에세이 철학’은 불교의 선(禪)과 맥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당나라의 선불교는 잘 알다시피 스님들이 염불하는 법당이 아니라 모두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죽은 경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언어에서 불법을 찾는 중국 불교의 새로운 정신이다. 일자무식인 6조 혜능은 홍인 선사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主 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낸다)’란 금강경 강론을 듣고 홀연히 깨달음을 얻는다. 이러한 깨달음에는 번거로운 절차도 없고, 온갖 언어 수식도 필요 없다. 오로지 행주좌와 일심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에 홀연히 얻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부닥치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자 하는 창조적 정신만이 중요하다. 임제 선사가 말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의 정신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는 칼을 든 사무라이와 그 정신이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에세이 철학’은 일상을 철학화하고 철학을 일상화할 때 그 어떤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 전통적인 철학의 주제들, 동과 서, 옛날과 지금의 수많은 철학자에 올라타거나 그들의 사상을 빌려오지 않는다. ‘에세이 철학’은 ‘지금 이 순간'(hic et nunc)을 철학의 대상으로 삼는다. 일상에서 부닥치는 모든 대상과 경험들을 철학적 텍스트로 삼아 그것을 비판하고 성찰하면서 철학적 통찰의 깊이를 드러내어 준다. 그러므로 ‘에세이 철학’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선의 정신처럼 모든 권위와 우상의 파괴를 시도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한 4대 우상, 즉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언어의 우상’ 외에도 ‘권력과 국가의 우상’ 등 일체의 권위와 우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에세이 철학은 모든 가치를 부정한 니체의 ‘망치의 철학’을 구현하고자 할 뿐 실체화되고 화석화된 이론에 집착하지 않는다. ‘에세이 철학’은 저 너머의 형이상학을 부정하고,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추상개념들의 몰 주체성도 비판한다.

하지만 ‘에세이 철학’과 ‘선불교’는 근본적으로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도 있다. 불립문자를 추구하는 선은 언어의 끝, 문자의 종언을 주장하는 데 반해, ‘에세이 철학’은 모든 것을 언어로 표현하고자 한다. ‘에세이 철학’을 굳이 선으로 표현한다면 ‘문자선’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21세기에 부활한 선불교의 변형된 형태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문자는 어떤 경우든지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문자를 버린다면 문자가 부재하는 그 세계는 이 세계가 아니고 이 세계와 무관한 세계이다. 이 세계를 초월한 깨달음이 소수에게 가능할지 몰라도, 그것은 이 세계의 다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깨달음의 궁극 목적[상구보리(上求菩提)]은 이 세상과 나누기 위함이고[하화중생(下化衆生)],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함(마르크스)이다. 이러한 정신은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깨달은 이, 모든 인텔리겐차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밖으로 나가 빛을 본 계몽된 인텔리겐차는 동굴 속에 갇혀 있는 자신의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동굴 속으로 귀환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세이 철학’은 선의 문자화, 선의 일상화를 통해 지금 여기에서 깨달음을 구하고 진리의 왕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가장 현실적인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에세이 철학은 그동안 이 땅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추구해 마지아니했으나 누구도 시도치 못한 ‘우리 철학’의 방법론이자 그 철학 자체이다. 지금까지 ‘우리 철학’을 모색한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우리 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내 걸었으나 문전에서 머뭇거렸을 뿐 누구도 그것을 시도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칸트식의 물음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를 못했다. 하지만 내가 수영을 할 수 있는가나 내가 말을 탈 수 있는가는 ‘어떻게’라는 질문을 백날 던져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물속에 뛰어들어 허우적거리면서 배우는 것이고, 말 등에 올라탔을 때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자명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다 보니 그간 ‘우리 철학’을 그렇게 탐구했으면서도 누구도 그런 작업을 구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에세이 철학은 우리의 시대, 우리의 삶을 대상으로 우리의 언어와 우리의 사유를 가지고 표현하고자 한 우리의 철학이다. 더 이상 그것 바깥을 추구하지 않고, 그것 자체를 사유하고 통찰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에세이 철학은 ‘타자의 철학’이 아니라 그 말의 정확한 의미에서 ‘우리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필자: 이종철 철학박사

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를 읽고…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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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를 지금 막 다 읽었다. 출간되자마자 화제에 올랐고, 일전에 오구라 기조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리와 기로 해석한 한국사회』라는 책을 읽고 강한 인상을 받은 터라 한 번은 꼭 읽어보고 싶었다. 마침 이 책을 번역한 이신철 선생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동료이고, 그가 책까지 한 권 보내 주어서 그 기회를 앞당길 수 있었다. 아무튼 이 책을 펼쳐 들고 중반까지는 꼼꼼하게 읽었으나 뒤로 갈수록 간략하게 넘기다 보니까 대 여섯 시간 만에 다 읽기는 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장을 덮은 다음 곰곰히 생각을 했다. 한국인도 아닌 외국인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사상가들뿐 아니라 어쩌면 한국인들이 쓴다 해도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을 인물들까지 들춰내서 세밀하게 쓴 것이 대단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엄청난 연구와 독서의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그 수준이나 성과 여부와 상관없이 조선의 사상사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과 그것을 학문적으로 표현해준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이다. 다음으로 일본 학자가 이런 책을 쓰는 동안에 한국의 학자들은 무엇을 했냐는 자괴심마저 들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이 나왔을 때도 주로 호기심 많은 저널리스트만이 크고 작은 관심으로 책을 소개하기도 하고 깊이 있는 서평을 써주었다. 정작 학문적으로 연관이 있는 학자 중에는 누구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 기이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마도 학자적 양심이나 부끄러움 때문이거나 혹은 그마저도 없이 한국의 학자들이 이제 공부도 안 하고 문제의식도 없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의심이 어느 정도 합리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 도대체 한국의 학자들 -특히 인문학자들-은 두더지처럼 자기 구멍만 팔 줄 알지 다른 학자들과 소통이나 논쟁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오구라 기조 교수의 책에 대해서도 똑같이 침묵하는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마저 든다. 지난 30여 년 동안 연구자들의 수가 매우 늘어났고 그 수준도 높아졌지만, 그저 논문 기계들처럼 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 사냥하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다른 학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도통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이 인문학자들의 현실이다. 만일 한국의 인문학계가 이런 학문적 무관심과 불통을 계속한다면 가뜩이나 인문학의 소외 현상을 넘어서 미래가 더욱 암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서평을 쓰면서 이런 푸념식의 비판부터 하는 나 자신의 마음도 편치는 못하다. 내가 한국학이나 한국철학을 전공하는 학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런 서평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렇다. 어쨋든 이런 마음을 염두에 두면서 『조선사상사』를 살펴보자.

 

2.

조선의 사상사 전체를 통람한다는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의 분량을 많다고는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단군신화에서 시작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부터 고려와 조선 그리고 조선 말기 동학과 개화사상, 식민지 시대의 사상과 북조선의 주체사상과 현대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정치가들과 사상가들의 사상까지 기술하고 문학가들의 작품까지 빠짐없이 빼곡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런 작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앞서도 이야기를 했듯 저자의 엄청난 독서 외에도 수많은 사상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파악해서 간단하고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필체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본다면 오구라 기조 교수는 전작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리와 기로 해석한 한국사회』에서 보여주었듯 복잡한 현실과 사상을 단순화하는데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필자와 같은 문외한도 신라의 원효와 의상, 고려의 지눌의 돈오점수의 불교, 조선의 태극논쟁, 사단칠정 논쟁, 인심도심논쟁, 인물성동이논쟁 등 수많은 사상의 갈래들을 어렴풋하나마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저자의 명쾌한 설명과 간결한 문체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비록 상세한 내용을 담지 않았더라도 조선 사상사 전체에 대한 소묘를 잘 해냈다는 점에서 빼어난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나 자신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다른 이들에게 충분히 권할 만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3.

필자는 이 책 전체를 작은 지면에서 다 다룰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으면서 특별히 저자가 강조한 입장이나 시각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언급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오구라 기조 교수는 이 책 모두에서 조선사상사의 특징이 무엇인가에 대해 일본과 비교해서 기술하고 있다. “일본 문화가 외부로부터 도래하는 문화에 대해 브리콜라주(수선)적인 포섭 방법을 취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조선은 “외부로부터 도래한 사상이 기존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변을 추진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고려 시대에 불교가 사회 변혁을 시도했고, 조선에서는 주자학이 국가의 통치 이념이 되면서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꿨다. 이런 전통은 현대에 들어서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 공산주의라는 사상(주체사상)이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일본과 다르게 조선에서 ‘사상의 혁명적인 정치적 역할’의 크기가 막대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오구라 교수는 이 책을 쓰면서 “순수성, 하이브리드성, 정보, 생명, 영성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에 특별히 주목한다고 했다. 조선(이때의 조선은 이성계가 개국한 특수한 의미의 조선이 아니라 단군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을 일컫는 보편적 의미를 띠고 있다) 사상사를 개관한다보면 일본이나 중국의 사상사와 달리 ‘순수성을 둘러싼 격렬한 투쟁’이 강하게 드러나고, 이런 현상은 현대에 와서도 남조선과 북조선 간의 이데올로기 대립, 그리고 저자가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오늘날 한국에서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진영논리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사상의 순수성을 둘러싼 이러한 투쟁은 대개는 중화주의의 틀 안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조선 사상의 독창성 결여와 중국에 대한 종속성과 같은 비판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와는 달리 순수성에 대한 반대의 축에는 불순성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조선의 주자학이 지배하던 당시에도 양명학과 서학이 다른 사상으로 존재했고, 유불도 3교 내지 샤머니즘을 포함한 4교와 같은 혼연일체형의 ‘하이브리드 사상’이 조선사상을 특징지운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 보듯 외래 사상의 유입을 차단하는 ‘정보의 컨트롤’이 지배적이었다. 16세기 말에 서양의 사상과 문물이 대거 동아시아로 밀려 들어 왔을 때 일본에서는 가톨릭 다이묘가 나오거나 남만 사상이 유행했으나 조선의 지배층은 철저하게 이런 정보를 통제했다. 사상의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이런 조치는 19세기 말 외래 사상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보여주는 ‘위정척사’ 운동이나 대원군의 쇄국정책, 더 나아가서는 북조선이 주체사상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외부로부터의 사상의 유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데서도 잘 보인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전면적인 순수성의 추구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하이브리드성이 하나의 조선 속에 공존한다고 보는 것은 일종의 억지이거나 무리한 해석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아포리아(aporia)에 직면해서 오구라 교수의 해석의 장점이자 조선사상의 특별한 장점이 드러난다. 오구라 교수는 일견 상호 대립하는 순수성과 하이브리드성, 정보의 통제와 개방 간의 대립을 아우르고 넘어서는 정신의 현상이 조선에는 분명하게 있다고 한다. 그는 이것을 ‘영성’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신라의 원효의 화쟁사상부터 퇴계의 이기호발설, 그리고 19세기 조선말 경주 지방에서 등장한 최제우의 불여기연과 동학 사상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오구라 교수는 이것을 ‘영성의 네트워크’로 부르고, 이것이 “조선사상사 전체를 움직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동력이 되고 있다”고 까지 확신한다. 그는 자신의 이런 주장을 특별히 뒷받침하기 위해 퇴계와 최제우의 사상적 연결을 경상도라는 특수한 유대까지 거론하면서 강조하고 있다. 오구라 교수는 이런 영성이 순수성을 둘러싼 유별난 투쟁사와 외래 사상 간의 다양성과 공존을 하나로 엮어줄 수 있는 특별한 지지대라고 보는 것이다.

 

4.

그러면 마지막으로 오구라 교수의 이런 입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나의 생각을 피력해보고자 한다. 먼저 하나의 사상이 한 시대, 한 사회를 완전히 지배하고 개벽한다는 입장부터 보자.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는 특별히 종교적 심성이 강하다는 주장이 있다. 이런 종교적 의식 때문에 신라와 고려에서는 불교가 하나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사회를 이끌었고, 조선에서는 성리학의 통치 이념을 제시했다. 근대에 들어와서 새로 유입된 기독교가 유교를 대신하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믿는 대표적인 종교가 되기도 했다. 사실 기독교가 한국에서 이토록 대표적인 종교가 된 현상은 중국과 일본의 경우와 비교한다면 한국인들의 유별난 종교의식 말고는 달리 설명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러한 의식의 지반 속에서 그것이 불교이든 유교이든 아니면 기독교이든 시대가 변화하면서 지배적인 이념(이데올로기) 역할을 해왔다고 할 것이다. 만약 이처럼 종교에 대한 귀속 의식이 없다고 하면 어떤 하나의 절대적인 사상이나 종교에 의해 그 사회 전체를 이끌어가는 통치 이데올로기가 나올 수는 없지 않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 점에서 오구라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조선은 외래 사상에 대해 일본이 자신들의 틀 속에서 수선하고 개량하는 태도 보다는 전면적으로 수용해서 지배 사상으로 만들고, 그것의 동력이 다한다면 새로운 피를 수혈하듯 새로운 사상으로 전면적으로 대체하는 태도를 반복한다고 할 것이다. 때문에 오구라 교수의 일반화에 대해 한국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특별히 반박하기가 어렵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한 시대나 사회 안에서 대립적인 사상이나 종교 혹은 경향이 모순적으로 대립하면서도 그 사회를 파멸로 이끌지 않는 특별한 이유를 조선사상의 ‘영성’에서 찾는 오구라 교수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사실 ‘영성’이란 표현은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말도 아니고 계산적인 이성의 합리성 틀 내에서 파악할 수 있는 개념도 아니다. 이러한 영성은 다분히 종교적 측면이 담겨 있고, 좀 더 철학적으로 표현한다면 감성과 이성을 넘어선 ‘정신'(Geist/sprit)의 측면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것은 경험적이고 가시적인 영역을 넘어서려는 인간 정신의 초월성, 상호 대립하고 모순된 것들을 아우르고 넘어설 수 있는 신비와 형이상학적 사유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런 영성은 사상사적으로 볼 때 장점도 있는 반면에 단점도 적지 않다. 굳이 서양철학의 칸트를 끌어들여 설명한다면 그것은 경험적 직관이나 과학적인 범주를 넘어선 형이상학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이성 비판을 통해 이성의 필연적 지식이 가능한 영역과 그것을 넘어선 영역을 구분하고, 과학으로 종교를 재단하려 한다든지 아니면 종교를 가지고 과학을 지배하려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런 의미에서 영성은 인간 정신의 초월이자 종교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영성을 과학의 세계 안에서 필연적으로 설명을 할 수는 없어도, 그것은 끊임없이 이성과 감성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 그 세계 안에서 설명이 불가능한 것을 설명하고 그 세계 안으로 강력한 에네르기를 불어 넣을 수도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이나 종교적 부흥을 이끌기 위한 영성 운동 같은 경우들이 그렇다. 어느 정도 신비주의의 영역에 맞닿아 있는 이런 영성이 조선사상사를 꿰뚫는 대립물의 화해와 통합의 정신에서 나타나서 끊임없이 사상의 활력을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구라 교수가 영성을 강조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입장으로 볼 때 그것을 ‘영성’이라고 표현한 것 자체가 익숙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앞서 기술한 것처럼 ‘영성’이란 말을 통해 오구라 교수의 취지에 충분히 공감은 하지만 그것을 좀 더 한국인들의 의식 세계를 설명하는 보편적인 언어로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불교나 유교 그리고 현대의 기독교는 한국인들에게는 외래 사상이라고 볼 수가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한국인들의 무의식 세계 저변에는 동아시아의 오랜 샤먼의 전통이 깔려 있다. 한국인들의 무의식 속에서 이런 샤머니즘은 외래 사상을 끌어들여 그 속에서 용해하는 거대한 용광로의 불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와 기독교의 경우는 샤머니즘과의 친화성이 두드러져 나타나고, 엄격한 성리학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조선에서도 왕실 깊숙한 세계나 기층민중의 세계에서 샤머니즘의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오구라 기조 교수는 그것을 특별히 원효의 화쟁사상과 퇴계의 이발호발설, 그리고 최제우의 불연기연 사상에서 보듯 사상적인 대립을 넘어서는 초월적 정신의 수준과 연결한다는 점에서 특색이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 흐르는 면면한 정신은 동아시아의 샤먼적 전통 (최치원이 말한 풍월도)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영성’이란 표현보다 ‘샤먼’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상과 철학사 안으로 샤먼의 무의식을 끌어들이려고 한다면 진저리를 칠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다.

 

오구라 기조 교수의 『조선사상사』를 주마간산 격으로 읽기는 했지만 느끼는 바는 컸다. 이렇게 생각거리를 많이 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의미가 크다. 이 책을 기점으로 한국의 학자들도 사상사와 철학사의 기술에 적극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그동안 서양 사상을 수입하고 중국 사상을 반복하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제 나라의 사상사를 일본 학자의 저술을 통해 배운다는 것은 학문적 자존심도 걸려 있고, 학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획득형질도 유전되는 괴이한 사회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획득형질도 유전되는 괴이한 사회

 

이종철(연세대)

 

한국인들이 첫 만남에서 빠지지 않고 묻는 말이 있다. 고향이 어디고, 나이가 몇이며(혹은 학번이 어떻게 되고), 학교는 어디를 나왔냐는 거다. 연줄이 중요한 사회다 보니 이런 식으로 고향과 나이 그리고 출신 학교로 상대가 나와 연줄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연줄만 확인하면 좋은데, 문제는 이런 세 가지 연줄에 기초해서 바로 위계(hierachy)를 설정하는 것이다. ‘아, 같은 고향 사람이네’라고 확인이 되면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어제까지 생면부지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웃사촌들보다 더 가까워진다. 아울러 출신 학교를 물으면서 동문 여부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가방끈의 길이와 레벨까지 평가한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70~80년대는 지방의 명문 국립대들이 있어서 어느 정도 다양성이 있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이른바 인서울 대학과 지잡대로 훨씬 단순화시켜 버린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첫 대면은 단 몇 분이면 이런 견적서를 교환하면서 상대를 내편 네편으로 편 가르고 평가하는 과정이 되어 버린다.

이런 행태는 나이를 많이 먹었건 젊었건, 한국 안에서이건 아니면 유학을 가거나 해외에서 사람들을 만나건 간에 거의 변함이 없다. 한 번은 내가 해외에서 동문 모임에 참석했을 때 그 자리에 주재국 대사의 부인이 동문의 일원으로 참석한 적이 있었다. 외국에서 대사의 지위는 본국의 대통령에 버금갈 정도라 할 수 있고, 그 부인은 이른바 영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동문회 모임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녀는 위로 20~30년도 더 된 선배들 틈에 끼여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고, 비슷한 또래들과 모임 뒤치다꺼리하다가 나중에 전체 사진을 촬영할 때는 뒷자리 옆으로 비켜서 찍었다. 대사 부인으로서 존재감을 전혀 과시하지 못한 것은 안에서나 밖에서나 동문 간 학번에 따른 서열을 무시하지 못한 탓이다.

내가 아는 모 선배 교수는 독일의 대학에서 70~80년대 유학 생활을 할 때 같은 한국 유학생들 모임에서 진저리가 났던 경험을 나에게 토로한 적이 있었다. 공부하러 외국에 나왔으면서도 여전히 한국의 출신 대학을 따지고 학번을 따지면서 끼리끼리 놀더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가 있었던 지역에는 한국에서 광부로 일하러 온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 경우는 가방끈 길이와 직업마저 문제가 됐었다고 한다. 70~80년대는 한국의 유신 독재와 광주의 경험에 대해 비판하고 저항하는 운동이 해외에서도 적지 않았는데, 그런 진보적인 그룹 안에서도 여전히 학벌과 대학 그리고 학번 등이 보이지 않는 장벽과 차별의 원인이 되곤 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내부에서 출신 학교와 학번을 절대 밝히지 말자는 다짐까지 했다고 한다.

한국인들의 이런 패거리 의식과 서열 의식은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을 불문율처럼 생각하면서 제대하고 나서도 자기들 집단을 과시하는 모자와 군복을 입고 지역마다 치안을 맡는다는 일부 해병대 출신들의 행태처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청소년기의 특정 시점에 그저 암기식의 공부를 해서 얻은 점수를 가지고 대학을 들어간 것까지는 그나마 인정해주겠지만, 그것이 평생의 삶을 평가하는 절대 기준처럼 작동하는 사회도 정말 괴기하게 보일 정도로 문제다.

 

한국에서는 특정 대학 출신 여부가 나중에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 임용에도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른바 선진국 대학에서는 전공 학과와 학적을 옮길 때마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한국에서는 절대 금물이며 오히려 부정적 평가로 작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를테면 비서울대 출신이 대학원을 서울대로 진학해서 그곳에서 학위를 받거나 아니면 외국 유학을 가서 받은 경우에도 중요한 평가 기준은 학부를 어디 나왔느냐에 있다. 이런 이야기가 전혀 농담이 아닌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몇 년 전 서울대 학부에서 순혈주의 운운하면서 석박사 과정을 다니는 비서울대 출신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식으로 학내 게시판에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그래도 명색이 한국에서 최고 명문 대학이라고 하는 곳에서 이렇게 유치 찬란한 출신 논쟁을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학벌 의식이 저급한 의식 수준 이상으로 무의식적 수준에서까지 작동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철학자 한 분은 자신이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학문적 업적과 활동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자리를 못 잡은 이유를 ‘학부를 서울대 나오지 못한 탓’으로 돌려서 말한 적이 있다. 본래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이 생물학 불변의 법칙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의 정신세계에서는 절대적으로, 그리고 대를 이어 유전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괴이한 의식이 포스트 모던 논쟁도 더는 힘을 잃고, 21세기 4차 산업 혁명의 문턱에 들어서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운운하는 시대에 세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이상의 얘기들은 절대 꾸며냈거나 과장한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정치권에서 이슈화되고 있다.

 

한림대 출신의 젊은 여성 정치인으로 지난 대선에서 20대 여성의 돌풍을 일으킨 박지현이 민주당의 비대위 공동 위원장을 맡자 그이에게 당장 시비를 거는 말이 20대 여성이라는 말보다 한림대 출신이라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지잡대 출신이 어떻게 SKY가 즐비한 정계에 명함을 내밀 수 있느냐가 그들의 절대 관심사다. 그들에게는 정치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가방끈이 어떤 색깔이고 얼마나 긴지가 더 중요하다. 천안함 몇 주기를 잘못 말했다고 해서 정치인 자격이 없다는 명분을 제시하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지잡대에 대한 경멸이 깔려 있다. 그러나 그런 암기식의 지식은 구글과 빅데이터가 지배하는 시대에 조금의 의미도 없는 것이다. 오직 암기식 교육으로 엘리트 코스를 거친 헛똑똑이들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지난 수십 년의 한국 정치사를 돌이켜 보면, 이런 가방끈을 가지고 그동안 유신과 군사정권이 끝난 이래 거의 30여 년 이상을 서울 법대 출신들이 한국 정계를 장악하고 지배해왔다. 하지만 그들은 회전문과 전관예우를 이용해 한국 정치의 보수 기득권 세력을 형성하는 데 앞장섰을 뿐이다. 오히려 이 한국 정치를 개혁하고 선도한 것은 김대중이나 노무현처럼 고졸 상고 출신이 더 큰 역할을 해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라는 것은 그저 학교에서 암기식으로 배운 지식이나 육법전서를 달달 외어서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정치는 오래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필연적 지식을 다루는 계산적 이성의 수준을 넘어서 인간, 그것도 사회적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정서, 쓰고 단 경험, 대중과의 교감과 리더십, 그리고 고통과 인내심 등 수많은 복합적 변수를 담고 있다. 오죽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는 인생의 쓰고 단 경험을 어느 정도 겪은 50대에 들어서야 알 수가 있다고 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지혜는 필연적 지식을 말하는 에피스테메(episteme)가 아니라 개연적 지식인 독사(doxa)도 포괄하는 프로네시스(pronesis)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나 역시 같은 맥락에서 철학자로서 솔직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정치는 암기식 교육에 일찍부터 길들어진 SKY 출신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일단 이들은 성장 교육의 과정에서 ‘No!’라고 말한다든지 일탈을 경험하지 못한 모범생(범생이)에 가깝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일수록 부모나 선생의 말을 잘 따르는 순둥이일 경우가 많다. 머리가 아주 비상해서 일반적 잣대로 평가하기 어려운 경우를 제외한다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타자의 명령에 잘 순응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므로 이들은 부모나 선생이 시키는 일을 수동적으로 잘할지 몰라도 자기 스스로 생각한다든지 변화와 개혁을 시도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수동형의 순응적 인간보다는 능동적이며 주체적, 창의적이 도전적인 인간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이런 요구는 특히 정치권에 필요한데 도대체 순둥이들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가 있겠는가?

둘째로, SKY 출신들은 학교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나설 때까지 우수한 학교 성적을 쟁취하기 위한 무수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오로지 자기만 알고 남을 배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존의 기술이자 법칙으로 귀에 따갑도록 들어왔다. ‘아생살타’(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한다)는 그들의 삶을 지탱해온 제1원칙이다. 성장 과정에서 이런 식의 생존경쟁에 익숙한 이른바 엘리트들에게는 자기 독선적인 이기심이 일반 대중들보다 훨씬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들은 가정과 학교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서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면 이해를 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그런 현상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기가 십상이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과정에서 늘 일등만 꿈꿨던 이들이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반면 정치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타협과 연대 그리고 공생을 요구하는 분야인데, 독선적이고 오만한 인간들이 어떻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와 국가를 만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런 인간들로 채워진 한국의 정계가 타협과 협력보다는 유아독존식의 일방통행과 투쟁으로 점철된 현상을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정치사가 웅변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런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들이 끊임없이 현대 세계에서 요구되는 변화와 개혁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SKY 출신의 법조인들이 정계에 들어오는 관문은 대개가 보수고, 들어와서도 대부분은 보수 정당에 터를 잡는 경우가 그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일본의 엘리트 가문이나 학벌 중심의 정치가 대표적으로 그런 경우인데, 오늘날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보면 그 폐해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들 엘리트 가문과 학벌 출신의 정치인들이 대를 이어 자민당의 핵심 기득권 세력을 유지하면서 일본의 개혁과 개방을 철저히 외면하고 극우 보수주의로 이끌어 온 결과 이제 일본은 사회 전반의 탄력을 상실하고 이류 국가로 전락하고 있다. 지금 한국 정치가 엘리트 중심을 벗어나 나 가방끈이나 지역을 불문하고 역량 있는 새로운 피를 수혈하지 못한다면 한국 정치도 머지않아 일본의 나쁜 길을 답습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정치는 엘리트주의로 길들어진 SKY 출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일등만 꿈꿨고, 자기중심의 독선에 빠진 하버드 출신의 이준석보다는 한림대 출신의 참신한 여성 정치인 박지현에게 더 큰 기대와 희망을 건다. 형식적인 학벌을 껍데기로 둘러쓰고 온갖 불평등과 차별을 은폐시키고 있는 능력주의를 그 의미도 제대로 모른 채 떠드는 이준석보다는 지역과 대학과 나이와 성의 차별을 온몸으로 깨달으면서 이 사회의 근본문제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무엇을 바꾸고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위해 분투하는 박지현이 한국 사회의 미래 정치의 상징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에서 대학의 비중은 지금보다 훨씬 더 줄어들 것이다. 학교 안이 아니라 학교 밖이 더 중요해지는 세상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적인 기후 변화 운동을 이끄는 어리지만 아주 당찬 여성 스웨덴의 툰베리(Greta Thunberg, 2003년생)가 그런 모습을 앞장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사진: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출처: https://www.greenqueen.com.hk/7-things-you-didnt-know-about-swedish-teenage-climate-activist-greta-thunberg-gretathegreat/

다석 사상과 정신과 육체의 문제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다석 사상과 정신과 육체의 문제

 

이종철(연세대)

 

일전에 다석 류영모 선생의 사상을 발표할 때 받은 질문 중의 하나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나도 정신과 육체를 대립적으로 생각하는 다석의 사상이 문제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날 나온 질문은 훨씬 더 심각했다. 과연 인간의 몸과 마음은 별개인가, 몸은 플라톤이 생각하듯 마음의 감옥이고 이 몸을 벗어날 때 비로소 해방될 수 있고 참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까? 다석도 플라톤처럼 몸나인 제나와 정신을 가리키는 얼나를 구분하고, 식과 색에 사로잡힌 제나를 버릴 때 얼나를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다석은 일일 일식으로 식을 최소화하고, 부인에게 해혼식을 선언하면서 색도 끊었다. 그의 이런 행위는 자기 생각을 직접 실천에 옮긴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곰곰히 생각해본다면, 과연 몸이 식과 색의 기능만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것에 대해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도 있듯, 육체의 건강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몸이 불편하면 짜증이 나고 힘이 들고 생각도 귀찮아지기도 할만큼, 정신은 육체의 구속을 절대적으로 받고 있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를 두 개의 서로 다른 실체인 res cogitans(정신)과 res extensa(물질)로 간주했지만, 그 역시 육체와 정신의 상관성 문제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해낸 것이 인간의 머리 뒤편에 송과선이 있어서 이곳을 통해 정신과 육체가 상호 작용한다는 억지 이야기까지 꾸며대기도 했다. 그 이후 서양 근현대 철학에서 mind-body 문제는 양자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의 차이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반면 동양의 오랜 전통 사상에서는 몸과 마음은 일종의 대대 관계를 유지하면서 상관성과 상호관계를 이루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희노애락과 같은 인간의 감정도 육체의 영역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의 성리학에서 수백 년 동안 전개되었던 이기 논쟁도 따지고 보면 정신으로서의 리와 감정으로서의 기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는가의 문제였다.

역사를 통해서 보면 정신과 육체를 별개로 생각하고, 육체를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종교나 철학의 전통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기독교와 그에서 파생된 영지주의, 플라톤과 데카르트 그리고 칸트로 이어지는 형식주의 철학이 그렇고, 동양의 불교 사상을 위시한 대부분 종교도 같은 계열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인간의 육체가 죄의 근원이고 모든 고통의 원인으로 간주 되므로 가능한 한 몸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구원이고 해탈로 간주한다. 정신의 자유와 해방은 육체의 영향을 극복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정신주의의 전통은 각 문화권에서 크고 작은 형태로 늘 반복되고 있다. 오늘날에도 요가나 명상 그리고 참선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원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되고 있다. 다석 류영모의 제나와 얼나 사상도 이런 계열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식과 색은 인간의 육체를 유지하는 필수적 기능이다. 외부의 영양소를 섭취하고 소화와 배설이 반복적 순환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우리 몸의 건강이 유지된다. 마찬가지로 색은 인간종의 재생산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인간에게 유희와 쾌락을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식과 색을 떠난 인간을 생각하기는 힘들다. 일일 일식과 해혼과 같은 금욕도 사실은 식과 색의 영향을 최소한도로 만드는 것일 뿐 완전히 단절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운동과 수행을 통한 육체의 단련은 정신에 생기와 활력을 주고, 이것이 사고 활동을 크게 진작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활력이 없다고 한다면 사유의 기능도 유지하기가 힘들다. 우리가 극한의 운동이나 노동, 혹은 수행을 하는 상황에 있다 보면 무엇이 육체이고 무엇이 정신인지, 나누기가 어려운 묘한 경계나 정신과 육체의 합일 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이런 단계에 이르는 데도 육체의 절대적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육체는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의미 이상으로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의미도 많이 가지고 있다. 만일 육체와 정신의 관계를 대립적으로만 간주한다면, 앞서 말한 육체와 정신의 상호성과 합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탈세계적인 이데아론을 비판한 것처럼 극단적인 정신주의에 반발해서 정신과 육체의 합으로서만 인간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이 훨씬 더 건전한 이성에 맞고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육체를 떠난 정신이 어디에 있을 수 있고, 정신이 없는 육체란 그저 비곗덩어리에 불과한 물질일 뿐이다. 사후의 영을 이야기하는 종교나 철학의 설명은 그저 설명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한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영혼과 죽음에 관해 가장 빼어난 문헌 중의 하나로 간주 되는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육체가 영혼의 감옥이고, 철학은 육체의 구속을 벗어나기 위한 ‘죽음의 연습’이고, 사후에 인간의 영혼은 참다운 이데아의 세계에서 진리와 자유를 갖는다고 이야기를 한다. 스승을 감옥에서 빼내러 왔던 제자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이런 확신에 찬 말을 듣고 감히 도망가자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소크라테스가 한 말에 더 주목할 일이다. “나도 직접 그 세계에 가본 것은 아니고 들은 이야기야.”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이야기가 경험적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고 다만 전언일 뿐임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경험적으로 절대 검증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가설이고 종교적인 믿음에 속할 뿐이고, 과학의 세계와는 도저히 양립 불가능한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제나와 얼나를 절대적으로 대립시키고, 제나를 버리고 얼나를 취할 때 비로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한 다석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그것은 다석의 취지를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지나친 ‘정신주의’의 한 표현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의 사상의 긍정성을 받아들인다 해도 이런 형태의 정신주의를 무조건으로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정신주의가 지나치는 경우 깨달은 소수의 엘리트주의(선민사상)에 빠질 위험도 있다. 이런 형태의 엘리트주의는 근대가 이룩한 민주주의 체제에 역행할 수도 있다. 많은 문제가 있더 하더라도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사회체제이다. 소수의 깨달은 자가 요구된다 하더라도 그들을 중심으로 사회를 운영할 수는 없다. 만약 무리하게 그것을 실행하려 할 때 그것은 불가피하게 파시즘이나 인종주의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초인사상을 주장한 니체가 왜 반민주주의자인가를 알 수가 있다. 과거 하이데거의 철학이 나치의 파시즘에 부역한 현실도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다석의 사상을 신학적 세계관의 한계를 넘어서 보편화시키려 할 때 이러한 인간관의 한계도 동시에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