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를 읽고…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를 읽고…
1.
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를 지금 막 다 읽었다. 출간되자마자 화제에 올랐고, 일전에 오구라 기조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리理와 기氣로 해석한 한국사회』라는 책을 읽고 강한 인상을 받은 터라 한 번은 꼭 읽어보고 싶었다. 마침 이 책을 번역한 이신철 선생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동료이고, 그가 책까지 한 권 보내 주어서 그 기회를 앞당길 수 있었다. 아무튼 이 책을 펼쳐 들고 중반까지는 꼼꼼하게 읽었으나 뒤로 갈수록 간략하게 넘기다 보니까 대 여섯 시간 만에 다 읽기는 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장을 덮은 다음 곰곰히 생각을 했다. 한국인도 아닌 외국인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사상가들뿐 아니라 어쩌면 한국인들이 쓴다 해도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을 인물들까지 들춰내서 세밀하게 쓴 것이 대단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엄청난 연구와 독서의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그 수준이나 성과 여부와 상관없이 조선의 사상사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과 그것을 학문적으로 표현해준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이다. 다음으로 일본 학자가 이런 책을 쓰는 동안에 한국의 학자들은 무엇을 했냐는 자괴심마저 들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이 나왔을 때도 주로 호기심 많은 저널리스트만이 크고 작은 관심으로 책을 소개하기도 하고 깊이 있는 서평을 써주었다. 정작 학문적으로 연관이 있는 학자 중에는 누구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 기이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마도 학자적 양심이나 부끄러움 때문이거나 혹은 그마저도 없이 한국의 학자들이 이제 공부도 안 하고 문제의식도 없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의심이 어느 정도 합리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 도대체 한국의 학자들 -특히 인문학자들-은 두더지처럼 자기 구멍만 팔 줄 알지 다른 학자들과 소통이나 논쟁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오구라 기조 교수의 책에 대해서도 똑같이 침묵하는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마저 든다. 지난 30여 년 동안 연구자들의 수가 매우 늘어났고 그 수준도 높아졌지만, 그저 논문 기계들처럼 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 사냥하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다른 학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도통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이 인문학자들의 현실이다. 만일 한국의 인문학계가 이런 학문적 무관심과 불통을 계속한다면 가뜩이나 인문학의 소외 현상을 넘어서 미래가 더욱 암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서평을 쓰면서 이런 푸념식의 비판부터 하는 나 자신의 마음도 편치는 못하다. 내가 한국학이나 한국철학을 전공하는 학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런 서평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렇다. 어쨋든 이런 마음을 염두에 두면서 『조선사상사』를 살펴보자.
2.
조선의 사상사 전체를 통람한다는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의 분량을 많다고는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단군신화에서 시작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부터 고려와 조선 그리고 조선 말기 동학과 개화사상, 식민지 시대의 사상과 북조선의 주체사상과 현대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정치가들과 사상가들의 사상까지 기술하고 문학가들의 작품까지 빠짐없이 빼곡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런 작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앞서도 이야기를 했듯 저자의 엄청난 독서 외에도 수많은 사상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파악해서 간단하고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필체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본다면 오구라 기조 교수는 전작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리理와 기氣로 해석한 한국사회』에서 보여주었듯 복잡한 현실과 사상을 단순화하는데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필자와 같은 문외한도 신라의 원효와 의상, 고려의 지눌의 돈오점수의 불교, 조선의 태극논쟁, 사단칠정 논쟁, 인심도심논쟁, 인물성동이논쟁 등 수많은 사상의 갈래들을 어렴풋하나마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저자의 명쾌한 설명과 간결한 문체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비록 상세한 내용을 담지 않았더라도 조선 사상사 전체에 대한 소묘를 잘 해냈다는 점에서 빼어난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나 자신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다른 이들에게 충분히 권할 만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3.
필자는 이 책 전체를 작은 지면에서 다 다룰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으면서 특별히 저자가 강조한 입장이나 시각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언급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오구라 기조 교수는 이 책 모두에서 조선사상사의 특징이 무엇인가에 대해 일본과 비교해서 기술하고 있다. “일본 문화가 외부로부터 도래하는 문화에 대해 브리콜라주(수선)적인 포섭 방법을 취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조선은 “외부로부터 도래한 사상이 기존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변을 추진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고려 시대에 불교가 사회 변혁을 시도했고, 조선에서는 주자학이 국가의 통치 이념이 되면서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꿨다. 이런 전통은 현대에 들어서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 공산주의라는 사상(주체사상)이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일본과 다르게 조선에서 ‘사상의 혁명적인 정치적 역할’의 크기가 막대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오구라 교수는 이 책을 쓰면서 “순수성, 하이브리드성, 정보, 생명, 영성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에 특별히 주목한다고 했다. 조선(이때의 조선은 이성계가 개국한 특수한 의미의 조선이 아니라 단군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을 일컫는 보편적 의미를 띠고 있다) 사상사를 개관한다보면 일본이나 중국의 사상사와 달리 ‘순수성을 둘러싼 격렬한 투쟁’이 강하게 드러나고, 이런 현상은 현대에 와서도 남조선과 북조선 간의 이데올로기 대립, 그리고 저자가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오늘날 한국에서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진영논리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사상의 순수성을 둘러싼 이러한 투쟁은 대개는 중화주의의 틀 안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조선 사상의 독창성 결여와 중국에 대한 종속성과 같은 비판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와는 달리 순수성에 대한 반대의 축에는 불순성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조선의 주자학이 지배하던 당시에도 양명학과 서학이 다른 사상으로 존재했고, 유불도 3교 내지 샤머니즘을 포함한 4교와 같은 혼연일체형의 ‘하이브리드 사상’이 조선사상을 특징지운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 보듯 외래 사상의 유입을 차단하는 ‘정보의 컨트롤’이 지배적이었다. 16세기 말에 서양의 사상과 문물이 대거 동아시아로 밀려 들어 왔을 때 일본에서는 가톨릭 다이묘가 나오거나 남만 사상이 유행했으나 조선의 지배층은 철저하게 이런 정보를 통제했다. 사상의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이런 조치는 19세기 말 외래 사상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보여주는 ‘위정척사’ 운동이나 대원군의 쇄국정책, 더 나아가서는 북조선이 주체사상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외부로부터의 사상의 유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데서도 잘 보인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전면적인 순수성의 추구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하이브리드성이 하나의 조선 속에 공존한다고 보는 것은 일종의 억지이거나 무리한 해석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아포리아(aporia)에 직면해서 오구라 교수의 해석의 장점이자 조선사상의 특별한 장점이 드러난다. 오구라 교수는 일견 상호 대립하는 순수성과 하이브리드성, 정보의 통제와 개방 간의 대립을 아우르고 넘어서는 정신의 현상이 조선에는 분명하게 있다고 한다. 그는 이것을 ‘영성’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신라의 원효의 화쟁사상부터 퇴계의 이기호발설, 그리고 19세기 조선말 경주 지방에서 등장한 최제우의 불여기연과 동학 사상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오구라 교수는 이것을 ‘영성의 네트워크’로 부르고, 이것이 “조선사상사 전체를 움직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동력이 되고 있다”고 까지 확신한다. 그는 자신의 이런 주장을 특별히 뒷받침하기 위해 퇴계와 최제우의 사상적 연결을 경상도라는 특수한 유대까지 거론하면서 강조하고 있다. 오구라 교수는 이런 영성이 순수성을 둘러싼 유별난 투쟁사와 외래 사상 간의 다양성과 공존을 하나로 엮어줄 수 있는 특별한 지지대라고 보는 것이다.
4.
그러면 마지막으로 오구라 교수의 이런 입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나의 생각을 피력해보고자 한다. 먼저 하나의 사상이 한 시대, 한 사회를 완전히 지배하고 개벽한다는 입장부터 보자.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는 특별히 종교적 심성이 강하다는 주장이 있다. 이런 종교적 의식 때문에 신라와 고려에서는 불교가 하나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사회를 이끌었고, 조선에서는 성리학의 통치 이념을 제시했다. 근대에 들어와서 새로 유입된 기독교가 유교를 대신하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믿는 대표적인 종교가 되기도 했다. 사실 기독교가 한국에서 이토록 대표적인 종교가 된 현상은 중국과 일본의 경우와 비교한다면 한국인들의 유별난 종교의식 말고는 달리 설명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러한 의식의 지반 속에서 그것이 불교이든 유교이든 아니면 기독교이든 시대가 변화하면서 지배적인 이념(이데올로기) 역할을 해왔다고 할 것이다. 만약 이처럼 종교에 대한 귀속 의식이 없다고 하면 어떤 하나의 절대적인 사상이나 종교에 의해 그 사회 전체를 이끌어가는 통치 이데올로기가 나올 수는 없지 않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 점에서 오구라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조선은 외래 사상에 대해 일본이 자신들의 틀 속에서 수선하고 개량하는 태도 보다는 전면적으로 수용해서 지배 사상으로 만들고, 그것의 동력이 다한다면 새로운 피를 수혈하듯 새로운 사상으로 전면적으로 대체하는 태도를 반복한다고 할 것이다. 때문에 오구라 교수의 일반화에 대해 한국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특별히 반박하기가 어렵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한 시대나 사회 안에서 대립적인 사상이나 종교 혹은 경향이 모순적으로 대립하면서도 그 사회를 파멸로 이끌지 않는 특별한 이유를 조선사상의 ‘영성’에서 찾는 오구라 교수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사실 ‘영성’이란 표현은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말도 아니고 계산적인 이성의 합리성 틀 내에서 파악할 수 있는 개념도 아니다. 이러한 영성은 다분히 종교적 측면이 담겨 있고, 좀 더 철학적으로 표현한다면 감성과 이성을 넘어선 ‘정신'(Geist/sprit)의 측면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것은 경험적이고 가시적인 영역을 넘어서려는 인간 정신의 초월성, 상호 대립하고 모순된 것들을 아우르고 넘어설 수 있는 신비와 형이상학적 사유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런 영성은 사상사적으로 볼 때 장점도 있는 반면에 단점도 적지 않다. 굳이 서양철학의 칸트를 끌어들여 설명한다면 그것은 경험적 직관이나 과학적인 범주를 넘어선 형이상학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이성 비판을 통해 이성의 필연적 지식이 가능한 영역과 그것을 넘어선 영역을 구분하고, 과학으로 종교를 재단하려 한다든지 아니면 종교를 가지고 과학을 지배하려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런 의미에서 영성은 인간 정신의 초월이자 종교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영성을 과학의 세계 안에서 필연적으로 설명을 할 수는 없어도, 그것은 끊임없이 이성과 감성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 그 세계 안에서 설명이 불가능한 것을 설명하고 그 세계 안으로 강력한 에네르기를 불어 넣을 수도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이나 종교적 부흥을 이끌기 위한 영성 운동 같은 경우들이 그렇다. 어느 정도 신비주의의 영역에 맞닿아 있는 이런 영성이 조선사상사를 꿰뚫는 대립물의 화해와 통합의 정신에서 나타나서 끊임없이 사상의 활력을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구라 교수가 영성을 강조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입장으로 볼 때 그것을 ‘영성’이라고 표현한 것 자체가 익숙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앞서 기술한 것처럼 ‘영성’이란 말을 통해 오구라 교수의 취지에 충분히 공감은 하지만 그것을 좀 더 한국인들의 의식 세계를 설명하는 보편적인 언어로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불교나 유교 그리고 현대의 기독교는 한국인들에게는 외래 사상이라고 볼 수가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한국인들의 무의식 세계 저변에는 동아시아의 오랜 샤먼의 전통이 깔려 있다. 한국인들의 무의식 속에서 이런 샤머니즘은 외래 사상을 끌어들여 그 속에서 용해하는 거대한 용광로의 불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와 기독교의 경우는 샤머니즘과의 친화성이 두드러져 나타나고, 엄격한 성리학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조선에서도 왕실 깊숙한 세계나 기층민중의 세계에서 샤머니즘의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오구라 기조 교수는 그것을 특별히 원효의 화쟁사상과 퇴계의 이발호발설, 그리고 최제우의 불연기연 사상에서 보듯 사상적인 대립을 넘어서는 초월적 정신의 수준과 연결한다는 점에서 특색이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 흐르는 면면한 정신은 동아시아의 샤먼적 전통 (최치원이 말한 풍월도)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영성’이란 표현보다 ‘샤먼’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상과 철학사 안으로 샤먼의 무의식을 끌어들이려고 한다면 진저리를 칠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다.
오구라 기조 교수의 『조선사상사』를 주마간산 격으로 읽기는 했지만 느끼는 바는 컸다. 이렇게 생각거리를 많이 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의미가 크다. 이 책을 기점으로 한국의 학자들도 사상사와 철학사의 기술에 적극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그동안 서양 사상을 수입하고 중국 사상을 반복하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제 나라의 사상사를 일본 학자의 저술을 통해 배운다는 것은 학문적 자존심도 걸려 있고, 학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