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이데올로기』1·2(2019), 『정신의 오디세이: 자유 의지의 역사』(2021) 등을 저술한 전 동아대 철학과 교수 이병창 회원이 영화와 소설, 철학 등 광범위한 문화 비평을 담아내는 코너이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45-연속적 크기와 불연속적 크기[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45-연속적 크기와 불연속적 크기

1)

헤겔 논리학을 다루면서 논리학의 구조가 판단 형식 즉 범주가 전개되는 방식과 상응한다고 말했다. 그런 상응에 비추어 보면, 정량은 양적 판단 형식 가운데 첫 번째 단칭 판단 형식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헤겔을 질을 다룰 때도, 존재와 무의 상관관계를 통해 현존을 끌어냈다. 존재와 무는 현존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관계 즉 ‘관계있음(존재)’과 ‘관계없음(무)’를 말한 것일 뿐이고, 실제 질적 판단 형식은 현존으로부터 시작한다. 즉 현존이 질적 긍정 판단에 해당한다.

이런 전개 방식은 양을 다루는 때도 마찬가지다. 바로 앞에서 다루었던 양적인 것 즉 연속성과 불연속성은 정량의 일반적인 상호 관계를 말하는 것일 뿐이다. 양적 판단 형식이 처음 시작하는 것은 정량에서부터다. 질적 판단 형식에서 현존에 해당하는 것이 양적 판단 형식에서는 정량이다.

2)

정량과 수의 관계는 앞에서 말했다. 정량 속에 이미 수적 관계가 들어있다. 수는 나름대로 하나의 정량이며, 다만 다른 정량을 표현하는 기호로 사용될 뿐이다. 즉 이 정량에서 이미 존재하는 수적 관계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정량과 수의 관계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설명한 상품과 화폐의 관계와 같다. 상품 속에 이미 교환가치의 관계가 들어있다. 화폐도 하나의 상품이지만, 다른 상품의 교환가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즉 화폐는 상품의 교환가치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수에 관한 심리주의자는 수를 인간의 셈이라는 주관적 활동으로부터 끌어내려 했다. 그것에 대해 논리주의자는 반대했는데, 왜냐하면, 수는 알다시피 초월성 또는 객관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플라톤은 수를 이데아로 여겼다. 양적인 존재 즉 정량은 이런 이데아가 분유 되어 나온 것일 뿐이다.

그러나 헤겔의 관점에서 본다면 수의 객관성은 마치 화폐가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마르크스는 금의 자연적 속성에서부터 화폐의 본성이 나오는 것을 일종의 물신화로 여겼는데, 마찬가지다. 수의 객관성을 수가 지닌 고유한 속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면 이는 물신화에 해당한다. 상품에서 화폐가 나오듯이 수의 객관성은 정량에서 나온다.

3)

정량은 수로 대변되므로 헤겔은 정량을 논하면서 자주 수를 끌어들인다. 정량을 다루는 2편 2장 A 절은 아예 ‘수’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A 절에서 헤겔은 수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그것이 바로 외연량과 내포량이다.

흔히 수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연속적 수와 불연속적 수다. 연속적 수 또는 크기(정량)¹를 다루는 학문이 기하학이다. 불연속적 수 또는 크기(정량)를 다루는 것이 산술학이다. 고대에 기하학과 산술학은 독립적으로 발전했다. 기하학은 주로 이집트 그리스에서 측량술로부터 발전했다. 산술학은 인도를 거쳐, 아라비아에서 발전했다. 인도가 수 0을 발견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주1: 헤겔은 양적인 것[Quantität]을 크기[Größe]와 구분한다. 크기는 규정성을 지니므로 정량[Quantum]에 해당한다.

그런데 수가 자연수에서나 분수에서처럼 불연속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일찍 발견됐다. 피타고라스학파에서 비밀로 여긴 무리수의 발견이 여기에 속한다. 무리수는 수이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연속적 수다. 이 수가 서로 분리된 유리수 사이에 끼어들면서 수는 단순히 불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연속적임이 알려졌다. 수를 불연속적인 것으로만 여겼던 피타고라스학파가 무리수를 숨기려 했던 것은 이 발견이 고대에 얼마나 충격적이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기하학은 공간적 크기를 다루고, 여기서는 수가 개입하지 않는다. 기하학은 변이나 각, 길이의 같음과 다름을 다룰 뿐이다. 물론 기하학에서도 삼각형이라든가, 사각형 등에서 보듯이 수가 부분적으로 개입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다루는 대상에 관한 것이지, 기하학이 다루는 것은 여전히 같음과 다름일 뿐이다.

피타고라스학파는 피타고라스 정리는 기하학적 방식으로 증명했다. 그러나 아라비아에서 대수학이 발전하면서 피타고라스 정리가 대수학적으로 증명됐고 나아가서 근대 해석기하학에서 대수학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면서, 기하학적 크기 역시 불연속적 속성을 지닌다는 사실이 인정되기에 이른다.

대수학의 발전은 기하학적 연속적 크기가 불연속적 크기를 가지마, 거꾸로 산수적 불연속적 크기가 연속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수를 이렇게 연속적 크기와 불연속적 크기로 나누는 것은 의미 없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헤겔은 정량을 다루면서 당시 흔히 다루었던 방식대로 연속적 크기와 불연속적 크기로 나누지 않고, 외연량과 내포량으로 나누었다.

4)

이제 외연량과 내포량, 외연적 크기와 내포적 크기의 관계를 다루기 전에, 이 두 가지 크기의 공동 지반이 되는 정량을 살펴보자. 정량은 개념적으로는 양적인 것이 규정성 또는 한계를 지니면서 출현한다.

이런 정량은 구성하는 요소는 우선 일자다. 이 일자[Eins]는 정량의 수를 셀 때 출발점이 되는 것 즉 기본 단위다. 이 단위를 무엇으로 하는가는 자의적이다. 물의 양을 재기 위해 우리는 부엌에서처럼 바가지로 잴 수도 있고 실험실에서처럼 비커로 잴 수도 있다. 전통적 단위인 ‘냥’으로 잴 수도 있고 국제 표준 단위인 그램을 사용할 수도 있다. 어느 단위를 사용하든 자의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여기에 고유한 객관적 단위는 없다. 헤겔은 어떤 정량을 재기 위한 단위를 그저 ‘일자’라고 한다.

정량을 단위로 재면, 두 가지 계기가 출현한다. 헤겔은 이를 개수[Anzahl]와 총수[Einheit]라고 한다. 이 두 계기가 수를 설명하는데 아마도 헤겔만이 제시한 독특한 개념이다. 우선 개수는 어떤 단위가 얼마나 여러 번 반복됐는가를 말한다. 20의 크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1이 스무 번 반복돼야 한다. 즉 20에는 1이 스무 개 들어있다.

20개 속에 들어있는 1 즉 일자는 서로 동일하다. 그 중 어느 것도 1일뿐이다. 또한, 이들은 서로 동등하다. 세 번째 1과 네 번째 1은 세기 나름이지, 달리 세어서 세 번째를 네 번째로 세고 네 번째를 세 번째로 세더라도 무방하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20개 속에 있는 일자는 불연속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일자는 아무리 빨리 세더라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어진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총수[Einheit]를 보자. 이것은 1을 스무 번 반복해서 나온 ‘20’이라는 수가 다른 수 예컨대 ‘9’라든가 ‘21’과 같은 수와 비교해서 가지는 의미다. 이 20은 개수로 보면 스무 번 반복한 것이지만, 총수로 보면, 다른 수처럼 고유한 것이다. 예를 들어 엄지와 검지는 개수로 보면 1과 2지만, 총수로 보면 각자 고유한 것 즉 엄지와 검지다. 엄지는 머리를 누르는 것이고 검지는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다. 스무 개라는 개수가 고유한 스물이 되는 게 바로 수다.

20이 스무 개라는 점에서는 불연속적인 것의 집합이다. 그러나 20을 총수로서 고유한 크기로 보면, 그 속에 모여 있는 20개라는 분리된 것들은 의미가 사라지고 전체는 하나의 통일성을 지닌 것 즉 연속적인 것이 된다. 그러기에 이름이 총수[Einheit: 통일성]이다.

“수는 그 계기로 총수와 개수를 가지며 그 자체에서 양자의 통일이다. 총수는 연속성의 계기며, 개수는 분리의 계기를 이룬다. 양자는 정량 속에서 수로서 존재한다.”(논리학 초판, GW11, S. 126)

5)

정량에서 개수와 총수가 이처럼 두 계기를 이루므로, 헤겔은 정량의 규정성과 질적 현존의 규정성을 비교한다. 질적 현존에서 규정성 즉 감각적 성질은 우연적이고 개별적이고 외면적일 뿐이다. 그것은 타자에 대립해서 규정된 것이다. 예를 들어 빨간색은 파란색에 대해 규정된 것이다.

그러나 정량에서 규정성 즉 한계는 다른 규정성과 구별되는 것만은 아니다. 동시에 다른 규정성과 연결되고 있으니, 4는 3과 5와 다른 것이지만, 동시에 단위인 일자를 셋에서 한 번 더 더한 것이며 한 번 더 더하면 다섯이 되는 것이다. 전자의 측면에서 타자에 대립해서 규정되지만, 후자의 측면에서는 자기 관계해서 규정된 것이다.

어떤 사물의 정량이 20이라고 할 때, 이 개수로서 20이든 총수로서 20이든, 그 기본 단위가 자의적이므로, 그 정량은 자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나이가 스무 살 된 대학생보고 팔십 먹은 노인네라 해도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나이를 셀 때 1년을 단위로 하지 않고 계절별로 세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량이라는 크기는 어떤 사물에 대해 외면적이고 그 사물의 본성과 무관한 무차별성을 지닌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일정한 단위가 전제된다면, 그때 정량은 그 사물을 규정하는 고유한 한계, 규정성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군에 가는 나이는 20살이다. 누구도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스무 살에는 군에 가야 한다.

정량을 재는 단위가 이처럼 자의적이라는 점에서 정량은 타자에 의해 규정된 것이다. 그러나 정량을 재는 단위가 일단 정해진다면, 정량은 그 단위의 반복을 통해 규정되는데, 그런 점에서 정량은 자기 자신을 통해 규정된 것이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헤겔은 정량은 “타자를 통해 규정되는 가운데 자기 자신과 동일하게 머무른다”라고 말한다.

6)

정량의 규정성이 자의적인 규정성이라는 점에서 이 정량의 규정성은 질적 현존에서 현존의 규정성과 유사하다. 현존의 규정성 즉 감각적 성질은 주관이 파악한 우연성이며, 그 사물에 대해 외면적이다. 질적 범주에서 운동은 인식하는 주관이 이 외면성을 극복해서 사물에 고유한 성질을 찾아 나가는 운동이었다. 그 운동 끝에 마침내 대자 존재 즉 그 사물의 형상에 이르렀다.

정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정량은 외면적인 규정성이다. 어떤 사물에 고유한 정량을 발견하는 것이 양적 판단 형식에서 운동의 기본 목표다. 예를 들어 도라는 음은 현의 길이를 통해 그 본성을 드러낸다. 여기서 현의 길이는 도라는 음의 본성을 규정하는 것이다. 즉 단순한 우연적 정량이 아니다. 헤겔은 척도라는 개념에 이르면 비로소 고유한 정량이 출현한다고 본다.

“양적인 것은 대자 존재가 지양된 것이므로 이미 그 자체에서 그리고 대자적으로 그 한계에 대해 무차별하다. 그러나 동시에 양적인 것에서 그 한계 또는 정량이라는 사실은 무차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양적인 것은 일자를 즉 절대적으로 규정된 존재를 자체 내에 그 자신의 고유한 계기로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 일자는 그 자신의 연속성 또는 총수에 이르러 정립되면 양적인 것의 한계가 된다. 이 한계는 양적인 것이 자기를 생성해 마침내 도달한 하나의 독자적 존재[Eins]로서 머무른다.”(논리학, 재판, GW21, S. 193)

헤겔 형이상학 산책44-정량과 수(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44-정량과 수

1)

형이상학은 세계의 가장 일반적인 원리를 다룬다. 칸트의 선험철학을 원리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더욱 발전하겠다고 확고하게 선언했던 헤겔은 세계의 일반 원리를 사유의 근본 범주(또는 판단 형식)로부터 끌어내려 했다.

문제는 양적 범주다. 양적 판단 형식 즉 양적 범주가 세계를 일반적으로 구성하는 원리가 될 수 있는지, 요즈음 철학은 많은 의문을 던지고 있다. 러셀이나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원초적인 세계는 질적 개별자의 세계가 아닌가? 양적 범주란, 세계 밖에서 사유하는 인간의 주관적 산물이 아닐까?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개별적인 것이 존재하려면 지속적이어야 한다. 명멸하는 우연적인 것에는 이런 개별성조차 없고 그저 있었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할 뿐이기 때문이다. 찰나생 찰나멸, 이런 세계에서는 사유한다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런데 지속하는 것이 있는 한, 이 지속성은 서로 대립하는 두 성질이 자기 관계하는 것 즉 대자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그럴 때 대자 존재자들의 상호 관계는 양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양적인 세계의 존재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에서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원자론자의 원자와 공간의 개념을 기초로 한다. 원자와 원자의 관계가 곧 양적인 관계이며, 이 양적인 관계에서는 오직 연속성과 분산성이라는 두 가지 관계밖에 없다. 원자와 원자는 동일한 대자 존재의 관계이니 연속적이며 그러면서도 이 관계 맺는 것이 서로 독자적인[fuer sich] 것이니 분산적이다. 연속적이라는 점에서 물질적인 것이며, 분산적이라는 점에서 공허로서 공간적인 것이다. 물질과 공간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지만, 서로의 이면에 떼어낼 수 없이 붙어있다.

2)

양적인 관계야말로 수학적 관계의 토대가 된다. 파르메니데스의 형이상학이 양의 세계를 밝힘으로써, 피타고라스의 수의 세계도 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양적인 것과 수적인 것은 다르지 않을까?

헤겔은 양적인 것에서 정량이 나오고 정량에서 다시 수가 나온다고 한다. 양적인 것은 대자 존재의 연속과 분리라는 관계를 말할 뿐이다. 그것은 얼마나 큰가 하는 크기 규정을 갖지 않는다. 정량은 이런 양적인 것이 일정한 크기 규정을 지니게 된 것을 말한다.

이미 양적인 것은 크기 규정을 지닐 수 있다. 그것은 동일한 대자 존재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대자 존재는 반복하는 만큼의 크기를 지닌다. 하지만 여기서 양적인 것에서 크기 규정은 다만 가능적인 것일 뿐이다. 그것이 특정한 크기를 지니려면 다른 것과 비교되어야 한다. 즉 잣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길이는 미터를 잣대로 하고, 무게는 그램을 잣대로 한다. 그러나 미터나 그램과 같은 잣대는 주관적으로 선택된 임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든 임의적으로 선택된 잣대를 기준으로 반복을 통해 일정한 크기가 규정된다. 이렇게 규정된 특정한 크기가 곧 정량이다.

정량은 반복되면서 이미 수적인 체계를 갖지만, 아직 수는 아니다. 그것은 가능적인 수적 체계다. 이 정량이 수가 되려면, 일정한 잣대가 지닌 수적 관계가 추상돼야 한다. 그렇게 추상된 수적 관계가 곧 수를 이룬다.

“정량은 일단 규정성이나 한계 일반을 지닌 양적인 것인데, 그것이 완전하게 규정되면 수다.”(논리학 재판, GW21, S. 193)

정량과 수의 관계는 마치 마르크스가 말한 상품과 화폐의 관계와 같다. 화폐는 상품의 하나다. 어느 상품이 화폐인가 하는 것은 주관적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나 역사적 발전을 통해 어떤 상품이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화폐로 선택되면서 화폐가 출현한다. 이 화폐는 상품이 지닌 교환가치의 비례 관계라는 수적 체계를 의미할 뿐이다.

정량과 수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정량을 측정하는 잣대는 주관이 임의로 선택한 것이다.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선택된 대표적인 잣대가 곧 수다. 이 수는 정량의 비례 관계를 언표하는 수단이 된다.

3)

이제 수 개념에 관한 플라톤이나 러셀의 주장을 헤겔의 사유와 비교하여 살펴보자. 19세기 심리주의는 수를 더하거나 빼는 것과 같은 사유의 활동에서부터 끌어내려 했다. 그러나 이런 사유의 심리적 활동은 경험적이고 우연적이지만, 수적 질서는 객관적이고 필연적이니, 이런 심리주의는 수를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 결과 수를 플라톤적인 이데아에서 끌어내거나, 수를 논리로 환원하려는 논리주의가 등장했다.

우선 수에 관한 플라톤적 설명은 문제가 있다. 수는 자주 이데아와 같은 초월적 존재를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기하학적 크기도 일종의 수라고 할 수 있는데, 기하학적 질서야말로 플라톤이 이데아의 표본으로 설명해 왔던 것이 아닌가? 수가 이처럼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 자연의 질서 속에 수를 적용한다는 것은 이 자연이 수를 모델로 만들어졌다는 플라톤의 생각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데아에 따라 세계를 창조하는 데미우르고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창조주 신은 일단 제쳐 두자. 창조주는 굳이 이데아의 모범에 따라 세계를 창조할 필요는 없다), 자연이 초월적 이데아를 따르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 데미우르고스를 인정할 수 없다면, 자연 속에 수적인 질서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만큼 자연적인 것에서부터 수적인 질서가 발생하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

헤겔의 생각은 그런 점에서 수가 자연에서 발생하는 과정을 잘 이해시켜 준다. 헤겔에서 수적인 것은 양적인 것에서 나온다. 양적인 것은 일정한 크기를 지닌 정량으로, 정량에서 다시 정량을 대표하는 수로 전개된다. 정량이 이미 수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을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다만 수일 뿐이다. 수도 하나의 정량으로서 다른 정량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선택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마치 마르크스에서 상품에서 화폐가 나오는 과정과 같다.

4)

이번에는 현대 수 이론을 대표하는 러셀의 주장을 살펴보자. 러셀은 수를 집합의 집합으로 정의했다. 쌍으로 이루어진 것들의 집합, 예를 들어 {신발, 손, 발, 귀 등등}. 그것을 대표하는 것이 두 번째 손가락(검지, 둘)이다. 셋으로 이루어진 집합도 있다. {솥의 다리, 삼원색 등등.} 이것을 대표하는 것이 세 번째 손가락(중지, 셋)이다. 이처럼 어떤 집합을 대표하는 것들로 이루어진 집합 즉 {둘, 셋, 넷… 등등}이 곧 수이다.

러셀의 수 개념은 간명하기는 하지만, 이 집합의 집합을 통해 수의 진정한 개념이 정립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러셀의 주장은 헤겔이 이미 말한 것처럼 수가 정량을 대표하는 것이라는 말에 불과하다. 그는 수로 사용되는 언어가 어떻게 해서 수적 질서를 의미하게 됐는지를 말할 뿐이다. 이를 통해 수가 지닌 기본적인 속성 즉 수의 연속성과 분산성은 밝혀진 바가 없다.

이런 집합의 집합으로서 수 개념은 정의 속에 이미 수를 전제로 한다. 즉 ‘쌍으로 이루어진 집합’이나 ‘셋으로 이루어진 집합’이라는 개념이 이미 쌍이나 셋이라는 수 개념을 포함하니, 정의될 것을 정의 속에 전제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더구나 이런 수 개념으로서는 수가 지닌 가장 근본적인 속성인 연속성과 분산성이라는 속성을 끌어낼 수 없다. 쌍을 대표하는 수 검지(둘)와 다섯 개짜리를 대표하는 수 즉 약지(다섯) 가운데 어느 것이 큰가 또는 둘과 셋을 더하면 다섯이 나온다는 수적인 질서가 나오지는 않는다. 검지가 약지보다 작은가? 또는 검지로 찌르고 다시 중지로 찌른다고 해서 약지로 찌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러셀의 수 개념은 집합 개념에 기초하는 것인데 집합 개념은 그 자체 모순을 포함한다는 사실이 이른바 러셀의 역설을 통해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사실 잘 살펴보면, 러셀의 수 이론은 수의 개념을 설명한다기보다 수로 사용되는 언어가 어떻게 선택된 것인지를 보여줄 뿐이다.

5)

플라톤이나 러셀은 수 개념을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헤겔은 양적인 것에서부터 수 개념을 끌어냈는데, 양적인 것을 규정한 정량은 다양한 것들로 존재한다. 이런 다양한 정량적 존재자들을 대표하는 것이 곧 수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 43-양에 관한 칸트의 이율 배반 논증[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43-양에 관한 칸트의 이율 배반 논증

1)

양은 대자 존재의 관계다. 대자 존재는 동일한 것이 여럿으로 존재하니, 예를 들어 나뭇잎이나 물발울과 같은 것이다.

이들의 관계 속에서 관계 맺는 것이 동일한 일자므로, 이들은 서로 견인하면서 연속적인 것으로 되고, 동시에 여기서 관계 맺는 것이 서로 다른 일자므로 이들은 서로 반발하면서 이 관계는 분산된 관계다.

“연속성 속에는 다의 병열이 여전히 내포되어 있으며 그러나 동시에 구별되지 않은 것, 중단되지 않은 것으로 포함되어 있다. 다는 연속성 속에 본래 그대로 정립되어 있다. 다는 다른 것과 같은 일자이며 각자는 다른 것과 동일하며 따라서 다는 단순한 구별이 없는 동등성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176)

대자 존재의 견인과 반발은 상호 작용적이니, 반발하는 가운데 견인이 일어나고 견인하는 가운데 반발하게 된다. 반발 가운데 견인하면서 연속하고 견인하는 가운데 반발하므로 분리된다. 헤겔은 이런 분리와 연속성이 동시에 존재할 때 한편으로 자기를 넘어 연장(지속)하는 것 즉 생산적인 지속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자기를 벗어나 분리되는 것 즉 영속적인 탈자태가 있다.

“양은 그 규정상 자기에 대한 지양하는 관계이며 영속적인 탈자화[Aussersichkommen]이다. 그러나 반발된 것은 자기 자신이다. 따라서 반발은 자기 자신의 생산적인 지속[Fortfliessen]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177)

생산적인 지속이 양적인 것이며 영속적인 탈자태가 공허다. 물질은 양적이며 시공간은 공허다. 그러나 물질도 배후에는 탈자성이 있으며, 시공간도 배후에는 하나의 양적인 연속체다.

2)

헤겔은 이런 관계 개념들 즉 ‘대자 존재와 일자’/ ‘견인과 반발’/ ‘연속과 분리’/ ‘지속과 탈자’라는 개념을 통해 양적인 것을 규정한다. 이런 ‘양적인 것[Quantitaet]’은 아직 ‘정량[Quantum]’ 또는 ‘크기[Groesse]’는 아니다.

양적인 것은 지속과 탈자라는 관계만을 말한다. 여기서는 아직 어떤 한계가 주어져 있지 않다. 단순히 물질 또는 시공간을 말할 때 우리는 그 크기를 생각하지 않는다. 이처럼 일정한 크기가 규정되지 않고 다만 지속과 분리만 말할 때, 즉 무규정적인 크기가 양적인 것이다. 대표적으로 시공간이 그렇다. 시공간에 관해서 또는 물질에 대해 누가 그것은 얼마나 큰 것인가 하고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비로소 정량 또는 크기는 일정한 크기를 통해 규정된 것을 말한다. 그런 어떤 것이 정량이 되려면 일정한 크기 즉 한계를 지녀야 한다. 예를 들어 물방울은 일정한 폭을 지닌 크기를 가진다. 그것을 우리는 분자 단위나 원자 단위로 세지 않는다. 물 분자의 일정한 집합체를 하나의 물방울로 보고, 비로소 물방울의 수를 센다. 물 분자가 물방울의 크기를 이루지 못하면, 물 분자는 그대로 있지만, 물방울을 사라진다고 말한다. 물방울이 더욱 뭉쳐서 물줄기가 되면, 이제 물줄기라 하지 이를 물방울로 보지 않는다. 이처럼 일정한의 크기를 지닌 어떤 것이 곧 정량이다.

3)

헤겔은 양적인 것에서 정량, 크기로 넘어가면서 긴 주석을 통해 양의 연속성과 가분성에 관한 철학적 논의를 소개한다. 원자론자는 가분성을 주장하는 대표자다. 스피노자는 연속성을 주장하는 대표자로 소개된다. 이들의 주장은 사실 독자적으로 관심을 지닌 것이 아니라, 양에 관한 칸트의 이율 배반을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언급될 뿐으로 보인다. 헤겔은 양적인 것에서 연속성과 분리를 동시에 인정하므로 양에 관해 칸트가 주장한 이율 배반이 특별히 흥미로웠을 것이다.

헤겔은 칸트의 양에 관한 이율 배반론을 살피기 전에, 칸트의 이율 배반론 전반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서술한다. 헤겔은 칸트의 이율 배반론의 공적을 인정하면서 칸트의 이율 배반론은 “이전의 형이상학이 전복이며 새로운 철학으로 이행의 주요 계기다”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율 배반론은 “유한성의 범주를 내용의 측면으로부터 무화시키기” 때문이다.

즉 이전의 형이상학은 지성의 개념 즉 판단 범주를 실체화하면서, 그 가운데 하나는 긍정하고 그것에 대립하는 것은 반박하였는데, 칸트는 두 가지 모두가 자기 모순적인 것을 밝힘으로써 어느 개념도 실체화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헤겔은 칸트의 이율 배반론이 지닌 한계를 아래와 같이 지적한다.

-칸트는 이율 배반에 속하는 네 가지 개념쌍을 네 가지 판단 범주에서 끌어내 “완전성이라는 가상을” 주려 했으나, 사실 지성의 모든 범주가 “이런 대립된 계기의 통일”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칸트는 지성의 개념을 물 자체에 적용하는 가운데서 이율 배반이 나온다고 보았으나, 이런 관점은 이율 배반이 개념 자체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물 자체에 적용되면서 구체화되는 가운데(즉 구체적 개념) 출현하는 것인지를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칸트 자신은 지성 개념은 현상에 적용하면 문제가 없고 다만 물 자체에 적용함으로써 이율 배반이 생긴다고 했는데, 이는 이율 배반을 주관에 귀속시킴으로써 “모순을 주관적인 것으로 만들었으니” 현상 자체에서도 마찬가지 이율 배반이 생긴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4)

이상 관점을 기본적으로 전제하면서 헤겔은 이제 양적인 것에 관한 칸트의 이율 배반을 비판하는 데로 들어간다. 이제 양적인 것에 관한 이율 배반은 두 대립하는 정립과 반정립을 모두 긍정하는 이율 배반이다. 모순이 존재할 수는 없으니, 두 주장 다 배척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헤겔은 칸트가 논증했다고 믿는 것은 사실은 진정으로 논증한 것이 아니라 전제 속에 감추어놓고 이것을 마치 논증한 결과처럼 떠벌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칸트는 논박 요술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항의한다. 고찰된 증명은 요술은 아니지만, 증명이라는 외적인 형태를 갖고 있어서 결론으로 출현해야 하는 것이 괄호 속에 증명의 축이 된다는 것을 투시하지 못하게 한다.”(논리학 재판, GW21, S. 184)

정립부터 보자. 이 정립은 “세계 속의 모든 합성된 실체는 단순한 부분들로 합성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즉 더는 나누어지지 않는 단순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어가 ‘합성된 실체’인데, 정립에서 칸트는 이 주어를 실체보다는 합성된 것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칸트는 이 주장을 논증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만일 합성된 것을 구성하는 단순한 것이 없다고 해 보자.

-그러면 합성된 것을 구성하는 것은 다시 합성된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무한히 이어가면, 마지막으로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만 남는다.

-합성된 것이 무로 구성될 수는 없으니, 단순한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칸트의 이런 논증에 대해 헤겔은 불필요한 우회를 해서 증명한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구성 또는 합성된 것이라는 말 속에 이미 단순한 것의 합성이라는 의미가 깔려있다. 이것은 합성된 것은 합성된 것이라는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합성된 실체가 단순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모든 합성은 사유 속에서 지양될 수 있으니, 어떤 합성된 부분도 남지 못한다. 그런데 어떤 단순한 부분도 없으므로 어떤 단순한 것도 따라서 어떤 것도 결과적으로 어떤 실체도 있을 수 없다.”(논리학 재판, GW21, S. 182)

“다음 사실이 밝혀진다…. 즉 증명으로 제시된 근거는 직접 추론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합성은 단순히 실체의 우연적 관계이며, 이 관계는 실체들에 외적이어서 실체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논리학 재판, GW21, S. 183)

5)

이제 반정립을 보자. “세계 속에 어떤 합성된 사물도 단순한 부분들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계 속에 어떤 단순한 것도 현존하지 않는다.”

여기서 칸트는 정립과 다른 주어를 사용한다. 즉 ‘합성된 사물’이다. 흔히 그렇게 하듯이 ‘사물’을 ‘실체’와 같은 말로 보면, 정립과 같은 주어가 된다. 그런데 이 반정립된 합성된 실체(사물) 가운데 칸트가 초점을 두는 것은 정립에서와 달리 ‘합성체’가 아니라 실체 즉 ‘단순한 것’에 있다.

칸트는 이 반정립 역시 타당한데 그것의 논증은 이러하다.

-실체가 단순한 부분들로 이루어진다면

-모든 실체의 합성은 공간 속에서만 가능하다.

-이 부분들은 각기 공간을 차지한다.

-그런데 어떤 공간도 부분 공간으로 이루어진다.

-합성된 것을 이루는 부분도 공간을 차지하는 공간은 다시 부분으로 나누어지니, 단순한 것은 합성된 것이 된다. 이는 자기모순이다.

-결론적으로 실체는 단순한 부분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칸트가 이 논증에서 목적으로 하는 것은 단순한 실체가 연속적인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는데, 헤겔은 칸트의 이런 논증 역시 잘못이라 한다. 여기서 이미 공간은 단순한 부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전제된다. (칸트는 공간은 부분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단순한 전체라고 본다.),

칸트는 반정립의 논증에서 사물을 공간 속에 집어넣었는데, 이는 곧 사물이 이미 공간적인 것 즉 연속적이어서, 단순한 부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을 전제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이 단순한 부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정립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제에 몰래 집어넣은 것을 추론이라면서 끄집어낸 것에 불과하다.

“공간은 단순한 부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가정이 증명되어야 하는 것의 직접적인 근거로 되었다.”(논리학 재판, GW21, S. 185)

“공간은 단순한 부분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가정된다. 그러므로 단순한 것을 이런 공간이라는 지반으로 옮겨놓는 것은 근거를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지반은 단순한 것이라는 규정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186)

6)

이 논증은 칸트가 공간을 연속적인 것으로 간주하므로 발생하는데, 그렇다면 그런 공간 속에서 합성이라는 외면적 관계가 성립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칸트는 물체를 공간 속에 집어넣고 물체의 합성을 공간적 관계로 설정했는데, 이것은 그 자신 공간을 다시 부분으로 합성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헤겔은 칸트의 혼란을 이렇게 지적한다.

“여기서 특히 공간에 대해 연속성이 매우 올바르게 부분의 합성과 대립하여 제시되었다. 반면 논증에서는 실체가 공간 속에 옮겨져 서로에 대해 외적으로 발견되는 관계가 즉 합성된 것이라는 관계가 동반된다고 가정된다. 그런 논증과 달리 공간 속에서 다양성이 발견되는 방식은 명백히 합성과 선행하는 부분들의 합일을 배제해야 한다.” (논리학 재판, GW21, S. 186)

사실 헤겔에서 물질과 공간은 양적인 것이면서도 서로 대립한다. 물질은 연속적인 것이면서 그 이면이 분리된 것이다. 공간은 분리된 것이면서 그 이면이 연속된 것이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물질은 공간에 들어있고 공간은 물질을 수용할 수 있다..

칸트는 정립에서 처음에 주어는 ‘합성체’라는 점에 초점을 두었다. 만일 정립의 주어를 ‘실체에 맞추어 보면 즉 단순한 실체라고 본다면, 단순한 실체가 단순한 것으로 이루어진다( 즉 합성된다)는 말은 모순이다.

마찬가지로 칸트는 반정립에서 주어의 초점이 단순한 ‘실체(사물)’에 있었는데, 만일 이 초점이 ‘합성체’에 있다고 한다면, 반정립은 합성체가 단순한 부분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연속체라고 주장하니 그 자체로 모순이다.

결국, 정립과 반정립에서 칸트는 주어를 모호하게 했다. 정립의 주어는 ‘합성된 실체’고 반정립에서는 ‘합성된 사물’이다. (사물과 실체를 같은 것으로 보더라도) 초점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각기 그 의미가 달리 해석된다. 칸트는 정립과 반정립 자체에 모호한 개념을 사용하면서 논증했으니, 철저한 논증이라 할 수 없다.

7)

헤겔의 입장은 ‘이율 배반이 성립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이 아니다. 모호한 주어를 명확하게 하더라도, 정립과 반정립은 동어반복이든 아니면 자기모순이니 두 가지 주장이 동시에 성립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오히려 헤겔은 칸트의 주장을 통해 대립하는 것의 통일, 모순이라는 그의 변증법적 원리를 확인할 뿐이다.

헤겔의 비판은 칸트의 의도를 비판하는 데 있다. 칸트는 정립과 반정립을 동시에 긍정하면서 이런 서로 대립된 것이 동시에 긍정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이율 배반을 발견했다. 칸트는 그러므로 단순성과 합성된 것, 연속성과 분리라는 범주는 어디까지나 경험적 현상에만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즉 물 자체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헤겔은 이런 이율 배반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은 모든 양적인 것이 지닌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성질이라고 보았으며, 이것이 우리가 양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들 물질, 시간, 공간 등의 본질적 특성이라 하였다.

“연속성 자체 내에 원자의 계기가 있다. 연속성은 단적인 분할의 가능성[즉 무한 분할가능성]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분리는 모든 구별을 지양한다. 왜냐하면, 단순한 일자는 다른 것과 같은 일자이기 때문이다. …. 각각은 다른 측면을 그 자체에서 가지므로 다른 것 없이는 생각할 수 없으므로 이 규정의 어느 것도 진리가 아니다.”(논리학 재판, GW21, S. 187)

헤겔은 이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높이 평가한다.

“그는[아리스토텔레스] 무한 가분성을 연속성에 대립해서 무한한 추상적 다를 그 자체에서 또는 가능성에서 연속성 속에 포함시켰다. 현실적인 것은 추상적 다수성에 대립하는 동시에 추상적 연속성에 대립하는 것이니 구체적인 것이다.” (논리학 재판, GW21, S. 188)

헤겔 형이상학 산책42-제논의 오류[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42-제논의 오류

1)

양적인 것의 개념은 우리를 항상 혼란에 빠지게 한다. 왜냐하면, 그 양적인 개념은 일자와 원자 그리고 공허라는 개념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철학과에 처음 들어와 그리스 철학사를 배울 때, 파르메니데스의 일자라는 개념까지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파르메니데스의 일자 개념에서 ‘존재는 있고 무가 없다’라는 주장이나 그러므로 ‘모든 것은 하나이고, 여럿이란 없으며’, ‘모든 것은 부동하고 운동이란 없다’는 주장은 의외에도 쉽게 이해됐다. 논리적으로 너무 분명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1년생이었던 당시 상식과 전혀 다른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듣고 황홀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당혹했던 것은 원자론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원자론자가 주장하는 원자라든가 공허라는 개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에서 무수한 여럿이 존재하고 부단히 운동하는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원자나 공허를 도입했다는 것까지도 이해됐는데, 이런 것은 논리적으로는 후퇴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파르메니데스에서 황홀감을 느꼈던 필자로서는 현실을 위해 논리를 후퇴시킨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철학자가 논리에 관해 타협한다니, 그것은 아직 어렸던 필자의 가슴에서는 마치 정조를 잃는 듯한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 뒤 대학에서 시간 강사가 되어 처음으로 그리스 철학사를 가르치면서 원자론자를 설명할 때마다 무언가 얼버무리는 듯한 느낌 때문에, 강의하면서도 스스로 의혹에 빠져들었다. 강의의 톤이 떨어지고 왠지 학생들이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가르치는 나를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뒤 늘 머리에 떠나지 않는 의문이 이것이다. 왜, 우리는 원자론자의 타협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2)

다와 운동의 문제는 그 뒤 필자를 자주 괴롭혔던 문제다. 이 자리에서는 일단 운동에 관한 논의는 제쳐 두자. 여기서는 주로 다의 문제만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다의 문제가 다시 필자를 괴롭히게 된 것은 칸트가 순수이성 비판에서 언급한 라이프니츠의 반성 개념에 관한 언급 때문이다.

알다시피 라이프니츠는 동일률을 제시하면서, 하나의 성질이라도 다르면 서로 같은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 원리에 따라서 동일한 성질을 지닌 것은 여럿으로 존재할 수 없고 오직 하나만이 존재할 뿐이라 했다. 모든 것은 고유한 모나드(일자)며 이 모나드는 서로 성질이 다르므로 이 세상에는 서로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는 원자론자를 계승한다.

칸트가 라이프니츠의 이 주장을 반박하면서 물방울을 예로 들면서 어떤 동일한 것이 시공간에서 차이 때문에 다른 것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동일한 것이 여럿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칸트가 여기서 다루었던 반성 개념은 물론 ‘동일성과 차이’라는 대립 개념만은 아니다. 그는 그 외에도 세 가지 반성 개념을 추가했는데-일치와 모순, 형식과 질료라는 대립 개념이나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나머지는 제쳐 놓고 여기서는 동일성과 차이만을 논하자.) 그에게서 핵심은 여럿은 주관적 차이에 불과하고 실상 같은 것이라 존재한다는 주장이 된다. 그는 다시 파르메니데스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라이프니츠에 대한 칸트의 비판은 시공간이 사물의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시공간은 칸트에서는 주관의 선험적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공간을 칸트처럼 주관의 형식으로 받아들인다면, 풀리지 않는 많은 문제가 제시될 것이다. 칸트처럼 하면 시공간은 등질적인 하나의 시공간이어야 하는데, 실제 세상에는 질적으로 차이 있는 다양한 시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누구나 경험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당혹하게 된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은 원자론자과 닮았다. 다만 원자론자가 원자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는 오직 질적 차이만 존재한다. 칸트는 같은 것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모든 같은 것은 하나로 합쳐지니 파르메니데스적 입장에 가깝다. 물론 그에게 같은 것은 이미 특정한 어떤 것 즉 물방울이나 나뭇잎인 한에서다. 그들의 이론 역시 거슬러 올라가면 근본적으로는 파르메니데스와 원자론자라는 두 흐름에 닿아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여러 물방울이 있고 여러 나뭇잎이 있는데 라이프니츠처럼 하나의 존재를 부정하기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칸트처럼 여럿의 차이를 단순히 주관적 차이로만 여길 수도 없다.

3)

여기서 제논의 역설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제논은 역설을 통해 여럿의 존재를 부정하고 파르메니데스의 유일한 하나를 옹호했다. 제논은 일 여럿을 전제로 한다면,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르지 못한다는 역설이 나온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여럿은 없고 오직 하나만 있다고 했다.

제논의 논증은 많은 관점에서 비판을 받았지만, 그의 논증을 그가 사용한 트로포스(논증의 형식)에서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트로포스는 가설이 경험과 배치된다는 데에 있다. 즉 그에게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른다는 경험은 이미 진지로 전제돼 있다.

그렇다면, 마찬가지 역설이 하나와 연속성만이 존재한다고 할 때 이미 성립하는 것이 아닐까? 하나와 연속성만이 존재한다면, 실제로 이 세상에 여럿이 존재한다는 경험 즉 여러 물발울이 존재하고 여러 나뭇잎이 존재한다는 경험과 배치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원자론자가 먼저 그런 트로포스를 사용해 여럿의 존재를 주장하지 않았던가?

경험과 배치된다는 것을 트로포스로 삼는다면, 모순된 주장이 동시에 입증되니, 이 트로포스는 증명의 원리가 되지 못한다. 제논이나 원자론자는 동시에 잘못된 증명 원리에 기초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원자론자가 틀렸다면 마찬가지로 제논도 틀렸다.

4)

철학사에서 부딪히는 하나와 여럿의 문제에 관해 당혹한 경험을 했던 필자로서는 헤겔의 제시하는 양적인 것의 개념에서 이런 여럿의 문제를 해결할 여지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헤겔의 논리학이 가지는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된다.

헤겔에게서 양적인 것의 토대는 대자 존재다. 이 대자 존재는 어디까지나 두 개 이상의 일반적 성질이 관계하면서 일정한 지속성을 지니는 경우에만 성립할 수 있다. 그러므로 태초에(또는 세계의 종말에 이르러) 개별적 성질이 무차별적으로 존재하면서 명멸할 때는 양적인 것은 없었다.

이 세상에 두 개 이상의 성질이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면, 이때 대자 존재가 출현한다. 이 대자 존재는 통일된 것이니 하나다. 대자 존재는 통일성 즉 관계를 의미한다. 그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매번 존재하는 관계는 개별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대자 존재는 동시에 개별자다. 대자 존재는 하나이면서 개별자이니, 곧 원자가 된다. 또는 라이프니츠처럼 모나드(단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대자 존재가 개별자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대자 존재가 여럿이라는 말을 함축한다. 개별자가 개별자만 있는 것은 우연일 뿐이다. 개별자는 이미 내적으로 여럿임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남녀가 결혼하면 아이를 낳는다. 아이는 요즘 혼자지만, 혼자인 것은 우연이고 아이가 여럿인 것은 필연적이다. 그 필연성은 우연 때문에 실현되지 않더라도 혼자인 것이 필연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개별자는 여럿이라는 것은 개별자의 본성에 내재하는 필연성이다.

이런 점에서 헤겔의 경우 파르메니데스의 ‘유일한 하나’ 개념을 부정하고 ‘여러 하나’라는 원자론자의 입장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5)

대자 존재 자체는 양적인 것이 아니다. 대자 존재가 다른 대자 존재와 관계하게 되면서 양적인 것이 출현한다. 대자 존재는 서로 동일한 것이니 이것이 서로 관계한다면 연속적이어서 어떤 구분이 없다. 그러나 이런 연속 속에서도 각 대자 존재는 개별자니, 그것들은 서로 다른 것이며 그런 점에서 각 대자 존재는 서로 반발한다.

대자 존재가 다른 대자 존재에 대해 이처럼 연속과 반발이라는 이중적 관계, 서로 동일하면서도 다른 개별자라는 이중성 때문에 양적인 것이 출현한다. 양적인 것이 출현하면 동시에 공허가 출현하게 된다. 양적인 것은 대자 존재 사이의 연속성의 측면을 말한다. 그 이면은 서로의 반발이다. 반면 공허는 대자 존재 사이의 상호 반발하는 관계를 말한다. 그런 공허의 이면이 대자 존재 사이의 연속성이다. 양적인 것과 공허는 항상 동전의 양면으로 서로 대립하면서도 동시에 결합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원자론자가 원자를 상정한 이상, 그것들 사이에 연속성과 반발이라는 관계가 성립할 수밖에 없으니, 원자로부터 양적인 것이 출현하며 그와 동시에 공간이 출현한다. 이렇게 ‘하나(일자)’, ‘원자’, ‘공간’라는 개념은 상호 공속하는 개념이다.

세상에는 파르메니데스처럼 유일한 하나 또는 연속성만 있다고 볼 수도 없고 원자론자 처럼 여러 하나가 있고, 그들에 단절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하나의 여럿, 연속성과 단절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헤겔 형이상학 산책41 -양적인 것에 관해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41) -양적인 것에 관해

1)

헤겔 논리학 1부 1권 존재론 1편은 1장은 존재와 무, 생성이라는 존재론의 영역에서 전개되는 운동의 형식을 서술한 일반론에 해당한다. 존재론 2장 즉 현존 장은 사물의 질을 다루었고 여기서 현존, 유한성, 무한성이 다루어지고, 존재론 3장에서는 대자 존재를 다루면서 이 대자 존재의 견인과 반발이라는 운동을 설명했다.

2장 마지막 부분에서 헤겔은 양적인 것으로 이행을 소개하면서 마침내 1편을 마치고 2편 크기 또는 양적인 것을 다루기 시작한다. 2편에서 다룰 내용은 양적인 것(1장), 정량(2장), 비례(3장)이니, 판단 형식에서 보면 양적 범주에 속하는 형식들이 다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형식 논리학은 판단 형식을 거론할 때 양적 범주를 먼저 언급하고 질적 범주를 나중에 거론한다. 이것은 칸트가 판단 형식에서 인식의 선험적 범주를 끌어낼 때도 따랐던 원칙이었다. 그런데 헤겔은 질적 범주 다음에 양적 범주를 언급한다.

사실 서구 형이상학에서 가장 핵심적 개념은 이 양의 개념에 있다. 이 양의 개념이 형이상학적으로 전개되면서 서구의 자연과학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거꾸로 자연과학은 양의 현상을 발견하면서 형이상학을 발전시키는 매개가 됐다. 형이상학과 과학 사이에 전개된 논의의 축은 항상 수의 개념과 비례의 개념이었다. 서구 형이상학이 본래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곧 이 양의 개념에 있다.

2)

형식 논리학에서 볼 때 양적인 것은 질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성질이다. 양적인 것의 대표는 공간적 크기나 형태인데, 인간은 공간적 크기나 형태를 직관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자주 지각에 관한 형태학적인 이론이 제시된다.

그러나 과연 이런 양적인 것이 질적인 것과 동일한 직접 지각 가능한 성질인가? 흄은 양적인 크기의 지각은 감각적 성질의 차이를 통해서만 가능하니, 양적인 것은 직접 지각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 때문에 양적인 것이 추상적인 성질이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감각적 성질로부터 추상하여 양적인 성질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장 반박이 제기될 수 있다. 감각적 성질은 직접적이니, 그 자체로 진리가 된다.(물론, 이 직접성을 확보하기 위해 감각 너머 원초적 감각을 상정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감각은 직접적인 것으로 본다) 반면, 양적인 것은 직접적인 것을 추상하는 사유를 통해 형성된 것이니, 과연 이것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인지가 의심스러워진다.

후설이 양적인 것을 비판한 이후로 이처럼 양적인 것의 존재를 부정하는 철학적 관점은 도처에 흩어져 있다. 현대에 와서 아도르노나 들뢰즈와 같은 철학자가 양적인 것의 존재를 부정하는 대표적인 철학자가 될 것이다. 양적인 것을 넘어서 원초적 감각으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은 오늘날 철학에서 만연한 구호라고 하겠다. 이런 관점은 양적인 것에 기초하는 자연과학을 회의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3)

헤겔은 양적인 것이 감각적 성질처럼 사물에 속한 성질로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것이 사유의 추상을 통해서 형성되는 관념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헤겔은 감각적 성질조차 관계를 통해서 설명하려 했는데, 양적인 것이야말로 이런 관계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양적인 것이 어떻게 출현하는지, 헤겔의 설명을 따라가 보자.

앞에서 헤겔은 질적 범주를 다루는 마지막에 이르러 대자 존재를 다루었는데, 대자 존재란 철학상 파르메니데스에서 시작하는 일자를 말한다. 일자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내적인 통일성을 지닌 존재로 규정된다. 두 개의 대립하는 성질이 관계를 맺을 때 그 관계가 지속할 때, 즉 통일성이 유지될 때 대자 존재가 된다.

헤겔은 이런 대자 존재는 일자지만, 파르메니데스처럼 수적으로 하나는 아니고 다수의 개별자일 수밖에 없다고 보며, 그런 점에서 오히려 헤겔의 대자 존재는 데모크리투스적 원자라는 개념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런 통일적 관계가 한순간 존재할 때는 개별자기 때문이다.

이런 개별자는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데, 그 각각은 우연한 조건에 따라서 출현하므로 그것들의 차이는 우연적 차이일 뿐이며 그 속에 어떤 동일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개별자는 동일한 것이 된다. 헤겔의 대자 존재를 대표하는 예를 들자면 하나하나의 소금 알갱이거나 하나하나의 나뭇잎일 것이다.

나뭇잎과 소금 알갱이들은 서로 동일하면서도 차이를 지닌다. 이런 것들의 관계는 서로 동일한 것들의 관계라는 점에서는 견인이며 서로 차이를 갖는 점에서는 반발이다. 이를 통해 두 가지 관계가 출현한다. 견인을 통해 본질상로 연속적인 것인 양적인 것이 출현하며 반발을 통해 본질상 차이에 속하는 공간이 출현한다.

마치 원자론자가 원자의 이면에 공허를 상정했듯이 양자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면서도 따로 떨어져 있을 수 없다. 양적인 것이 없이 공간도 없으며 공간도 없이 양적인 것도 없다. 양적인 것의 이면은 이미 차이며, 공간적인 것의 이면은 이미 양적인 것이다.

4)

그러므로 헤겔은 질은 최초의 직접적 규정성이지만, 양은 “존재(질)에 무차별하게 된 규정성”이며, “대타 존재와 단적으로 합일한 대자 존재”라고 한다. 여기서 대자 존재는 통일성, 일자의 측면이며 대타 존재는 현존, 개별자의 측면이다. 즉 대자 존재는 존재하는 것이라는 저에서 서로 차이를 지니지만, 대자 존재라는 점에서 본질상 동일한 것을 말한다.

여기까지는 대자 존재에 관한 규정인데, 양적인 것으로 이행하면서 새로운 규정이 덧붙여진다. 양적인 것은 대자 존재와 대자 존재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여러 일자의 반발이며 동시에 직접 서로 반발하지 않는 것, 즉 여러 일자의 연속성이다.” (논리학, 재판, GW21, S. 173)

이렇게 덧붙여진 규정이 의미하는 것은 여러 대자 존재 사이에 연속과 차이를 동시에 갖는 관계가 곧 양적인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양적인 것은 다음과 같이 규정된다.

“대자 존재자가 이제 그의 타자를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타자 속에 자기를 긍정적으로 지속하도록 정립되었으므로 대자 존재자는 현존이 이 연속성 옆에서 다시 출현하는 한, 타자 존재다. 대자 존재자의 규정성은 동시에 더 이상 단순한 자기 관계 속에 있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또는 현존하는 어떤 것의 직접적인 규정성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자기로부터 반발하면서 규정성으로서 자기 관계를 다른 현존 속에서 갖도록 정립된다.”(논리학, 재판, GW21, S. 173)

이해하기 쉽지 않은 구절이지만, 현존의 경우 타자 존재와 대립해서 존재한다. 유한성은 타자 존재를 그 자체에서 갖는다.(그것이 대타 존재다) 그러나 양적인 것에서 하나의 대자 존재는 다른 대자 존재에 대립하지만, 이 다른 대자 존재도 역시 그 자신과 같은 대자 존재다. 그러므로 대자 존재는 연속적인 것 즉 “타자 속에서 자기를 긍정적으로 지속하는 것” 또는 “자기 관계를 다른 현존 속에 갖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기 옆의 대자 존재는 사실 자신과 다른 또 하나의 대자 존재니, 이 타자 존재는 하나의 현존이며, 이 현존성은 “연속성(자기) 옆에서 다시 출현한” 현존이다. 타자 존재와 대자 존재는 이처럼 연속과 차이라는 이중적 관계를 통해 관계하는 것이다.

양적인 것은 아직 정량이 아니다. 정량은 양적인 것이 특정한 규정성을 그 자신에서 지니게 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구체적인 양이다. 즉 일정한 단위를 지닌 양이다. 예를 들어 미터, 그램 등과 같은 것이다. 양적인 것 자체는 아직 규정성을 지니지 않은 것이니, 여기서는 연속과 차이라는 관계만이 다루어진다.

양적인 것과 정량의 차이는 질적인 것에 현존과 유한성의 차이에 대응한다. 현존은 질의 명멸하는 질들의 관계라면 유한성은 타자와 관계 속에 있는 어떤 것의 규정을 말하니, 이미 그 자체에서 규정된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양적인 것은 연속과 차이의 직접적 결합만을 말하며, 정량은 특정한 양 즉 그 자체에서 어떤 규정을 지닌 양을 말한다. 말하자면, 유한한 양이라 말할 수 있다.

존재론 1편은 헤겔이 개정하면서 초판과 재판이 너무나 달라서 과연 같은 내용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물론 양자는 비교해 보면, 서로 대응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으니, 그리 우려할 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존재론 2편에서부터 초판과 재판은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평행해서 나간다. 그런 가운데 설명하는 용어나 구절에서 첨삭이 진행됐으나, 그 내용을 못 알아볼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존재론 2편 양적인 것을 설명하는 데서는 주로 재판을 인용하기로 하자.

헤겔 형이상학 산책40-견인력과 반발력의 동일성[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40-견인력과 반발력의 동일성

1)

견인력과 반발력은 일자들의 관계를 매개하는 힘이다. 이 힘은 대자 존재로서 일자와 그 일자가 관계 맺는 공허를 전제로 한다. 이 힘은 근대 초기 질량을 지닌 물체에 작용하는 힘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견인력은 중력을 통해 이해됐지만, 반발력은 쉽게 찾아내기 힘들었고, 결과적으로 근대 물리학에서 하나의 아포리아가 됐다. 라이프니츠가 활력(에너지) 개념을 제시하고 맥스웰이 에너지 보존 법칙을 수립하면서 견인력과 반발력의 균형이라는 변증법적 테제가 확립됐다. 만일 우주에 하나의 힘만이 존재한다면, 우주에서 운동은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견인력만 있으면 우주는 한 점으로 수축하고 말 것이며, 반발력만 있으면 우주는 무한히 확산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리학적으로 이 테제가 과연 맞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우주 전체의 에너지를 완벽하게 계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물리학자가 우주에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를 설정하는 것도 그런 테제를 전제로 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일단 헤겔은 대자 존재 즉 내적인 통일성을 지닌 일자라는 개념으로부터 개념적으로 견인력과 반발력의 통일이라는 원리를 끌어내니, 이제 헤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견인력과 반발력의 통일이라는 원리에 이르렀는지를 살펴보자.

2)

견인력과 반발력의 통일에 관한 헤겔의 테제는 대자 존재를 다루는 1권 2장 3절의 마지막 C-c 항에서 다루어지며(초판에서는 C-2항), 헤겔은 양자의 통일을 통해 양적인 것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현존을 다루는 2장을 마치고 양을 다루는 3장으로 넘어간다.

C-c 항에서 헤겔은 ‘견인력과 반발력의 관계’(초판에서는 제목이 ‘견인력과 반발력의 균형’이다)에서 양자를 자립적인 힘으로 보는 칸트의 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앞에서 소개했지만, 칸트는 물체의 침투 불가능성이라는 표상으로부터 반발력을 끌어내고 물체의 연장성(충만성)이라는 표상으로부터 견인력을 끌어냈다.

칸트는 양자를 물체를 이루는 두 표상으로부터 끌어내면서도 양자 사이에 연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즉 “견인력이 없이 반발력만으로는 어떤 물체도 존재할 수 없으므로 견인력을 요구했다.”(칸트, 자연과학의 최초근거, 53쪽, 헤겔 논리학에서 재인용) 간단히 말해 반발력은 확산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므로 반발력만 있다면 물체는 확산해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즉 반발력은 견인력을 전제로 삼는다는 것이다.

칸트 자신은 반발력을 견인력의 전제로 삼았으나, 견인력을 반발력의 전제로 삼지 않았기에 일방적이다. 그러나 헤겔은 칸트의 논리로부터 곧바로 견인력도 반발력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끌어냈다. 즉 견인력이 존재하려면 반발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헤겔의 논리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만일 견인력만 있다면, 견인력은 수축하는 방향을 작용하므로 우주는 하나의 점으로 수축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 자신은 이 두 가지 힘은 서로 타자를 전제하고 타자를 요구하지만, 자립적이고 서로의 관계는 외면적이라 보았다. 그러나 헤겔은 서로 전제하고 요구되는 것들의 관계는 내적이고 각자는 타자를 매개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3)

헤겔에서 견인력과 반발력은 이처럼 타자를 매개로 존재하지만, 헤겔은 결국 이것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매개라고 한다.

“견인력은 반발력을 매개로 견인력이 되며, 반발력은 견인력을 매개로 반발력이 된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타자를 통한 자기와 매개는 사실상 부정되며 이런 규정의 각자는 자기 자신과 그 자신의 매개가 된다.”(논리학 2판, GW21, S. 164)

여기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매개”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말을 설명하면서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각자는 자기 자신을 전제로 하는데, 즉 그 자신이 전제하는 것[타자]에서 다만 자기에 관계한다.”(논리학 2판, GW21, S. 164)

그것은 타자 속에 이미 자기 자신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두 가지 규정이 각자 독자적이면서 이처럼 자기를 자기가 전제한다는 것은 각자가 타자를 자기 안에 계기로서 포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논리학 2판, GW21, S. 164)

따라서 “자신이 전제하는 것[타자]에서 다만 자기 자신과 관계하게”(논리학 2판, GW21, S. 164) 된다. 즉 타자와 매개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과 매개하는 것이다.

핵심은 곧 타자 속에 자기가 들어 있다는 것 다시 말하자면 반발력 속에 이미 견인력이 들어 있고, 견인력 속에 반발력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4)

여기서 일자와 다수의 일자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일자가 가능하다면, 다수의 일자도 가능하다. 어떤 일자는 그 자체가 우연적인 대자 존재니, 다른 우연적 대자 존재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뭇잎이 대자 존재적인 일자인 한에서는 여러 나뭇잎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거꾸로 다수의 일자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미 그 다수가 일자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만일 그것이 현존이라면 현존은 다른 현존으로 이행하는 것이지 공허 속에 공존하지 못하므로, 다수 일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일자인 경우에만 다수 일자가 생겨날 수 있다. 만일 다수의 동전이 있다면 이 동전은 단순히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대자 존재의 산물인 일자이어야 한다.

일자가 견인력에 의해 생겨나고 다수 일자가 반발력의 산물이라면, 일자와 다수 일자가 순환하니, 마찬가지로 견인력과 반발력도 순환한다. 반발력은 견인력을 통해, 견인력은 다시 반발력을 통해 생겨나니 견인력이 타자인 반발력에 의해 매개된다면, 더 나가서 자기 자신인 반발력에 의해 매개된다고 할 수 있다.

“반발력을 통해서 다수의 일자가 일자로서 자기를 드러내고 유지하며, 반발력을 통해서 다수의 일자 자신이 존재한다. 다수 일자가 존재하는 것이 반발력 자체다[반발력을 가능하게 한다]. 반발력은 다른 현존에 대립하는 상대적 현존이 아니라[현존과 현존의 관계에서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다만 자기 자신에 관계한다.” (논리학 2판, GW21, S. 164)

다수의 일자를 정립하는 것이 반발력인데, 다수의 일자가 있어야 반발력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견인력은 반발력을 통해 이 반발력은 견인력을 통해 생겨나니, 견인력은 타자인 반발력에 의해 매개된다고 할 수 있고 더 나가서 자기 자신 즉 견인력 자신에 의해 매개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견인력은 자신을 전제해서 다른 일자들의 규정 속에 관념적으로 존재한다. … 다수 일자는 관념성[일자라는 것]을 반발력 규정에 대립해서 견인력에 관계해서 비로소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 견인력은 전제되고 있고, 다수 일자에서 본래 존재하는 관념성이다. 왜냐하면, 다수 일자는 일자인 한-견인력을 가진 것으로서 표상된 것이 함께 포함되어 있으므로- 서로 구별되지 않으며,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논리학 2판, GW21, S. 164)

즉 일자를 정립하는 것은 견인력인데, 일자가 있어야 견인력 자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5)

이제 각자가 타자와 대립한다는 점에서 보면, 각자가 타자를 매개로 하고 또는 자기 안에 타자를 포함하고 있어서 타자에 대립하는 것은 곧 자기에 대립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각자는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타자로 이행하며 그 자체에서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를 자신의 타자로 정립하는 것이다.”(논리학 2판, GW21, S. 164)

“여기서 ‘자기를 전제하는 것’(견인력)이 ‘자기를 자기의 부정태로서 정립하는 것이며’ 즉 반발력 즉 ‘그런 것 속에 전제된 것은 전제하는 것 즉 견인력과 동일한 것이다.”(논리학 2판, GW21, S. 164)

이제 헤겔은 견인력은 곧 반발력이 되고 반발력은 곧 견인력으로 되니, 양자는 서로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견인력과 반발력은 서로 불가 분리적이며 서로 동일하다. 이런 견인력과 반발력의 동일성을 헤겔은 이렇게 설명한다.

“일자 자체는 탈자화이며 자기를 타자로서 즉 다수 일자로 정립하며, 다수 일자는 동시에 자체 내로 함몰하여 자기를 타자로서 즉 일자로 정립한다.”(논리학 2판, GW21, S. 164)

그러므로 일자가 있다면(견인력), 동시에 그것과 구분되는 다른 일자도 있게 되며(반발력) 여러 일자가 있다면(반발력) 각 일자가 자기를 일자로 유지한다(견인력).

“다수 현존하는 일자를 견인력하는 것은 그 다수 일자의 관념성이며 일자를 정립한다. 그렇게 일자가 정립하는 가운데 다수 일자는 부정하면서 일자를 산출하는 것이 되어서 자기 자신을 지양하며, 일자를 정립하는 것으로서는 그 자신에서 자기를 부정해서 반발력이 된다.”(논리학 2판, GW21, S. 164)

“따라서 탈자(반발)과 자신을 일자로 정립하는 것(견인)은 불가 분리적이다.”(논리학 2판, GW21, S. 164)

6)

이상 헤겔에서는 견인력과 반발력을 세 단계로 설명했다. 우선 ‘양자를 자립적인 힘으로 가정’하는 칸트의 주장에서 출발하여 ‘각자는 타자를 매개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서 ‘다시 자기 매개를 통해 존재하는 것’으로, 마지막으로는 ‘양자의 동일성으로’ 설명했다. 헤겔의 논리 전개는 일반적으로 견인력과 반발력에 관한 표상을 통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에 대해 외부적으로 반발력하는 것은 그 물체의 내부에서 견인력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만일 견인력이 없다면 반발력 자체가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자기가 단단하지 못하면 외부 충격에 깨어지고 말지 반발력하지는 못할 것이다. 반면 우리는 표면의 반발력만을 생각하지 그 내면의 견인력을 보지 못한다. 헤겔은 그 내면의 견인력이 없이는 표면의 반발력도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거꾸로 하나의 물체가 외부적으로 다른 물체를 견인력하는 것은 거꾸로 그 물체 내부에서 반발력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자주 끌어들이는 힘만을 보지만, 사실 자기 내부에서 반발력이 없다면, 외부의 물체를 끌어들이지도 못한다. 만일 타자를 끌어들이려 한다면, 자기 자신만을 고집하며 고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견인력과 반발력이 사실 서로 대립하는 것이지만, 양자는 동일하다는 것으로부터 이제 질적인 존재는 자기를 넘어서 양적인 존재로 이행한다. 양적인 존재란 곧 여러 일자가 견인력과 반발력의 이중적 관계 속에서 결합한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자들의 관계는 공허 속에서 일어나는 관계다. 즉 양을 이루는 개념은 두 가지 축에 의존한다. 즉 일자와 공허, 그리고 견인력과 반발력이다.

마르크스 독일 이데올로기 생성의 역사에 관해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마르크스 독일 이데올로기 생성의 역사에 관해

 

이병창(한철연 회원)

 

마르크스 독일 이데올로기 생성의 역사에 관해 연구자들이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일부에서 기존에 사용하던 MEW판 독일 이데올로기 그 가운데 특히 포이어바흐 장이 위작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표시한다. 잘못하면 기존에 알려진 마르크스 엥겔스 역사적 유물론의 정체가 의심스러워질 판이다. 국내에서 정문길 교수님의 독일 이데올로기 편집에 관한 논문을 읽은 연구자는 더욱 그러하다.  정문길 선생은 그 차이점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두 판본을 직접 비교 대조하여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밝히지는 않았다. 그때문에 그 차이가 과장되면서 위작이 아니냐 하는 의문이 발생한 것 같다.

필자는 독일 이데올로기를 번역하면서 MEW3권을 기초로 번역했지만, 영어본과 MEGA2에 나오는 포이어바흐 장을 함께 번역해 실었다. 1권에는 MEW3 포이어바흐 장이  2권에는 MEGA2와 영어본 의 포이어바흐 장이 실렸다. 이 자리에서 포이어바흐 장의 원본이 지니는 의미를 밝히려 한다.(필자가 양자를 동시에 번역한 것은 두 개의 편집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MEW 3 은 아도라츠키가 편집한 포이어바흐 장에 기초한 것인데,   원본의 구절을 추가하거나 배제한 것은 없다. 다만 원본의 구절을 역사적 유물론의 원리에 따라 재구성했다. 그러나  MEGA 1,  영어본, 그리고 최근 발간된 MEGA2은   리야노프스키가 발굴한 원본 그대로를 살리려 했다. 그 결과 주요 내용은 인류 역사를 시험 삼아 역사적 유물론의 원리에 따라 스케치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스케치를 넘어서 본격적으로 역사를 연구한 것은  1848년 2워 혁명 이후다.

(위의 원본을 살리려는 각 시도들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 엥겔스가 전지를 반으로 나누어서 왼쪽에 쓴 원문을 오른쪽에서 고쳤는데, 고친 부분이 왼쪽의 앞뒤에 어느 부분에 들어가는지를 편집자가 달리 보았기 때문이다. 역시 마르크스의 의도를 알면 어렵지 않게 이해되는 부분이다.)

아도라츠키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의 편집은 마르크스 엥겔스가 여백에 남긴 표시에 따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백의 표시가 꼭 그렇게 옮기라는 지시인지는 의문이다. 그러므로 위작이니  말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기존의 역사적 유물론의 원리가 의심될 여지도 없다.

다만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의 발전사적인 측면에서 독일이데올로기에서 제시된 원리가 오늘날 확립된 원리와 다르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역사는 분업의 전개를 중심으로 했고 아직 생산력이나 생산관계라는 개념이 확립되지 않았다. 생산력과 생산 관계 개념은 1859년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에 가서야 확립된다. 분업과 생산관계는 서로 다른데, 분업은 교환이나 분배까지 포함한 더 포괄적 개념이어서, 실제 역사에서 전개된 정치적 투쟁을 이해하는데서는 생산관계 개념보다 더 도움이 된다. 물론 분업의 전개 자체를 다시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통해 설명해야 마땅하리라.

마르크스 역사철학에 관한 돕- 스위지 논쟁은 바로 생산관계 중심이냐 아니면 분업(교환관계)를 중심으로 하느냐 하는 논쟁이다. 독일 이데올로기는 이 논쟁을 해결하는 데서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필자는 생각으로는 역사를 볼 때 분업과 생산관계 개념을 통일적으로 파악해야 충분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독일 이데올로기의  포이어바흐 장 원본을 발간하는 것은 기존의 생산관계 중심의 역사적 유물론을 보완하고 완성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보겠다.(필자는 이 부분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국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발간하는 잡지여서 연구자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필자는 지금하는 작업을 마친 다음 이 논문을 개편해서 학회지에 발표하려 한다.)

아래는 각 판본의 편집자가 밝힌 생성의 역사다. 필자의 능력으로 그 이상의 연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했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들이 제시한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려 한다. 다만 그 가운데 MEGA2의 편집자는 200쪽에 달라는 방대한 생성사를 서술했다. 다만 너무 방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해 필자가 간단하게 요약해 두었으니, 특히 이 부분을 참조로 하기 바란다.

덧불일 것은 포이어바흐 테제는 독일 이데올로기가 작성되기 전에 이미(45년 4월) 작성되었다. 포이어바흐 테제는 독일 이데올로기 포이어바흐 장과는 시기, 문체, 내용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독일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한 것인데, 편집자들이 이 테제를 독일 이데올로기에 집어넣은 것은 독일이데올로기가 작성되기(대체로 46년 겨울) 전에 이미 마르크스가 새로운 역사적 유물론의 원리에 도달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독일 이데올로기 작성에 동기를 준 것은 슈티르너의 포이어바흐 비판인데( 45년 6월), 마르크스 엥겔스의 역사적 유물론이 슈티르너의 충격과 무관하게 이미 구성됐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또 2권의 내용은 편집자마다 다르다. 모제스 헤스와 관계, 출판의 문제 등 때문에 추가되고 배제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독일 이데올로기의 핵심 부분과 무관하다.

후기3 『독일 이데올로기』 성립의 역사에 관해(필자가 번역한 독일 이데올로기 번역본의 1411-1432쪽 부분)

독일 이데올로기의 작성과정은 W, CW, GA2가 각각 해명한다. 아래 각 판본이 밝힌 작성과정을 정리했다.

1) MEW
[W는 주 2에서 해명한다. CW 주 7은 이 내용을 보완했다.]
『독일 이데올로기, 최근 독일 철학의 대표자 포이어바흐, 바우어, 슈티르너 그리고 진정 사회주의의 여러 예언자에 대한 비판』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5~46에 집필한 저서이다.
1845년 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함께 이 저서를 집필하기로 결심하고, 1845년 9월 열정을 다해 이 작업에 착수했다. 초고는 약 50매의 인쇄 전지 분량이고 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권의 내용은 원칙적으로 역사적 유물론의 완성된 기본 논제와 포이어바흐, 바우어, 슈티르너의 철학적 견해에 대한 비판이다. 반면 2권이 담는 내용은 진정 사회주의의 여러 대변자의 견해에 대한 비판이다.
[CW 보완:1845년 봄(4월 초) 엥겔스가 브뤼셀에 왔을 때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당시 겨우 골격을 갖추기 시작했던 역사에 관한 그의 유물론적 견해를 요약해 설명했다. 그리고 그들은 역사에 관한 청년 헤겔주의자의 관념론적 견해나 포이어바흐의 엉성한 유물론에 대항해 자기들의 유물론적 견해를 내세우려는 의도로 철학 저서를 작성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기획의 맥락 속에서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 테제」가 작성됐다. 1845년 가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청년 헤겔주의자와 진정 사회주의자를 겨냥한 두 권의 저서를 작성하기로 확정적인 계획을 세웠다. 1845년 가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저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작업의 과정에서 저서의 계획과 구성이 여러 번 변화했다. 모제스 헤스는 그 가운데 두 장을 작성하기로 요청받았다. 그러나 청년 헤겔주의자 루게Arnold Ruge에 대항해 헤스가 작성한 장은 1권에 넣기로 했으나 『독일 이데올로기』의 최종판에서 배제됐다. 헤스가 진정 사회주의자 쿨만Kuhlmann을 다루는 장은 2권에 넣기로 했으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편집했다.]
『독일 이데올로기』의 주요 작업은 원래 1846년 봄에 끝을 맺었다. 이 시기에 1권의 대부분이-즉 바우어와 슈티르너의 견해를 비판한 장(「라이프치히 공의회」)-끝났으며 2권의 대부분도 끝났다. 1권의 첫 부분(포이어바흐의 견해에 대한 비판)은 1846년 후반기까지 계속됐지만, 끝을 맺지 못했다. [CW 보완: 1권 서론 초안은 8월 중순 전에 마르크스가 작성했다. 2권의 결론 장에 해당하는 엥겔스의 「진정 사회주의자」는 1847년 1월에서 4월 사이에 작성됐다.]
그들은 1846년 5월 초 1권의 초고 주요 부분을 바이데마이어Joseph Weydemeyer의 베스트팔렌에 있는 인쇄소로 보냈다. 바이데마이어는 출판을 위한 재정적 도움을 받기 위해 그곳에 있는 사업가들-진정 사회주의자인 마이어Julius Meyer와 램펠Rudolf Rempel에게 도움을 청해야만 했다. 2권의 대부분이 베스트팔렌에 도착한 이후 마이어와 헴펠은 마르크스에게 1846년 1월 13일에 보낸 편지에서 『독일 이데올로기』의 출판에 대한 재정 지원을 거부했다. 1846~47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들의 저서를 출판하기 위해 새로운 출판사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 노력은 난관에 부딪혀 성과 없이 끝났다. 그 난관의 원인은 한편으로는 경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출판업자들이 계속 거부한 것 때문이다. 출판업자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반대하는 노선[즉 진정 사회주의]의 대표자들에 대개 공감했다.
마르크스 엥겔스가 살아 있는 동안 저서 가운데 단지 한 장 즉 『독일 이데올로기』 2권 4장이 잡지 『베스트팔렌 증기선Westfahlen Dampfboot』(1847년 8월과 9월)에 실렸다.
『독일 이데올로기』의 1권 2장 중 몇몇 쪽과 일치하는 내용이 익명으로 잡지 『사회의 거울Gesellschafstspiegelss』(1846년 1월 「소식과 메모」 난, 6~8쪽)에 소개됐을 뿐이다. 기사가 작성된 날짜는 브뤼셀, 12월 20일이다.
『사회의 거울』 4권(「소식과 메모」 난, 93~96쪽)에는 『독일 이데올로기』 2권 4장과 여기저기 일치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저서의 제목과 1, 2권의 표제는 초고 속에 적혀 있지 않다. 이 제목과 표제는1847년 4월 9일 트리어 신문에 소개된, 마르크스가 그륀Karl Grün을 반박하는 메모[「칼 그륀에 대한 포고」]에 근거한다.
1장 「포이어바흐」의 표제 설정이나 자료 정돈은 초고의 모퉁이에 적어 놓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방주에 근거한 것이다. 성 막스 부분을 두 부분으로-1) 『유일자와 그 소유』와 2) 『변호를 위한 주석』-구분한 것은 이 장의 처음에 제시된 저자의 지침에 따르고 또한 이 장 전체 내용에 근거해서 판단한 결과이다.
『독일 이데올로기』 2권 2, 3장은 초고에 없었다. [추가: 아마도 마르크스/엥겔스의 「크리게에 반대하는 통문」과 엥겔스의 논문 「독일 사회주의의 시와 산문」이 이 부분에 해당할 것이다.]

2) MECW주 7) 추가
[역자: CW주의 앞부분은-앞에서 보완한 부문만 빼고 W와 같으므로 여기서는 나머지 뒷부분만 추가한다.]

수고는 상당히 처참한 상태다. 종이는 노랗게 변했고 곳곳이 손상됐다. “쥐가 쏠아 먹음으로 이룬 비판”이라는 말을 마르크스는 후일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해』 수고의 「서문」에 썼는데, 이 말은 수많은 쪽에 그 흔적을 남겼다. 또 다른 여러 쪽이 누락됐다. 『독일 이데올로기』의 「서문」과 변경하거나 추가한 것 중 어떤 것은 마르크스가 필기한 것이다. 그러나 수고는 대부분 엥겔스가 필기한 것이다. 다만 2권의 5장과 1권의 3장 몇 쪽은 요셉 바이더마이어가 필기한 것이다. 통상적인 일이지만, 각 쪽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주요 텍스트는 왼편에, 추가나 개정은 오른편에 있다. 많은 쪽은 저자들이 직접 삭제했으며, 몇몇 쪽은 베른슈타인을 통해 삭제됐다(이 점은 반S. Bahn이 『사회사 국제 논평집』 7권, 1962년, 1부에 실린 그의 논문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독일 이데올로기, 약간의 텍스트 보완」이라는 논문에서 지적됐다.
읽을 수 없게 된 말과 구절은 가능하다면 그때마다 손상되지 않은 부분에 기초해 재구성됐다. 그런 재구성된 구절은 꺾쇠 속에 넣어졌다.[역주: 번역의 형편 때문에 불가피하게 이런 표시를 지웠음을 양해해 달라.] 의미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몇 마디를 집어넣을 필요가 있을 때마다, 그 말을 마찬가지로 꺾쇠에 넣어 인쇄했다. 수고에서 나타나는 글의 중단은 각주에서 지적됐다. 여백에 쓴 메모와 삭제된 쪽 중 중요한 것은 각주[노트]에서 복구됐다.[역주: 편집상의 필요 때문에 본문에 집어넣어 노트로 표시했다.] 이 각주는 별표로 표시되고 반면 편집자의 노트는 번호를 매겨 지시됐다. 베른슈타인이 삭제한 쪽은 해독이 가능한 한 복원됐다.
엥겔스가 죽은 후 『독일 이데올로기』의 수고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지도자들의 손에 들어갔다. 그들은 37년간에 걸쳐서 그 반도 인쇄하지 못했다. 「3장 성 막스」의 한 부분은 1903~4년 베른슈타인Bernstein이 출판했다.(마르크스와 엥겔스, 「3. 성 막스」, 『사회주의 자료집』, 소책자 3권, 1~4월과 7~8월, 슈투트가르트, 1903/『사회주의 자료집』, 소책자 4권, 5~9월, 슈투트가르트, 1904) 이 장의 다른 부분 즉 「나의 자기 향락」 부분은 1913년 발표됐다.(마르크스, 「나의 향락」, 『노동자 문예』, 뮌헨, 8권과 9권, 1913년 3월) 마이어Gustav Meyer가 1921년 「라이프치히 공의회」의 서론 격에 해당하는 쪽과 「2장 성 브루노」를 출판했다.(엥겔스와 마르크스, 「라이프치히 공의회」, 『사회과학과 사회 정치학 서고』, 47권, 소책자 3, 튜빙엔, 1921 참조) 「1장 포이어바흐」 즉 가장 중요한 이 장은 1924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 산하 마르크스 레닌주의 연구소를 통해 처음으로 발간됐다.(『마르크스 엥겔스 서고』, 1권) 그리고 독일에서는 1926년 『마르크스 엥겔스 서고』, 1권으로 발간됐다. 우리에게 전승된 전체 저서는 (나중에 발견되고 『사회사 국제 논평』, 7권, 1962년도 1부에 실린 6쪽을 제외한다면) 1932년 소련 중앙의 산하 마르크스 레닌주의 연구소를 통해 『마르크스 엥겔스 총서[GA1]』, 5권 1부로 발간됐다.
1장의 최초 영어판은 러시아판에서 번역했으며, 미국의 잡지 『마르크스주의자』 4호(1926년 7월)에 발표됐다. 이 장의 몇몇 부분은 독일어판에서 번역됐고, 1933년 3월 영국의 잡지 『노동 월간』 15권 3호에 실렸다. 1장의 「포이어바흐」와 2권 「진정 사회주의」의 영어 번역은 『독일 이데올로기』1부, 3부라는 제목으로 1938년 로렌스와 위샤르트Lawrence & Wishard 출판사가 출판했다. 전체 저서의 영어 번역본[CW 5권]은 1권 1장의 한 쪽(수고 29쪽)을 제외하고는, 1964년 모스크바 프로그레스Progress 출판사를 통해 발간됐다.

3) CW주 8)
[여기서는 특별히 포이어바흐 장의 성립 과정을 설명한다.]

『독일 이데올로기』 1장[포이어바흐 장]의 수고는 여러 분리된 문서 형태로 우리에게 전승된다. 이 문서들은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상황에서 작성된 것이다. 그것은 마르크스 엥겔스가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 책의 일반적인 계획을 변화한 데 기인한다.
처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포이어바흐, 바우어, 슈티르너를 동시에 다루는 비판적인 저서[H5a에 해당]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들은 바우어와 슈티르너를 다른 장에 다루기로 결정했다.(2장 성 브루노 3장 성 막스) 그리고 1장은 일반적 소개를 담는 장으로 설정됐다. 이 소개는 포이어바흐에 반대하는 그들의 고유한 견해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원래 수고에서 바우어와 슈티르너와 관련해 썼던 구절들을 삭제한 다음 이를 2장과 3장으로 옮겼다. 연대기적으로 보면 포이어바흐에 관한 장의 핵심 내용을 이루는 첫 부분은 이렇게 해서 나왔다.
이어서 그들은 2장을 작성하고 3장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슈티르너의 책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던 과정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여러 가지 이론적인 전환을 겪게 됐다. 이런 전환 가운데서 그들은 역사에 대한 고유한 유물론적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에 따라서 그들은 이런 전환 가운데 두 가지를 슈티르너의 장에서 포이어바흐 장으로 옮겼다. 첫 번째는-6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슈티르너의 관념론적 견해에 대한 비판과 연결되어 작성됐다. 그 견해란 곧 역사는 정신을 통해 지배된다는 것이다.(이런 전환의 내용은 원래 「D. 위계체제」절에 존재했다.) 두 번째 비판적인 전환은-37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슈티르너가 부르주아 사회, 경쟁 그리고 사적 소유자 사이의 관계, 국가, 법에 대해 가졌던 견해에 대한 비판과 연결되어 작성됐다.(슈티르너의 장에 있던 이 구절은 다른 구절로 대체됐다.) 이 두 가지 전환은 연대기적으로 볼 때 포이어바흐의 장 가운데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을 이룬다.
포이어바흐의 장을 이루는 세 부분의 쪽은(1~72까지) 마르크스가 매겼으며 전체 장의 휘갈겨 쓴 복사본을 이룬다. 수고의 쪽 3~7과 36~39는 발견되지 않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대체적인 얼개를 개정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 정서된 복사본을 작성했다. 그 처음 부분은 두 판본이 있다. 우리는 수고의 다소간 독립된 네 가지 부분을 발견했다.(대체적인 복사본에 속한 세 부분과 정서된 복사본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현재 편집본에서 포이어바흐 장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부분[A절 앞부분]은 정서본인데 복합적인 단편들로 이루어진다. 둘째 부분[A절 뒷부분]은 전체 장의 원래 핵심을 포괄한다. 셋째 부분[B절]과 넷째 부분[C절]은 슈티르너의 장에서 옮겨온 이론적으로 전환을 이룬 부분이다. 각 부분은 전체적으로 일관되며 논리적으로 정합적이다. 각 부분은 서로 보완하며 함께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인 개념을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네 가지 부분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소개, 헤겔 이후 독일 철학이 지닌 관념론에 대한 일반적인 언급과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개념의 전제, 본질, 일반적 윤곽에 해당한다.
두 번째 부분은 역사 발전에 관한 유물론적인 개념이며,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개념에서 나오는 결론, 역사에 대한 관념론적 개념 일반에 대한 비판, 특히 청년 헤겔주의자와 포이어바흐에 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세 번째 부분은 역사에 대한 관념론적 개념의 기원을 다룬다.
네 번째 부분는 생산력의 발전, 노동 분업, 소유의 형성, 사회의 계급적 구조, 정치적 상부구조, 사회적 의식의 형식을 다룬다.
수고의 서로 다른 부분들을 비교해 보면 이 장의 논리적 구조를 추출할 수 있으며 저자들이 가졌던 의도에 대해 생각할 수 있으며 이 장의 일반적 계획을 재구성할 수 있다. 우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 대해 일반적으로 서술하고 이어서 역사에 대한 관념론자의 개념에 대비되는 유물론자의 개념을 제시하며 최종적으로 관념론자의 개념을 비판한다. 이 장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갖는다. 즉 저자들의 전제-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개념-그들의 이론에서 나오는 결론이라는 구조이다.
대체로 이 장의 계획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의도에 부합해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독일 이데올로기에 대한 일반적 서술(1절 서론과 1항, 2절 1항)
2) 유물론자가 지닌 역사 개념의 전제(1절 2항)
3) 생산(2절 3~5항, 1절 3항, 4절 1~5항), 교류(4절 6~10항), 정치적 상부구조(4절 2항), 사회적 의식의 형식(3절 1항, 4절 12항)
4) 유물론자의 역사 개념에서 나오는 결론과 요약(2절 6~7항, 1절 4항)
5) 관념주의자의 역사 개념에 대한 비판과 특히 청년 헤겔주의자 또한 포이어바흐에 관한 비판(2절 8~9항, 3절 1항)

수고의 전체 제목은 「1장 포이어바흐」이다. 1888년 마르크스가 죽은 이후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초고를 정리하는 가운데 그 가운데서 『독일 이데올로기』의 수고를 발견했고 그것을 다시 읽었다. 그는 이 장의 마지막에 “1장 포이어바흐, 유물론자의 견해와 관념론자의 견해의 대립”이라고 메모했다.
이장의 부분들은 세부 절로 나누어진다. 이 세부 구분은 편집자[CW의 편집자]가 한 것이며, 이 편집자가 제목의 대부분을 붙였다. 편집자에 의한 제목이나 모든 편집자의 언급은 괄호 속에 있다.
수고의 쪽은 이 책에 지시된다. 정서본(1, 2)은 엥겔스가 부분적으로 쪽수를 매겼으며 ‘정서본1, 2’ 등으로 매겨져 있다. 저자가 번호를 매기지 않은 정서본의 첫 번째 판본의 쪽은 ‘낱장1, 2’ 등으로 매겨져 있다. 휘갈려쓴 세 초고의 쪽은 마르크스가 매긴 것이며, ‘수고1, 2’ 등으로 표시된다.
1장에서 수고의 다른 부분의 배열과 세부 구분은 러시아판과 같다. 이 판은 『철학의 문제Voprosy Filosofii』 10, 11호(모스크바, 1965)에 실린 것이다.

4) GA2의 부록의 설명
[역주: 전체 약 200쪽에 걸치는 상당히 긴 설명이다. 간단한 요약해 서술했다.]

(1) 동기
『독일 이데올로기』는 1845년 10월부터 1847년 4/5월까지 작성됐다. 이 과정에서 여러 번 작성의 의도가 변화했다. 그 이유는 우선 사상적으로 포이어바흐에 대한 마르크스, 엥겔스의 입장이 긍정에서 비판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며 또 마르크스, 엥겔스가 진정 사회주의자들과 사상적으로 단절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처음 수고를 작성하게 된 동기는 마르크스가 바우어와 슈티르너에게서 포이어바흐의 아류라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신성 가족』(1845)에서 바우어를 비판하자 바우어가 『비간트』 계간지 3호(1845년 10월)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특징』이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마르크스를 포이어바흐의 아류로 비판했다. 슈티르너 역시 1845년 4월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발표하면서 마르크스의 원류인 포이어바흐를 비판하자, 포이어바흐는 『비간트』 2호(1845년 6월)에 이를 반박했다. 슈티르너는 이에 대해서 『비간트』 3호에 『슈티르너에 대한 비평가들』이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직접으로는 포이어바흐를, 간접으로는 마르크스를 비판했다.
마르크스 사상에서 포이어바흐는 기초였다. 1844년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도 포이어바흐의 유적 존재라는 개념이 출현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영국의 정치 경제학을 연구하면서 포이어바흐를 벗어났다. 1845년 초 작성한 「포이어바흐 테제」를 비롯한 수고들은 마르크스가 이미 독자적 길을 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직 포이어바흐에 대한 단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우어와 슈티르너의 비판을 계기로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를 비판하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길을 서술할 필요가 생겼다.
그런데 『신성 가족』을 통해 바우어를 비판할 때까지만 해도 마르크스, 엥겔스는 헤스와 함께 활동했으며 사회주의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다. 이 사회주의는 프루동에서 연원한 사회주의다. 그러나 1845년경에 이르러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를 벗어나 공산주의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1845년 12월 브뤼셀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자 동맹’에 속하는 ‘공산주의자 통신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와 독일 사회주의자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독일 이데올로기』를 쓰기 시작할 무렵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헤스와 함께 루게 등 자유주의자와 대결했으니, 진정 사회주의자와의 차이를 분명히 할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2) 수고의 작성
마르크스는 처음 1845년 10월 말 기존의 계간지에 발표하기 위해 바우어 비판에 착수했다. 대체로 11월 말에 이르러 바우어 비판은 완성됐다. 그런데 1845년 11월 말에 이르러 마르크스, 엥겔스는 헤스 등의 독일 사회주의자와 새로운 계간지를 발간하는 계획을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마르크스는 자신의 계획을 2권으로 확대했다. 1권은 바우어를 넘어 슈티르너까지 비판할 예정이었다.
1권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동시에 작성했다. 두 사람은 새벽까지 한줄 한줄 토론하면서 글을 써갔으나, 주도적인 역할은 마르크스가 맡았다. 나중에 이를 정서하는 책임은 엥겔스가 담당했다. 부분적으로 바이데마이어가 담당하기도 했다. 정서된 원고 옆에 마르크스가 다시 수정하는 글을 달아 교정했다.
2권은 진정 사회주의자(헤스 등)와 함께 작성하기로 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2권에서는 각기 독자적인 글을 작성했다. 전체적인 편집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동으로 책임졌다. 다른 기고자들의 글은 마르크스, 엥겔스가 개입해서 부분적으로 교정했다.
계획이 세워지자 11월 말부터 마르크스는 슈티르너 비판에 착수했다. 이런 비판 과정 중에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할 필요성을 피할 수 없다고 느꼈다. 슈티르너는 개인의 관점에서 포이어바흐의 유적 존재를 추상적이라고 비판하는데, 마르크스는 이때 이런 관점이 한면에서는 타당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유적 존재가 추상적인 만큼 슈티르너의 개인도 비역사적인 추상적 존재라고 보았다.
이 시기가 대강 1846년 3월 경이며, 이때 마르크스는 슈티르너의 사적 소유와 국가, 법의 관계를 비판할 무렵이었다. 그는 이 부분의 일부(H5c: 사회구성체의 역사적 발전)를 떼어 내어서 자신의 입장을 서술하는 서론으로 쓰기로 했다. 기왕에 썼던 부분 중 슈티르너의 위계체제를 비판한 부분 중의 일부(H5b: 유물론적 이데올로기 개념) 그리고 바우어 비판의 일부(H5a: 욕망에서 생산, 역사적 생산으로 즉 역사의 논리적 구성)를 결합했다. 이렇게 마르크스가 자기의 입장을 밝히는 서론 격으로 모아놓은 부분은 내용상 포이어바흐 비판과 중첩되므로, 포이어바흐에 대한 비판의 장 즉 1장으로 변화됐다.
포이어바흐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여전히 포이어바흐의 입장에 머무르는 독일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마르스와 엥겔스는 2권을 쓰면서 독일 사회주의(진정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하는 원고를 작성했다. 이때가 1846년 2월에서 4월 사이이다. 진정 사회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은 주로 헤스에 집중됐다. 특히 그가 발표한 『미래 철학의 근본 원리』(1943)와 『사회의 거울』에 발표한 『최근 철학자들』(1845년 6월)을 주요 표적으로 삼았다.
1권의 중심 원고는 1846년 3월 24일 완성했고, 엥겔스와 바이데마이어가 필사했다. 1846년 4월 3장 슈티르너 비판 부분의 정서도 마쳐서, 바이데마이어를 통해 원고를 베스트팔렌으로 보냈다. 4월 중순에서 5월 말 사이에는 2장 바우어 비판의 정서도 마쳤다. 그러나 아직 1장 포이어바흐 장은 여전히 개편하는 중이었다. 이어서 2권 진정 사회주의 비판(H12, 2권 1장), 칼 그륀 비판(H13, 2권 4장)도 원고를 완성했다.
계간지 발간 합의 이후 2권에 실릴 다른 작가들의 글은 베르트Georg Weerth, 베르네이즈Karl Ludwig Bernays, 바이틀링Wilhelm Weitling, 헤스Mose Hess의 글이다. 공산주의자 바이틀링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헤스와 가까운 진정 사회주의자다. 2권에 실리는 다른 작가 즉 진정 사회주의자의 원고도 이 시기에 완성됐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다른 작가의 원고는 거의 수정 없이 편집했으나 헤스가 쿨만을 비판한 원고(2권 5장)에 대해서는 엥겔스가 개입해서 헤스의 비판적 논조를 더 강화했다. 이런 작업은 1847년 5월 말까지 전개됐다.

(3) 수고 발간의 난파
마르크스는 프랑스 체류 시기(1843~1845)에 루게와 『독불 연보』를 편집했다. 이 연보가 중단된 이후, 마르크스는 진정 사회주의자 피트만이 주도하는 『라인 연보』의 편집자로 추천됐으나, 마르크스는 피트만과 협력을 거부했다. 대신 공산주의자 바이틀링과 영국에서 계간지를 발간하려 했다. 『라인 연보』도 곧 탄압을 받자, 출판사 사장인 레스케는 마르크스와 검열받지 않는 계간지를 발간하기로 계획했다. 1845년 11월 말 사업가이자 진정 사회주의에 동조하는 율리우스 마이어와 루돌프 램펠이 이 계간지의 재정을 지원하기로 약속하면서 계간지 발간이 가능하게 됐다. 이 시기에 앞에서 말했듯이 마르크스,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를 2권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계간지 발간 계획이 좌초하고 말았다. 거기에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진정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을 가진 것이 진정 사회주의자에게 알려진 것도 한 원인이 됐다. 브뤼셀에서 한때 공동생활을 하기도 한 헤스와의 충돌이 결정적 계기였다. 이런 충돌 이후 헤스는 1846년 3월 말 벨버Velver로 이주했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헤스를 추종하는 사업가 메이어와 램펠과도 소원해졌다.
게다가 메이어와 램펠은 이 시기 재정적인 위기에 처했다. 그들은 재정을 보조할 서적 판매상을 찾았으나 실패했다. 럼펠은 1846년 1월 서적상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사정을 들어서 헤스에게 편지를 내어 계간지 발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사이 일어난 헤스와 마르크스의 충돌은 갈등을 강화했다. 결국 1846년 5월 기존의 합의는 해소되고 말았다. 마르크스는 이를 직접 듣지 못했고 브뤼셀 공산주의 통신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바이데마이어를 통해 간접으로 전해 들었다.
계간지 발간이 난파한 다음에도 마르크스, 엥겔스는 원고를 단행본으로 발간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출판사와 접촉을 시도했으나 이마저 여의치 않았다. 그런 사이 1847년 6월에 1장 포이어바흐 장의 개편이 시도됐다. 이를 위해 마르크스는 쪽을 다시 매겼다. 원고는 다시 정서를 시작했다. 이 정서는 주로 엥겔스가 맡았다. 그래서 정서본(H3, H5)이 남았다. 그리고 1장 서문을 썼다. 두 번이나 쓴 것(H2, H3)을 폐기하고 새로 썼다. 남아 있는 H4가 최종 완성된 1장 서문이다. 최종적으로 1권 서문(H1)이 마르크스를 통해 독자적으로 작성됐다.
거듭된 출판 시도는 끝내 좌절됐다. 처음 2권으로 단행본을 발간하려던 계획은 다시 축소해 2권 가운데 다시 다른 작가의 글을 배제한 채 1권으로 통합해서 발간하려 했으나 이마저 실패했다.
베스트팔렌에 보냈던 원고는 바이데마이어를 통해 쾰른의 다니엘에게 전달됐으나 1847년 겨울 쾰른의 원고는 다시 마르크스의 손으로 돌아왔다. 마르크스는 돌아온 원고 중 슈티르너 부분(H11)의 구조를 개편하고, 축약하고 쪽수를 부여했다. 엥겔스는 진정 사회주의를 다시 비판할 필요성을 느끼고 글(H15)을 다시 작성했다. 마르크스, 엥겔스는 그때까지도 출판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출판이 지지부진한 사이 헤스가 쓴 루게 비판 논문 『도토레 그라찌아노』는 『독일 브뤼셀 신문』 1847년 8/9월 호에 독자적으로 발표됐다. 2권 가운데 진정 사회주의자인 벡과 그륀을 비판하는 2장과 4장은 1847년 말에 『독일 브뤼셀 신문』에 독자적으로 발표됐다. 그때 제목이 「진정 사회주의의 시와 산문」이다.
결국 1847년 겨울에 이르면 출판의 모든 시도가 포기됐다. 원고는 미완성인 채로 남았다. 아직 분명한 이름이나 구조도 부여되지 않았다. 다만 간접적으로 이름과 구조를 유추할 수는 있다. 1846년 여름 계간지에 실릴 『독일 이데올로기』에 대한 광고와 1847년 겨울 단행본 출판을 위한 광고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전자에서 우리는 수고의 구조를 알 수 있고 후자에서 우리는 수고의 이름을 알 수 있다. 그 이름이 『독일 이데올로기』이다.

(4) 전승
12년 뒤 마르크스는 『정치 경제학 비판을 위해』 서문에서 『독일 이데올로기』의 의미를 자기 해명에 두었다는 언급을 남겼다. 그는 역사에 관한 자기 이해가 분명해진 다음 수고는 쥐가 쏠아 먹는 대로 방치했다고 한다.
마르크스 사후에 원고는 엥겔스 손으로 넘어갔다. 엥겔스는 유고를 편제했으며, 1장 포이어바흐 장에 제목을 부여했다. 엥겔스는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에서 수고를 참고했다고 했으며,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에 「포이어바흐 테제」를 조금 수정해 실었다. 그는 수고를 세 뭉치로 나누어 보관했다.
엥겔스 사후 유고는 베른슈타인과 베벨의 손에 나누어져 전달됐다. 그 후 1924년 리야자노프David Rjazanov의 손으로 마르크스 엥겔스 문고로 편집됐고, 1926년 독일어판으로 발간했다. 1932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 산하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연구소의 아도라츠키Vladimir Adoratskij가 새로 편집했다. 이 편집본은 1932년 『마르크스 엥겔스 총서Marx Engels Gesammelte Aausgabe』[GA1]로 발간됐다.
리야자노프는 1장을 수고의 쪽수 대로 편집했으나, 아도라츠키는 1장에서 마르크스가 방주로 남긴 편집 지시에 따라 재편했다. 아도라츠키판은 동독 마르크스 레닌 연구소에서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arx Engels Werke)』(Dietz Verlag, 1958)(W, 3권)을 작성할 때 기초가 됐다.
그 후 W 편집을 비판하는 여러 시도가 등장했다. 1965년 소련공산당 중앙위 산하 마르크스 레닌 연구소에서 바가투리아Georgi Bagaturia가 리야자노프판에 따라 새로 편집했다. 이 편집본은 1966년 단행본으로 발간됐고, 1969년 모스크바 프로그레스 출판사에서 영어본(Marx Engels Collected Works[CW])으로 출판됐다.
그 뒤 일본의 히로마쓰 와타루가 1장을 시험적으로 편집했으며, 2003 타우버트Inge Taubert 등이 다시 1장을 시험적으로 편집해 『마르크스 엥겔스 연보 2003』(연보판)에 발표했다. 최근 2018년 국제 마르크스 엥겔스 재단(Internationaenl Marx Engels Stiftung[IMES])은 마르크스 엥겔스 총서를 다시 출판하면서 『독일 이데올로기』를 총서 1/5권(Marx Engels Gesammelte Aausgabe』[GA2])으로 발표했다. 이 판본은 라야자노프와 바가투리아의 판본을 따라 수고의 쪽에 따라 편집했다. 바가투리아가 1장의 수고에서 좌단과 우단으로 나누어진 글을 지그재그식으로 연결해 편집한 반면, GA2판은 수고의 좌, 우단을 그대로 편집해 수고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내용상 차이는 없다. 아래에서 W, CW(바가투리아판), GA2의 편집을 비교해 보았다.
참고로 각 판본의 출판 사항을 아래에 밝힌다.

W 3권:
원본:
소련 공산당 중앙위 부설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연구소, GA1 5권, 1932
편집 고문: Vladimir Adoratskij
독일어판:
독일 민주 공화국 통일 사회당 부설 마르크스 레닌 연구소, W 3권, 1958
편집 Ludwig Arnold
교열 Walter Schulz

CW 5 권:
출판사: Progress, Moscow, 1969
Lawrence 8c Wishart, London, 1973
편집 고문: Georgi Bagaturia
편집자: Vladimir Bruschlinsky
서문, 주석, 주제 색인: Lev Churbanow
인물 색인, 인용문헌, 정기 간행물 색인: Nina Loiko
영어 번역:
라이프치히 공의회(2, 3장), 엥겔스 진정 사회주의자: Clemens Dutt
포이어바흐 장: W.Lough
2권: C.P.Mgill
영어판 편집: Maurice Cornforth, E. J. Hobsbawm, James Klugmann, Margaret
Mynatt. Salo Ryazanskaya,
감수: Lydia Belyakova, Nadezhda Rudenko, Victor Schnittke

GA2 5권:
책임: 국제 마르크스 엥겔스 재단
편집 위원회: Beatrix Bouvier, Fangguo Chai, Marcel van der Linden, Jürgen Herres, Gerald Hubmann, Götz Langkau, Izumi Omura, Teinosuke Otani, Claudia Reichel, Regina Roth, Ljudmila Vasina
출판: Walter de Gruyter, Berlin, 2017

 

헤겔 형이상학 39-반발력에 관한 형이상학적 논의[흐린 창가에서- 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39-반발력에 관한 형이상학적 논의

1)

일자의 개념으로부터 일자들의 관계가 나온다. 그 관계는 공허한 공간 속에서 일어나며, 이 관계는 두 가지 힘의 대립을 통해 유지된다. 그 힘은 곧 견인과 반발이다.

일자, 공허 그리고 견인과 반발이라는 개념과 더불어 논리학의 세계는 드디어 물리학과 접촉하게 된다. 그 이전 현존의 세계는 감각적 질의 세계였다. 이 세계는 질이 명멸하는 세계거나 하나의 질이 다른 질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였다. 물리학은 이런 감각의 세계를 다룰 수 없다. 그러나 일자와 공허가 출현하면서 역학의 세계가 시작된다.

이제 물리학의 세계 그 가운데 가장 밑바닥에 있는 역학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사물은 이제 질량을 가진 일자들이다. 이들은 공허한 공간 속에서 서로 관계하는데, 그 관계가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최초의 모습은 곧 견인(력)과 반발(력)(또는 반발력)의 관계이다.

헤겔은 견인과 반발의 개념을 물체의 개념으로부터 끌어냄으로써 “역학에 대한 철학적 단초와 토대를 놓은 사람”으로서 칸트를 들고 있다. 헤겔은 견인과 반발을 다루는 논리학 3 절 대자 존재의 마지막 C 항 ‘견인과 반발’ 항 마지막에 긴 주석을 달아 칸트의 책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 원리>(1786)에서 다루는 견인력과 반발력의 관계를 설명한다.

비판철학자 칸트가 의외에도 자연 철학자였다는 사실은 흥미롭지만, 칸트가 사실 천체의 회전 운동을 설명하면서 성운가설의 기초를 놓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칸트가 물체에서 견인과 반발의 관계를 단순한 ‘역학’이 아니라 ‘역동학’이라 명명한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왜냐하면, ‘역학’이라는 개념은 뉴턴과 데카르트의 힘의 개념과 연관되지만, ‘역동학’이란 라이프니츠의 활력(에너지) 개념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어떤 물리학 교과서도 반발력(척력)이라는 개념을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근대 자연과학의 초기에만 해도 반발력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논의됐고, 특히 헤겔에서 이 개념은 자연을 두 대립된 힘의 통일 관계로 이해하는데, 핵심적 개념이 된다. 칸트와 헤겔이 다룬 반발력 또는 반발력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 자연과학에 관한 상당히 복잡한 철학적 논쟁을 거슬러 올라가 이해할 필요가 있다.

2)

알다시피 갈릴레오의 천체 법칙으로부터 뉴턴은 역학의 기본 법칙을 끌어냈다. 그게 곧 힘의 법칙이다. 이 힘의 법칙을 통해 뉴턴은 낙하법칙을 설명하고 천체의 운동까지 일의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뉴턴의 힘의 법칙에서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질량과 힘의 분리였다. 힘은 질량에 대해 외면적으로 관계하므로 물체는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운동은 관성적인 것으로 남는다. 이런 관점에서 물체가 전개하는 운동을 보면, 인력과 반발력이라는 대립하는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천체가 회전하는 운동은 원심력과 구심력이라는 두 힘이 필요하다. 뉴턴은 구심력 즉 인력은 중력을 통해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천체의 원심력 즉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반발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뉴턴은 일단 최초에 신이 가한 충격에서 이를 설명했는데, 신을 끌어들이는 것은 이미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어떻든, 뉴턴은 인력과 반발력(반발력)은 질량에 대해 외부적으로 존재하는 두 가지 힘으로 상정됐다. 이 두 가지 힘은 서로 대립하는 힘이기는 하지만, 독자적이며 크기도 다르다고 보았다.

3)

헤겔은 인력과 반발력이라는 개념이 발전하는 데서 칸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 칸트는 물체가 다른 물체의 충격에 저항하는 것을 통해서(침투 불가능성) 물체의 내부에 반발력이 있다고 가정했다. 이 반발력은 오직 접촉을 통해서만 작용하며 공허를 통해서는 못한다. 반발력 그 자신으로서는 물체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이런 확산을 통해 물체 내부에 공허의 공간이 확대된다.

칸트는 물체가 만일 반발력만 있다면, 물체로서 자기를 유지하지 못하고 분산되니, 물체가 자기를 유지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물체가 일정한 공간을 채우고 있는 연속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견인력은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이 견인력은 내부에 비어있는 공간을 제거하며 안으로 수축하도록 하는 힘이니 반발력과는 반대 방향을 작용한다. 이 견인력은 반발력과 달리 공허를 통해 직접 작용할 수 있으며 표면을 넘어서 내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 보았다.

칸트는 물체라는 표상은 한편으로 충만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침투 불가능하니, 이런 두 가지 표상으로부터 반성적인 사유를 통해 견인력과 반발력이라는 두 가지 힘을 끌어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칸트에서 이 견인과 반발이라는 두 힘은 서로 대립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기는 하지만, 각기 독립적이며 그 크기도 다르다. 견인력은 그 핵심이 지구 중력이니 물체 사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며 질량에 비례한다. 이는 물체의 종류에 무관하다. 그러나 반발력은 물체 사이의 거리의 세 제곱에 비례하며 마치 물체가 지닌 탄성처럼 물체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칸트는 이 견인과 반발의 힘은 물체의 개념에 내재하지만, 물체 자체에 포함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두 가지 대립하는 힘은 물체의 본성을 이루는 질량과 무관하지만, 물체가 물체로서 존재하기 위한 필연적 속성이라 보았다.

4)

그러나 칸트가 서로 대립하는 견인력과 반발력이 물체에 필수적이라는 생각은 그 이후 자연에 관한 헤겔의 변증법적 사유를 발전하게 하는 데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 헤겔은 견인력과 반발력은 항상 대립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칸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만, 칸트처럼 두 힘이 독자적 힘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양자는 쌍으로 작용하고 하나 없이는 다른 하나를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헤겔은 견인력과 반발력 사이의 상관성을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우선 앞에서 전제를 다시 한번 상기해 두자. 견인은 공간을 충만하고(수축) 반발은 공간을 공허하게 한다(확장). 즉 견인은 공허를 제거하며 반발은 충만을 비운다.

① 견인은 서로 끌어당겨 내부를 충만하게 한다. 만일 이미 서로 충만한 것 사이에 반발력이 생길 수는 없다. 이미 충만한 것이 반발한다면 그것은 충만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충만한 견인만 있다면, 자연은 일 점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② 반발은 서로 밀어내서 내부를 공허하게 한다. 만일 이미 서로 떨어진 것이라면 그만큼 견인이 작용할 수 없다. 만일 서로 떨어진 것에 견인이 작용한다면, 서로 반발하는 것일 수는 없다. 만일 반발만 있다면, 자연은 무수히 많은 점으로 분산돼서 마찬가지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③ 차례로 놓인 세 점을 생각해 보자. a와 b가 서로 견인한다면 b와 c는 서로 떨어진다. 이는 곧 반발을 의미한다. 견인하는 것은 반대편에서 보면 반발하는 것이다. 만일 a와 b가 서로 반발한다면 b와 c는 서로 견인한다. 즉 반발하는 것은 반대편에서 보면 견인하는 것이다. 점 b에서 보면 견인은 곧 반발이며 반발은 곧 견인이고 양자는 항상 동일하다.

④ 견인과 반발이 유래한 표상인 물체의 연속성이나 침투 불가능성은 사실 같은 것이다. 연속적이므로 침투 불가능하며, 침투 불가능하므로 연속적이다. 견인하므로 반발하며 반발하므로 견인한다. 그러므로 서로 대립하는 양자는 함께 작용하면서 물체의 연속성과 침투 불가능성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

5)

앞에서 말했듯이 칸트는 뉴턴적 힘 개념에 머물러 인력과 반발력은 질량과 분리된 힘으로 보았다. 칸트는 모호하게도 두 힘은 물체의 개념에 속하기는 하지만 물체 자체에 속하는 것은 아니라 한다.

“운동을 물질에 외면적인 것으로서만 전제하고 운동을 어떤 내적인 것으로 파악하지 않았으며 운동을 물질 속에서 파악하지 않았다. 따라서 물질 역시 운동 없는 것으로서 관성적인 것으로서 고립적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두 대립하는 힘이 서로 상관한다면, 이 힘은 물체의 개념에 속하는 것이 될 것이다. 어떤 것이 개념에 속한다면 그것은 곧 그것 자체에 속할 수밖에 없다.

“칸트는 견인력은 반발력과 마찬가지로 비록 물질 속에 포함된 것은 아니더라도 물질의 개념에 속해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칸트는 이 주장을 강조했는데, 여기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모르겠다. 왜냐하면, 어떤 규정이 사태의 개념에 속하는 것이라면, 진정으로 사태에 포함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두 힘이 물체 자체에 속하며 이 두 힘의 관계가 곧 물체 자체라고 보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물체의 힘에 대립하는 질량조차도 힘으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 이 주장은 그의 변증법의 가장 핵심인 대립적인 힘의 통일이라는 법칙으로 발전했으나 실제 자연과학에서 그의 주장을 입증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인력과 반발력의 상관성을 자연 속에서 찾을 도리가 없었다. 전기는 + 힘과 – 힘이 있고, 자기력은 북극과 남극의 힘이 있어 인력과 반발력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중력에는 반중력이 없으니, 그런 상관성을 확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헤겔의 주장은 당장 경험적 사실을 통해 비판받았다. 그는 견인력과 반발력이 크기가 동등하다고 보았는데, 경험적으로 볼 때 양자는 서로 다르다. 인력은 질량에 비례하지만, 흔히 반발력의 대표적 예로 여기는 물체의 탄성은 그 질량과 무관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후일 엥겔스는 자연 변증법에서 대립적 힘의 통일이라는 법칙을 확립하는 자연과학적 사실을 끌어모으려 했으나 결국 그 자신도 그런 과학적 사실을 찾을 수 없었다. 엥겔스는 자연변증법을 위하여 엄청난 자료를 모으고 많은 글을 남겼으나 결국 출판을 포기했으니, 그로서는 자신의 주장을 사실적 근거 없이 발표하기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6)

오늘날 자연과학의 발전을 보면, 헤겔이 인력과 척력의 동등성을 주장한 근거를 어느 정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발견은 자연과학의 발전과 맞물려 있다. 그 단서를 마련한 사람이 바로 라이프니츠다.

근대 역학에서 힘의 개념은 질량과 분리된 힘이다. 이를 역학적 힘이라 한다. 이 힘은 가속에 비례한다. 그러나 라이프니츠는 이미 역학적 힘 외에 역동적 힘 즉 활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나중에 이 활력은 에너지 개념으로 발전했다. 알다시피 이 에너지는 가속의 제곱에 비례한다.

처음에 과학자는 힘의 보존 법칙을 세우려 했으나 실패했다. 에너지 개념이 발견되면서 마침내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에너지 보존 법칙이 세워졌다. 이 에너지 보존 법칙은 하나의 힘이 있다면 그것에 대립하는 힘이 항상 있어야만 가능하다. 만일 서로 대립하는 힘이 동등하지 않다면 자연의 운동은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개념을 통해 본다면, 자연에서 견인력과 반발력은 여러 가지 힘들의 종합적인 결과다. 사실 지구 중력은 가장 중요한 견인력이기는 하지만, 견인력은 그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반발력 역시 열에너지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외 다양한 에너지 질량 에너지, 빛이나 소리 에너지 등도 함께 작용한다. 이 에너지를 전체적으로 보면 항상 인력과 반발력은 대립하지만 동등하게 된다.

맥스웰이 증명한 에너지 보존 법칙조차 질량을 에너지로 변환하는 과정이 밝혀지는 한 최종적으로 증명됐다 볼 수 없다. 아인슈타인에 이르러 질량 에너지가 확립되면서 마침내 에너지 보존 법칙이 확립됐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38-일자들의 반발 관계[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38-일자들의 반발 관계

1)

앞에서 일자의 요소들을 살펴보았다. 일자는 자기를 산출하는 무한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대자 존재며, 이 산물이 대자 존재의 산물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일종의 존재[Sein Fuer Eines]며, 그것은 그 외에도 똑같은 다른 일자들과 관계한다는 측면에서는 일자[Eins]다

이 일자들이 서로 관계하는 평면이 공허다. 이 공허는 똑같은 일자들이 만나는 평면이므로 한편으로는 동질적 평면이며 다른 한편에서 일자들의 차이는 외적, 우연적인 차이이므로 우연적 차이가 존재하는 평면이다. 이 공허 속에서 동질성과 차이가 서로 외면적으로 관계하면 그것이 곧 공허다. 그러므로 일자의 한계는 공허이며, 일자들은 공허 속에서 존재한다.

“다수의 일자는 일단 정립되지 않은 타자 존재다. 한계는 다만 공허이며 일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또한 일자들은 그 한계 속에 존재한다. 그들은 공허 속에 존재하며 다시 말해 그들의 반발은 그들의 공통적 관계다.”(논리학 재판, GW21, S. 158)

이런 구체적으로는 모든 물체가 질량으로 환원된 상태에서 이 질량이 서로 관계하는 물리학적 공간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모든 공간이 이런 공간이 아닐 것이다. 현존들이 만나는 평면이나 생명체의 내적 평면은 물리적 공간은 이런 공허로서의 공간과는 다른 공간이다.

이제 이런 허공 속에서 일자들이 어떻게 관계하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일자들의 이런 관계에서 핵심적인 개념이 곧 반발이므로 2장 현존론 3절 대자 존재의 B항(일자와 다자)에서 공허 개념(B-b항)을 다룬 다음 바로 다음 ‘반발[Repulsion]’ 개념(B-c항)을 다루고 있다. C항으로 넘어가면 다시 일자의 배제[Ausschliessen](C-a항)을 다룬 다음 이어서 반발과 견인의 관계를 다루므로, 일자의 반발 또는 배제는 B항에서 C항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개념으로 보면 될 것이다.

2)

공허 속에서 일자들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공간 속에서 두 당구공 사이의 충돌을 예로 드는 것은 일자와 당구공 사이의 유사성에 비추어 적절하지만, 충분하지는 못하다. 당구공으로는 일자의 대자성을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자는 동질적이면서 서로 외면적 차이를 가진 것이니 차라리 두 형제의 갈등을 예로 드는 것이 더 합당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식은 대지적인 것이니, 대자성까지 마음속에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든 당구공의 충돌이나 형제의 관계를 예로 생각하면서 일자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일자의 관계를 설명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개념이 곧 ‘자기에 대해 부정적인 관계’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탈자[Ausser sich Sein]’로 규정되기도 하는데, 자기 부정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의미다.

앞에서 하나의 현존과 다른 현존의 관계에서 하나의 현존은 규정성을 가지는데, 이 규정성은 타자에 대한 부정성을 의미했다. 예를 들어 ‘빨간색’은 ‘파란색’에 대해 그것이 아닌 것 즉 부정으로 규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현존이 있다면 그것은 그것과 대립하는 다른 현존이 존재함을 전제로 하고 또 요청한다.

그런데 여기 일자에서 일자는 ‘자기에 대해 부정성’을 지니는데, 헤겔은 이 자기 부정성을 또 하나의 자기와 똑같은 ‘일자를 정립하는 것’으로 여긴다. 즉 자기 부정이 또 하나의 자기산출이라는 것이니, 여기서 두 개의 또는 여러 개의 일자가 출현하게 된다. 여기서 출현한 다수 일자의 관계는 그 차이가 외면적인 한, 다만 외면적 관계다. 양자의 연관성을 말해주는 구절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일자의 다수성은 일자의 고유한 정립이다. 일자는 일자의 자기에 대한 부정적 관계일 뿐며 이 관계 그러므로 일자 자체가 곧 다수의 일자다.”(논리학 재판, GW21, S. 157)

“다수의 일자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 일자들의 현존 또는 상호 관계는 무-관계이므로 그 관계는 그런 일자들에 외면적이다. 즉 추상적 공허이다. 그러나 이들 일자 자체는 자기가 마치 존재하는 타자인 것처럼 자기에 대해 부정적으로 관계한다.”(논리학 재판, GW21, S. 158)

그러나 ‘자기를 부정하는 것’과 ‘다른 일자가 산출되는 것’ 사이의 연결 고리를 쉽게 찾기 힘들다는 사실이 헤겔의 주장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자 존재라는 매개 고리를 집어넣는다면, 그 과정이 어렵지 않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기에 대해 부정한다는 ’것은 일종의 존재가 자기 내로 복귀하여 대자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렇게 대자 존재가 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일자를 산출한다’라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대자 존재를 매개로 ‘자기에 대한 부정적 관계’가 ‘다른 일자의 산출’로 연결된다.

3)

일단 일자의 자기에 대한 부정적 관계를 통해 다른 일자가 산출된다면, 여기서 반발의 관계가 출현한다. 왜냐하면, 이 다른 일자 역시 똑같은 일자이며 다만 그것들은 외면적 차이가 있으므로 서로 부정적이다. 하나의 일자가 지닌 우연성은 자기와 다른 일자의 우연성 부정하면서 존재하게 되니, 여기서 일자들의 반발이 일어나게 된다. 이 반발은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우연성은 단순한 우연성이 아니라 똑같은 일자가 지닌 우연성이기 때문이다.

일자들의 반발을 이해하기 위해 당구공의 충돌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흰 당구공은 빨강 당구공과 단순하게 공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흰색은 빨간색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흰 당구공은 빨간 당구공과 충돌한다. 그런데 예가 약간 어색하게 느껴지는 데, 왜냐하면, 흔히 당구공은 관성적 존재므로 가만히 놓아두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를 바꾸어 대자성을 지닌 존재인 형제를 놓고 보자. 형제의 차이는 사실 우연적이므로 굳이 갈등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 우연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충돌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왜냐하면, 이 우연성의 배후에 일자가 있으며 그 일자는 서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에 대한 부정의 관계는 이제 타자를 부정하는 관계로 바뀌면서 반발 또는 배제라 관계가 출현한다. 이런 반발의 관계는 동일성과 우연성이 외면적으로 결합한 상태에서만 일어나는 운동이다. 동일성과 우연성의 외면적 결합이 곧 공허이니, 공허 속에서 존재하는 일자만이 서로 반발한다.

단순한 외면적 차이만을 지닌 현존의 경우는 서로 반발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규정성에서 다른 규정성으로 이행할 뿐이다. 생명체 역시 반발하지 않는다. 생명체는 타자 관계 속에서 자기를 유지하는 것(생명의 자기 재생산)이니 여기서도 공허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질량을 지닌 것들이 공허 속에서 관계하는 물리적 공간에서만 반발이 출현한다.

4)

반발의 관계는 표면적으로 보면 마치 당구공이 충돌하는 것처럼 공간 이동의 모습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 반발의 관계는 대자 존재를 매개로 하므로 심층적 관계다. 자기 부정을 통해 자기 내로 복귀하면서 대자 존재가 되며, 이 대자 존재는 자기를 산출하면서 다른 일자가 되고 이 다른 일자와 일자는 서로 충돌하니, 서로 반발하게 된다.

이제 헤겔은 공허 속에서 일자들이 서로 반발하는 관계를 서술하는데, 이 과정은 마침내 상호 견인의 관계로 전환하게 된다. 반발에서 견인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헤겔은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니, 이제 아래에 그 드라마의 개요를 정리해 보자.

① 일자들은 외면적 차이를 지니지만, 서로 똑같은 일자다.

② 일자는 다른 일자를 부정하면서 다른 일자는 부정된 존재가 된다. 즉 자기 내로 복귀하면서 관념적인 대자 존재가 된다. 여기서 대자 존재가 된다는 것은 부정된다는 것이 부정되는 것에 해당한다. 다른 일자의 자기 복귀는 일자를 부정함으로써 촉발된 것이다.

③ 다른 일자가 자기 내로 복귀하는 것과 동시에 일자 역시 자기 내로 복귀하여 대자 존재가 된다. 왜냐하면, 일자의 다른 일자에 대한 부정과 동시에 다른 일자의 일자에 대한 부정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자의 자기 복귀는 다른 일자를 부정함으로써 촉발된 것이다.

④ 이 타자에 의해 촉발된 자기 부정은 사실 자기가 타자에 대해 부정하는 것을 통해 매개된 것이니, 이 타자에 의한 자기 부정은 자기에 의한 자기 부정이다.

⑤ 상호 반발을 통해 각자가 자기 대자 존재로 되지만, 이 대자 존재는 양자에게 같은 것이니, 양자는 서로 합일하게 된다. 상호 반발이 결국 상호 견인으로 전환한다.

“반발은 그 자체로 보아서 곧 관계다. 일자들을 배제하는 일자는 그런 일자들에 관계하는데, 그것을 자기로 여기면서 관계한다. 일자의 상호 부정적 태도는 따라서 자기와 합일하는 것이다. 반발이 이행하는 동일성은 상이성과 외면성의 지양이다. 그런 상이성과 외면성은 일자들을 상호 대립적으로 배제하는 것으로서 주장한다고 말해지던 것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160)

당구공이 서로 부딪히면서 자기 자리로 되돌아오는 모습을 그려 보면, 헤겔이 서술한 반발의 드라마가 눈에 선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차라리 형제의 갈등을 보자. 형제의 갈등은 사실 아주 우연적인 것에 일어난다. 남들이 보기에 그 우연성 때문에 싸울 이유는 없다. 그러나 형제에게 그 우연적인 것이 갈등의 요인이 되는 것은 그 형제가 사실 같은 어머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우연성은 단순한 우연성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을 의미하는 징표가 된다. 그것을 부정당한다는 것은 곧 자기의 존재 자체를 잃어버리는 것으로 되니, 이 우연성이 갈등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형제는 우연성 때문에 갈등하지만, 이런 갈등을 통해서 자신이 동일한 어머니에 의존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형제는 서로를 자기로 동화시키려 한다. 그래야만 자기에게서 떠난 어머니의 사랑이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되기 때문이다. 형과 아우는 이렇게 해서 서로 닮는다.

5)

일자들 사이의 반발과 견인의 드라마를 헤겔은 이렇게 요약한다. 반발을 통해 타자를 부정하지만, 이 타자의 부정이 곧 이 타자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를 보존하는 것을 통해 오히려 자기를 해소한다.

“다수의 일자가 지닌 대자 존재는 그런 상호 반발을 매개로 하여 자기를 유지하는 것으로서 제시된다. 그러나 동시에 다수의 일자는 이 관념성을 반발하면서 일자를 정립하니, 타자에 대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자가 부정적 상호 관계를 통해 자기를 유지한다는 것은 차라리 자신을 해소하는 것이다. 일자는 존재할 뿐만 아니라 상호 배제를 통해서 자기를 유지한다.”(논리학 재판, GW21, S. 159)

헤겔 형이상학 산책37-일자와 공허[흐린 창가에서 -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37-일자와 공허

1)

지금까지 현존에 속하는 다양한 범주를 설명하면서 늘 소금을 예로 들었다. 이 소금은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지각을 설명하는 가운데 예로 들었던 것인데, 논리학 존재론 현존 장의 정신현상학 지각 장에 상응하니, 여기서도 소금을 예로 들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소금과 소금의 관계에 이르게 됐다. 하나의 소금은 서로 대립하는 속성이 서로 관계하는 것을 통해 산출된다. 이 대립적 속성의 관계 곧 미분적 차이가 헤겔에서 대자 존재다. 어떤 소금은 이 대자 존재가 산출한 것 가운데 하나이니 소금이 일종이다.

이제 이 소금을 다른 소금과 관계해서 보자. 다른 소금과 관계의 평면에서 하나의 소금을 헤겔은 일자라 했다. 그것은 소금 대자 존재의 자기 관계를 통해 산출된 것이지만, 이제 그것을 통해 출현한 여러 소금이 관계하는 평면에서 그 하나의 소금을 보기 때문에, 직접적인 것으로 되돌아온 것이고 그래서 일자다.

지금까지 헤겔은 대자 존재에서 일종의 존재를 거처 일자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것이 존재론 3절 대자 존재의 1소절 주요 내용이었다. 이제 2소절에 들어가게 되면, 일자와 일자의 관계 예를 들어 소금과 소금의 관계가 다루어지는데, 여기서 핵심적인 개념은 곧 공허[Das Leeres]다.

2)

계속 소금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하나의 소금과 다른 소금은 사실 내부 구성이 동일하다. 양자는 짠맛과 입방체라는 두 대립하는 속성의 관계를 통해 산출된 것이다. 유명한 라이프니츠의 동일율에 따르면, 속성이 같은 것은 동일자이니, 속성이 같은 소금이 따로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명백하게 서로 분리된 채 존재하는 두 개의 소금을 만나게 된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라이프니츠의 반성 개념이 지닌 모호성을 비판하는 가운데, 속성이 같은 사물이 따로 떨어져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두 개의 나뭇잎이나 두 개의 물방울, 두 개의 소금 등등. 칸트는 여기서 감각적 규정인 시, 공간을 지성의 범주인 개념과 구분하면서 속성이 같더라도 시공간적 위치가 다르면 서로 다른 사물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칸트는 일자가 시공간 속에서 차이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이런 시공간성은 사물과 무관한 것으로 보았다. 그것은 인식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식의 형식이 인식의 형식이 되려면 이미 사물 그 자체에 그런 형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전혀 무관한 어떤 것을 통해 어떤 것이 받아들여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공간을 사물이 지닌 다른 성질과 같은 차원에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사물 속에 그런 공간성이나 시간성을 감각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칸트는 시공간을 사유의 형식에 집어넣었으나, 그것도 문제라는 것은 앞에서 이미 말했다.

여기서 헤겔의 시공간 개념이 출현하니, 헤겔에서 시공간은 곧 사물들이 서로 만나는 평면 즉 관계다. 그것은 사물의 성질도 아니고 주관의 형식도 아니다. 사물의 관계 평면이니, 하나의 사물은 아무리 속성이 같더라도 시공간적 평면에서 다른 위치를 차지한다면, 서로 다른 사물이 될 수 있다.

3)

사물이 만나는 방식에 따라서 서로 다른 다양한 시공간 형식이 출현할 수 있다. 다양한 시공간적 형식 가운데 헤겔은 일자와 일자가 만나는 시공간의 평면을 곧 공허라고 한다.

그러나 이 공허라는 개념은 철학자를 늘 괴롭혀온 개념 중의 하나다. 공허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니, 어떤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을 통해 구별된다면, 사실 구별이 없다는 말이 아닐까? 그런데도 공허는 없는 것은 아니니, 그것이 어떤 현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존하는 것이므로 현존은 이 공허를 통해 구별될 것이다. 공허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니, 이런 양면성을 지닌 것을 인정하기가 합리적 철학으로서는 쉽지 않았다.

이 인정하기도 곤란하고 부정하기도 곤란한 공허를 헤겔은 일자와 일자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다. 즉 일자와 일자의 관계는 공허를 통해 관계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미 여러 관계의 평면을 다루어 왔다.

최초의 현존은 생성과 무의 통일이었다. 여기서 하나의 규정은 곧바로 다른 규정으로 변화하면서 명멸하는 세계가 출현했다. 감각적 규정이 명멸하는 세계는 마치 하나의 공간처럼 보이지만,이 공간은 아직 공허로서의 공간은 아니다.

이어서 어떤 것은 자기 자신에서 타자에 관계한다. 그러면서 하나의 규정을 지닌 것은 다른 규정을 지닌 것으로 변화하니, 이것이 곧 어떤 것(실재)들이 이루는 관계다. 이런 변하는 곧 덧없이 흐르는 시간과 닮았지만, 이 역시 공허로서 시간은 아니다.

공허는 곧 자기 관계하는 대자성을 토대로 산출된 일자가 출현하면서 비로소 출현한다. 일자는 자기 관계하는 대자 존재가 직접성을 지닌 것이라 한다. 그것이 어떤 규정성을 지닌 일자 즉 예를 들어 소금이다. 이런 일자들이 관계하는 평면이 곧 공허다.

4)

헤겔은 이 허공을 이렇게 규정한다.

“일자는 부정의 자기에 대한 추상적 관계로서 보면 공허다. 이 공허는 무로서 단순한 직접성 즉 일자라는 또한 긍정적 존재와 단적으로 구별된다. 양자는 관계 즉 일자들의 관계 속에 있으므로 그 상이성은 정립되지만, 공허로서 무는 존재하는 일자 밖에 놓여서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구별된다.”(논리학 재판, GW21, S. 153)

여기서 핵심어는 곧 ‘부정의 자기에 대한 추상적 관계’라는 말이다. 대자 존재는 자기 관계하는 매개 운동이다. 그 매개가 다시 직접적 존재로 되돌아오니, 그것이 일자다. 이런 일자들이 맺는 관계가 즉 하나의 일자가 다른 일자에 대한 관계를 헤겔은 ‘부정의 자기에 대한 관계’라 한다.

현존에서 자기를 부정하면 타자가 된다. 예를 들어 흰 소금은 자색 소금으로 변한다. 그러나 소금은 자기 바깥에 소금과 만나므로, 자기를 부정하면 자기 자신이 된다. 이렇게 자기를 부정해도 자기 자신으로 남는 것이 곧 부정의 자기에 대한 관계다. 일자라는 개념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여기서 공허라는 특별한 시공간의 평면이 출현하게 된다. 그러므로 공허라는 개념은 일자라는 개념과 쌍생아이며, 양자는 서로 대립하지만, 동일한 대자 존재로부터 도출된 개념이다.

바로 이런 공허가 우리가 흔히 물리학에서 다루는 시공간이다. 물리학은 모든 물체를 질량이라는 일자로 환원하기에 이를 통해 공허라는 물리학적 공간이 생겨난 것이다.

5)

그런데 자기 관계하는 대자 존재 일자는 다시 구체적인 사물이다. 즉 다양한 우연성을 지니고 있다. 일자들은 서로 공허 속에서 만난다. 그런 공허 속에서 각 일자는 자신이 지닌 우연성에 따라 특정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예를 들어 소금은 상당히 추상화된 것이다. 즉 그것은 소금이라는 구체적 사물이 지닌 성질 가운데 우선 감각적 규정을 제외하고 그것이 지닌 속성을 넘어서 속성의 관계 즉 대자 존재에 이른 것이다. 이제 속성의 관계 즉 대자 존재에 의해 다시 소금이 산출되면 그것으로 다시 구체화된다. 이제 소금은 단순한 일자가 아니라 흰 소금이나 자색 소금이 된다. 소금이 다른 소금과 만나는 평면이 곧 공허인데, 사실 이 공허는 이런 우연성으로 채워져 있다. 각각의 일자로서 소금은 각자가 지닌 우연성에 따라 그 공허에 자리잡는다.

그러므로 공허라고 할 때 그 특성은 일자들의 만남에서 규정된다. 일자들은 서로 같은 대자 존재를 지닌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점에서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각 일자는 각자 우연성을 지니면서 이 공허 속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대자 존재는 이런 방식으로 일자와 공허고 규정되면서 다시 현존에 도달한다. … 일자와 공허라는 대자 존재의 두 계기는 대자 존재라는 통일로부터 나오면서 서로 외면적으로 된다. 두 계기의 통일로부터 존재의 규정[일자]이 회복되므로, 이 존재의 규정은 자기 자신을 하나의 측면으로 즉 현존으로 격하한다. 그런 현존 속에서 그 존재의 규정과 다른 규정 즉 부정 일반은 마찬가지로 무의 현존으로서 즉 공허로서 대립하여 설정된다.”(논리학 재판, GW21, S. 153)

여기서 일자의 규정이 다시 현존으로 격하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현존의 규정은 곧 우연성을 말한다. 예를 들어 소금의 흰색이나 자색을 말한다. 일자는 우연성을 가지면서 공허 속에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 차이가 우연적이라는 것이 핵심적이다. 그러므로 일자의 만남을 이루는 허공은 한편으로는 똑같은 일자가 만나는 평면이므로 그 공허는 등질적이고 모두에게 내재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여기서 차이는 우연성의 차이이므로 이 공허는 외면적 차이를 지닌다.

이 등질적이며 우연성의 차이만 지닌 특별한 시공간이 곧 공허다. 일자들은 사실 일자라는 점에서 한편으로 차이를 지니고 다른 한편으로 차이를 지니지 않는다. 마치 공간적 점이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있는 것으로 보면 그것이 점이며 없는 것으로 보면 그것은 공허다.

6)

헤겔은 여기서 공허를 발견한 원자론자들을 높이 평가한다. 원자 즉 일자라는 개념이 출현했으므로 비로소 공허라는 특별한 시공간이 마련될 수 있었다. 이 특별한 시공간이 있기에 물리학이 성립할 수 있다.

처음 원자론자들은 원자들이 공간적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이 공허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하나의 원자가 빈 순간 다른 원자가 그 자리를 채움으로써 공간의 이합집산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곧바로 반론에 부딪힌다. 원자의 형태와 크기가 다르니, 하나의 원자가 자리를 비워두더라도 크기나 형태가 다른 원자가 그리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가서 원자론자들이 최초에 가정했던 공허는 원자와 따로 떨어진 것이며, 그것은 원자의 운동이 일어나는 곳일 뿐, 그 자신은 원자의 운동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원자론자가 데모크리투스에 이르면 공허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이 공허는 곧 운동의 원인이나 근거가 된다.

헤겔은 공허가 운동의 원인이라는 원자론자의 생각을 높이 평가하는데, 이런 생각은 곧 공허가 원자에 단순히 외면적인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원자들이 관계 맺는다는 것으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관계가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