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이데올로기』1·2(2019), 『정신의 오디세이: 자유 의지의 역사』(2021) 등을 저술한 전 동아대 철학과 교수 이병창 회원이 영화와 소설, 철학 등 광범위한 문화 비평을 담아내는 코너이다.

이규성의 생성 철학(8) – 왕선산의 한계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이규성의 생성 철학(8) – 왕선산의 한계

 

1)

위에서 황종희가 그의 형이상학과 달리 전통 유가 질서를 옹호하는 이탈을 범했듯이 왕선산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주성과 소통성을 위한 형이상학적 토대를 확립했으면서도 자신은 이를 통해 전통적인 유교적 질서를 다시 회복하고자 했다.

왕선산의 형이상학에서 유교적 차별 질서가 어떻게 도래하는가? 이규성 자신은 이에 관해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① 먼저 마음의 본성과 신체의 기질 사이의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이 관계는 체용의 관계로 규정되었지만, 체용의 관계는 모호하다. 체용의 관계는 양자의 동시에 가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발언이지만, 동시에 그 가운데 더 중요한 가치는 어디까지나 체에 있게 된다. 또는 체는 순수하지만, 용은 불순하다는 정도의 차이를 인정하게 된다.

도심과 인심, 기질지성과 정욕의 체용적 관계를 사회적으로 적용해서 이를 남녀나 지배피지배층에 적용한다면 불평등한 사회질서가 나오게 된다는 점에서 체용 관계는 보다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② 또한, 의를 다루면서 이규성이 했던 발언도 주목된다. 여기서 의의 차별성은 각자에게 ‘각자에 마땅한 몫을 주어야 한다’는 객관적 정의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왕선산은 의의 차별성에서 전통적인 유교적 차별적 질서를 정당화하려 했는데 이는 역사적인 차별을 자연 법칙화하는 물신주의적 견해라고 한다. 이규성은 그 때문에 왕선산 자신은 자기의 인간 본성론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객관적 정의관은 개인의 추상적 인격의 가치를 평등하게 긍정하는 주관적 정의관[추상적 인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과 대립적이다. 또한, 그의 인성론이 자유의 생명성에 기초한 개방적 인격을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음에도 그는 그것을 정치학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이 점에서 왕선산의 정의관은 사회의 구조를 자연 법칙화하는 물신주의적 견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생성의 철학, 300)

③ 그러나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다. 왕선산의 한계를 파악하는 데서는 이규성은 왕선산이 음양 가운데 양이 음에 대해 우위를 가지고 지배적이라고 보았다고 했다. 이를 윤리적 차원에 적용한다면, 인간성에서도 음양의 관계에서 양이 음에 대해 지배적으로 되는데, 여기서 불평등이 유래할 수도 있다.

 

2)

왕선산이 이처럼 형이상학적으로 양이 음에 대해 우위에 이른다고 본 것은 음양의 규정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껏 오해를 피하려 왕선산의 음양 개념을 음양으로만 소개했으나 사실 왕선산에서 음양은 ‘유순함’과 ‘강건함’이라는 특정한 성질을 지닌 것이었다.

아마도 주역의 건괘와 곤괘에 대한 해석에서 이런 성질이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음양을 이렇게 규정한다는 것 자체에 이미 양의 지배라는 사고가 감추어져 있다.

“이렇게 순전한 양을 건으로 삼은 것은 음양이 합하여 운행하는 가운데서 그중 양이 왕성하고 광대하게 유행하는 것을 들어서 말한 것이다.”(왕선산, 주역내전, 생성의 철학, 140, 재인용)

음양 대립은 자체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그것은 다만 서로 대립하는 힘을 의미할 뿐이다. 물론 기는 운동하는 가운데 기질을 지니니, 그 기질을 통해 대립하는 힘은 구체적으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자연력에서 인력이나 척력, 전기력에서 +전기와 -전기 같은 것이다.

그러나 유순함과 강건함은 엄밀하게 대립하는 힘은 아니다. 그것은 강약의 차이라는 정도의 차이이니 대립에 속하지 않아 음양을 규정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그런데도 왕선산은 이를 음양의 성질로 규정하니, 강건함은 본래부터 유순함보다 더 강한 것이니 여기에 우위라는 사유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제 남녀가 음양으로 규정되면 남자는 여자에 대해 우위가 되고 지배층이 양이고 피지배층이 음이면 마찬가지로 여기서 지배층의 지배가 도출되니, 음양의 규정 자체에 이미 불평등의 구조를 감추고 있었다.

“왕선산은 군주정을 자연적 질서로 간주한다. 건의 강건성이 세계의 주인이다. 건은 군음의 종주이다. 그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각각의 사물은 자신의 본성적 한계를 가진다. 이러한 사물이 올바른 것이다. 건의 강건성이 구체적 사물이 능가할 수 없는 존재와 변화의 주인이다.”(생성의 철학, 172)

 

3)

황종희나 왕선산은 자신의 형이상학이 전통적 유가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라 생각했으나, 이규성은 오히려 그들은 자기의 형이상학이 지닌 본래 가치를 망각했다고 한다. 이규성에 따르면 황종희의 기 일원론이나 왕선산의 음양의 상호작용은 평등하고 소통하는 연대를 이룰 수 있는 기초가 된다.

이상에서 우리는 왕선산의 형이상학과 인성론의 대강을 살펴보았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소통성의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미 설명하는 가운데 언급되었지만,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여기서 황종희에서 형이상학의 세계는 기 일원론의 홀리즘적 성격이 강하다. 황종희에서 만유는 본체를 지니지 않는 우주적 기의 운동이 지나가는 통로일 뿐이다. 여기서 우주적 기와 마음은 혼연일체를 이룸으로써 마음은 만물과 소통한다. 이런 세계에서 아주 강력한 소통성이 출현한다. 그러나 만물에 아직 고유한 본성이 결여하므로 아직 개별자의 고유한 자주성은 결여한다.

황종희 자신은 이런 세계를 통해 전통적 유가 질서를 회복하려 했지만, 이규성이 볼 때 이는 부당한 비약이었다. 이규성은 오히려 황종희의 형이상학은 이런 혼연일체를 통해 생겨나는 무차별적 평등의 세계이며 이는 태주학파나 이지를 통해 잘 드러난다고 한다.

황종희의 이런 철학을 이규성은 내재의 철학으로 규정하는데, 여기서 발견되는 혼연일체의 강력한 소통성은 90년초반까지 전개되었던 운동권의 연대의식이라는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4)

그러나 왕선산에서 형이상학적 세계는 대립하는 음양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기서 사물의 고유한 본체가 출현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개별 사물은 음양 운동이 치우친 상태이며 다시 중정으로 복귀하려는 운동을 전개하려 한다. 이를 통해 자기에 대립하는 개별자로부터 힘을 빌어오니 양자는 서로 상보적이고 이것이 왕선산에서 소통성의 토대가 된다.

왕선산은 이를 통해 개체의 자주성을 인정한 가운데서 상반상성의 상호 보완적인 소통성을 추구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소통성에서는 혼연일체를 주장하는 황종희보다 뒤떨어지지만, 이런 소통성을 개체의 자주성을 확보한 위에서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탁월하다.

왕선산의 이런 체계는 90년대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한 이후 개인의 자발성이 강조되던 시기의 시대 정신을 잘 반영한다. 물론 이 시대에도 여전히 연대의 의식이 강했으니, 이규성은 자주성과 소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이런 왕선산의 체계로부터 발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5)

이전에 살펴보았듯이 황종희의 일원적 기의 세계는 문제점을 지닌다. 황종희에서 음과 양은 운동의 양태로서 교체될 뿐이니, 현성파에서 보듯이 양이 지배하는 세계는 개방성과 소통성의 토대가 되더라도 일시적일 뿐이며 그것은 천도의 교체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었다.

반면 왕선산에서 소통의 가능성은 본체의 자기 지속성과 회복력을 인정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세계를 단지 기다리지 않고 중정으로 복귀하려는 강한 실천적 동기가 마련될 수 있다.

그러나 이규성은 개인의 자주성보다 소통성을 더 강조하는 편이다. 그러기에 왕선산의 체계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여전히 강력한 혼연일체의 무차별적 평등적 세계에 강력하게 이끌린다. 그러므로 그는 왕선산의 글 가운데서도 왕선산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그러나 왕선산은 왕양명의 심즉리가 사실은 윤리적 가치가 심의 본체에서 자생하는 심의 내재적 본질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주장된 것임을 충분히 주목하지 못했다. 또한, 태주 학파와 이지가 기존의 이는 군자 집단의 특권적 지배 원리이기 때문에 서민적이지 못하며 따라서 보편적일 수 없다고 하는 비판적 발언을 한 데 대해서도 성찰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였다.”(생성의 철학, 328쪽)

결국, 이규성은 왕선산의 철학을 떠나 다시 황종희의 기 일원론으로 돌아간다. 황종희의 철학에 기초해 평등한 소통의 세계를 확보하면서 그것을 회복하려는 강력한 실천적 동기, 혁명적 저항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는 없을까? 여기서 이규성은 동학 최시형의 세계로 마지막으로 관심을 이동하게 된다.


 

이규성의 생성 철학(7) – 왕선산의 인간론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이규성의 생성 철학(7)-왕선산의 인간론

 

1)

왕선산에게서 인간의 본성은 그의 형이상학적 원리로부터 나온다. 인간은 다른 자연과 구별된 고유한 기질을 지닌다. 그 기질은 맑고 유동적이어서 사물을 관통하는 것, 즉 청통의 기질이다. 이 기질은 우주의 원초적 기질이니 그것은 만물을 관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기라고 불리지만, 구체적으로는 마음을 가리킨다.

인간은 단순히 신기라는 기질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인간은 신체를 지닌 존재로서 신기와 더불어 동물적 기질도 지닌다. 동물적 기질의 특성은 신기에 가깝게 다가가지만, 그것의 관통 능력은 감각에 불과하고 자의적으로 움직이는 욕구를 지닌다.

더구나 인간의 삶은 자연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 자연 물체는 탁한 기로 이루어져 있고 융통성이 없지만, 역시 우주적 기의 산물인 한 부분적으로는 서로 감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

여기서 인간은 자연과 신체 그리고 마음이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그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문제다.

 

2)

먼저 자연과 관계해서 인간은 만물을 본질을 관통하여 인식하고 이를 삶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이는 단순히 자연을 파괴하여 소모하는 활동은 아니다. 인간은 자연을 자연 그대로 방임하는 것도 아니며, 그 속에서 이용후생의 덕을 실현하고 예의의 문화를 건설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자연의 본질을 파악하여 자연의 본질을 실현한다.

“.. 타고난 본성을 단순히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이지만,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적인 것이다. 인간에게는 타고난 본성을 개발하는 성취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생성의 철학, 272쪽)

그런 점에서 이규성은 기존 성리학이 도덕의 실천을 강조하는 것에 비해 본다면, 왕선산은 “문명의 창조자로서 인간의 모습을 강조한다”(생성의 철학, 273쪽)고 한다. 또한, 문명의 창조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에 도가적 관점과 달리 “인간의 사회화에 따른 문화인으로의 발전은 인간다움의 필수적 조건이라”(생성의 철학, 273쪽)고 한다.

왕선산의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우리의 관점에서는 중요한 것은 아니니, 일단 이 정도로 정리하자. 더 중요한 것은 우선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문제다.

 

3)

인간의 본성은 그 기질이 청통의 기질, 신기 또는 마음이 벌이는 운동에서 나온다. 왕선산에서 이 운동은 두 측면에 걸려 있다. 하나는 지적인 인식과 실천적 행위 즉 지능의 관계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의 윤리적 본성에 관한 문제다.1

신기의 지와 능은 일단 나중에 언급되는 신체에서 나오는 감각과 욕망과 구별된다. 여기서 지와 능은 기의 음양과 관련된다. 지는 양기에 속하며 만물에 관통하는 능력을 지닌다. 반면 능력은 실천적 능력인데 도덕적 자유의지 개념에 가깝고 음기에 속한다.

우선 지적인 차원과 관련해서 인간의 기질은 마음이며 이는 맑고 유동적이기에 만물을 관통하는 소통적 성질을 지닌다. 이를 통해 지적 인식이 가능하다. 만물 역시 다양한 기질을 지니지만, 원초적으로는 마음이니, 지의 이런 능력은 외적 감응을 통해 일어나지만, 사실은 자기 인식이다.

“지는 힘에서는 자발성, 폭에서는 광대성, 깊이에서는 관통성을 가진다. 그것은 ‘만상 가운데 들어가 장애를 받지 않는’, 허명하고 청허한, 하나이자 거대한 신묘성이다.”(생성의 철학,  285쪽)

이규성은 마음의 이런 능력으로부터 소통성의 근거를 확보하려 한다. 앞에서 황종희에서 마음은 우주와 직접적 합일을 통해 소통하지만, 여기서는 마음의 외적인 감응을 통해 소통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외적 감응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통해 추론하거나 귀납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외적 감응은 마음이 소통하는 통로일 뿐이니, 그 인식은 마음이 마음과 통하는 것으로서 자기 인식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질적 능력에서 이러한 실천의 관심을 넘어서 스스로를 이완시킴으로써 사물의 내적 본성에 침투할 수 있는 이완적 유동성을 갖는다. 심적 능력의 이완성은 게으름의 이완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로 진입하여 세계의 통일적 본질을 체험하는 초월적 자기 수렴의 운동성이다. 그것은 자기 중심성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만유의 소통적 본성에 자신을 여는 개방적 자기 인식이자 세계 인식이다.”(생성의 철학,  306쪽)

“허명하여 조감하는 것은 신의 밝음이다. 태허는 형체에 막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편재적인 밝음이다… 조감이란 살피고 관찰하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아는 능력을 말한다.”(생성철학, 285) “이목은 견문에 그치지만, 오직 마음의 신묘성만이 모든 공간을 궤뚫고 장구한 시간을 관통한다.”(생성의 철학, 285쪽)

나아가 왕선산에서 지와 능은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그런 점에서 지에는 능이 저절로 따른다고 본다. 물론 이 조화는 끊임없는 운동 속에서 일어나는 조화가 될 것이다. 즉 지능의 부조화가 항상적이지만, 이는 늘 균형을 향해 나가는 운동 속에 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양명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양지양능의 즉각적인 무조건적인 일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지와 능의 관계는 왕선산의 기본 공리 가운데 하나인 음양 각자가 극이 아님이 없으면서도 치우친 극은 없다는 원칙 즉 극이 없으면서도 위대한 극이라는 도식에 따라 파악되고 있다.”(생성의 철학, 292쪽)

 

4)

그런데 이런 지능의 관계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윤리적 본성의 문제다. 그 윤리적 본성은 인의의 상호작용이다. 인은 상통성을 지향하며 의는 차별성을 지향한다. 인의가 양과 음이라면, 이 두 가지는 따로 떨어져서는 부조화의 운동 상태에 있을 뿐이다. 양자는 함께 상호 작용해야만 조화로운 윤리적 인격이 이루어진다.

이런 인의가 개별적으로 본다면, 운동의 치우친 상태가 되며, 양자의 균형이 인간의 본성이 된다. 이런 점에서 이규성은 인을 우위로 본 주희나 의를 우위로 본 담사동과 달리 왕선산은 인과 의가 “상보적 균형”(생성의 철학, 301쪽)이며 상호작용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인의의 상호작용은 추상적인 차원에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한 것이다. 인간의 본성 자체는 구체적으로 본다면 신기, 마음의 음양 운동을 통해 형성된다*. 이 가운데 양의 운동이 측은지심에 해당하며 음의 운동이 시비지심에 해당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신기에서 두 대립하는 마음의 운동인데 이를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인의가 된다. 여기서 천지지성과 기질지성의 구별이 발생한다. 전자는 추상적이며 후자는 인간의 기질에서 출현한 본성이다. 그런데 주희는 천지지성이 독자적으로 존립한다고 보고 이를 본연지성으로 보았다. 그러나 왕선산에서 천지지성은 추상적인 것일 뿐, 구체적으로는 기질지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5)

이제 인간을 다룰 때 가장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다. 그것은 곧 인간이 마음과 신체의 복합체이라는 것 때문에 발생한다. 마음이 고유한 기질을 지니듯이 신체 역시 고유한 기질을 지닌다. 그것은 동물적 기질이니, 여기서 감각과 정욕이 발생한다.

신기의 지적 능력과 달리 감각은 한정적이며 그것이 관통할 수 있는 것은 사물의 표면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욕망이다. 욕망은 이기적이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에 대해서는 즐거움을 느끼며 그렇지 못한 것에는 혐오를 느끼니, 이는 감정에 속한다. 감각과 욕망 역시 음양의 관계를 지니며, 즐거움과 혐오 역시 음양의 감정을 지닌다. 이런 음양의 관계를 통해 일정한 질서가 즉 신체적 기질의 질서가 출현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 되는 것은 마음의 기질에서 출현하는 도심 즉 본성과 신체의 기질에서 출현하는 인심 즉 욕망 사이의 관계다. 일단 양자는 모두 자연적 기질의 산물이므로 천성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양자는 서로 대립하니, 신기의 감응과 감각의 지각이 대립하며 마음의 본성과 신체의 욕망이 대립한다. 전자는 인식론과 관련된 문제니 제쳐 두고 후자만 여기서 살펴보기로 하자. 본성과 욕망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

이 관계는 여러 가지로 표현된다. 그 관계는 앞에서 말한 도와 기의 관계에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양자는 ① 동행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공욕[公欲]이 곧 이가 된다. 그보다 자주 이 관계는 ② 전통적인 양분법인 체용 관계로 설명되기도 한다. 체용은 상호 공속하니, 그 어느 것도 동시에 필요한 것이며 이런 점에서 평등성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도심과 인심은 ③ 음양이 층간에서 서로 교차하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즉 신체의 음기과 마음의 양기, 신체의 양기와 마음의 음기가 상호작용하니, 마음을 통해 신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거꾸로 신체를 통해 마음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주, 정신을 수련하여 육체의 허약함을 보완할 수도 있고, 신체의 강건함이 정신의 허약함을 보완할 수도 있다.

 

6)

전체적으로 본다면, 황종희는 인간에서 본성을 규정하려 했다. 그는 이 본성을 마음의 기질이 이루는 음양 운동을 통해 설명했는데, 이렇게 본성을 확립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개인의 자주성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이 회복하려는 운동이 곧 개인의 자주성이다. 이 자주성은 단순히 자의적인 자의가 아니라 본성을 회복하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양심 또는 도덕적 자유의지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인간에서 인과 의의 관계, 마음과 신체, 도심과 인심의 관계는 음양의 운동 상태이다. 그것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만, 곧 중정을 회복하려 하는 운동을 전개한다. 이때 한쪽은 자기에 대립하는 다른 쪽을 통해 보완된다. 즉 인간은 고유한 본성을 지니면서도 소통성을 지닌다.

인간의 곧바로 사회적인 관계로 규정될 수 있다. 한 개인의 내적 갈등은 사회적 갈등의 압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에서 인자와 의자 또는 남녀, 정신적 노동자와 육체적 노동자 사이에서도 상반상성의 관계가 나온다. 즉 그들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 보완적이다.

이규성의 생성철학(6) – 왕선산의 코스모고니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이규성의 생성철학(6) – 왕선산의 코스모고니

 

1)

형이상학이란 자연의 질서를 기초하는 원리를 밝히려는 시도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의 핵심 원리는 최종적으로 자연의 질서를 설명할 수 있는가를 통해 정당화된다. 따라서 자연이 음양의 동정으로 이루어진 세계라는 왕선산의 주장도 궁극적으로는 자연의 질서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형이상학이 설명하려는 질서는 과학이 다루는 구체적 사물의 질서가 아니라 일반적 질서다. 그 가운데 핵심은 자연 속에서 존재하는 사물을 범주 또는 층위에 따라 구별하고 그 생성을 형이상학적 원리로부터 설명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자연에는 물체와 생물 그리고 인간이 있는데 그 생성을 어떻게 설명하는가가 형이상학의 성패가 달린 문제다.

과학에 관한 왕선산의 입장에 관해 이규성은 왕선산 대신 방이지의 ‘질측지학’을 소개한다. 이규성은 “방이지의 과학과 철학에 대한 관점은 왕선산의 관점과 같다”(생성의 철학, 129쪽)고 단정한다. 방이지의 말은 다음과 같이 소개된다.

“과학은 ‘일체를 모두 궁극적 원리인 것으로 집착하여 사물의 개별적 영역을 멋대로 덭어 가려 구체적 원리들에 대해 정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경계한다.” (생성의 철학, 127쪽)

“물에는 그것의 원인이 있다…그 불변적 측면과 변화의 측면을 추론한다. 이것을 질측이라 한다. 질측은 곧 통기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생성의 철학, 128쪽)

질측은 과학적 사실에 대한 탐구다. 통기는 그것의 원리에 대한 탐구이니 곧 철학이다. 이런 관점은 우주와 합일에 머물렀던 황종희와는 구별된다. 왕선산은 철학이 과학적 사실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토대로 그것을 넘어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2)

자연은 누구나 알다시피, 물체의 세계와 생물의 세계, 그리고 인간의 세계로 이루어진다. 그 차이점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이런 것은 경험적으로 발견되는 사실에 속할 것이다. 물체와 달리 생물은 재생의 능력을 지니며 인간은 인식과 자유의지라는 정신의 능력을 가진다.

왕선산이 제시한 형이상학 원리 즉 음양이라는 두 가지 기체의 동정이 이런 자연이 물체에서 인간으로까지 발전하는 생성의 세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일단 사물은 음양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지만, 이 사물이 물체냐 생물이냐, 인간이냐는 그것을 이루는 기의 질적인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태허 가운데 응취한 것은[무기적 물질] 무겁고 혼탁하여 다른 사물이 침투할 수가 없다.”

“식물은 땅에 뿌리박고 있어서 오행이 결합한 땅의 유형적 기를 받아서 성장한다. … 다만 형질만 있고 성은 없다.”

“동물은 땅 위로 나와서 오행의 아직 형체를 이루지 않은 기를 받아 태어난다. 형체가 신으로써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각기 자신의 성을 머금고 있다.”(생성의 철학, 267-268쪽 요약)

“인간만이 순수한 형태의 융통성을 발휘하는 청통의 기 즉 신기 혹은 신리를 그대로 자신의 내적 본성으로 가지고 있다. ..그의 본체가 영민하면 할수록 그 작용도 더욱 광대하다.”

이상 인용문을 볼 때, 기질에 관한 왕선산의 특별한 설명은 없지만, 자연을 설명하는 가운데 그는 청탁과 경중, 대소1 등과 같은 기질의 성질에 대한 설명이 발견된다. 그 가운데 물체는 대체로 탁하고 무거우며 큰 기질의 운동이며 반면 인간은 맑고, 가볍고, 작은 기질의 운동이어서 전자보다 후자는 훨씬 유동적이어서 영묘하다.

3)

그런데 기는 하나이다. 그 기는 사실 음양 두 기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상호작용한다는 면에서 하나라고 한다. 이 하나의 기가 어떻게 해서 위와 같이 자연의 범주나 층위를 구분하는 기질로 나누어지는가? 이에 관한 설명 가운데 특히 돋보이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현상 세계도 ‘수많은’ ‘다양한’ 이라는 규정을 갖는다. 이 다수성의 출현 과정은 음양의 상징인 양효와 음효가 6열로 배열되어 64괘를 형성하며 이의 순열 조합에 의해 수가 증가되는 방식으로 확산된다.”(생성의 철학, 149쪽)

“단순한 본체는 순열조합적 과정으로 현상화한다. 그러나 아무리 다양하게 증가한다고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음양의 재출현에 불과하다.”(생성의 철학, 150쪽)

이상의 설명은 왕선산의 주역에 대한 설명을 이규성이 정리한 주장이다. 이규성의 설명을 검토해 보면, 음양의 운동이 중첩되면서 하나의 음양 위에 또 다른 음양이, 그리고 그 위에 또 음양이 운동한다.

그 중첩되는 정도만큼 질적 차이가 나타난다. 이런 질적 차이가 중층적으로 발전하면서 처음에 탁하고 무겁고 큰 기질은 점차 맑고 가볍고 작게 되며 점차 유동화되고 영묘해진다. 전자가 물질적 기질이라면 후자는 심적 기질이다.

이런 설명이 정확하게 왕선산의 자연 설명에서 나오는지 필자로서는 확인할 수 없으나*2, 적어도 이규성의 설명을 따르자면 무척이나 흥미로운 설명이라 하겠다. 사실 이런 설명은 주렴계가 태극도설에서 음양으로 오행을 설명하는 것과 기본적으로 같은 발상에 속한다.

음양으로 오행이 설명된다면, 이때 오행은 4괘로 설명된다. 즉 음양이 중첩되면서 4괘가 생기고 그 각각에 오행이 대입되는데(예를 들어 물은 소음이며, 불은 태양이다. 나무는 소양이라면 쇠는 태음이 된다), 이런 발상을 확장하면 운동 상태에 있는 만물은 각 층위에서 음과 양의 중첩적으로 조합하여 이루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이 이규성이 설명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설명은 일단 개별 사물의 상이 지닌 차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만물이 이처럼 여러 층위의 음양이 조합하여 이루어지는 것 즉 상이라면, 자연의 같은 범주에 속하는 물체들이 지닌 질적 차이들도 이런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물은 최종 층위에서 음양을 달리하더라도 나머지 층위에서는 음양을 같이 할 수 있으니, 이런 차이를 통해 개별 사물이 범주나 층위로 구별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이런 범주나 층위에서 작용하는 음양의 기질적 차이를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4)

이런 발상에서 이규성의 철학적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등장한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개별 사물은 마치 남녀와 같이 자기의 층위에서 음양이 운동하는 치우친 상태로 규정된다. 그러므로 개별 사물은 중정으로 복귀하려 하는 운동을 전개하려 하며, 그 때문에 자기와 대립하는 것에서 힘을 빌려오는 상보적 관계를 맺는다. 이를 상반상성의 관계로 규정하였다.

이제 하나의 사물은 여러 층위를 지니고 각 층위에서 음양이 운동하는 것이라 한다면, 사물들의 상반상성의 관계는 층위를 넘어서까지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두 층위가 중첩되었다고 할 때, 아래층과 위층의 음양이 서로 교차해서 관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위의 층에서 음은 아래층에서 양을 끌어당기고 아래층에서 양은 위의 층의 음을 끌어당기는 관계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여러 층위의 복합체인 사물들 사이에서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관계가 성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점은 예를 들어 오행의 상반상성의 관계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물은 소음이니(위층의 음), 소양(아래층의 양)인 나무를 생성하며, 불은 태양(두 층 모두 양)이니 태음(두 층 모두 음)인 금을 생성한다. 소위 오행의 상생상극의 관계가 이런 층위에서 교차하는 음양의 운동으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주역에서 이 층위 간 교차 관계를 왕선산이 설명하고 있는지, 설명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명되는지는 필자가 알지 못하지만, 그런 이론적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며 적어도 이규성의 ‘순열조합’이라는 말을 통해 그런 이론적 가설은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계가 중요한 것은 이제 사물은 여러 층위로 이루어져 있고 층위 간에 음양 운동이 서로 교차할 수 있다면, 앞에서 언급했던 사물의 상반상성의 관계를 만물 간에 층위를 넘어서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층위에서 상반상성의 예 즉 남녀의 관계가 이규성이 추구했던 사물 간의 소통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만물의 층위 간에 음양의 교차 운동이 일어난다는 것은 만물 사이에 상반상성의 관계 즉 상보적인 소통 관계를 설정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런 상반상성의 관계를 통해서 이규성은 소통성의 형이상학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앞에서 황종희의 경우, 사물은 본체를 결여한 채 홀리즘적 방식으로 소통했다. 그런데 왕선산은 위에서 보듯이 사물의 고유한 본체를 통해 자주성을 인정한 채 동시에 상반상성의 관계를 통해 소통의 가능성을 확보한다.

“지금 저 현상은 하늘의 색과 땅의 색, 순수한 것과 잡된 것으로 인해 문채를 얻고, 장단과 종횡으로 인해 양적 한도를 얻는다. 견고하거나 약하고 움직이거나 멈추어서 그로 인해 형질을 얻고 대소와 동이로 인해 고유한 경향성을 얻는다. 일월성신으로 인해 광명을 얻고 진흙이나 흑색 토양으로 인해 산물을 얻는다. 초목과 꽃과 열매로 인해 재물을 얻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며 산과 평원으로 인해 절기를 얻는다. 귀는 구멍을 열어 들을 수 있으며 눈은 눈동자를 가지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로 통일되게 된다. 현상은 다양성으로만 언제나 있을 수 없으므로 역의 논리로 통일된다.”(생성의 철학, 232쪽 재인용)

 

4)

사물의 본성이 출현하는 기질의 문제는 추상적인 차원이다. 이것은 추상적 차원에서 사물의 본성을 다룬다. 그런데 자연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복합체다. 인간을 예로 들자면 인간은 정신과 신체의 복합체다. 그러므로 복합적인 사물은 본성이 출현하는 기질 말고 다른 물질의 기질도 동시에 가지면서 여기서 사물의 도와 기[器]의 관계가 출현하게 된다.

하나의 사물은 음양의 상호작용을 통해 본성을 지닌다. 이 본성은 운동 속에서 이쪽저쪽으로 기울어지지만, 다시 자신의 본성을 회복하니, 이 본성은 지속성을 지닌다. 그런데 하나의 사물은 그 본성의 바탕이 되는 기질 즉 형질이 있다. 이것이 곧 기[器]이다. 사물의 본성은 그 바탕이 되는 형질의 음양 운동 위에 또는 그 속에서 출현하니, 여기서 출현하는 본성을 도라 한다.

여기서 도와 기[器]의 관계가 문제 된다. 앞에서 이규성은 기질의 관계를 기의 중층적 발전 개념으로 설명했다. 여기서 다시 도기의 관계는 기질 층간 관계가 더 구체적으로 규정된다. 그 관계는 우선 수용성 즉 담지자 개념이다.

“기가 토대가 되고 도는 그것에 의존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기는 추상적 원리가 의존하는 그릇이다. 그것은 기와 그것의 산물인 만물을 질서의 담지자로서 이해하게 하는 개념이다.”(생성의 철학, 256쪽)

기[器]는 본성을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런 한계 때문에 본성이 다양하게 발생하며 여기서 하나의 사물에서 개별적인 다양성이 나타나게 된다. 즉 이 즉 도는 하나지만, 기[器]는 다양하다. 하나의 도는 순수하지만, 기 속에 받아들여진 도는 불순하다.

또는 이규성은 왕선산에서 도와 기[器]의 관계를 다시 체용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든, 여기서 두 기질의 관계, 본성과 기의 관계는 모호하지만, 대체로 두 요소의 동시적 필요성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느 것도 결여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앞에서 물체를 이루는 층위 간에 음양의 교차 운동이 가능하다면, 도와 기의 관계는 결국 하나의 사물 속에 복합되어 있는 두 사물의 관계로 볼 수 있으니, 여기서 도와 기의 관계를 앞에서 말한 층간 음양의 교차 운동으로 설명할 수도 있지 않을까?

 

5)

황종희에서 개체는 본체가 없으며 만유는 기의 운동이 지나가는 매듭에 불과하다. 반면 왕선산에서 기는 중층적으로 발전하면서 각 층위에서 음양이 상호작용한다. 이를 통해 만물은 고유한 본성을 지니는 동시에 그 음양의 운동을 통해 상호 소통한다. .

그렇다면, 아직 중층적 운동을 전개하기 전 원초적인 기 즉 그 기의 가장 근본적인 본체는 무엇인가? 이규성은 왕선산의 체계를 범신론에 빗대어 범심론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심이란 곧 기체의 본질을 의미한다.

원초적인 기가 심적인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기는 중층적으로 발전하면서 마침내 심적인 기질에 이른다. 그 기질은 유동적이며 영묘한데, 이런 최종 발전된 기질이 곧 원초적인 기질이 될 수 있을까?

“실재는 유적 본성으로 구획되어 있지만, 그 경계선을 잘라서 볼 수 없는 것은 우주의 연속적 본성에 기인한다. 실재의 궁극적 구조는 고체성의 극한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 연속성에서 얻어진다.”(생성의 철학, 260쪽)

“우주의 본질이 심리적 원리라는 것은 우리의 내면에 대한 성찰에서 경험된 것을 본질로서 유추해낸 것이다. … 세계의 본질은 연속적 흐름으로서 하나의 생명 원리이다.”(생성의 철학, 258쪽)

이와 같이 사물과 인간을 이루는 우주적 기는 본질적으로 마음이다. 마음이 우주적 기의 본체라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지만3, 우리로서는 이규성의 주장대로 일단 우주적 기의 본체가 마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가자.


이규성의 생성철학(5) – 왕선산의 존재론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이규성의 생성철학(5)-왕선산의 존재론

 

1)

앞에서 말했듯이 이규성은 90년대 초반까지 황종희에서 발견되는 우주의 일원적 기라는 실재로부터 소통성의 가능성을 찾았다. 그러나 우주적 기의 음양이 교체하는 운동 양태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규성의 판단에 따르지만, 우주적 기의 운동으로부터 황종희는 부당하게도 유가의 차별적 질서로 되돌아갔으며, 현성파는 무차별 평등 사회를 꿈꾸었지만, 다만 기의 흐름이 변화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일원적 기의 운동으로는 만물의 소통성의 토대를 마련할 수는 있지만, 홀리즘의 위험을 간직한다.

90년대 중 후반 이후 한국 사회의 시대적 정신이 변화했다. 90년 초반까지 연대를 통해 사회 변혁을 꿈꾸던 운동 세력은 후퇴하고 서구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이 불어닥쳤다. 이 사상은 여러 면모를 지니지만, 그 핵심은 개인의 자발성에 대한 강조였다. 그 때문에 개인의 자발성에 기초한 소통적 연대라는 새로운 시대 정신이 출현했다.

2001년 이규성은 <왕선산-생성의 철학>이라는 책을 발간한다. 그는 이 책에서 그가 추구했던 형이상학을 왕선산의 철학에서 찾은 것으로 보인다.1 이규성의 책의 서문에서 황종희의 철학은 내재의 철학인데, 그를 다루면서 생성의 문제가 소홀히 다루어졌고 생성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서문에 나오는 ‘내재의 철학’과 ‘생성의 철학’은 서로 동전의 이면으로 보이고 다만 강조점을 어디에 두었는가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황종희와 왕선산에 관한 이규성의 해석을 면밀하게 비교해 보면, 두 철학은 상당한 차이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황종희의 ‘내재 철학’에서는 본체라는 개념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러나 왕선산의 ‘생성 철학’에서는 본체라는 개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사물의 본체 개념이 없으면, 홀리즘의 가능성이 열린다. 반면 사물의 본체 개념을 전제로 하면 개체의 자주성이 확립되지만, 개체들은 서로 독립하여 연대 가능성이 약화된다. 이를 통해 이규성이 황종희를 떠나 왕선산으로 이행한 이유가 밝혀진다. 즉 이런 이행은 이규성이 시대 정신의 변화에 따라 소통성 못지않게 개인의 자발성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이규성이 소통성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소통성을 홀리즘적 단계에서 고양시켜 개인의 자발성을 인정하면서도 소통적 연대를 이룰 수 있는 단계에 이르고자 한다. 이것은 이규성 자신의 철학적 의식 자체의 발전을 의미하며, 진정한 의미에서 이규성의 철학적 정신은 이때부터 드러난다고 보겠다. 문제는 황종희의 철학에서와 달리 왕선산의 철학은 음양 두 기의 운동으로부터 본체를 확립하기는 하는데, 여기서 어떻게 소통의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는가이다. 이제 왕선산의 철학으로부터 소통 가능성을 찾기 위해 고투하는 이규성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하자.

 

2)

신 유가 형이상학 전반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태극과 음양, 이와 기의 관계이다. 주희에서 태극의 동정이 음양을 낳는다. 황종희에서 음양은 하나의 기의 두 대립적 양태다. 이 음양의 동정이 교체하는 양상이 곧 이법이다. 그러나 왕선산에 이르면, 그 관계는 달라진다.

왕선산에서 음양 두 기(음양 대신 인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는 하나의 기이면서 동시에 둘로 나누어져 운동한다. 왕선산에서 음양 자체가 실체 자체이다. 이 둘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동시에 상호작용하니 그런 점에서 음양은 하나의 기다.

이 운동 속에서 음양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으니 그런 균형 상태는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균형 상태가 태극이며 태극은 운동이 발전하여 균형에 이른 상태라면, 아직 운동이 발전하지 않은 미발의 상태가 곧 무극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지에서 운동으로 다시 정지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끊임없는 운동일 뿐이다. 음양의 균형 속에 나타나는 정지는 절대적 정지가 아니라 음양이 운동하는 가운데 등장하는 정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태극은 음양의 기의 운동과정이 나타내는 매순간 조화의 극치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태화에서의 조화의 극치이다. 따라서 태극은 기라는 실체의 속성이다.”(생성의 철학, 155)

음양의 동정이 만물을 이루니 여기서 만물은 나름대로 고유한 본체를 지닌다. 그 고유한 본체는 기의 동정 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의 동정 자체가 이루는 균형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물의 본체는 동일하더라도 그것을 이루는 질료적 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장자는 일월의 형체는 만고불변이다라고 했다. 형체란 그 규모와 겉모습을 말하며 질료를 의미하지 않는다. 질료는 날로 바뀌나[일신] 형체는 여일하다.”(왕선산, 사문록, 생성의 철학, 176 재인용)

 

3)

그러므로 왕선산에서 현상적 사물은 “양면적 성격과 조화로운 규칙성”을 지니며, 이는 음양의 “상호 교환 관계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139)라고 한다. 양자가 균형을 이루는 모습 즉 ‘혼융한 합일’은 곧 ‘태화’이며, ‘충화’다. 또는 양자 관계는 “서로 분리되지 않고 서로 이기지 않는[불상리 불상승] 관계에 있다.”(159)

“그러나 그[태극]의 실제는 음양의 혼융한 합일일 뿐이기 때문에 음양이라 이름 지을 수도 없다. 그리하여 다만 그 궁극성 때문에 더할 것이 없는 것을 서술하여 태극이라 한 것이다…. 음양의 본체는 인온이 서로 얻고 동화하면서 변화하여 천지에 가득차 있으니, 이것이이른바 태화이다. 장자는 것을 위대한 조화라고 했다.”(왕선산, 사문록, 생성의 철학, 154, 재인용)

“음과 양이 적대함이 없는 것을 충이라 한다. 그것의 청탁이 작용을 달리하고 다수의 나뉨이 평등하지 않으나 공을 같이 하여 서로 어긋남이 없는 것을 화라고 한다. 충화가 천지에 유행하고 천지는 그것을 완비하여 서로 화합함으로써 소산물을 널리 풍부하게 한다.”(생성의 철학, 158)

이런 점에서 이규성은 왕선산의 철학을 변역의 철학이며 회통의 철학이라 한다. 이와 같은 음양과 동정, 태극과 무극의 관계는 비유하자면 마치 촛불2과 같다. 촛불은 상승하는 힘과 하강하는 힘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고요한 촛불의 형태를 유지한다. 이 힘의 균형 속에 이루어지는 촛불의 모습이 곧 촛불의 형상이며, 그것은 정지한 것이 아니라 운동하는 가운데서 성립하는 균형을 의미한다. 이규성은 이런 왕선산의 도 개념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대립의 통일 개념과 닮았다고 한다.

 

4)

음양의 운동 속에서 운동은 항상 균형만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그 운동은 상호 부조화하는 가운데 서로 침범하는 대립 한 가운데 존재한다. 그 균형은 곧 운동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운동은 시종도 없으며, 그 사이에 휴지나 틈도 없다. 이런 운동 속에서 사물이 형성되니 그 운동의 균형은 일정한 ‘수’를 이룬다. 사물의 운동 상태는 항상 부조화하고 서로 침범하는 대립 속에 있으므로 그것은 운동의 ‘상’을 나타낸다.

“태극은 하늘과 땅이라는 공간에 있으면서 시초도 없고 종말도 없어 틈이 있을 수도 없다. 큰 것에서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어떤 상도 모두 그것의 상이며 하나에서 만 가지에 이르기까지 수는 모두 그것의 수이다.”(생성의 철학, 157)

음양의 운동이 조화의 균형 상태를 이탈하지 않을 때 중정이지만, 음양의 운동은 항상 대립 속으로 나가니, 이런 운동 상태는 균형으로부터 이탈한 시기이지만 동시에 중정의 상태로 돌아가는 시기이니 곧 변역의 시기다.

왕선산의 철학에 따르자면, 주역의 64괘는 사물의 균형 상태를 표현하지 않는다. 주역의 64괘는 사물이 중점으로부터 이탈한 상태 즉 변역의 상태를 의미하며 동시에 그것은 다시 중점으로 복귀하려는 운동의 가능성을 나타낸다.

이탈과 복귀, 변역과 중정이 교체되는 이런 운동을 이규성은 “반대적인 것의 화이부쟁” 또는 “일지일지의 운동”(생성의 철학, 167)으로 표현한다.

 

5)

왕선산의 존재론은 두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하나의 관점에서 운동은 본체에로 복귀하는 운동이다. 운동 상태 자체는 본체로부터 이탈한 상태다. 투쟁은 운동의 비본질적 성질이다. 그것은 극복되고 순화될 과정상의 한 계기에 불과하다.”(161)

이렇게 각 사물이 고유한 본체가 존재하는 세계는 한편에서 보면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처럼 각자 자기의 이데아를 지켜나가는 세계다. 따라서 이 세계관에서 양명학의 일원적 기의 운동에서나 또는 베르그송의 엘랑 비탈의 창조적 진화에서 보듯 “새로운 요소의 생기와 이것이 과거의 단순성과 결합하여 질적으로 좀더 복잡한 총체성을 생산해 나간다는 전진적 존재론은 나오지 않는다.”(생성의 철학, 161)

“이로써 그는 중국 특유의 유기적 세계관을 방대하게 형성했다. 따라서 그의 세계관은 기계론보다는 역동적이지만, 전진적 친화적 세계관에 비해서는 회귀적인 원환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생성의 철학, 164)

그러나 왕선산의 세계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만물은 이런 균형을 본체로 하지만, 그 자신은 어떤 운동 상태에 있다. 즉 만물은 균형을 중심으로 이쪽저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태이고 다시 중심으로 복귀하는 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사물의 상호 투쟁과 상호 보완이라는 관계가 나온다.

예를 들어 남자는 인간을 중심으로 양에 치우친 상태이며 여자는 마찬가지 인간을 중심으로 음에 치우친 상태이니, 이렇게 각자 반대로 치우친 존재이므로 서로 대립한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이미 자기 내에서 중심인 인간으로 복귀하는 운동을 전개하며, 그런 가운데 서로 복귀하는 힘을 빌려주고 빌려 받는 상보적 관계를 이룬다. 이 관계가 곧 상반상성의 관계이다. 이렇게 ‘상반상성’의 관계를 통해 남녀는 사회적으로 중심의 통일을 이룬다. 이 중심의 통일은 남녀 각자가 자기의 중심으로 복귀한 것이며 동시에 남녀가 이루는 통일체이다.

자연에서 사물은 자기가 존재하는 범주나 층위 속에서3 각자 서로 대립하는 음과 양으로서 상호 투쟁하는 동시에 서로 보완한다. 사람에서 남녀가 그러하다면, 지배층과 피지배층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각층에서 이런 상반상성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하늘과 땅, 물과 불, 꽃과 새는 서로 싸우고 서로 돕는다.

사물의 균형과 고유성의 측면에서 사물은 개별적이며 자주성을 지닌다. 그러나 사물이 운동 상태에 있어서 자기 내로 복귀하려 하며 상반상성의 관계에 있다는 측면에서 소통성을 지닌다. 이규성이 왕선산에서 발견한 것이 바로 이런 자주성과 소통성이 동시에 가능한 형이상학적 토대이다.

 

6)

그러나 문제는 이 본체의 모습이다. 이규성은 본체에 대한 설명과 관련해서 왕선산의 오류를 지적한다. 왕선산의 음양이 동정하는 운동을 개념적으로 본다면 음과 양은 상호 평등할 뿐이다. 그 어느 것도 다른 것보다 우위는 아니며 다만 상호 대립하는 가운데 하나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도 왕선산은 운동 가운데 양과 음의 역할을 분담하며 양이 음에 대해 우위를 가진다고 본다. 양은 강건하며 음은 유순하니, 건의 강건성이 만물을 창조하는 “존재와 변화의 주인이며” 음의 유순성은 리를 지켜나가는 것 즉 “변화를 수용하여 작용을 성취하는 것”(생성의 철학, 172)일 뿐이다.

양과 음의 통일이 사물을 이루지만, 그 가운데 양이 음을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은 왕선산 자신의 형이상학으로부터의 이탈이며 결국 전통적 유가 질서로 복귀하려는 것을 정당화할 뿐이다. 이규성은 음양에 대한 이런 해석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이 문맥에서 강건성은 집단을 응집하는 지배의 주체성이 된다. 그것은 집단을 새로운 미래로 열어젖히는 창조성이 아니라 군거 본능에 지배된 곤충적 주체성이 된다. 집단화된 음의 세력은 강건성의 주체에 의부해야만 자연 질서에 따르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생성의 철학, 173)


 

이규성의 생성 철학(4) – 왕명 좌파와 그 한계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이규성의 생성 철학(4)-왕명 좌파와 그 한계

 

1)

이규성의 책 황종희- 내재의 철학 가운데 뒷부분(6장)은 양명 좌파로 알려진 현성파의 철학을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이지가 집중적으로 논의되는데(7장),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은 이 책이 쓰인 시기 즉 90년대 중반의 시대적 분위를 잘 보여준다.

89년 민주화 이후 그런 가운데 급진적 노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사회적으로 평등주의적 경향이 강화되었다. 지식인들은 사회주의적 변혁의 전망에 들뜨기 시작했다. 이런 전망에 기초해 남북의 통일을 향한 염원도 고조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정치적 실패(군부의 선거를 통한 재집권)로 좌절한 지식인들은 마침내 필사적인 투쟁을 전개했으니, 이 시기 많은 청년이 좌절과 분노 속에서 목숨을 던졌다. 다른 한편 국제적으로 사회주의 진영이 몰락하면서, 기왕에 고조된 심정은 갈피를 잡지 못해 허둥거렸다.

이런 시기 이규성은 양명학의 형이상학에 기초하지만, 유교적 질서를 회복하고자 했던 황종희의 철학에 멈춰있을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그는 양명 좌파를 통해 제시된 평등주의적 경향에 주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식은 이규성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잘 드러난다. 아래는 186-188쪽에 걸쳐 주장된 이규성의 논리를 정리한 것이다.

① “어느 경우에는 기존 문화의 전반적인 파괴가 지배적이고 어느 경우에는 문화의 비판적 계승이 지배적이다.”

② “모든 유형의 저항들의 인성론적 기초는 … 저 원융한 흐름을 추구하는 무의식일 것이다.” “서로 융통하는 우호성을 상징하는 행위를 그리고 이러한 문화를 요구한다.”(여기서 ‘원용한 흐름’ ‘서로 융통하는 우호성’은 현성파의 무차별성과 평등성을 의미한다.

③ “명대 이지의 급진주의도 분명 이러한 방향을 어렴풋이 암시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④ “그러나 이러한 실마리 적 암시도 육상산과 왕양명 및 현성파의 예비적 전개가 있어야 했다.”

⑤ “황종희 철학의 외재적 근거는 저들에게 있는 것이 될 것이다.”(황종희는 현성파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통해 자기의 보수적 논리를 확립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2)

현성파의 근본 입장은 무차별성이나 평등성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가 하나의 기가 운동한 상태라고 한다면, 각 사물은 발산하면서 수렴하고 다시 발산하니 어떤 고정된 본체를 지니지 못하고 서로 연결되며, 그런 가운데 만유는 이 기의 운동이 전개하는 하나의 매듭에 지나지 않으니 서로 무차별하며 평등하다.

이런 우주 개념에 따르자면, 인간에게서 성과 욕정도 하나의 운동 단계일 뿐이며 성을 대변하는 지배 계급과 욕을 대변하는 피지배 계급도 평등한 무차별적 존재일 뿐이다. 이미 세계는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은 충분한 이유를 지니고 존재하고 또 일정한 시기가 되면 사라지게 되어 있다. 각자는 우주적 기의 운동 속에 참여하여 자신의 현존 자체에서 만족하니 “현재의 마음이 곧 올바른 생각이며”(황종희, 197, 왕심재 재인용), 현재에 만족한다. 이것이 곧 현성 즉 ‘현재 이루어져 있다’라는 입장이다.

이와 같은 입장은 욕망과 현재, 민중, 쾌락을 긍정하는 입장이 되며, 그런 만큼 지배 질서와 도덕을 거부하는 저항적 의식이 된다. 왕심재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보라.

“그러므로 도란 본질이며, 천덕인 양지여서 잠시라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이 양지를 따라서 즐겨 타인과 같아지게 되면 마음이 충만하게 퍼져 열리게 되어 천지는 변화하고 초목은 번성한다.”(황종희, 197, 재인용)

이런 입장에 서면 도덕 질서라는 명분으로 인간과 사회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입장은 거부된다.

“작위적으로 손을 대지 않는 것을 최상의 진리로 삼는다. 새가 울고 꽃은 지며 산은 치솟고 냇물은 흐른다.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며 여름에는 시원한 갈옷을 입고 겨울에는 모피옷을 입는다. 지극한 도는 남김없이 드러나 있다.”(황종희, 198, 왕심재 재인용)

이규성에 따르면 황종희는 이런 현성파의 논리에 대해 비판했다고 한다. 현성파를 따르면, 자칫 “광기와 방탕이라는 하나의 길로 들어간다”라는 것이다. 황종희는 그 때문에 유행에 머무르지 않고 주재를 다시 회복하려 했으나, 이규성에 따르면 “현성론에 대한 황종희의 우려와 대항은 사대부 계급의 헤게모니 장악과 관련된 정치적 성격의 것”이라고 한다. 이런 이규성의 판단에서 이규성이 황종희보다는 차라리 현성론에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어떻게 보면 현성파는 기존 질서나 도덕에 대해 비판적이기는 하지만, 그 스스로 이에 저항하는 행동으로 나갈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기의 운동에는 이런 양태도 있고 저런 양태도 있으니, 우주적 기와 합일하는 인간으로서는 기의 움직임을 기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항한다는 행동 자체가 기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부분의 현성파는 내적 망명이나 현실 도피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활동을 전개한 철학자가 이지다. 그는 물론 이론적 활동에 그쳤지만, 적어도 그런 비판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특출하다. 이규성 역시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진다.

이지의 비판은 곧 도리를 가르치는 것은 거짓된 인간을 만드는 것이라는 입장에서다. 이는 사회의 지배적 질서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오히려 동심 즉 자연적 마음을 그대로 두면, 기의 운동에 합일하여 살아가면서 진정한 인간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독서인들은 겉으로는 도학을 하고 속으로는 부귀를 추구한다. 유자의 우아한 옷을 입었으나 행동은 개돼지와 같다. … 재주와 학식이 없는데도 성인 도학을 강학한다는 이름으로 부귀를 요구하지 않으면, 종신토록 빈곤하고 천할 것이기 때문이다.”(황종희, 226, 이지 재인용)

“도덕적 인격은 특권 집단의 비특권 집단에 대한 거리와 부정에 기초한 고립된 인격이라면, 동심은 인격의 자기 위세가 없는 ‘자기도 없고 타인도 없는’ 마음이다.”(황종희, 236)

 

4)

이지 자신은 도덕을 비판하면서 사회적 질서도 부정한다. 그는 “모든 사람이 동류이고 동체”라는 의식을 지녔으며, 제반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를 부정한 대동 사회를 꿈꾸었다. 그러나 그런 비판적이며 동시에 평등한 의식은 아무런 실질적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이지가 기존의 도학을 비판한 것은 그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소위 회의주의의 역설에 붙들리게 된다. 회의주의는 어떤 주장도 진리가 될 수 없다고 회의하지만, 회의 자신은 스스로 진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회의한다는 것 역시 하나의 주장이며 회의주의 자신의 논리에 따라 부정될 수밖에 없다.

이런 회의주의의 역설은 기존의 도학을 비판하는 이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기존의 도학이 우주적 기에 대한 하나의 강요라면 이지의 비판 역시 하나의 개입이니, 그 역시 하나의 강요가 아닌가?

회의주의가 결국 판단중지에 이르러 현실을 방임하고 말았듯이 이지 역시 마찬가지로 방임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 현성파의 근거는 곧 우주와 합일한다는 것에 있는데, 이는 결국 우주적 기의 운동이 되는 대로 기다리고 받아들이는 수동적 태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이지는 결국 현실을 벗어나 중이 되고 말았다.

이규성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현성파가 주장하는 무차별성과 평등성은 이규성이 철학적으로 추구하던 개방성과 소통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성파에 따르면 그저 우주적 기의 운동이 흘러가는 대로 그것이 발산하고 수렴하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으니, 이는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거꾸로 현실을 옹호하는 이론이 되어 버린다. 이규성으로서는 이런 현실 방임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규성은 현성파에 대립하는 황종희의 입장을 옹호할 수도 없다. 황종희는 현성파와 동일한 형이상학적 전제 즉 기 일원론에 기초해서 전통 질서를 옹호하고자 했는데, 일단 여기서 질서는 하나의 양태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주희와 같은 주리론자에게서 보이는 것과 같은 강력함을 발휘할 수 없다. 더구나 이규성 자신이 90년대 초반에 가졌던 평등주의적 성향은 황종희에게서 나타나는 억압적 질서를 인정할 수도 없었다.

현성파나 황종희나 모두 양명학적 형이상학에 기초한다. 그것은 하나의 기가 운동하여 전체를 관통한다는 형이상학인데 이런 입장은 황종희처럼 정통 질서를 한정적인 방식으로 옹호하던가 아니면 현성파처럼 비판적이지만, 방임주의로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기 일원론은 이규성이 바라는 대로 소통성의 근거가 될 수도 있지만, 새로운 사회를 지향해 나가는 적극적인 힘이 될 수는 없었다. 그는 좀 더 적극적으로 개방성과 소통성을 옹호하는 형이상학을 발견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규성은 90년 중반 그가 기울어졌던 양명학을 떠나게 된다.1 그 후 그는 왕선산의 기 철학으로 방향을 전환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규성이 빠졌던 딜레마는 어쩌면 90년대 중반 지식인이 부딪혔던 딜레마와 닮았다. 평등한 사회주의에 관한 관심은 고조되었으나 정작 사회주의 진영은 무너지고 만 그 황당함 앞에 지식인은 당혹에 빠졌는데 이규성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었는가 생각한다

이규성의 생성 철학(3) – 황종희 철학의 딜레마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이규성의 생성 철학(3)-황종희 철학의 딜레마

1)

기가 운동하는 두 양태는 물체의 형성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담당한다. 그 가운데 양의 운동은 전진적이며 새로운 것을 생산한다. 이것은 발산하는 운동이다. 반면 음의 운동은 후퇴하면서 자기를 보존한다. 이것은 수렴하는 운동이다. 이런 과정은 더 구체적으로 사계절의 흐름처럼 네 단계로 전개된다. 그것이 곧 생산, 성장, 성숙, 저장의 단계다.

발산하는 운동은 변화시켜 유행을 낳으며 수렴하는 운동은 보존하니 이를 통해 물체가 생겨난다. 발산은 생겨난 물체를 변화하고 수렴은 다시 물체를 회복하게 하면서 이 운동은 거듭 반복해서 일어나게 된다. 마치 계절이 오가고 해와 달이 교체하는 것과 같다. 이런 시간적 질서가 곧 이법이다.

이 이법은 자연의 운동에 의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니 이를 곧 자연에 내재하는 질서 즉 ‘천’이라 한다. 질서가 운동에 의해 생겨나지만, 일정한 질서를 자연적으로 따른다는 점에서는 기는 이 운동을 주재한다. 그렇다고 이 기의 질서가 초월적인 것은 아니며, 자연의 운동에 맡겨졌다고 해서 다만 무질서한 것만도 아니다.

“춥고 더움은 자신의 법칙을 잃지 않고 만물은 각기 자신의 질서를 가진다. 평화와 혼란, 가득참과 텅빔, 사라짐과 생겨남, 흥성과 쇠망은 순환하여 그치지 않는다. 일월성신은 번갈아 운행하면서 그 법도를 상실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어떤 인위적인 흔적을 보지 못하며 다만 자연에 따라 형상을 이룬다. 그러므로 그 속의 깊고 깊은 곳에 주재하는 것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이른바 천이란 주재를 말한다.”(황종희, 70)

“유행 가운데 반드시 주재가 있으므로 주재는 유행의 밖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유행에 조리가 있다는 것이다. 변화의 관점에서 유행이라 하고 불변의 관점에서 주재라고 한다.”(황종희, 70)

기가 전개하는 운동을 통해 물체가 생성하고 운동의 이법이 성립한다. 이법은 자연 전체의 반복된 흐름일 뿐이므로, 이법은 기에 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규성은 황종희의 철학을 내재의 철학이라 한다.

 

2)

기의 이런 운동으로부터 황종희는 여러 가지 자연의 원리를 끌어낸다.

① 이런 기의 운동은 발산과 수렴의 운동을 통해 자연의 다양한 물체를 낳는다. 여기서 다양한 물체는 서로 고립된 단절된 개체는 아니다. 개체를 개체로 유지하는 본질은 없다. 하나의 물체는 운동 속에 있는 한 국면, 양태이며, 개체란 여러 운동이 교차하는 매듭일 뿐이다.

“본체로서 기는 스스로를 확산 전개시키면서 다양의 세계를 생산한다. 다양의 세계는 기의 자기 변양태들이기 때문에 기에 근본하며 독자적 세계로 분리될 수 없다. 본체는 하나이다. 형체와 색깔은 본체의 변양된 사물들의 속성이지 본체가 될 수 없다.”(황종희, 100)

개체의 운동은 전체적으로는 더 큰 운동의 한 양태이며, 이 운동은 인과적 필연성에 따르는 것이 아닌 기 자체의 자발적 운동에 따르니 우연성이 지배하고 있다. 전체 우주는 하나의 통일된 기의 운동을 전개한다. 이 우주적 기가 물체를 서로 연결하는 운동의 실체다. 그러므로 만유는 서로 개방되어 있고 서로 소통한다.

“이 형질 때문에 사물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막혀 있지만, 본질의 차원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열려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열려 있어서 전체적으로 하나이다.”(황종희, 101)

이와 같은 우주의 전체 모습은 베르그송이 전개한 우주와 닮았다. 우주의 본체인 엘랑 비탈은 비약적인 도약을 통해 다양한 우주를 전개하지만, 그 모든 것은 서로 공감한다. 이 본체가 없는 물체의 우연한 전체 연관의 체계가 우주적 진화의 모습이다.

“모든 물체나 우리의 신체도 무한성에 그 자체로 관여하고 있다. 신체는 그 형태적 유한성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무한성에 의해 이미 그리고 본성상 비호되고 있다.”(황종희, 80)

② 이런 변화와 보존은 모두 자연의 이법이며 선과 악이라는 판단은 인간의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다. 악이 실체적인 것도 아니고 무가 영원한 것도 아니며 거꾸로 물체도 언젠가는 무너지니 그 자체로 선한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신체와 물체를 억압하고 이법의 도덕을 강조하는 주희의 입장에 비해본다면, 신체와 물체를 인정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현실세계에는 본래적으로 초월적인 선의 결여라는 의미에서의 악의 실체는 없으며, 허무로 부서질 무의 가능성을 갖고 있지 않다.”(황종희, 80)

“그의 생성과 생의의 철학에는 우리의 신체성과 현상적 물체들과의 본래적 적극성과 긍정성을 강조하는 의의가 충분히 있다.”(황종희, 92)

 

3)

하나의 기가 전개하는 운동, 그것의 다양한 운동 양태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황종희의 형이상학에서 자연 물체와 생물, 인간을 구분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응결과 유통이라는 양태가 다시 개입한다. 우주적 기 전체가 응결하여 무겁게 되는 양태에 있을 때 자연 사물이 된다. 우주적 기가 약동하여 가볍게 되는 양태에 있을 때 관념이 된다.

“천은 기의 변화 유행을 통해 사람과 사물을 생산하는데, 이것은 순전히 한 덩어리의 조화로운 기이다. 사람과 사물은 그것을 품수받으니 곧 인식하고 깨닫는다. 인식하고 깨닫는 능력 가운데 정수가 되는 것은 영민하고 밝아서 사람이 되고 인식하고 깨닫는 것 가운데 거친 것은 혼탁해서 사물이 된다.”(황종희, 99, 재인용)

그러나 황종희에서 이 양태는 하나의 기가 지닌 운동에 불과하니, 기의 운동 상태를 넘어선 기의 실체적 본질은 무엇인가? 마치 베르그송의 엘랑비탈이 관념도 아니고 물체도 아니고 양자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이미지이듯, 황종희에게서도 기의 본질은 마음인데 이 마음은 단순한 관념이 아닌 심적인 것 즉 관념적인 동시에 신체적인 것이다.

 

4)

마음이 지닌 이런 본체로부터 인식과 도덕에 관한 주장이 도출된다.

① 마음은 가볍고 유동적이므로 관통하는 성질을 지니니 이를 통해 마음은 우주와 합일에 이른다. 이런 합일은 정관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통해 일어나는 합일이며(천인합일) 이 합일은 곧 실천적 행동으로 출현한다. 이런 합일을 위해서는 마음의 가볍고 유동적인 운동을 강화해야 한다.(지행합일) 즉 마음을 응결시켜 욕정화하는 물질적 운동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이것이 도덕적 실천이다(체인).

“왕양명과 황종희에게서도 마음은 실재를 능동적으로 비추는 비춤의 작용을 하는 광명의 존재이다. 그것은 항상 비추고 있는 존재다. 그것은 일종의 지의 힘인데 능동적으로 운동하지 않은 적이 없는 존재 즉 다른 존재에 의해 움직여진 적이 없는 존재로서 비추는 마음이다.”(황종희, 97)

② 이런 마음이 다시 다양한 운동 상태에 있으니 마음이 응결하면 욕정이 되고 마음이 유동하면 사단이 된다. 황종희는 마음의 운동 단계를 생기와 장기, 수기, 장기의 단계로 나누어 각 단계에서 출현하는 마음을 측은지심, 사양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이라 한다. 이 네 가지 마음을 넘어 따로 인간의 본연지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본연지성에 속한다고 말해지는 인의예지는 다만 마음을 오랫동안 지킴으로써 얻은 덕에 해당한다.

“측은한 마음은 운동의 양태인데 곧 본질의 생동하는 작용이다. 그러므로 기쁨에 속하며 슬픈 감상이 아니다. 사양하는 마음은 질서의 양태인데 곧 본질의 성징하는 작용이다. 그러므로 즐거움에 속하고 엄숙이 아니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극복의 양태인데 본질의 거두어들이는 작용이다. 그러므로 분노에 속하며 분연히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시비의 마음은 안정의 양태인데 곧 본질의 숨는 작용이다. 그러므로 슬픔에 속하며 분별이 아니다.”(황종희, 158)

“그렇다면, 인의예지는 본질이 아니라고 해야 하는가? 중용은 성의 덕을 말하고 있다. 그것을 덕이라고 하면 괜찮지만, 성이라고 하면 안 된다. 문자적 의미에서도 낳음과 마음이 합해서 성이 된다. 성이 선하기 때문에 마음이 선하다.”(황종희, 160 재인용)

“우리의 의지가 마음의 본질상에서 투명하게 꿰뚫어 안정 상태가 되면 천기가 욕망을 발하므로 욕망이 다름아닌 천기이다.”(황종희, 177 재인용)

③ 욕정과 사단이 마음의 운동 양태이므로, 욕정조차 버릴 수 없다. 마치 음양이 자연의 기의 운동 양태이어서 그 어느 것도 버릴 수 없는 것과 같다. 물론 황종희는 마음이 응결된 상태에서 활발한 유동적 상태로 이행하기를 기대하지만, 응결된 상태 역시 마음의 운동 과정에서 없을 수 없다.

 

5)

이상에서 이규성은 황종희의 형이상학을 통해 소통성의 근거를 발견하려 했다. 만유가 기의 작용 속에 들어 있으므로 서로 개방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황종희는 이런 기의 일원론 위에서 마음을 통해 우주와 합일하며 이를 통해 실천적 행동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마음이 우주와 합일에 이를 때, 이 상태는 평등하다. 우주적 기의 운동은 두 양태로 전개되며, 마음 역시 네 자기 운동 양태 속에 있다. 각 운동 양태는 운동의 과정상 불가피한 것이다. 그것은 전체적으로 기의 우주적 생명의 리듬에 속한다.

더구나 황종희에서 양의 운동 양태는 전통 유가적 지배 질서를 의미하며, 반면 음의 운동 양태는 이런 이 질서가 무너지고, 내적으로는 이욕이 지배하며 외적으로는 반란이 일어나는 상태다.

이런 생각은 아마도 황종희가 자신이 부딪혔던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했을 것이다. 그가 처했던 현실은 이민족의 지배이며, 지배층으로서 사족이 몰락하던 시기였다. 그는 이런 현실은 기의 운동 상 불가피하게 도래한 것일 뿐이라는 점에서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그는 지배층의 사족으로서 이런 단계를 지나가면 기의 운동에서 다시 긍정적 현실의 단계가 회복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 희망은 그가 부딪힌 현실을 인내할 수 있게 만들었을 것이다.

“유행은 필수적인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 황종희의 생각이다. 유행은 천리로서의 구심점에로 회귀하는 수렴 운동에 의해 고정된 안정성을 찾아야 한다.”(황종희, 185)

“황종희는 철학사 연구와 대규모 반란에 대한 체험에서 그러한 위험성을 인지하였다. 그는 유행과 발산의 힘에 대해 다시 주렴계의 주정론에 의거해서 그 힘을 주재와 수렴 쪽으로 휘려고 하였다. 그는 유행의 역동성을 받아들여, 그것을 타고서 그것을 순화지도하는 방향을 선택했다.”(황종희, 186)

그러나 양의 양태가 운동의 한 양태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곧 그 양의 양태의 정당성을 의문시하게 만든다. 모든 양태가 기의 측에서 보면 불가피한 것이니 양의 양태나 음의 양태는 무차별하게 된다.

더구나 황종희에서 양의 양태는 전통적인 유가의 지배 질서를 의미한다. 왜, 유가의 지배 질서가 양의 양태가 되어야 하는가? 오히려 서로 평등한 상태가 또는 욕망이 지배하고 피지배 계급과 이민족이 지배하게 되는 것이 양의 양태가 아닐까? 양의 양태를 새롭게 규정하려는 시도가 소위 양명 좌파로서 현성파의 지반이 된다.

황종희는 양명 우파로서 앞에서 보았듯이 명의 멸망이 현성파의 무차별성에 기초한다고 보면서 전통적 지배 질서가 회복되기를 기대했으나, 이상에서 제기된 것과 같이 양의 양태란 상대적인 단계일 뿐이며 더구나 그 양의 양태가 전통적 지배 질서가 아닐 수도 있다. 이규성은 이제 차라리 평등한 세상을 양의 양태로 규정하는 현성파의 논리를 다시 음미하게 된다.

이규성의 생성 철학(2) – 주자학과 황종희의 내재철학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이규성의 생성철학(2)-주자학과 황종희의 내재철학

 

1)

이규성은 서구 형이상학을 근본적으로 전복하려는 형이상학적 혁명에 착수한다. 그는 서구 철학 가운데 쇼펜하우어와 베르그송의 철학에 흥미를 느끼기도 한다. 그것은 이들의 철학이 실재의 본질을 생명의 약동하는 의지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서구 철학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거기서 어떤 한계를 발견하기 때문인데, 그 한계는 앞으로 논증돼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생략하도록 하자. 그는 이제 차라리 동양철학의 전통 형이상학에서 무언가 대안을 찾으려 한다. 그가 여기서 특별하게 주목했던 것은 송명 이학의 형이상학이다.

이규성은 그가 쓴 논문을 일별해 볼 때 90년대 걸쳐 여러 송명 이학자들에게 관심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그가 특별하게 주목했던 철학자는 두 사람이니 곧 황종희과 왕선산이다. 그는 이 두 사람에 관해 각기 하나의 책을 헌정했으니, 1994년 쓴 『내재의 철학: 황종희』이며, 2001년 쓴 『생성의 철학: 왕선산』이다.

황종희와 왕선산은 명말 청초의 이학자인데, 양자의 형이상학적 체계의 차이는 단번에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로 유사하다. 그런데 이규성은 전자에게는 ‘내재의 철학’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후자에게는 ‘생성의 철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 책을 직접 읽어보면, 어느 책에서나 이규성이 형이상학을 통해 찾으려 했던 자주성과 소통성의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을 보면, 그는 두 책에 걸쳐 그 근거가 되는 형이상학적 원리를 발견하려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전반적으로 보면, 94년 쓰인 황종희의 철학에 대해서는 천인합일, 혼연일체의 소통성이 전체를 지배한다. 반면 2001년 쓰인 왕선산의 철학에서는 물론 자주성과 소통적 연대를 동시에 추구하고자 한다. 이런 변화는 이규성이 살았던 그 시대의 시대 정신과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본다.

90년대 초반까지는 시대 정신에서 사회주의적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이때 연대가 주로 논의되었다. 반면 90년대 중후반에 이르면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개인의 자발성이 강조되니, 개인적 자발성과 소통적 연대가 이규성의 철학 속에서 동시에 추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규성은 두 철학자의 철학을 규정하는 말로 황종희는 ‘내재의 철학’, 왕선산은 ‘생성의 철학’으로 규정했는데 그 개념이 곧 위의 문제의식과 연관된 것이 아닐까 한다. 우선 거슬러 올라가 그가 왜 송명 이학의 창시자라고 할 주자의 철학에 머무르지 못했는가부터 설명하고자 한다.

 

2)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송명 이학의 형이상학의 근본 축은 곧 이와 기의 관계다. 기는 음양으로 이루어지며, 음양은 한번 동하고 한번 정한다. 그런 가운데 만물의 이법이 출현하는데, 이때 음양의 동정을 이해하는 방식이나 기와 이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

이규성이 보기에 주희에서 음양의 동정은 무질서하고 부단히 운동하는 것이다. 그 자체 속에는 지속성과 통일을 지닌 이법을 발견할 수는 없으므로 외부에서 이법이 주어져야 한다. 이 이법의 원천은 음양 이전에 실재하는 태극에 있다.

주희의 이런 이원론적 관점은 서양철학적으로 본다면, 플라톤의 철학과 흡사한데, 이에 관해서 이규성은 나정암의 주희의 이원론에 대한 비판을 소개하고 있다. 그에 기초해서 이규성은 약간 주저하기1는 하지만, 다음과 같이 판단한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주희는 궁극적으로는 이가 먼저 있은 후에 기가 있다.고 단언하였다. 이가 존재한 후에 기를 생산한다는 이생기[의 입장으로 귀결된다.”(황종희, 75)

“자연의 존재는 이에 의해서 부여된 것으로서 이의 존재 부여 능력이 없이는 소멸되고 말 본래부터 불완전한 존재이다.”(황종희, 77)

이와 같은 주희의 형이상학에서는 비록 주희에서 이미 천인합일의 개념이 나온다고는 하더라도 그 결과는 개방적 소통성의 윤리는 아니다. 주희의 형이상학에서 초월적 이의 지배는 윤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위계적 질서가 나오게 된다.

“자연과 인간의 자연적 본성은 운명적으로 불완전성과 악에의 가능성을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황종희, 78)

 

3)

이규성은 주자의 이원론적 형이상학을 비판하면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 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양명학에 주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양명학파 가운데 좌파라고 할 태주 학파에도 관심을 기울였지만, 결국 그는 양명학을 계승하면서도 태주학파를 비판하는 황종희의 철학에 이르게 된다.

이규성은 황종희의 철학적 의도나 배경에 관해 왕양명의 제자인 호한의 말을 빌어 온다.

“송의 유학은 분별을 숭상하였기 때문에 주석과 그 해설에 노력하였다. 명의 유학은 총괄을 숭상하였기 때문에 종지를 세웠다. 그러나 명유는 훈고의 지리멸멸을 싫어하여 반드시 종지를 표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는데 그 폐단은 훈고보다 덜하지는 않았다. 도라는 것은 천하의 보편적인 도이고 학이란 천하의 보편적인 학이다. 어찌 따로이 종지를 표방할 필요가 있겠는가?”(황종희, 49)

호한의 말을 통해 황종희가 주희나 양명학을 동시에 넘어서려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규성은 황종희의 형이상학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황종희에서 이는 기의 운동에 내재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게 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이기의 관계가 문제가 되는데, 우선 그에게서 기는 하나의 기이며, 이 기의 양태가 곧 운동과 정지이며 이때 운동하는 상태를 양이라 하고 정지한 상태가 음이 된다.

“하늘과 땅을 관통하고 고금을 꿰뚫어 하나의 기가 아닌 것이 없다. 기는 본래 하나이다. 그러나 가고 오며 닫으며 열고 오르고 내리는 차이가 있기에 나누어져 운동과 정지가 된다. 운동과 정지가 있어서 나누어져 음과 양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음양의 운동과 정지는 천 갈래 만 갈래로 변화하고 어지러이 얽히고 설키지만, 결국 혼란스럽게 되지 않는다. 영원히 이렇게 추웠다고 더워지며 영원히 이렇게 생산하고 성장하며 거두고 저장한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변화한다. 이것이 곧 이른바 이이며 이른바 태극이다. 그것이 문란하지 않은 측면에서라 하고 그 궁극성의 측면에서 태극이라 한다.”(황종희 64, 재인용)

황종희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규성은 음양이 일기의 양태라는 측면에 주목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음양이 독자적인 실체인 기가 아니라, 하나의 기가 운동하는 모습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규성은 이를 ‘기의 변양태’(황종희, 66)로 규정한다. 이처럼 자발적으로 운동하는 기를 황종희는 정명도의 말을 빌어 ‘생의’라고 했다고 한다. 이는 약동하는 생명으로서 베르그송의 엘랑 비탈을 닮은 개념이다.

이규성의 생성 철학(1) – 이규성 철학의 문제의식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이규성 철학과 생성의 철학(1)- 이규성 철학의 문제의식

 

1)

이규성 선생(이하 이규성) 철학의 본령이 어디 있을까? 이규성이 지은 여러 저서를 읽는 가운데 항상 느꼈던 의문이 바로 이런 질문이다. 그의 글을 읽어 보면 누구나 인정하듯이 그는 단순한 철학 연구자는 아니다. 그는 무언가 자신의 철학을 형성하기 위해 고투했으니, 그의 글을 읽으면 누구나 이규성 철학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 철학은 기존의 철학자들을 연구하는 가운데 일종의 논평 형식으로 서술되었다. 그 때문에 안타깝게도 그의 철학적 주장은 그가 쓴 글의 맥락에 따라서 제시되었기에 여러 차례 중복되는 발언이 있기는 하지만, 서로 겹칠 뿐 체계화되지는 않았다. 그의 철학은 그런 논평 가운데 흩어서 말해졌을 뿐이다.

그러기에 그의 글을 읽는 가운데 필자에게 든 의문이 그런 주장들 가운데 이규성 철학의 핵심, 본령이라고 할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2)

일단 그의 철학의 출발점은 시대 상황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의 여러 글 가운데 아마도 자신의 철학을 위해 체계화를 시도했던 유일한 글이 있다면, <한국현대철학사론-세계 상실과 자유의 이념이라는 책 3부 현실과 전망>이라는 글일 것이다.

그는 여기서 자기의 철학에 도달하기 위해 기존 철학을 비판하고 도래하는 시대의 철학을 제시했는데, 다만 자기의 철학의 출발점과 극복해야 할 철학, 그리고 앞으로 기대하는 철학의 지향점만은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다. 최종적 결론 즉 그가 형성하려는 형이상학 자체는 이 글에서 빠져 있다는 점에서 미완성의 글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 글을 통해서 그의 철학적 의식만은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이 글의 출발점을 이루는 것이 그가 처했던 그의 시대에 대한 비판이다. 그것은 그가 철학을 개인적인 선호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시대에 대한 극복이라는 과제에 복무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연하다 하겠다.

이 글의 목적상 그런 비판을 상세하게 다루는 것은 생략하려 한다. 다만 그는 자기 시대를 외적으로는 서구의 지배 아래 종속되어 있으며, 내적으로는 억압과 불평등으로 가득한 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은 그가 70년대 이후 종속적 발전이 가속화되던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다는 사정을 안다면, 누구나 시인할 만한 시대 의식일 것이다.

그는 이런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직접 실천적 운동에 뛰어든 흔적은 찾기 어렵다. 몇몇 에피소드적 사건1을 제외하면 그는 시대 극복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근원적인 실천에 종사할 것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서 이 더 근원적 실천이 바로 철학함이다.

 

3)

이 글은 그의 철학 가운데 그가 형성하려고 했던 형이상학을 찾아보려는 시도인데, 이런 형이상학이 어떤 맥락에서 제시되었는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의 글을 읽어 볼 때 대체로 그의 철학적 정신은 다음과 같이 규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① 그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종속적 발전, 억압과 불평등의 근원은 자본의 탐욕과 서구 과학 기술의 지배에 있다고 보며, 이런 자본의 탐욕과 서구 과학 기술은 그 밑바닥에 서구의 전통을 이루는 형이상학 즉 초월적 실재론 또는 객관적 관념론이 존재한다고 본다.

② 그는 이런 서구 형이상학을 비판하고 극복하기 위해 서구 철학 내부에서 일어난 비판적 철학에 주목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쇼펜하우어와 베르그송과 같은 철학이다. 하지만, 그는 쇼펜하우어나 베르그송에서도 어떤 한계(?)를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그는 동양철학 가운데서 새로운 형이상학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③ 그가 쓴 논문의 순서만 가지고 보면 그는 동양철학 가운데 80년대 초기에는 주로 맹자나 주자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초월적 실재론이나 객관적 관념론의 전통에 부딪히면서 실망한다. 그는 이 시기 대진(1982)이나 유기(1990),  이대조(1990), 정자(1999), 강유위(2003) 등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만족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④ 80년대 말에서 2000년까지 그는 두 권의 저서를 발표했는데, 그것이 곧 황종희의 내재 철학(1994)이고 왕선산의 생성 철학(2001)이다. 여기서 그는 생성의 세계와 합일(천인합일)하는 가운데 자주성과 소통성에 도달한다는 원리에 이른다. 그에게서 실재는 존재의 세계가 아니라 생성하는 세계이며 이는 단순히 실재를 인식하는 문제가 아니라 실재를 온몸으로 채특하는 실천적 혁명이다.  그는 두 철학자에게서 자신이 발견하려는 형이상학적 원리를 어느 정도 찾은 것으로 보인다.

⑤ 그에게서 실재는 단순한 이론적 세계가 아니라 윤리적 세계이므로 형이상학적 혁명은 곧 윤리적 혁명이 된다. 그는 이런 내적 혁명을 통해 개방성과 소통성을 갖춘 위에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는 실천적 혁명이 가능하다고 본다.(내성외왕의 정신) 그러나 그는 두 철학자가 제시한 윤리는 여전히 봉건적 윤리에 머무른다는 한계 때문에 고민한다.

⑥ 2011년 발표된 <최시형의 철학: 표현과 개벽>에서 그는 생성의 형이상학에서 발굴할 수 있는 저항정신, 시대를 극복하는 새로운 정신적 혁명, 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그는 그의 철학적 고투의 정점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주성과 소통성을 토대로 해서 건설되는 새로운 사회는 공화주의(공화적 소유)에 기초한 민주주의 사회다. 이런 사회는 자유 민주주의와 구별되며 그렇다고 사회주의 혁명이나 무정부주의적 혁명과는 거리가 멀다.

⑦ 그 이후 그는 쇼펜하우어에 관한 연구서(2016), 한국현대철학자(2012)이나 중국의 현대철학자(2020)에 대한 논평에 몰두하는데 이는 자신이 발전시킨 철학을 완성하기 위한 선배 철학자를 비판하는 것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 그의 철학의 핵심은 형이상학적 혁명에 있다. 그는 이 형이상학적 혁명을 존재가 아닌 생성의 철학에서 발견하며 이 생성의 철학을 통해 자주성과 소통성의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확신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논지는 사실 앞으로 논증되어야 할 테제에 해당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그 가운데 특히 하나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려 하는데 바로 그가 몰두했던 생성의 형이상학이다.  이규성의 철학의 주춧돌이라고 할 주장 즉 생성의 철학을 통해 내적 개방성과 소통의 연대성을 발견하려는 시도가 성공적이었을까? 필자가 이 글에서 시도하려는 것은 바로 그가 제시한 생성의 철학이 어떤 점에서 자주성과 소통성의 근거가 되는 것인지를 밝히려는 시도에 있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63- 헤겔과 베르질리우스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63- 헤겔과 베르질리우스

1)

베르질리우스(1779-1848)는 헤겔과 동시대에 살았던 스웨덴 화학자이다. 그의 업적은 많다. 그는 달톤, 라부와지에의 원자가설을 옹호했으며, 엄격한 실험을 통해 많은 새로운 원소를 발견했다. 특히 그는 동위원소[isomorphe]나 동소체[isomerische]의 발견으로 유명하다. 그는 오늘날 스웨덴을 대표하는 과학자로 추앙받고 있다.

그런데 헤겔은 선택적 친화성을 논하는 실재하는 척도 A절 c항의 주석에서 이 탁월한 화학자 베르질리우스를 맹공하고 있다. 헤겔이 근대 과학자에 대한 비판은 유명하다. 앞에서 미적분을 논하면서 헤겔이 뉴턴을 어떻게 비판했는가를 소개했다. 헤겔에 따르면 뉴턴이 미적분에서 무한 개념이 비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지키지 못하고 다시 무한소 개념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비판했다.

후일, 미적분의 토대를 확립했다고 알려지는 바이어스트라스는 헤겔의 무한 비율 개념이 무한 수학의 토대가 된다고 말했으니, 헤겔이 논리학을 통한 과학의 이해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스웨덴의 국가적 과학자로 추앙받고 있는 베르질리우스를 헤겔이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일까?

문제의 핵심은 화학적 결합을 전기적 힘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에 있다. 베르질리우스는 당대에 볼타가 발견한 전지에 주목했다. 그는 볼타의 방식대로 구리판과 아연판을 쌓아서 전지를 만들어 화학적 실험에 도입했다.

이런 실험 끝에 그는 모든 화학적 결합이 전기력에 의한 것 즉 +전기와 -전기 사이에 작용하는 힘 때문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산과 알칼리의 결합은 예를 들어 H+와 OH-의 결합에서 보듯이 전기력에 의한 견인으로 보이므로 베르질리우스의 주장은 광범위하게 옹호되었다.

그러나 헤겔은 화학적 결합을 전기적 힘으로 설명하려는 베르질리우스의 주장을 비판한다. 이런 비판은 원자론에 대한 헤겔의 비판과 연결되며 이를 통해 헤겔은 상호 침투라는 개념을 확립하는데, 그는 이를 주석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으니, 이제 주석에서 헤겔이 전개하는 내용을 따라가면서 헤겔의 주장을 이해해보자.

2)

헤겔 당시에 라부와지에의 원자 가설이 확립되었다. 이는 원자량이 일정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어서 리터와 피셔는 실험을 통해 물질의 결합에서 원자량은 일정한 비율로 결합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예를 들어 수소와 산소가 결합해서 물을 만드는 비율은 1:8이다. 여기서 수소의 원자량이 1이고 산소의 원자량은 8인데, 물은 수소와 산소가 2:1의 비율로 결합하니, 그 질량의 비율은 1:8이 될 수밖에 없다. 일반화하면, 원자량 a와 b의 결합은 결합비율 x:y의 비율이 곱해져야 한다. 그러면 결합비율은 a:(b*y/x)가 된다.

베르톨레는 실험적으로 같은 결합에서 질량 비율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소위 동소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결합에서 질량 비율의 차이는 외적인 상황에 의존한다고 생각했지 이를 결합 이율의 일정성을 부정하는 결과로 보지는 않았다.

“결국 그[베르톨레]는 이런 배제 작용이 발생하게 되는 사정 예컨대 응집의 강도나 고형화된 염산의 물속에서의 비용해성은 작용 인자의 본성에 있는 것이 아니며 더 나아가서 이러한 사정은 그밖에 또 다른 사정 예컨대 온도를 통해서도 그 작용이 지양될 수 있음을 밝혀 놓았다.”(논리학 재판, GW21, S. 356)

그러므로 이런 외적 상황을 제거한다면, 리터나 피셔가 주장한 대로 물질의 결합에서 질량은 일정한 비율에 따른다고 보았다.

3)

헤겔은 베르톨레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갑자기 베르젤리우스를 끌어들인다. 베르젤리우스는 베르톨레*가 일정 비율의 법칙을 근본적으로 부정한 것으로 주장했는데, 이는 베르젤리우스가 베르톨래를 곡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 베르질리우스는 1818년 파리에 들러 베르톨레의 실험실을 방문하여 그와 교류했다. 그러나 베르질리우스는 베르톨레의 견해를 비판한 결과 둘 사이는 서먹해졌다.

문제는 화학적 결합에서 일정 비율의 법칙이 아니다. 헤겔이 베르질리우스를 끌어들인 것은 그가 화학적 결합에서 일정 비율을 설명하면서 제시했던 원리다. 베르질리우스는 이런 화학적 결합은 결합된 원자가 결합하는 다른 원자에 의해 둘러싸이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렇게 둘러싸인다는 것은 결합하는 원자가 결합된 원자가 지닌 원자 사이의 공간에 끼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서 사이의 공간에 있다는 것은 결합하는 원자가 결합한 원자 밖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결합은 외면적인 결합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한다고 본다.

“이 말은 곧 용해된 것이 용해 매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는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용해 매체의 사이 공간은 용해 매체가 비어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용해된 실에는 용해 매체 속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오히려 비록 그 용해 매체가 그것을 둘러싸고 에워싸고 있든가 아니면 그것에 의해 둘러싸이고 에워싸여 있든 간에 용해 매체 밖에 그러므로 확실히 그 용해 매체에 의해 해소되지 않은 채로 있다는 것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357)

헤겔은 이런 주장을 통해 베르질리우스가 외면적 관계에 머무르는 입자론 철학을 옹호하면서 역동론적 철학을 부정했다고 한다. 역동론적 철학은 화학적 결합을 상호 침투의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인데, 이런 역동론은 물체의 결합에서 적어도 일정 부분적으로는 단순히 외면적 결합에 그치지 않고 내적인 통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베르질리우스는 상호 침투에 기초한 역동론적 결합 개념을 받아들이면, 물질의 결합에서 원자량이 보존되고, 그 결합이 항상 일정한 비율에 따른다는 비율 법칙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고 본다. 원자량 보존이나 결합 이율의 법칙은 이런 불면의 원자를 가정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헤겔에 따르면 화학적 결합에서 역동론적 개념은 사물의 부분에의 합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하지 사물의 모든 면에서 합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화학적 결합에서 원자량에서는 변화가 없지만, 다만 부피에서 변화가 생겨남으로써 비중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4)

화학적 결합을 이처럼 외면적 결합으로 보면, 이제 화학적 결합을 유지하는 힘이 문제가 된다. 베르질리우스는 이런 결합하는 힘을 전기적 힘으로 설명하려 했다. 이미 앞서 말했지만, 산은 + 전기를 띄고 알칼리는 -전기를 띠니, 양자의 결합은 마치 전기적 힘에 의한 결합처럼 보인다. 이를 일반화하면 모든 화학적 결합은 전기력에 의한 결합이라고 볼 수 있게 된다.

베르질리우스는 이런 전기적 힘은 물질의 질량과는 무관한 것이며, 따라서 화학적 결합에서 일어나는 외면적 결합을 설명하는 가능성이 생겨난다. 더구나 그는 이 화학적 결합이 “다수간의 거리에서 작용하는 것이며 결합 직전의 견인과 결합을 통해 발생하는 연소의 현상을 잘 설명한다”(논리학 재판, GW21, S. 360)고 본다.

그러나 알다시피 화학적 결합에서 전자가 매개 역할을 하지만, 그 결합이 전자 공유에 의한 것이더라도 그 힘이 전기력에 의한 것은 아니다. 전자가 궤도를 이탈하거나 다른 궤도로 넘어가는 것에는 다양한 힘이 작용한다. 어떤 에너지라도 전자를 원자로부터 이탈해서 다른 원자의 궤도로 옮겨가게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전기의 힘도 작용할 수 있지만, 자주 화학적 반응에서 열을 가하거나 빛을 비추어서, 그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헤겔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처럼 화학적 결합으로서 전자 공유를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전기적 힘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알았는데, 그는 이를 여러 가지 논증을 이용해서 설명한다. 이제 그가 제시한 논증을 열거해 보자.

① 전기적인 결합력은 중화되면 사라지는데 화학적 결합은 지속한다. 그것은 결합 후에도 지속적으로 결합하는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하니, 이는 더는 전기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② 전기가 결합의 원인이더라도, 화학적 작용은 결합에 의거하는 것이다. 화학은 물질의 결합 때문에 변화하는 성질의 차이를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그러므로 전기력 외에 다른 결합을 일으키는 원인(열에너지나 빛 에너지, 심지어 운동 에너지 등)이 있을 수 있다.

③ 전기는 물체의 외면적 결합(일종의 혼합)을 이루지만, 화학은 질적 변화를 다루는데 그 질적 변화는 외면적 결합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질적 변화가 일어나려면 내적 연관성이 출현해야 한다는 것이 헤겔의 전제다.

④ 실험적으로 전기력에서는 같은 전기를 지닌 물질이 결합하는 경우가 대립하는 전기를 지닌 물질의 결합보다 더 강한 경우가 많다. 헤겔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황과 산소의 결합이 산소와 구리의 결합보다 더 강한 예를 들고 있다.

5)

이상 설명했듯이 화학적 결합은 여러 힘으로 일어날 수 있다. 전기나 열, 운동 에너지, 빛 등도 화학적 결합을 일으킨다. 이런 결합을 통해 물질의 상호 침투가 일어나게 되며 그 결과 물질에서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헤겔은 라브와지에, 리터, 피셔 등이 원자량이 보존되고, 물질의 결합에서 일정 비율의 법칙이 있다는 주장은 올바른 경험 과학의 길이라 한다. 그런데 베르질리우스가 이를 원자론적 철학과 결합하고 다시 전기력을 결합 원인으로 끌어들인 것은 입자론적 철학에 사로잡힌 결과로 주장한다.

“올바른 이상에 이르는 실험적 길이 그런 비율에 그리고 리터 이래로 전면적으로 획득된 확장에 있었다면 그런 짓[베르질리우스의 전기화]을 통해서 이 위대한 발견이 경험의 길 밖에 놓여 있는 소위 입자론의 송가와 뒤섞이는 일이 그 자체로 더 확인된다. 그 출발점에서 경험의 원리를 내던지는 것만이 동기가 되어서 이전에 리터가 특별하게 시작한 착상을 받아들여서 전기적 양의 물체와 전기적 음의 물체의 확고한 질서를 제시해서 화학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가정하게 되었다.”(논리학 재판, GW21, S. 361)

헤겔 형이상학 산책62-선택적 친화성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62-선택적 친화성

1)

앞의 글에서 척도 관계[또는 비례]를 다루었다. 그 대표적 예가 곧 음조다. 도미솔, 레파라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외운 음조 즉 장조와 단조다. 도레미파… 각 음이 이미 하나의 척도 즉 두 정량의 비율이다. 이런 척도들 가운데 어떤 특정한 관계가 이루어지니, 그것이 곧 장조와 단조다. 헤겔은 이를 척도 관계 또는 비례라고 한다.

척도 관계에서 음조와 구별되는 새로운 관계가 출현한다. 이제 예를 들어 화학적 결합을 보자. 예를 들어 산[H+]와 알칼리[OH-]은 서로 결합하며 물[H₂O]이 된다. 이 결합은 알다시피 전자 공유에 따른 결합이다. 수소와 산소는 그와 동시에 원자가를 지닌다. 그런 원자가는 결합에서는 무관하다.

산소와 수소의 화학적 결합에서 산소와 수소는 원자가에서 일정한 척도를 지닌다. 산소가 16이라면 수소는 1이다. 이제 원자가에서 두 척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성립하는데, 물론 이 관계는 전자를 매개로 하는 관계다. 이 관계는 앞에서 말한 음조의 관계와 다른 특징을 지닌다.

2)

예를 들어 장조 즉 도미솔의 관계에서 그 관계는 다만 외적인 관계다. 그것은 그저 동일한 주파수의 배음 관계일 뿐이다. 관계하는 음들은 그 고유성을 잃지 않으며, 다만 같은 주파수의 음이 도미솔 사이에서 배가 된 채로 반복된다는 것 때문에 조화로운 관계로 나타난다.

그러나 화학적 결합은 다르다. 일단 여기서는 이중적 관계가 출현한다. 수소와 산소의 결합에서 그 원자가는 단순한 더하기로 끝난다. 물의 원자가는 결합한 수소와 산소의 무게의 단순한 합산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두 물체는 자신의 척도인 무게의 고유성을 잃지 않고 보존된다.

그러나 결합한 물에서 산과 알칼리의 전자 값은 서로 상쇄되어 사라진다. 그것은 양자가 서로 전자들을 공유하면서 자기에게 부족한 전자를 상대방의 전자를 통해 채우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공유를 통해 두 결합하는 물체는 자신의 전자 값(즉 이온 상태)을 잃어버리고 중화된다.

산과 알칼리와 같은 결합을 이제 일반화해서 화학적 결합으로 나가보자. 화학적 결합 역시 전자가 공유됨으로써 일어난다. 이런 결합은 일정한 비율로 이루어진다. 수소와 산소의 결합은 2:1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반면 황과 산소의 결합은 1:2의 관계다.

더구나 이런 관계는 단순한 비율 이상으로 배타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수소는 산소와 결합하지만, 황과 결합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말해 이런 화학적 결합은 일정한 배타성을 지닌다. 어떤 것끼리는 결합하지만, 다른 것끼리는 결합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화학적 결합은 배타적인 통일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 이런 배타적 통일은 물체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물체의 다른 측면 즉 원자가의 측면에서 두 물체의 결합은 없다. 그것은 다만 공존할 뿐이다. 이런 물체에서 일어나는 배타적 통일의 관계가 헤겔이 말하는 선택적 친화성의 관계다. 그러나 선택적 친화성의 결합에서 결합은 물체의 전면에 걸쳐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결합은 물체의 원자와는 무관하게 다만 전자의 측면에서만 일어나는 부분적인 결합이다.

3)

우리는 오늘은 구체적으로 산과 알칼리의 결합, 일반화해서 화학적 결합이 일어나는 이유를 위와 같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것은 원자의 구조가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 관계는 전자 공유를 통해 일어난다.

각 원자는 핵 주변에 전자 궤도를 가지고 있고 각 궤도는 일정한 수의 전자가 채우고 있다. 각 궤도에 들어가는 전자의 수는 일정한 데 특히 마지막 궤도에서 전자는 넘치거나 부족한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다른 원자 사이에 서로 전자를 공유하면서 안정된 궤도를 형성하게 된다. 이것이 화학적 결합이다.

그러나 헤겔 당시에는 아직 이런 원자 구조에 대한 이해는 없었다. 다만 일정한 화학적 결합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그 화학적 결합이 전자 공유에 의한 것이라고는 알지 못했다.

당시 과학의 지식에서 원자 구조니, 전자 공유니 하는 개념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원소들이 서로 배타적인 통일을 이룬다는 사실 그리고 그 결합에는 일정한 비중의 비율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려졌다. 헤겔은 이 절의 주에서 이 비율 법칙에 관한 리히터와 베르톨레의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헤겔은 이런 화학적 결합을 선택적 친화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 설명에서 헤겔은 비중을 가지고 설명하는데 비중은 곧 무게와 부피의 비례다. 각 사물은 이런 비중에서 고유한 척도를 지닌다. 이제 두 사물이 결합하게 되면 이 결합 관계를 헤겔은 이렇게 설명한다.

비중을 무게A/부피B로 표현하자. 하나의 물체(예를 들어 수소)가 지닌 비중을 a/b 라고 하고 다른 물체(예를 들어 산소)가 지닌 비중을 c/d 라고 한다면, 결합한 물체의 비중은 a+c /b+d 가 된다. 실험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지만, 이때 결합한(물)에서 분자를 이루는 두 물체의 무게는 결합 전과 결합 후가 동일하다. 그러나 비중은 서로 달라진다. 이런 비중의 차이는 곧 부피의 차이 때문에 일어난 결과다.

4)

이런 사실을 헤겔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비중에서 무게와 같은 것을 내재 존재[Insichsein]라고 한다. 타자와 결합 속에서도 자기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내재 존재는 플라톤적 이데아 개념에 가깝다. 물체의 무게가 물체의 고유성이라는 생각은 그리스 원자론자로부터 유래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받아들인 견해다.

“그러나 다만 무게는 결합 이전에 출현했던 무게의 합으로서 발견된다. 무게에 더해지는 측면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측면으로서 고정된 현존으로 되며 이를 통해 지속하는 직접적 정량을 지니게 되는 측면이다.”(논리학 재판, GW21, 348)

반면 부피와 같은 것은 외면적인 것이자 관념성[Ideelle] 즉 타자와 결합 속에서 변화하는 것이다.

“두 특정화된 상이한 물질의 혼합에 따라서 더해진 부피에서 변화가 -통상적으로는 축소인데- 제시된다는 사실은 감각적 지각에서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다. 공간 자체는 병존하는 등장하는 물질의 존립을 이룬다. 그러나 대자 존재가 자체 내에 포함하는 부정성에 대립하여 존립하는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 것 즉 가변적인 것이다. 공간은 이런 방식으로 진정한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서 관념적인 것으로서 정립된다.” (논리학 재판, GW21, 348)

여기서 헤겔은 일반적 공간과 비중 속에 있는 공간[부피]을 구분한다. 전자는 병존하는 공간이며 서로 외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이 경우 두 공간을 합하면, 단순히 더해진 공간만이 나온다. 그러나 후자는 결합하면 가변적으로 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이를 관념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비중의 부피는 공간인데 이처럼 가변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여기서 부피는 “대자 존재가 포함하는 부정성에 지배되는[gegen]” 것이기 때문이다. 즉 두 물체의 부피가 대자 존재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대자 존재라는 것은 통일하는 힘이다.

헤겔은 비록 아직 이 부피의 변화가 전자 공유의 결과인 것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를 상호 침투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려 한다. 상호 침투란 곧 두 물체의 결합에서 각자의 한 부분이 서로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상호 침투를 통해 두 물체는 서로 분리될 수 없이 결합하게 된다. 이런 두 물체를 결합하는 관계이므로 이 관계를 헤겔은 대자 존재라고 말한 것이다.

그는 화학적 결합의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이를 대자 존재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 즉 이 결합이 ① 사물의 내재 존재[사물의 이데아]와는 무관한 외면적 측면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 ② 또한 상호 침투의 결과라는 것만은 헤겔이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고 보겠다.

4)

헤겔은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두 물체 사이의 관계에 상호 침투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이를 오늘날 전자 공유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상호 침투가 원자 핵이 아닌 전자 사이의 공유라는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더구나 이런 전자 공유를 일으키는 힘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화학적 결합 가운데 산과 알칼리는 +전기와 -전기 힘을 보여주니, 이 결합은 전기적 힘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헤겔 당시에 스웨덴 화학자 베르질리우스가 이로부터 모든 화학적 결합은 전기적 결합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러나 헤겔은 여기에 대해 의문을 표명하며, 이 관계는 설명하기 위해 ‘선택적 친화성’의 개념을 끌어들인다.

선택적 친화성의 개념은 과학적 개념이 아니다. 이는 괴테가 문학적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그는 1809년 선택적 친화성이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이 소설에서 결혼한 부부가 서로의 친구를 초대함으로써 서로 교차적으로 재결합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그 재결합은 부부였던 남녀가 헤어지고, 이성적이지만 부드러운 여성과 이성적이며 힘이 있는 남자가 서로 결합하고 감성적이지만 열정적 남자와 감성적이지만 우아한 여성이 서로 결합하는 것이다. 그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이런 자연적으로 출현하는 선택적 친화의 관계가 있어서 아무리 제도적 강제를 통해서도 이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소설을 통해 주장했다.

우리는 앞에서 두 대립하는 성질[Eigenschaft]의 상호 작용을 통해 양[Quantiaet]이 생성되는 것을 보았다. 두 정량의 관계를 통해 비례 관계인 척도[Mass]가 출현한다. 이제 두 척도의 결합 관계를 통해 상호 침투가 작용하게 된다. 이 상호 침투를 통해 일어나는 결합 관계가 선택적 친화성의 관계다.

질에서 양으로 이행할 때 두 성질의 통일적 관계를 대자 존재라고 했다. 이제 두 척도 사이의 통일적 결합 관계에서 대자 존재가 다시 출현한다. 물론 아직은 척도의 일면에서 일어나는 통일이며 부분적인 대자 존재가 되겠다. 이것이 선택적 친화성이다. 그러나 마침내 척도의 전면에서 이런 대자 존재적인 통일이 일어나게 되면 본질로 이행하게 된다.

5)

앞에서 헤겔은 화학적인 결합을 두 척도 사이의 선택적 친화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았다. 이 선택적 친화성의 개념을 통해 두 물체는 일정한 비율로 결합하게 된다.

헤겔은 이런 계열이 물체의 한 측면이 대자적인 존재에 의해 결합하는 것이라고 본다. 음정에서 장조와 단조는 동일한 것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 반해서 화학적 결합은 상호 침투에 의한 결합이다.

헤겔은 이런 배타적인 통일의 관계를 중화[neutralisieren]라고 한다. 이 중화는 한 측면에서는 단순한 혼합에 지나지 않는 것이 다른 측면에서는 대자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말한다. 앞에서 비중을 지닌 두 물체의 화학적 결합에서 무게는 단순한 혼합이었으나 부피는 대자적인 통일이었다.

이런 중화하는 배타적 통일에 의해 척도의 계열이 성립한다. 예를 들어 산소는 수소와는 2:1의 관계로 결합하고 황과는 1:2의 관계로 결합한다. 수소는 탄소와 1: 3의 관계로 결합한다. 이런 결합 관계는 수소를 단위로 본다면, 산소와 탄소가 각기 1/2, 1/3이라는 비율로 관계한다. 이제 산소를 단위로 본다면, 2개의 수소와 1/2의 황과 결합한다. 이런 비율을 헤겔은 비례 수라고 하며 이런 비례 수는 일련의 계열을 형성한다. 이것이 곧 척도 계열이다.

6)

이런 척도 계열은 특정한 계열이며, 다른 계열에 대해 고유성을 지닌다. 척도 계열의 고유성을 규정하는 것은 곧 이 척도 계열이 타자 즉 중화를 위해 결합하는 항과의 관계를 통한 것이다. 즉 이 중립화의 관계가 전개된 것이 이 척도 계열이다. 그런 점에서 헤겔은 “비례 수 계열의 전체 속에 척도의 대자적으로 규정된 존재가 놓여 있다”라고 한다.

이제 척도 계열에서 항들의 관계를 보자. 앞에서 내포량을 규정할 때 그 정도는 비교되는 양을 지닌 다른 타자와 비교되면서 성립했다. 그것은 그저 크고 작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크고 작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동일한 양적인 측면에서 크고 작은 것이다.

반면 척도 계열에서 항들의 관계는 내포량의 관계와 유사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다르다. 내포량이 그 계열에 속하는 항들 사이의 비교에서 나온 것이라면, 척도 계열에서는 자기 계열과 중화하는 계열에 있는 어떤 것과 관계하여 규정된다. 예를 들어 산소와 수소, 산소와 황의 관계에서 척도 계열을 이루는 각 항의 비례 수는 산소를 단위로 해서 수소와 황은 1/2: 2의 관계를 지닌다.

그런데 이런 척도 계열에서 각 항은 서로 독립적이다. 여기서 수소의 비례 지수가 1/2이고 황의 지수가 2라고 하더라도 황이 수소에 비해 더 크거나 작다는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비례 수의 크고 작음은 다만 비교되는 단위를 통해서 규정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비례 수는 다만 중화의 특정한 규정성을 의미할 뿐이다. 이 점은 수소와 황이 산소를 단위로 하지 않고 다른 원소를 단위로 한다면, 그 비율 즉 비례 지수가 달라진다는 것을 통해 잘 드러난다.

“그러나 우리가 중화라고 불렀던 결합은 내포성의 형식일 뿐만 아니라 그 지수는 본질적으로 척도 규정이며 이를 통해 배타적이다. 수들은 이런 배타적 태도의 측면에서 그 연속성과 상호 융통 가능성을 상실했다. 부정적 성격을 유지하는 것은 크다거나 작다는 것인데, 하나ㄱ의 지수가 다른 지수에 대해갖는 우월성은 이런 크기 규정성에서는 머무르지 않는다.”(논리학 재판, GW21, 353)

7)

양적인 것은 자기를 벗어나 타자 속으로 연속하는 것이다. 이는 자기 부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척도 계열에서 등장하는 양적인 것에서는 이런 이행이 사라진다. 각 항은 다른 항으로 넘어가지 않으며, 자기 고립적인 것이니, 이런 측면에서 각 항은 다른 항에 대한 부정의 부정이다.

각 항은 양적인 것이면서도 이제 양성을 벗어나 질적인 차이를 가지게 된다. 헤겔 논리학은 질에서 시작하여 양적인 것으로 이행했다. 이제 양적인 것은 오랜 여정을 끝내고 척도 계열에 이르러 다시 질적인 것으로 이행하게 됐다.

“이 관계 속에 두 가지 특정화하는 것이 어떤 것 즉 제삼자인 지수에 대해 자기를 특정화하는데, 나아가서 이 관계가 함축하는 것은 일자가 그 속에서 타자로 이행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부정 일반일 뿐만 아니라 양자가 그 속에서 부정적으로 정립된다는 것이며 각자가 그 속에서 서로 무차별하므로 그 부정은 다시 부정된다는 것이다.”(논리학 재판, GW21, 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