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강해 ㊺
1-3 통치자와 수호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412b-427c)
1-3-1 통치자들과 수호자들의 선발과 자격(412b-414b) – (2), 건국신화(414c-415d)
[412d-414b]
* 통치자들은 연장자이며 수호자들 중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어야 하고 그에 따라 슬기롭고 유능하며 나라에 유익한 것에 평생 열성을 다해야 한다. 그러한 사람들을 통치자들로 선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들이 ‘전 연령대에 걸쳐’ἐν ἁπάσαις ταῖς ἡλικίαις 그러한 신념δόγμα을 수호하는지φυλακικοί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홀려서든 강요를 받아서든 나라에 가장 좋은 것을 행해야 한다는 소신δόξα을 잊거나ἐπιλανθάνομα 내팽개치는ἐκβάλλουσιν 일이 없는지도 지켜보아야 한다.(412e) 소신이 염두διανοία에서 사라지는 경우는 자발적인ἑκούσιος 경우와 마지못한ἀεκούσιος 경우로 나뉜다. 그런데 잘못된 소신은 나쁜 것이어서 자발적으로 버리겠지만ἐξίημι, 진실한 소신은 좋은ἀγαθός 것이고 좋은 것은 누구나 빼앗기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뭔가에 홀리거나 마지못해ἀκουσίως 버리게 된다.(413a)
* 소크라테스는 이처럼 진실한 소신을 앗기는 경우를 크게 도둑맞는κλαπέντες 경우, 홀리는γοητευθέντες 경우, 강제에 의한βιασθέντες 경우로 나누어 설명한다. 도둑을 맞는 경우는 말λόγος로 설득되어 소신이 바뀌는 경우와 시간이 흘러 자신도 모르게 잊어버리는 경우이다. 그리고 강제에 의한 경우는 고통ὀδύνη이나 슬픔ἀλγηδών 때문에 소신을 고쳐 갖게 되는 경우이다. 그리고 홀리는 경우는 쾌락ἡδονή으로 넋을 잃거나κηληθέντες 공포φόβος로 뭔가에 두려움을 느껴δείσαντες 소신을 고쳐 갖게 되는 경우이다.(413b-c)
* 그러므로 어릴 적부터 이런 경우에 수호자들이 빠져드는지 아닌지를 여러 가지 시험ἅμιλλα을 통해 잘 살펴본 후 나라에 가장 좋은 것을 행하려는 신념δόγμα을 늘 명심하여 좀처럼 속지 않고 어떤 공포나 고통에도 휘둘리지 않는 사람을 가장 훌륭한 수호자로 뽑아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내놓은 시험은 이러하다. 우선 수호자가 가져야 할 신념을 가장 잘 잊어버리게 되거나 가장 잘 속게 될 그런 일들 하도록 지정하여 시험한다. 또한, 갖가지 힘든 일과 고통 그리고 경합ἀγών을 그들에게 부과하여 시험한다. 그리고 세 번째로 홀리는 경우에 대한 시험으로 공포의 대상들 속에 몰아넣거나 환락 속에 옮겨 놓아 지켜본다. 그리고 이러한 시험들을 황금을 불 속에서 시험하는 것보다 더 많이 치르게 한다. 그리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며 모든 상황에서 자기가 배운 시가μουσικῆ의 훌륭한 수호자이자 장단εὔρυθμος과 화음εὐάρμοστον이 잘 맞는 사람이야말로 자기 자신과 나라에 가장 유용한χρησιμώτατος 사람이다.(413e)
* 이처럼 ‘어려서나 젊어서나 어른이 되어서나 그때마다 시험을 받아 입증된 사람을’τὸν ἀεὶ ἔν τε παισὶ καὶ νεανίσκοις καὶ ἐν ἀνδράσι βασανιζόμενον나라의 통치자요 수호자로 임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영예τιμή는 물론 가장 큰 특전μέγιστα γέρα을 누려야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배제해야 한다.(413e-414a)
* 소크라테스는 이상과 같이 통치자들과 수호자들의 선발ἐκλογή과 임명κατάστασις에 관한 사항을 마무리하면서 그것을 ‘자세하지는 않은 대략의 설명’ὡς ἐν τύπῳ, μὴ δι᾽ ἀκριβείας, εἰρῆσθαι이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임명된 통치자를 수호자 가운데 진정으로 ‘완벽한 수호자’φύλακας παντελεῖς로 따로 구분하고 지금까지 수호자로 불렀던 그 나머지 수호자들을 그 통치자들의 신념을 지지하는 보조자ἐπίκουροι요 조력자βοηθοι로 부른다. (413e-41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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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신념δόγμα은 뭔가 분석하거나 따지기 이전에 태도를 결정할 정도로 이미 확고하게 원칙으로 자리 잡은 생각들이고 소신δόξα은 그러한 신념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고한 믿음 또는 그 신념에 부합하는 좀 더 구체적인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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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는 논의 계획에 따라 정의로운 나라의 기본구조를 드러내기 위해 여기서 처음으로 최상위 계층으로서 통치자 계층의 등장을 알림과 동시에 그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과 자격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 정도로 훌륭한 통치자들을 선발하고 임명하기 위해서 치러야 할 혹독한 시험 과정이 언급된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주목해야 할 말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통치자들을 선발하기 위한 과정이 ‘전 연령대에 걸쳐’(413a), ‘어려서나 젊어서나 어른이 되어서나 그때마다’(413e)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말은 어려서부터 시가와 체육 교육을 통해 수호자들의 양성을 위한 기초 교육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통치자들을 선발하기까지 젊은 시절은 물론 어른이 되어서도 아주 오랜 기간 수호자들 사이에서 단계 단계마다 선발 과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만큼 통치자들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통치자들의 선발과 임명 과정은 그 중대성만큼이나 자세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정작 여기서 그에 관한 내용은 의외로 간략하다. 게다가 소크라테스 스스로도 통치자의 선발과 임명에 관한 자신의 언급들을 ‘자세하지는 않은 대략의 설명’(414a)이라고 토까지 달고 있다. 이것은 이 부분이 일단 논의 계획상 통치자들을 최상층으로 하는 정의로운 나라의 기본구조를 드러내는데 우선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통치자들의 선발과 임명 과정에 대한 설명이 장차 자세하게 다루어질 것임을 암시 또는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제7권에 가서 통치자가 되기 위한 수호자들의 철학 교육과정을 논하면서 그 선발 단계를 구체적인 연령까지 언급하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 그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해당 부분에서 살피겠지만 참고로 그 개요만 미리 간단히 언급해두면 다음과 같다. 일단 수호자들의 양성을 위한 청소년기의 시가 및 체육 교육이 18세까지 필수적으로 이루어진 다음에 20세가 되면 그들 가운데 시험을 거쳐 수호자들이 선발된다.(537b-c) 이들은 향후 10년 동안 변증술을 위한 예비 교육을 받고 30세가 되면 다시 선발 과정을 거쳐 보다 훌륭한 수호자들이 임명된다.(537d) 그리고 그들은 35세까지 5년 동안 집중적으로 철학 교육을 받고 그 후 15년 동안 철학 연구는 물론 전쟁의 지휘 및 관직도 맡아가며 통치자가 되기 위한 실무를 수행한다.(540a) 그리고 마침내 연장자로서 50세가 되었을 때 두루 모든 면에서 가장 훌륭한 자들이 통치자들로 선발된다.(540b) 누가 통치자들을 선발하는지는 여전히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최소한 ‘최선자들의 정체’를 구성하는 ‘최선자들’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 선발되는지 잘 드러나 있다.
* 소크라테스는 이처럼 통치자들과 수호자들의 선발과 임명에 관해 간략히 언급한 후에 통치자들을 ‘완벽한 수호자들’이라고 언급하는 방식으로 통치자 계층의 등장을 알린다. 그리고 이러한 지난한 과정을 통해 통치자의 선발과 임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함께 수호자들로 불리었던 젊은이들은 이제부터 그 통치자들의 신념을 위한 보조자들이자 조력자들로 불러 마땅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수호자 계층은 비로소 통치자 계층과 조력자 계층 즉 군인 계층으로 분화되고 나라 전체의 기본구조가 통치자 계층, 군인 계층, 생산자 계층으로 이루어졌음이 선언된다.
* 요컨대 이 부분은 정의로운 나라를 세부적으로 다루기 이전에 그 나라의 기본구조가 통치자 계층을 비롯해 세 계층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히고 그러한 계층들에 상응하는 덕목들과 특징들을 예비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총론적 서론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 쓰이는 말들과 표현들 그리고 예시된 상황들은 앞으로 개념적으로 드러나게 될 4개의 덕목과 각기 내용상 서로 조응을 이룬다. 소크라테스가 설명하고 있는 그러한 위험들과 그것의 극복을 위한 시험들은 아래와 같다. 우선 소신을 앗기는 위험한 경우들로 크게 1. 도둑맞는 경우, 2. 강제에 의한 경우, 3. 홀리는 경우로 나누고, 내용상 그 경우들은 순서에 따라 각기 1) 말로 설득되어 소신이 바뀌거나 시간이 흘러 잊어버리는 경우, 2) 고통이나 슬픔 때문에 소신을 바꾸는 경우 3) 쾌락이나 공포 때문에 소신을 고쳐 갖게 되는 경우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시험도 이에 상응하여 아래와 같이 제시된다. 1의 경우는 신념을 가장 잘 잊게 하거나 속게 만드는 시험을 부과하고 2의 경우는 갖가지 힘든 일과 고통 그리고 경합을 부과한다. 3의 경우는 공포나 환락의 상황을 부과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러한 부여된 상황을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이겨낸 사람들을 나라에 가장 유용한 통치자와 수호자로 임명하고 살아서나 죽어서나 영예와 특전을 부여한다.
*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예시하고 있는 이와 같은 설명들 가운데 1과 1)은 나중에 명시적으로 드러날 영혼의 각 부분 중 주로 이성 부분과 관련된 상황들이고 2와 2)는 기개 부분, 3과 3)은 욕구 부분과 관련된 상황들임을 어렵지 않게 직감할 수 있다. 그리고 나중 밝혀지겠지만 이러한 영혼의 각 부분은 그 역할과 기능이 고유하기는 하지만 다른 부분들과 상호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최종적인 결과로서 그 개인 전체 영혼의 상태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 유기적인 상호작용 전체를 통제하고 조정하는 주체는 영혼의 각 부분 가운데 이성 부분이다.
* 이 부분에서 고통과 슬픔, 공포와 쾌락 등 인간의 희로애락과 관련한 감정 내지는 심리 상태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들 역시 모두 영혼 각 부분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영혼의 상태이다. 즉 신체적으로건 정신적으로건 주어진 상황 및 사태에 대한 영혼 각 부분의 대응과 그 대응들의 상호 유기적인 작용의 결과들이다. 요컨대 인간의 제반 심리 상태는 몸에서 생긴 감각적 사태들에 대한 영혼 각 부분의 유기적인 대응 및 관계 양상에 따라 다양하게 드러나는 영혼 전체의 상태들이다. 이를테면 신체적 고통을 겪거나 쾌락에 빠지는 것은 일차로 몸에서 생긴 감각적 자극에 대해 영혼의 욕구 부분이 기피 또는 애착 욕구를 증대시킴으로써 영혼 전체의 부조화가 야기된 상태이다. 그러나 그 부조화는 이성 부분에 의해 즉시 통제되고 조화의 회복은 영혼 전체의 조화를 관장하는 이성 부분의 힘으로 결정된다. 이성 부분의 통제력이 약해 조화를 회복하지 못하면 상태는 악화되고 통제력을 발휘하면 그 발휘하는 힘의 크기만큼 최선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몸의 건강 상태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영혼의 이성 부분이 아무리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도 몸을 다치거나 쇠약하면 그만큼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
* 우리는 흔히 육체적으로 쾌락에 빠지거나 도덕적으로 나쁜 일을 저지르는 것을 영혼의 세 부분 가운데 욕구 부분 탓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욕구 부분의 과잉이나 결핍 또는, 좋거나 나쁜 상태는 조화를 구현하는데 일정 부분 영향은 줄 수 있을 테지만 궁극적으로 행위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영혼 전체의 조화를 관장하는 영혼의 이성 부분이다. 영혼의 이성 부분이 병들어 있으면 욕구 부분의 과잉이나 결핍을 조정할 수 없거나 아예 반대로 영악한 도구적 이성이 되어 악화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성 부분이 건강하면 기개 부분의 힘도 빌어 욕구 부분이 과잉 또는 결핍 상태에 있을지라도 그것을 조정하여 부조화 상태를 극복할 수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사람은 오감의 기능과 식욕과 성욕 등 본능적 욕구를 가진다. 그러한 기능과 욕구 자체는 도덕과 무관하다. 문제는 감각과 본능에 조응하여 발생하는 그 다양한 욕구들을 이성 부분이 얼마나 상황과 적도에 맞게 조정 하느냐 못 하느냐이다. 당연히 조정의 목표는 다른 영혼의 부분들과의 조화이고 그 조화의 방식과 수준은 천성과 교육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조화의 수준에 따라 도덕적인 차이도 드러날 것이다. 결국, 인간의 사고나 행동 양태는 영혼의 상태 특히 이성 부분이 어떤 상태에서 어떤 방식과 어떤 수준으로 조화를 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렇게 보면 “욕망하는 대로 살아라!”라는 요즈음 욕망론자들의 권고조차 플라톤에 따르면 영혼의 욕구 부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 부분이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이성은 오히려 오로지 욕구 부분의 크기만을 증대시키는 고도화된 도구적 계산 능력, 즉 병든 영혼의 다른 이름이다. 어떠한 입장이건 그만큼 이성이 중요한 것이다. 다만 플라톤에게 ‘가장 훌륭한 삶’이란 시가 교육과 체육 교육 간의 조화를 통해 몸과 영혼 모두 특히 영혼의 이성 부분의 건강을 꾀하고 철학 교육을 통해 그 이성 부분의 힘을 극대화하여 최상의 가치로서 ‘좋음 자체’를 인식하고 그 상태를 흔들림 없이 보전하는 것이다.
* 우리는 종종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라는 말의 의미를 곡해하여 철학자들이란 영혼만을 위해 아예 차라리 자살할 것을 권하는 자들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물론 영혼은 몸과 떨어져도 살아 있고 그만큼 순수하다고 플라톤은 말한다. 그러나 철학이 현실에서 추구하는 ‘좋은 삶’이란 영혼은 물론 몸의 건강까지 포함하는 것이므로 살아 있는 몸의 존재를 필수적 상수로 이미 전제하고 있다. 플라톤 철학은 현실 도피론이 아니라, 말 그대로 현실 구제론이자 생존의 존재론이다. 이 점에서도 플라톤이 몸의 보전 즉 생존을 경시한다고 것은 전혀 진실이 아니다. 신체적 감각을 비판하는 경우도 신체에 대한 폄하가 아니라 감각이 이성과 비교하여 진리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이다.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곳 현실에서 참된 삶은 말 그대로 몸이 없으면 성립 자체가 되지 않는다. 소소하게는 일상에서 먹는 즐거움은 물론 영혼의 조화와 관련된 좋은 음악을 듣거나 좋은 가르침이 담긴 말을 듣는 것도 일단 몸의 감각을 통해서이다. 그만큼 몸은 영혼과 더불어 삶을 담보하는 하나의 축으로 매우 소중한 것이다. 게다가 나라의 수호자들이 시가 교육에만 치우쳐 체육 교육을 게을리하면 몸의 상태가 나빠지고 몸이 나빠지면 결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없다. 몸을 다치거나 상하면 그것을 회복하려는 영혼도 힘들고 그만큼 생존도 힘들다. 가장 나쁜 것은 영혼의 이성 부분이 병들어서 영혼 내부의 관계는 물론 몸의 건강도 악화시켜 개인은 물론 나라까지 불행과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는 것이다.
* 재판에서 선고 형량으로 주어지는 몸에 대한 고통은 일반적인 기준에 따라 정해지겠지만 그 고통의 크기는 당사자가 영혼과의 관계를 어떻게 보전하고 있냐에 따라 전혀 다를 수 있다. 정의로운 사람이 핍박으로 겪는 고통은 이성이 잘 감내하여 영혼의 조화를 이루어 고통을 이겨낼 수도 있지만, 그 핍박을 못 견디는 사람은 그만큼 영혼의 관계가 부조화를 이루어 고통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의 크기도 마찬가지이다. 요컨대 이 땅에서 철학 함의 목표는 영혼들의 조화를 통해 영혼과 몸의 건강을 함께 보전하는 것이지 몸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은 이미 영혼이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이다. 물론 불가피하게 스스로 몸의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는 고통을 이겨내기 힘들어 차라리 몸의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이거나 또는 몸과 영혼 하나만의 선택이 강요되었을 때 불가피하게 몸의 죽음을 선택하게 된 경우일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몸을 경시하는 사람으로 보기는 힘들다. 전자는 살고 싶지만 더는 살기가 힘들어 죽는 것이고 후자는 그야말로 영혼의 저질화 내지 훼손(영혼은 죽지 않는다), 그리고 몸의 죽음 중 선택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몸의 죽음을 선택한 경우이다. 이른바 철학의 연습으로 인식될 만한 죽음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그 불가피한 선택 상황에서 지성의 힘으로 아테네인들의 무지를 일깨우기 위해 스스로 감행한 죽음의 경우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삶의 마지막에 감행된 좋은 삶의 한 방식이 되는 것이다.
* 아무려나 몸과 영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일들에 대한 우리의 위와 같은 해석들은 기본적으로 몸 내지 신체 기관들을 영혼이 사용하는 도구로 파악하고 있는 <국가>와 <알키비아데스 I> 등에 토대를 둔 것이지만 <파이돈>, <파이드로스> 등을 끌어들여 함께 비교하면 일정 부분 이견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최소한 <국가>가 플라톤의 영혼론의 핵심이자 가장 발전적인 내용을 구성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이견이 없다. 이와 관련한 내용들은 나중 영혼의 세 부분을 본격적으로 다룰 때 플라톤의 심신이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좀 더 자세하게 살피기로 한다.
<414b-415d>
* 통치자들과 수호자들의 선발과 임명에 관한 언급에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이상 국가 구성원들을 설득하여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고상한γενναῖος 거짓말 즉 건국 신화에 관한 언급을 아주 조심스럽게 주저하며 꺼내어 든다. 건국 신화는 앞선 시대에 여러 사례가 있었긴 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그런 일들이 있지도 않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아 사람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414b-c)
* 그러자 글라우콘은 두려워 말고 말해주기를 청하고 소크라테스는 내가 무슨 배짱으로 어떤 표현을 써서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아래와 같이 이른바 건국 신화로 일컬어지는 고상한 거짓말을 옛날 설화μῦθος를 빌어 풀어낸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하다.(414d – 415d) “당신들이 수호자들이 되기 위해 실제 겪은 앞에서의 양육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 땅γῆ속에서 형성되고 양육되었던 일들에 비하면 꿈과 같은 것에 불과한 것이고 이미 땅인 어머니가 땅속에서 그들 자신은 물론 무기와 장비까지 다 만들어 당신들을 땅 위로 올려보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어머니와 유모에 대하듯이 국토χώρα를 수호하고 다른 시민들 역시 땅에서 태어난 형제들로 생각해야 한다. 신ὁ θεὸς은 당신들 중에서 다스리기 충분한 사람들의 경우 황금χρυσός을 섞어 빚어냈고 반면에 보조자들은 은ἄργυρος을 그리고 농부와 다른 장인들은 철σίδηρος과 청동χαλκός을 섞어 빚어냈다. 그런데 당신들은 대개 자신과 닮은 자손들을 낳지만 때로는 황금으로 된 사람에게서 은으로 된 자손이 태어나고 은으로 된 사람으로부터 황금으로 된 자손이 태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신은 통치자들에게 가장 뛰어난 수호자가 될 자손을 염두에 두고 자손들의 영혼에 그중 무엇이 섞였는지를 열성적으로 지켜보라 명령했고 그에 따라 자손 중 청동이나 철이 섞여서 태어나면 그들의 자연적 성향에 적합한 만큼의 존중τιμή을 해줘서 장인들이나 농부들로 살게 하고 또한 장인이나 농부들에게서 금이나 은이 섞인 아이가 출생하면 그 역시 존중하여 수호자나 보조자로 상승시키라ἀνάξουσι 했다. 그리고 끝으로 철로 되거나 청동으로 된 수호자가 나라를 수호하게 되는 때에는 나라가 망하리라는 신탁이 있었다.”
* 이에 글라우콘은 후대 사람들은 몰라도 이런 이야기를 당대 사람들에게 설득하기란 어려울 것이라 말하고 소크라테스는 그의 말에 동의를 표한다. 소크라테스는 다만 이 이야기는 최소한 나라와 서로에게 관심을 쏟게κήδεσθαι 하는 데 좋을 것 같아 한 말이며 어쨌든 설득 여부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에 맡기겠다고 말한 후 다시 통치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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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는 정의로운 나라의 기본구조와 수호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들에 관한 사항을 개략적으로 언급한 후에 고상한 거짓말이라는 명분으로 일종의 건국 신화를 꺼내어 든다. 지금의 논의가 정의로운 나라를 수립하는 시작 단계에서 일종의 총론적 서론으로 펼쳐지는 것임을 고려하면 당대 그리스 나라들이 그래 왔듯이 나라를 수립하면서 건국 신화를 내건다는 것은 그리 어색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고상한 거짓말 역시 이미 앞에서(382c-d, 389b-c) 그 필요성이 제시된 만큼 새롭게 다시 문제 삼을 것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플라톤이 여기서 건국 신화를 꺼내어 든 것은 아래와 같은 배경 때문일 것이다. 즉, 새롭게 수립될 나라에서도 앞서 시가 교육 부분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나라 구성원들의 공동체에 대한 믿음과 유대를 위해 일종의 종교 교육이 필요하고 그러한 종교 교육의 출발점으로서 새로운 건국 신화가 요구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건국 신화는 아래와 같이 앞으로 전개될 분업적 공동체로서 정의로운 국가의 기본구조를 설화적인 방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우선 신화는 나라의 모든 계층이 같은 어머니 즉 땅의 자손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앞으로 펼쳐질 정의로운 나라에서 모두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사람들인 만큼 서로 하나같은 유대감과 충성심으로 하나의 나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신화는 신들이 사람들 각각에 황금, 은, 철이나 동을 섞어서 이 땅에 태어나게 했다고 언급한다. 이것 역시 앞으로 수립될 정의로운 나라가 천성에 따라 세 계층으로 구성되고 그들의 역할 또한 기본적으로 천성적인 차이들을 갖고 있음을 미리 강조해두려는 것이다. 동시에 신화는 때로는 황금으로 된 사람에게서 은으로 된 자손이, 은으로 된 사람으로부터 황금으로 된 자손이 태어나기도 한다고 언급한다. 게다가 그러한 경우 그들의 자연적 성향에 적합한 만큼의 존중을 해줘서 장인들이나 농부들로 살게 하거나 수호자나 보조자로 상승시켜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그리고 끝으로 신탁의 이름으로 철로 되거나 청동으로 된 수호자가 나라를 수호하게 되는 때에는 나라가 망하리라는 실로 엄중한 경고가 제시된다.
*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건국 신화가 그토록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앞에서 유익한 거짓말을 정당화할 때와 다르게 아주 주저하듯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하물며 무슨 배짱으로 어떤 표현을 써서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한다.(414d)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왜 이토록 주저하고 조심스러워하는 것일까? 필자가 짐작하는 그 배경과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앞에서 살핀 고상한 거짓말들의 사례들(382c)은 다 나름의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었고 옛날의 설화 경우에도 진실을 알지 못하는 탓에 허구를 가능한 진실과 같게 만드는 방식으로 그 유익함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382d) 2) 그러나 지금 말하려는 고상한 거짓말로서 건국 신화는 있지도 않고 있을 것 같지도 않은 내용을 담고 있는 데다 당장은 그 유익성도 증명할 수 없어 옛날 설화처럼 설득력이 있기 힘들다. 3) 그러나 옛날부터 페니키아를 비롯해(414c) 많은 나라에 건국 신화가 있는 데다가 아테네도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 설화를 바탕으로 시가 교육을 해 왔듯이(377d) 정의로운 나라에도 시가 교육의 기초가 될 만한 건국 설화가 필요하다. 4) 신화는 여전히 시민들에게 가장 친숙한 정보 전달 방식인 데다 건국 신화 또한 옛날 설화처럼 언젠가 후손들에게 유익한 허구로 받아들여 지는 날이 올 것이다.(415d) 5) 그리고 지금도 최소한 나라와 서로에게 더 많이 관심을 쏟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415d) 요컨대 건국 신화는 정의로운 나라의 수립 단계에서 나라의 구조와 정신의 요체를 밝힌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고 장차 시가 교육의 토대로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으나 당장은 옛날 설화들과 달리 사실 기술에 있어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을 담고 있어 소크라테스는 건국 신화를 내놓는 것에 그토록 주저하고 조심스러워하는 것이다.
* 그런데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주저와 조심스러움은 역설적으로 앞으로 보다 더 자세하고 많은 논변을 통해 고상한 거짓말로서 건국 신화의 진실성과 유익성을 보다 설득력 있게 뒷받침하겠다는 소크라테스의 의지와 계획을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문학적 암시일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가 지금은 세상 사람들 생각에 맡기겠다고 말하면서도(415d) 행간 곳곳에서 설득의 방도와 의지를 반복해서 묻거나 피력하고 있는 것도(414c, 414e, 415c) 그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나중 5권 이후 7권에 가서 이른바 격랑 속 파도κῦμα들로 불릴 정도의 수많은 난관을 마주하며 건국 신화의 내용은 물론 정의로운 나라의 정당성에 관한 보다 구체적이고도 자세한 논변들을 전개한다.
* 아무려나 이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건국 신화는 장차 자세한 설명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표피적으로만 보면 왕권신수설과 세습군주정을 뒷받침할 수도 있고 사회 신분이 공고화된 봉건사회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특히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태생적 또는 생물학적 차이를 그대로 사회적 차별로 연결하는 극단적인 보수주의의 고전적 발상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또 이러한 플라톤의 의도를 허구적 슬로건을 내세워 나치의 이념을 주입하려 했던 괴벨스의 프로퍼갠더와 연결해 플라톤을 혹세무민의 고대적 뿌리라고 극렬하게 비난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 부분은 플라톤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가장 즐겨 인용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 그러나 앞으로 보다 자세하게 밝혀지겠지만 정작 건국 신화에서 태어날 때 섞여 있다는 황금, 은, 철이나 동은 단순히 천성적으로 정해진 세습적 신분상의 차별과 위계를 의미하기보다는 기본적으로 분업공동체에서 나라의 구성원들이 나누어 가져야 할 역할들의 차이와 위계를 의미한다. 이들 역할의 종류와 차이는 천성에 크게 영향을 받지만,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건국 신화는 태어날 때부터 선대의 천성과 다르게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후 후천적인 교육에 따라 그 소질과 능력이 다시 달라질 수 있다. 이것은 사회 구성원들 모두 태생에 의해서건 그 후 후천적인 교육에 의해서건 소질과 능력이 다르게 판정될 수 있고 그에 따라 다른 계층으로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구성원들 모두는 자질과 능력에 따라 단계마다 계층 이동이 가능하다. 게다가 그 위계의 변동이 상승이건 하강이건 자신이 소질에 따라 그 계층에 귀속되는 한, 모든 계층의 구성원들은 행복감의 크기에서 차이가 없다. 군대에서 사령관 한 사람의 역할이 병사 한 사람의 역할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역할 상의 위계는 중요도에서 분명 차이가 있지만, 개인들 각각의 차원에서 서로를 선망하거나 폄훼할 어떠한 근거도 없다. 정의로운 나라에서 각자는 각자의 소질에 합당한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가장 자기답고 행복하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이것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이러한 건국 신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앞으로 설득력 있는 보다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414c) 끝.
(1-3-2 수호자들의 생활 방식, 사유재산의 금지(415d-421c)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