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회원들의 철학적 책읽기

청춘의 부활을 꿈꾸며, 레닌 재장전![청춘의 서재]

*『레닌 재장전 : 진리의 정치를 향하여』(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 외 지음, 이현우, 이재원 외 옮김, 마티, 2010.)를 청년들에게 소개합니다.(편집자)

청춘의 서재, 그 무기력한 나날들

내 청춘의 날들과 그 서재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그늘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어리고 여린 마음에 처음 접하게 된 세상의 현실은 낯설고 두려워서 무언가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항상 주변을 배회하며 주저하기만 했다. 현실에 저항하는 투쟁의 현장과 현실에 안주해 승리를 쟁취하려는 성공의 길 사이에서, 그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했다.

그때 내가 선택한 방식은 그 갈림길을 끊임없이 지연시키는 일이었다. 데카르트와 후설,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철학자들과의 만남은 그러한 선택의 과정을 유예하고 지연시켜주는 편리한 나름의 방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지연된 과정은 결국 상처가 되어 항상 나를 괴롭혔다. 철학에 대한 회의, 삶에 대한 불만이 조금씩 나를 갉아먹고 있었고, 지금도 역시 ‘왜 철학을 하는가?’라는 물음으로 되돌아와 계속해서 어떤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과연 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전망의 상실, 진리 해체의 시대

뒤로 물러나 있던 나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은 어느덧 점차 비슷해져 갔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열기는 자본주의를 뒤엎는 운동으로까지 연결되지는 못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더불어 자본주의의 승리와 역사의 종말을 외치는 논의들이 이어졌다.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자본주의의 힘 앞에서 다른 세계에 대한 전망은 상실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은 모든 진리에 대한 추구를 ‘전체주의’라는 유령을 앞세워 폐기처분해 버렸다. 진리를 앞세워 세계에 대한 정치적 기획을 구성하려는 시도는 결국 현실 사회주의처럼 전체주의로 귀결되고 말 것이라는 인식이 이 시대의 일반적인 상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도 공산주의를 언급하면 반드시 전체주의, 독재라는 수식어를 덧붙이며 여전히 두려움과 공포심을 드러낸다. 공산주의라는 유토피아는 아름답고 그럴듯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공상일 뿐이며, 더구나 독재를 옹호하고 실현시킨 전체주의일 뿐이라는 반응이 되풀이 된다.

맑스를 접하게 되면서 철학과 실천에 대해 고민하게 됐지만, 나도 여전히 공산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언급할 때면 민감해져서 두려움과 주저함이 되살아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아마도 맑스를 공부한다고 하면서, 정작 20세기 초반에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킨 레닌을 참조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레닌에 대한 외면이 나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우리는 ‘레닌’을 기억 속에서 지우고, ‘혁명’과 ‘공산주의’라는 말들을 애써 감추며, 현실에 정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제 급진적인 전망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인정한다. 그리고는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역할에 충실한 채,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명목으로 급진성은 잠시 접어둔다. 다시 ‘그럼에도’ 분명 모두 알고 있다.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라는 선택을 통해 어느새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게 된다는 것을.

왜 다시 레닌인가?

『레닌 재장전 : 진리의 정치를 향하여』(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마티, 2010)
『레닌 재장전』을 읽으면서 내가 지닌 두려움과 불만족의 실체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우선 현실의 장벽을 돌파하는 데 뒤따를 엄청난 책임을 스스로 감당해 낼 수 없을 것이라는 무력감이 두려움으로 표출된 것이다. 또한 철학을 정치와 결합할 수 없었던 나의 무능력이 불만족의 또 다른 원인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레닌으로의 복귀’를 논하는 이 책 속에서 철학과 정치가 접합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공동 편저자인 지젝이 말하는 “레닌주의적 제스처”는 나에게 철학과 정치가 연결되는 새로운 길로 읽혀진다.

“상황에 개입하겠다는 레닌의 결단”, 즉 “필요한 타협을 하고 현실적인 요구에 이론을 맞추려는 실용주의적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모든 기회주의적 타협을 물리치고, 오직 일이관지하는 급진적 입장(이를 통해서만 우리의 개입이 상황의 배치를 바꿀 수 있는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다)을 채택한다는 의미에서”(22-23쪽) 개입한다는 레닌의 결정. 더구나 이러한 정치적 개입은 단지 현실 정치라는 흙탕물 속에 뛰어들겠다는 식의 결정은 아니다. 오히려 ‘진리의 정치’(바디우), 혹은 ‘당파성’(레닌)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전략적 개입이다.

특히 ‘철학에서의 레닌’을 논하는 이 책의 2부는 레닌이 어떻게 철학을 통해 정치에 개입해 들어갔는지를 시사해 준다는 점에서 더 관심이 간다. 헤겔 『논리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변증법을 유물론적으로 전화하는 레닌의 접근방식은 정치에 개입하려는 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 “대상의 본질 속에 자리한 모순에 대한 연구”(187쪽)인 변증법을 통해 위기의 시대를 통찰하고 구체적 상황에 개입해 들어가는 레닌의 자세는 여전히 우리가 뒤따라야 하는 길이지 않을까?

물론 우리는 레닌의 ‘전위당’ 개념이 지닌 엘리트적 모습에서 전체주의로 이어질 수 있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권위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는 레닌의 당파성이란 결국에는 이론적 독단을 옹호하려는 장치에 불과하다고 폄하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나치게 순수한 입장을 정치라는 구체적 정세 속에 유지하려는 것은 아닐까? 이글턴의 말대로, “순수한 혁명에 대한 희망 속에서만 사는 사람은 결코 그러한 순수한 혁명을 보지 못할 것”(96쪽)이다.

전위와 엘리트는 다른 개념이다. “엘리트는 자기 영속적인데 반해 전위는 자기 파괴적이다. 전위는 변동이 심한 문화적, 정치적 발전 조건에서 출현한다. 전위는 이질성이 낳은 존재이다. 꼭 우월한 재능 때문만이 아니라 물질적 환경 때문에 일군의 사람들이 아직 일반적으로 명백하지 않은 특정한 현실을 ‘미리’ 포착할 수 있는 상황 또한 전위를 낳는다. 이들은 자신이 지닌 보다 특권적인 문화적 위치 때문에 전위가 될 수도 있지만, 정확히 그 반대의 이유, 곧 억압의 대상이자 그 억압에 맞서는 투사라고 하는 그들만의 경험 때문에 전위가 되기도 한다.”(85쪽)

결국 레닌이 말하는 정치는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존재하게 되는 침입”(240쪽)의 과정이며, 그의 “전략적 사유는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든 그러한 사건과의 관련 속에서 행동할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250쪽) 따라서 전위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에 대해,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해, 일어날 사건에 대해 준비하는”(241쪽) 일을 의미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니 우리는 과연 이러한 정치를 준비하고 있는가? 다니엘 벤사이드의 다음과 같은 훈계는 지금의 우리 상황을 잘 보여준다. “레닌주의를 피상적으로 비방하는 이들은 그들 스스로는 당의 억압적 규율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주장하지만, 그럼으로써 그들은 사실 그 모든 타당성들에 대한 논의를 공허하게 만들며 의견토론의 장을 축소시켜 결국 그 어느 누구도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공동의 결정도 없이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있은 후에 모든 사람들은 그저 원래대로 남게 될 뿐이며 어떠한 실천도 공유할 수 없기에 생성 중에 있는 반대 입장의 유효성을 검증하는 것 자체가 아예 불가능해지는 것이다.”(253쪽)

벤사이드의 말대로, “당(운동, 조직, 연맹, 당 등 주어진 이름이 무엇이건 간에)이 없는 정치란 대부분의 경우 정치 없는 정치로 귀결”될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럴 경우 철학은 “미학적이거나 윤리적인 것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결국 정치적인 것을 억압”(253쪽)하는 길로 가게 될 것이다.

레닌을 재장전하는 청춘의 부활을 꿈꾸며

아마 나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저 갈림길에서 주저하고 흔들릴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 내 주저함의 원인을 알게 된 이상, 준비해 나갈 것이다. 이미 청춘은 무기력하게 흘러갔지만, 선택의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그 선택을 오랫동안 지연시켜왔던 만큼 어떤 의미에서 난 제대로 청춘을 살아온 것이 아니기에, 이제야 비로소 새 청춘을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마침 내가 몸담고 있는 우리 한국철학사상연구회도 21살의 청춘이다. 물론 그 청춘의 선택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청춘이 다 지나가버리기 전에 ‘급진성’의 부활을 꿈꿔보는 것은 어떨까? 레닌 재장전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철학이 정치의 길을 열어주는 방식을 모색해 보는 것은 너무 지나친 이야기일까? 아무튼 난 레닌처럼 ‘꿈을 꾸련다. 그리고는 역시 흠칫 놀란다.’

조은평(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

갈림길-노신의 글에서 나의 길을 묻다[청춘의 서재]

첫 번째 인연.

내가 처음 노신을 만난 것은 어린이 세계 문학 전집류에서였다. 세계 명작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실어 놓은 것이었는데, 거기에서 만난 노신의 《아Q정전》은 12세 무렵의 나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당시 나는 이 책을 위인 이야긴 줄 알고 빼들었다가 바보짓만 일삼는 인물의 이야기임을 깨닫고 이내 내팽개쳤다. 고전을 알아보기에는 아직 어렸나 보다. 노신의 의도를 짐작하게 된 이후에도 ‘아Q’와는 여전히 서먹서먹하다.

‘강철의 노신’

틀어진 사이가 회복되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리영희 교수의 중재로 노신과의 인연은 다시 이어졌다. 리영희 교수는 당시 내게 큰 감동을 주고 있었기에 그가 훌륭하다고 추천하는 노신의 책도 당연히 좋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펼쳐든 책이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였다. 노신의 잡감문(雜感文)을 엮은 이 책에서 나는 노신을 ‘멍청이의 전기 작가’가 아닌 ‘강철의 작가’로 만나게 되었다. 반어적 독설을 무기로 사회 모순에 꿋꿋한 붓끝을 펼치는 노신의 글에 나는 매료되었다. ‘강철의 정의’를 우선했던 당시의 나에게 노신은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는 수세에 몰린 수구 세력들을 ‘물에 빠진 개’에 비유하면서 그런 개는 동정할 것이 아니라 다시는 물지 못하도록 ‘두들겨 패야 한다’고 했다(‘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강철의 노신’이 던진 이 말은 나에게 반민주세력을 뿌리 뽑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었던 민주화 이후의 우리 사회의 앞길을 잡아줄 나침반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나는 ‘보다 깊은 노신’을 만나지는 못했다. 노신은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 못지않게 민중에 대한 회의와 비판의 소회도 밝히고 있었지만, 나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했을 뿐이었다.

‘희망’의 정체

‘강철의 정의’만으로는 세상이 아름다워지지 않았다. ‘굳건한 도덕’이 미래의 희망을 구현해준다고 주장할수록 사람들은 떠나갔다. 우리는 외로워졌고 절망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우리가 옳다고는 했지만, 함께 길을 걷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차츰 그들은 우리를 달래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어느새 ‘용서와 화합’을 이야기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나는 그들이 ‘물에 빠진 개’로 보였다. 민중은 언제나 올바른 판단을 하고, 사람들은 언제나 올바른 길을 간다는 것이 과거의 굳건한 믿음이었다.

그런데 그런 ‘민중’과 ‘사람들’은 사라지고, 어느새 내 앞에는 ‘개’들만 한 무더기였다. 독재자들만이 ‘암흑’인줄 알았더니 그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암흑’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핍박받던 어린 양들’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폭군에게 당하는 선량한 이들이기도 하지만, ‘남의 고통을 자신의 오락으로 삼으면서(‘폭군의 신민’)’ 타인을 잡아먹는 이들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꿈은 이제 ‘대한민국 1%’였고, 그들의 덕담은 ‘여러분 모두 부자되세요’였다. 그들은 독재자를 버리고 CEO를 섬기기 시작했다.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그 희망은 나를 배반했다. 희망은 절망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몸서리쳤다. 세상이 미웠고, 나는 온종일 화가 나 있었다. 알 수 없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앞길은 ‘암흑’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희망’의 허망함

사람과 삶이 온통 ‘암흑’이었던 것은 노신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홀로 외쳤는데 아무 반응이 없으면, 즉 찬성도 반대도 없다면 마치 끝없는 벌판에 홀로 버려진 듯 자신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른다. …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것은 적막이었다. 그 적막감은 하루하루 자라났고, 독사처럼 내 영혼을 감아왔다.”(《외침》중 머리말)

이 ‘적막감’이 당시 내 분노의 정체였다. 그때 문득 펼쳐 본 책이 노신의 ?고향?이었다. 거기서 노신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내가 말하는 소위 희망이란 것도 또한 내 손으로 친히 만든 우상이 아닌가. …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대지에 난 길과 같은 것이다. 애당초 땅 위에는 길이란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나의 마음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섣부른 희망을 지표로 하여 우상으로 삼은 것이 잘못이었다. 애당초 삶은 불인(不仁)하지도 선량하지도 않은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은 광막한 대지와 같아서 ‘불인’과 ‘선량’이라는 협소한 말로는 도저히 규정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때로는 정의롭지만 때로는 추악하다. 그래서 희망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절망스럽기도 한 것이다.

광막한 대지에 ‘희망’이라는 길은 아무데도 없다. 가고 오는 가운데 길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가운데 수많은 길이 갈라져 나가니, 어느 길이 ‘희망’이고 어느 길이 ‘절망’이 될지는 걸어봐야 안다. 길은 길일 뿐 더 이상 ‘희망’도 ‘지표’도 될 수 없다. 오히려 걸어가면서 ‘희망’으로 삼아보기도 하는 것이다. 걷는 ‘현재’에서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할 뿐, 신기루 같은 미래의 ‘희망’이 내 걷는 행위의 지주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곧게 뻗은 저 외길을 ‘희망’이라 부르며 걸어오다가, 길 없는 대지와 수많은 갈림길에 절망하고 어쩔 줄 몰라 했던 것이다. 오직 ‘강철의 길’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오직 ‘희망’일 뿐이라거나, ‘절망’의 얼굴만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암흑’의 복잡성

사람들은 단지 두려웠을 뿐이다.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와중에 ‘부자’의 주문도 외우고, ‘1%’의 주문도 외우면서 ‘CEO’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그것을 나는 ‘절망’이라 하고 ‘배반’이라 몰아세우며 그들의 참모습으로 고정시켰다.

나는 어떠한가? 나도 그들 사이에 ‘살아가고 있었고 살고 있다’. ‘강철의 정의’를 주장했던 나도 그 바닥에서는 ‘성공’하고 싶어 했고, ‘그곳의 1%’가 되고 싶어 했으며, 상징자본을 탐내고 있었다. 사회 비판을 통해 ‘명망의 재력’을 갖추는 것. 이러한 ‘암흑’의 욕구가 나에게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도 그러한 ‘암흑’에서 자유롭지 않다. 나 또한 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암흑’은 밖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내 안에도 있었다. 돌아보니 ‘신념의 곧은 외길’은 굽이굽이 갈라진 길들이었고, 앞도 마찬가지였다. 내 갈 길은 더 이상 없어 보였다. 나는 맥이 다 빠져 주저앉았다.

노신은 이렇게 속삭였다. “묵적 선생은 갈림길 앞에서 슬피 울며 돌아섰다고 하지만 나라면 결코 울며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선 갈림길 초입에 앉아 잠시 쉬거나 한숨 자고 나서 걸어갈 만한 길을 골라 발걸음을 내딛겠습니다.”

지금은 한숨 자는 중인지도 모른다. 나아가 ‘참호를 파고 들어가 담배도 피우고, 노래도 부르고, 카드놀이와 미술전도 하면서’(《루쉰의 편지》) 내 안팎에 자리 잡은 ‘암흑’을 곰곰이 숙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전진하다가 또 한 숨 자기도 할 것이다. 여전히 두렵기는 하다. 저 아득한 어둠이, 내 안의 이 무한한 암흑이 나를 삼켜버릴 수도 있으니. 하지만 이 어둠을 응시하고, ‘암흑’을 ‘애독해 가면서’ 굳건히 살아가고자 한다. 그게 노신이 내게 준 가르침이다.

노파심에서의 사족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홀연히 나타나 사람들을 구하는 이를 구인(救人)이라고 한다. 노신은 내게 구인이다. 그러나 그가 책 속에만 있었다면 구인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삶과 나의 삶이 공명하는 연이 닿았기에 그가 구인일 수 있었다. 모든 이에게 그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궁하면 통하는지, 자기 삶에 위기가 왔을 때 간혹 영감을 주는 글이나 사람들이 인연을 맺는 경우들이 있다.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질문하는 진지한 노력 속에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참된 만남을 위해서는 나름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새로 노신의 글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반어와 냉소적인 문체, 당대의 사회적 현실에 대한 과문함이 그와의 만남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나의 마음에서 그의 심정을 짐작해 보는 과정을 조금씩 진행하다 보면, 그의 삶이 나와 공명하면서 많은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시간과 정성을 들였는데도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 글들도 있다. 허나 인연이 닿으면 글이 절실해진다. 아직 닿지 않았을 뿐이니, 조금 더 기다려주기를. 곁을 주고 기다린다면, 언젠가는 만나기 마련이다.

단순히 ‘사회적 교제를 위한 교양’을 위해서라거나, 진보적 감흥을 잠시 보조해 주는 ‘진보에세이’로서라면, 차라리 읽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좋은 벗이 소모되는 모습을 보는 건 가슴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한길석(한국철학사상연구회, 충북대 강사) /

태권V,2천년 역사의 한(漢)을 풀다[청춘의 서재]

『김태권의 한(漢)나라 이야기』(비아북)를 청년들에게 소개합니다.(편집자)/

?씬 레드라인? vs.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의 한 장면

1 vs. 100,000 즉 10만 대 1이다. 이건 도대체 무슨 숫자일까? 정확한 사실인지 아닌지 잘은 모르겠지만, 옛날 어느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다. 옛날 한국내전 즉 6.25 전쟁 때 총구에서 발사된 총알 가운데 실제로 인명을 살상하거나 상해를 입힌 총탄의 숫자가 10만발 당 ‘하나’ 라고 한다. 처음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숫자였다. 아마 허공에 대고 기관총을 난사했을 때 지나가던 참새 한 마리가 적중하여 떨어질 확률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도대체 전쟁 중에 어떻게 사격을 하였기에 이런 숫자가 가능할까? 하지만 전쟁의 실상을 알고 난 지금 오히려 나는 이 숫자도 과장이 아닐까 싶다. 과연 누가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정확한 조준을 하고 사격을 할 수 있을까? 조금만 생각해도 뻔히 상상할 수 있는 것인데, 왜 10만대 1이라는 숫자가 그렇게도 이해할 수 없는 비율의 숫자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을 실감나게 보여준 영화가 있다. 바로 ?씬 레드라인?이란 영화다.

 

우리가 흔히 보는 ‘전쟁’이란, 빗발치는 포탄과 귓가를 스치듯이 지나가는 총탄에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돌격하는 영웅들로 가득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주인공들이 그렇다. 병사들은 먼지 속을 군화발로 누비며 용감하게 진격해 들어간다.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적진 속에 남겨진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병사들은 용감하게 돌진한다.

영화 [씬 레드라인](1999)의 한 장면

그런데 미국의 영화철학자라 불리는 테렌스 맬릭 감독의 ?씬 레드라인?의 병사들은 이와 전혀 다르다. 일본군이 점령한 고지를 계속 탈환하라는 대령의 명령에 불복하는 대위, 게다가 지휘관의 돌격 명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병사들은 엄폐물 뒤에 찰싹 누워서 고개조차 들지 않는다. 과연 어느 누가 감히 고개를 들고 죽음이 보이는 고지로 용감하게 진격해 나갈 수 있을까?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그렇게도 흔히 보았던 장면들이 실제로 얼마나 현실과 거리가 먼 것인가를 아는 것이 이렇게도 힘들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면 ‘현실’이란 아직도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그 무엇이어서 그런 것일까? ‘현실’을 보기 위해 다시 영화를 보아야만 하는 우리들의 ‘감각’이란 것이 참으로 우습기만 하다. 그런데 이런 일은 전쟁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공자님은 볼 일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나는 동양 고전, 그것도 2,000년이 넘는 아주 먼 옛날의 책을 읽으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읽는 책들은 대개가 다 고매하다. ?논어?도 그렇고, ?맹자?도 그렇고 하나같이 어쩌면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상하게 행동하고 고상하게 말한다. 그래서 난 가끔 이런 상상을 하며 공자(孔子)나 맹자(孟子), 노자(老子)나 장자(莊子)를 속으로 조롱하곤 했다.

제후를 만나러 가서 연회 중에 화장실에 갔다가 휴지가 없어서 황당한 경우에 처한 공자, 기다랗게 늘어진 하이얀 수염이 국그릇에 빠져 꺼내어 말리느라 고생하는 노자. 이런 상상을 하다보면 결국 그들도 나와 같은 살과 뼈로 이루어진 사람이고, 우리가 늘 하는 고민을 똑같이 하며 살다간 사람이 아닐까 상상한다. 결혼한 후엔 소크라테스처럼 공자님도 부인에게 바가지 꽤나 긁히며 살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상상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이런 순진한 상상도 사실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자 당시에는 우리가 흔히 먹는 품종을 개량한 쌀이 없었다. 게다가 당시의 ‘쌀’(米)이 오늘날의 기장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나서는 ‘상상’을 위해서도 상당한 정도의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도대체 그네들은 뭘 입고, 뭘 먹고, 어떻게 살았을까?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님은 ‘볼 일’을 어떻게 해결하며 살았을까?

사실 알고 보면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모든 것들이 다, 이런 자질구레한 것처럼 보이는 그네들의 현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공자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모른 채 ?논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아닐까? 거꾸로 과거 선인(先人)들의 실제 삶의 모습을 이해할 때 ?논어?든, ?노자?든 더욱 살갑고 친근하게 이해되는 것들이 아닐까 싶다.

?날아라 태권 V?에서 ?한(漢)나라 이야기?까지

어릴 적부터 만화를 즐겨 읽어 온 내게 우스꽝스런 일이 있었다. 어느 때엔 오전에, 또 어느 때엔 저녁 무렵에, 또 어느 때엔 밤늦은 시각에, 그것도 어떤 때는 체육복 차림으로, 또 어떤 때는 양복 차림으로 만화방에 들어서는 내게 어느 날 만화방 주인 아주머니가 물었다. “도대체 뭐 하는 분이세요?” 순간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이렇게 되물었다. “뭐 하는 사람 같아요? 저, 대학에서 강의합니다!”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비아북

고교 시절에는 만화방에서 생물선생님과 만난 적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 모른 척하며 페이지를 넘기는 일에 몰두했다. 이현세와 황미나는 가장 즐겨보던 만화가였다. 그렇게 만화는 살아가는 재미였고, 일상이었다. 만화를 좋아하게 된 건 어릴 적에 본 최초의 한국애니메이션 영화 ?날아라 태권 V?를 본 이후였다. 난 아직도 가끔씩 ?전자인간 337?의 삽입곡 “아람의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그러던 차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만화를 다시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조선왕조실록?은 단순한 만화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과거를 새롭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하나의 창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옛날 중국의 삶의 모습, 2천 년 전의 모습도 이렇게 눈으로 볼 수는 없을까? 대만 출신의 만화가 채지충의 만화는 왠지 억지로 꾸민 듯한 외모 때문에 상당한 이질감을 느꼈다. 비록 수준 있는 작품들이었지만 내게는 2% 부족한 그 무엇이었다.

그러나 김태권의 ?한(漢)나라 이야기?를 펴든 순간 그간의 기다림은 단순에 풀리고 말았다. 책을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책을 읽는 내내 눈과 손과 입술이 함께 움직였다. 넘기는 페이지마다 어느 그림 하나, 어느 대사 하나도 놓칠 수 없는 흥분과 쾌감을 주었다. 처음엔 감탄으로 읽다가 나중엔 화가 나기까지 했다. 한 젊은 만화가의 손끝에서 ‘살아 움직이는 한(漢) 나라의 역사’가 되살아나는 것을 보며, 부러움과 질투가 났기 때문이다.

김태권, 2천 년 ‘한’(漢)의 역사를 풀다

?한나라 이야기?는 기원전 238년 진시황(秦始皇)이 스무 살이 되던 해로부터 시작한다. 고대 중국의 역사서 ?사기(史記)?와 ?한서(漢書)?는 물론 제자백가(諸子百家)와 현대 역사학의 성과까지 동원하면서 김태권은 ‘권력 앞에서 개인의 고독’이라는 주제를 추적해 간다. ?진시황과 이사?를 다룬 1권에서부터 ?항우와 유방?을 다룬 2권, 그리고 ?조조와 유비?(10권)까지 다룰 예정이라 한다.

그런데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의 매력은 이런 역사를 재미있는 만화로 소개한 데에 있지 않다. “독자 여러분은 한니발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만일 영화나 그림에서 튜더 시대의 판금 갑옷을 입은 한니발이 포병부대를 지휘한다면, 여러분은 짜증을 낼 것이다. 그러나 명나라 때의 복장을 한 항우나 유방을 보아도 우리는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전국시대 말의 유물을 토대로 복식을 고증하면, 그게 더 낯설어 보일 것이다.” 고 하며 그 낯설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태권은 진시황을 비롯하여 이사, 한비자, 항우, 유방 등등 출연하는 모든 인물들의 복식과 장식, 전쟁의 상황 묘사나 무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비아북

기 등 우리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한 나라 때의 화상석에서부터 후대의 자료까지 최대한 실증과 고증된 자료를 통해 현실감있게 보여준다. 단지 보여주는 것뿐만이 아니다. 각종 역사서와 역사 연구서를 통해 중요한 사건, 대화의 의미와 해석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렇게 볼 때 ?한나라 이야기?는 재미로 보는 만화를 넘어서 새로운 ‘사기’, 새로운 ‘한서’, 더 나아가 새로운 ‘삼국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만화라는 장르는 이제 어린이들이나 보는 장남감이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같이 애니메이션 영화를 통해 새로운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예술인이 있는 것처럼, 김태권은 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고대의 역사, 살과 피로 이루어져 부대끼고 싸우며 우정을 나누던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건조한 문자로 이루어진 역사가 아니라, 살아 숨쉬듯이 꿈틀거리는 형상들을 통해서.

?제자백가?와 갖가지 중국 고전을 만화화한 채지충의 고전만화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조선의 역사를 비주얼로 창조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제 일본인이면서 로마를 노래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있듯이, 한국인이지만 ?사기?, ?한서?, ?삼국지?의 세계를 새롭게 역사화하는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를 덧붙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재미는 기본이다. 아마도 소장하여 물려줄 만한 책은 이런 것이 아닐까? 특히 학업에 지친 젊은 친구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김시천(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