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강해 ㉛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 ㉛
2-6. 호사스러운 나라, 염증상태의 나라(372e-373d)
[373a]
* 이후 소크라테스는 호사스런 나라를 ‘염증(부어오른) 상태의 나라’φλεγμαίνουσας πόλις로 다시 명명한 후 그 나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건강한 나라에서 염증 상태의 나라로 변하는 원인은 다름 아니라 어떤 사람들에게는τισιν 건강한 나라에서 주어진 것들과 그곳에서의 생활 방식δίαιτα이 충분하다고 여겨지지 않기οὐκ ἐξαρκέσε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 나라에는 의식주 전반에 걸쳐 사치스런 것들이 추가된다.
* 소크라테스가 열거하고 있는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침상κλίνη과 식탁τράπεζα 및 기타 가구σκευή들, 요리ὄψον와 향유μύρον 및 향료θυμιάματα , 기녀ἑταίρα와 생과자πέμμα, 기타 필수적이 아닌 것들οὐκέτι τἀναγκαῖα 즉 회화ζωγραφία와 자수ποικιλία, 황금χρυσός과 상아ἐλέφαντα 등 그와 같은 유의 온갖 것들.
[373b-d]
* 이런 것들이 추가되면서 앞의 나라는 규모ὄγκος와 수πλῆθος에서 한층 더 커질 수밖에 없게 되어 건강한 나라는 더 이상 적합하지가 않게οὐκέτι ἱκανή 된다. 그리하여 필요불가결한τοῦ ἀναγκαίου 것을 넘어서는 직능의 사람들이 생겨난다. 이를테면 모든 부류의 사냥꾼θηρευτής과 모방가μιμητής들이 생겨나는데 모방가들 중 일부는 형태와 색채σχήματά τε καὶ χρώματα에 관여하는 사람들(조각가와 미술가)이고 일부는 시가μουσική에 관여하며 이를 돕는 시인ποιητής, 음송인ῥαψῳδός, 배우ὑποκριτής, 합창 가무단원χορευτής, 연출가ἐργόλαβος들이다. 그리고 그밖에 여러 종류의 기구σκευή들 즉 여성들의 꾸밈κόσμον과 관련한 다양한 소품(장신구)들παντοδαπῶν을 포함해 더 많은 봉사자(시종)διάκονος들, 이를테면 가복παιδαγωγός(가정교사), 유모τίτθη(건강 관련 시종), 보모τροφός(음식 시중 시종), 시녀κομμώτρια(의복 관련 시종), 이발사κουρεύς, 일반 요리사ὀψοποιός, 고기 요리사μάγειρος(푸주한)가 생겨나고 육류 공급을 위해 앞서 말한 사냥꾼 이외에 양돈가συβώτης 및 온갖 종류의 가축βόσκημα이 추가로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건강한 나라에서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살게 되면 질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마련이어서 의사ἰατρός들이 많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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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사스런 나라가 규모와 수에서 한층 더 커진다고 했을 때 규모와 수가 가리키는 것은 의식주에 있어 필수적인 것 이상의 것들과 그것들을 제공하는 직능의 수는 물론 그런 것들의 확장에 수반하는 인구의 증가까지 포함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러한 규모와 수의 증가는 이미 호사스런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욕구가 더 이상 생존 욕구에만 만족하지 않고 사치스런 욕구에서부터 문화적 욕구에로까지 확대되었음 보여준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맛을 추구하고 고기 요리까지 탐닉하며 자수와 회화는 물론 치장 도구까지 욕구하고 있는 양상은 이미 인간의 욕구가 동물적 욕구를 넘어 사치욕의 단계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고 특히 시가μουσική 관련한 욕구의 증대는 이른바 인간의 고유 욕망으로서 문화 예술에 대한 욕망이 본격적으로 분출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보모와 유모는 물론 아이들의 교육을 돌보는 가복의 출현 또한 본능적 돌봄 이상의 양육과 교육에 대한 수요가 생겨났음을 나타낸다. 이른바 우리가 말하는 문명 생활에 대한 욕구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 호사스런 나라에 ‘돼지 치는 사람’συβώτης이 등장하는 것 또한 이 나라에 생존을 위한 식욕 이상의 고급 요리 등 식탐과 미식에 대한 욕망도 생겨났음을 보여준다. 사실 기원전 5세기 만해도 아테네 사람들 대부분은 주로 채식을 했고 육식을 즐기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이곳에서의 고기 요리는 특수 신분이나 즐겼을 법한 고급 요리로 그려진 것이다. 실제로 아테네에서 소와 양은 기본적으로 식량이나 양모 등을 얻기 위해 사육되었던 까닭에 소고기와 양고기가 일상의 식탁에 오르는 일은 그 자체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돼지는 순전히 식용을 위해서 사육된 동물이다. 그런 점에서 일부 상류 계층의 고기 수요는 주로 돼지고기였을 것이다. 호사스런 나라에 이르면 사냥술도 이제 더 이상 양이나 가축을 짐승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기술만이 아니라 식탐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술로도 활용된다.
* 미술가와 조각가 그리고 시인들을 모두 모방가μιμητής로 부르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의 예술의 목표가 다름 아닌 자연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사실적인 모사와 모방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사실주의 회화들조차 단순 모사 즉 복제가 아닌 작자 자신의 정신이 창조적으로 반영된 모종의 개념적 추상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여기서 소개되는 자연에 대한 회화적 모사는 저자의 창조적 관점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결핍을 안고 있는 그럴듯한 복제물에 불과한 것으로 폄하되고 있다. 플라톤에게 예술가의 모방은 최소한 인식의 측면에서 보면 본질적으로 진상과 거리가 먼 가상을 추구하는 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 시가(詩歌μουσική, mousikē)는 오늘날 music의 어원이 되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그 말을 음악을 의미하는 말로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349d 강해에서도 언급했듯이 그 말 자체가 원래 음악, 예술, 학문의 여신인 뮤즈μουσαι에서 나왔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가는 이른바 <일리아스>나 <호메로스> 등과 같은 문학적 시가를 비롯해서 그에 수반하여 이루어지는 음악과 연극, 춤 등 일체의 예술 분야 전반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 특히 <일리아스>나 <호메로스> 같은 시가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고와 생활방식의 지침을 제시하는 경전에 준하는 이야기이자 노래였던 까닭에 mousikē에 능하다는 것은 예술 능력은 물론 품위 있는 시민으로서의 교양과 식견을 두루 갖추었음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mousikē는 ‘학예’라는 말로도 번역되고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μουσικός(mousikos) 또한 단순히 음악 관련 전문가만이 아니라 예술인과 지식인의 뜻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다.
* 플라톤이 통치자를 언급하며 가장 많이 비유적으로 인용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의사이다. 통치자는 나라의 질병을 치료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기본적으로 신체적 질병이 문제여서 말 그대로 의사가 필요하다.
2-7. 전쟁의 기원과 수호자 계층의 발생(373d-374d)
[373d]
* 소크라테스는 건강한 나라가 어떻게 호사스런 나라로 변화하는지를 자세하게 이상과 같이 살펴본 후에 이제 이러한 나라에서 왜 전쟁πόλεμος이 일어나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우선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나라에서는 식량 수요가 크게 늘어나 결국에는 식량을 생산할 영토χώρα가 모자라게 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은 목축하고 경작하기에 넉넉한 땅을 가지려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 경우 이러한 땅을 가지는 방법은 영토를 확장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웃나라 사람들의 땅을 일부분 떼어내야ἀποτμητέον 할 것이고, 이웃나라 사람들 역시 그들대로 ‘필요 불가결한 것들의 한도τὸν τῶν ἀναγκαίων ὅρον를 벗어나 ’재화(돈)의 끝없는 소유에’ἐπὶ χρημάτων κτῆσιν ἄπειρον 자신들을 내맡겨 버릴 때는 우리 땅을 떼어 가져야만 한다. 이런 연유로 전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소크라테스가 발견한 전쟁의 기원πολέμου γένεσιν이다.
[373e]
*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이와 같이 전쟁의 원인을 이야기하면서 전쟁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지εἰ ἀγαθὸν ἐργάζεται 나쁜κακὸν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아직은 아무 말도 하지 말고μηδέν γέ πω λέγωμεν 다만 최소한 전쟁의 기원πολέμου γένεσιν 만큼은 발견했다고 말하기로 하자고 언급한 후, ‘나라에서 공적으로나 사적으로’ἰδίᾳ καὶ δημοσίᾳ 나쁜 일들이 생기는 ‘단서는 무엇보다도 그런 것들이다’ἐξ ὧν μάλιστα ταῖς πόλεσιν καὶ ἰδίᾳ καὶ δημοσίᾳ κακὰ γίγνεται, ὅταν γίγνηται라고 단언한다. 이에 글라우콘은 틀림없는 말씀이라고 동의를 표한다.
[374a]
* 이런 이유로 소크라테스는 이제 이 나라에는 소규모가 아니고οὔ τι σμικρῷ 나라의 모든 재산과 영토를 지키기 위해 침략자들에τοῖς ἐπιοῦσιν 대항해서 싸울 전체 군대만큼의ὅλῳ στρατοπέδῳ 확대가 요구된다고 말한다. 이에 글라우콘은 그들로써 충분한지 못한지οὐχ ἱκανοί를 묻는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이미 앞서 의견의 일치를 보았듯이 ‘한 사람이 여러 기술 분야에 훌륭하게 종사하기는 불가능하다’ἀδύνατον ἕνα πολλὰς καλῶς ἐργάζεσθαι τέχνας.고 말한 후, 전쟁과 관련한 겨룸ἀγωνία 또한 하나의 전문 기술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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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내용(373d-374a)과 관련하여 몇 가지 음미해볼 것이 있다..
1) 호사스런 나라의 규모와 수가 크게 확대되면서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욕구는 식량 부족으로 인한 영토 확장욕과 필수적인 것 이상에 대한 욕구 증대로 인한 재화의 소유욕이다. 물론 텍스트는 목축과 경작을 위한 영토 확장욕은 이 호사스런 나라 사람들의 욕망으로 기술하고 재화에 따른 소유욕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욕망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어쨌거나 그러한 욕망들 모두가 전쟁의 원인들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즉 전쟁의 원인은 목축과 경작을 위한 보다 넓은 땅과 호사스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재화 즉 땅에 대한 욕망과 돈에 대한 욕망이다. 373e에서 ‘나쁜 일들이 생기게 되는 단서는 그런 것들’이라는 말에서 ‘그런 것들’이 가리키는 것도 바로 그것들이다. 그리고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돈의 소유욕에 자신을 내맡기게 되는 경우를 소크라테스는 호사스런 나라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의 하나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나라가 호사스런 단계에 들어서면 사람들의 욕망이 모두 화폐가치로 환원될 정도로 질적인 차이가 무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소비와 사치가 미덕으로 추앙되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적성과 소질에 따른 다양한 욕망은커녕 모든 욕망들이 화폐가치로 환원되어 서열화 되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오늘날의 다양성은 다만 그러한 서열의 상승을 위한 수단의 다양성에 불과한 것으로 질적으로는 이미 획일화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전쟁의 원인으로 재화에 대한 욕망이 제시되고 그에 따라 수호자 계층이 등장하고 종국에는 철인정치가 내세워진 것도 근본적으로 재화에 대한 탐욕이 초래하는 그러한 파행적 종말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것이다.
2) 박종현 역본은 이 부분을 앞서 인용하였듯이 ‘나라에서 공적으로나 사적으로’ἰδίᾳ καὶ δημοσίᾳ 나쁜 일들이 생기는 ‘단서는 무엇보다도 그런 것들이다’ἐξ ὧν μάλιστα ταῖς πόλεσιν καὶ ἰδίᾳ καὶ δημοσίᾳ κακὰ γίγνεται, ὅταν γίγνηται로 옮기고 있다. 이 번역에서는 ‘그런 것들’이 나쁜 일들이 생기게 하는 단서로만 풀이되어 있고 그 나쁜 일들에 전쟁이 포함되는지 여부를 열어 놓고 있다. 이는 아마 ‘그런 것들’이 가리키는 것을 ‘전쟁과 그와 같은 부류의 일들’(war and the like)로 해석하는 일부 주석가(Schneider, Stallbaum)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 연구가들은 위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고 ‘그러한 것들’을 바로 앞의 문장에 나오는 전쟁의 기원πολέμου γένεσιν과 연결시킨다. 그러한 한, ‘그런 것들’은 영토와 재화에 대한 욕망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그 문장을 앞에 나오는 문장과 연결시켜 다시 옮기면 아래와 같다. ‘나라에 있어서 개인적으로나 또는 공적으로나 정작 나쁜 일이 생길 경우에 이 나쁜 일들이 생기게 되는 단서는 무엇보다도 그러한 것들인데 전쟁 또한 그러한 것들로부터 생기는 것일세.’
3) 이 부분에서 소크라테스가 ‘전쟁이 나쁜 결과를τι κακὸν 가져오는지 좋은 결과를ἀγαθὸν 가져오는지는 아직은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하자μηδέν γέ πω λέγωμεν’는 말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하자’는 언급은 나중에 말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키는데 기대와 달리 <국가> 어디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 말의 의미를 그냥 전쟁에서 이기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패하면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상투적이고 피상적이다. 그래서 어떤 주석가는 최초의 나라가 호사스런 나라가 되고 그 나라 사람들의 욕구 증대는 결국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전쟁이라는 불가피한 현실 경험을 통해 결과적으로 수호자 계층을 비롯해서 철학과 문명이 출현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전쟁은 나쁘기도 하지만 선을 결과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한다.(Adam 주석 참고)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어처구니가 없다. 부정의 때문에 철학 통치자가 출현하게 되었다고 부정의를 좋은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4) 필자 생각으로는 그 말은 평생 동안 플라톤 자신이 경험하고 목도한 아테네 전쟁들에 대한 평가, 무엇보다도 페리클레스가 제국주의를 내세운 이후 아테네가 수행한 수많은 전쟁들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테네는 페리클레스가 벌인 패권주의적 전쟁 덕분에 사회 경제적 성장은 물론 문학과 철학 예술 분야에서 다른 폴리스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문화적 풍요를 누렸다. 그러나 그러한 성취는 같은 민족인 이웃 나라에 대한 제국주의적 지배와 착취의 기반으로서 이후 스파르타 등 이웃 나라의 반발을 초래하여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야기되면서 종국에는 아테네를 멸망으로 이끄는 단초가 되기도 하였다. 플라톤이 <국가>를 저술한 시기로 추정되는 기원전 385년 전후 역시 아테네의 번영은커녕 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아테네의 국력이 크게 쇠잔해진 시기였다. 평생 동안 아테네의 이와 같은 흥망성쇠를 지켜보면서 플라톤은, 페리클레스와 그 후계자들이 벌인 패권주의적 전쟁이 비록 사회 경제적, 문화적 풍요는 가져다주었기는 하지만 결국은 아테네를 멸망에 이끈 결정적 원인이 되었음을 뼈저리게 통감했을 것이다. 실제로 플라톤은 <메넥세노스>를 비롯한 여러 대화편에서 틈틈이 페리클레스의 패권주의와 침략 전쟁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곳에서의 플라톤의 언급은 아테네 사람이라면 누구나 추켜세울 법한 기원전 5세기 그 영광스러운 시절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담고 있는 것이라 판단된다.
5) 플라톤은 호사스런 나라 사람들의 욕구의 증대가 결국은 이웃 나라 사람들의 땅을 떼어내려는 전쟁, 즉 침략 전쟁의 배경이 된다고 말을 하면서도 흥미롭게도 정작 그 때문에 새롭게 생기는 군대를 침략자가 아니라 반대로 침략자들에 대항해서 싸우는 수호자 즉 방어를 위한 군대로 묘사하고 있다. 호사스런 나라가 땅을 떼어내기 위해 벌이는 침략 전쟁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전후 맥락상 어색한 일이다. 왜냐하면 드러난 문맥만 보면 호사스런 나라는 욕구가 증대해도 어떤 영토도 침략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나라로부터 침략을 당하는 형국으로 읽혀질 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맥을 플라톤의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보면 플라톤의 속내를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호사스러운 나라에 이르면 그 증대된 욕구로 말미암아 전쟁에 대한 욕구가 생기는 게 불가피하다. 그러나 설사 그럴 지경에 직면했을지라도 플라톤은 어떻게든 이웃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을 통해 그 욕구를 해결해서는 안 되며, 다만 전쟁을 해야 한다면 이웃 나라가 침략할 경우 방어를 위한 전쟁에 한해 허락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플라톤을 편들어 이 문맥에서 그러한 함축을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그럴 경우 호사스런 나라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침략 전쟁에 대한 욕구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의 문제가 플라톤에게 남는다. 물론 여기서 그에 관한 플라톤의 언급은 없다. 그러나 전후 문맥들을 종합적으로 살펴가며 생각을 기울이면 우리는 플라톤이 호사스런 나라의 등장을 불가피한 현실로 인정하고 전쟁 욕구도 상존하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 해결책을 전쟁에서 찾기 보다는 정의로운 나라의 구축을 통해 호사스런 나라 사람들의 욕망들과 직능들을 합리적으로 조절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그 출구를 모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사실 호사스런 나라가 직면하는 문제들이 비록 전쟁 욕구를 촉발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통해서만 해결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데에는 그들 내부의 욕망들을 규모와 수, 종류와 형태의 측면에서 서로 조율하고 조화시키는 이른바 정치적인 해결 방식도 있는 것이다. 플라톤이 수호자 계층의 등장을 설명하기 위해 최초의 나라에 이어 호사스런 나라를 등장시키고 전쟁에 대한 욕구와 그에 대처하는 군대의 필요까지 끌어들이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이미 나라를 수호하는 일에 단지 전쟁관련 전문가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관련 전문가도 필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여기서 수호자 계층의 등장이 이루어진 후 나중에 가면 수호를 위한 최고의 직능으로서 정치를 담당할 통치자 계층의 등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요컨대 이들 통치자가 나라를 정의롭게 다스리는 한, 최소한 침략 전쟁은 없으며 전쟁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나라를 수호하는 방어 전쟁만 있을 뿐이다.
6) 그리고 욕구의 증대가 초래하는 과정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설명에는 뭔가가 생략되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실 호사스런 나라에서의 욕구의 증대가 이웃 나라와의 전쟁의 원인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언급은 그가 구상한 논의 전체 틀에서 수호자 계층의 등장을 설명하기 위한 사전 포석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호사스런 나라에서의 욕구의 증대가 곧바로 이웃 나라에 대한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에는 과정상 뭔가 간과되어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호사스런 나라에서의 욕구가 372e-a에서 보듯이 어떤 일부 사람들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라면 이웃 나라에 대한 침략 이전에 내부 사람들 사이의 갈등도 분명 있을 것이고 그것이 심해지면 이른바 내전도 일어날 수 있을 텐데 그런 내부의 갈등이나 내란에 대한 언급은 나타나 있지 않다. 굳이 그것이 생략된 이유를 찾아본다면 내란이나 내분, 분쟁 등으로 번역되는 stasis라는 말 자체가 이른바 전쟁을 의미하는 polemos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전쟁의 발생 배경을 언급하는 단계에서 그것까지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부 갈등이나 다툼도 호사스런 나라가 필연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인 한, 호사스런 나라에는 전쟁에 대한 욕구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치에 대한 욕구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실제로 <국가> 전체를 보면 내분이나 내란의 문제는 플라톤에 의해 현실 국가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의 하나로서 이곳저곳에서 수도 없이 반복해서 거론되고 있다. 사실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은 종종 내부의 분열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촉발되기도 한다. 아테네 역시 그랬다. 그런 점에서 호사스런 나라에서의 전쟁에 대한 욕구에는 그러한 이유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아무려나 호사스런 나라에서의 욕구의 증대가 군인만이 아니라 통치자에 대한 요구도 포함하고 있다는 추정은 이후의 플라톤의 논의 전개와 아무런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7) 최초의 나라가 호사스런 나라로 발전하고 그 나라 사람들의 욕구의 증대가 전쟁을 촉발시킨다는 소크라테스의 발언은 앞서도 살폈듯이 이곳 논의 단계의 전체적인 틀에서 보면 최초의 나라에서의 생산자 계층의 성립 단계에 후속해서 호사스런 나라에서의 수호자 계층의 성립 단계를 설명하기 위해 애초부터 계획된 것임이 분명하다. 즉 작은 글씨인 개인의 영혼들을 나라라는 큰 글씨를 통해 순차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개인 영혼의 욕구적인 부분에 상응하는 나라에서의 생산자 계층에 대한 설명에 이어, 그 상위 부분인 기개적인 부분에 상응하는 것으로서 나라에서의 수호자 계층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곳에서 등장하는 수호자 계층에 이어 장차 통치자 계층의 등장과정에 대한 설명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 역시 전체적인 논의 구조상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8) 이곳에서(375e) 군대의 등장을 ‘소규모가 아니라 침략자들에 대항해서 싸울 전체군대만큼의 확대’라는 표현 또한 이곳에서 요구되는 직능의 확대가 단지 전쟁 발발에 따른 특정 전쟁 기술들이 일부 추가되는 수준이 아니라 침략자 전체에 대항할 만한 규모 즉 생산자 계층의 규모에 상응할 만한 새로운 계층의 등장임을 보여준다. 즉 호사스런 나라에서 전쟁의 발발을 배경으로 요구되는 전쟁 관련 기술은 생산자 계층에서의 특정 직능과 동급 수준의 직군이 아니다. 생산자 계층에 농부와 제화공, 벽돌공, 무역상 등이 내부 세부 직군으로 소속되어 있듯이 전쟁 관련 기술 또한 이를테면 각기 다른 기술을 가진 중무장 보병, 기마병, 해병, 노수 등 전투 형태별 기술은 물론 장비별로도 각기 다른 기술을 가진 세부 기술들이 그 내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다. 즉 ‘전체 군대만큼의 확대’라는 말은 단순히 어떤 특정 직능 수준의 군인이나 군대의 확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침략자와 싸울 전체 기술들과 직군들을 총망라한 모든 군대만큼의 확대 즉 계층 차원에서의 확대임을 나타내기 위해 쓰인 말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소크라테스는 논의의 전체 틀을 염두에 두고 순서에 따라 생산자 계층에 이어 수호자 계층을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9) ‘그들로써 충분하지 못한가요?’라는 글라우콘의 물음은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 따로 군대라는 별도의 전문적인 직군이 아니라 일상적 생활인으로서 일반 시민들 모두가 군인으로 나서 싸우면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이미 앞에서(370c) 한 사람이 여러 가지 기술 분야에 훌륭하게 종사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의견 일치를 보았음을 환기시킨다. 사실 이러한 언급은 생산자 계층의 구성에서도 확인되었듯이 플라톤의 분업과 전문가 주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그럼에도 글라우콘의 질문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답변은 플라톤의 이상국가가 스파르타를 이상적인 모델로 삼은 것이라는 플라톤 비판가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주요 근거로 종종 인용된다. 왜냐하면 스파르타야 말로 이곳에서 글라우콘이 언급한 대로 직업적인 군인들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시민들 모두가 군인이고 생산 관련 일은 그러한 군인들이 틈날 때에 종사하던 이른바 전사들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소크라테스는 분명 그러한 나라를 거부하고 있다. 실제로 플라톤은 정의로운 나라에서 생산자 계층과 군인 계층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고 군인 계층조차 전술과 무기 등에 따라 각기 다른 전문적인 직군들로 구분하고 있다.
[374b-c]
* 이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전쟁과 관련된 겨룸ἀγωνία 역시 기술적인 것임을 분명히 하고 그러한 ‘전쟁 관련 기술’πολεμικῆ이 제화 기술 등 일반 기술보다 더 신경을 써야하는κήδεσθαι 일임을 밝힌다. 그리고 최초의 나라에서 여러 전문 기술자들에게 각각이 적성에 따라 한 가지 일을 맡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일생을 통해 다른 일들에 대해서는 한가σχολὴ로이 대하고 오직 그 일에만 종사하게 한 것은 각자 자기 일을 적기καῖρος에 훌륭하게καλῶς 수행하기 위한 것임을 재확인 한다. 그런 연후 그는 전쟁에 관한 일이야말로 잘 수행되어야 할 가장 중대한πλεῖστος 일인 만큼 전쟁 관련 기술 역시 철저하게 분업과 전문가 원칙에 따라 수행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쟁과 전쟁 무기와 관련한 기술들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예시한다. 즉 전쟁이 났을 때 사람들이 방패ἀσπίς 등 전쟁 무기πολεμικῶν ὅπλον나 장비들ὀργάνων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고 해서 그날로 중무장 병기 사용술ὁπλιτικός이나 다른 형태의 전투μάχη에서 유능한 전사ἀγωνιστής가 되는 것은 아니며, 어떤 도구든 그 각각에 대한 지식ἐπιστήμη을 지니고 있지 못하고 충분한 연습을τὴν μελέτην ἱκανὴν 하지 않을 경우 아무런 쓸모χρήσιμος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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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룸(경쟁)의 원어 ἀγωνία(agōnia)는 오늘날 번뇌를 뜻하는 영어 agony의 어원이 되는 말이다. 경쟁이 곧 번뇌임은 그제나 오늘날에서나 불변의 진실이 아닐 수 없다.
* 박종현이 옮긴 ‘제화 기술이 전술보다도 더 신경을 써야만 되는 것인가?’라는 역문에서 ‘전술’이라는 말은 ‘전쟁 관련 기술’이란 말로 고치는 것이 좀 더 적합하다고 판단된다. 그 말의 원어 πολεμικῆ(polemikē)는 전쟁 관련 기술 일반을 총칭하는 말로서, 생산자들의 기술이 제화 기술, 농업 기술 등 범주 상 하위 기술들을 포괄하고 있듯이 polemikē 역시 중장비 병기 사용술, 해전술, 기마술 등 범주 상 하위 기술들을 포괄하고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전쟁관련 기술을 총칭하는 그 말을 생산 기술의 어떤 하나인 제화 기술과 동급수준에서 비교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소크라테스의 이 말은 그 말 자체로 전쟁 관련 기술이 나라의 존망과 관련된 기술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범주 차원에서도 당연히 훨씬 많이 신경을 써야할 계층 차원의 기술임을 의도적으로 담고 있는 말이다. 그리고 ‘전술’이란 역어가 전쟁관련 기술의 하나인 전술(tactic)의 의미로 읽힐 수도 있다는 점에서도 그 말의 원래 뜻과 어울리지 않는다.
* ‘다른 형태의 전투’는 중장비장갑보병 및 기마병 등이 수행하는 육상 전투 형태들 그리고 삼단노선을 이용한 해상전투 형태를 망라해서 표현한 말이다.
* 지식과 연습에 대한 언급은 기술의 탁월성이 선천적인 적성만이 아니라 후천적인 연습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준다. 플라톤의 기술은 앎이자 지식이되 단순한 앎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실천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앎이다.
[374d]
* 전쟁을 수행하는 기술은 그에 적성이 맞는 사람이 따로 있으며, 게다가 무엇보다도 전쟁에 관한 일이야말로 잘 수행되어야할 가장 중대한πλεῖστος 일인 만큼(374c) 이 나라에는 그러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이 곧 수호자φύλαξ들이다.
* 이에 따라 소크라테스는 수호자들의 일들이 나라의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μέγιστον 것인 만큼 다른 일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한가로운 태도가 요구되고 그 자체에 대해서는 최대의 기술과 관심을 요한다고 말한다.
[374e]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수호자의 업무에도 그에 걸 맞는 적성이 요구되는 만큼 나라의 수호에 어떤 사람들이 그리고 어떠한 성향들이 적합한지를 가려낼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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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에서 매우 중대한 개념으로 등장하는 ‘수호자’라는 말이 이곳에서 처음 나온다. 호사스런 나라에서의 욕구의 증대가 전쟁을 촉발하게 되면서 생산자 계층에 이어 마침내 수호자 계층의 등장을 가져다 준 것이다. 이러한 수호자 계층이 수행하는 일ἔργον은 단순히 어떤 특정 기술과 비교될 수 없는 나라의 수호와 관련된 기술 내지 일 전반에 걸쳐 있다. 그러한 한, 수호자의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고 그 만큼 다른 일에 대해 최대한 한가로운 태도와 그 자체로 최대의 기술과 관심이 요구되는 일이다.
* 수호자 계층은 나중에 드러나게 되겠지만 직접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들(전사들)stratiōtai과 통치자들archontes이 될 사람들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플라톤의 국가 구성을 거론하면서 흔히들 이야기하는 통치자 계층은 이 수호자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 중에서 따로 선발된 사람들이고 전사 계층은 그 나머지 사람들이다. 실제로 <국가> 제3권 414b, 제4권 428b에 가면 수호자 계층이 두 부류로 나누어져 각기 다른 이름들로 불리어진다. 통치자들로 선발된 사람들은 ‘완벽한 수호자들’(phylakes panteleis), ‘완전한 수호자들teleoi phlakes’, ‘참된 수호자들alēthino phylakes’로 불리어지고 나머지 사람들 즉 전사들은 ‘보조자들’epikouroi 또는 ‘협력자들’boēthoi로 불린다. 요컨대 정의로운 나라는 통치자 계층과 전사 계층, 생산자 계층으로 구성되고 이른바 수호자 계층이란 그곳에서 통치자 계층과 전사 계층을 합쳐서 일컫는 말이다.
* 이후에는 수호자들의 성향 내지 적성들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제2권 처음부터 여기(374e)까지를 <국가>를 구성하는 큰 단락들 가운데 하나로 구획 짓고 있다. 그러나 또 어떤 연구자들은 앞서 생산자 계층의 사람들을 거론하면서 그들의 적성과 성향을 같이 언급했듯이 다음에 이루어지는 수호자들의 성향에 관한 논의까지(376c)를 하나의 큰 단락으로 묶고 이후의 내용부터 수호자의 교육을 다루는 새로운 단락으로 구획 짓기도 한다.
* 우리의 강해는 제2권 강해 서두 목차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전자의 구분에 따르고 있다. 그래서 실제 학당 강의는 이후의 내용까지 일부 다루었지만 위의 단락 구분을 고려하여 이번 웹진 강해록은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