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자연 순환, 그 회귀 [천 하룻밤 이야기]

자연 순환, 그 회귀:

관습 또는 습관을 넘어설 것인가?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중.

— 2023 12 22, 동지(冬至).

 

누구에게나 삶이 자신을 속이지는 않는다고들 한다. 단지 속는다고 여기는 것은 인간의 자기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경향과 관습을 이어가면서, 임의적으로 여러 갈래 길에서 하나로 밖에 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냉정하다. 이것을 따뜻하게 느끼는 것이 착각이다. 이런 착각과 달리 착오는 비교에서 온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하는데, 또는 제 눈에 들보를 못 보면서 남의 눈에 티끌을 따져든다고 한다. 신체를 가진 삶은 상식[sens commun,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다섯 감각: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영향을 받는다. 그다음으로 생각하는 의식이 있다고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좀 더 깊이 사유한다는 편들은 원래 영혼의 사유하는 양식(bon sens)과 신체의 느끼는 감각작용이 다른 길도 있다고 한다. 어째거나 이 둘의 통합이 가능하다고 믿는 쪽이 있고, 서로가 다르게 작동하는데 어느 쪽을 우선을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고도 한다.

그런데 상식의 사유도 양식의 사유도 인간의 이기심 앞에서 무력하다고 한다. 그 이기심이 삶과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권력, 권세, 권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결정은 상식과 양식과 다른 의사결정의 기제(메카니즘)이 따로 있다고 하면서, 그래서 결정권을 가진 어떤 능력을 의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개인의 활동에 좀 더 깊이 들어가서 보면, 그 의지라는 것도 오래 익숙해진 습관과 같은 관례적 또는 본능적 결정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면서, 어떤 본능이 상식과 양식과 다른 인식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인간이 다른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무상보시나 희생 등의 예를 들면서 인간이 행동 결정에서 의지가 본능을 넘어선다고들 한다. 의지라는 것을 설정하면서 상식과 양식과 다른 길이, 즉 의지가 인간의 내부에 능력으로서 있다고들 한다. 다른 한편 그 의지가 협박과 고문 등에 의해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은 과오 또는 오류 정도로 취급한다. 그럼에도 강압적이 아닌 유혹과 회유에도 다른 길을 선택하기 할 때, 그것은 의지와 상관없이 지성이 계산하여 선택한 것으로, 그것은 의지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의지를 잘만 사용한다면 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의지를 다른 어떤 능력과 달리 상위에 두고자 한다. 그 의지의 결단이 지성의 계산 없이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이들은 의지도 최종결단에서는 자기 지식으로서 상식과 양식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잘 사용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결단이 맹목적이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관습적으로 만들어진 자기신념이든 종교 신앙이든 지성의 영향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사건들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사건의 영향 아래 더 깊은 본능에 충실한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본능이 자기보존에 맹목적이라는 가정을 받아들이면서, 지성과는 다른 방식을 사용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본능을 동물적 또는 아메바적이라고 비하해버리면, 간단히 지성이 우위이고, 지성의 계산하는 판단과 달리 포괄적이고 전체적인 판단에는 의지가 작동한다고 여긴다. 사람들은 신체의 감성, 의식의 지성, 그리고 삶의 판단의 의지가 따로라고들 한다. 이런 논의들도 인간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사유하는 것이라고 본다.

살아간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문제는 인간이 생명체로서 자연의 흐름과 절단 그리고 자연의 순환과 재생산에 익숙했던 시절을 지나, 산업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에게 다가와 있다는 것이다. 우선 토지와 더불어 자연생산을 위주로 하는 삶에서는 자연 순환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인간이 먹을 것을 저장하고 집을 짓고 옷을 입는다고 해도, 자연 속에서 자연생산은 자기 회귀의 길을 간다. 곡식이든 집이든 세월의 흐름에서 변질하고 소멸한다. 그 변질하는 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생명 있는 존재들은 잘 알고 있었다. 먹고 싸고 자고 일어나고 하는 흐름의 과정에서 생물체들이 자기 방식대로 순환하는 방식을 형성하고 관습대로 다양하게 살아간다. 그러다가 인류가 도구를 발달시키면서 점점 더 흐름의 절단을 잘하게 되고, 또 그 절단을 고정해서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안정되게 한다고 믿고 산다. 자연에서 고착적이고 고정적인 면들을 만들면서, 자연 속에서가 아니라 자연을 도구로 또는 대상으로 삼고, 그 자연의 자기순환과 회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철학사의 시작을 두고 자연의 이법(理法)에 대한 관심이 신화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전환했다고들 한다. 그 이법을 아는 것이 순리대로 사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법을 신화와 더불어 참주의 법치와 대립으로서만 생각했으나, 참주의 법률에 익숙해진 관습에 젖으면서, 이법을 따르는 것이 법률을 따르는 것보다 열등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법을 대상에 대한 자연법이라고 여기고, 이것을 본능의 삶이라 여기면서, 법률의 영속성을 위해 지성의 체계와 원리들을 창안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률 그 위에 신법을 설정하기에 이른다. 그러다가 이런 신법을 무한 소급하여, 자연법 이전에 신법이 있었다고 추론하는 사고가 등장하면서, 자연은 법치의 하부, 게다가 신법의 하부 중의 하부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자연을 떠나서 사회 또는 체제 속에서 권력이 우세하고, 다른 한편 법률의 권력을 넘어서 원리의 권위가 우선하다고 여기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런 전도된 방식은 이상하게도 철학사에서 기원전 300년 경에 논리학과 기하학의 체계가 성립하는 시절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삼단논법의 증거하는 방식과 기하학원론의 증명하는 방식은 전혀 다른 방식이다. 증거와 증명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논리학의 증거와 기하학의 증명이 언어와 도형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언어의 대상은 그래도 사물이며, 도형의 대상은 추상된 점과 선이다. 이 둘의 정합적 체계가 하나의 방향으로 여기는 것이 양식에 가깝다면, 이 두 방향이 다르지만, 평행을 이룰 수 있다고 여겨, 초기에 더는 묻지 않고서 상식에 근거하여 유비적으로 타당성만을 근거로 삼는다. 이런 상식과 양식이 사유체계의 우위를 차지하면서, 철학을 한다고 하는데, 이는 삶 또는 실재성과 멀어진 것이리라. 어쩌면 철학적 사유는 이미 자기도 모르게 또는 암묵적으로, 인간이 자연보다 상위 또는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나아가 자연을 대상으로 다루면서 탐욕과 오만에 빠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다루는 자들이 이것을 내면적으로 아는 자들을, 사용가치가 없다는 명목으로, 열등하게 취급하였고, 다루는 자의 방식에 따라오지 않은 자들을, 자기들과 비교해 도착자들로 규정하였다.

대상을 다루는 자는 공감하며 상부상조하는 자들이 자기의 이익에 맞지 않는다는 법리로 배척하고 제외하려 하였다. 그들은 다른 이들을 먼저 억압하고 또는 공포를 심으며 협박하였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우월성에 대한 다른 대처 방식으로 정복과 식민지 노예로 삼는 폭력이 있었다. 이 정복은 상대 토지에서 삶을 몰살시키기를 서슴지 않은 것이다. 로마는 카르타고에 소금을 뿌렸다고 했던가. 지배자는 더 이상 그 토지에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만들고자 했다. 자연은 사용자의 논리에 속하지 않는다. 자연은 복원하고 그 토지에는 추어들과 기억을 지니고 지금도 살고 있다.

사람들은 사고 체계가 있기 전에도 인간은 도시를 건설하던 시기로서 기원전 7천 년 전부터 수많은 전쟁과 소멸이 있었다고 한다. 전쟁은 있었지만, 소멸이 있었을까? 아니면 전쟁의 과정에서 절단을 피해 다른 곳으로 흐르지 않았을까? 그보다 자연재해도 소멸의 한몫을 했을 것인데 흐름은 돌아서 돌아서 회귀의 과정을 걷고, 새로운 토지 위에 삶을 영위해 나간다. 긴 세월의 이야기 즉 신화와 설화로 남았다.

그런데 인종들 간에 전쟁에서 노예로 삼는다는 조건 이전에, 노예로 살기보다 죽음을, 이라고 말하며 저항했던 시대가 있었을까? 아무래도 노예보다 자유라는 용어를 역사상으로 떠올리는 것은 종족의 집단이 관습과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 방식이 가능할 때라고 본다면, 전설 따라 이야기에서 기록상 이집트 왕조 시작의 기록으로 보아 기원전 3천200여 년 경으로 어림잡을 수 있을 뿐이다. 또는 바빌론 3천여 년경, 중국의 3천여 년경, 인더스 문명도 마찬가지로 잡는데, 이 시대들이 정복과 투쟁의 시대였을까? 문명의 건설에서 상부상조 노력의 시대였을까?

물론 삶에 이익과 편리를 추구한다는 점을 기본으로 하면, 사냥에서 전쟁의 방식이 인종들 간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도 그 많은 문자 이전의 설화는 전쟁의 설화라는 점이다. 그 흐름의 절단면은 전쟁이 전부였을까? 들뢰즈는 흐름은 단절의 장애를 우회하기도 하고 밑으로 흐르기도 하고 산과 벽을 넘기도 한다고 했다. 왜 이른 리좀의 흐름의 이야기는 사라지고, 절단의 단면으로 문명의 지배로 역사가 쓰였을까? 지금도 자본제국의 이야기를 떠들고 있음에서, 값싼 노동력의 인민들은 세계를 흐르고 있다. 자본이 흐르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산업사회 이후로 전쟁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은 전쟁이라는 말을 끄집어내면서 어느 사회집단이 부를 획득하고 지배권을 누릴 방편으로 용어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세기 전 1차 대전에서 유럽 국가 간의 부의 경쟁에서 식민지 쟁탈전이었다고들 한다. 내가 들었던 이야기로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십자군 전쟁 이후로, 다시 한번 교회와 왕권들이 자기들의 기반을 다지려는 방편이었다고도 한다. 그래서 1차 대전에서도 교회가 전쟁을 막기보다 부추겼다고 한다. 이런 근거로서 중국에게 전쟁을 걸게 하는 것은, 선교사의 박해를 핑계로 교회 권세의 확장에 국가권력을 끌어들인 것이라고들 한다.

‘어떻게 종교가 인민이 죽어 나가는데, 권력들의 전쟁에 동의하면서까지 교권의 권세를 누리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던가’에 대한 대답으로, – 그 이야기를 하는 자는 크리스트교든 유대교든, 이슬람교든 자기들의 재산을 지키는 방편으로 전쟁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금도 엄창난 부를 누리고 있으며, 그때에도 이름하여 ‘성전(聖殿)이라는 교회’의 부를 지키자는 암묵적 동의 아래 전쟁을 수행하였고, 교회의 재산은 인민에게 나누고 전쟁을 반대하자는 반대파를 제거할 때는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반(反)애국으로 몰았고, 종교 자체에서는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박해하였다는 것이다. 이 혼란한 세상을 조장하면서 이합집산으로 교회 전체의 총괄하는 부를 늘여갔다는 것이다.

13세기에 프란체스코파들이 말하듯이, 교회가 가난한 자의 천국을 말로 하기보다 교회 재산을 인민에게 환원하면 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말로만 가난을 구제하고 전쟁 없는 평화를 이야기 해봤자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14세기에 파리의 프란체스코파 학자들이 도미니크파 학자들에 대해 비판하다가 당했지만, 18세기에 아나키스트들이 말했고, 20세기 초에 프랑스 공산당이 독일과 전쟁을 반대하면서 주장했던 것이다. 파괴는 다음 건설에서 어느 한쪽으로 부 또는 자본을 몰아주는 방식이라고 한다. 이런 방식이 산업화 이래로 불평등은 점점 심화되어 2세기 전의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차이보다 21세기 차이를 엄청나다고 한다. 지금의 러시아와 우크라니아 전쟁과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에서, 어디에서 누가 재화의 집중화와 자본의 재영토화를 실행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자본제국으로서 미국이 몰락하는 중이고, 다극화의 세계를 여는 중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전쟁을 부추겼던 종교와 국가는 주구로서 하수인을 키워왔고 또한 보수화라는 이름으로 존속되게 만들었다. 이 점에서 권세와 권력은 여전히 탐만치에 빠져있다. 어쩌면 탐만치를 벗어나기 위해 주구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은 저항과 항거가 공염불이 될지도 모른다. 주구가 아니라 근원을 폭파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근원 폭파의 노력은 있어왔다. 프랑스의 샤르트르학파, 프란체스코학승들, 아나키스트들,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로 이어지면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토마다 다 같은 것이 아니고, 살아온 관습과 습관은 전혀 달리 살아가는 방식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 당연을 넘어서는 것은 인식의 차이라기보다 교육이다. 교육 자연은 자기 방식으로 흐른다는 알게 하는 것이다. 윤구병 말대로 어린 시절에는 토지 위에서의 교육이 필요하다. 윤구병의 “특별기고(2017)”는 참조할 수 있다.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흐르면서 줄기를 창발하는 것이다. 탈주로를 찾고 있다. 역사 속에서 이 많은 글과 이론들을 전개해 왔음에도, 이제도 그 글에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살고 있다는 한계에서 흐름은 개념도 관념도 아니라 이미지이다. 이미지를 만드는 중이다.

다른 한편 아직도 천문학과 물리학이 생물학과 심리학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이 있다. 물리학처럼 중심은 하나라고 쳐봐도 1초에 퍼져나간 구(공)위에 무수히 많은 점은 다양하다. 다양한 점들만큼이나 생명체들이 있다. 각 생명은 자연 자체의 여러 방향 중의 하나이다, 그 하나 중에서 다른 하나에 쿼크니, 끈이니 초끈이니 하는 이야기를 붙인다. 그 끈이든 초끈이든 1초 만에 우주가 생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지구상의 생명체에 관하여 말하자면 흐름의 과정이 삶인데, 그만큼 많은 시간을 흘러가야 현 생명체의 삶이다. 그 흐름이 언제 시작했으며 언제쯤 끝날 것인가를 말하는 것은 이미 혁명을 포기한 자이다. 들뢰즈는 혁명이 이미지라 한다. 마치 한 사람의 삶이 마감할 때 그 사람의 이미지가 있듯이, 혁명은 다른 세상을 만들었을 때, 한 시대를 마감할 때 이미지가 있다. 이미지를 만드는, 즉 창발하는 자는 완성을 말하지 않는다.

그 이미지의 형성은 자연의 과정일지 아무도 모르지만, 흐름의 한 줄기로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레닌을 이름으로 하여 소비에트 연방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마오쩌뚱의 이름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20세기 후반에는 미국의 패배가 낳은 호치민의 이름으로 베트남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미지 만드는 과정과 작동은 혁명이며, 들뢰즈에게서는 철학이다.

(3:28, 56WMA) (4:29, 56WMA)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볼 수 없는 것(l’invisible)”, 시간과 공간 [천 하룻밤 이야기]

“볼 수 없는 것(l’invisible)”, 시간과 공간

2023 12 07 대설(大雪) {젊가13010형이상23시공}

 

교육의 문제는 인류사에서 난제일 것이다. 교육의 필연성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지만, 르네상스 이래로 교육이란 일반인을 포함하는 교육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프랑스에서 교육이 1882년에 요즘 말하는 평등, 무상, 세속(무종교) 교육이라는 법령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모든 어린이에게 어떻게 학년 구분의 교육방식과 교육의 내용을 설정할 것인지를 고민하여, 요즘의 각 학년의 구분을 검사하는 제도를 만들어서 어느 지식을 갖추면 몇 학년 등으로 분류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70년대에는 초등 3학년에서 구구단을 외우게 했는데, 요즘은 초등 2학년 때 한다고 한다. 전에는 중등 1학년 때 인수분해를 배웠는데, 초등 6학년이 되면 이미 인수분해를 알아채고 다룬다고 한다. 수학 만이 아니라, 물리학, 그리고 생물학, 건강을 위해 인간의 신체를 다루는 방식은 학년에 따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세계가 교육 방식에서 거의 공통의 진행방식을 따라간다. 유전자(DNA)에 연관과 미토콘드리아 역할은 고등교육에서 다룬다. 그런 교육의 배치와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종합과정으로 철학을 해야 한다고 한다. 프랑스만이 철학을 대학입학 자격시험으로 네 시간에 걸쳐서 논술을 보고, 그리고 개인 능력의 실험으로 구두로 문답시험도 본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는 한자를 익히기 위해 ‘천자문’이란 단어의 기초를 배운다고 하지만, 어린이용으로는 “격몽요결”이 있었고, 사회의 생활을 위한 “명심보감”이 있었다. 그리고 제도 속에서 행정과 실무를 위해서 필수적으로 “사서삼경”을 통과해야 했다고 하는데, 중앙에서 관직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사대부들이 사서삼경과 이에 걸맞은 다른 문헌들도 탐구했다. 학문의 방법과 사회제도의 연관은 유교를 바탕으로 하는 조선 시대에 사서삼경이 중심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서양은 일곱(7) 예비학문이 있다. 문법, 수사학, 변증학의 삼학(trivium)과 산술, 기하학, 점성술, 음악의 사과(quadrivium)이다. 숫자로는 동서양이 모두 7학문이 기초이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서 임무를 맡기 위해서, 그들은 이런 기초보다 더 많은 공부를, 동양은 예기 춘추 등을 포함하는 10경을 읽어야 한다고 하듯이, 서양에서는 7학문을 넘어서 자연철학과 도덕론, 그리고 신학을 포함하였다. 이런 단계적 방식의 교육은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고대와 중세의 상식에 준하는 지식의 이해는 초등학교에서, 근대에서 개별학문의 등장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학문을 다루는 과정은 중등과정에서, 19세기의 다양한 학문이 생성되고 분류되는 시기를 다루는 것은 고등학교에서 할 것인데, 그 고등학교에 마지막 학년에서는 현대에서 여러 갈래로 벌어지고 있는 학문들에 대해 맛보기 정도를 한다. 대학에 가서 학문의 가지 중 하나를 잡고서 공부하라고들 한다.

각자의 관심에 따라 분류들의 가지를 따라가기에 앞서, 인류가 이 지점까지 오게 된 과정의 종합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 종합이 철학인데, 그 철학을 다루지 않는 우리나라 교육에서 교육의 방향 설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많은 이들이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시행할 배치와 배열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고 있지 않다. 왜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깊이 또는 여러 방식으로 철학을 다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 고중세나 서양 고중세에 종교의 힘이 강했다. 한쪽은 불교가 다른 쪽은 크리스트교가, 그리고 서양이 르네상스를 겪듯이 우리에게 신유학이 있었다. 등으로 보면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비슷한 길을 걸었던 것은 인류의 지식과 인식이 한계에서 오는 것이리라. 고중세에서 아무리 하늘과 우주가 무한하다고 말했다 하더라도 상식(5관)을 통한 지식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인류가 망원경이 발명하면서 눈으로 보는 세계 이상의 우주를 설정하고 설명하는 노력이 필요했고, 그와 더불어 다양한 사회 변화에 맞는 도덕론과 과학들을 다루게 될 것이다.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여러 학문들이 생겨남에도 기본적으로 자연(la nature)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중요하다. 서양철학사를 읽으면, 근대에 와서 신의 ‘자연(les natures)’, 인간의 ‘자연’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이 자연을 본성이라 번역했지만, 그 자연이 학문과 삶의 토대인 것은 분명하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부류들과 자연을 대상으로 삼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지식으로 삼는 부류들은 다르다. 자연을 공존이라 하는 공산주의자와 자연을 소유로 하려는 자본주의의 차이가 있지만, 인간의 자연은 상부상조와 사적 소유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두 부류가 있는 것은 현실 세상이다. 사람들은 세계관이 다르다고들 한다. 그 세계관이라는 관망(vision, 통찰)에 대한 견해들이 왜 다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다루는 방식을 나로서는 형이상학이라 부른다. 이런 문제 제기에는 탐만치가 들어있다고 본다. 형이상학은 탐만치를 벗어나려는 노력에서 나온 학문이리라. 탐만치의 이면에 들어있는 난제를 풀어야 한다.

 

서양철학사에서 여러 난제(수학, 언어, 운동부정)가 있었고, 그 난제들을 해결했다고 하면, 더 깊이 또는 더 멀리 난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그중에서 수학적으로 1을 깊이 들어가는 경우와 무한을 더 멀리(?) 나가는 경우는 일상인에게는 문제 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 1보다 깊이 있는 문제를 잘 보아야 탐만치를 벗어날 수 있다. 그러함에도 이런 문제 같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문제로서 제기되었던 것이 1(단위) 보다, 공간과 시간이었고, 형이상학에서 아직도 논의되는 문제이다.

문제 같지 않은 문제라, ‘우선 공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터전이 공간이잖아, 그리고 시간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이 시간이잖아’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서양철학사를 읽으면서 왜 이오니아의 질료에 이어서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의 한 축인 퀴니코스-스토아로 이어지는 현자들이 ‘볼 수 없는 것’(l’invisible)을 사유의 문제로 다루었을까? 그 스토아 현자들은 여러 방식으로 말했지만, 볼 수 없는 것을 거의 네 가지로 나열할 수 있었으리라. 공간, 시간, 원자(아톰), 영혼(퓌쉬케)이다. 유물론이니 실재론이니, 이미지니 하는 문제는 이 네 가지의 “볼 수 없는 것”에 관한 견해에서 나올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볼 수 없는 것’임을 통상적으로 인정하지만, 공간이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사유한 현자들에 대해서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현자들의 말하는 공간은 물건과 물건 ‘사이’가 공간도 아니고, 그리고 물건이 자리를 차지하는 ‘위치’도 공간이 아니며, 이 공간이 어떻게 있는지를 모르면서, 물건이 있고 사람이 있으니까 공간이라고 하는 것은 “공간”의 부분을 설명하는 방식이지, 공간이라는 전체 또는 현존을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공간을 불가분성과 측정 불가능성은 아무래도 현자들의 말놀이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이 현자들은, 이데아들이나 논리의 항들이 말놀이라 여기고, 공간의 실재성을 다루려고 하는 것이 말놀이가 아니라 삶이라는 것이다.

우선 시간을 보자, 시간이란 ‘볼 수 없는 것’이라는 인정하기는 쉽다. 그런데 그 시간이라는 것이 하늘의 수를 땅으로 환원하려는 플라톤의 시간처럼, 시간의 지나감을 설명하는 것이 시간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은, 지나간 흔적으로 설명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보면 그가 살아온 과정(흐름) 전체가 시간인데, 이 흐름 전체를 대상화하여 시간이라 부른다고 하는 것은 흐름을 사물처럼 대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벩송(Bergson)은 흐름을 대상화하지 않고서 ‘이미지’라고 스토아학자들처럼 말했다. 그 흐름은 어제라는 과거의 과정, 이제라는 현재, 그리고 내일도 살아갈 것이라는 아제가 있다. 시간은 어제, 이제, 아제의 세 단위를 잘라서 구별할 수 있다면 삼차원이다. 흐름에서 삼차원 이상을 인간으로서 생각할 수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제-이제-아제를 하나로 이미지로 생각하는 것과 차원 셋으로 잘라서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이 세 과정을 하나 보아, 생(Vie)이라고들 하는데, 현자들이 말하듯이 어제-이제-아제를 이런 의미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간은 시간과 달리 위치 또는 사이(간격)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그 너비 또는 부피 또는 무한으로부터 생각하는 것도 공간이 아니라고 한다. ‘볼 수 없는 것’으로서 공간(허무, 빈 것)이 논리적으로 점, 선, 면, 체적, 우주 등으로 차원을 달리하면서 위치와 크기의 관점에서 공간을 설명하기 위한 항목들을 설정할 수 있다. 문제는 단위 설정이다. 점으로부터 설명할 때, 점이 위치와 크기가 없는 차원인 0차원이고, 선이 1차원이라 한다. 이 0차원에서 점이 공간을 설명하는 항목 또는 대상이 아닐 것 같다. 다른 한편 수학에서 지수의 도입으로 x의 3승이 체적이면, x의 4승은 무엇이며, x의 5승은 무엇일까? 수학자들은 5승 이상을 다루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차원이 사유에서 있을 수 있듯이 공간은 볼 수 없고 나아가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차원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무한이 수의 나열에서 무한이 아닌 다른 차원이 있을 수 있다면, 공간은 시간과 달리 ‘볼 수 없는 것’이 다른 차원일 것 같다. 왜 원자론자들이 원자와 ‘빈 것’이라 했는지, 그 빈 것이 볼 수 없는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원자가 볼 수 없는 것으로 삼았던 현자들의 사유가 형이상학의 사유일 것이다.

앙리 벩송(Henri-Louis Bergson, 1859~1941)

 

시간을 볼 수 없지만, 삶의 과정과 천체의 운동으로 보아도 ‘흐른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없고, 그럼에도 생명체인 한에서 흐름이 실재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어제-이제-아제의 삼차원으로 설명하는 것이 그럴듯하다. 이와 유비적으로 추리하여 공간을 삼차원에 한정시키는 것은, 흐름으로서라기보다 부피[너비]를 지닌 생명체인 한에서 신체가 공간 속에 어떤 자리 또는 위치를 차지하는 체적이라는 점이다. 시간과 달리 공간 속에 체적으로서 물체 또는 신체는 3차 이상의 차원을 현실화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사유에서 실험적으로 3차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지만, 생명체를 다루는 한에서 3차원의 방식과 시간의 3차원을 겹쳐서 우화적 이야기가 난무한 것이 세상사일 것이다.

주역에서 8괘를 넘어서 4차원을 사유하지 않고, 삼차원을 두 겹으로 겹쳐서 64괘를 설정한 것은, 내가 보기에 나와 타인과의 관계 설정과 유비적으로 두 3항을 겹쳐서 삶의 양상들을 64가지로 나눈 것이며, 이는 요즘 MBTI의 8괘의 방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말하자면 MBTI는 상식적 차원에서 인간의 자연들(본성)을 구별했다면, 복잡한 국가 또는 사회 체제에서 다양한 자연들(양상들)을 64가지로 분류하면서. 각 괘가 한 인간의 전형 또는 한 사건의 전형을 넘어서서 해석하는 틀로 보았을 것이다. 자연에 대한 설명을 이런 이분법적 나눔으로 해석하는 것이 3차원 이상을 다룰 수 없다 또는 다루기 어렵다는 것을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공간을 이분법적으로 다루는 것에 익숙하여 MBTI로 다루거나 좀 더 깊이 있게 64괘로 다룬다고 하더라도, 생명체의 삶의 과정은 이런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판단하려고 할 때 어떤 단면을, 의식상에서 추억, 또는 현재의 찰나를 기준으로 그 인간에 대해 해석하고 판단하려 한다. 그러나 그 인간은 흐르는 과정이며 변화와 운동 중에 있다. 그런 운동과 변화 중을 공간상에서 정지된 측면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안다. 과정이고 흐름이기에 공간이라는 위치 설정도 궤적도 아니지만, 이런 방식으로 해석이 편리하다는 것도 사람들은 안다. 현자의 ‘볼 수 없는’ 공간은 어쩌면 원자보다 영혼과 맞물려 있을 것 같다. 그 영혼은 볼 수 없는 것이므로 점, 선, 면, 체적 속에 속하지 않지만, 그래도 해석과 설명을 위해 삼차원(신체)으로 환원해야 편리하다는 정도일 것이다. 공간 속에서 점이 움직인다고 여긴 쪽이 원자론자라면, 공간 속에서 영혼이 움직인다고 하면 스토아 현자들일 것이다. 이 두 계열로서 퀴레네학파와 퀴니코스학파는 공간 설정이 학문의 기초라고 보았거나, 공간 설정이 안 되지만 공간과 같은 설정이 필요하니까 영혼을 삼차원의 방식에 유비적으로 다루었을 것이다.

그런데 벩송은 공간이든 시간이든 이미지 덩어리가 활동 중이며, 스토아의 체와 마찬가지로 이미지로 설정했던 이유가 있다. 그 운동 중이란 우주도 이미지이고, 운동 가운데에서 운동하고 있는 개체도 이미지이며 운동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 우주라는 운동 중인 이미지가 자연이라고 하면, 이오니아학파의 자연 즉 휠레로 거슬러 올라가고, 휠레 속에 연속적이 운동하는 개체의 이미지는 언젠가는 우주의 이미지로 되돌아간다고 하게 되면 자연회귀이고 그 자연의 운동 중이라는 의미에서 자연의 자기 활동성 또는 자발성이 형이상학의 기초가 된다. 이것을 스토아학파를 본떠서 벩송의 형이상학을 설명하면, 자연론, 휠레론, 유물론이며, 공간과 시간은 운동중인 이미지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벩송은 플로티노스를 통해서 스토아로, 퀴니코스로, 소크라테스로, 이오니아로 심층에서 연속하는 흐름을 철학으로 보았다. 철학은 운동하며 역동적이다. 이런 사유는 부동의 신을 사고하는 소르본 대학의 신학적 관점에 빠진 관념론들과 다르다.

운동하는, 흐르는, 덩어리가 이미지이며, 코스모스의 이미지이다. 이것이 그리스 철학의 코스모스에서 로마철학으로 넘어가면서 유니버스로 향하였다. 그 유니버스에서 사적 소유를 과거-현재-미래의 차원에서 유지하는 신학이 바울 이후 323년 삼위 격의 성립이다. 그 삼위 격이 상호부조 공동체를 버리고, 부동의 신의 자연에 사적 소유을 안겼다. 서양철학사 2천 년에서 공동체와 사적 소유의 논쟁이 형이상학의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관점의 차이이다. 종교가 사적소유를 인정하면서 어떻게 변질되었는지를 잘 안다. 그들은 볼 수 없는 것을 대상으로 만들고 크리스토스라고 부르면서, 상부상조의 공동체를 주장하는 이들을 즐겨 마남(魔男)사냥을 했다. 벩송이 보는 철학사적 관점이다. (4:08, 56WKG)

(4:31, 56WKGG)

 

♦ 참조:

성격학(caractérologi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41.(P.304)

성격들의 연구.

이 용어는 분트(Wilhelm Wundt 1832-1920)에 의해 창안되었다. 성격학은 성격의 분류와 그 형성에 관해 연구한다. 분류는 시험(tests, épreuves)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며, 가장 유명한 것은 로르샤흐(Hermann Rorschach 1884-1922)의 시험인데, 그 시험은 두 장의 종이 사이에 잉크 점을 으깨어서, 이 흔적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 불러일으키는 생각을 물어보는 것이다. 비에르스마(Wierzma, 홀란드)와 헤이만스(Corneille Heymans 1892-1968 벨기에)가 행한 매우 복잡한 “격자칸”(les grilles)의 시험이 있는데, 이 시험을 이용하여 매우 유명한 분류법을 확립하였다. 그 분류는 1. 정서(l’émotivité), 2. 활동(l’activité), 3. [반향으로서] 주도적 또는 부차적(la primarité ou la secondarité)으로 한다. 여기서 선도자(le primaire)이란 현실적 운동 속에서 살아가는 자이고, 조연자(le secondaire)는 자기 안에 경험들이 흔적으로 또는 깊은 반향(retentissement)으로 남아있어서, 이런 사실 때문에 과거 경험에 의해 여전히 제재를 받는 자이다.

단순히 사람들은 일반적인 방식으로 내성적(introverti) 성격과 외향적(extraverti) 성격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자시 자신으로 향하는 성격이고 후자는 수다를 떨고 세상에 개방적이며, 내재성에 관계하지 않고 한계까지 가보는 성격이다. 예를 들어, 내성적인 성격은 그림을 감상하거나 세계의 광경을 보는 경우 특히 “움직임”(le mouvement)에 민감하며, 분열상(schizoïde)의 경향을 띤다. 그 예로 반고호(Van Gogh 1853-1890)의 『측백나무(les Cypres)』는 특히 이런 해석에 알맞다. 외향적 성격은 특히 “색깔”(la couleur)에 민감하다. 그리고 사물들의 “형태”(forme)에 주목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학식 있는 지성의 전형이며, 우울(mélancolie)하다 [형상주의는 철학적으로 좋게는 금욕주의, 이상에 대한 실망에 따른 허무주의에 가깝다]. 이 움직임, 색깔, 형태의 세 가지 모두에 균형적인 전형이 있는데, 이 대표자로서는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로 소개된다. 내성적 성격과 외향적 성격 사이의 대립은 근본적으로 문학과 과학 사이에 나타나는 대립이다. (아래 도표 참조)

(43TKC)

 

성격학caractérologie 표

(이 도표는 8괘의 전형과 닮았다) (43TKC)

이런 상식으로, 물체가 정지 또는 운동을 그 자체로부터 설명할 수 없다고 여긴 것을 넘어가는 것이 갈릴레이와 뉴턴이다. 물체는 움직이고 있고, 게다라 나아가 진동하고 있다는 것은 열역학 다음으로 전자기학의 설명에서 등장한다. 물체는 움직이는 중이라는 것은 1930년대 불확정성의 원리 이후에 우주는 움직이는 중이 된다. 고대 이오니아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후 퀴니코스-스토아 계열에서 정리하기를 “볼수 없는 것”으로 공간과 시간, 원자와 영혼이라고 할때도 움직이며 변화하지만, 대상들처럼 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문제 제기 한 것이다. 마치, 거짓말쟁이 파라독사든지, 원이 직선으로 환원되는지에 대한 문제 등도 마찬가지로 풀 수 없는 난제였는데, 이런 난제에 거리를 두고서 출반한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56WKJ)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만에 하나 [천 하룻밤 이야기]

만에 하나

2023, 11, 08, 입동(立冬)

     요즘 입말로 밥 먹기 전에도 길거리에서도 중얼 거린다. 세월이 흐른다. ‘평화통일 영세~ 중립코 리아~’(11자)라고. ‘나는아무 것도~ 하지않 겠다~’(11자)는 바틀비가 웅얼거리며 세상을 향해 뱉어낸 내밀한 무의식적 무의미(파라독사, 염불)가 아니다. 세상에 아무도 이 말을 주목하지 않는 점에서, 무(無) 또는 공(空)과 같다고 충고들 한다. 아니야, 그래도 이 입말을 리토르넬로(반복)처럼 중하게 여기지는 아닐지라도 한 번쯤은 반복적인 염불을 외는 이들이 있을거야. 그래 그 사람들이 만에 하나라도 매우 소중하고, 그들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후렴처럼 계속하는 반복에서 혁명이 있다니까. 그 반복은 동일반복이라기보다 이질반복으로 흐른다. 그 혁명은 없는 것 같은 공집합(φ 피)에서 나온다. 그 공집합에서 저항, 봉기, 항쟁, 혁명이 있다고 하는 이들이 우리나라에도 만에 하나, … 그러니깐 8천만명에 8천명이 되다니, 놀라워서, 만에 하나 상호소통과 공감을 리토르넬로로 ‘평화통일 영세~ 중립코 리아~’.

  만에 하나란, 길거리에 1천만 서울시민에게 한 종이비행기를 날리면 그 비행기에 맞을 확률이라고 치면, 천 명이나 된다니. 이런 논리가 세상에 적용되다니. 초월자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다니. 이런 사고에서는 점(點)과 같은 사고를 한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점, 그것은 사실상으로도 권리상으로도 볼 수 없는 것에 속한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문제가 아니라도 그러한 점은 차원이 없다. 선이 일차원이고 면이 이차원이라 한다. 그럼에도 점처럼 사고하는 것을 빗대어, 볼 수 없는 것임에도 원자처럼 사고하는 것을 유물론이라고들 하는데, 왜 벩송이 볼 수 없는 점(원자)을 상정하는 것을 통속적 유물론이라고 했겠는가. 우리나라에서 벩송에 대한 오독 중에 가장 큰 문제는 “추억들”과 “기억”을 구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추억들은 원자들과 유비로 쓴 것이고 기억이 실재성이며 흐름이다.

   소크라테스 이래로 소크라테스를 현실적으로 또는 사건적으로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했던 이들은 플라톤도 크세노폰도 아니라, 퀴니코스 학파의 창시자인 안티스테네스라고 한다. 그는 헤라클레스를 모범으로 삼는 시나고르게스 학교를 나와 걸승처럼 흘러서 살았다. 이 퀴니코스학파를 중요하게 여긴 프랑스 철학자는 푸이예 였고, 벩송은 플라톤주의와 달리 소크라테스 계승자로서 신플라톤주의의 플로티노스를 이야기하듯이, 푸이예의 소크라테스를 이야기 한다. 이 퀴니코스학파는 ‘개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하는 이들은, 마치 점이 현존이라고 사고하는 요상한 사람들이며, 점은 존재이며 현실을 사는 이를 개돼지 취급하는 극우들이다. 철학사를 잘 읽지 못해서 퀴니코스 학파를 비하 또는 빨갱이 악마로 만든 것이다. 점을 숭배하는 이들이 철학사를 잘못 읽었다고 들뢰즈가 한탄하지 않았던가. 벩송은 전도된 철학사였다고 했다.

    퀴니코스를 이어 초기 스토아학자들은 철학의 어려움을 다루면서 제기한 문제거리로서, 볼 수 없는(l’invisible) 것이면서도 현재하고 있는 것이 셋 또는 넷이라 전했다. 우선 시간이고 그만큼이나 공간이며, 또 다른 하나는 원자이고(스토아학자들은 통속적 유물론을 그나마 인정해준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첨가할 수 있다면 아마도 소크라테스가 문제 삼았던 프쉬케(영혼)일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야 보고 느끼고 만지고 하는 것이 아니면서도 철학사에서 모든 철학자들의 반찬거리처럼 등장하였지만, 철학사적으로 주식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철학자는 적어도 19세기 중반까지는 거의 없었다. 그런 이유는 점의 유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불교에서는 점이 한편 공이고 다른 한편 공은 곧 색이라고하며, 대중의 사유를 꼬이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나름의 이유(la raison)가 있었다. 유학은 신유학에서 태극이니 무극이니 하면서 받아들이는 척하다가, 도덕과 현세에서 적용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챘다. 초월자를 현세에 적용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문제는 태극 즉 무극에서,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삼는다는 것이라기보다, 잘 모르는 것에서 알아가면서 있는 것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다는 사유일 것이다. 다음으로 ‘양은 있는 것, 음은 없는 것’으로 분할을 현실로 삼게 되면 주역 자체가 무너질 것이다. 둘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교대와 변화의 관계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묘하게 불교에 가까이 가는 것 같지만 유교는 시간과 공간에 연관이 많고, 불교는 영혼과 기원에 더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어째거나 현실 또는 현존하는 있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학은 사건의 철학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사고의 논리 끝까지 탐구하여 기를 원리로 삼던, 리를 원리로 삼던, 둘 사이에 구별(차이)을 분할의 방식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표면의 철학이다. 그럼에도 슬그머니 무는 사라지고 변화의 복잡성을 차이(차히가 아니다)로서 64개를 분할(구별)하고 거기에 다양한 의미와 개념을 부어넣었다(한자를 알아도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제각각이다. 서양 말로 파라독사들의 잔치인데, 너무 복잡하여 마치 실증적으로 대응되는 것 같기도 하고 의미 있는 것 같기도 하게 여긴다). 이에 비해 불교는 없는 것 같으면서 있는 것 같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것이라는 상호변전 또는 상호침투 같은 것을 인정하면서도, 분할이 없기에 각각이 없지만, 말로 하는 “찰나”에는 분할의 각각이 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자아(영혼)은 각각이 있지 않고 흐르니까, 각각을 말하는 “순간”에도 각각의 실질적 사태 또는 현상으로 다루기보다, 이어지며 흐르는 의식의 흐름을 다루려 한다. 둘이 아니라, 넷이 아니라 하나인데, 벩송도 말하듯이 찰나가 아니라 순간 지속이 있듯이, 진여의 흐름이 있다. 뭔가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또는 표현할 수 없으면서도 삶은 변화와 변전, 생성과 창조를 이루며 흐른다. 둘도 하나도 아닌 것, 불립문자, 개구즉착. 그리스 철학의 볼 수 없는 것(l’invisible)의 문제제기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이 문제는 서양 철학사가 어느 정도 전개되어 하나(존재)와 그에 대립으로 무(비존재)를 설정할 수 있는가에 있었다. 철학사는 무를 설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부분인데 비해, 신앙에 물든 자들은 무를 인정해야 논리적(로고스) 사고를 전개할 수 있었다. 이 착각을 벩송이 첫째 착각이라 한다. 그러나 무는 없다. – 이점은 불교도 유교도 마찬가지이다 – 그럼에도 하나의 대비로서 무는 왜 나오는가? 착각이 환상을 낳고 환상이 망상을 그리고 파라노이아를 낳는다.

   하나를 성립시키는 논리 방식에서, 여럿 속에서 하나는 뽑아내는 즉 추상하는 방식으로 나온 ‘하나는 있다’가 아니라, ‘하나는 이다’라는 것이다. 즉 추상의 하나는 현실과 실재와는 아무 연관이 없다. 그럼에도 신앙자들은 그 하나(1)가 없으면 삶의 편리와 안전은 없어 진다고들 한다. 그들은 하나가 흐른다고 하면, 무엇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대상화에서 일반화의 방식이 나오고 일반화에서 개념작업이 그리고 개념작업을 통한 개념들에서 추상의 상징(대상)이 나오며, 이를 이데아라고 하던 에이도스라고 하던 간에, 그 상위의 상위 것은 “있다”와는 별개의 것이라고 한다. 그 논리적 사고의 의미에서 추상은 있다가 아니라 ‘이다’이다.

   언어학에서 소쉬르가 입말에서 들리는 “기표”와 들은 것의 사유 속의 의미를 생각하는 “기의”를 설정했을 때, 기표와 기의는 사물의 실재성과 아무 연관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의 개념과 상징으로서 구축된 관념(초월이라고 하든, 신이라고 하든)은 자연의 실재성과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언어학에서 추상 또는 상징은 있다(existence)가 아니라 ‘이다(etre)’이다. 이 ‘이다’에서 ‘일 이다’ 모순의 개념화작업이 ‘일 아니다’이다. 일 있다와 일 없다는 논의도 실증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있다와 없다로 담론, 시론, 논증, 논리로 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논리 적으로만 ‘하나’ 그 외의 것은 ‘아니다’ 이다. 그런데 ‘아니다’가 ‘없다’로 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아니다와 없다는 전혀 다른 사유이다. 나로서는 이다 아니다는 사고(차이)에서 있다 없다는 사유(차히)에서 다루어진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다는 맞고(진리), 없다는 틀렸다(비진리)라는 이들은 더욱 심각한 광기 즉 파라노이아에 빠진다.

   ‘이다’와 ‘아니다’는 간단히 말하면 책 이다와 책 아니다 에서, 책이 아닌 것은 책인 것보다 무수히 또는 거의 모든 것(나무, 구름 등등)이다. 즉 아니다에 속하는 것이 훨씬 많다. 그러면 ‘이다’를 ‘모든 것이 이다’고 하면, 아니다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며, 전부다 있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이다’를 ‘모든 것이 있다’로 바뀌는 것을 아날로지(유비)라고 부르자. 아날로지(유비)는 이다와 있다의 차이를 연관시켜 말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다와 있다는 아날로지라기보다, 빗대어 겹치는 알레고리에 가깝다는 것이다. 볼 수 없는(invisible) 것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아날로지 또는 여러 파라독스라 치더라고, 그 대상이 있다고 바뀌는 것은 알레고리일 것이다. 유비는 닮은 점(동상)이 있다고 여기는데 비해, 비슷함(상사)에는 전혀 다른 차히라는 것이다.

    하나를 전체로 규정하는 경우는 하나를 무한으로 규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날로지가 아니다. 하나와 무한은 전혀 다른 차히를 지니지만, 둘 다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오류이다. 여기에서 철학이 고민하였다고 할 때, 어떤 흥미를 느끼는 집단이 고민하지 말고 하나가 곧 전체야 무한이야 면서 변증법적으로 되는 거야라고 한다. 이 집단의 사고는 알레고리를 신앙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 집단이 전체인 하나를 신으로 여긴다. 말그대로는 자연이 즉 신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다를 있다로 바꾼 이는 상징의 대상의 하나를 있다로 바꾼 것이다. 이 기이한 집단에게 고대철학을 제외하고 서양철학사에서 철학자들이 질식할 정도로 이어져 왔다고 하는 것이 들뢰즈이다.

   이런 관점이 기원후 2-3세기에 참주(황제)에 빌붙어서 주도권을 가지려하면서 요상한 집단을 형성하였다. 그런데 왜 철학은 이런 요상한 집단에 밀려서 답하지 못했을까 하는데,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 황제(참주) 권력에 짓눌려서 밀려난다. 다른 하나는 종교의 권세가 미래의 죽음이라는 공포를 심으며 억압했을 때 굴복하였다. 다른 하나는 진리의 논법이 1+1은 2이라는 이다의 논리에 대해 생성으로 대꾸해 보았자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그 상식의 논리에, 실재성의 사유는 거의 질식할 정도로 지내게 되었다. 이 셋째는 그래도 끊임없이 이의 제기를 여러 번 하였지만, 번번이 황제의 권력과 종교의 권세에 밀려났는데, 예를 들어 세네카에서 있었고, 브루노에게 심했고, 갈릴레이에게 약과였다. 논리의 교육과 사변(거울효과)을 통해 권력과 권세의 편에 붙어서 암묵적으로 봉사하면서, 권위를 누리는 쪽을 택한 것이 진리는 하나라는 보편학의 양식을 추구하는 길이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사이의 갈들을 보면 그러하다. 결국은 보편학이 종교 편에 붙는다. – 벩송이 보기에 스피노자가 보편학으로 갔다면 라이프니츠가 숨통을 열었다고 본다.

   하나가 있다가 아니라 이다라는 문제제기 하기에는 각 학문들의 실증적 발달이 있기 전까지는 거의 역부족이었다. 들뢰즈 표현으로 자연의 생성과 자발성의 견해는 “질식”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프로이트와 라깡의 파라노이아에 대해, 들뢰즈와 과타리의 스키조를 얼마나 비하시킬려고 앞장섰서 세계를 돌아다녔던 지젝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1이라는 하나의 항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고, 2의 항에는 4가지 경우가 있고, 3의 항에는 8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요즘 MBTI도 8가지 경우를 인간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이미 19세기 말에 있었던 상징적 분할의 규정들이며, 이 논리적 규정에서는 자연 즉 피(φ)가없다. 또 다시 상식이 자연을 질식시키는 논법이 유행하는 듯하다.

이를 4상과 8괘에 붙여보면 간단히 아날로지가 성립한다. 전통의 유학에서 3천년을 이어온 것은 사물과 인성의 갈래(분류)들과 변화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인데, 그 내용을 한자로 읽지 못하는 세대에 성격학이 인성을 해명해주거나 규정해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 8가지 성격규정이나 8괘에는 이다의 논리에서 전개되었던 무가 없다는 점에서 권력과 권세에 아부했던 권위들이 했던 점과 닮았다. 8가지 분류를 수학적으로 보면 7가지는 개별적인 것이 있고 하나는 공집합이다. 그 공집합(φ피)이 실재한다고 여기면서 러셀을 수학의 여러 파라독사를 전시했다.

    다시 하나로 돌아와서 1과 φ집합에 대한 로고스 논리를 누스 사유의 측면에서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한다. 논리학상으로 1은 대상이 되고 φ는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볼 수 없는(invisible) 어떤 것(φ)을 무화시켰다. 있다의 누스 사유에서는 둘 다 현존한다. 관심있는 대상(1)이 있고 관심없지만 현존하는 여러 지각작용들(φ)도 있다. 다시 말하면 몸을 지닌 자아가 있고, 자아가 살아온 시간과 공간의 과정은 볼 수 없지만 현재에 내재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말한다. 보이는 것으로 신체가 있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영혼이 있다면, 거봐 보이지 않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철학이 되느냐고 한다. 영혼은 이 문제에서 벗어나고 두뇌의 신경(AI)이 그 자리로 들어설 기세이다. 그럼에도 고대로부터 짓눌렸고 근세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던 누스의 사유에서 보이지 않는 것(l‘invisible, 엥비지블)을 철학의 전면으로 올린 철학자가 벩송이다. 그래 일과 같은(아날로지 상) 것으로 원자도 ‘엥비지블’하다. 공간과 시간도 엥비지블하다, 영혼도 엥비지블하다. 보이지 않는 것, 그것이 하나이다. 그 하나가 다양체이라 한다.

    지구는 하나다 조국은 하나라고 할 때, 현존하는 실재성으로 지구와 조국은 하나이고 자아(영혼)도 하나이라고 한다. 그래서 스토아학자들의 유물론은 이런 하나라는 전체가 인간의 지성으로서는 다 알 수 없지만, 흐르고 변전하지만, 예지(누스)로서 파악하면, 있는 것(현존)이고, 이 현존에서 생명, 숨결이 나오는데, 그 갈래에 따라 각각의 사물들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하나를 우리는 온(전부), 환(환하다)현존이라 한다. 환(온)은 그 자체로서 다양체이며, 움직이고 있고 시간에서 흐르고 있다. 우리가 다 볼 수 없고, 다 생각할 수 없지만, 환은 현존한다. 지구의 사실들을 보자, 지진, 태풍, 엘리뇨, 온난화 등은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도 현존하는 삶의 상태에서 여향을 주고받으며 부딪히며 느끼고 그것과 더불어 살아간다. 어느 때는 상호침투하고 어느 때는 배격하기도 한다. 자연이 배격하는 것은 잔인하고 냉정하다(들뢰즈가 말하는 자연 즉 여성이고 영혼 즉 여성이며, 페미니즘이다). 자연 살아있을 때 즉 생을 같이 할 때 상부상조로 온화한 것 같지만, 자연이 데려 갈때는 잔인하고 냉정하다. 누구는 봐주고 어느 인간을 살려주는 것이 없다. 자연이 온다양체이며, 생명이 환다양체이명 영혼이 다양체이다. 이것이 질료의 자기 변화이며 자발성이다. 이 다양체가, 요즘말로 화산과 지진, 날씨와 생태계 이상으로 복잡계이다.

    지구 또는 우주의 온다양체에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명(삶)은 환다양체이다. 다양체의 속에서 서로 상호침투하고, 상부상조하면서, 공동체와 까마라드리(동지애 또는 휴마니떼르)를 만드는 것이 인류의 살아가는 양식이 아니겠는가. 허리 잘려서도 아프지 않고, 가보지도 않고서 하나가 맞다고 다른 하나는 틀리다는 권력과 권세, 그리고 그것에 침을 바르고 글을 쓰며 학문한다는 권위에 대해, 다양체는 무관의 제왕(들뢰즈 용어이다)이다. 그 속에서 인민이 토대이며 최종심급이다. 인민의 권리가 공집합의 자연 권리와 같기에 경우의 수들을 교정할 수도, 수정할 수 도 있고, 권력을 끌어내릴 수도 있고, 권세를 뒤집어엎을 수도 있다. 인민이 자연(nature 본성)으로부터 자연 권리를 지니고 있는 실재성이고 현실성이기에 저항 항거, 항쟁, 혁명은 자연권(le droit naturel)이다. 한편으로 자연은 상부상조와 공명으로 따뜻함과 은총으로 살게, 다른 한편 자연은 냉정과 잔인으로 사라지게 한다는 것을 인민도 파라노이아 정부도 자연사의 흐름을 느끼게 될 것이다.

(3:34, 56VKE) (4:05, 56VKF) (5:06, 56VKH)

• 덧:

영혼, 그리스어 프쉬케(ψυχή)가 로마로 넘어오면서, 아니무스(animus, 남성형)와 아니마(anima, 여성형)로 바뀌고, 라틴어에서 아니무스는 정신으로 아니마는 영혼(l’âme, 여성형)으로 쓰인다. 그리고 아니무스는 정신(l’esprit, 남성형) 또는 성령으로 유비적으로 바뀌면서 유심론으로 이어진다. 영혼은 정신에 밀려나 질식하지 않고 물질성(아페이론, 휠레)에서 나온 것으로 유비적으로 유물론과 나란히 간다. 이로부터 상층의 지배와 심층의 무화 또는 결핍(나아가 악마화, 빨갱이화, 그나마도 19세기 후반에 눈치 챈 이가 니체이다)으로 여긴 것은 플라톤주의를 유일 신앙자들이 왜곡한 것이다. 따라서 상층의 권력, 권세, 권위의 패거리를 만들면서, 상층의 하나가 있다고 하고 심층의 하나를 비하시켰고 마남사냥을 서슴없이 행했다. 인민이나 여성이 당연히 자연처럼 비하되었고, 악마화되었다(페미니즘은 자연으로부터, 생성으로부터 사유를 해야 할 것이다). 벩송은 아니무스(남성형)의 철학이 아니라 아니마(여성형)의 철학을, 형상(관념)이 아니라 질료(물질)의 철학을, 정신이 아니라 영혼을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 자연(하나, φ피)과 신(하나, 1) 중에서 자연의 자발성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사유로서 – 19세기 전반에 생물학, 후반에 의학, 심리학의 성립으로 – 자연 즉 유물론이 전개될 수 있음을 알렸다. 사람들은 벩송을 유심론(spiritualisme)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틀린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자연 권리(자연권)로부터 사유해야, 생태계, 여성주의, 인민의 사유로서 창발, 창조가 나오고, 이런 창조가 자유이다. (56VKF)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소탐대실(小貪大失) [천 하룻밤 이야기]

소탐대실(小貪大失)

2023. 10. 08. 한로(寒露)

    어떤 교인이 북(北)에다 퍼부어주는 집단이야 말로 악마같은 집단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악마와 교류하자고 하는 이들이 나쁘다고 한다. 이에 대해 다른 어떤이는 매년 수조의 돈으로 무기를 사들이면서, 북에 비해 남(南)이 국방비를 많이 쓰면서도 자주국방을 하지 못하는 것은 위정자가 악마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자에게 어느 악마가 실재로 악마이냐는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전자는 정치이야기는 그만하자고 한다. 정치의 ‘정’자가 나오면 정치 이야기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북에 퍼부어 준다는 말은 정치와 다른 입장인 척 말하면서 정치 이야기를 그만하자고 하는 그 논리방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전자처럼 자기가 먼저 자기 판단을 말해놓고, 다른 견해를 말하면 그만하자는 사고방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마도 제 눈에 들보를 보지 않고서 남의 눈에 티끌을 나무라는 격인데, 나로서는, 그가 남을 비판하여 말해 놓고서, 그의 견해와 다른 견해를 함께 논의해보자는 데는, 이미 그가 맞고 남이 틀리다는 그 고약한 사고가 중세 종교재판의 사고일 것인데, 왜 20세기를 넘어서 21세기에도 진행되고 있는가?

    플라톤 전문가였던 박홍규 교수는 철학이 있는 자료들을 모두 다 놓고서, ‘어떤 이론이든 학설이든 자료에 근거해서 사유해야 한다’고 하였다. 모든 자료들을 삶에서 통 털어서 함께 보자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 수학,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그리고 인간과학들인 역사학, 사회학, 정치경제학 등이 있다고 길게 언급하면서, ‘새내기들이 그거 언제 다 해요, 하나 하기도 힘들고 바쁜데, 철학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돌아버리는 것 아닌가요? 그래, 머리가 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돌고 있다고, 하나라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을 잘 이해하기 위해, 하나에서만 답을 찾는 것을 조심하라’고 하였다. 여럿을 함께 다루는 방식을 추론적 사유라 부르고, 하나가 다른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는 방식을 추리적 사고라고 한다. 전자에는 경험의 총체를 추론하여 다루지만, 후자에서는 논리의 선후에 맞는 추리만을 한다. 전자에서는 ‘이다’에서 답이 있다고 여기고, 후자에서 ‘있다’에서 답을 찾기 위해 합의하고 계약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우리 입말에는 ‘이다’와 ‘있다’가 구별이 있지만, 서양 언어들에서는 그리스에서 로마로, 그리고 각국의 언어에서 분화하면서도 여전히 두 가지 사이의 구별이 모호하여 학문을 규정하는 방식이 늦게서야 등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들 한다.

    현대사에서 현실에는 패거리(카르텔)가 있다고들 한다. 카르텔의 설명하는 ‘이다’에서는 상식을 기반으로 순서와 배열이 먼저 있다고 공상하고, 반면에 ‘있다’는 자료들을 현실의 평면위에서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한다. 자료들의 분류와 배치에서 각자의 견해와 삶의 방식이 나올 것이다. ‘이다’는 현실이 아니라 상징의 배열로서 다루고, ‘있다’는 실재적 삶에서 무작위에 가까운, 어쩌면 무권위의 배치에서 출발하는 것이리라. 잘 모른다는 것은 무작위의 자료들을 어떻게 된 배치인지 배열인지를 먼저 알 수 방식이 없다는 것이다. 산과 계곡, 들과 강처럼 자연이 나누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연(nature humaine, 인간본성)도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이 어떠한 방식들로 풀어놓았을 것 같은데, 그 본성(자연)을 다룬다는 것은 어렵다. 자연의 배치와 배열을 요즘은 수학적으로 복잡계라고 한다. 복잡계는 ‘있다’를 다루는 것이지, 산술학과 기하학처럼 정해진 단위로 ‘이다’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있다’로서 현실은 두께를 가진 덩어리와 같다. 그럼에도 긴 역사 속에서 간략하게 보면, 3세대가 사는 두께도 평면이라 부를 정도로 얇은 층일 뿐이다. 열여덟 쯤에서 젊은이, 장년, 노년의 3세대가 현실의 평면의 각 층들이다. 이 평면들이 오랜 역사적 과정에서 길고 깊은 두께로서, 고조선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각각의 질서와 배치가 있었다고 한다. 시대의 평면을 겉으로 보아 단절과 새 질서로 보이지만, 깊이의 흐름은 연속적이고, 인간의 자연(본성)을 실현하려는 노력의 과정이었고, 맑스주의자가 말하듯이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따라 깊이[심층(深層)]의 흐름이 표면으로 올라오는 역사라 한다. 영혼의 자연이 표면으로 올라오는, 그 표출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루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왕조 시대 다음으로 식민지 나라에서 국가주의가 이식되면서 겉모습이 바뀌고, 깊이에서 흐름은 겉모습에 짓눌려 없는 것처럼 여겼으나, 백성, 중생, 대중, 시민, 인민으로 불리는 삶의 노력들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국가주의의 권력은 법률로서 정하고 있다고 여긴다. 오랜 관습과 전통의 흐름위에 변전하는 법률과 위계가 있건만, 얇은 평면위에서 심층은 법률의 권력에 눌려서 평면의 밑바닥으로 흐르고 있었다. 식민지 지배에서 법률을 누가 만들었던가 라고 생각해보면, 인민의 제헌헌법이 아니었고, 제국주의의 법률이었다. 그 법률에 의해 해방 이후에도 부역자들은 권력으로 남아 있다가 미국 제국주의로 넘어가서도 식민지 정치에서도 숭미파로 자처하면서 상층으로 남아있다. 권력은 겉으로 계속되는 것보다 더 강하게 이 터전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방식을 만들고 있다. 그 방식이 남쪽에서 여러 번의 봉기와 항쟁으로 혁명을 해보려고 했으나, 인민이 원천이면서 최종심급인 법률을 만들지 못했다. 국가주의에 이익을 챙기는 사적이익의 추구자들은 왕조시대에도 식민지시절에도 제국주의 지배 하에서도 여전히 상층이다. 이들이 헌법을 수정하며 몇몇 공화국들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이들은 과거의 미덕이었던 청백리도 아니고 사변적(통감, 거울에 비추기) 사유도 하지 않았다. 사적 이익, 돈을 위계의 꼭대기로 만들었다. 그 권력은 국가라는 공동체에서 구성원들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상층만이 누리는 방식을 만들면서, 앞선 시대의 덕목들조차도 악처럼 취급하려들었다. 홍범도 이야기만이 아니다. 어찌하여 공직에서 수십억 대 돈을 벌고, 97만원의 접대를 받아도 귀양 가거나 사약을 받지 않는가라고 하면, 그들은 그것이 구시대의 방식이고, 지금은 능력이 있으면 공무도 맡고, 돈도 번다고들 한다. 그것도 공공의 일을 하면서 말이다. 상층이 사적 축적을 당연시 하는 나라. 이들은 그래도 개인의 이익이 곧 나라의 이익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이를 비호해주는 이들이 있지 않는가? 인민 대중을 개돼지 취급하며, 상층의 논리를 만들어준 것이 누구인지를 아무도 묻지 않는 듯하다. 그 상층은 일제의 마름들이었고, 미국이라는 제국의 주구인데, 현 정부는 일본의 주구가 되기를 자청하는 듯하다. 그 상층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인민의 피와 땀을 팔아버린다는 점에서, 과거 산업시대의 매판과는 다른 정보시대의 매판인 것 같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나라와 터전조차 팔아치울 듯한, 이 소탐대실을 권력이 자행하고 있다. 이 귀결에는 세월의 경과 속에서 두께 있는 평면의 요동으로 드러날 것이다. 이 요동은 자연의 필연성에 의해서이며, 이름하여 복잡계와 같다. 생태계 뿐만 아니라 영혼도 복잡계이니, 개인의 특이성도 복잡계이다.

    국가주의의 등장 배경을 보면 유일신앙에서 교리(도그마, 독단)와 이론(체계)의 변형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 신앙자체로서는 이론적으로든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실재로는 없다. 인간 사유와 추론의 발달 과정에서, 또는 유일신앙의 사고는 평결과 계약에서 이익과 잉여를 취할 궁리로 만들었고, 이런저런 논의들 중에서 신앙에 맞는 것을 추리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어서, 철학적 이론을 유비와 알레고리를 사용하여 신앙자들을 현혹하여 그 집단의 제도적 체계를 만들었다. 이것은 삼위일체성립에서 스콜라철학까지의 과정이 증거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이단이라는 명목으로 처단, 화형, 잠수 시켰음에도 반성도 참회도 없었다. 잘났다고 무오류라 한다. 신앙의 무오류와 체계의 완전성이 있기나 한가? 그들은 권세라고 한다. 이런 권세를 누린 방식을 국가라는 단위로 옮겨서 권력으로 변신시켰다. 이로부터 유일신앙은 권력의 뒤에서 권세를 누렸고 누리고 있다. 성직자들과 교회들이 가난한 자에게 아카페를 실행하지 않고서, 왜 부를 축적하고 있는지를 되물어보면 알 것이다. 학문들 각각이 제자리를 잡기에 어려웠던 것은 권세의 독단이 거대한 힘을 발휘하였고, 천문학으로부터 물리학, 화학으로 차차 독단이 무너지면서 19세기 후반에서야 달리 말하기가 등장하였다. 그 유일신앙이 권세를 누린 것은 중세의 종교재판과 마남(녀)사냥의 방식에 있었다. 마남사냥을 본따서, 현대에 와서는 사상검열이라는 이름으로 악의 축만들기, 빨갱이 만들기를 하며 악마사냥을 하고 있다. 이런 전도된 사고를 뒤집으면 악의 축을 만드는 자들이 악귀같은 자들인 셈이다. 자기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선량한 의도를 가진 자들을 물속에, 불속에 넣어버렸지 않았던가. 일제는 독립운동을 종교재판 같은 보안법을 만들었고 해방 후에도 이런 권력은 마남사냥처럼 보안법을 휘둘렀다. 그 권력과 권세의 사고는 ‘있다’는 현실의 평면보다 ‘이다’라는 논리의 단면으로 재단하여 판결하고 심판하려 든다. 인민이 죄종심급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암묵적 카르텔이라기보다더 구체적으로 논리적 사고에서 동일성을 유지하였으며 서로는 유비와 알레고리로서 교환하고 있다. 이 악귀들은 그들이 저지른 악남(惡男)사냥에 대해 회개하지도 않았고, 공동체 또는 공공의 삶의 실천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산업시대에는 정치경제학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정당이 실천으로 나가는 길을 모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역사이다. 규소시대에는 아직 미지수인 것이 복잡계와 같다.

    서양의 중세이든 동양의 왕조시대이든, 정해진 학문의 틀 밖으로 나가서 사유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서양에도 동양에도 틀 밖의 사유를 하는 별종(anomalie)은 여전히 쭉 있어왔다. 별종이 어쩌면 인간의 자연(본성)을 온자연(Nature) 속에서 찾으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있다’에 관한 자료들(la donnée, les données)을 다루려고 했는데 비해, 비유와 알레고리에 젖은 하늘나라와 국가를 동일시하는 ‘이다’의 사고에서는 자료들(le donné, les donnés)을 상징처럼 다룬다. 전자에서는 자료들을 함께 다루어야 하기에 특이자, 개별자, 일반자, 관념자(이데아)의 성격들과 그것들의 능력과 기능을 총체적으로 다룬다. 이에 비해 후자에서는 1, 무한, 하나, 통일, 전체, 완전이라는 ‘하나’를 ‘이다’로서 다루었는데, 이들 모두는 ‘이다’의 ‘1’(하나)에 대한 추리로서 동일성의 귀결들로 향하고, 비유와 알레고리를 통해 동일성의 최상위 ‘1’을 완전하게 절대적이라 추리한다. 이 양자의 경우에, 전자에서는 실재적으로 사실상 ‘차히’를 다룬다. 이에 비해, 후자에서 추리상 또는 논리상, 벩송의 용어로 ‘권리상’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동일자에 대한 유비적 표현이고, 이를 종교적으로 옮기면 하나님 논리(로고스)와 같은 알레고리가 성립한다고 믿는다. 이런 후자의 주장자들의 철학적 배경에 이데아들과 원자들이라는 것의 요술적 조립방식에서 나왔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도 ‘진리’라는 용어를 주장하는 이들은 동일성의 ‘하나’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믿는데, 그 추리들이 계열들이 파라독사임들을 그들도 알게 되었다. 현실에서 생활하고 실천하는 ‘진리인 것’은 그나마도 인민의 평결에 의해 또는 제헌의회에 의해 합의되고 계약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사유 대 사고의 차이에서 논리적 사고자들은 권력과 권세의 대열들에서, 이제 이 사고자들도 누려보고자 늦게서야 이 양자 속에 개입하였다. 19세기 말에 현상을 통해 상징을 재현화하는 논리실증주의가 그러하다. 그들은 이 논리의 ‘진리’가 부의 축적을 가져다주고, 삶의 편리와 향유를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이런 관련을 비유적으로 하면, 상징의 배치를 놀이로 삼아 그 놀이를 노름으로 여기듯이, 또는 투자를 투기로 바꾸어 부를 누리고자하는 속셈을 드러냈다. 학문이 인류의 자유와 평화가 아니라 개인의 영달과 부의 축척의 부속물이 되었다. 권력이 공공이 아니라 사적 지배로 바뀌고, 신앙의 권세가 인민에가 아니라 성직자의 부의 축적과 출세의 수단과 같이 된 것도 세상의 현실이었다. 이 탐만치에 빠진 카르텔에, 진리추구의 논리분석이 예속의 길을 택한 것이다. 진리에는 부의 축적도 명예도 권력과 권세도 없다. 신앙에는 말할 것도 없고. 현실에서는 진리에 맞는 실천에서 ‘훌륭타’에 있다. 이들은 훌륭타는 버리고, 타인보다 더 많이 ‘안다’ 또는 더 높은 정도의 진리를 ‘안다’는 것을 주장한다. 마치 천사의 계급이 18등급이나 되고 그 등급을 따라 올라가 1등급을 넘는 인식(안다)에서 신의 세계로 들어간 듯이 말하는 이들이 ‘진리’를 말하고 있다. 이런 추리자들 또는 논리자들이 권위를 누리고자, 권력과 권세에 야합하여 만든 것이 -마치 사적 이익의 축적과 확대라는 지본 시장에 투자가 아니라 투기판을 만들 듯이- 학문의 세계에도 위계를 정하듯이 다단계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진리라는 이름으로, 지식의 실천을 투기로 노름으로.

    권력, 권세, 권위가 서로 암묵적으로 또는 내밀하게 패거리를 만들어 악귀로서 서로 투합하여 만든 것이, ‘진리를 안다’이다. 복잡계도 모르면서. 투자한 것만큼, 아니 수배 또는 수십배 이익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들 한다. 이들에게 대중, 민중, 인민은 그저 수탈과 착취의 대상일 뿐이다. 좋게 말해서 권력 다단계나 종교 다단계를 학문적으로 비유하여 최고 상위의 축적을 정당화하는 것을, 그 ‘안다’는 진리를 자기들만이 안다고 한다. 그런 학문을 하면서, 신앙을 지니면서, 권력에 가담하면서, 지식분자는 권력과 권세에 예속하는 또는 종속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이 자랑의 끝이 하늘의 ‘일’(하나), 이데아의 ‘일’자를 안다는 것이다. 그 지식의 진리에서 논리상의 근거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명제, 판결, 심판이다. 그러나 그 명제를 누구도 증명하지도,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설명한 이는 벩송이다. 이 명제는 ‘이다’의 선전제의 논리이지 현재 여기에 살아가고 있는 것도, “있다”의 현실도 아니다. ‘이다’의 허상을 믿는 탐만치에 빠진 자들이 인간과 자연, 지구와 생태계를 생각하지도 않는다. 제 눈의 들보를 보지 않고 남의 눈에 티끌을 문제삼아 악마로 모는 카르텔 속에서 치열하게 악마사냥을 하면서, 이익과 향유를 즐기려 한다. 그들은 허상이라고 하지 않고 재현(표상)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다’에는 현실과 실재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돈, 돈, 즉 자본에 예속하여 마름, 주구, 예속으로 자처하는 사고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다단계를 하듯이, 계급이 올라서 상위로 올라가는 것을 명예로 삼게 하는 국가권력 위에, 돈도 벌고 지위도 높이 올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는 종교권세가 뒷바침하고 있다. 게다가 현실 평면을 잘라서 단면으로 사고 하게하는 논리 속에서, 또한 놀이 속에서, 나아가 놀음 속에서 “진리”가 있다고 하는 권력에 아부하는 학자들에게도 있다. 말하자면 파라노이아 극한에서 무오류를 배워서, 무소불위로 행사하려는 자들에게 미친 악귀들이 있다.

    이런 추리와 논리 추구를 따르는 이들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판단 속에서 그 자신은 속하지 않는다고 믿는 자들이다. 이 명제 자체가 그들 논리자의 표현으로 파라독사이다. 그럼에도 파라독사를 진리로 믿는 자, 믿게 하는 자, 믿고 권력추구에 줄서는 자, 이들은 인간의 자연(본성)에게, 자연의 생태계에게 빚지면서도 사적이익에 목매고서 소탐대실하는 것이다. 게다가 인민을 제국의 황금알을 낳는 거북이로 만들면서 말이다.

    인민은 권력이든 권세이든 권위이든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터전에서, 이 모든 자료들의 기원적인 이유(raison)이고 근원적인 토대이다. 게다가 인민의 합의와 계약은 최종평결이다. 이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인민을 어린 자식이라는 알레고리로 만들고 인민의 평결은 인민재판이라 유비로 만든다. 인민이 세상의 평결을 하기에 대혁명에서 제헌의회가 있었고, 반동들이 들어섰을 때는 비밀 계절사, 그리고 민중단체, 나중에는 프롤레타리아 정당 등을 만들었다. 인간의 자연(본성)에서 창조와 생성의 노력에 대해, 빨갱이니 반역이니 악마니 하는 이름을 붙이는 이들이 자신들의 잘못과 악을 감추기 위해, 마남(魔男)사냥 때처럼 상대를 (브루노처럼) 산채로 화형에 처넣으려는 악귀같은 자들이다. 자연(본성)은 수십억년전 지구 생성의 그 때도 지금도 복잡계이며, 그 복잡계에서 생성한 생명체도, 인간의 영혼도 복잡계이다. 이를 완화된 표현으로 인간 세상사를 들뢰즈가 “다양체”라고 불렀다. 한 인간의 일생도 다양체이다. 다양체의 두께 있는 평면은 여전히 역동적이고 혁명적이다.

(4:05, 56UKG), (4:36, 56UKH) (5:08, 56UKHH)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이판사판 [천 하룻밤 이야기]

이판사판

2023. 09. 08. 백로(白露)

– 아침 오솔길 가장자리의 풀잎에 이슬이 맺는다.

— 결로(結露)는 더운 쪽이 찬 쪽을 만나 결실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인류가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려는 방식은 구석기와 신석기시대부터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것을 아는 것은 지층이 보존하였던 유물 정보들이다, 돌에서 쇠의 시대로 전환과정에서 구리와 청동을 지나 철기가 시작된 것은 기원전 1200년경이라 한다. 각 시대의 지층과 같이 기념물(추억들)의 특성이 우리에게 전설로서 전승되는 것은 전쟁에서 이겼다는 영웅들의 신격화이다. 그러면 신격화는 철기시대 이전에도 있었다는 것인데, 그러한 계보학적 전승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줄줄이 엮어서 만들었을 것이다. 이 계보학의 전승이 세대마다 부자 세습의 연결이 잘 안 되는 것은 이집트의 기록된 고왕조들(기원전 3천년경)의 승계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국에서는 요(堯)에서 순(舜), 그리고 우(禹)로 넘어가는 것도 세대의 변화보다 다른 계보의 등장인 셈이다. 생명이라는 종의 역사에서 인간이 스스로 위대하고 여기고, 자연에 대해 지배력을 갖는다는 생각하는 것은 도구로서 돌을 넘어서, 열을 통해 새로이 제작하는 쇠(구리와 철)의 시대에 와서일 것이다. 청동이나 철을 다루듯이 자연의 대상들을 다룬다면, 그 자연에 대해 다른 것들도 잘 다룰 수 있는지를 고민하였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기원전 6세기 정도라고 한다.

맑스주의자는 이 시기에 철기가 일반화까지는 아니라도 생산도구로서 인민들에까지 퍼진 시대라 한다. 이 시기 이전에 현자는 세상을 알기 위한 떠돌이로서 양떼를 몰든지, 소나 말을 몰든지 하면서 천막을 가지고 자치적이고 자주적인 부분을 지니며 소그룹으로 다녔다고 한다. 알레고리로서 이야기를 보태면 고대 그리스의 아르고선원들이 이야기나, 유명한 오디세이 이야기도 초기 철기시대의 도래 이지만, 상부들이 전쟁의 도구로서 청동기를 잘 다루었던 시기에 주인공들의 이야기라 한다. 그런데 6세기 정도에는 농사의 도구에도 철기가 보태지면서 생산력이 과거에 비해 비약적 발전을 했다고 한다. 그런 시기에서야 떠돌이 거지, 걸승이 등장할 수 있다고 여긴다. 유비적으로 공자의 주유도 그러하고, 싯달다의 고행 후 평생의 걸승도 그러하고, 고대그리스의 소크라테스 주변에 헤라클레스를 본받은 퀴니코스 학자들도 그러하다.

이런 철기 문화에서 거푸집을 통해서 동일한 물건들을 재생산하는 방식은 인간의 지성과 예지의 사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하였다. 거푸집이 튼튼하고 영구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여 비슷한 것과 다른 것들을 생산할 수도 있었으리라. 물레를 돌리면서 만드는 항아리는 거의 비슷한 것을 만들지만, 거푸집을 사용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거의 닮은 것을 만들어내는 좋은 거푸집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닮음을 보다 정확하게 만들어가는 긴 과정에서 서구에서는 르네상스시기에 언어와 논리에서도 닮음을 재현하듯이, 도구들도 다시 만들어도 동일한 것이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시기를 철학에서 일반개념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일반화로 만든 개념들은 거푸집의 동일성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고 여겼다. 물론 일반관념보다 거푸집과 같은 모형의 관념이 먼저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관념은 현실의 변화와 동떨어져 있었는데 비해, 개념들은 사물과 현실에 접근하였다.

물론 이런 개념적 생각에는 가설적으로 이어온 관념과 공리(공준)의 완전함이 먼저라는 것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이 인정의 뿌리는 깊다. 영웅시대 이래로 앞에서 있었던 것 다음으로(시간적) 뒤이어 오는 것이 있다는 것은 암묵적이고 실질적으로 인정해온 것이다. 그 실질적 이어짐의 과거의 깊이 또는 기원이 무엇인지를 모르지만 있었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고, 지금도 이어지고 다음을 생각하며 행동하고 실천한다. 이런 이어짐을 5관(안,이,비,설,신)을 통해서는 알 수 없고, 또한 보이지 않지만 있는 것이라 한다. 이런 생각 다음으로, 사람들이 사는 터전에서 여기와 저기는 마치 앞과 뒤, 위와 아래가 있는 것을 구분하는데, 이런 터전에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도 5관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전설따라 삼만리에서 지평선의 끝을 따라가면 낭떠러지가 있다는 생각도, 평면의 시작과 끝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직시하면서 사람이 사는 터전의 전체가 볼 수 없는 것이라 여겼고, 데모크리토스는 ‘빈 것’이라하고, 그러고 나서 공간이라는 일반화의 개념이 생긴다고 여긴다. 볼 수 없는 공간이라는 관념이 생길 것이다.

시간을 볼 수 없듯이, 터전을 이루는 공간을 볼 수 없는 것이고 여긴, 그리스 사유가 인류사에서 철학의 기원이 되는 것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당시의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지적 분자들이 머리를 짜내고, 깊이 토론하고, 생각을 교환했기에 발생한 것이라 한다. 뭔가를 알고 노력하며, 거지같이 지내는 떠돌이들이 어디를 안 가 보았겠는가. 현자들이 지성과 예지를 합하여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보아도, 그 당시의 상식(5관)으로서 해명할 수 없는 것, 볼 수 없는 것을 네 가지 정도로 규정했다. 시간, 공간, 원자, 영혼(프쉬케)이다

로마에 항거한 이들이 십자가 처형을 당한 것은 한 두 사건들이 아니었다. 노예의 항쟁으로 스팔타쿠스(기원전 73년)도 있었고(몇킬로의 거리에 십자가를 매달았다던가?), 프랑스인 조각가이면 꼭 한번 작품으로 거쳐 가는 로마에게 저항한 항쟁자 베르셍제토릭스(기원전 50년경)도 있었고, 유다왕국에서 나자렛의 예수(전04-후31경)의 저항도 있었다. 이런 시대의 과정에서 누구는 전사에, 누구는 열사에, 누구는 성자의 반열에 올려놓는 것은 후대의 이야기꾼(역사가)들이 것이었고, 파라독사들 중에서 이익이 챙기는 경우에 더욱 미화하고 재미있게 이야기가 전승되었던 것이다. 21세기에는 “해리 포터(Harry Potter, 1997-2016)”와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1954-1955)”이 휩쓸 듯이, 넷 플릭스에서 “오징어게임”은 짧은 시기에 전 세계의 이야기 거리로 만든 것도 파라독사의 이야기 거리이다. 그럼에도 실재와 현실에서는 여전히 여러 갈래들 사이에 부조화도 있고 갈등도 있으며, 그 보다 깊이에서는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음에도 겉보기로서 표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들릴 뿐이다. 사람들은 예전의 현자처럼 거지로서 떠돌이라는 것은 사라졌다고 여길 것이다. 왜? 그래도 여전히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는 젊은이들 또는 탐험가들도 있고, 그리고 명상과 관조를 추구하는 공동체를 찾아다니는 이들도 있다. 철기의 시작으로 걸승이 가능했던 그때나, 사적 소유가 엄격하여 담 넘어 사과 하나 먹지 못하게 하는 법률이 엄하더라도, 걸승이 움직이고 사유하는 세계는 현실을 직시하는 세계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 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이, 즉 시간과 공간 그리고 영혼이 실재한다는 것을 느끼는 현자는 세계(코스모스)를 연결하고 연대하는 역동적인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인류의 기나긴 욕망과 그 작업이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 실재적이고 현실적 판(평면)위에서 지속하고 있다.

이 현실의 찰나의 평면만을 공간이라고 아는 이는, 공간이 잘려져서 마치 종잇장처럼 또는 원반처럼 있을 것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유에서 그 평면은,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두께를 갖는 불럭과 같은 것을 지닌 평면이다. 말하자면 현실태의 평면은 갓난애들로부터 현 찰나에 숨을 거두는 이들까지 두께가 있고, 먹고 싸고 자고 일하는 평면 위룰 말한다. 터전, 영토라는 말은 도덕적, 정치적 표현의 일부일 것이다. 시간적으로 평균하여 그 두께 있는 평면은 0세- 87세(평균연령)까지의 과정이며, 평면의 두께에는 여러 나이뿐만이 아니라 여러 색깔의 인종과 여러 직업(임무)에 종사하는 이들과, 그리고 거지(무소유)로서 떠돌이들도 있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공간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 평면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고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찰나에도 태어나는 이가 있고, 세상을 뜨는 이도 있지만, 이 흐르는 공간(코스모스)은 여전히 평상처럼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철학적으로 보아, 대통령 김대중은 정치를 아는 분이다. “정치는 생물과 같아 끊임없이 움직인다.”고. 역동적이다. 그리스 인들이 공간이 생물처럼 움직이고, 그 판이 역동적으로 울렁거리면 진동하고 파동을 친다고 생각하는 부류들이 있었다. 이 파동 속에서 어느 경우에 파고가 높아서, 그 파고 위를 타고 가는 한 두 계열들이 선두에 서서 시대의 사명과 운명을 걸머질 때, 혁명이 솟아나는 것이다. 조용한 평면은 어쩌면 투쟁 속에서 준안정상태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가만히 있는 평면이 아니라 움직이며 살아있는 듯한 공간. 그 공간을 지성과 이성(로고스)이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예지와 누스(Nous)로 추구하는 자들이 사유한다. 이 잘려진 평면 위에 점과 같은 존재들이 현재 사는 각 개체이며, 이들의 집합을 전체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사고가 평면 위에 개념과 명제로 그림을 그리듯 세상을 서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평면은 두께가 있고 진동하며 움직인다. 그런 평면의 두께가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과거의 지층과 같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이런 두께의 변화과정에서 안중근이 살았던 평면과 전봉준이 살았던 평면과도 뗄 수 없는 과정이기에, 시간의 경과와 과정도 포함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 시간도 마찬가지도 공간처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과 별개로 있는 것이다. 이런 공간과 시간을 관통하여 느끼는 것은 영혼이리라.

영혼만이 시간과 공간과 별개로 무어라고 규정할 수 없지만, 인간들 각자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느끼고 있는 것이다. 먹고 자고 싸고 일하며, 노력하며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 느낌은 오관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포함하여 또 다른 것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스에서 공감성이니, 불교에서 여섯째 식(육식, 칠식..)이니 하지만, 나로서는 다섯을 포함하여 관통하는 다른 어떤 것인데, 지각작용(perception)이라 부른다. 영혼이 이런 지각작용으로 등장하였는데, 사람들은 다섯 기능에 보태어 한 기능을 더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오관과 따로, 신체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따로 만드는 이들이 돈 받고 종교를 만드는 자들인데, 불교에서 사판승과 같다. 이런 사판승에 저항하는 이를 이판승이라 한다. 서양 종교에서 사제들과 목사들과 달리 수도원에서 청빈, 노동, 순명을 따르며 공동체 생활을 하는 수도사가 이판승인 셈이다. 이판승과 같은 이어짐은, 독립운동에게 만주에서 뭐했냐고 물으면 그냥 개장사 했지라고 할 때도, 사판승처럼 지내는 것이 아니라 국경 없이 무장투쟁하면서 지낸 시절을 그냥 이야기로 전하는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는 돈 받고 가르치지 않았고, 싯달다도 돈 받고 설법하지 않았으며, 예수도 돈 받으려고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이야기를 남긴 것이 아니다.

인간이 솔직하지 못하고 이익을 챙기는 이들은, 이 두께있는(볼 수 없는) 평면을 종잇장과 단면으로 생각한다. 나는 이들을 매우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또한 위기가 기회라고들 떠들고, 전쟁이 자기를 살린다고들 한다. 이 자른 평면의 사고자들은 사적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이지, 공동체와 인민에 대한 생각도 이익의 창출로서만 생각한다. 이는 자본주의가 잉여착취를 위한 제도, 즉 제국주의와 제국을 고수하려는 것과 같다. 이런 부류의 사고는 현실이라는 평면 위에, 수탈과 착취를 위한 평면을 그리기에 두께도 없지만, 또한 시간의 과정도 없다. 그리고 그러한 집단이 얇은 평면위에 사람과 사물들을 나열시키고 그리고 위계질서로서 제도를 만들어 그 꼭대기에 앉아 있다고 여긴다. 거기에 현재 위계상으로 사판승과 같은 윤석열이 있다고들 하며, 그 위에 일본이, 그리고 또 그 위에 미국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안다. 그 평면을 잘라서 사고하는 이들이 백선엽의 동상을 세우려는 속좁은 이성의 사고, 파라노이아 광기에 빠져있다(푸꼬가 광기의 이야기를 잘 썼다). 이에 비해 볼 수 없지만 실재하고 있는 공간의 평면의 두께 속에는 현실의 두께만이 아니라 볼 수 없는 시간을 포함하는 과거의 두께도 있으며, 홍범도, 안중근, 전봉준도 있고, 그 속에는 이순신도, 강감찬도, 을지문적도…  단군도 있다. 파라독사라고 하더라도, 다른 이야기로서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보다 흥미진진하고 가슴을 울리는 파라독사라는 이야기가 있다.

법률 조문이라는 명제들로 이어진 문장들을 외우는 것과 같은 사판의 외우기가 공부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안다. 그럼에도 외워서 적용하는 이긴다는 속좁은 이성의 머리는 위계질서 속에 꼭대기에 있다고 한다. 그 꼭대기가 누구 밑에 있는지를 아는 이는 다 안다. 볼 수 있는 것은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도 있고, 영혼도 있다고 했다. 그 영혼(프쉬케)의 문제는, 속좁은 사고의 전체와 부분에서 전체가 먼저 있다고 여기는 것인데, 그 전체라는 것이 프쉬케를 사유하는 자에게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다시 공간, 시간, 영혼, 전체는 볼 수 없는 것인데도, 이것과 연관하여 살고 있는 신체는 어떤 능력을 개발하고 작동하려 하는지를 고민했던 이들이 걸승과 같은 이들이었다. 내가 이판승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사판승에 대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고 저항, 항거, 항쟁하였다. 이판과 사판의 투쟁은 겉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어쩌면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독립 운동가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이판사판의 투쟁을 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전체라는 것이다. 그 전체를 지금도 볼 수 없지만, 8천5백만을 사유해 보고, 21만 평방킬로가 넘는 터전을 사유해보라. 미친(파라노이아)사고가 고작 5천만과 9만 평방킬로미터를 사고하는 탐만치(貪慢癡)에 빠진 자들이라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이 공유하는 느낌은 인민의 미덕이며, 기본 심급이다. 권력을 엎어버리는 것도 인민이라는 의미에서 최종심급도 인민이다. 새로운 공동체의 건설은 달리 말하기, 달리 사유하기, 달리 실천하기에 있다. 두께가 거의 무한정한 터전이 우리 안에 있다. 이 생명의 터전을 벩송은 다양체라 부르고, 이 다양체는 다발(묶음)로 되어 있다고 한다. 묶음들의 계열 중에서 먼저 솟아나는 계열의 혁명의 선두 일 것이고, 이들이 투사와 전사이다.

나는 이들을 좋아하고 존경하며, 내 벗도 좋아한다. 그 만치 그리스 철학자들 중에 파라노이아에 빠지 않았던 헤라클레이토스와 소크라테스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만물은 투쟁 속에서 생겨난다고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다. (56T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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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글,

윤구병이 이오덕1을 좋아하는 이야기에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범(우리말이다), 호랑(虎狼)이가 아니다. 범, 즉 밤(ᄇᆞᆷ)은 산넘어 일하고 늦게 돌아오는 오마니를, 엄마 떡 하나하나 먹듯이 다리와 팔과 그리고 온 몸을 먹어 치운다. 이 범 또는 밤이 애들에게 찾아가 문 열어 달라고, 이런저런 속임수로 동생에게 문을 열게한다. 방안에 빛으로 보아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도망 나온 자매는 밤을 이기는 빛으로서 해와 달이 되었다고 한다.> 밤은 낮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대결의식을 넘어서, 밤과 낮의 교대의 이야기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왜 단군 신화에서 범과 곰이 등장하는지에 대해서도 우리의 전승에서는 굴(자궁)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지를 사유하는 것이 윤구병은 현자라고 생각한다. 누가, 우리의 파라독사가 신앙 없는 이야기로 악마의 이야기처럼 만들었던가. 입말을 통해 면면이 이어져 왔었고, 한글로 팔천오백만이 공유하는 평면의 두께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사람들은 파라노이아(편집증)의 집단이 위계질서의 꼭대기에서 조문(코드)를 가르친다고 하는데, 두께 있는 평면과 기나긴 시간의 기억이 넘실거려 큰 파고의 높이를 만드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혁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들뢰즈는 혁명은 어느 시대 어느 평면에서든 일어난다고 생각했으며 “혁명의 미래에 대한 질문은 나쁜 질문입니다.”(p.176)고 한다(들뢰즈, 「정치들 II (Politiques II, 1977)」) 혁명은 현재 평면 안에 있다. 혁명은 평면을 잘라서 계산하고 배치하는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의 역동성과 현실 평면의 두께 울렁임이, 다른 말로 하면, 시간의 횡축과 공간의 가로축이 만나는 순간에 파고의 마루를 형성할 때이다. 벩송 자유의 실현은 간헐적이고 폭발적이라 한다. 그 자유를 혁명으로 바꾸어 읽으면 같은 이야기이다. (5:12, 56TKH)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입추(立秋): 파라독스 [천 하룻밤 이야기]

파라독사들: 여러 사건의 생성

– 2023, 08, 08, 화요일

— 입추(立秋): 아무리 더위가 심해도 가을은 온다: 순환은 또 다른 회귀이다.

여섯 살 꼬마가 산타클로스 할배가 선물을 갖다 준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다른 애들을 만나면 할배가 아니라 부모가 전날 갖다 놓은 것이라는 것을 안다. 믿음과 사실은 다르다. 열여덟까지 세상이 가장 큰 것도 있고 무한도 있다는 것을 믿는다. 무엇보다도 크고 완전하고 무한하며, 모든 것을 포함하여 충만하다고 믿는다. 선을 그으면 무한히 가지. 누구도 무한히 가지 못하지만, 무한히 선이 가고 있지. 중고등에서 데카르트의 좌표기하학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을 배우면서도 계산하며 답을 찾는데 메이다가, 학력고사를 마치고 나서 조용히 생각해보니, 그 무한히 나아간다 또는 무한히 자른다는 것이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면, 신이 무한하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산타 할배와 같고, 무한을 넘어서도 하나님을 넘어서도 계산할 수 있을까? 한계 또는 경계를 넘는다는 것이 인간의 현실 또는 현존의 문제거리일까 공안이지 화두일까?

청춘의 젊은이에게 아버지의 아버지(할배)가 있고, 할배의 할배(한할배)가 있고, 그 큰 한아비의 한아비가 단군이며, 단군의 할배는 환(桓)이다고 말하면, 에이 그것 전설이잖아. 학문적으로 파라독스 같은 이야기이지. 그런데 예수의 아버지를 거슬러 그리고 다윗으로 다윗을 거슬러 아브라함으로, 또 올라가서 아담이 있지, 아담은 누가 낳았는데, 신(하나님)이 만들었지. 그러면 그 신은 누가 만들었는데, 그러면 그 이상을 묻으면 안 된다고 한다. 서양 신학이런 완전한 것으로부터 만들어지는 모든 것을 해석하는 것을 독단론(dogmatisme)이라 한다. 신은 누가 만들었는데 라고 묻는 것은 학설(doctrine)이라 한다. 학설적으로 완전하고 충만한 것을 누가 만들었냐고 물었던 이들은 퀴니코스학파와 스토아학파이다. 학설을 완전한 것이 자체적으로 있는 거야. 그리고 자체적으로 있는 것을 묻지 않기로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오르간)의 불문율이야. 더 이상 묻지마.

하늘나라에 옥황상제가 있는 곳에는 맛있는 과일이 있고 선녀들이 있으면, 누구도 아프지 않고 즐겁고 상괘하게 지낸다. 한 젊은이가, 에이 그거,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잖아 라고 한다. 그래 들뢰즈가 답하기를 파라독사야. 불교에서 극락세계에서는 석가모니와 사리자(舍利子) 마하가섭가섭(摩訶迦葉), 아난존자(阿難尊者), 수보리(須菩提)가 둘러 앉아 얼마나 오랫동안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하는 하는지를, 갠지스강의 모래만큼 많은 항하사(恒河沙 1052)수 만큼 해를 거듭해야 사람으로 태어나고, 불가사의(不可思議 1064)수 만큼 거듭해야 아라한으로, 무량대수(無量大數 1068)해야 부처가 된다고 설을 풀고 있다고 하면, 불교 설화잖아. 그래 파라독사야. 가이야에서 만년을 지나 우라노스시대로, 천년을 지나 크로노스시대로, 그리고 천년을 지나 제우스와 함께 지상을 지배하는 신들이 올림푸스에서 노닐고 있었는데로 이어가면, 그거 그리스 이야기 잖아. 그래 파라독사라고. 산타클로할배이야기보다 재미있지, 하늘 나라에 하느님과 18계급의 천사가 있고, 예수는 하나님 옆에 앉아 있다고 하면, 그거 ‘말되네’, ‘말씀이야’ 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 파라독사야.

들루즈는 ‘말 되네’가 바로 의미(sens)를 갖는다는 뜻이라고 하였는데, 파라독사 같은 난센스(non-sens)가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그가 보기에, 난세스는 사실도 아니고 진리도 아닌데, 그 믿음을 크리스트교 신학자들은 독단(dogma, 교리)이라고 부른다. 그것을 알아보는 이들 속에서, 선택받은 자들 속에서, 푸꼬 표현으로 정신 나간 자들(aliénés) 속에서는 자기들끼리 모여, 마치 공자는 맹자의 손자인 것처럼, 스스로 진리라고 한다. 그래, 그 이야기가 의미있다(sens). 다른 것은 의미 없고(non-sens)이다. 의미는 무의미를, 처음에는 겉보기 또는 현상으로, 그리고 거짓 또는 착각으로, 나쁨 또는 허무로, 천년을 지나가면서 무의미가 악마처럼되었다. 19세기에 언어분석철학자들이 대상과 사실에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모두 넌센스라고 생각했었다. 러셀은 고대철학에서 거짓말쟁이 역설이, 논리학에서 수학에서 언어학에서 등등 넌센스가 넘친다는 것을 알았다. 어, 그 이야기는 넌센스이네, 그래 그 모든 전설따라 삼천리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들 모두 파라독사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도 여섯 꼬마에게 그것보다 유용한 것도 거의 없다.

하늘나라 이야기가 넌센스이고 파라독사인데도 왜 의미가 있다고 하는가? 그것을 믿는 이들에게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야기하는 시절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꼬마애가 산타할배가 의미 있듯이, 청춘기(헤베, ἥβη, 젊음, 혈기, 용기)에는 완전하고 위대함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무협지 등이 청춘에게 읽히고 있었던가. 그가 자연에 순환에 대해, 요즘으로 대기의 순환에서 엘리뇨와 번개를 잘 관찰하여보면 달리 생각하는 길을 발견한다. 자연을 진속하게 대하면 달리 사유하기가 등장한다. 중국의 [대학]에는 ‘격물치지성의정심,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는데, 젊은 시절에 학교 교육과 달리 자연(본성)에서 사회에서 격물(格物)에서부터 스스로 깨쳐나갈 길을 찾는 것이다. 자연과 사회에서 자연이 먼저 이며 앞서[앞에가 아니라] 있다. 겉멋만 들은 검사들은 수신제가를 말할 것이지만, 젊은이는 사물의 진수를 아는 것이 먼저이다. 불교에서도 싯달다가 여섯 해 동안 고민고민 끝에 처음으로 젊은이들을 만나서 한 이갸기가 [념처경(念處經)]인데 그 속에서 ‘신수심법’의 네 단계의 노력과정을 통해 선업을 쌓기를 이야기 한다. 그 ‘신’은 신체에 관한 것인데,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격물과 닮은 데가 있다.

스스로 가정과 동네를 떠난 삶을 살아가는 시기에, 헤베(청춘기)를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 한다. 사회는 제도 속에서 규율과 훈육에 따라 살아가가는 과정을 촘촘히 순서를 만들어, 그 순서를 따라야 살아가는 것으로 체제를 만들었다. 너희들 덜 고생시키려고. 이 체제 속에서 벗어나면 낙오자(루저)니, 못난이(개돼지)니, 타락자(소외자)니, 결국에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자 정도로 여긴다. 삶은 산업사회 속에서 제도만이 아니라, 절후를 간직하며 사는 풍토와 터전이 기본 토대로 있고, 그 위에 도구의 사용으로 산업이 있고, 그리고 자고 먹고 싸고 일하는 것만이 아니라 유쾌하게 삶을 사는 놀이도 하거나 구경도 하면서 교양 문화를 지니며 산다. 자연, 산업, 문화 등이 중첩되어 있다. 청춘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휩쓸려서 어쩔 수 없이 사는 사회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지만, 삶의 긴 과정에서 자신의 길을 살아가는 방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세상에 현실적인 평면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방식으로 살고 있지만, 국가라는 체제를 꾸리는 쪽에서 보면 5천만은 평면위에 보이지 않는 그물 속에 있다. 체제는 어장관리를 하듯이 그물을 줄이고 넓히면서 적당히 키우고 그 에너지를 제도 속에 소비하기를 바란다. 열심히 살아서 제국에게 에너지를 제공하는 밧데리가 아닐까? 이런 이야기는 파라독사 일까? 하늘나라 속에서는 진짜이고, 그물 속에서 삶은 넌센스일까? 들루즈가 말하기를, 환의 이야기든, 옥황상제 이야기든, 보살세상의 이야기든, 제우스 이야기든, 예수이 이야기든, 이런 이야기들은 파라독스(paradoxa)인데, 그 논리(추리) 속에 성숙되어 에너지를 공급하는 인간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은 독사(doxa)라는 것이다. 현실의 평면 위에 오천만은 누구의 에너지를 위한 소모품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성찰하고, 명상하며 사유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이 반성의 토대에 가장 기본적으로 자연이 있다. 24절기가 있다. 서양철학에서 자연을 본성이라고 번역하는 바람에 이상하게도 자연과 인간, 자연과 삶, 자연과 신이라는 주제가 먼저(앞서)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버리고 파라독사에 빠져서, 위대함, 완전함, 충만함, 연속성, 동일성, 불멸성, 영원성을 말하면서 철학한다고 설레발친다. 이런 이라는 넌센스(non-sens)를 철학이라고 하는데, 불교에서 비신자에게 던지는 공안 정도이다. 청춘에서 청년으로 공안을 넘어서 선문답으로 가면 여러 경우를 한자리에 놓고 추론하기를 배운다. 그리고 삶의 문제거리를 화두로 삼아 장년이 되어 자기 길을 스스로 깨닫는 데로 향한다. 공자는 그 나이 쯤이면 불혹이라 하고, 세상사에서는 그 나이에 자기 얼굴에 다쓰여있다고 한다.

넌센스의 이야기와 달리, 현실 세계의 평면을 잘 생각해보라. 5천만은 현재의 평면과 같은 설국열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그 열차의 칸들 속에 어디서 어떤 이들이 내릴지 모르고, 어떤 이들이 탈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 열차는 하나의 현실 평면과 같다. 한배를 탔다고들 하지만 배는 가는 곳까지 주변은 물이다. 열차는 철로 위로만 달리지만, 현실 평면 위의 삶은 매끈한 공간 위로 달린다. 어디에서 내리면 반천리 금수강산의 어느 터전 위에 있을 것인가? 그 내린 지점이 어느 현존들과 같이 할 것인지를 모른다. 열차 칸 안에서 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바깥에 대해 잘 모르고 있듯이. 그럼에도 산업사회를 넘어서 규소(디지털)시대로 가면서도 잘 모르니깐, 굴을 파고 은둔하는 이들도, 터전을 만드는 이들도, 열차와 관계없이 영토 위를 이리저리 쏘다니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리좀처럼 연결될 수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하늘에 번개가 치듯이, 터전의 평면 위에 서로 간에 드문 벙개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저항과 항거는 지금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작은 리좀의 연결이 지방에서도 나라에서도 세계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맑스의 포이에르바하 테제 11번의 해방만이 아닐 것이다. 그 세계가 하늘나라이며 화엄의 세상일 것이다.

이 삶의 평면 위에서, 깊이 탐구하는 이들이 넓게 리좀을 연결할 수 있다. 살아있고 움직이는 리좀들이 터전에서 매끈한 면 위에서 마주칠 것이다. 그 마주침이 한꺼번에 연결되는 것은 하늘의 번개가 동일하지 않듯이, 이 땅위에서도 동일한 벙개를 형성하지 않을 것이다. 벩송의 말대로 자유와 혁명은 간헐적으로 솟아나며, 폭발적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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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