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철연 여성철학분과에서 운영하는 블로그분과진 코너입니다. 페미니즘의 고전을 찾아가는 여철분과의 여정^^

슐라미스 파이어스톤(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10. <성의 변증법>, 슐라미스 파이어스톤(下)

 

이지영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 프로이드의 오해와 진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권력 구조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와 착취는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에 기인한 가장 유구한 역사를 가진 억압이자 모든 억압의 근본 구조이다. 따라서 노동, 인종, 동성애자 등의 소수자 억압의 문제는 먼저 여성 억압의 문제가 해결될 때에만 참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파이어스톤은 그 장구한 시간 동안 여성이 남성에 지배를 받아온 장소인 ‘가족’을 먼저 탐색한다. 그는 치명적 오류에도 불하고 프로이드가 이전까지 누구도 보지 못했던 진실을 파악한 사상가임에는 틀림없다고 추켜세운다. 프로이드는 마침내 성sex 즉 섹슈얼리티가 인간 삶의 핵심적 문제임을 파악해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드가 아들과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쟁탈전을 다룬 ‘가족 극장’을 문명화의 본질 동력으로 보고 심리학의 측면에서 이를 다룬 것은 완전하게 헛다리짚은 것이다. 이는 문명의 본질 동력도 아니며 원본능의 심층 심리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권력’의 문제다. 가부장적 가족 및 사회 안에서 작동하며 행사되는 ‘권력’의 사회 맥락 문제다.프로이드는 이것을 보지 못했다.

아들은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경쟁하다 힘센 아버지가 사랑의 도구인 페니스를 거세하리라는 거세 공포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에로스적 사랑을 스스로 억압하는 것이 아니다. 가부장제 가족 안에서 아버지는 집안의 권력자이며 모두를 지배한다. 그는 가족들을 부양하는 대신 성을 포함하는 여성의 온갖 서비스, 자식들의 존경과 복종을 당연한 대가로 취한다. 어머니는 자식을 낳을수록 더 무력해지며 남편에 대한 경제적 예속은 더욱 심화된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지배당하고 자주 학대당하는 어머니에 대한 깊은 애착을 거두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어머니의 감옥 같은 닫힌 세계를 벗어나 드넓고 자유로운 아버지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머니를 외면한다. 아들은 어머니를 애처롭게 생각하지만 그녀를 벗어나 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사람, 아버지의 분신이 되어야만 한다. 어머니 또한 아들을 딸보다 더 사랑한다. 아들에게 끌리는 에로스적 원본능 때문이 아니라 가족 밖 넓은 세계로의 진출을 애초에 사회 구조적으로 차단당한 딸은 자신의 답답한 운명을 그대로 답습할 것이기 때문이다. 딸에겐 별다른 희망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들은 마침내 자유와 권력을 얻을 것이다. 아들은 어머니의 깊은 한숨과 오랜 고통에 대한 보상이자 대리 만족의 대상이다. 이것이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진실이다. 이와 같은 구조는 족외혼이 성립됨에 따라 강화된다. 종족의 여인이 아니라 다른 씨족의 여성을 사랑할 것. 여성은 교환되고 이성애는 공고화된다. 동성애가 병적인 것으로 진단받는 것은 프로이드의 진단처럼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족외혼의 이성애만을 정상으로 수용하고 강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부장적 가족은 여성 억압과 재생산의 핵심 도구이자 아동 및 성소수자 억압의 근원이다.

 

  • 아동 억압

 

가부장제 가족은 가족 밖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지배와 차별의 근원이다. Read more

슐라미스 파이어스톤(上)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9. <성의 변증법>, 슐라미스 파이어스톤(上)

 

이지영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1960년대에 시작된 소위 ‘여성주의 제2 물결’을 대표하는 이들 중 한 명이다. 그는 1945년 캐나다 오타와에서 유대인 부모의 여섯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하여 몬태나주 캔자스시티에서 자라났다. 격동의 60년대에 워싱턴대학교를 졸업한 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ArtInstitute of Chicago)에서 회화를 공부하였다. 1960년대는 한국 전쟁 후 잠시 소강 상태를 보였던 동서 냉전이 다시 격렬해져 당시 소련과 미국 사이의 대립이 핵전쟁 불사의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출하던 시기였다. 특히 미국이 주도했던 베트남 전쟁은 60년대 내내 미국을 괴롭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냉전의 위협과 길고긴 전쟁에 회의감을 느낀 청년세대는 기성 세대의 권위주의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새로운 청년 문화를 형성했다. 68운동, 프라하의 봄, 반전 운동, 인권 운동, 흑인 해방 운동, 학생 운동에서 우드스톡 페스티벌로 대표되는 히피 문화에 이르기까지 그 양상은 무척이나 다양했다. 20대를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보내며 학생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던 경험은 파이어스톤으로 하여금 모든 사회 문제 중에서 ‘페미니즘의 문제를 여성들의 최우선적 과제로 볼 뿐 아니라 더 큰 혁명적 분석에 있어서도 가장 중심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급진적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으로 이끌었다.

이 시대 서구의 젊은 여성들은 여타 사회 운동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나 모든 사회 운동에서 여성 문제는 주변부적이고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당하거나 더 나쁘게는 “여성”에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외면당했던 것이다. 예컨대 “자신의 억압을 중심으로 하는 풀뿌리 운동 조직, 피 흘리는 대중에 기반할 필요성, 지도력과 권력 놀음의 종식”을 내세웠던 흑인 운동조차도 이 중요 원칙을 여성들에겐 적용하지 않았다. 흑인 운동에서 흑인 여성은 단지 보조자였고, 발언권이 적거나 없었으며, 흑인 남성들은 흑인 여성 위에 군림하고 명령했다. 여성들은 자신들이 억압받고 있었기 때문에 억압받는 이들의 처지에 누구보다도 크게 공감하고 이들의 해방 운동에 헌신할 수 있었으나 그 운동들은 정작 여성 자신의 해방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파이어스톤의 기념비적 저작 『성의 변증법』에 잘 녹아있으며 이 책의 근본 정신의 토대를 형성했다.

 

  • 페미니즘 제 1물결,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넘어 여성 억압의 본질적 구조로

 

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 서두를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성적 계급(class)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리가 깊다. 그것은 약간의 개혁이나 여성의 노동 세력으로의 완전한 통합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피상적 불평등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파이어스톤은 여성을 하나의 계급이라고 선언한다. 여성의 억압에서의 해방은 약간의 개혁 즉 파이어스톤 당대까지 지속되었던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슬로건이라 할 수 있는 “남성과 동등한 법적 대우를, 여성에게 참정권, 취업권, 재산권을!”이라는 슬로건의 실현으로 쟁취될 수 없는 것이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을 대표적 실천 운동으로 손꼽을 수 있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남성과 동등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여성에게 남성과 동일한 법적 권리, 교육의 기회 등이 주어져야 하며 이에 따른 결과로 남성과 동등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삶의 문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세기 서구에서 시작된 이들의 희생적 실천 운동이 여성의 지위 향상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으나 이들은 남성을 인간의 이상적 기준으로 생각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참정권 등이 실현되자 여성 운동은 1960년대가 오기까지 오랜 침묵의 시간을 맞게 된다. 여성은 남성의 정치 운동의 부수적 역할을 맡아 남성 기득권 강화에 기여하거나, 여성의 직업으로 특화된 남성 보조적인 하위 직업에 종사하며 착취당하거나, 가정에서 어머니 모성의 가치 있음을 실현시키기 위해 분투하면서 갈팡질팡했다. 앞서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예를 들어 살펴보았듯 여성이 참정권 등을 얻고 고등 교육을 받게 되었다고 해서 여성의 지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법적 지위의 문제와 무관하게 일상의 모든 곳에 뿌리 깊게 스며들어 있는 여성 억압은 정치, 사회, 문화 전방위적 분야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파이어스톤은 이와 같은 사정이 이전 여성주의 운동이 여성 억압의 문제에 피상적으로 접근한 까닭이라고 파악한다. 여성 억압은 단지 이상적 지향점을 설정하고 그것을 성취한다고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맑스-엥겔스가 그러했듯 변증법적 유물론의 과학적 분석 방식을 통해 억압의 본질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만 하는 것이다. 파이어스톤은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에서 여성 억압의 문제를 다룬 것이 불충분한 시도였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를 ‘생산 양식과 교환 양식의 변화, 사회의 계급 분화와 계급간의 투쟁’을 통해서 설명하면서 여성의 억압에는 이런 경제적 여과기라는 틀에 걸맞는 방식을 통해서만 접근했던 것이다. 지배 계급과 노동 계급, 이들 두 계급의 투쟁사라는 역사 분석은 불충분하다. 이 기저에 존재하는 것은 남성 계급과 여성 계급 사이에 존재하는 지배와 착취라는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억압의 역사다. 따라서 다만 여성이 노동의 전면에 나서고 온갖 법적 권리를 얻는다고 해서 여성의 진정한 해방이 올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 생물학적 조건, 생식능력과 육아

 

노동 계급에 대한 착취보다 오래되고 고질적인 것은 여성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다. 이것은 남성 계급과 여성 계급의 생물학적 차이에 기인한다.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생물학적 차이, 아이를 임신하기 위한 기관 발달이 무력을 약화시키고 임신과 육아의 긴 시간 더욱 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이 자연적 사실이 인간 최초의 불평등 구조의 핵심이다. 이러한 기능의 차이는 여성의 생식 능력을 숭배하는 드믄 곳에서조차 남성의 여성 착취와 지배를 필연적으로 발생시킨다. 생물학적인 관계로 이루어진 한 가족에는 이처럼 자연 본질적 불평등한 힘의 분배가 내재해 있다. 남성과 여성의 자연적 생식 차이는 모든 계급 제도의 전형이자 최초의 노동 분업의 형태이다. 또 맑스-엥겔스가 파악한 인간의 역사로서의 노동 계급과 지배 계급의 투쟁의 역사, 그 악의 근원인 사유 재산 제도의 자연적 근거이자 권력욕의 근원이다. 여성의 생물학적 조건에서의 해방 없이 여성의 진정한 해방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평등, 해방은 불가능한 꿈인 것이다.

생물학적 힘의 불균형이 여성의 필연적 패배를 의미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물리적 힘의 지배를 그대로 수용하는 동물이 아니란 점에서 지당한 것이다. 인간은 정의(justice), 도덕 관념과 자연 과학의 발전을 통해 동물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벗어나는 길을 걸어왔다. 만일 물리적 힘의 지배라는 자연의 질서를 그대로 옳음으로 수용하고 그것이 곧 정의였다면 인간은 여전히 노예제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자연의 잔혹한 질서의 인간적 개편에 자연 과학의 발전이 엄청난 기여를 해왔다는 것은 맑스-엥겔스의 유물 사관의 하부-상부 구조의 변화 분석 또한 입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는 맑스-엥겔스가 그들의 불충분한 변증법적 유물사관을 통해 인간의 해방을 위해 생산 수단의 노동 계급의 점유를 말했던 것처럼 여성의 해방을 위해서는 생식 수단을 여성이 완전히 점유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8. <여성들과 공동체의 전복>,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 (下)

 

이승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주부들을 계급에 외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한, 계급투쟁은 매순간 모든 지점에서 지연당하고 좌절당하며, 또한 자신들의 행동의 완전한 범위를 찾아낼 수도 없다. … 가사노동이 생산적 노동의 은폐된 형태임을 폭로하고 규탄하는 것은 여성 투쟁의 목표와 형식 모두에 관한 일련의 문제를 제기한다.”

 

  • 핵가족과 그것의 정치경제학

 

그렇다면 이렇게 여성들의 가사노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비생산적 노동’으로 간주되고, 그에 따라 부불노동으로 처리되는 것은 어떻게 형성되고 정당화되게 된 것일까? 왜 오늘날에도 여전히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조차 가정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늘 가사노동이 당연한 것으로 떠넘겨지는 것일까? 달라 코스타는 그 이유를 역사적으로 형성된 ‘자본주의적 가족’에서 찾는다. 그녀에 따르면, 자본주의 이전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족은 주로 농업생산 및 수공업생산에 공동으로 참여했던 데 반해, 자본주의의 등장과 함께 변화된 생산양식은 이전의 봉건제적 가족공동체를 돌이킬 수 없는 형태로 붕괴시키면서 현재와 같은 핵가족 형태를 고착시켰다. 생산의 장소를 농촌의 가족공동체에서 도시의 공장 및 사무실로 이전시키는 사회의 공간적 재배치가 진행되는 동안, 여성, 어린아이, 노인, 장애인 등은 이전까지는 필수적으로 생각되었던 그들 노동의 지분과 그러한 노동참여에 따른 상대적인 권력을 상실했다. 자본은 도시로 떠밀려온(물론 그들은 기존의 가부장제로부터, 농노나 노예 신분으로부터의 기쁨에 찬 해방을 맞이한 것도 사실이다) 이들 중에서 선별한 인간인 남성을 가족으로부터 떼어내 공장과 사무실의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키고, 그들에게 나머지 가족 전체의 생계의 짐을 지웠다. 이렇게 농노제에서 자유로운 노동력으로의 이행은 우선 남성 프롤레타리아트를 여성 프롤레타리아트와 공간적·기능적·이데올로기적으로 분리시켰고, 곧이어 학교제도를 통해 그들로부터 그들의 아이를 분리시켰다. 농촌공동체의 생산과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가부장 남성이 자유로운 임금 소득자로, 그 다음 그들의 자녀들이 예비노동자이자 학생으로 변형되는 동안, 갈기갈기 찢어진 가족 내에는 성별 및 세대간 분리에 따른 뿌리깊은 소외가 자라난다.

이처럼 자본은 가족구조를 재편함으로써 남성 및 아이들을 여성들과 분리시키고, 그들에게 남성과 아이들을 위한 뒷바라지, 즉 무상의 재생산노동인 가사노동의 과업을 할당했다. 이제 가정에서의 모든 일은 여성의 책임이 되며, 자본주의적 생산순환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녀들은 반드시 가정에 남아야만 한다. 자본은 이러한 가족형태에 의지함으로써, 자신의 이윤생산에 성공하고, 또 계급과의 대결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사서비스를 받아 잘 다려진 옷을 입고 충분한 식사를 하고 나타난 공장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은 자들보다 더 많은 생산능력을 발휘해 줄 것이며, 그들이 일하면서 얻은 육체적 피로감과 상실감을 사랑으로 채워줄 사람이 가정에 늘 있을 것이며(단 자본의 관점에서는 이 사랑조차 새로운 노동력의 생산을 가능케 할 삽입섹스로 고정되어야 한다), 그들이 은퇴하면 잘 훈련된(이른바 ‘가정교육을 잘 받은’) 아이들이 나타나 공장과 사무실의 빈자리를 메워줄 것이며, 또 그들이 일하다 다치고 불능상태에 처했을 때면 가정과 여성이 떠맡아줄 것이며, 그래도 일손이 부족할 때라면 집안에 유폐되어 ‘무능력’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받으며 일해줄 것이며, 마지막으로 이 모든 비참한 착취상황에 대한 불만을 가족 내부의 갈등으로 극적으로 전환시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와 아내가 불행한 것은 남편이 쥐꼬리만큼만 돈을 벌어와서이다.’ ‘남편과 아이가 불행한 것은 집안일을 소홀히 한 아내와 엄마 때문이다.’, ‘부모가 불행한 것은 그들 가족 전체를 계급이동 시켜줘야 할 아이가 공부도 못하고 툭하면 학교에서 말썽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등등. 즉 이런 이유로 여성들이 집안과 가족에 머물러 있어야만, 그들이 무상의 노동을 해야만 자본은 자신의 정상적인 생산순환 및 이윤생산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달라 코스타의 ‘자본주의적 가족 비판’은 여성의 자유로운 사회진출이나 그에 따라 직장 내 유리천장을 없애는 것이 여성투쟁의 과제로 보는 ‘자유주의적’ 관점을 경계하면서도, 동시에 여성투쟁을 계급투쟁의 종속변수로 보는 ‘사회주의적’ 관점이 은폐시킨 자본의 정치경제학을 그 근본에서부터 비판할 논거를 제공해준다.

 

“노동계급 여성의 해방이 그녀가 가정 밖에서 일자리를 얻는 데 있다는 점을 옹호하는 이들은 문제의 일부를 보지만 해결하지는 않는다. [공장의] 일관 작업대로의 예속이 부엌 싱크대로의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은 아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또한 일관 작업대의 예속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며, 여성들이 어떻게 착취되는지 모른다면 남성들이 어떻게 착취되는지를 정말로 알 수 없다는 점을 다시 증명하는 것이다. … 가족이 자본주의적 노동 조직화의 바로 그 기둥임을 완벽히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가족을 단지 상부구조로 간주하고, 변화를 위해서 오로지 공장들에서의 투쟁 단계들에만 의존하는 실수를 범한다면, 우리는 계급투쟁에서의 기본적인 모순 그리고 자본주의적 발전에 기능하는 모순을 항상 영구화하고 악화시킬 절름발이 혁명으로 옮겨갈 것이다.”

 

  • 여성들의 힘과 대안적 정체성

 

이 점에서 달라 코스타는 글을 쓸 1970년대 당시의 운동의 한 형태였으며 현재에도 하나의 구호로 사용되는 “가사노동에 임금을!” 투쟁을 지지 및 옹호하는 한편 그것이 가진 한계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려 했다. “가사노동 임금에 대한 요구는 처음부터 하나의 토대이자, 여자가 당하는 억압·종속·고립을 그것들의 물질적 기초인 여자가 당하는 착취로 곧장 연결시키는 데에 본질적인 매력이 있는 하나의 관점”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투쟁이 여성으로 하여금 집에 평화롭게 있으면서도 국가가 지급할 임금을 순진하게 손놓고 기다리게 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으며, 또한 이 투쟁이 여성운동의 다른 형태들과 결합되지 않은 채 제기되거나 또는 자본주의 사회의 핵가족 제도를 근본적으로 문제삼지 않는 한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여성의 노예적 삶을 더욱 공고히 할 위험, 즉 여성의 역할을 가사노동에 고정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사노동임금 투쟁의 목표는 단지 이런 노동을 덜, 적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노동을 부여받은 여성의 주부화를 박살내는 쪽에 맞춰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투쟁의 출발점은 “가사노동을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하느냐가 아니라 이러한 투쟁에서 주인공으로서의 위치를 어떻게 찾느냐에 즉 가사노동의 더 높은 생산성이 아니라, 투쟁에서의 더 높은 전복성”에 두어져야 한다.

달라 코스타는, 맑스가 그러했듯, 이러한 여성들의 전복적 투쟁이 가능한 근거를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그 노동의 형태와 성격 속에서 찾고자 했다. 즉 여성들이 벌이는 “사회적 투쟁의 가능성은 가정에서의 여성노동이 지닌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성격”에서 나온다. 그것은 그녀들에게 “대안적인 정체성”을 제공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때 ‘대안적인 정체성’, ‘사회적 투쟁의 가능성’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즉 자본주의적 생산체계와 가족체계는 여성을 무엇으로 생산하는가? (1) 마녀-되기와 악녀-되기. 여성 주부들은 집안의 벽 안에 구금되어 그녀들에게 부여된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여성성’을 재차 강제당하는데,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본주의의 노동조직화의 전체 구조를 보게 만든다. 즉 자본과 남성 노동자들이 공장 내에서의 적대를 중단하고 동맹관계를 회복하는 곳인 가정에서 여성들은 늘 ‘어디 나다니지 말고 집에만 있어!’, ‘몸가짐을 똑바로 해’, ‘집안 일을 완벽하게 해내라!’와 같은 명령을 듣곤 하는데, 이것은 구금된 여성들 자신으로 하여금 자본과 남성노동자의 은밀한 연합이 자신의 신체를 겨냥해서 이뤄지고 있음을 파악하게 만든다. 사랑스러운 아내, 영웅적 어머니, 조신한 딸로 그녀들에게 부과되는 이미지는 여성투쟁이 집중되고 또 그녀들이 위반할 수 있는 한계 지점이 어디인지를 알려준다. (2) 가족관계 바깥의 자율적 개인. “여성들은 아내나 어머니로서만 자신들의 남편과 아이를 만나기를, 즉 그들이 바깥세상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에 갖는 식사시간에만 만나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 자본주의적 조직화의 모든 영역이 여성의 가정주부화를 전제하는 그만큼, 가정 바깥의 모든 장소들은 여성들에 의한 투쟁의 기회를 제공한다. 즉 공장 회합에서, 반상회에서, 학생총회에서, 심지어 취미모임들에서 여성들이 남성을 어머니 대 아버지나, 아들 대 딸이 아니라 한 명의 독립된 인격체로 만나고 대면하면서 공통 관심사를 다룰 때, 그들은 가정 내에서의 종속된 권력관계를 해체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3) 질 오르가즘의 신화를 파괴하는 사랑의 기계. 여성들이 회사나 공장에서, 노동자총회에서 단지 육체적으로 피곤하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밤에는 잠자는 것 외에 사랑을 하고 싶기에 야근을 금지해야 한다”고 요구할 때, 그것은 노동의 사회적 조직화에 맞서 여성으로서 그녀 자신의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좌파 정당들과 노동조합들은 사랑을 계급의 이해관계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개인들의 낭만적 영역으로 치부해왔다. 하지만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남성들이 아니라 왜 여성들이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계급의 전체 역사에 새로운 빛을 던지는 계기를 준다. 따라서 이때의 사랑은 출산과 육아를 벗어난 사랑, 따라서 삽입성교에 구속되지 않는, 강제된 이성애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사랑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 (4) 생산에서 배제된 자들의 연합. 자본주의적 가족체계 내에서 남성들과 청소년들이 가족들로부터 분리되고, 그들이 근대적 훈육기관들에서 자본의 명령에 익숙해지는 동안, 여성들, 노인들, 장애인들과 같은 자본주의적 생산회로에서 배제된 이들은 자신들의 연합을 강화시킨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어린아이들, 노인, 아픈 사람 등과 시간을 갖기를 원한다.” ‘시간을 갖기를 요구하는 것’, 이것은 단지 자본의 판매시장 확대를 의미하는 가사노동의 자동화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것은 생산회로에서 배제되었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생산회로를 떠받치고 있는 여성들이 투쟁의 주도권을 쥐고 자본과 국가를 향해 다른 모든 배제된 사람들과 함께 사회적 부를 재전유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자신들과 분리된 노동자 남성 및 학생으로서의 청소년들과의 재통합을 추진하는 시초적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 노동거부와 공동체의 전복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자본주의적 생산회로와 가족구조는 여성의 사회적 투쟁의 잠재력을 극도로 팽창시킨다. 자본주의는 부불노동으로서의 여성의 가사노동에 의존해 자신의 거대한 이윤생산체계를 지탱하고, 재생산한다. 이런 점에서 달라 코스타는 여성운동의 투쟁방향과 목표를 좀더 혁명적으로 수립하기 위해, 이 거대한 생산회로의 중심부에 있는 가사노동과 바로 그 경계선 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확인하고자 했다. 여성들은 가정 바깥에서든 안에서든 항상 일하며, 바로 이렇게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바로 그 노동의 성격, 그 노동의 수행과정이 여성의 혁명적 잠재력을 끊임없이 팽창시키는 것이다. 자본은 자본주의 이전에는 한 덩어리로 생산했던 가족적 생산체계를 해체하고 그들 중 일부를 공장과 학교체계로 분리시켜 표면적인 착취관계를 확립했으며, 그 과정에서 모든 생산의 밑바닥에 여성의 부불노동이 뒷받침되게끔 하는 착취와 이윤의 안정된 판을 형성했다. 바로 이 숨겨진 노동, 그림자 노동이 없다면, 자본은 이윤은커녕 현재와 같은 사회형태로의 도약조차 이뤄낼 수 없었을 것이다. 달라 코스타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점에 있다. 즉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는 혁명의 비밀은 바로 이 근본적 밑바탕, 가사노동이면서 재생산노동인 이 잉여가치 생산의 원천인 여성 자신의 노동에서 찾아져야 한다.

심지어 오늘날 이 노동은 이제 숨겨진 노동이 아니라, 표면적으로도 생산관계 전체의 전면으로 부상되었다. 노동의 여성화, 노동의 정동화, 노동의 가사노동화, 그리고 인간 자체, 주체성 그 자체를 생산하는 노동의 삶정치화는 이제 산업자본을 넘어서 오늘날의 인지자본주의 내에서, 임금관계 안팎 모두에서 가장 핵심적인 생산능력이 되었다. 자본은 과거에는 부불노동의 당사자인 여성들에게만 요구했던 것을 이제 남녀 모두에게 예외없이, 심지어 자본 자신의 운동에게조차 명령한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라! 너 자신이자 타인인 저 특이한 인격체이자 감성적이고 정동적인 존재를. 모든 이에게 친절한 인간이 되어라!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타자에게 사랑받으며, 타자를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라!라고. 이 점에서 바로 우리의 시대, 인지자본의 시대에서, 달라 코스타의 혁명적 페미니즘은 다른 어떤 혁명이론도 능가할 가장 근본적이고 해방적인 선언이 된다. (끝)

 

  •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 편은 여기까지 입니다.
  • 다음으론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편이 연재됩니다.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上)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7. <여성들과 공동체의 전복>,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 (上)

 

이승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우리는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는 가정을 거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여성들과 단결하기를 원하며, 여성들이 집에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모든 상황들에 맞서 싸우기를 원하며, 간호실, 학교, 병원, 요양원, 또는 정신병원이든 어디든 게토들에 있는 모든 이들의 투쟁들에 우리 자신을 연결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가정을 거부하는 것은 이미 하나의 투쟁 형태이다.”

 

1943년 이탈리아 동북부 지역 트레비조에서 태어난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는 유럽이 혁명의 열기로 뜨거웠던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까지 이탈리아의 ‘포떼레 오뻬라이오’[노동자의 힘]에서 활동하며 노동자, 학생, 여성들이 연합한 전투적 투쟁에 참여했다.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이 전통적으로 크게 갈등하지 않았던 이탈리아에서 페미니즘 이론은 맑스의 자본 비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그것을 당시에 전개되던 여성들의 사회적 투쟁을 강화시키는 배경으로 삼았는데,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의 글 「여성의 힘과 공동체의 전복」이 그런 흐름에서 가장 선도적인 위상을 차지했다. 이 글은 처음에는 ‘빠도바 여성 투쟁 운동’이라는 서명으로 1971년 6월 팸플릿의 형태로 작성되어 여성 운동가들 사이에서 회람되는 방식으로 이탈리아 전역에 보급되었다. 이후 1972년 3월 이탈리아의 마르실리오 출판사에서 정식 출판물로 출간되었고, 그해 10월 영국 폴링 월 출판사에서 셀마 제임스의 글 「여성의 자리」(1953년에 최초 발표)가 함께 수록된 영어판으로 번역․발간된 이후 지금의 국제적인 명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재생산과 여성의 지위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던 당시의 국제 학계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한편, 지금은 ‘사회주의적 페미니즘’ 계열의 여러 출판물들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으로 수용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여성학의 여러 교과과정에서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채택되고 있다.

 

 

  • 가사노동, 즉 부불노동에 대한 자본의 착취

 

고전적 맑스주의의 전통에서 여성들의 가사노동은 공공의 생산노동인 임금노동과 구별되는 사적인 영역의 재생산 노동으로 범주화된다. 그들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에 의해 착취되는 무산자 계급, 즉 임금노동 계급만이 혁명의 주축이며, 그 밖의 생산자들은 혁명의 보조자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혁명의 적으로 기능한다.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가 도전한 것은 바로 이러한 노동계급의 분할, 즉 생산노동(주로 남성들이 담당하는 공장과 직정에서의 산업생산노동)과 재생산노동(임금노동에 고용된 이들을 포함한 여성 대부분에게 떠넘겨지는 출산․육아를 포함하는 가정에서의 가사노동), 공적 노동과 사적 노동으로 분할된 규정이었으며, 나아가 그러한 범주적 구별에 적용되는 노동의 성격적 분할, 즉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규정이었다.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을 개념적으로 분할하는데, 고전적 맑스주의는 이것에 근거해 가사노동을 ‘생산적이지 않은 노동’, 따라서 자본축적에 동원되지 않는 노동으로 규정하며, 그 결과 여성의 노동은 자본 바깥에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하지만 달라 코스타는 가정주부가 가정에서 생산하는 것은 상품의 교환가치를 생산하는 바로 그 ‘노동력’ 상품이라고 말한다. 가정주부의 노동을 통해 남편은 노동시장에서 자신을 자유 임금노동자로 판매할 수 있게 되며 자본은 그 노동을 통해 자신의 착취적 생산형태를 유지한다. 즉 가정주부의 생산성이 남성 임금노동자 생산성의 전제조건이며, 나아가 미래의 노동력을 생산하는 가정주부의 출산과 육아가 일정량의 노동력을 충원하는 노동시장의 전제조건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에 의해 조직되고 보호되는 가족은 ‘노동력’ 상품이 생산되는 사회적 공장이다. 따라서 가정주부와 가정주부의 노동은 잉여가치 생산과정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시작되는 기초를 이룬다. 다시 말해, 가정주부의 노동은 자본축적 과정의 원천이자 심장이다.

국가와 법적․제도적․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이 협력하는 가운데, 여성은 고립된 가족 안에 갇히게 되었고, 그곳에서 수행되는 노동은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이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의 노동은 강제되고 착취되는 노동이 아니라, 사랑, 돌봄, 감성, 모성 등으로 표현되는 자연화된 노동, 인간의 본능적 활동으로 치부되었다. 정통 좌파들이 놓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달라 코스타는 자본과 국가가 여성의 무상가사노동과 남성의 임금노동을 연계하는 전략적 관계를 창출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자본은 ‘생계 책임자’인 남편이라는 인물 뒤로 숨을 수 있다. 여성은 ‘가정주부’로 남편을 직접 다루면서, 돈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편을 위해 일하리라 여겨진다.

“자본이 남성을 충원하고 그를 임노동자로 전환시키는 한, 자본은 남성과 다른 모든 프롤레타리아들 간의 분열을 만들어냈다. 즉 임금을 받지 않는 이들은 사회적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기에, 사회적 반란의 주체들이 될 수 없다고 간주된다. … 노동계급운동 조직들이 분명하게 밝히지도 않았고, 또한 가정하지도 않은 것은 바로 임금을 통해 임금을 받지 않는 노동자들의 착취가 조직되어왔다는 점이다. 이러한 착취는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임금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착취[당한다는 사실]를 숨기기 때문이다. 임금은 공장의 단체협상에서 나타나는 것보다 더 많은 노동을 지배했다. 여성들이 관련되어 있는 노동은 자본 바깥에서 하는 개인적 서비스처럼 보인다.”

이런 분석에 기초해서, 달라 코스타는 많은 좌파 남녀들이 갖고 있는 통념, 즉 여성은 억압받는 이들일 뿐이며, 여성 억압의 문제는 ‘남성들의 맹목적인 성차별주의’에 있다는 식의 생각도 비판한다. 자본은 임금노동자의 유상노동뿐 아니라, 가정주부의 무상노동도 조종할 수 있기 때문에, 여성의 가내노예화는 단순한 억압이 아니라 ‘노동력’ 착취로 이해되어야 한다. 바로 이 무상노동이 지닌 착취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임금노동에 대한 착취구조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 부불노동으로서의 가사노동과 여성들의 투쟁

 

달라 코스타는 여성의 가사노동을 비생산적 노동으로, 그래서 부불노동으로 만드는 과정이 정치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효과를 생산하며, 또한 그에 따른 당시에도 있었던 여러 형태의 운동 양식들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첫째, 여성 무능력의 신화의 확산.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도래와 함께, 여성들은 고립되고 가정이라는 감방에 갇혀서 모든 측면에서 남성 임금에 의존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여성들에게 가사노동이 전가됨으로 인해, 설혹 직장 여성의 경우일지라도, 업무의 연속성이 가정에서의 일들을 통해 깨지는 경험을 매순간 겪어야 하며, 그것이 직장에서의 업무 배제의 이유나 여성의 취업이 힘든 이유로 기능한다. 가사노동의 시간이 가족 삶의 모든 부분에 대한 관리에 있는 만큼, 여성들은 휴일이나 휴가에도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데, 그것은 역설적으로 가정에서의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할수록 더 무능력해지는 효과를 낳는다. 나아가 주부의 경우, 이웃 이외의 사회생활의 모든 가능성들이 차단되는 만큼 여성들은 사회적 지식 및 사회적 교육의 기회 역시 박탈당하게 되며, 협력과 연대의 경험 역시 차단당한다. 하지만 이것은 여성으로 하여금 공장과 직장 바깥에서의 비공식적인 생활 공동체로의 참여의 기회를 확산시킨다. 임차료 파업, 인플레이션에 반대하는 투쟁들, 생필품 가격 인상에 대한 항의, 건강 및 의료분야에서의 과실로 비롯되는 항의 등의 기반에는 항상 여성들의 비공식적인 조직이 있었다.

둘째, 자본과 국가에 의한 여성의 자궁 관리. 자본주의는 가족을 핵가족으로서 정립했고, 사회적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노동시장에서 독자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으로서 여성을 핵가족 안에서 남성에게 종속시켰다. 핵가족은 여성노동 활동의 발전 및 창조의 모든 가능성들을 없애 버리듯이, 여성의 성적, 심리적, 정서적 자율성의 표현을 없애 버린다. 여성은 어머니가 되어야 하고, 그것도 자녀에게 무한한 사랑을 나눠주는 기계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창조적 능력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차단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여성의 성생활을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기능으로 축소시킨다. 여성들은 자녀를 갖도록 강요받았고 그녀가 자율적으로 실행할 출산 통제의 가장 원시적인 기술조차 금지당하는 효과를 낳았다. 그리고 이것은 여성의 낙태법 반대 운동을 촉발시켰다.

셋째, 노동분업의 동성애. 자본 권력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서 남성들과 여성들 간의 성적 애정 및 친밀감을 명령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동성애 운동은 그런 명령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동성애는 자본주의 사회 자체의 틀에 뿌리박고 있다. 서로가 하루 종일 분리된 채 가정에 있는 여성들과 공장과 회사에 붙들려 있는 남성들. 이것은 이미 자본이 노동하는 이들에게 부과하는 동성애적인 삶의 틀이다. 자본은 한편으로는 이성애를 종교로 끌어올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들과 여성들이 육체적으로 또는 정서적으로 서로 접촉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자본은 노동력 재생산에 유용한 한에서만 이성애를 허용할 뿐 나머지 시간에서는 이성애를 파괴하고 손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달라 코스타는 바로 이러한 자본의 작용이 역설적으로 동성애적 경향들을 촉발 및 폭발시킨다고 보았는데, 동성애 운동은 그런 점에서 자본에 의해 조성된 사랑의 관계를 자본으로부터 명령에 맞서는 방식으로 전환시킨 사례인 것이다.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존 스튜어트 밀 (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이 직업을 선택하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즉 ‘공적 영역’ 진출의 자유와 자격을 논한다. 여성이 (사적 영역인) 가정에 머무는 것은 여성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혹은 그것이[여성이 공적 영역에 진출하는 것이] 부정의하기 때문이 아니라, 대다수 남성들이 가정 내에서 여성이 집안일에만 전념하고, 가정 내에서 여성의 복종이 유지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 전체가 아니라 남성의 배타적인 이익을 위해 지속되어 온 관습이다. 그리고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배제는 여성에 대한 억압일 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해악이다.

인류의 절반이 스스로의 책임 아래 각자가 원하는 대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평등한 도덕적 권리를 부인하는 것은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여성의 투표 행사 권리는 모두가 마땅히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기보호의 수단을 가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헌법의 역할은 사람들의 신탁에 있어 필요한 모든 안전장치와 제한으로 선거권을 보호하는 것이며, 법적 보호를 받는 모든 사람은 누가 어떤 법을 만드는지 알고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밀은 여성이 공적 책임을 맡지 못할 이유가 없음을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공직은 ‘자격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여성이든 공개경쟁에서 승리하기만 하면 그런 일을 할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단지 몇몇 여성이라도 그 자리에 대한 자격이 인정될 경우, 그런 가능성을 막는 것을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또한 밀은 여성의 교육 받을 권리를 주장한다. 그는 남성들 사이에 존재한다고 가정되는 정신적 차이는 그들의 교육과 상황 차이에 의해 비롯되는 것일 뿐이라는 점에서, 남녀 간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생각 역시도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언제나 억압의 상태에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본성이 심각하게 왜곡되고 훼손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여성의 본성을 남성의 본성처럼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놓아둔다면, 그리고 만일 인간 사회의 조건이 남녀에게 공통으로 줄 수 있는 것 외에 어떤 인위적인 성향도 여성에게 가하지 않는다면, 남녀의 성격과 능력 사이에 실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남녀의 차이조차 자연적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후천적인)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또한 밀은 만약 여성이 실제로 열등하다고 하더라도, 약점 있는 남자 또한 많은데, 그들은 [여성과 달리]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그에 의해 교정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여성도 남성과 같은 교육을 받아 교정될 수 있다면, 여성 역시 남성이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라도 완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밀은 여성의 종속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여성 해방을 논했던 최초의 남성 철학자이다. 그 자신은 자신의 성별 때문에 종속의 경험이 없음에도, 그토록 여성 해방을 주장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밀은 여성의 종속이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해악을 끼치며, 여성이 자유로워지면 인류 전체는 진보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여성이 자유로워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혜택은 당연히 여성의 사적 행복이다. 인간은 타의에 이끌려 사는 것보다 합리적 자유에 따른 삶을 살 때 행복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무제약적인 자유가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의무감에 따라 그리고 자신의 양심과 일치하는 사회적 제약에 따라 스스로의 행동을 규율하는 자유를 일컫는다. 또한 각자의 능력을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발휘하는 것도 행복의 한 원천이다.

나아가 여성이 자유로워진다면 남성의 도덕적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밀이 살았던 당시의 남녀 관계는 오히려 남성들에게 도덕적 해악을 끼친다. 정당한 근거 없는 남성의 여성 지배는 모든 이기적 경향, 자기 숭배, 옳지 못한 자기 선호에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 왜냐하면 실정법이 단지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본인보다 우월한 여성들까지도 포함해] 인류 절반보다 우월한 자리에 올라갈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은 이런 믿음이 개인으로서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남성의 삶 전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다른 하나의 성 전체 위에 있다는 느낌과 그들 중 한 여성에 대한 사적이고 개인적인 권위의식이 합쳐지면, 자신의 성취가 아니라 우연적인 이점을 자랑하는 최악의 종류의 ‘자부심’을 느끼게 되고, 이 악덕이 그들과 동등한 다른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도전 받아 억제된다면, 그들은 그것을 인내해야 할 의무가 있는 위치의 사람들에게 분풀이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밀은 여성 해방이 사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 근거로 밀은 그 당시의 도덕과 정치에 있어서 원리를 들어 그의 주장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정의의 원칙의 적용 범주는 행위자가 아니라, 행동만이 존중 받는 것이다. 어떤 신분의 사람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가가, 즉 출생이 아니라, 공적만이 모든 권력과 권위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과 당시의 남녀 관계는 모순적이다. 양립 불가능한 이 두 원칙 중 부정의, 즉 특정 개인이 타인에 대해 지속적인 권위를 지니는 것을 허용하는 것에 봉사하는 원칙을 폐기하지 않는다면, 정의의 원칙을 세우려는 교육과 문명의 모든 노력은 허사일 뿐이다. 여성의 억압, 즉 세계가 소유하고 있는 재능의 반을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심각한 세계의 손실이며, 여성에게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재능의 양을 늘리는 것은 인간사를 위해 유용할 것이다.

 

  • 『여성의 종속』의 이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밀은 자신의 도덕론의 주체와 대상을 명시적으로 여성에게까지 확장할 것을 주장한 최초의 남성 철학자이다. 그는 개인의 자유는 다른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사회 전체의 행복을 늘리기 때문에 이롭다는 공리주의적 관점과 행위자가 아니라 행위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정의의 원칙을 바탕으로, 여성의 권리 보장과 제도적 차별을 없앨 것을 강조했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같은 인간으로 고려해야 함을 호소한다. 밀 이후에 ‘포스트 페미니즘’ ― 접두사 ‘post’(이후)와 ‘페미니즘’이 결합하여 ‘요즘 시대에 여성차별이 어디 있느냐, 페미니즘은 낡은 유물이다, 페미니즘이 필요한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안티 페미니즘적인 맥락에서 사용되는 말 (이와 전혀 다르게, 원래는 포스트 식민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포스트 구조주의 등에 영향을 받은 페미니즘 흐름의 한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 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여성의 공적 영역에의 진출은 확대되었고, 헌법은 여성의 모든 권리를 보장하며, 적어도 제도상으로 여성이 할 수 없는 일은 이제 없다. 기혼 여성들 또한 이제는 배타적인 자신만의 재산을 가질 권리와 결혼 관계를 그만둘 권리를 가지며, 이혼할 때 아이 양육권은 협상으로 분배된다. 어쩌면 밀이 기대한 ‘차별’ 없는 세상이 도래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밀이 기대한 차별 없는 세상에서 여성의 일생은 그 당시의 여성들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은 김지영 씨가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어디에나 갈 수 있도록, 그녀의 성별이 그것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녀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정작 뭔가 하려고 하거나, 어디 가려고 할 때, 이제 ‘맘충’이라는 비난, ‘여자 직업으로 선생님만 한 게 있는 줄 알아?’라거나 ‘그냥 얌전히 시집이나 가’라는 말,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회사에서도 부담스러워’ 한다는 소리와 마주친다. 차별의 시대는 이제 혐오의 시대가 되어, 여전히 여성의 억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여성 해방에 있어 법 혹은 제도의 역할은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자유 실현을 위한 기존 제도에의 도전은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성과 똑같은 ‘인간’으로서 여성의 동등한 권리/기회 보장을 넘어서, 페미니스트들은 사소하고 주관적인 경험으로 생각되어 온 여성의 경험에 ‘성희롱/성폭력’ 등으로 명명하여 하나의 사회 문제로 제도 내에 기입했고, 고용이나 채용 등에서 여성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는 ‘적극적 조치’를 제도적으로 실행할 것을 요구했다. 모든 인간을 동등한 주체로 볼 것과 모든 인간의 (표현의) 자유를 강조한 밀이 이러한 도전들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밀이 『여성의 종속』 서두에서 여성 억압을 유지하는 제도의 유일한 근거로 제시한, 여성을 지배하고자 하는 남성의 ‘강렬하고 뿌리 깊은 감정’을 제거하기 위한 시도로서, 그는 이러한 도전들의 유효함을 인정하지 않을까?

 

  • 두 달에 걸쳐 두 편으로 연재된 존 스튜어트 밀에 관한 글 잘 읽으셨나요?
  • 다음 달(6월)에는 미셸 푸코에 관한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존 스튜어트 밀 (上)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에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페미니즘 이론과 사상을 발전하고 확대하는 데에 기여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한 달에 두 번씩 [매달 초, 중순] 연재할 예정이며, 매달 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다룰 것입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 및 업로드 담당 – 서누)

 

 

서양 근대철학의 이상은 인간에서 시작한다. 그 이상은 인간의 능력으로부터 출발해, 세계를 향하고, 인간에게로 되돌아온다. 모든 인간의 평등에 대한 사상들이 이때부터 생겨났다. 그런데 여기에는 큰 약점이 있었다. 그 ‘인간’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예컨대,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1632-1704)는 모든 인간에게 사유 재산을 가질 권리가 있음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영국에서 여성의 재산권이 온전히 보장된 것은 1882년 재산법 통과에 이르러서였다. 또한 ‘사회계약론’으로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한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의 저서 <에밀>에서 자연적 본성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의 이성 능력이 다르고, 그 차이에 따른 양성의 역할이 다르다고 말했다. 루소에 따르면, 여성은 본성적으로 도덕적 자유를 성취할 만한 정신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구성원 즉 시민으로서의 자질이 결여되어 있다. 루소는 남녀의 차이를 자연적인 것으로 설명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차별 대우를 정당화했다. 그리하여 루소가 주장한 ‘천부 인권’은 여성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었다. 한편 프랑스 대혁명 이후, 1789년 프랑스에서 라파이예트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발표했고, 같은 해 남성 시민들에게 비로소 ‘보통 선거’에 가까운 투표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프랑스 여성들이 투표를 통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무려 1944년에 이르러서였다.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이 <여성의 종속>을 저술하던 19세기의 영국에서 위와 같은 성차별은 제도뿐만 아니라 생활양식 전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성은 생물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주로 남성과의 차이에 의해 규정되었으며, 이러한 차이는 역할 분리로 나타났다.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가 뚜렷해지면서, 남성은 공적 영역에서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여성은 순결한 존재로 사적 영역을 지키면서 남성을 위안하고 돌보는 역할만을 맡아야 했다. 그럼에도 19세기 후반, 20여 년간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여성의 고등교육 기회 확장, 여성 노동시장의 증가, 투표권이나 산아제한에 대한 캠페인 등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반드시 수행해야만 한다는 전통적 관점에 대해 여성들이 자각하고 도전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밀은 ‘남성에의 여성의 종속’은 문명사회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남성과 다를 바 없는 여성의 완전한 자유와 평등의 쟁취를 목적으로 <여성의 종속>을 쓴다. 그리고 여성 억압은 여성을 지배하고자 하는 남성들의 강렬하고 뿌리 깊은 감정 외에 정당한 이유나 근거 없이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지적한다. 특히 그는 ‘모든 인간의 평등’이라는 이념이 확산되어 점차 철폐돼 가던 노예제와, 그에 반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여성 억압을 비교하면서 사회에 탄원한다.

밀에 의하면 자유와 평등의 추구는 선험적 진리이며, 공공의 이익(general good)을 위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떠한 법적 차별도 용납할 수 없다. 그런데 ‘남성의 여성 지배’라는 제도는 이러한 선험적 진리에도 어긋나며, 공공의 이익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도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다른 대안, 예컨대 ‘여성의 남성 지배’나 ‘두 성의 동등한 지배’가 시도된 후에 적극적인 비교를 통해 판단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의 여성 지배’라는 원칙은 힘센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한다는 강자의 법칙 외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러나 문명과 도덕이 발전한 사회에서 강자의 법칙은 인간사회를 규율하는 원리로서 적절하지 않으므로, 이마저도 ‘남성의 여성 지배’의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없다.

한편 여성은 지배 받아야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논거로 남성의 여성 지배를 정당화하는 사람도 있었다. 밀은 일반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은 정말로 ‘그러한 것(본성)’혹은 ‘그러해야 하는 것(당위)’이 아니라, 관습적인 것이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역사적 사례를 들어 반박한다. 봉건 시대에 귀족의 평민 지배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이제는 모두가 정당하게 인정하는 일반 시민(당시의 농노)의 정치 참여는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고대의 스파르타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한 신체적 훈련을 받았고, 이를 통해 당시의 사람들은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능력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남성의 여성 지배’는 여성의 자발적 동의에 의한 것도 아니다. 밀이 <여성의 종속>을 저술하던 당대에는 ‘남성의 여성 지배’에 부당함을 느끼며 직접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을 글로 쓰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었고, 선거권 운동과 더불어 교육권, 노동권 보장을 획득하려는 정치적 집단들이 조직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성은 어떠해야 한다는 지속적인 세뇌와 정치적 운동에 참여했을 때 우려되는 남편의 학대 때문에, 여권 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여성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면서, ‘남성의 여성 지배’는 여성의 자발적 동의에 의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여성의 전반적 지위가 내려가느냐 올라가느냐를 따져보는 것이 한 민족 또는 한 시대의 문명 발전 정도를 가늠하는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밀은 앞선 논의들을 종합하며 불평등한 권리의 구조는 인간 발전의 전 과정, 즉 역사의 흐름과 인간사회의 진보적 경향, 그리고 미래와 조화롭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와 낡은 과거를 가르는 기준은 인간이 출생조건에 의한 억압에서 벗어나 능력과 기회를 이용하여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자신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문제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사자가 스스로 해결하도록 놔두는 것이 발전을 이루는 사회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단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법과 제도에 의해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현대의 사회 원리에 어긋나는 거의 유일한 사례이며, 현대 세계의 진보적 흐름과 대립되는 것이라고 본다.

특히 밀은 당대의 결혼 제도가 여성에게 전적으로 불(합)리한 제도임을 자세히 밝힌다. 결혼한 여성의 법적 지위를 살펴보면 [노예제와 같은 법적인 신분 차별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남편의 노예와 다름없다. 아내는 결혼식 단상에서 남편에게 평생의 복종을 맹세하고 나면, 평생을 통해 그것을 지켜야 한다. 여성은 남편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며, 남편의 허락 없이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나아가 아내는 어떤 것도 소유할 권리가 없다. 상속을 통한 것이든, 노동을 통한 것이든. 여성이 어쩌다 재산을 가지게 되더라도 그것은 결혼과 동시에 사실상 남편의 소유가 된다. 아내의 것은 무엇이든 남편의 것이 됨으로써 ‘법 안에서 한 사람’이 되지만, 그 규정은 반대로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만이 자녀에 관한 법적 권리를 갖는다. 여성은 남편의 대리로서가 아니면,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다.

 

(영화 ‘서프러제트’ 中, 여권 운동에 참여하여 가정을 잘 돌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를 다른 집에 입양 보내는 주인공 모드의 남편. 여기에서 모드는 반대할 권리가 없어 아이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든 남성이 여성을 노예처럼 부리고,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이 실제 결혼생활에서 받는 대우와 상관없이 이 제도는 그 자체로 부조리하다. 이 제도를 악용할, 사악한 남성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이 제도에 의해서 목격되는 불평등은 정당한 것이 아니며 잠재적 폭압을 합법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제도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선한 사람들이 아니라 악한 사람들을 염두하고 만들어져야 한다. 모든 남성은 결혼하는 순간 남편으로서의 완전한 법적 권력이 부여되고 보장되지만, 남편들 중 그 누구도 결혼 전에 절대권 행사에 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고 법도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두 사람 중 어느 한 쪽은 관계를 취소할 수 없는데, 이들의 자발적인 결합에서 한 사람이 절대적인 주인이 되는 것은 옳지 못하며, 특히 법이 누가 주인이 되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아이리스 영 (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정의란 무엇이며, 부정의란 무엇일까? 억압당하는 집단은 부정의를 겪고 있다고 주장하며, 정의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억압이란 무엇이며, 누가 어떻게 억압당한다는 것일까?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차이의 정치와 정의>에서 유명한 ‘억압의 다섯 가지 모습들’을 제시한다. 영은 철학에서 논의되어 왔던 기존의 정의론을 비판하면서, 정의와 부정의는 분배 문제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억압’과 ‘지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억압이란 “사회 구성원의 일부가 사회적으로 인정된 환경에서 좋은 기술들을 익히고 사용하는 것을 막는 제도적 과정 체계”(p.99.)를 뜻한다. 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자기-표현(self-expression)과 관계된다. 한편 지배는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할지 결정할 때 참여하지 못하게 금제하거나 막는, 또는 행위조건들을 결정하는데 참여하지 못하게 금제하거나 막는 제도적 조건들”(p.99.)을 말한다. 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자기-결정(self-development)과 연결된다. 영은 이런 억압과 지배를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정의라고 주장한다.

물론 영이 분배 부정의, 즉 재화나 지위에서의 불평등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배 문제는 정의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분배의 문제가 정의의 전부라고 간주하게 되면, 우리는 그러한 불평등한 분배 부정의를 낳은 생산조건과 제도적 맥락, 노동 분업의 문제, 의사결정 권력 문제, 문화의 문제를 보지 못하게 된다. 또한 분배에만 주목할 경우, 분배와 관련될 수는 있지만 그보다는 더 포괄적이고 구조적인 ‘억압’이라는 문제는 도외시된다.

억압이라는 용어는 우선 전통적으로 독재국가에서 탄압받는 시민들을 일컬을 때 사용되거나, 제국주의 식민지 국가나 공산국가들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영에 따르면 억압은 심지어 발전된 서구 자유주의 국가에서도 존재하며, 반드시 억압하는 자가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억압은 제도적인 조건이기에 단순히 사회적 지위나 생산관계로 인해 누군가가 특권을 얻고 누군가는 차별을 당하는 상황 자체도 억압이 된다.

억압이라는 용어가 부정의의 문제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된 배경은 주로 신 사회 운동, 즉 사회주의 이후의 다양한 정체성 운동인 페미니즘, 게이/레즈비언 해방운동, 아프리카계 미국인 운동, 환경 운동의 약진 덕분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억압을 경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은 이러한 현실 운동의 주장들에서 출발한다. 주로 이들이 억압을 개선하거나 종식해달라고 요청할 때, 어떤 억압의 양상들이 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은 이러한 억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면서, 이 억압당하는 집단들은 착취, 주변화, 무력화, 문화제국주의, 폭력이라는 억압을 체계적으로 겪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착취(exploitation)’는 “일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목적(의도)에 따라서, 그리고 이들의 이익을 위하여 그 통제 하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 즉 “사회집단의 노동 산물이 타 집단에게 이득이 되도록 이전되는 항상적 과정”(pp.123-124)을 일컫는 용어로, 물론 맑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용어이다. 그러나 영은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 문제를 넘어서 여성의 에너지가 남성으로 이전되는 ‘젠더 착취’로 착취 개념을 확장시킨다. 젠더 착취에는 두 가지 양상이 있는데, 예컨대 여성이 보수를 받지 못하고 가사 노동을 하게 되는 것처럼 물질적 노동의 과실이 남성에게 이전되는 것과, 성애화 된 직종에 종사하거나 직장에서 긴장관계를 누그러뜨리는 노동에 종사하게 되는 것처럼 여성의 정서적, 성적 에너지가 남성에게 이전되는 것이 있다. 영에 따르면 이런 착취는 단순히 노동 산물이나 에너지에 대한 착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착취하는 집단은 착취를 통해서 부나 이윤뿐 아니라 권력을 소유하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둘째는 ‘주변화(marginalization)’로, 이는 “노동 시스템이 사용할 수 없거나 사용하지 않으려는”(p.131) 것을 일컫는다. 청년 실업이나 노인, 신체 장애인과 정신 장애인, 재취업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주변화로 인해 고통 받는 집단에 해당된다. 주변화를 경험하는 집단은 불안정한 고용과 실업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복지에 의존한다는 비난 등으로 인해 의미 있는 노동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채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는 억압을 경험한다. 따라서 영은 “어쩌면 주변화야말로 가장 위험한 억압 형태일지도 모른다”(p.132)고 설명한다.

세 번째, ‘무력화(powerlessness)’는 “간접적 의미에서의 권한이나 권력조차도 전혀 가지지 못하는 것”, “명령은 무조건 따라야 하지만 명령을 내릴 권리는 거의 갖지 못하는 상태에 처한 것”(pp.137-138)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의사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할 권력 자체가 박탈당한 상태이기 때문에 무력화인 것이다. 예컨대 비전문직 노동자들은 고소득 전문직 노동자들에 비해 업무에서의 자율성이 거의 없고 독자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불가능하며 상급자의 지휘나 감독만을 받기 때문에 자신의 일에 대한 전문성이나 통제력을 가지지 못한다. 공사장의 인부는 전기 기술자, 건축 기술자 등 숙련 노동자에 비해 천시당하거나 권한을 갖지 못한다.

네 번째 억압은 ‘문화 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이다. “지배 집단의 경험과 문화를 보편화하고 유일한 규범으로 확립하는 것”(p.142)으로서, 이는 지배 집단이 자신들 역시 특수한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관점이나 견해가 보편적인 것인 양 강요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예컨대 백인 이성애자 남성들이 흑인이나 여성들은 열등하다는 레테르를 붙이거나 동성애자들은 난잡하다는 식으로 표지를 붙이는 방식이다. 이러한 피억압 집단을 향한 지배 집단의 편견이나 선입견이 보편적인 문화로 제시됨으로써, 피억압 집단의 관점이나 정체성은 배제되고 차별 당하게 된다.

마지막 억압은 ‘폭력(violence)’로서, 영에 따르면 폭력은 단순히 개별 행위자의 행위가 아닌, 사회적인 맥락에서 비롯될 수 있는 체계적인 속성을 가진다. “폭력이 개인적으로 저지르는 도덕적 잘못이라는 점을 넘어서서 사회 부정의의 한 현상이 되는 것은 폭력이 가지는 체계적 속성, 즉 폭력이 사회적 실천으로서 존재한다는 점이다.”(p.148) 다시 말해, 특정한 제도와 사회적 실천이 특정한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폭력 행위를 부추기고 관용하고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사회적 환경(맥락)이 결국 그 폭력을 재생산하기 때문에,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체계적 폭력(systematic violence)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을 성폭행하거나 동성애자를 구타하는 행위에는 그러한 행위들을 방조하고 묵인하는 제도적이고 사회적 맥락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이렇게 억압의 다섯 가지 양상을 통해 영은 지금까지의 분배 중심의 정의론이 문화 제국주의나 폭력과 같은 억압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이런 억압들은 ‘사회집단’으로서의 약자들에게 가해진다는 특성이 있다. 영은 집단을 단순히 이런저런 속성들로 자의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집합체(aggregate)나, 혹은 가입과 탈퇴가 비교적 자유로운 공식적인 결사체(association)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정의론은 개인이 집단 이전에 있다는 자유주의적인 인간관을 전제한다고 비판하면서, 이처럼 개인들의 묶음들로 집단을 바라보는 관점은 피억압 집단이 발생하게 된 사회․역사적 맥락을 도외시함으로써 억압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존의 정의론은 억압당하는 사회집단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락시킴으로써 차이를 은폐해 왔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집단이 다 억압 받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미국에서 가톨릭 신도들은 독특한 관행과 상호 친밀성을 가진 특유한 사회집단이기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억압받는 집단은 아니다. 영에 따르면 “한 집단이 억압 받는지 여부는 다섯 가지 조건(착취, 주변화, 무력화, 문화제국주의, 폭력) 중 한 가지 조건이나 그 이상의 조건들을 충족하는지에 따라 정해진다.”(p.120). 예컨대 영의 ‘억압의 다섯 가지 조건’을 고려해 봤을 때, 사회집단으로서의 ‘남성 집단’은 인종, 성적 지향, 계급이나 학벌 등으로 차별받을 수는 있어도, 적어도 남성으로 억압을 경험한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영은 이처럼 억압에 대한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집단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억압들을 범주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어떤 제도나 정책이 이 억압의 범주들 중 하나를 강화한다면, 그것은 부정의한 것이 된다. 영은 이 기준들을 통해 차이를 가지는 사회집단들이 경험하는 억압을 제거해 나가는 정의를 주장한다. 동일성을 통해 차이를 없애기 보다는, 차이를 의식하고 이를 인정하는 것이 좀 더 정의롭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녀는 젠더 중립적인 정책보다는 젠더 의식적인 정책을, 집단들의 의사가 반영되는 참여 민주주의로서의 집단 대표제(group representation), 소수자 우대 정책 등을 제시한다. 차이를 고려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분배를 넘어서는 쟁점들을 정의에 수용하라는 영의 이런 주장은, ‘급진 민주주의(radical democracy)’ 개념을 통해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 등의 사회집단 간 차이를 민주주의에 수용할 것을 주장하는 무페와 라클라우의 정의론, 분배/인정의 이원론적인 정의관을 주장하는 프레이저의 정의론, 좋은 삶을 정의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는 역량(capability) 접근법인 누스바움의 정의론과 같은, 분배 정의론이 오히려 차이를 무시하고 억압을 강화하는 지점을 비판하는 다른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들의 입장과도 공명하는 듯하다. 영은 물론 이런 차이가 본질적이거나 영속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차이를 가질 뿐 아니라 억압당하고 있는 집단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현실이다. 결국 영의 입장처럼, 추상적인 원칙이나 동질적이라고 가정되는 시민 공중이라는 망상에 근거할 것이 아니라, 억압당하고 있는 집단들에게 가해지는 부정의를 제거해 나가는 것이 진정으로 ‘정의’가 아닐까?

 

(두 편으로 연재된 영에 관한 글 잘 읽으셨나요-? 4월에는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예속>에 관한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아이리스 영 (上)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에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페미니즘 이론과 사상을 발전하고 확대하는 데에 기여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한 달에 두 번씩 (매달 초, 중순) 연재할 예정이며, 매달 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다룰 것입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 및 업로드 담당: 서누)

 

 

3. <차이의 정치와 정의>, 아이리스 매리언 영(Iris Marion Young) (1949 – 2006) (上)

 

유민석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영은 정의와 사회적 차이를 연구한 저명한 미국의 정치철학자이자 시카고 대학 정치학과 교수로, 1990년 저작 “정의와 차이의 정치(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에서 지금까지의 정의론을 분배 중심 정의론으로 비판하며 ‘차이의 정치’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존 롤즈의 “정의론”으로 대변되는 평등 지향적인 자유주의적 정의관이나, 로버트 노직의 자유지상주의 정의론, 그리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공동체주의적 정의관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의 정의관은 주로 파이를 어떻게 분배할지 혹은 플루트는 누가 차지해야 하는지와 같은 부나 재화, 지위 등의 분배 문제에만 관심을 두거나, 철로에서 누구를 구해야 하는지와 같은 일어날 법 하지 않은 극한상황(도덕적 딜레마 상황)에서의 도덕추론을 따지는 데에만 관심을 뒀을 뿐, 성소수자가 당하는 억압이나 여성들이 느끼는 차별과 같은 매우 첨예한 사회적 문제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를테면 롤즈의 유명한 ‘원초적 입장’이나 ‘무지의 베일’ 같은 가상의 장치들은 물론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를 정초하기 위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일상에서 소수자들, 약자들이 느끼는 억압, 차별의 문제와는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과연 ‘정의의 두 원칙’이 억압당하는 자들의 현실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 영은 이런 정의관을 예리하고 통렬하게, 조목조목 비판한다. 정의/부정의에 대한 문제는 분배가 아닌, ‘지배’나 ‘억압’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배 중심의 정의론이 대체 무슨 문제라는 것일까? 영에 따르면, 사회 정의에 대한 사유를 사물, 자원, 소득, 부와 같은 물질적 재화의 할당 또는 사회적 지위, 특히 직업의 분배에만 집중하는 경향은, 분배 문제에 버금가게 중요한 ‘의사결정 권력 및 절차’, ‘노동 분업’, ‘문화’에 대한 문제들을 무시하고 간과하게 한다.

예컨대 시민이나 노동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기업이나 국가의 의사결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그 결정 과정에서 누군가 배제되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경우, 그런 의사결정 권력 및 절차의 문제는 비록 비-분배적인 것이지만 부정의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많은 여성들이 돌봄 노동과 가사 노동에 쏠리게 되는 현상과 같이, ‘누가 노동을 할지 그리고 누가 어떤 노동을 하게 되는지’에 관한 노동 분업 역시 분배적인 것을 넘어서는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여성이나 동성애자가 미디어에서 편견에 의해 비하되고 혐오당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분배와는 무관하지만 심각한 부정의라고 할 수 있다.

영은 기존의 분배 중심 정의관이 개인주의적이며 이성 중심적이고 남성 중심적이라고 비판한다. 롤즈의 정의론에서 알 수 있듯이, 원자적이고 불편부당한 개인을 전제하거나 동질적인 공중을 강조하는 식이다. 특히 영은 포스트 구조주의와 페미니즘의 입장을 끌어온다. 기존 정의론들의 기저에는 일종의 근대적 이성 중심주의와 사회존재론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이성과 정신을 지닌 백인 이성애자 남성은 감성과 신체의 영역을 여성, 동성애자 등과 같은 ‘타자’에게 속한 것으로 전가시킨다.

이로써 아이리스 영은 ‘동질적 공중’을 전제하는 정의관을 비판하며, 다양한 사회 집단이 경험하는 억압을 인정하는 ‘이질적 공중’을 내세우는 ‘차이의 정치’를 그의 정의론으로 제시한다.

정의에 관해서는 크게 이상적인 정의의 원칙이나 가상적인 계약을 제시하는 초월론적 접근법과 현실의 부정의를 발견하고 제거해 나가는 내재적 방법이 대비된다. 영은 후자의 방식을 택한다. 현실을 분석하고 규범적인 진단을 하는 비판 이론 전통, 상호주체성과 신체와 감정을 복권시키는 페미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통찰,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실의 피억압 집단들의 투쟁과 운동에서 얻은 교훈을 결합하여, 영은 다양한 차이를 가지는 피억압 집단들로 이루어진 이질적 공중들의 차이의 정치를 주장한다.

이러한 영의 주장은 실은 20세기 후반에 폭발적으로 급증한 신 사회 운동, 즉 맑스주의 이후의 여성 운동, 게이레즈비언 운동, 흑인 운동 등 현실 운동에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이들 신 사회 운동은 모두 억압과 부정의에 대한 요구를 주장하면서 등장하였다. 이들은 모두 단순한 사람들의 무리인 ‘집합체’나 자발적인 ‘결사체’와는 다른,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억압을 당하는 ‘사회 집단’으로서의 특징을 가진다.

그동안의 정의론은 분배 중심적이었으며, 이와 다르게 부정의의 문제는 지배와 억압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이러한 차이의 정치의 도전에 대해 정치철학적으로 과연 어떤 답변을 해야 할까? 아니, 질문을 달리 해보자면, 부/재화의 보다 공정한 소유나 분배에 대한 논의가 정의의 문제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회는, 여성이 돌봄 노동과 성별화 된 노동에 종사되는 노동 분업의 문제, 시민들이 관료화된 행정조직의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는 문제,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혐오당하거나 구타당하는 문제, 즉 차이의 정치의 도전에 대해 준비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울스턴크래프트 (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에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페미니즘 이론과 사상을 발전하고 확대하는 데에 기여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한 달에 두 번씩 (매달 초, 중순) 연재할 예정이며, 매달 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다룰 것입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 및 업로드 담당: 서누)

 

 

2. <여권의 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下)

 

김은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여권의 옹호, 초판본>

 

 

  • 여성 교육의 평등권을 주장하다

 

“최근 여성 교육에 관심이 높아졌지만 아직도 여성은 경박한 존재로 간주되고 있고, 풍자나 교훈으로 여성을 교육하려는 작가들은 여전히 이들을 비꼬거나 동정한다. 여성은 몇 가지 기예를 익히면서 어린 시절을 허송하고 관능적인 심미안을 기르고, (그 외에는 다른 출세할 방도가 없는 관계로) 자기보다 나은 상대와 결혼하겠다는 욕망을 추구하느라 심신의 힘을 잃어간다. 이 욕망은 여성을 일종이 동물로 전락시키기 때문에, 결혼한 여성은 옷을 차려입고, 화장하고, 아양을 떠는 등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는 어린아이같이 행동하게 된다. 하렘에나 적합할 이 나약한 여성이 과연 현명하게 가정을 이끌고 자기가 낳은 가엾은 아이들을 제대로 길러낼 수 있을까?”

울스턴크래프트는 18세기 근대 계몽 사상가들이 주창한 이성과 인간에 대한 전망에 깊은 신뢰심을 갖는다. 문명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루소와 달리, 그는 문명의 발전을 막는 것은 권력의 부패일 뿐 역사의 발전을 신뢰하고 인간 평등의 보장을 희구한다. 인간 이성에 대한 전적인 확신을 통해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이성을 갖고 있으며, 여성이 복종해야 할 대상은 아버지나 남성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이성으로 제시한다. 그는 여성의 정신이 남성의 정신과 조금도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여성도 이성을 지닌 온전한 인격체로 주장한다.

따라서 울스턴크래프트는 남성과 똑같이 여성에게도 이성과 인권이 있으며 이를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교육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제시한다. 울스턴크래프트에 따르면, 여성들의 날카로운 감각을 남자들을 유혹하는 데 사용할 것을 가르치는 잘못된 교육은 무엇보다도 사회에 아무런 기여 하지 못한다. 여성다운 부드러움과 순종만을 강요하며 여성을 사회적인 인간이자 자립하는 존재로 만들지 않는 기존의 여성교육은 문제가 있다.  또한, 울스턴크래프는 가정교사에 전적으로 의지 하거나 혹은 기숙학교에 보내는 등 기존의 교육체제가 가지는 문제점들 역시 조목조목 지적한다. 교육에 대한 대안적 정책 역시 내세우는데, 가정 교육과 공공교육의 구별 없는 국립 통합제 학교 설립을 제창하기도 한다.

이러한 울스턴크래프트의 주장은 여성에게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할 것으로 나아간다. 그는 근미래를 내다보며, 앞으로는 여성들도 정부에서 대표자로 일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기 한다. 그리고 여성들이 단순히 가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의사, 산파, 간호사 등의 사회적 활동을 할 것이며, 회사 경영, 농업 종사, 장사와 판매 역시 할 것이라 제시하면서, 공적인 공간과 직업의 선택에서 여성 역할을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여권의 옹호』에서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에게 호소한다. 그는 여성이 스스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갖고 독자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이성을 갈고 닦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합리한 기존의 사회상을 개선하고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성이 교육을 통해 자신의 인권을 회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 여권의 옹호가 지닌 영향, 한계 그리고 교차성

 

당대의 상황으로 인해  『여권의 옹호』에 담긴 주장은 바로 실행되지 못한다. 그러나 울스턴크래프를 비롯한 초기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사상은 여성을 둘러싼 다른 약자들과 연대하면서 영향을 확대한다. 페미니즘 사상은 여성으로 하여금 가부장제에서 자신의 처지와 노예의 지위를 견주어 생각하고, 이로 말미암아 당대 여성들은 그 누구보다 노예 폐지론에 찬성한다.

특히  『여권의 옹호』에 찬동한 중산층 여성들은 노예의 노동이 야만적인 설탕 사업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후, 노예무역을 중지시키고자 직접 나선다. 가정 살림에 관여하는 여성들은 1791년 노예 폐지론자들이 조직한 설탕 불매운동에 참여한다. 노예들이 일하는 재배장의 환경에 경악한 여성들은 가정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주부이자 티타임의 주재자로 설탕 소비를 줄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강력한 정치 운동으로 승화된다.

확실히 당시 여성의 지위로 인해, 불매 운동을 조직한 여성들은 청원서에 서명하거나 의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능동적 역할을 담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가족의 식료품을 구입하는 책임을 지닌 가정의 경영자로서 그들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설탕 소비의 주체였기에 그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미국 독립혁명 당시 차 불매 운동을 벌인 미국 여성들의 역할에 감명을 받은 영국 여성들은 설탕 불매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불매 운동이 크게 유행한다. 설탕 불매운동에 그치지 않고 여권의 옹호의 주요한 주장은 이후 참정권 운동으로 번지면서 실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여권의 옹호』에서 밝힌 울스턴크래프트 의견은 중상층 여성만을 위한 운동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그는 여성의 활동의 공적 확장을 주장하나, 참정권에 대해서는 짧게 언급한 후 지나간다. 게다가 울스턴크래프트는 대체로 개인주의적 시민 도덕 양성에 목적을 두어 교육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온건적 노선을 표명한다. 무엇보다도  『여권의 옹호』는 성도덕과 가족제도에 있어서 여전히 영국 중상층의 통념과 관습을 따른다. 성역할 구분에 문제를 제기 하나, 인간의 표준을 여전히 남성으로 규정했을 뿐 아니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여성의 영역을 가사, 육아로 한정한다.

무엇보다도  『여권의 옹호』는 중간계급 여성만을 자신의 주요한 독자로 삼는다. 울스턴크래프트에 따르면, 중간계급은 귀족처럼 허영으로 부패하지 않았고 노동자 계급처럼 빈곤의 무게에 압도당하지 않았다. 독자층을 중간계급으로 설정한  『여권의 옹호』는 상류층을 따라하는 중간계급 여성의 허영을 주요하게 비판하며 건전한 시민으로서 중간계급의 여성의 자리매김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결국  『여권의 옹호』가 상정하는 이상적 여성은 이성의 발달을 위해 교육과 정신 수양에 힘쓰고 자녀를 올바른 시민으로 양육하는 어머니이자, 가정과 사회 공동체에 이바지 하는 성실한 동반자이다. 이러한 여성은 보수적 입장을 대변할 뿐 아니라 대다수의 여성 노동계급을 배제하고 그에 기반 하여 중간계급 여성의 성장을 도모한다. 이러한 점에서 울스턴크래프트 입장은 다른 페미니스트들에게 비판을 받는다. 백인 중상층 이성애자 여성을 여성의 표준을 설정하는 초기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이 기준 밖에 있는 주변화된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음으로써, 또 다른 차별을 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을 통해서, 페미니즘은 동일한 여성이 아니라 다양한 여성들에 대해서 논의하기 시작한다.

특히 주목해 볼만한 논의는 “인종과 섹스의 교차로를 탈주변화하기: 차별금지 정책, 페미니즘 이론 그리고 반인종주의 정치 관한 흑인 페미니즘의 비판(Demarginalizing the Intersection of Race and Sex: A Black Feminist Critique of Antidiscrimination Doctrine, Feminist Theory and Antiracist Politics)”에서 제시한 킴벌리 크렌쇼(Kimberle Crenshaw)의 교차성에 관한 분석이다. 크렌쇼는 흑인 여성의 경험을 왜곡시키는 단일 축(single-axis) 분석과 흑인 여성 경험의 다차면성(multidimensionality)을 대조한다.

크렌쇼는  단일 축에 따른 틀(framework)이 주로 집단의 특권층에 기대어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이 그러한 것처럼, 살아있는 여성의 경험을 단일 축의 범주로 묶어버릴 경우에,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대한 개념과 이해 그리고 개선책에서 조차 흑인 여성을 지워버린다. 크렌쇼에 따르면, 인종 차별은 특권적 흑인 남성의 관점에서, 성차별의 경우에는 특권적 여성에 맞추어져 다루어진다. 이는  흑인 여성을 페미니즘 이론과 반인종주의 정책 담론에서 몰아낸다. 그러나 배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미 확립된 구조에 그저 흑인 여성을 포함시킨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흑인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에 주목하는 것이다. 흑인 여성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차별을 경험한다. 흑인 여성으로 겪는 교차적 경험은 인종주의와 성 차별을 합한 것보다 훨씬 크다. 크렌쇼는 교차로에서 네 방향으로 오가는 차량의 예를 통해 교차성을 설명한다. 교차로를 통과하는 차량과 마찬가지로, 차별은 한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고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 교차로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어떤 방향에서 이동해서일 수도 있고, 때로는 모든 방향에서 이동하는 경우 때문일 수도 있다. 흑인 여성은 교차로에 있기 때문에, 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로 인해 차별을 당할 수 있다.

흑인 여성은 때때로 백인 여성의 경험과 유사한 방식으로 차별을 경험한다. 또한 때때로 그들은 흑인들과 매우 유사한 경험을 공유한다. 그러나 흑인 여성은 빈번하게 인종에 기초한 차별과 성에 근거한 차별이라는 두 가지 차별을 동시에 경험한다. 이 경험은 인종 차별과 성 차별의 합계가 아니라 분명히 “흑인 여성”에 대한 차별이다. 흑인 여성의 경험은 차별 담론이 제공하는 일반적인 범주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그러나 기존의 범주적 분석은 흑인 여성의 요구와 필요를 담은 경험을 무시한다. 흑인과 여성의 교차성을 고려하지 않은 분석은 흑인 여성이 인종과 여성 모두에서 종속화 되는 특정한 방식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여권의 옹호』가 출판된 지 몇 백 년이 지난 현재 여성의 교육권과 참정권은 법적으로 보장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권의 옹호』는 현재 진행중이다. 교육의 평등권이 실재적으로 달성되지 않은 나라도 여전히 많고, 교육 이외에도 그가 제기한 질문들 중 여전히 미완으로 남은 과제가 많다. 예리한 통찰력과 역사에 대한 폭넓은 시각으로 오늘날에도 독보적 가치와 현재적 울림을 잃지 않는 비전을 울스턴크래프트는 제시한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도 유효한 『여권의 옹호』의 혁명적 통찰은 당시 여성 차별의 문제를 성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만이 아니라, 정치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신분이나 경제력의 차이의 억압과 함께 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의 일부로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여동생에게 남긴 편지에서 스스로 표현한 바와 같이 “닦인 길을 밟아가기 위해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며, 삶에서 그가 한 선택들은 당대의 사회적 규범과 충돌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불행 속에서조차 자신의 존재를 그렇게 강렬히 느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에 대해서 버지니아 울프가 한 다음의 말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내가 죽는다든지, 나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건 차마 상상할 수 없어요. 내가 존재하길 그친다는 건 불가능해요.’라고 외쳤던 그는 서른여섯 살에 죽었다. 하지만 그는 한을 풀었다. 그가 죽은 뒤 130년 동안 수백만의 사람이 죽고 잊혀졌지만, 우리는 지금도 그의 편지를 읽고, 그의 논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녀의 실험,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결실을 맺었던 고드윈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당당하고 열정적으로 인생의 정수를 휘어잡았던 울스턴크래프트를 생각한다. 그러니 그는 분명히 일종의 불멸을 얻은 셈이고 여전히 우리와 더불어 생생하고 살아있고 따지고 실험하고 있다.”

 

 

(두 편으로 연재된 울스턴크래프트 글 잘 읽으셨나요? 3월에는 영(I. M.  Young)의 <차이의 정치와 정의>를 담은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울스턴크래프트 (上)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에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페미니즘 이론과 사상을 발전하고 확대하는 데에 기여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한 달에 두 번씩 (매달 초와 중순) 연재할 예정이며, 매달 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다룰 것입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 및 업로드 담당: 서누)

 

1. <여권의 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1759-1797) (上)

 

김은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나는 여성이 처한 비굴한 의존 상태를 위장하기 위해 남성이 선심 쓰듯 내뱉는 귀엽고 여성스러운 어구들과, 여성의 성적 특징으로 간주되어온 나약하고 부드러운 정신, 예민한 감성, 유순한 행동거지 등을 거부하고, 아름다움보다 덕성이 낫다는 걸 밝히려고 한다. 남자든 여자든 한 인간으로서 자기만의 개성을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목표이므로, 모든 것이 이를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 가부장제에 핍박받는 여성들을 목격하다

 

여권의 옹호의 저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1759년 영국 런던 근교의 스피털필즈에서 에드워드 울스턴크래프트의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사회생활 실패의 울분을 어머니에게 폭력으로 푸는 아버지와 모습과 불행한 부모의 결혼 생활을 목격하면서 남자에게 여성을 종시키는 불합리한 결혼제도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당시 여성은 결혼과 함께 모든 법적 책임과 권리를 남편에게 양도하게 되었기에, 폭력 앞에서 저항할 길이 없었다. 기혼 여성은 채무의 책임은 없었지만 대신 계약서에 서명도 할 수 없었고, 소송도 불가능했으며 심지어 법률적 효력이 있는 유언을 남길 수도 없었다. 당연히 그 어떤 경제활동도 불가능했고 가정의 모든 경제권만이 아니라, 유산으로 물려받은 아내의 재산과 함께 자식마저도 모두 법적으로 남편에게 속해 있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이러한 여성의 비참한 처지를 어머니의 경우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찍 결혼한 동생 일라이저마저도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목도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의탁하는 여성의 고달픈 처지와 결혼 생활의 비참함을 재확인한다. 그는 일라이저를 탈출시켜 자신이 돌보았고, 여성이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제력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다. 이러한 각성은 울스턴크래프트를 경제적으로 독립적이면서 교육받은 여성으로서 삶을 살도록 만든다. 그는 가정교사와 귀족 부인의 비서로 일하고, 이후 1784년 이슬링턴에 여학교를 설립한다.

학교 경영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첫 저작인  『여성 교육론』 저술 후 런던에서 머물다 혁명의 와중에 있는 프랑스로 건너가 계몽주의 세계를 몸소 체험한다. 울스턴크래프트의 삶은 당시의 통념과 관습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역동적이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파리에서 만난 미국인 길버트 임레이(Gilbert Imlay)와 결혼하지 않은 채 첫딸을 낳는다. 그러나 임레이의 새로운 애인으로 파탄이 난 관계는 울스턴크래프트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그는 강물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다행히 선원들의 구조로 살아난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 울스턴크래프트는 영국인 아나키스트 철학자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을 만난다.  울스턴크래프트와 고드윈은 평등한 관계를 실험하고 실천했으며, 두 번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그들은 결혼한다.

울스턴크래프트의 본격적인 저술 활동은 1788년부터는 런던의 저명한 출판업자 조지프 존슨이 발간하던 당대의 대표적인 급진주의 계열 잡지 『어낼리티컬 리뷰』에 서평, 번역문, 에세이 등을 기고하면서 시작된다. 토머스 페인, 윌리엄 고드윈, 윌리엄 블레이크 등 당대의 진보적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존슨의 출판사에 근무하는 동안 첫 소설 『메리』와 『창작 동화집』을 저술한다. 그 중 울스턴크래프트를 유명하게 한 책은 바로  1792년 출간한 『여권의 옹호』이다.

『여권의 옹호』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세상에 이름을 알린, 울스턴크래프트는 프랑스 혁명과 공포정치를 직접 경험한 후 『프랑스 혁명의 기원과 진전에 관한 역사적·도덕적 견해』를 저술한다. 영국으로 돌아온 뒤 1796년에는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에서의 짧은 체류 동안 쓴 편지』를 펴낸다. 그러나 그의 저술 활동은 더 이상 계속될 수 없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두 번째 딸을 출산한 뒤, 열흘 후에 불행히도 산욕열로 세상을 떠난다. 남겨진 울스턴크래프트의 딸 역시 세계 문학사에 이름을 남겼는데, 그는 바로 『프랑켄슈타인 : 현대의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 or, The Modern Prometheus)』의 작가 메리 셸리(Merry Shelly)이다.

 

 

  • 이성(reason)에 남녀는 없다

 

1792년  『여권의 옹호』는 단 6주 만에 쓰였다. 울스턴크래프트는 1789년 혁명 후 프랑스 의회에 제출된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페리고르의 1971년 프랑스 제헌국민의회의 대한 보고서를 읽고 탈레랑의 교육 법안에 반대하는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하였다. 교육 법안은 공화국의 모든 소년에게 국민교육을 시행한다는 내용을 담았지만, 교육의 대상에 소녀는 포함되지 않았다.

인간의 이성과 권리에 대해 그 어느 시기보다도 진보적이었던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여성에 대해서는 기존의 습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8세기에 계몽주의가 부르짖던 ‘인간의 권리’라는 말 속에 인간은 오로지 ‘남성’만을 의미했다. 당대 가장 진보적이라 불린 로크나 루소 같은 사상가들조차도 여성은 자연적으로 남성보다 약한 존재이기에 남성과는 절대로 평등해질 수 없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진보적 남성 지식인들이 주장하는 인권의 범위 속에 여성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여성은 그저 남성의 보호 아래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성이나 인권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성 지식인들 중 아무도 여성이 남성과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던 것이다.

그러나 급진적 민주주의자인 울스턴크래프트는 인간에게는 누구나 이성과 불멸의 영혼이 있고, 이성을 지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계몽주의적 신념을 가졌다. 그 누구보다 계몽주의 사상사인 울스턴크래프트는 남성만을 인간으로 상정한 계몽주의의 한계를 계몽주의로 맞섰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책을 통해 남성 계몽주의 지식인들의 사회개혁 이론 속에 배제한 여성문제를 논쟁에 포함시키면서, 여성도 인간이며 당연히 누려야 할 인권이 있음을 주장한다.

책에서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을 남성의 보조적 역할로만 보는 기존 사회의 관념에 도전하고 비판한다.

“나는 루소부터 그레고리까지 여성교육과 풍속에 대해 글을 써온 모든 작가들은 분명히 여성을 더 부자연스럽고 나약한 존재, 그래서 사회에 더 무익한 존재로 만드는데 일조해왔다고 단언하는 바이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여러 사상가를 비판하고 최초의 엄마인 이브를 나약하게 그린 밀턴을 향해 “유순한 가축 같은 존재로 살아가라니, 그런 모욕이 어디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또한 그는 여성을 이렇게 수동적인 존재이자 같은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루소를 비롯한 많은 사상가들의 여성 비하의 풍조를 정면에서 조목조목 분석하며 문제시 한다.

특히 울스턴크래프트는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루소의 『에밀』을 “여성의 매력을 찬미하면서도 그들을 억압하는 저 해로운 책”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열등한 이성을 지닌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것이 곧 자연법”이라는 루소의 의견에 반대한다. 『에밀』에서 루소는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서술하면서 여자아이의 교육에 대해서도 다룬다. 에밀은 시민으로 성장을 고무 받는 반면 소피의 교육은 이후 성인으로 성장할 에밀의 배우자인 이상적 부인을 목표로 한다. 소피는 인내심과 수동성을 특징으로 지니고 주어진 환경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적응을 잘하는 존재로 설명된다. 루소는 소피를 스스로 생각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심신의 약함을 알고 자연의 목소리를 따르고 오직 사랑하는 남자의 생각에 자신을 의탁하는 존재로 제시한다.

처음에 『여권의 옹호』는 익명으로 출간되지만, 폭발적인 반응과 책의 유명세에 응답하며, 울스턴크래프트는 2판에서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하지만 호응만큼이나 반발도 거세 울스턴크래프트를 ‘사색하는 뱀’, ‘페티코트를 입은 하이에나’라 부르기도 했다.

 

(하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