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44-화성과 선율 그리고 정신[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44- 화성과 선율 그리고 정신

 

1) 음악의 핵심

음악의 핵심은 무엇일까? 흔히 서양 음악이나 근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음악의 핵심은 화성에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화성악적인 찬란함을 보여주는 기악이나 관현악을 음악의 최고봉으로 삼는다. 하지만 일반인에게서 이런 화성악적 음악은 어렵다. 많은 비 서양, 비 근대 음악은 화성악적인 요소가 드물고 주로 선율을 통해 전개된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선율은 마음을 사로잡으니, 성악이나 오페라, 가요 등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화성이냐, 선율이냐 하는 논쟁에 대해 헤겔은 어떻게 답하고 있을까? 이런 물음이 헤겔의 음악 장르 분석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음악론을 읽어보면 누구나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화성과 선율의 의미를 알아 보아야 하는데, 이 점과 연관하여 헤겔은 미리 사과하면서 시작한다. 음악에서 “세부 기교의 규정 즉 음의 양적 관계, 악기, 조성, 화음” 등이 중요하지만 자신은 “이 영역을 답사한 경험이 거의 없으므로, 일반적 관점과 단편적인 언급들에 그칠 뿐”[1]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그가 음악의 구체적 기법을 잘 모른다는 것을 말할 뿐, 그가 음악을 즐기지 않거나 음악의 원리를 모르거나 음악의 가치를 평가절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심지어 음악의 구체적 기법에 관해서도 일반인이 이해하는 간단한 원리 정도는 단편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필자 역시 음악에 관한 한 헤겔보다 더 모르니 그저 그의 언급을 따라 살펴보는 데 그치기로 하겠다.

 

2) 음악의 형식

음악은 소리가 주관의 내면성 속에서 공존하고 계기하는 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성립한다. 소리가 공존하고 계기하는 관계는 피타고라스 이래 일찍부터 탐구되어 왔다. 템포, 박자, 리듬을 거쳐 화성에 이르는 음들의 관계는 수학적인 비례를 통해 규정된다.

그 출발점에 있는 템포는 대체로 인간의 심장 박동의 규칙성에 따른다고 보는데, 헤겔은 이를 단순한 자아의 반복을 통해 자연의 흐름을 규제함으로써 인간의 자아가 “자기를 지양하여 객체로 되며 다시 대자존재로 되돌아 와서” “자기 관계하는 것”[2]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박자는 세부 단위로 템포를 재구성하는 방식이니 빠르고 느린 등 음악 전개의 속도를 규정한다. 헤겔은 이런 박자를 건축의 열주나 창문이 배치된 간격에 비교하면서 인간은 “이런 박자를 통해 자기를 재 발견하며 그 속에서 만족을 얻는다”[3]고 한다.

박자는 음의 강약 즉 악센트와 결합하면서 규칙적인 리듬이 된다. 리듬에 이르러 음악적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리듬은 인간의 활동의 리듬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삶의 다양한 형식, 춤추거나 의식을 거행하거나 행진하는 등의 리듬은 음악적 리듬과 합치한다.

리듬은 음색과 결합된다. 음색은 악기가 내는 음향학적인 배음들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배음의 관계는 악기마다 독특하며 여러 악기의 음색은 서로 어울리거나 대립한다. 헤겔은 교향곡에서 여러 악기들이 서로 응답하면서 교차하는 것이 마치 “연극적인 연주, 일종의 대화처럼”[4] 들린다고 말한다.

음악형식과 관련해 최후로 헤겔은 화성을 설명한다. 일정한 비율로 추상화된 음들의 관계에 따라 음계가 형성된다. 여기서 음정의 배치가 중요한 데 그것을 지배하는 것이 곧 으뜸음이다. 으뜸음에 따라 결정되는 음들의 배치 방식에 따라서 화성이 결정되고 이는 다양한 감정과 연결된다.

 

“”그것들의 으뜸음을 통해 특정한 특성을 갖는데, 이 특성은 다시 나름대로 특정한 방식의 감정 즉 한탄, 기쁨, 슬픔, 고무적 선동 등에 상응한다.”[5]

 

전체적으로 보아서, 리듬과 화성 등은 음들의 관계를 다루는데, 여기에는 수학적인 비례 법칙이 지배하고 있다. 이처럼 수학적 비례 법칙이 지배한다는 측면에서 헤겔은 음악과 건축의 유사성을 언급한다. 건축이 얼어붙은 음악이라면 음악은 생동하는 건축이라는 것이다.

 

3) 선율

음악의 리듬과 화성이 음악을 풍부하고 화려하게 만드는 것이며 그 자체로서 감정적 즐거움이나 카타르시스를 주기는 한다.

하지만 헤겔은 음악에 이런 측면만 있다면 그것은 마치 내용이 없이 공허한 형식에 탐닉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 경우 음악은 본격적으로 예술이 될 수 없으며 다른 모든 예술과 마찬가지로 감각적 요소 안에 정신적 것이 표현될 때 비로소 참된 예술로 고양된다는 것이다.

 

“화성은 … 박자나 리듬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가 이미 본격적 음악인 것은 아니며, 오히려 자유로운 영혼이 산책하는 실체적 토대이자 합법칙적 마당이며 터일 뿐이다. 음악의 시적인 요소인 영혼의 언어는 내면의 열락과 심정의 고통을 음으로 분출한다.”[6]

 

“이런 분출 속에서 감정의 자연 폭력을 완화하여 자신을 그 너머로 제고한다. 까닭인즉 그 언어는 당장의 감동에 휩싸인 내면의 상태를 내면 자체의 청취, 자신 곁의 자유로운 머무름으로 만들며 또한 바로 이를 통해 심정을 기쁨과 고통의 핍박으로부터 해방하기 때문이다.”[7]

 

즉 음악은 그 속에 영혼의 언어가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음악은 자연적 감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며, 자유롭게 한다고 말한다. 그런 가운데 음악은 정신적 높이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신적 높이에 도달하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선율 즉 멜로디의 역할이다. 이 선율은 음의 운동이지만, 그 운동은 이제 수학적 비례 법칙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신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런 선율은 수학적 비례 법칙에 엄밀하게 종속하는 음악의 형식 즉 리듬, 화성을 넘어서 독립적으로 떠돈다.

음악은 “영혼의 가장 내적인 주관적이고 자유로운 삶과 운동을 내용으로 삼으므로 자유로운 내면성과 양적인 근본 관계 사이에 가장 심각한 대립으로 분열된다. 하지만 음악은 이런 대립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것을 자신 속에 수용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난제도 지닌다.”[8]

이제 “일체의 모순과 불협화음이 호출되면서”, 이런 모순 대립 속에서 다시 조화로운 관계를 회복하는 가운데, “선율적 평온의 승리를 축하한다.” 헤겔은 이런 투쟁은 “화성적 관계가 지닌 필연성”과 “비상[飛翔에 자신을 맡기는 판타지의 자유의 투쟁”[9]이라고 한다. 이런 투쟁을 통해서 정신은 감정에 지배되는 “우연적 자의의 주관성을 벗어나” “자기의 참된 독자성을 드러낸다”[10]고 한다.

리듬과 화성의 법칙을 따르는 음악은 엄밀하게 수학적이다. 그러나 선율에 이런 불협화음과 우연적인 요소가 있으므로, 음악은 산만성을 지닌다. 마치 만화경이 무한히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음악은 자유롭게 유희하는 듯 보이며 그 결과 산만한 느낌을 준다. 음악의 자유로움은 재즈나 산조와 같은 비정형 즉흥적 음악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대체로 음악은 통일성을 준수하거나 주관적인 생동성을 띠고 나가면서도 자의적으로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가 하면, 같은 방식으로 이리저리 구부러져 가다가 변덕스럽게 정지하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갑자기 삽입하기도 하며, 다시 흐르는 듯한 음조 속에 자기를 내맡기기도 한다. …음악은 이미 주어진 형태들 밖에서 움직이므로 음악을 붙드는 그러한 자연의 영역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법칙과 형태의 필연성은 주로 음들 자체의 영역에 해당한다.”[11]

 

음악은 선율 때문에 산만성을 가지지만 이런 요소는 다시 극복되면서 선율의 평온이 회복되어야 한다. 헤겔은 선율과 화성의 관계를 ‘자세와 골격의 관계’에 비유한다. 즉 견고한 골격이 부적절한 자세와 운동을 막고 적절한 자세와 운동을 지지하듯 화성은 선율 움직임의 자유를 위해 지지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4) 선율과 정신

문제는 이런 선율과 정신의 관계이다. 헤겔은 선율은 근본적으로 닮음이라는 고전적 형상화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헤겔은 오히려 그 관계를 상징적인 관계로 보면서 건축과 음악을 다시 한번 비교한다.

건축의 공간은 외적인 형태를 갖는다. 이 형태는 자연법칙에 구속되지만 형태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 즉 덩어리는 정신과 관계해서 상징적인 관계를 가진다. 건축은 기능적 합목적성에 따라서 신전이며 왕궁이나 주택이 된다.

음악의 경우 헤겔은 그 관계를 이렇게 말한다.

 

“음악은 차라리 감정의 요소만을 표현할 수 있으며 건축이 자신의 영역에서 신상을 오성적 형식의 열주들 … 로 에워싸듯이, 그 자체로 언표된 정신적 표상을 감정의 선율적 음향으로 감싼다.”[12]

 

“지극한 깊이의 내면성과 영혼뿐만 아니라 극히 엄격한 오성 역시 음악을 지배하며, 그리하여 음악은 서로에 대해 독립적으로 되기 쉬운 이 두 극단을 자신 속에서 통일한다.”[13]

 

여기서 건축이 정신을 에워싸듯이 음악 역시 정신을 에워싼다고 말한다. 에워쌈에서 매개적 역할을 하는 것은 곧 선율이다. 즉 선율 자체는 리듬이나 화음을 넘어서 전개된(불협화음까지 포함한) 음의 특정한 관계이며 이로부터 어떤 감정이 출현한다. 이렇게 선율에서 표현되는 감정은 자체 내에 어떤 정신적인 것을 에워싸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은 에워싸는 방식을 통해 정신을 표현하니, 건축과 마찬가지로 상징적 관계를 갖는다.

감정적 선율이 정신적 표상을 어떻게 에워쌀 수 있을까? 헤겔은 음악이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을 다루면서 세 가지 방식을 소개한다. 첫 번째 방식은 감정을 무한하게 즉 내밀하게 만듬으로써 정신적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음악은 [조형예술처럼] 가시화를 위해 작업하려 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내면성을 내면에 포착하는 일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음악은 내용 자체의 실체적 내적 심연이 심정의 심연으로 파고들도록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내용의 생명과 역동을 개별적 주관의 내면에서 묘사하되, 주관적 내밀성 자체를 그 본격적인 대상으로 삼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다.”

 

여기서 헤겔은 음악은 오직 감정만을 묘사하는데 그치지만 다만 그 감정은 자연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무한히 순수하게 되니, 헤겔은 이를 곧 내밀한 감정이라 한다. 이것은 예를 들어 승리의 기쁨을 무한히 고양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하며, 영웅의 죽음 앞에 느끼는 연민을 가장 깊게 표현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와 음악 사이의 연관성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소리는 “영혼상태의 … 생생하기 그지 없는 직접적 표출이자, 심정의 ‘아’와 ‘오’이며” “영혼의 자기 생산. 영혼의 영혼으로서의 객관성”[14]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감정적 언어는 음악적 선율의 출발점이 된다.

이런 관점을 확대하면, 관념을 표현하는 언어의 청각적 특징이 음악의 출발점으로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사실 많은 노래는 특히 오페라에서나, 판소리 등에서 보듯이 언어의 청각적 특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물론 언어의 리듬과 화성이 음악의 리듬과 화성과 완전하게 평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양자는 대립 속에서도 평행한다.

이런 점에서 노래는 가사에 옷을 입힌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여기서 음악과 내용의 관계는 표상과 언어의 관계로 환원된다. 표상과 언어는 직접적 연관이 없는 기호적 연관일 뿐이니 이 역시 상징적이다.

세 번째는 음의 전개와 내용의 본성이 상응하는 경우이다. 어떤 면에서는 내용의 본성은 조형 예술의공간적 방식보다는 시간적인 음악적인 방식이 더 적합하게 상응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내용은 서사적 시간적 요소를 가지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음악은 내용을 내용의 내적 관계와 친화적인 음의 관계 속에 감응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내용이 빠르게 전개되는 경우, 음악도 빠르게 나가는 경우를 말할 것이다.

 

5) 음악의 한계

위의 세 가지 경우 가운데 음악에서 핵심적 방식은 역시 첫 번째 방식이다. 음악은 감정을 순수하고 무한하게 표현하면서 정신을 표현하니, 그런 한에서 음악 자체는 낭만적 예술이 된다. 주관의 내밀한 감정은 낭만주의 시대 와서 비로소 예술적 표현의 주요 내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음악이 표현하는 내용은 주로 낭만적 정신이고, 그 질료 역시 가상적인 성격을 지니므로, 낭만주의 시대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발전한다. 음악은 주관의 내밀성이라는 낭만적 정신을 무한한 감정을 통해 표현한다. 무한한 감정 자체는 낭만적이지만, 그 감정과 그 시대의 정신적 실체 사이의 관계는 상징적이다. 양자 사이에는 직접적 관계는 없으며 그 관계는 모호하다. 이 경우 내용과 감정은 비밀스러운 상징처럼 서로 구분할 수 없게 얽히게 된다. 내용은 감정 속에서 “비밀스러운 심연으로서 살아간다.”[15]

음악은 한편으로 고양되고 순수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서 그 어느 예술보다 탁월하다. 다른 한편 음악이 표현할 수 있는 정신의 내용은 감정에 그치고 그 나머지 실체적 내용은 수수께끼처럼 감추어져 있으며, 정신의 풍부한 내용을 모호하게만 표현된다.

그 결과 음악에서 아주 짧은 테마는 무척이나 깊은 감동을 주지만, 조금만 길어지면 같은 것이 되풀이 되는 것과 같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고전 관현악을 즐기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신적 실천적 훈련을 쌓아야 하는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그것은 음악이 지닌 장점과 한계는 음악가를 대표하는 오르페우스의 신화에서 잘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오르페우스는 음악으로 하데스까지 감동시켜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해내지만, 그의 음악은 자기 내에 머무르면서 음악의 정신적 가치를 알지 못하는 디오니소스 신도 바카이에 의해 살해된다. 음악이 지닌 한계 때문에 음악은 불가피하게 시문학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1] 미학강의 3권, 145쪽

[2] 미학강의 3권, 171쪽

[3] 미학강의 3권, 172쪽

[4] 미학강의 3권, 182쪽

[5] 미학강의 3권, 186족

[6] 미학강의 3권, 190쪽

[7] 미학강의 3권, 190쪽

[8] 미학강의 3권, 168쪽

[9] 미학강의 3권, 194쪽

[10] 미학강의 3권, 192쪽

[11] 미학강의 3권, 150쪽[번역은 필자 자신이 수정한 것임]

[12] 미학강의 3권, 146쪽

[13] 미학강의 3권, 148쪽

[14] 미학강의 3권, 157쪽

[15] 미학강의 3권, 159쪽

헤겔미학산책43-심정의 예술로서 음악[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43-심정의 예술로서 음악

 

1) 음악의 질료

낭만주의적 장르의 두 번째 형태가 음악이다. 많은 사람이 음악 장르가 특별하다는 점에 대해 언급한다. 음악은 그 어떤 예술보다 마음을 직접적으로 흔든다. 음악은 시대와 민족을 뛰어넘어 감동을 준다. 음악은 심정을 무한히 고양시켜 탈아 상태에 이르게 한다. 등등. 이런 음악의 일반적 독특성을 이해하는 출발점은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그 질료 또는 매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음악의 질료는 소리이다. 헤겔에서 이 소리는 물체의 진동에서 나오는 것이다. 물체를 이루는 부분은 응집된 상태에서 고정되어 있다. 물체의 부분이 충격을 받으면 진동하게 된다. 진동은 물체의 부분이 제 자리를 이탈하였다가 다시 제 자리로 복귀하는 것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운동이다. 헤겔은 이를 자기를 부정하고 부정된 자기를 다시 부정하는 ‘이중 부정’의 운동으로 설명한다.

헤겔은 진동이 물체의 공간적 고정성을 극복하는 운동이며 이를 통해 물체 내에 잠재하는 운동성이 밖으로 표출된다는 점에서 물체의 운동성이 해방된다고 말한다. 물체에 대립하는 순수 운동성으로서 빛이 물질에서 일어나는 최초의 관념화라면, 물체의 진동은 두 번째 관념화에 해당한다. 진동은 빛처럼 물체에 외부적으로 존재하는 운동이 아니라 물체 내에서 나온 운동이다. 헤겔은 진동을 ‘역학적인 영혼성[mechanische Seelenhaftigkeit]’[1]이라고 이름 붙인다.

 

“이 질료를 통해 더 이상 정태적 질료적 형상이 아닌 최초의 한층 관념적 물질[ideelle[2]]인 영혼성이 나타난다. … 음은 진동 즉 공간적 상태의 지양이지만, 반작용에 의해 다시 자기를 지양하는 것이므로 이중적 부정이다. 따라서 이런 음은 발생 속에서는 외면성은 그 현존재를 통해 자신을 다시 폐기하여 그 자체로 사라지고 만다.”[3]

 

진동은 물체의 속성에 따라 다양하며, 또 전달되는 매질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전달되는데, 그 가운데 음악적 소리는 가청적인 비교적 고른 음을 내는 진동이 공기 중에 전달되는 소리로 제한된다.

 

2) 소리의 가상성

진동은 운동성의 해방이기는 하지만 다시 물체로 복귀하고 마는 것이어서 그것이 내는 소리는 일시적이다. 소리는 공간적 형태와 같이 존속하지 않으며, 한번 울렸다가는 곧 바로 사라지는 것이니, 이런 일시적인 소리 그 자체로서는 음악의 질료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소리는 일시성 때문에 서로 끊어지면서 다양한 소리로 분화될 수 있다. 빛이 분화된 색채가 가상화되면서 회화의 질료가 듯이 소리도 분화되면서 비로소 예술적 질료가 될 수 있다. 색채가 다른 색채와 대비되어 의미를 지니듯, 소리는 다른 소리와 대비되어 의미를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빛은 타자적인 물체에 반사되면서 분화되지만, 태어나면서 이미 분화되고 결합 가능한 소리는 색채 이상으로 가상적인 질료가 된다.

가상적 질료는 특수한 주관성을 표현할 수 있으니, 낭만적 예술을 가능하게 한다. 소리는 색채보다 더 가상적이므로, 특수한 주관성을 표현하기에 더 적합한 질료가 될 수 있다.

 

[소리 자체는] “이미 물질적 관념[ideell]이지만, 이런 물질적 관념의 현존을 포기하면서, 내적인 것에 적합한 표현방식으로 된다.”[4]

 

색채가 되려면 빛의 외부에 반사의 평면이 필요하다. 이 반사 평면에서 색채는 공존할 수 있기에 서로 대비되면서 주관성을 표현한다. 일시적인 음이 대비될 수 있기 위해서는 음이 보존되면서 시간적으로 지속하는 지반이 있어야 하는데, 그 지반은 무엇일까? 음이 서로 대비되는 평면은 무엇인가?

베르그송처럼 어떤 시간적 지속체가 있는 것이라면, 그런 지속 위에서 소리가 서로 대비될 수 있겠다. 하지만 헤겔은 시간적 지속체를 상정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헤겔은 시간적 지속이 주관의 내면성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본다.  

소리는 인간의 주관적 내면 속에 받아들여짐으로써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며 과거 보존된 소리는 현재 다시 받아들여지는 소리와 더불어 하나의 시간적 공존을 이루게 된다. 소리는 시간적 내면의 평면 속에서 보존되면서 서로 연관을 맺는다.

회화의 질료가 색채이지만 그 색채는 공간적 평면 없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만큼 회화에서 공간적 평면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음악의 질료는 소리이지만, 그 소리가 지속되는 주관적 내면이라는 바탕이 없으면 소리로만은 음악의 질료가 될 수 없다. 그만큼 소리가 연관되는 주관적 내면성이 음악에서 중요하다.  

색채가 나타나는 평면은 외면적 공간이지만 음악이 나타나는 평면은 내면적 평면이다. 회화가 나타나는 평면은 주관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음악이 출현하는 시간적 평면은 주관 없이는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음악은 소리를 받아들여 연결하는 바탕으로서 주관이 존재하는 한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예술이다.

 

“음악의 표현도 마찬가지로 이것을 공간적으로 상존하는 객관성으로 만들지 않고 … 음악은 오직 내면적 주관적인 것에 의해 수행되며 또한 오직 주관적 내면에 대해서만 현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5]

 

3) 시간성의 종합

그렇다면 음악의 소리가 지속하는 지반인 내면적 시간 평면은 어떤 평면인가? 헤겔은 주관성의 차원을 다양하게 구분한다. 그 첫 번째 차원은 지각적 인상이 주어지는 차원이며 두 번째 차원은 표상[Vorstellung: 관념]의 단계이다. 관념의 차원은 이미지에서 상상(또는 환상), 기호를 거쳐 관념(언어)에 이른다. 세 번째 차원은 분석하고 종합하는 사유의 단계이다.

두 번째 관념의 단계는 나중에 나오는 시문학의 질료가 된다. 시문학은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나 상상이나 환상을 통해 추상적 사유를 표현한다. 이 첫 번째 차원 즉 외적 자극이 처음으로 직접 받아들여지는 차원이 음악과 관련된 주관적 내면이다.

이 첫 번째 차원에서 주관성은 외적 자극은 내적인 인상을 남기는데, 여기서 시각적 인상과 청각적 인상 등 다양한 인상의 구분이 일어나게 된다. 시각, 청각 등 각각의 감각 영역에서 한정해 본다면, 어떤 인상은 같은 영역의 다른 인상과 구별되는 질적 차이가 없으며 다만 외부 자극에 대응하는 양적 차이만 가질 뿐이다. 헤겔은 이를 ‘흥분[Affekt]’ 또는 ‘육체화한[Verleiblichung] 정신’[6]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시각적 인상은 명도나 온도, 채도의 크기 차이를 가지며, 청각적 인상의 경우, 고저와 장단, 강약 등의 크기 차이를 갖는다.

어느 감각의 영역에서든 인상이 완전히 수동적인 것은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이미 주관적 자아가 움직이면서 일차적으로 관념화가 일어나니, 관념화는 주관의 자기 관계에서 나온다. 모든 인상이 동일한 주관 속에 들어오면서 주관은 그 인상에 대해서 자기 관계를 갖는다. 이런 대자성 때문에 지각인상은 관념화된 것이다. 빛은 색채감각을 남기며, 음파는 소리라는 소리감각[7]을 남긴다.   

지각 인상은 동일한 하나의 주관 속에 들어오므로, 이 관념화된 지각인상에서 이미 일차적 종합이 일어나게 된다. 이는 지각 인상이 하나의 흐름 속에서 공존하고 계기[繼起]하는 관계 속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지각 인상이 하나의 주관 속에서 공존하고 계기하는 관계가 곧 시간성이다.

시간성 속에서 지각관념은 분석되거나 결합되는 법이 없이 공존하고 계기하는 관계만을 유지한다. 그런 점에서 최초의 종합이며 가장 단순한 종합이다. 그런 점에서 헤겔은 동일한 시간적 주관을 “완전히 빈 자아”, “그 어떤 내용도 없는 자기”, “추상적 주관성 자체”[8]라고 말한다.

 

“자아는 시간 속에 있고 시간은 현존하는 자아 자체[Das Sein des Subjekts selber]이다.”[9]

 

헤겔은 시간을 ‘개념의 현존{Dasein des Begriffs}’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개념’은 자기 운동을 말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자기를 구분하고 다시 자기 내로 복귀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주관이 대상을 자기 내에서 분석하고 종합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개념이 여기 시간성의 차원에서는 단순히 공존하고 계기하는 관계일 뿐이므로 헤겔은 이를 ‘현존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감각적 인상의 첫 번째 주관화의 단계에서 등장하는 시간적 내면성 영역이 곧 소리가 받아들여져서 서로 공존하고 계기하면서 음악으로 발전하는 내면적 평면이다.

 

4) 심정의 차원

헤겔에서 지각적 인상에서 표상을 거쳐 사유까지는 이론적 인식의 영역이다. 반면 감정은 욕망 다음으로 일어나는 실천적 의지의 영역이다. 실천적 의지는 나중에 표상과 결합하면서 자유의지로 발전하는데, 감정은 욕망과 자유의지 사이의 중간 단계이다.

외적으로 주어진 감각적 인상은 시간성 속에서 최초로 내면화된 것이다. 이런 내면화된 감각 인상이 실천적으로 연결되면서 감정으로 발전한다. 이 감정은 실천적 의지의 일종인데, 감각 인상과 감정 사이의 연결은 조건-반사적이다. 즉 감각은 특정한 주관이 가진 습관적 기제에 따라 감정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욕망이 자극에 대해 직접 반응하는 본능적 행동이라면 자유의지는 전적으로 주관의 선택에 달려 있다. 반면 감각과 감정은 조건-반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즉 감정은 다중적으로 분화된 반사 체계가 구축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 반사 체계 속에서 주어진 조건에 따라 어떤 반응이 나타나게 될 때 이를 조건-반사적이라 한다. 여기서 반사 체계는 오랜 경험, 습관을 통해 학습된 것이다. 감정은 이미 학습된 체계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능동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주어진 조건이 주어지면 곧바로 반응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수동적이다.

음악은 대체로 감정이라는 반응을 낳지만 때로는 이 반응이 직접 행위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헤겔은 이런 점에서 행진곡이나 춤곡을 예로 들고 있다.

이처럼 감각과 감정을 매개하는 주관은 다만 습관적인 체계일 뿐인, 헤겔은 이를 정신이 아니라 영혼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 주관은 단순한 것이며, 헤겔적으로 표현하자면 자연의 즉자적인 총체성이다. 영혼은 개체적이며 배타성을 가지지만 이는 자기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감정, 자기 정체성[Selbstgefuel]에 머무른다. 헤겔은 이런 자기감정을 지닌 주관 즉 영혼을 가슴[Herz] 또는 심정[Gemuet]이라고 규정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내적 시간의 평면에서 이루어지는 청각적 관념의 결합은 감정을 조건 반사적으로 즉 습관적으로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헤겔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음악의 주요 과제는 … 가장 내면적인 자기가 그 주관성과 추상 관념적[ideelle] 영혼의 면에서 내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방식을 반향하는[widerklingen] 데서 성립한다.”[10]

 

5) 음악의 독특성

음악에서 외적 자극이 지각을 거쳐 곧바로 감정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아의 활동이 시간적 종합에 머무르고, 감정은 습관성에 그치므로, 이 셋 사이에 수동적인 직접적 연결만 있을 때가 많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자극과 지각, 그리고 감정은 마치 하나로 결합되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앞에서 말했듯이 외면적 평면을 필요로 하는 회화가 독자성을 지니는 것과 달리 음악은 주관의 내면적 평면이 있어야 하므로 주관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예술로서 존재할 수가 없다. 악보에 쓰인 음악은 아직 아무런 음악이 아니다. 음악은 연주자가 있어야 하고 감상자가 있어야 한다. 그들의 주관이 살아서 움직이는 동안만 음악이 존재할 수 있다.

 

“음악을 통해 요구되는 것은 궁극의 주관적 내면성 자체이다. 음악은 심정 자체에 직접 호소하는 심정의 예술이다.”[11]

 

“음악이 목적과 내용으로 삼는 주관적 내면 자체는 … 주관적인 내면성으로 현상시킨다. 그런 한에서 음악적 외화는 … 생동적인 주관의 전달로서 제시되어야 한다.”[12]

 

이 주관적 내면이 시간적 종합의 차원이며 조건 반사적이므로, 이로부터 음악의 독특성이 생겨난다. 음악에서 주관적 내면은 표상 아래의 가장 단순한 차원이므로 음악은 문학과 달리 민족과 상관 없는 보편적인 예술이 된다[13]. 음악은 이 매개과정이 거의 수동적으로 일어나므로, 가장 직접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예술이 된다.

 

“음악은 의식을 사로잡는다. 의식은 더 이상 객체에 맞서지 않으며 자유의 상실 속에서 음 자체의 계속적 흐름에 의해 감화[fortgerissen]된다.”[14]

 

또한 음악에서 작동하는 내면성은 추상적 자아와 영혼의 차원이므로, 자기의식적인 관념의 차원을 벗어난다. 그러므로 음악은 마치 사유하는 정신의 차원을 벗어나 감정의 차원인 영혼으로 되돌아가서 황홀경에 빠지는 듯한 느낌을 발생하게 된다.

이런 영혼이 동물적인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감정은 정신을 표현하면서 순수한 내밀성의 단계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음악적 감정이 어떻게 무한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가? 이는 앞으로 살펴볼 문제가 된다.


[1] 헤겔, 철학강요, §300

[2] 헤겔의 용어 ‘ideell’ 이나 ‘reell’을 번역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는 ‘관념적[ideal]’, ‘실재적[real]’이라는 의미를 지니면서도 차별성을 지닌다. ‘ideell’ 이나 ‘reell’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서 본다면 양자는 실재하는 것과 관념적인 것 사이의 중간에 있다. 실재하는 물질이 물질성의 영역 내에서 관념화[ideell]한 것이 된다. 예를 들어 빛과 소리가 그렇다. 반면 관념적인 것이 관념의 영역 안에서 실재하면, 그것이 reell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언어의 의미나 수의 관념과 같은 객관화된 관념이 reell한 것이다. 그 의미를 살려 ideell은 ‘관념적 물질’로, reell은 ‘객관적 관념’으로 번역하고자 한다.

[3] 미학강의 3권, 142쪽

[4] 미학강의 3권, 142쪽

[5] 미학강의 3권, 143-144쪽

[6] 헤겔, 철학강요, §401

[7] 시각이나 청각 인상이 시각이나 청각 관념과 다른 것은 아니다. 인상은 어디까지나 관념으로 존재한다. 인상이라 말할 때는 외부에서 자극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관념이라 말할 때는 주관 자신이 자기의 구별과 관계하는 대자적 관계의 측면을 말한다.

[8] 미학강의 3권, 143쪽

[9] 미학강의 3권, 163쪽. 여기서 시간이 자아 자체의 ‘존재’라고 했을 때 그 의미는 시간이 개념의 현존이라 했을 때와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즉 아직 존재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자아, 개념이라는 뜻이다. 

[10] 미학강의 3권, 143쪽

[11] 미학강의 3권, 143쪽

[12] 미학강의 3권, 165쪽

[13] 엄밀하게 말하면 음악도 민족성이나 계급성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감정적 반응 체계는 습관적으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습관적 체계는 모호하며 일반성을 가지므로, 음악이 민족과 계급을 뛰어넘은 가능성이 생긴다.

[14] 미학강의 3권, 160쪽

플라톤의 <국가> 강해(60)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60)

 

  정의의 실현조건 : 철학과 철학자 왕(474c-502a)
  철학자의 자질(제6권 484a-487a)

* 제5권에서 소크라테스는 말로 세운 나라가 실제로 행위를 통해 그대로 실현되기는 불가능하지만, 그 나라의 통치자가 철학자일 경우 최대한 그에 가깝게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대화 참가자들 모두는 철학자가 뭐길래 소크라테스가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의아해한다. 이에 따라 과연 철학자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소크라테스는 우선 철학자란 진리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며 그 진리가 다름 아닌 언제나 한결같이 존재하는 형상임을 밝힌다. 그리고 그 형상이 일상인들의 믿음과 어떻게 다른지도 함께 언급되면서 이른바 플라톤의 형상론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제6권에 들어와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철학자가 어떻게 나라의 수호자이자 통치자로서도 적합한지를 드러내기 위해 철학자의 자질에 관한 논의를 이어간다. 철학자의 자질이 얼마나 통치자의 자질로도 유효한 것인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제6권 484a-487a]

* 소크라테스는 정의로운 삶이 부정의한 삶과 어떻게 다른지를 구분해보려면 논의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으므로 곧바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질을 주제로 다음의 논의를 이어가려 한다. 그런데 그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소크라테스는 나라의 수호자φύλαξ이자 지도자ἡγεμονεύς로 지혜로운 사람을 내세우는 것이 마땅하다면 그 사람은 무엇보다 ‘이 나라의 법νόμος과 수행할 일들ἐπιτηδεύματα을 수호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갖추어야 할 그 능력의 기본 조건이 다름 아닌 ‘좋은 시력을 갖춘’ὀξὺ ὁρῶντα 감찰τηρεῖν 능력에 있음을 밝힌 후 그 감찰 능력의 내용을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484a-b)

* 수호자는 무릇 진실로 있는 것 각각에 대한 앎γνῶσις을 가지고 영혼ψυχῇ 안에 뚜렷한 본 παράδειγμα으로서 가장 참된 것τὸ ἀληθέστατον을 바라보고ἀποβλέποντες 항상 거기에 조회하며κἀκεῖσε ἀεὶ ἀναφέροντές 가능한 한 정확하게 관찰할 수’καὶ θεώμενοι ὡς οἷόν τε ἀκριβέστατα있어야 한다.(484c) 그렇게 해서 아름다운καλός 것들과 정의로운δίκαιος 것들, 좋은ἀγαθός 것들에 관한 이 땅에서의 법규τά νόμιμα를 설정τίθεσθαί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설정하고 세워진 것은 수호해서 보존할 수 있어야 한다. 화가γραφεύς들이나 눈이 먼 사람들τι τυφλῶν은 위와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게다가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나라의 수호자이자 지도자들은 경험ἐμπειρία에서도 이들보다 전혀 빠지지 않고 덕ἀρετή의 다른 어떤 부분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사람들이다.(484d)

* 소크라테스는 나라의 수호자이자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능력을 위와 같이 언급한 후에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떤 자연적 성향φύσις 즉 자질을 갖추었기에 그러한 능력들을 두루 다 가질 수 있는지를 논의하기 시작한다.(485a)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연적 성향은 아래와 같다.

1) 그들은 항상 있으며ἀεὶ οὔσης 생성γένεσις과 소멸φθορά에 의해 방황하지 않는μὴ πλανωμένης 저 존재οὐσία를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배움μαθήματός과 ‘항상 사랑에 빠져 있다’ἀεὶ ἐρῶσιν.(485b)

2) 그들은 그 모두와 사랑에 빠져 있어서, 큰 부분이든 작은 부분이든 더 가치 있는 부분이든 덜 가치 있는 부분이든, 어떤 부분이든 포기하지 않는다οὔτε ἀφίενται.

3) 그들은 거짓 없음ἀψεύδεια, 그리고 어떤 식으로도 거짓τὸ ψεῦδος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고 미워하며, 진리ἀλήθεια를 좋아한다στέργειν. 자연적 성향상 누군가에 대한 정욕을 가진ἐρωτικός 사람은 그 애인과 친족이고syggenes 그에게 속한oikeios 모든 것πᾶν을 반기는 것이 전적으로 필연적인 한, 진리보다 지혜σοφίᾳ와 더 가까운 것은 없다.(485c) 그러므로 진정으로 ‘배움을 사랑하는’φιλομαθής 사람은 어려서부터 곧장 모든 진리를 가능한 한 최대로 추구할 수밖에 없다.

4) 그들은 배울 거리들과 그러한 모든 것을 향해서 욕구의 물길이 뚫린 사람들로서 영혼 그 자체의 즐거움ἡδονή들을 추구하며 육체σῶμα로부터 생기는 즐거움은 저버린다.(485d)

5) 그들은 분별σώφρων이 있어서 결코 ‘돈을 사랑하는’φιλοχρήματος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돈과 많은 소비δαπάνη에 몰두σπουδάζειν하지 않는다.(485e)

6) 신적인 것이든 인간적인 것이든 전체 모두를 항상 추구할ἐπορέξεσθαι 영혼에게 좀스러움 σμικρολογία이란 가장 반대되는 것이다. 호방함μεγαλοπρέπεια과 모든 시간χρόνος과 모든 존재οὐσία에 대해 관조θεωρία함을 갖춘 정신διανοίᾳ을 지닌 사람에게 인간적인 삶은 뭔가 대단한μέγας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죽음θάνατος도 무서운δεῖνος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486a) 비겁하고δειλός 자유인답지 못한ἀνελευθερίος 자연적 성향은 참된 지혜·사랑과 상관이 없다. 이에 더해 그들은 규율이 있고(품행이 단정하고)κόσμιος 허풍ἀλαζών을 떨지도 않는 사람으로서 계약을 파기하지δυσσύμβολος 않는 사람들이다.(486b)

7) 그들은 영혼이 정의롭고 온순하며ἥμερος 쉽게 배우고εὐμαθὴς 기억력μνημονικός이 좋아 배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잘 보존σῴζειν하는 사람이다.(486c-d)

8) 그들은 균형ἐμμετρία과 동족인συγγενής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므로 본래적 성향τὸ αὐτοφυής상 균형 잡히고 우아한εὔχαρις 정신διάνοια을 갖고 있으며 그러한 정신이 그들을 있는 것 각각의 형상ἰδέα으로 이끌어 준다.(486d)

9) 있는ὄντος 것에 충분하게ἱκανῶς, 그리고 완전하게 τελέως 참여할μεταλήψεσθαι 영혼에게 이 각각의 것들은 필수적이며ἀναγκαίη 상호 연관된ἑπόμενα 것들이다. 요컨대 그들은 자연적 성향상 기억력이 좋고νήμων 쉽게 배우며εὐμαθής 호방하고μεγαλοπρεπής 우아하며εὔχαρις 진리ἀληθεία, 정의δικαιοσύνη, 용기ἀνδρεία, 절제σωφροσύνη와 친구φίλος이자 친족적인συγγενής 사람들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교육παιδείᾳ과 연륜ἡλικία에서 원숙해지면τελειωθεῖσι 바로 그들에게만 나라를 맡겨야 한다ἐπιτρέπειν.(486e-48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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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4a ‘정의로운 삶이 부정의한 삶과 어떻게 다른지를 구분해보려면 논의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으므로’ : 소크라테스의 이 말은 <국가> 논의의 근본 출발점이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 형제의 요청(362-367)에 따라 ‘정의로운 삶이 부정의한 삶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임을 다시 한번 환기한다. 플라톤은 이곳 말고도 이점을 <국가> 중간중간에 여러 번 환기하고 있는데(420b-c, 427d, 434d-435a, 445a-b, 427b, 545d, 588b) 이것에 주목하여 일부 학자들은 플라톤이 <국가>에서 다루고자 하는 근본 관심사가 정치철학적 문제라기보다는 행복한 삶과 관련한 윤리학 내지 도덕철학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그에 기초하여 dikaiosynē도 ‘정의’justice보다도 ‘올바름’righteousness으로 옮기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 강해 서두에서 <국가>의 원제 politeia의 의미를 설명할 때 언급했던 것처럼 고대 아테네인들에게 삶이란 그 자체로 시민적 삶, 폴리스적 삶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러한 구분 자체가 특별히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치철학과 윤리학을 구분하려는 시도 자체가 배타적 이기주의를 토대로 개인의 자의식이 확립된 근대 이후의 사고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국가>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오도할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가 글라우콘 아테이만토스 형제의 요청에 응하면서 곧바로 소문자 대문자 비유를 통해 아무런 사전 설명이나 전제 없이 개인을 국가로 확장하는 것도 플라톤 스스로 이미 politeia 즉 삶의 방식과 관련하여 개인의 삶과 시민적 삶의 방식을 별개로 여기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렇듯 플라톤이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삶을 결코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오히려 개인의 영혼에 대해서도 ‘정의롭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그것이 특징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사회적 성격을 보다 잘 드러낸다는 점에서 좀 더 타당성을 갖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본 강해에서도 수시로 강조했듯이 20세기 일부 비평가들의 견해들처럼 플라톤이 개인의 삶을 국가주의에 복속시켜 그들의 희생을 정당화하거나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국가>에서 정의로운 이상 국가의 통치 목표는 그 대상인 시민들 모두의 행복이며, 개인들 또한 어떤 계층에 속하건 시민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본성에 따른 직책을 기꺼이 수행하는 방식으로 나랏일에 참여하는 것이 나라의 이익은 물론 자신의 이익과 행복에도 부합하는 것임을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는 절제의 덕을 통해 이미 충분히 자각하고 있다. 즉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시민들 각각의 행복을 담보하는 통치의 방식으로 공동체로서 국가의 이익과 안전을 구현하는 나라이다.

* 484c ‘수호자는 진실로 있는 것 각각에 대한 앎을 가지고 영혼 안에 뚜렷한 본으로서 가장 참된 것을 바라보고 항상 거기에 조회하며 가능한 한 정확하게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 이 구절은 우주를 제작하면서 오직 본으로서 원상만을 바라보고 그것에 기초해서 우주를 가장 선하고 아름답게 만들려 하는 <티마이오스>의 데미우르고스의 모습과 그대로 일치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티마이오스>는 <국가>의 이상 국가를 우주론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 즉 우주 제작자 데미우르고스는 정의로운 국가를 수립하고 운영하는 통치자 즉 철인 통치자의 이상적 모델인 것이다. 이곳에서 본(paradeigma)은 <티마이오스>에서도 그대로 사용되면서 내용적으로 공히 이데아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고(apoblepontes) 관찰하고(theomenoi) 조회한다(anapherontes)는 말은 이데아에 대한 앎 즉 장차 다루어질 변증술의 기초가 기본적으로 철학적 직관 내지 관조(theoria)에 기초해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로 철학자 왕을 다루는 제6권 500c, 500e-501c에서 여기서 언급된 본에 대한 관조가 다시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아담(J. Adam)도 지적하고 있듯이 이데아에 대한 철학자의 지식이 단순히 인식적 가치만이 아니라 통치자가 갖추어야 할 정치적 앎으로서도 가치가 있음이 여기에서 처음으로 명백하게 주장되고 있다.(J. Adam 해당 노트 참고)

* 484d ‘이 땅에서의 법규를 설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설정하고 세워진 것은 수호해서 보존할 수 있어야 한다.’ : 철학자가 이상적인 나라에서 태어났을 경우 그 나라는 이미 형상에 기초하여 세워진 나라이므로 그는 단지 이미 확립된 법규를 수호하는 역할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철학자들은 현실 국가의 개선을 위해 바람직한 법률을 세우고 관철하려는 입법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J. Adam 해당 노트 참고)

* 484d 화가(grapheus)들이나 눈이 먼 사람들은 위와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 화가들에 대한 비판을 예술 일반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시가 교육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플라톤에게 음악과 조각 등 조화미와 관련한 예술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이곳과 10권에서 화가에 대한 비판은 화가가 형상의 모상으로서 현실의 대상을 또다시 모상한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형상적 앎의 관점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 484d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나라의 수호자이자 지도자들은 경험empeiria에서도 이들보다 전혀 빠지지 않고’ : ‘경험’의 그리스 원어 empeiria는 영어로 ‘experience’, acquaintace with’, ‘practice, without knowledge of principles’의 뜻을 지니고 있다. 플라톤도 그 말을 사전적 의미와 크게 벗어나지 않게 다음 세 가지 의미로 쓰고 있다. 첫째는 넓은 의미에서 ‘~을 접해 본 적이 있음’이라는 경험 일반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원리적 추론과 지식이 아닌 ‘감각적 경험이나 지각’으로 좁혀 사용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익숙함’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467d, 529e, 601c)가 있다. <국가>에서 첫째의 경우는 ‘진리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584e)이라는 표현에서처럼, 지식이나 감각과 상관없이 ‘접해 보았음’ 일반의 의미로 사용된 경우로서, 위의 용례 외에 ‘앎이나 이득에서 오는 즐거움에 대한 경험’(582a), ‘문답하는 것에 대한 무경험’(apeiria)(487b), ‘진리에 대한 무체험’(apeiros)(519b), ‘교과들을 경험한 자’(533a), ‘사려분별과 덕에 대한 경험’(585e) 등의 용례가 있다. 그리고 셋째의 경우는 ‘경험과 연령에 있어서(467d), ‘기하학에 익숙한 사람’(tis emperos)(529e), ‘사용함에 있어 가장 경험이 많은 자’(601c) 등의 용례가 있다.

그러나 두 번째 경우는 경험을 ‘감각적 경험’으로 한정하여 사용하는 용례로서 대부분 원리적 추론, 실재나 앎과 분명하게 구분하거나 대비해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경험이 아닌 지식을 이용함으로써’(409c), ‘권투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422c), ‘전투 관련 경험과 관찰에 의해서’(467a), ‘이들이 (앎에서 뿐만 아니라) 경험에 있어서도 남들에 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539e) 등의 용례가 있다.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나라의 수호자이자 지도자들은 경험에서도 이들보다 전혀 빠지지 않고’(484d)라는 이곳의 표현 또한 이 둘째 용례에 해당한다. 이 경우 ‘경험’은 원리적 사고로서 ‘사려분별(pronesis) 또는 이성적 추론’(logos)(582a)과 분명하게 구분된다. 그것은 설사 그 경험이 수없이 축적되더라도 진정한 앎에 다다를 수 없는, 지식의 단계상 본질적으로 낮은 수준의 것이다. 그러나 유념할 것은 비록 경험이 진정한 지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낮은 수준의 것일지라도 결코 그것을 무시하거나 폄하해서는 안 된다. 앞서 앎보다 믿음이 지식의 단계에서 저급한 수준의 것이지만 믿음이 실제 생활 영역에서 기술적 훈련을 통해 학술의 수준까지 고양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기 고유의 쓸모가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라를 수호하는 수호자들에게 전쟁 전체에 대한 정책적 결정과 전략에 대한 앎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전투 역량의 향상을 위한 지휘 및 전투 등 전쟁 실무 능력의 향상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투 실무 역량의 향상은 실제 전투 경험을 포함 그에 준하는 상황에서 끊임없는 반복적 관찰과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영혼을 통해 획득되는 지성적 앎의 능력과 더불어 반복적인 연습과 체험을 통해 몸에 밸 정도로 숙달된 신체 능력이자 실천 기술인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수호자들로 하여금 어려서부터 체육을 통한 끊임없는 신체 단련은 물론 경험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도록 35세부터 50세까지 15년 동안 전쟁 지휘 및 관직의 수행 등 실무 경험을 쌓게 하고 그것을 마친 연후에야 비로소 그들 중 가장 훌륭한 자들을 통치자로 뽑아 최고의 철학 교육으로서 변증술을 익히게 하는 것이다. 이 점만 고려하더라도 지성적 앎은 물론이고 통치와 관련한 어떠한 경험도 쌓지 않은 자가 그저 권력욕에 사로잡혀 기득권층을 등에 업고 졸지에 최고 통치자가 되어 분별없이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현금의 우리나라 현실은 실로 통탄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 근세 합리론과 경험론(empiricism)을 이야기할 때 ‘경험’의 의미도 이 두 번째 용례에 기초해 있다. 그래서 경험론이 말하는 지식은 경험적 감각자료들의 귀납에 의해 개념적 일반지의 지위를 갖는다. 그렇지만 귀납지가 귀납적 비약(inductive leap)을 전제로 성립하는 한, 플라톤이 이미 포착하고 있듯이 그것은 보편성을 가질 수 없는 개연지일 뿐이다. 플라톤에게 보편지는 형상적 앎 또는 그에 준한 수학적 기하학적 지식으로부터 연역됨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러나 앞서 살폈듯이 형상적 앎과 감각적 경험을 통한 믿음 모두 일정 수준에서 모두 각기 인간 삶의 보전에 기여하는 한, 플라톤에게 있어 그 각각은 비록 인식론적 지위는 다를지라도 모두 각각의 영역에서 앎으로서 고유성과 의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플라톤이 형상적 앎을 논리적 추론 차원을 넘어선 소수 철학자들의 직관지로 파악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왜 칸트가 근대 과학지의 보편성을 설명하기 위해 그 과학지를 ‘인간 나름의 해석’ 즉 지각에 대한 오성의 구성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그리고 그에 따라 오늘날 과학적 지식이 본질적으로 왜 가설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도 함께 해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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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가 정의로운 나라를 수립하면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직위로서 수호자를 처음 언급했을 때(374d) 수호자(phylax)는 나중(414b) 완벽한 수호자들(phylakes pataleis)로서 통치자들(hoi archontes)과 그들의 보조자들(epikouroi) 내지 협력자들(boētoi)로서 전사들(stratiōtas)을 두루 아우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플라톤 이상 국가의 최고 지도자는 수호자에서 통치자로 좁혀졌다가 이곳에서부터 그 통치자가 다시 철인 통치자로 더욱 좁혀진다. 이에 따라 이들에 대한 성향이나 자질도 처음 포괄적으로 제시된 이후 점차로 보다 구체적인 자질들이 추가되면서 이곳에서 철학자의 자질이 언급되고 있다. 물론 주제 상으로는 철학자가 지닌 자연적 성향이나 자질로 언급되고 있지만, 이 철학자들의 자질이 통치자의 자질로서도 적합하다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된 것인 만큼 내용적으로는 철학자의 자질이면서도 동시에 통치자가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자질들이라 할 것이다. 그러면 장차 철인 통치자를 염두에 두고 제시되고 있는 철학자의 자연적 성향은 지금까지 언급된 수호자와 통치자들의 자연적 성향과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것들이 특히 추가되었을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수호자의 성향을 다룰 때(375a-376c)와 달리 지혜의 친족이자 진리로서 ‘형상’(idea)이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때에도 용기와 더불어 배움과 지혜가 주요 자연적 성향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그때 배움과 지혜에는 보조자들이 갖는 ‘올바른 믿음’(orthē doxa)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임에 비해, 이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철학자들의 배움은 ‘존재’(ousia)를 보여 줄 수 있는 ‘배움’이고(485b) 지혜를 사랑하는 것 또한 우아한 정신으로 참된 앎 곧 ‘형상’(idea)에 다가가는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486d) 그리고 보조자들이 아닌 통치자들의 선발과 자격을 언급할 때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dogma)과 소신(doxa)이 추가적으로 강조되고 있을 뿐(412e) 이곳에서처럼 형상에로 이끌린다거나 그것을 열망했다거나 하는 언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요컨대 지금까지 수호자의 자연적 성향과 관련해서는 도덕과 지식이 하나라는 전제를 염두에 둘지라도 기본적으로 도덕의 고양에 크게 방점이 주어져 언급되었다면 지금 철학자의 자연적 성향과 관련해서는 영혼의 고양을 통해 존재 내지 형상에로 다가가는 것에(486d-e) 크게 방점이 찍혀 있다.(J. Adam 497c note 참고)

* 그러면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플라톤이 말하는 철학자의 자연적 성향 하나하나를 음미해보기로 하자.

위 요약문 1) :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수호자의 자질에 더해 철학자의 자연적 성향으로서 가장 먼저 ‘생성과 소멸에 의해 방황하지 않는 존재ousia’가 자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방식으로서 철인 통치의 근본 토대와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존재에 ‘항상 사랑에 빠져 있다’함은 철학자이자 통치자로서 존재를 향한 지향이 결코 잠정적이거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긴장과 열정을 수반하면서 늘 항상성을 갖고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위 요약문 2) : 철학적 지향이 그러하듯 철학 통치 또한 총체성과 전면성을 가지며 어떠한 것도 따로 차별해서 다루지 않는다. 요컨대 철인 통치자라고 한다면 특정 계층, 특정 대상, 특정 문제에 구애받지 않고 크건 작건, 가치가 더 있건 덜 있건 간에 상관없이 통치와 관련한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소홀히 하지 않고 그것들 전체에 대한 관심으로 전면적이고도 총체적인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그 문제 해결에 다가서며 동시에 그러한 노력을 결코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철학적 문제의식의 전면성 내지 총체성과 더불어 문제 해결에 있어 철학 통치자에게 불타협적 끈기와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위 요약문 3) : ‘어떤 식으로도 거짓(to pseudos)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고 미워하며’라는 말은 플라톤이 특수한 조건에서 ‘통치자의 거짓말’이 옹호될 수 있다는 내용(414b 등)과 상충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순수하게 플라톤적 의미에서 ‘진리를 향한 영혼의 결여에서 나오는 무지’를 의미한다. 다만 플라톤은 엄밀한 의미의 앎을 가진 통치자가 자신이 아닌 대상의 이익을 분명하게 담보하는 전제하에서 거짓말을 허용한다. 그들은 자연적 성향상 정욕을 가진 사람이 애인을 대하듯 진리에 속한 모든 것을 반기는 사람들이므로 결코 진실을 결여한 거짓과 가까이하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지혜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된다.

위 요약문 4), 5) : 철학자란 배울 거리들과 그러한 모든 것을 향해서 욕구의 물길이 뚫린 사람들로서 욕구의 물길이 크게 뚫린 그만큼 영혼 그 자체의 즐거움 쪽으로 깊숙이 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 깊숙이 가 있는 그만큼 분별력 또한 뚜렷해져 육체로부터 생기는 즐거움이나 돈에 대한 사랑은 아예 생겨날 여지가 없고 그에 따라 감각적 향락을 위한 소비도 없다.

위 요약문 6) : 철학자의 영혼이 그러한 상태에 있는 한 그들은 신적인 것이든 인간적인 것이든 전체 모두를 항상 추구하며 그에 따라 전혀 좀스럽지 않고 반대로 호방하게 모든 시간과 모든 존재를 관조하는 정신을 갖춘 사람들이다. 중국 송대 지식인 소동파(蘇東坡)가 적벽부에서 노래하듯 물여아개무진야이우하선호(物與我皆無盡也而又何羨乎. 세상 만물과 내가 모두 다함이 없이 하나이거늘 달리 또 무엇을 부러워하랴)의 경지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인간적인 삶이란 대단하게 여겨지지도 않고 죽음도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며 그에 따라 행위에서 비겁할 이유가 없다. 공자가 70세에 이른 사람의 경지를 일컬어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고 했듯이 철학자는 자유인답게 늘 자유롭게 행동하지만 어떤 행위를 해도 지혜사랑 안에 있으므로 규율에서 벗어나지 않고 허풍도 떨지 않으며 매사에 있어 사회적 연대나 계약에 어긋남이 없다.

위 요약문 7) : 여기에서는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로서 정의로움과 온순함에 더해 우수한 학습력과 기억력이 강조되고 있다. 1)에서 6)까지 언급된 내용들은 철학자의 자연적 성향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그러한 내용들 대부분은 후천적 노력에 의해서 일정 정도는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우수한 학습력과 기억력은 그것들에 비해 다분히 천부적인 영역에 속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플라톤의 이상 국가에서 철학 통치자는 그 스스로도 이미 건국신화를 통해 황금족으로 따로 구분했듯이(415b) 자격에서부터 원천적으로 소수 엘리트로 제한될 수밖에 없음이 더욱 분명해진다.

위 요약문 8), 9) : 진리는 어떤 경우에도 균형과 동족이므로 진리를 사랑하는 철학 통치자란 위와 같은 성향들을 영혼 안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시켜가면서 균형 잡히고 우아한 정신으로 충분하고도 완전하게 존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야말로 통치의 궁극적 이념으로서 형상에 다가갈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요약하자면 철학자의 자연적 성향은 기억력이 좋고 쉽게 배우며 호방하고 우아하며 진리 정의, 용기, 절제와 친구이자 친족인 사람들이다. 위와 같은 철학자의 자연적 성향들은 통치자들이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자질로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플라톤은 이러한 사람들을 교육과 연륜에서 원숙해지면 바로 그들에게만 나라를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 플라톤이 말하는 이와 같은 철학자의 자연적 성향이자 동시에 바람직한 통치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들은 하나같이 도덕과 지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 정치이념으로서 도덕과 정치를 분리한 마키아벨리즘과 철저히 대척적이다. 특히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통속적인 이해가 그러하듯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자 개인이나 파당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 그것은 당대의 참주정의 목표와 그대로 일치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설사 그러한 통속적 이해와 달리 마키아벨리즘을 마키아벨리(N. Machiavelli)가 의도한 그대로 ‘수단의 도덕적 선악과 관계없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정치 행위에 있어 그 유용성과 효율성만을 고려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연 그러한 정치이념이 말 그대로 과연 ‘정치 현실에서 국익을 위한 공적 권력의 성공적인 유지와 관리를 담보’해왔는지는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근대 이후 개인적인 관계에서건 계층 간 나라 간 관계에서건 배타적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는 이른바 냉혹한 현실에서 그것은 나름 성공적인 평가를 받아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평가는 근대 이후 형성된 정치 현실에 대한 단기적 진단에 토대를 둔 것에 불과하고 실제로 그러한 처방은 현실의 질곡을 극복하거나 치유하기보다는 그 질곡을 더욱 부채질하고 강화하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오늘날 배타적 자국 이기주의와 패권주의에 토대를 둔 신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불평등의 괴리를 더욱 심화시키면서 원천적으로 국제간 평화 공존이 그 자체로 불가능에 가까운 것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이른바 나라이건 개인이건 ‘신의와 약속’은 자기 보존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으며 오로지 살길은 각자도생하며 각자 의심의 눈을 부릅뜨고 배타적 경쟁력을 갖는 힘을 키우는 것뿐이다. 근대 이후 자본주의의 발전을 견인한 산업혁명은 오늘날 막대한 자본력과 정보 통신 기술의 융합을 토대로 하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면서 개인 간 계층 간 나라 간 불평등과 경제적 양극화를 마치 문명 발전이 수반하는 불가피한 실재로 정당화하면서 나날이 그 끝을 모를 정도로 기세를 떨쳐가고 있다. 그 최전선에 도구적 지식인들이 창궐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소한 통속적인 의미에서 오늘날 마키아벨리즘은 강대한 나라에게는 타국에 대한 패권적 억압을 합리화하는 이념적 토대가 되어 불평등한 국제질서를 고착화하는데 기여하고 있고, 반대로 약소국에서는 정치권력의 폭압성과 기득권 세력의 피폐성을 정당화하고 약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의 열패성을 마치 숙명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하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구 환경 및 기후의 급격한 변화가 보여주듯이, 오늘날 자본주의 문명이 초래한 생태적 위기는 강대국 약소국을 막론하고 세계 시민들 모두를 앞이 빤히 보일 정도의 문명적 재앙으로 점점 더 몰아가고 있다. 게다가 정치 영역에서도 미국의 트럼프 등을 비롯한 극우주의자들이 기득권 세력을 등에 업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고 서구에서 쥐꼬리만큼이나마 연명하고 있었던 톨레랑스도 이제 거의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윤석열이란 무도한 자가 검찰, 언론, 종교 등 강고한 기득권 세력을 등에 업고 형식 민주주의의 약점을 이용하여 통치 권력을 장악한 후 하루가 멀게 반민중적 횡포를 일삼고 있다. 그래도 촛불혁명을 이끈 민중의 저력을 보여주듯 24년 3월 현재 다가올 총선을 앞두고 피폐한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의 목소리가 나날이 커지는 것은 다행인 일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차원에서 정치 사회적 진보의 전망은 물질문명에 눈이 멀어 문명적 재앙을 선도하는 초국적 자본과 각 나라의 기득권 세력이 갖는 위세 등등함에 비하면 여전히 너무도 미약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모든 혁명적 변화의 시작이 민초들의 자각에서부터 시작했듯이 시민 모두가 담론 생산자가 되어 비판적 담론들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조직화해가면서 그 씨앗을 더욱 크게 키우고 더욱 넓게 퍼트려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플라톤의 정치철학이 순진한 지식인들의 낭만적 이상론으로 불리면서 그 현실성에 대한 의구심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플라톤이 여기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진리를 향해 터져 나오는 욕구의 물길처럼 이상을 향한 인간의 정신과 의지가 내뿜는 힘은 결코 현실에 압도되거나 줄어들거나 약화되지 않는다. 그것은 도덕의 영역에서건 현실 분석의 영역에서건 마키아벨리즘의 냉철함과 영악함을 크게 압도하는 진보에 대한 절실한 열망을 토대로 철저함과 진지함을 하나같이 보전하고 키워가면서 새로운 문명의 전환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끊임없이 견인해 나갈 것이다. 정치의 지성화를 본질로 하는 플라톤의 관점은 분명 원리적 사고의 측면에서 그러한 진보적 담론 형성과 투쟁에 일조할 수 있다. 특히 오늘날 정치철학이 간과하고 있는 문명과 인간 본성의 유기적 관계에 대한 플라톤의 성찰은 진정한 의미에서 문명의 발전과 변화를 꿈꾸며 고민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오늘날 인간의 본성으로 당연시 되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이란 게 결코 누구나 받아들여야 할 상수도 진실도 아니라는 것을 큰 울림으로 일깨워주고 있다. 세계 사상사의 전체 흐름이 보여주듯이 현대 물질문명 각 영역에 대한 지식인들의 개별적인 분석과 미시적 비판도 중요하지만, 시대의 모순을 딛고 문명의 전환을 꿈꾸면서 그 모든 고려 요소들을 총체적인 관점에서 아우르고 통합하는 형이상학적 거대 담론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형이상학이 매몰된 현금의 철학적 정황 속에서 인간과 우주의 생태적 연대와 소통을 기반으로 세계관 차원에서 문명의 전환을 모색하는 이 시대의 한국 철학자 이규성(李圭成, 1952-2021)의 철학이 필자에게 빛나게 다가오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 그러나 철학자의 자질이 통치자의 자질로도 유효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제기된 위와 같은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마치 철학에 대한 현대인의 의구심을 선구적으로 궤 뚫어 보기나 한 듯이 이내 아데이만토스의 반박에 부딪친다. 소크라테스가 아무리 그와 같이 주장을 해도 현실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설사 그러한 자질이 있다고 해도 오히려 철학자들 대다수가 스스로 그러한 자질들을 나라의 공적 이익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사용하지 못한 채 쓸모없는 이들이 되거나 반대로 그 소질들을 개인의 이익과 영달에 이용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아데이만토스의 그러한 지적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현재의 상황에서 철학자가 그렇게 평가되고 있는 이유를 냉정한 눈으로 분석한다. 그러한 현실 인식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임을 철저히 밝혀내야 철학자에 대한 현실 인식을 온전하게 바로잡는 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끝-

다음 강해 B. 3. 철학이 비난받는 현실(487b-497a)

1) 철학이 쓸모없게 여겨지는 이유(487b-488e)

2) 철학자들이 스스로 타락하는 이유(488e-495b)

헤겔미학산책42-내밀성(숭고함)의 회화[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42-내밀성(숭고함)의 회화

 

1)

원시인의 동굴 벽화부터 따진다면 회화의 역사는 아마 가장 오래되었을 것이다. 회화는 고대, 그리고 고전 시대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출현했다. 그런데도 헤겔은 마치 고대나 고전 시대에는 회화가 없었다는 듯이 낭만주의 시대 이후부터 회화를 다루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고대, 고전 시대 예술은 일반적 정신을 표현하려 하지만,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와서 구체적 현실에 대한 관심이 등장했다. 회화는 질료의 특성상 고대, 고전 시대의 관심을 충족하기 어려웠다. 그 당시 무덤 벽화나 도자기 그림은 다만 장식적이고 종속적인 역할만 담당했다. 그러나 낭만주의 시대에 회화는 구체적 현실을 표현할 수 있는 예술 장르로 주목 받으면서 예술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낭만주의 시대 회화가 특히 고전 시대의 신화적 인물을 다루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르네상스 회화나 신고전주의 시대 회화가 그렇다. 그러나 그런 회화는 그 표현 내용을 더 이상 고전적인 방식으로 다루어지지 않으며 고전 시대 신화조차도 낭만주의적 방식으로 즉 그 특칭적 주관성과 개별적 사건을 중심으로 표현하려 한다.

 

2)

헤겔은 회화의 내용을 설명할 때에는 낭만주의 시대 출현한 회화를 주제에 따라 세 가지 주제로 구분한다. 그것은 종교적 내밀성[innigkeit][1]과 실체적 내밀성, 그리고 현실 자체이다. 회화의 역사적 발전을 설명할 때는 시대적으로 세 단계에 걸쳐 구분한다. 이 세 단계는 중세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낭만주의 시대가 발전하는 역사와 대체로 일치한다. 고딕 시대까지, 르네상스에서 바로크까지, 그리고 계몽주의 이후의 시대이다. 주제와 시대의 관계는 세 가지 주제별 분포 곡선이 약간 중첩되면서 시대적으로 중심을 이동하는 방식으로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시대적 구분보다는 주제별로 구분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

첫 번째 주제는 종교적 내밀성을 다룬다. 이는 인간인 동시에 신적인 존재의 주관성을 말한다. 즉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 성인에게서 나타나는 주관성이다. 그 주관성의 내용은 성령의 정신이다. 성령은 곧 무한한 사랑의 정신이니 이는 주로 성서나 실제 역사에 나오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표현된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역사적 현실의 리얼리티를 살리면서, 신성한 존재의 내밀한 주관성이 표현된다.

언뜻 보면 신성한 존재의 모습은 고전 시대 영웅의 모습과 닮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나 마리아, 성인 등의 내밀한 사랑의 정신이 회화에서는 그 외면적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고전 시대 영웅의 모습이 이상화된 표현이라고 한다면, 여기서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건 속에서 사랑의 정신이 표현된다.

전자가 고요함과 지복에 머물러 있다면 여기서는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고통을 매개로 한다. 이런 회화는 신성한 존재를 “인간의 죄악과 회한과 참회, 비열과 사악과 대비하여” 나타내거나 역으로 “경배자를 통해 가시화한다”[2].

헤겔은 고전적 영웅의 정신과 낭만적 종교적 내밀성을 비교하면서 전자의 예로 니오베와 라오쿤의 고통을 들고 있다. 니오베와 라오쿤은 신체적 고통 속에서도 “회한과 실망 속으로 스러지는 대신” “자신을 위대하게 보존한다”. 이런 자기 보존은 실체적 명령을 수행하는 것일 뿐, “공허하며” “차가운 체념이 화해와 만족을 대신하며” 이 속에서 개인은 이 속에서 “자기가 집착했던 것을 포기하며” 그것은 “경직된 침착함일 뿐이며 운명에 대한 만족 없는[erfullungslos] 순응일 뿐이다”.[3]

반면 종교적 사랑의 정신은 신체적 고통이 아니라 내면의 고통을 표현하며, 감각적 고통을 참는 의연함이 아니라, 내면의 참회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런 사랑의 감정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감당하기 벅찬 지복의 감정으로 남는다.”[4] 낭만적 회화에서 사랑의 정신과 개인적 특성은 서로 자유롭다. 가장 개인적이면서 가장 사랑의 정신으로 충만해 있으니, 그러면서도 양자는 서로 하나로 합일되어 있다.

 

“그러므로 개인적 특성은 … 낭만적 예술 원칙에 따라 자유로워지며, 그럴수록 더 특성적으로 표출된다. 그런데도 이 특성적인 것은 내밀한 사랑을 흐리게 할 수도 없고 또 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사랑도 … 특성적인 것 자체에 매임이 없이 자유롭고 또한 그자체로서 진정 독자적인 정신적 이상을 형성하기 때문이다.”[5]

 

헤겔은 종교적 내밀성을 표현하는 대표적 회화로 주로 르네상스 시대 종교화를 들고 있다. 그 대표적 작품은 라파엘로의 시스티나 성모상일 것이다. 헤겔은 특히 성모의 자애로운 모습 외에도 십자가 아래 성 식스토스 1세와 성녀 바르바라의 기도하는 모습과 대비되어 있다는 것을 주목한다.

 

2)

낭만적 회화에서 두 번째 주제는 실체적 내밀성을 다룬다. 여기서 개인은 성스러운 존재가 아닌 세속적 존재이다. 그의 주관성 역시 무한한 내밀성을 지니고 있으나 그것은 종교적 내밀성처럼 사랑이나 자애, 경건성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 내밀성은 인간의 특정한 성격으로 나타난다. 이 성격은 긍정적인 성격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부정적인 성격도 있으니, 그것이 무한하다는 점에서는 종교적 내밀성에 못지 않는다. 르네상스 화가는 종교화에도 뛰어나지만 이런 실체적 내밀성을 표현하는 데도 탁월하다. 헤겔은 그 대표적 예로 무리요의 ‘거지 소년’을 들고 있다.

이런 내밀함은 군중의 혁명적 열정이나 전쟁이나 학살로 받는 고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곧 들라크루아의 작품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일 것이다.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이라든가, 고야가 그려낸 전쟁의 참화도 그와 마찬가지다.

회화의 경우 실체적 내밀성은 개인적 주관보다는 오히려 자연이나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도 출현하니 “격랑을 일으키는 무한한 위력을 지닌 바다의 고요한 그 깊이”라든가 “폭풍우가 몰아쳐 울부짖고 솟구치면서 거품을 내며 부서지는 파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헤겔이 묘사한 것과 가장 닮은 화가라면 폭풍우 치는 바다를 자주 그린 윌리엄 터너가 아닐까?

알프스를 넘어가는 한니발의 군대, 자연 앞에서의 숭고함, 헤겔은 이를 실체적 내밀성이라 이름붙였다

3)

낭만주의 회화의 세 번째 주제는 현실의 긍정적 모습이다. 즉 “전적으로 우연적일 뿐만 아니라 저급하고 천박한 것으로도 보일 수 있는 인간의 삶의 장면들”이다. 예를 들어 아무리 사악한 포주라도, 또는 단순히 식탁을 장식하는 꽃병이라도 이제 관심의 대상이 된다.

과거에는 이런 주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주제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그러나 낭만주의 시대 끝에 특히 근대 부르주아 질서가 형성되는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와서 이런 우연적이며 천박한 것에 대한 관심이 지배적으로 된다.

흔히 이런 예술은 사실주의로 간주되며, 여기서 구체적 현실을 얼마나 잘 모방할 수 있는가가 예술평가의 기준으로 된다. 하지만 헤겔은 이런 우연적이고 천박한 것에 대한 관심은 현실을 모방하려는 욕구 때문에 나온 것이라 보지 않는다. 이런 관심은 이 시대 정신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즉 이 시대 정신은 가장 구체적인 것 속에 가장 일반적인 정신이 존재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것 자체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초월해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예술은 구체적인 것을, 그것이 아무리 무의미하고 천박하더라도 더욱 구체적으로 파악하려 했으니, 사실 그것은 그것을 넘어 존재하는 초월적 정신에 대한 관심인 것이다. 마치 근대 자연과학자가 자연 속에서 신의 흔적을 찾기 위해 자연을 연구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예술작품이 이른바 자연성과 자연의 기만적 모방이라는 관점에서 경탄될 만하다고 부추겨지더라도 이를 통해 [진정한] 향유가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부추김은 본래적 핵심을 호도하는 는 기만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 경우 모방의 경탄은 자연작품과 예술작품의 외적 비교에서 귀결할 뿐이며 … 여기서 … 본연의 내용과 예술적 요소는 표현된 사태가 사태 자체와 일치하는가 즉 실재에 영혼이 깃든 것인가 때문이다.”[6]

 

4)

우연적이고 무가치한 현실 속에서 영적 생기를 발견하려는 시도로 헤겔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것은 독일과 네델란드 풍속화이다. 우선 이런 풍속화가 다루는 대상을 보자. 네델란드 풍속화는 “자연의 대상들과 자잘한 현상들, 가정생활의 품위, 평온함과 안빈낙도, 국경일의 행사, 축제와 행렬, 농부의 춤, 놀이공원에서의 재미, 흥청거림에서 얻는 기쁨” 등을 소재로 삼는다. 헤겔은 이런 작품이 단순히 세속적인 것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세속적인 것 속에서 구체적으로 경건하며, 그 부에 오만함이 없이 만족하며, 가정과 주위에 대해 담백하고 기품 있고 순수하게 머물며, 그들의 모든 상태들을 철저히 염려하고 즐기는 가운데 독립성 및 진취적 자유로써 자신을 지킨다”[7]

 

한마디로 말해서 세속적 삶 속에 정신의 생동성이 살아 있다는 것인데, 이 정신적 생동성은 바로 종교 혁명과 해방, 그리고 세계 무역, 바다의 간척 속에서 활동했던 네델란드인의 올바른 대담성과 끈기, 충직하고 평온하고 인정 있는 시민성을 표현한다고 한다.

이런 순간적 현실로 들어갈수록 단순히 공간적 형태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는 없다. 이런 순간적 현실은 색채의 마법을 통해서 표현될 수 있으니 헤겔은 네델란드 풍속화가 보여주는 이런 기법에 대해 주목한다.

 

“이 회화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최대한의 예술적 진리로 발전시킨 것은 한편으로는 ..선술집의 광경들, 결혼식 및 기타 농부들의 잔치…등에서 표현된 빛, 조명, 그리고 채색 일반의 마법 및 색채 마술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철저히 생동적인 성격의 특성화이다.”[8]

 

여기서 다시 헤겔은 색채의 마법을 강조하는데, 이는 앞에서 회화의 질료적 특성을 설명하면서 제시했던 바로 그 색채의 음악과 색채의 마법이다.

 

5)

헤겔은 색채의 마법과 음악을 통해 구체적 형상을 창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색채의 마법은 단순히 색채원근법을 통해 입체적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만은 아니다. 색채의 음악은 동시에 감정을 생산하니, 이를 통해 회화의 특칭적 주관성의 원리를 실현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헤겔이 칸딘스키가 주장했던 것처럼 회화가 형상의 창조를 넘어서서, 색채 자체의 음악으로 나간다고 보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색채가 색채의 음악으로 발전하면서 이제 회화 장르를 넘어서는 음악 장르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1] 헤겔이 자주 사용하는 내밀성[innigkeit]라는 말의 의미를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내면성 또는 심정성을 의미하면서도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곧 자기 내 복귀라는 운동성을 의미하며, 따라서 항상 무한성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무한성은 한없이 크거나 작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 내볼 복귀하여, 자기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며, 따라서 규정성을 결여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칸트적으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숭고성 가운데 특히 역학적 숭고성에 해당한다.

[2] 미학강의 3권, 53쪽

[3] 미학강의 3권, 47쪽

[4] 미학강의 3권, 48쪽

[5] 미학강의 3권, 49쪽

[6] 미학강의 3권, 69쪽

[7] 미학강의 3권, 135쪽

[8] 미학강의 3권, 136쪽

헤겔미학산책41-회화에서 구성의 문제[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41-회화에서 구성의 문제

 

1) 회화

회화의 질료는 색채다. 헤겔은 회화의 질료 자체가 이미 가상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즉 빛은 요소로 분화되면서 색채로 되고, 그 색채의 상호 관계를 통해, 대립과 조화를 통해 대상을 표현한다.  색채는 이런 관계 속에서 의미를 지니므로,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며, 자기 부정성을 지닌 가상적인 것이다.

질료의 특성상 회화는 특칭적 주관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평면적 형상은 특정한 주관적 시점에서 선택된 것일 수밖에 없고 색채의 대비 역시 주관적 심정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회화는 특칭적 주관성의 눈에 보이는 현실 즉 구체적 현실을 그려낼 뿐이다.

그 때문에 회화는 일반적 정신을 형상화하는 데서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고대나 고전 시대에도 회화가 있었지만 이 시대 주된 관심의 대상인 신과 영웅 자신은 항상 조각을 통해 자신을 드러냈으니, 조각은 장르의 특성상 일반적 정신을 표현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회화가 만일 신과 영웅을 표현하게 된다면, 그것을 특칭적 주관으로 만들어 인간화해 버리고 마니, 이 시대 회화라는 장르는 기피될 수밖에 없었다.

이 시대에도 회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집트 무덤 벽화나 그리스 도자기 회화가 다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시대 구체적 현실에 대한 관심은 부차적일 수밖에 없었으니 이를 표현하는 무덤 벽화나 도자기 그림은 다만 장식적인 의미를 지닐 뿐이었다.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다시 구체적 현실에 대한 관심이 출현했다. 자기를 부정하고, 이행하고야 마는 그야말로 우연하고 허망한 현실이 이 시대에는 오히려 진정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왜냐하면 마치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듯이 이런 우연성과 허망함 속에 진정으로 실체적 정신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 회화는 그 표현 가능성이 돋보이게 되면서 건축과 조각을 대신하여 주도적인 예술로 등장하게 된다.

 

2)

낭만주의 예술은 구체적 현실 즉 우연하고 허망한 현실을 그 자체로서 만족스러운 현실로 다루는 것은 아니다. 낭만주의 예술은 구체적 현실을 통해 그 시대 정신을 드러내려 한다. 구체적 현실은 자기를 부정하는 운동 가운데서 일반적 정신으로 복귀한다.

헤겔은 이런 자기 부정하는 운동 속에 있는 현실을 가상이라 규정했다. 구체적 현실에서 나타나는 이런 자기 부정의 운동성이 곧 ‘영적 생기[geistige Beseelung]’다. 이런 가상성은 개인의 주관적 모습 속에서는 그 속에 담긴 내밀한[innig] 심정으로 드러난다.

 

“회화는 색채들의 특수화를 통한 형상화, 평면으로의 확장이라는 감각적 요소 속에서 움직이며, 이를 통해 눈에 보이는 대상성의 형식은 정신에 의해 정립된 예술적 가상[schein]으로 변화하며, 회화에서는 이 가상이 실제의 형상 자체를 대신한다.”[1]

 

[외물의 현실적 현존재] “더 이상 그 자체로서 궁극적 타당성을 간직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이 실재성 속에서 정녕 자체가 내적 정신이 단순하게 빛나는 가상[Scheinen]으로 격하되어야 한다.”[2]

 

조각에서의 고전적인 이상화에서와 달리 회화에서 외적 형상은 자연적 명랑성, 지복, 자족성을 지니지 않으며, 오히려 외적 형상은 “분열 속에서 자기를 유지하고 그로부터 벗어나 자기 안으로 회귀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명랑성, 지복, 자족성은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것이어야 하며, “전체가 정신의 내면성으로 전이되어야 한다.”[3]

 

3)

그러나 회화에서 가상성을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는 문제이다. 회화는 색채를 통해 만들어진 평면적 형상을 중심으로 전개한다. 그것이 지닌 색채의 음악과 색채의 마법은 어디까지나 공간적 평면 위에 펼쳐진 것이다. 평면적 형상은 일단 외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비록 그 형상이 질료의 측면에서 보면 조각에서처럼 공간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아니고 평면 위에 그려진 가상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마치 외적인 사물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회화에서 표현된 그 모습을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간주한다.

그 모습이 부정적인 모습 즉 고통 당하고 죽어가는 모습으로 나타날 경우, 이는 단순한 고통과 죽음으로만 여겨질 뿐, 이를 통해 자기 내로 복귀하는 모습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거꾸로 긍정적인 모습, 아름답고 즐거운 모습으로 나타날 경우 그 역시 단순한 아름다움과 즐거움으로만 여겨지며 이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정신적인 아름다움이며 즐거움이라는 사실은 간과된다.

장르의 특성상 외적인 형상을 자립성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 회화 그 자체는 외적 형상을 넘어설 수 없다. 회화는 시문학처럼 어떤 형상이 그런 자기를 부정해 나가는 운동 자체를 표현할 수는 없다. 그것이 하나의 자기 부정적인 가상이라는 사실은 단순히 평면적 형상을 통해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회화는 구체적 현실의 가상성, 자기 부정의 운동, 영적 생기, 내밀한 심정을 그려낼 수 있을까?

우선, 관람객이 눈으로 또는 마음으로 외적 형상을 읽으면서 그 운동을 따라갈 때 비로서 음악과 마법이 출현한다. 이런 마음의 운동이 없다면 회화에서 영적 생기가 출현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마음의 운동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 그런 운동을 암시하는 요소가 평면적 형상 속에서 제시되어야 한다.

여기서 회화의 다양한 특수한 기법이 출현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한 화면 속에 다양한 군상을 통해 또는 삼면화나 벽화 등 연속된 그림 통해 가능한 한 이런 운동을 표현하는 것이다. 회화에서 이런 경향 때문에 회화의 구성의 문제가 등장한다.

 

4)

헤겔은 회화를 다루면서 색채라는 질료가 드러내는 가상의 측면 못지 않게 회화 속에 다양한 대상들 사이의 상황과 행위, 모티브 그리고 인물의 구성에 주목한다.

조각은 이상적인 모습을 가지고 고요하게 머무르며, 아무런 배경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왜냐하면 조각은 이념이 자기를 구현한 것이어서 자립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조각도 점차 생동적으로 되면서 상황과 운동 속에서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그리고 다른 조각상과 함께 집단적인 군상을 이루거나 연속적인 부조로 발전한다.

회화의 경우 이런 측면을 더욱 발전시킨다. 우선 회화는 구체적 현실 속의 특수한 인격, 구체적 상황, 특정한 행위를 통해서 ‘극적 생명성[dramatische Lebendigkeit]’을 표현할 수 있다. 회화 속의 인물은 특정한 개성을 지니고, 외적 상황과 생생한 관계 속에 있어야 하며, 특정한 동기를 지닌 구체적 행위로 자기를 표현한다. 이 행위는 곧 전체적인 극적 운동 가운데 가장 극적인 어떤 순간에 일어나는 행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외적 상황과 구체적 행위 속에 있는 특수한 인격은 불가피하게 여러 인물을 끌어들이니, 인물의 군상이 회화 속에 들어오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회화는 하나의 평면 공간 속에 시, 공간적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이 동시에 표현되며, 때로는 연속된 회화 장면(예를 들어 삼면화와 같이)을 통해 이 다양한 사건이 표현되기도 하니, 회화의 이런 기법은 조각에서 등장한 기법을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상황 속에서 다른 인물과 관계 속에서 어떤 인물의 행위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독특한 구성이 필요하게 된다. 여기서 근본적인 것은 정신의 운동을 공간적 구성 속에 표현하는 것이다. 그 구성은 지상에서 천상으로 상승하기도 하고, 혼란 속에서 결정적 행위를 하는 인물로 집중되기도 한다.

 

“조각적 구상방식을 이렇듯 포기하고 고요하고 부동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생생한 인간적 표현과 특성적 개성을 이렇듯 추구하고 각 내용을 주관적 특수성과 그 다채로운 외면성 속으로 이렇듯 투입하는 가운데 회화의 발전이 이루어진다.”[4]

 

헤겔은 회화에서 이런 공간적 구성이 단순히 공간적 형태의 구성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 구성은 동시에 색채의 대비, 조화를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 “회화의 생명성의 화룡첨정은 오직 색채를 통해서만 표현 가능”[5]하기 때문이다.

 

“회화는 색조들 및 서로를 비추고 서로 유희하는 그 조화와 대비의 단순한 향기와 마법 속에서 완전히 음악으로 건너가기 시작한다.”[6]

 

5)

회화는 정신의 운동을 색채로 만들어지는 공간적 형상으로 보여주는 것이므로, 아직 음악이나 문학과 같이 운동을 시간 속에서 생성하는 측면에서 파악하지는 못한다.

이런 한계 때문에 회화는 운동을 표현하는 시문학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헤겔은 이런 시도를 뒤셀도르프 화가의 시화전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이런 시화는 당대의 시인의 시를 회화로 그려냈는데 헤겔에 따르면 유감스럽게도 이런 시도는 장르의 특성을 제대로 알지 못함으로써 혼란만 자아냈다고 한다.

시문학은 언어적 표상을 질료로 하면서 사태를 시간적인 계기를 통해 서술해 나간다. 반면 회화는 색채를 질료로 하여 공간적 형상을 공존적으로 가시화한다. 회화는 평면의 공간을 떠날 수 없다. 그러므로 회화는 시간적 계기 가운데 어떤 극적인 장면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과거나 미래는 동일한 평면 공간 속에 표현된 잔재나 암시를 통해 표현할 수밖에 없다. ,

그에 못지 않게 더 중요한 것은 시는 추상적 언어로,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며, 이런 감정이 전환하고 진행하며 고양하는 과정을 서술할 수 있다. 그러나 회화는 감정을 외적 형상을 통해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추상적으로는 신체의 자세나 얼굴의 표정을 통해서 표현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행위를 통해서, 즉 특정 상황에서 일어나는 열정적 행위를 통해서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열정은 색채의 대비를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뒤셀도르프 화가들은 시를 회화로 표현하려 했으니, 아주 단순한 장면을 선택했으며 감정을 주로 표정과 자세를 통해서 묘사하는 데 그쳤다. 대표적으로 헤겔은 샤도프의 미뇽을 예로 들고 있다.

헤겔은 이런 한계를 지적하는 가운데, 시를 회화로 표현하려면 공간 속에 과거와 미래의 상황을 보여주는 풍부한 감각적 형상이 필요하며, 심정은 색채의 마법을 통해 제시되는 행위의 열정을 통해서 표현하여야 하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성서의 이야기를 회화로 표현하려 했던 르네상스 화가의 노력을 더 높이 평가한다. 정신이 현실의 극적 생명성 속에 표현된 대표적 작품으로 헤겔은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용’이나 팔마 베키오의 그림 ‘야곱과 라헬’을 들고 있다.

하나의 그림 속에 여러 장면이 구성되어 있다.

6)

회화는 이처럼 특수한 주관성을 통해 이념을 표현하는 한, 그것이 내밀하게 표현되든 아니면 운동 속에서 표현되든, 회화 속에는 이미 작가 자신의 주관성이 포함되어 있다. 회화가 그려낸 특수한 주관성이 곧 작가 자신의 주관성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주관성은 곧 독자의 주관성을 의미하는 것이니, 회화 속에는 이미 작가뿐만 아니라 독자의 주관성이 전제되어 있다. 회화는 작품 속의 특수한 주관성을 통해 작가 자신의 주관성과 독자의 주관성 사이의 매개와 전달을 가능하게 한다.

이점은 회화를 다시 조각과 비교하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념이 자립적으로 출현한 조각의 경우 이 조각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작가 자신의 주관적 관점이 들어있지 않다. 따라서 조각은 무시간적 공간 속에 전시되며, 이 공간은 관객의 주관성 조차 배제된다. 그러므로 헤겔은 회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회화는 주관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이제 그 전체 표현방식을 보더라도 오직 주관을 위해, 감상자를 위해 현존할 뿐 독자적으로 그 자체로서는 현존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보여준다. 관조자는 말하자면 처음부터 작품에 같이 있으며, 함께 고려되고 있으므로 예술작품은 주관이라는 확고한 점에 대해서만 오로지 존재한다.”[7]


[1] 미학강의 3권, 27쪽

[2] 미학강의 3권, 27쪽

[3] 미학강의 3권, 45쪽

[4] 미학강의 3권, 92쪽

[5] 미학강의 3권, 92쪽

[6] 미학강의 3권, 93쪽

[7] 미학강의3, 32쪽

헤겔미학산책40-색채의 음악, 색채의 마법[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40-색채의 음악, 색채의 마법

 

1)

회화의 질료는 공간적 형태가 아니라, 색채이다. 헤겔은 빛이 어둠과 관계하여[즉 물체의 평면에 반사하면서] 색채가 출현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색채는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물체의 평면을 떠날 수 없다.

그 때문에 회화가 처음 시작했을 때, 색채보다는 공간적 형태가 중심적 위치를 차지했다. 조각이 삼차원적인 공간적 형상을 보여준다면, 회화의 경우 공간적 형태는 이차원 평면에 한정된다. 그런데 헤겔은 회화는 그 출발점인 평면화에서부터 동시에 특칭화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조각과 같은 입체적 형상은 관찰자와 상관없이 자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은 객관성을 지닐 수 있으므로, 정신의 이상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화적 형상은 사물의 공간적 단면을 이루는 외곽선을 본 따서 만들어지는데, 사물의 외곽선이란 관찰자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다. 사물은 입체적이므로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사물의 외곽선은 달라진다. 더구나 관찰은 단안 시각이 아니라 양안 시간이며 관찰자 역시 끊임없이 움직이는 중에 있으므로, 사물의 외곽선을 객관적으로 그려낸다는 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그 결과 주관은 자신의 관점에서 일정한 외곽선을 선택하게 되면서 회화는 이미 형상에서 주관성을 표현하게 되어 있다. 회화의 평면적 형태는 불가피하게 특수한 주관성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조각에서 작품은 그 자체에서 완결적이고 자립적이라면, 회화의 형상은 “내적으로 특칭화된 내면성”을 간직할 수밖에 없다.

 

“회화의 대상은 공간적 현존재의 면에서 정신적 내면의 가상으로 존재할 뿐이며 그런 까닭에 공간적으로 현전하는 현실적 실존의 독자성은 해체되고 또 조각작품의 경우보다 관조자와 훨씬 밀접하게 관계한다.”[1]

 

2)

고전적 예술의 관점에서 본다면 회화적 형태가 지닌 이런 주관성은 약점이자 한계가 될 것이다. 조각이 객관적인 형상을 드러냄으로써 정신적 이상을 표현한다면, 회화적 형상은 주관성을 항상 지칭하고 있으므로 그런 이상을 표현할 수 없었다.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오면서 예술이 이제 특칭적 주관성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되면서, 조각을 대신해서 회화가 예술의 주도적 장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회화는 특칭적 주관성을 드러내려는 시도를 더욱 본격화하기 시작했으니, 그것이 바로 르네쌍스 시대 등장한 원근법이다.

여기서 사물의 형상은 관찰자와의 거리에 따라서 크기가 조절된다. 가까운 것은 크게 먼 것은 작게 그려지면서 거꾸로 회화의 형상은 이제 그 자체로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부정성을 통해 관찰자를 지시하는 하나의 가상이 된다.

 

3)

회화의 공간적 형태가 원근법을 통해 관찰자의 주관성을 표현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관찰자 시점이 놓인 위치만을 드러낼 뿐, 비록 그것은 관찰자의 처지와 입장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것이라 하더라도 직접 그 자체로는 관찰자의 주관적 내면성을 드러낼 수 없다.

헤겔은 여기서 회화가 공간적 형상을 떠나서 색채의 마법을 발전시키는 동인이 있다고 한다. 낭만주의 시대에 이를수록 이제 중요한 것은 특칭적인 주관성이다. 이 특징적 주관성이 지닌 내밀한 심정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단순한 원근법적 공간적 형상만으로 불충분하다. 여기서 색채가 회화의 본질적 질료로 등장하게 된다.

색채는 빛이 분화된 것이다. 빛을 분화시키는 수단으로 다른 수단도 가능하지만 주로 물감(또는 벽화나 아상불라주 등에서는 물체 자체의 표면이 직접 이용되기도 한다)이 개입한다. 물감은 일정한 빛의 파장 외에는 반사하지 않으니, 이로부터 다양한 색채가 분화되고 화가는 이런 색채를 마음대로 조합할 수 있다. 공간적 평면 위에 색채들의 유희가 펼쳐지는데, 이런 색채의 유희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우선 공간적 원근법 대신 색채 원근법이 가능해진다. 밝은 색은 가까이 보이고 어두운 색은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헤겔은 회화에서 원근은 선 원근법 즉 추상적 원근법보다는 “상이한 색채를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고 즉 “빛과 그림자가 색을 지녀야 한다고”[2] 말한다. .

 

“빛은 이제 형상 거리 등과 같은 대상들의 차별성을 가상화함으로써.. 이 대상들이 인식되게끔 만든다.  왜냐하면 …명암 자체는 …가상화된 대상들과 우리 사이의 거리에 관계하기 때문이다.”[3]

 

4)

색채가 명도를 통해 원근법을 만들어내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니다. 색채는 서로 대비된다. 색채는 서로 충돌하고 서로 조화됨으로써 하나의 색채 음악을 만들어낸다. 헤겔은 르네상스 화가 다빈치 등이 시도한 스푸마토 효과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대상을 결여한 채 독자적으로 전개되는 색채의 유희가 등장하는데, 이 유희는 채색의 가장 극단적인 정점에까지 이르러, 색채가 서로 침투하고 빛[Schein]이 반조하니, 이 반조의 빛은 다른 가상 속으로 비추어 들어가면서 너무나 섬세하고 유동적이어서 영혼을 드러내며 음악의 영역으로 넘어 들어가기 시작한다.”[4]

색채의 음악

이 색채음악은 특칭적 주관이 지닌 감정을 촉발한다. “영혼적인 것은 회화가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비로소 생생하게 현상한다”[5]는 것이다. 헤겔은 색채가 전개하는 이런 마법을 여러 가지 예를 통해 소개한다.

 

“푸른색이 무저항의 어두움을 원칙으로 삼는 한, 그것은 비교적 온유한 것, 온당한 것, 비교적 고요한 것, 예민한 내면의 응시에 상응하며 반면에 밝음은 차라리 저항적인 것, 생산적인 석, 활기한 것, 명랑한 것이다. 녹색은 무차별적이고 중립적이다. 이러한 상징성에 따라서 예컨대 마리아는 대관을 한 하늘의 여왕으로 표상되는 곳에서는 종종 붉은 망토를, 반면 어머니로 나타나는 곳에서는 푸른 망토를 걸치고 있다.”[6]

 

네델란드 화가는 색채를 다루는 데서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다.

 

“색채의 마법으로 이루어진, 그리고 이러한 마법사적인 예술가 특유의 정신에 의해 영혼의 빛남이[Schein]이 이러한 관념성, 이러한 내적 교호, 반사와 색채 빛남[Schein] 사이의 이러한 왕래, 이행의 이러한 변화와 유동을 통해 명료함, 광휘, 깊이, 색채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조명과 함께 화폭 전체에 퍼진다.”[7]

 

회화의 본질에 대한 헤겔의 설명, 르네상스 스푸마토 기법에서 발견한 색채의 음악, 네델란트 작품에서 보이는 색채의 마법은 20세기 등장한 모더니즘 회화를 헤겔이 미리 선취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칸딘스키가 추상화를 전개하면서 음악의 기법을 회화에 도입하려 했던 시도를 헤겔은 이미 르네상스나 네델란드의 작품에서 발견한 것이다.

 

5)

회화는 세잔느 이후 공간적 형상이 아니라 색채로 그 본질적 질료로 삼았다. 20세기 등장한 다양한 모더니즘 유파 즉 입체화나 추상화, 아상블라주, 꼴라주, 드립핑 등이 등장할 때만 해도, 회화는 색채와 평면이라는 질료적 한계 안에서 움직였다.

오늘날 개념 미술에 이르면 아예 평면과 색채도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회화는 이제 문학적 표상을 질료로 삼는다. 많은 설치 미술의 경우, 회화는 조각을 닮아가며, 비디오 미술은 삼색화나 만화처럼 시각적 요소 속으로 언어나 운동이나 내러티브를 다시 도입하려 했다. 회화의 평면을 찌르거나 칼로 베면서 그 흔적을 남기거나 입체적 공간 속에 조명을 비추기도 한다.

이런 회화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통해 회화는 조각, 건축, 문학 장르로 넘어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여전히 색채와 평면이라는 질료적 특성을 떠나지 않는다. 회화 장르의 현대적 확장은 그런 점에서 장르의 경계선상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어떻게 본다면 그 모든 시도는 색채와 평면의 확장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헤겔이 회화의 본질적 질료는 색채이고 이 색채는 평면을 떠날 수 없다는 주장은 여전히 타당하다고 보겠다.


[1] 미학강의 3권, 32쪽

[2] 미학강의 3권, 78쪽

[3] 미학강의 3권, 36쪽

[4] 미학강의 3권, 86쪽

[5] 미학강의 3권, 75쪽

[6] 미학강의 3권, 79쪽

[7] 미학강의 3권, 86-87쪽

헤겔미학산책39-괴테의 색채론과 헤겔의 색채론[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39-괴테의 색채론과 헤겔의 색채론

 

1)

회화의 질료란 무엇인가? 공간적 평면인가 아니면 색채인가? 헤겔은 회화의 질료가 일단 공간의 평면화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본다. 이런 평면화로부터 예술은 조각에 이르기까지 지배적이었던 구체적 물체에 대한 종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헤겔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한 걸음 더 나가 색채로 넘어가면서 색채를 본질적 질료로 삼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회화가 사용하는 물리적 요소가 어떤 종류인지 묻는다면 대상성 일반을 보편적으로 가시화하는 빛이 그것이다.”

“더욱 추상관념적인 이러한 측면의 성질로 인해 빛은 회화의 물리적 원칙이 된다.“[1]

 

역사적으로 볼 때-예를 들어 알타미라 동굴 벽화 등에서 보듯이- 회화는 처음에 아마도 사물의 외적 형태 즉 평면적 형상을 따오는 방식으로 출발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평면 형상은 조각과 달리 실재 물질을 통해 표현되지 않았다. 그것은 벽면이라는 공간에 다만 외적인 형태만 닮은 선으로 표현되었다. 물론 이때에도 색채가 그 외적 형태를 채우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지만 색채는 아무래도 종속적이었다.

사물의 형태는 선이 아니라 색채로 만들어진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화가 세잔느는 평면적 외적 형태가 확고하게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심하면서, 사물의 형태를 새롭게 창조하려 했다. 그는 수없이 다양한 색채의 중첩을 통해 하나의 외적 형태를 창조해 냈다. 세잔느의 이런 시도를 통해 회화의 본질이 평면적 형태가 아니라 색채에 있다는 사실이 확립되었었다. 그 후 모더니즘은 아예 형태 자체를 제거한 추상화로 나가면서 색채를 회화의 본질적 질료로 삼았다.

색채가 본질이라는 생각이 세잔느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색채가 회화의 본질적 질료라는 헤겔의 생각은 얼마나 시대를 앞선 통찰이었는가? 놀랍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2)

헤겔은 왜 색채가 평면적 형태보다 더 본질적이라고 보았는가? 색채(즉 빛)가 회화의 본질적 질료더라도 회화가 공간적 평면 없이 가능할까? 헤겔 역시 회화의 출발점으로서 공간적 평면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므로, 그에게서 회화에서 색채와 공간적 평면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먼저 색채라는 개념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헤겔은 색채라는 개념에 괴테의 색채론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괴테의 색채에 대한 개념과 헤겔의 색채에 대한 개념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색채에 대해 괴테는 <색채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선 빛으로부터 노랑색이라는 색이 생겨나며, 또 다른 색은 암흑으로부터 생겨나는데, 그것은 파란색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된다.”[2]

 

우선 괴테가 빛뿐만 아니라 어둠도 나름대로 빛을 내는 광원이라고 본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물론 어둠이 내는 빛은 밝은 빛이 아닌 어둠이라는 빛이지만 그것도 역시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빛에서 색채가 나온다. 빛에서는 노랑색이 나오며, 어둠에서는 파란색이 나온다.

그러면 빛(빛과 어둠)으로부터 색채(노랑색과 파란색)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은 색채론 4장, 색채의 속성에 대한 일반적 견해에서 찾을 수 있다. 괴테는 프리즘 현상을 알았지만, 빛이 분화되면서 색채가 된다는 생각은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괴테는 빛이 색채로 변화하는 조건으로 굴절이나 반사라는 과정을 들고 있으며, 이런 과정이 흐린 매체를 통해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들고 있다. 즉 물체의 어떤 성질 즉 ‘흐림’이 빛이 색채로 나타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3].

여기서 매체의 ‘흐림’이란 어떤 의미일까? 괴테도 물체가 지닌 어떤 성질이 빛에 일정한 영향을 주면서 빛이 색채로 나타난다고 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괴테는 자신의 짐작을 확대하여 물체의 압력, 회전, 열기, 입김 그리고 물체의 움직임과 변화, 물체의 구성성분조차 색채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4]

괴테는 일단 빛이 색채로 변화하면, 색채는 서로 대립된 것의 상호 작용을 통해 다양한 색채가 출현하는 것으로 본다. 빛에서 두 대립된 색채인 노란색과 파란색이 출현하면, 나머지 색채는 이 두 색채의 조합에 의해 출현한다. 이 두 색채의 작용이 중화되면 즉 “서로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면”, 녹색이 출현하며, 두 색채가 조화로우면 즉 “두 색채의 순도를 높이거나 짙게 하면” 빨강색이 나온다[5].

 

“만일 그것들이 아주 순수한 상태에서 혼합되어 서로 완벽하게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면, 제3의 색을 낳게 되는데, 우리는 그것을 녹색이라 이름 붙인다. 그러나 앞의 두 색은 순도를 높이거나 짙게 하면 그 각각의 색으로부터 새로운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말하자면 그것은 붉은 색을 띠게 된다.”

 

괴테는 색채 현상의 기본 원리로 세 가지 원리를 들었다. 양극성의 원리와, 상승의 원리, 총체성의 원리이다[6]. 이 세 가지 원리는 서로 대립하는 것 사이의 대립과 조화라는 관계라는 개념을 낳았다. 그의 색채론은 오늘날 보기에는 상당한 오류가 존재하지만, 철학적으로는 자연을 대립물의 통일을 통해서 설명하면서 뉴톤적인 기계론적 세계관에 대립하는 새로운 세계관을 발전시켰다. 헤겔의 변증법도 괴테의 색채론의 영향권 아래 놓여질 수 있을 것이다.

 

4)

이제 헤겔의 색채론으로 넘어가 보자. 헤겔에 따르면 빛은 “가볍고”, “저항이 없으며”, “자기와 순수하게 통일되어 있어서” “최초의 관념적 존재”이며 “최초의 자아” [7]이다. 헤겔은 그 특성을 탈자성[脫自;Aussersichsein]에 두었다.

 

“물질의 추상적 자아로서 빛은 절대적으로 가벼운 것이며 물질로서는 무한한 탈자적 존재이다. 그러나 순수한 현현이고 물질적 관념성인 한에서 불가분적인 단순한 탈자적 존재이다.”[8]

 

상당히 관념적 언어로 서술되어 있지만 이런 표현은 빛이 질량[무게]을 지닌 물체와 대립하는 것 오늘날로 말하자면 일종의 에너지라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빛은 물체적인 것을 넘어선 관념적인 것이다. 빛은 여전히 물질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므로 최초로 관념화된 것 즉 물질의 자아가 된다. 즉 관념화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아직 개인의 정신적 주관에 내재하는 관념은 아니라는 뜻이다.

 

“자연은 빛에서 처음 주관적으로 되기 시작하며 … 아직은 특칭성으로 나아간 것 개체성 및 점과 같은 내적 완결성으로 수렴된 것이 아니다.[9]

 

괴테와 비교해 볼 때 우선 헤겔은 괴테가 말한 어둠이라는 독자적 광원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명시작용을 하는 것은 오직 빛뿐이다.

그렇다면 색채는 어디서 나오는가? 색채는 빛의 명시작용 즉 가시화 작용으로부터 나온다.

 

“빛은 명시작용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명시작용은 여기 자연에서는 가시화됨 일반으로서만 나타날 뿐이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것의 특수한 내용을 자신의 외부에서 대상성으로 가진다. 이 대상성은 빛이 아닌 빛의 타자이며 이로써 어두움 속에 존재한다.”[10]

 

“어두운 것은 빛과 상이하면서 독자적으로 존립하는 한, 빛은 다만 이 일단 불가침투적인 것의 표면에 관계한다. 그와 같은 표면은 빛이 관계하면서 현현하며, 마찬가지로 불가분적으로 자기를 현현하면서 즉 타자에서 빛나게 된다.”[11]

 

빛은 자신의 타자 어둠과 만나서 색채를 만들어낸다. 언뜻 보면, 여기서 괴테도 헤겔도 어둠을 빛에 대립하는 독자적 광원으로 제시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헤겔이 말한 어둠이라는 광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한 어둠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빛을 어둡게 하는 것 즉 물체이다.

헤겔은 사물의 표면이 빛을 흡수한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는 몰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물의 표면이 빛에 대해 어떤 작용을 한다고 보았고, 그것을 어둡게 하는 작용이라 보았던 것이다. 빛이 이렇게 물체에 의해 어둡게 되면서, 색채가 나온다. 그러므로 빛의 명시작용은 “빛에 의해 드러나는 것의 특수한 내용[즉 색채]을 대상성으로서 갖는다.”[12]

헤겔은 색채를 빛과 물체의 관계를 통해 설명하려 했으므로, 괴테가 색채 사이에 설정한 양극성의 원리나 상승의 원리, 전체성의 원리를 거론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빛은 색채로 변화하면서 다양한 색채로 분화된다고 본다. 이처럼 색채가 분화되면서, 색채는 서로 결합될 수 있다.

 

5)

헤겔은 빛이라는 광원만 인정했으니 어둠이라는 광원을 독자적 설정한 괴테에 비하면 현대 물리학에 좀 더 가깝다. 그가 역시 빛을 물질적인 것이지만 물체적인 것은 넘어선 것이라고 본 점도 장차 등장하는 빛 에너지 개념을 연상시킨다. 그럼에도 그는 빛 자체가 여러 파장의 빛으로 구성된다는 빛의 분화라는 사실을 이해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회화와 연관하여 중요한 것은 우선 헤겔에서 빛이 불투명한 물체의 표면에 관계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회화의 질료가 색채라고 하더라도 이 색채가 표면적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잘 설명해 준다. 마치 조각의 질료는 물질적, 형상이지만 그 형상은 그것과 대립하는 물질의 덩어리를 떠날 수 없듯이 회화 역시 색채가 그 질료이지만 이 질료는 평면이라는 공간을 떠날 수 없다. 그러나 마치 조각에서 공간이 형상의 이면일 뿐 그 자체가 질료가 아닌 것처럼, 회화에서 색채가 본질적 질료이며 공간적 평면은 이런 색채가 현존할 수 있는 조건에 불과하다.

또 하나 회화의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색채가 분화된다는 사실이다. 색채가 분화되면서, 그 자체가 가상화된다. 색채는 그 자체로서 어떤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직 상호 관계를 통해 어떤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런 상호 관계 속에서 어떤 색채는 다른 색채에 대해서 자기를 규정하면서 자기 부정적인 존재 즉 가상적 존재일 뿐이다. 색채가 지닌 이런 가상성은 회화가 색채의 마법, 색채의 음악을 통해 특칭적 주관성을 그려낼 수 있는 토대가 된다.


[1] 미학강의 3권, 35, 36쪽

[2] 괴테, 색채론, 장희창 역, 민음사, 2003, 43쪽

[3] 괴테는 구체적으로 밝은 빛이 불투명한 대기 속에서는 노랑색으로 보이며, 어둠은 불투명한 대기 속에서 파란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색채론, 앞의 책, 88쪽 §150 참조

[4] 이 부분에 관해서는 색채론, 앞의 책, 226쪽 §691 참조. 괴테는 오늘날 누구나 알고 있듯이 매체가 빛의 일부를 흡수하거나(반사) 속도에 영향을 주면서(굴절) 색을 나타나게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면서도 매체가 지닌 물체의 성격이 빛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고 빛의 색으로의 변화는 일종의 변용으로 보았다.

[5] 그렇다면 청색에서 황색에 이르기까지 중간 색은 두 색의 혼합 비율에 따라 서로 달라지며, 노랑색에서 파란색에 이르는 다른 색은 순도를 조절하면 나오게 될 것이다. 괴테는 색채의 현상을 생리색(지각적인 색)이나 물리색(반사나 굴절에 의한 색), 화학색(물체 자체의 가열에서 생기는 색) 등으로 구분했다. 빛에서 색이 나오는 과정은 주로 물리색에서 다루어진다.

[6] 양극성의 원리란 색채에 노랑색과 파란색이라는 두 가지 대립된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상승의 원리는 노랑색과 파란색이 더욱 짙어지면서 둘 다 빨강색을 향해 상승한다는 뜻이다. 총체성의 원리는 어떤 색의 지각은 그것과 대립되는 색의 지각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빨강색의 지각은 그에 대립하는 녹색을 동시에 지각하게 만든다.

[7] 미학강의 3권, 36쪽

[8] 헤겔, 철학강요, §276

[9] 미학강의 3권, 36쪽

[10] 미학강의 3권, 36쪽

[11] 헤겔, 철학강요, §277

[12] 미학강의 3권, 36쪽

인민이 최종심급 [천 하룻밤 이야기]

총선: 인민이 최종심급

..2024 03 20. – 춘분(春分): 올해 윤년이라 춘분이 3월 20일이다.

 

들뢰즈/가타리가 보는 역사적 흐름은 사뭇 다르다. 들뢰즈 이야기하기 이전에, 서양에서 역사를 이야기한 이들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도 있었지만 이들은 역사의 긴 과정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당대와 연관에서 교훈 또는 의미를 찾고자 했었다. 그리고 서양의 사상사에 아직도 난점으로 남아있는 크리스토스(메시아)란 용어의 유입은 사유의 역사를 뒤집어 놓았다. 인간의 사유가 유한하다는 것은 어떤 현자나 지식인들도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영원의 역사는 예언자(점쟁이)의 것으로 여겼다. 45억 년의 역사를 지닌 지구가 45억 년 이후에도 영원할 거라는 말은 불경스러운가? 그래서, 백성을 자기들이 가르쳐 놓고는 백성의 편을 든다는 명목으로, 멍청하게도 성직자들은 역사가 신의 뜻에 있다고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으로 착각했다.

역사가 자연의 흐름과 같은 방향에서 전개된다고 여기는 것은 드물게 생각되기도 했지만, 신화를 배격하면서 또는 어린이 교육과 같은 훈육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있어왔다. 상식을 벗어나 양식으로, 양식의 한 길과 다른 길이 있다는 다음 측정의 길도 제시되었다. 자연의 이법(la raison)과 흐름에 신의 통일성과 영원성과는 다른 길이 있다고 여긴 것은 오래되었지만, 과학과 실험을 통해 증거를 제시한 것은 “빛의 세기(les lumières 18세기)” 이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파라노이아에 갇힌 완고한 성직자는 – 세계는 6천4백 년 전에 신이 창조했다고 믿지는 않더라도 – 자기의 이익과 지위를 위해 신도들에게 온갖 등록된 문자의 이야기를 끌어다가 증거하면서 설교하고 있다. 신천지도 그렇고 전광훈은 또 어떤가?

자연의 이법조차 신의 의지인 것으로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버린 그 종교의 성직자들의 완고함 때문에, 과거의 현자들도 상식(오관을 통한 인식)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고 한 곳에서 오래 살아온 농민에게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이런 경우에 떠돌이 현자(유목인)는 무엇을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나마 알아 들을 수 있는 사대부들과 논쟁한들, 그 사대부 또는 지배층은 백성이 믿는 대로 따라야지 하면서 물러서지 않았고, 지배와 사적 이익 유지에 골몰한다. 그런 가운데 몇몇 현자들과 지자들은 변증법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야기했지만 19세기 중반의 생물학과 열역학 이전에는 선방에서 선문답을 하듯이, 그저 유머나 풍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변모한다. 변화하고 움직인다는 것에서 출발하는 사유는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혁명적으로 솟아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서양사상사를 생각해보면, 하늘이 열리고(부르노의 무한), 또한 바다의 길이 열리면서(갈릴레이의 동시성과 진자), 가장 흥미로운 대상은 “빛”이었다. 빛이라는 광원은 경험적으로 분명히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면서 멀어지면 어두워지는데, 어째서 태양에서 오는 빛은 지구 전체에 평행으로 올까? 그리고 거리와 관계없이 동일한(동등한) 방식으로 비출까? 신의 의지가 보편이고 전지전능이라고 하면서 빛도 신의 것이라고 하고 싶겠지만, 이미 자연의 이법은 신과 별개라는 것이 알려졌다. 그 신은 실재로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겁주기 위한 수사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진실로 빛은 생명을 살리는 원인에 속한다. 왜냐하면 빛이 없으면 식물도 죽고, 동물도 병들다가 간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빛이 만물의 근원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빛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누구의 신앙의 주장으로 자기의 것(전유)으로 전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인에게 평등하게 모든 지역에 골고루 비춘다(물론 북극과 적도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이 수학적 증명이 아니라 증거에서 밝혀야 한다는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 이래로 널리 알려졌다. 신의 존재가 아니라 현존은, 수학적 증명이 아니라 경험적 증거여야 한다. 그 증거의 가장 큰 난점이 성령의 육신화였다(부활이니, 재림은 육신화가 가능해야 나올 수 있다). 어떻게 증거할 것인가? 기적과 은총으로, 그런 사례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럴 때 현자가 그러면 너가 한번 해보라고 한다.

마치 화두를 지닌 선승이 선문답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해보라고 하듯이, 그리스 철학에서, ‘그래 여기 지금 뛰어보라’고 하듯이, ‘다음 섬에 가는지를 보자’ 이런 이야기에 대해 현실과 세상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움직이는 과정이 필요한데도, 과정을 제거하고 처음과 끝이 연결되어 하나라고 하는 것은 여섯 살 꼬마에게 달나라의 토끼와 계수나무를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현자가 기적과 은총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그 기적과 은총을 한번 맛본 자가 경험적으로 다시 구현하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는 것, 죽어서 기적처럼 살았다는 것을 긍정하는 현자가 성직자에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보라고 하면 아무도 실행할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그 성직자의 증거는 본인의 증거인지는 몰라도 세상사의 증거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예를 들어 당나라 6조 선사 혜능 주변과 그 이후로도 너무나 많다. 서양에서도 보나벤투라와 아퀴나스의 변증법적 논쟁과 중국 선종들의 그 많은 논쟁들과 맞대응 시켜서 생각해보시라. 우리 시대에 공부가 적어서 그렇다고 해야하지 않겠는가? 박홍규(1919~1994) 선생의 말씀처럼 이 나라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은 학자들이 공부를 제대로 안 해서 그렇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의 난점은 유한하다는 것이다. 이를 핑계 삼아 자기를 제외하고 그 약점을 꼬집는 이들이 황제와 그 주구들이다. 이미 12세기에 생긴 대학에서 교수들은, 이런 등록된 문자를 근거로 하는 학설들이 자연이 지구상에 새겨 놓은 이야기에 비하면 하찮은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미니크파에 반대하는 프란체스코파의 수도사들(불교의 이판 선사들 비슷한데)은 학설이 문자와 그 철학자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경험에 근거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인간이 스스로 역사를 만들면서 과정을 거쳐온다고 생각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인간은 여전히 신의 역사 속에 있었다.

표면의 밑에서는 자연의 이법과 인간의 인식이 같은 방향으로 간다고 감지하고 있으나, 만약 발설하면, 마남 사냥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수도사들은 그들 속에서만 문헌에서 문헌으로 연구를 하였다. 이쯤에 ‘역사’는 신의 역사든, 신화의 역사든, 문자로 등록된 서사의 역사 등과는 다른 기나긴 역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깊이 과거로 들어갈 수 있는 역량이 없기도 했지만, 감히 신의 역사를 벗어나 자연의 역사를 말하는 것은 브루노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겁을 먹고 있었다. 18세기 빛의 시기에, 대학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여러 가지 자연의 이법을 생각하고 기록한다. 백과전서파들이 대학교수가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장소에 따라 다른 생각을 한다. 즉 같은 해에 태어난 린네와 뷔퐁은 과거에 벗어나서 자연의 모습을 달리 기록했다. 린네는 오랜 관습대로 형상(꽃모양과 열매)을 중요시 했고, 뷔퐁은 생명체가 자라는 과정을 중요시 했다. 이는 자연을 서술하는 다른 방식이었다. 자연은 어쩌면 빛처럼 여러 갈래로 생명체와 삶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는지, 그러나 쥐시외에서 뷔퐁으로 이어지는 자연에서 생명의 생성과 형성 과정의 이야기도 신의 말씀(명령)에 어긋나면 표면 밑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19세기의 생물학과 진화론이 표면 위 자리를 차지하기를 기다려야 했다. – 생물학의 역사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도 지구도 자연 속에 등록된 기나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지층이든 유전자든. 어느 성직자가 인류 역사 6,400년이라고 기록된(문자로 등기 된 경전) 것으로 증거 했다고 한들 –

서구에서는 지구가 둥글다고 바다로 나간 자들이 중국의 문화를 알면서 놀랐다고 한다. 공자라는 인물이 있다는 기록을 보고서 놀라, 독일의 볼프나 이탈리아의 비코는 달리 사유를 했다. 신이 없는 지역에서 신을 믿는 유럽보다 더 나은 도덕성을 보았던 것이다. 유럽은 같은 크리스토스를 믿는데도 엄청난 전쟁과 혼란을 겪는데 비해, 중국은 신 없이도 매우 높은 도덕과 제도를 만들고 살아간다는 데 충격을 입었다고 한다. 비코가 물론 크리스트교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흘러간 역사의 큰 줄기들이 있다고 달리 생각했다. 신들의 시대, 영웅들의 시대, 인간들의 시대, 즉 신정체, 귀족정체, 인간적 정부가 있다고 생각했다. 후대의 사학자들 중에서 미슐레 같은 사학자는 비코(Vico, 1668-1744)를 역사학의 창시자로 꼽는다. 비코의 활동 시기도 자연의 이법(la raison)인 빛의 시기였다. 그리고 이런 사유의 확장은 프랑스 사회학의 창시자인 꽁트(Comte, 1798-1857)에게도 나타난다. 그는 인간의 진보에서 있어서 우선 신학적 단계에서 형이상학적 단계를 거쳐서 실증적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이런 진보의 사유는 신의 명령(계율)과는 다른 시대에서 달리 사유하기에 여기에 들어섰음을 알린 것이다. 이 계보에는 맑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시대에,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며 프랑스 사상가들은 인류가 스스로 평등과 자유를 실현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를 현실적으로 실천해 봤다. 이런 노력의 일부가 미시시피강 유역에서도, 소련의 콜호스, 이스라엘 초기의 기부츠에도 있었고 쿠바의 자생적 경제에도 있다. 농본 사회인 프랑스와 달리 산업사회의 산업가가 주도세력인 영국에서는 식민지 지배를 통하여 산업과 상업이 국가의 부와 인민의 안녕과 편리(유용성)를 가져다준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런 상층의 사고논리의 허구를 뚫어본 맑스는 과학적 공산사회를 주장하면서, 역사의 발전은 원시공산사회, 고대 황제(참주)제의 노예제, 중세 영주의 봉건제, 근대 산업사회의 부르주아 자본주의, 그리고 플롤레타리아(인민)가 산업도구를 지배하는 공산사회로 나갈 것으로 보았다.

이런 발전적 역사관은, 역사는 흐른다는 관점을 통해 어떤 진보의 과정을 겪는다는 것을 발설하고 정리해 나간 비코의 『새로운 과학』(1725)으로부터 우리 시대에 까지 겨우 300여 년이 지났다. 맑스로부터 150년 정도이다. 들뢰즈/가타리가 인간의 역사를 신석기 시대가 시작이라 치더라도 만년의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비해, 길게 잡아도 300여 년 사이에 인간의 역사에 대한 통시적 관점이 생겨났다. 서양사상사에서 달리 생각하기란, 어찌 되었건 문자의 등록, 청동기든 철기든 간에, 도구의 활용과 전유, 통치의 체제, 정치제도 등에서 온 것이다. 그렇다면 왜 들뢰즈/가타리인가? 바로 인류 삶의 과정은 자연의 입법(la raison)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들뢰즈/가타리는 흥미롭게도 만년 전부터 하나의 사물이 도구와 무기라는 양면성을 지녔다고 보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모든 생성체는 양면성(다양체)이상 일 것이다, 파라노이아가 아니라 스키조가 기원일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도구 사용이든 무기 사용이든, 자연(지구 위에서)에서 토지와 토지 위에 식물과 동물, 즉 재배와 사냥에 연관된 것을 먼저 다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인류에게서 도구/무기라는 과정은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었고, 그리고 도구/무기를 통한 생산력의 발달은 제도 또는 체제를 갖추어 집단을 형성하였을 것이고, 그리고 그 집단에 우두머리 또는 참주의 등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두머리든 참주(황제)든 어떻게 있어 온 것인지는 역사 이전에는 유적이 말할 것이나, 도구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철기문화가 인민들에까지 통용되기 전까지는 참주의 시대가 지배적이라고들 한다. 참주제에서도 인간이 토지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으며, 이런 감성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토지와 물(강)을 통한 생산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토지 생산에서 철기는 생산력을 높여주었고, 참주는 무기의 사용으로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참주에 맞는 제도를 만들었다. 들뢰즈는 참주가 – 아마도 무기 생산을 쥐고 있는 대장장이와 우두머리의 결탁이라 여긴다 – 갑자기 도래했다고 한다. 그 참주(황제)의 시대에 인민은 제도와 관습을 몸에 각인하고 살아야 했다. 문자가 지배적이 되면서 상층은 각인된 문자에 의해, 모르는 인민을 제도하고 명령하면서 터전에 묶어 두었다. 그러나 (움직이는 또는 욕망하는 존재자들인) 인민은 삶에서 토지의 능력과 배려(기후이지만)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제도로서 참주제는 성의 높이와 넓이로서 지배력을 강화하였고, 인민은 그 지배력의 바깥에서 삶과 활동을 이어갔다. 토지의 시대에서 참주는 자연의 변화와 인민의 흐름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단지 강압적으로 몰살하는 것을 규준(코드)으로 삼았다(얼마나 많은 참주가 도시를 불 싸지르고 멸망시켰던가?). 참주제가 세습을 한다고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참주제는 제도의 확장과 균형을 맞추어, 상부층(행정력)을 구성하는 군주제로 변환하게 될 것이라 한다. 그럼에도 이런 군주제에서, 18세기 절대 왕정에 이르기까지 또는 19세기 짜르(또는 영국의 빅토리아조,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에 이르기까지 전제정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토지의 지배력 때문일 것이다.

토지의 산물과 교환의 한계를 넘어서, 기술의 발전으로 산업의 생산물들은 노동력의 투여 이상의 것을 생산하였다. 이것을 잉여라고 부른다. 잉여생산을 소비하는 대상을 찾는 것이 식민지 개척이기도 하다. 19세기 유럽에서 산업사회의 100여 년은 인간의 이기심을 부추기며, 참주제의 변형으로 국가의 등장 시기이며, 국가의 군대를 통하여 식민지를 수탈하였던 것이다. 토지의 기나긴 시대를 지나, 군주제(참주제가 아니라)의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제도 시대로 전환하였다. 서양 사상가들 중 일부는 인간의 행복과 자유가 확장되는 것이라고 선전하였지만, 그것은 상층부의 상업과 수탈의 자유이며, 식민지 인민에 대한 억압이었다. 참주의 폭력과 달리 국가의 억압은 산업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교육과 의료, 군대와 감옥이라는 훈육제도를 체계화 하였다. 이로부터 인민에게 억제를 심었다. (니체는 긴 종교사의 분석에서, 참주시대의 원한을, 크리스트교의 지배력 강화를 위하여서는 신자들에게 원죄를 심었다. 전기의 억압에서 후기의 억제로 바꾸었다. 국가는 억압에서 억제로 바꿀 것이고, 억제에서 프로이트가 등장할 것이다).

서유럽은 이런 과정을 여러 세대를 거쳐서 조금씩 변화하였고, 두 차례 대전쟁 과정의 식민지 쟁탈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세계의 재패로서 “제국”을 형성한다. 달러라는 제국을. 양차 대전이 이후 질서의 재편에서 과거의 생산도구의 장악(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 금융의 지배(제국의 탈코드화)로 탈바꿈했던 것이다. 들뢰즈의 설명을 간단히 보면, 토지의 시대, 국가의 시대, 제국의 시대로 요약된다. 서양이야 이런 시대를 오랜 역사, 몇 세기, 몇 세대를 거치면서, 과정의 과거와 현재라는 단계들이 있는 편이지만, 우리나라는 묘하게도 토지의 시대에서 중국의 참주제와 연관 속에서 군주제를 유지하다가, 19세기 말에 갑자기 산업사회가 일제로부터 들이닥쳤다. 마치 토지 제도 위에 참주가 침입하듯이, 제국주의가 지배하였다. 이런 역사적 비극이, 특히 남녘의 120년 굴곡의 역사 속에 있다. 일제 참주제의 식민지 총독이 나가고, 미국이란 제국이 들이닥쳤다. 인민이 스스로 흐르는 과정 안에서 세대를 거쳐서 삶의 터전을 각인하고 제도로서 등록하기도 이전에, 참주와 같은 식민지를 지배하는 군대가 상부에 자리를 차지하고 명령과 억압을 한 것이다. 인민이 일제의 각인에서 제도 방식을 우리 입말로 등록할 수 없었지만, 이 다음에 우리 입말을 세우기도 전에 상층에서 영어가 지배하고 명령하는 제도가 들어선 것이다. 해방과 더불어 인민이 스스로 등록할 방법을 찾기도 전에, 미군정은 일제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의 입말과 등록을 허용해 주는 척하면서, 그들의 영어 규준과 코드에 맞게 정리하고 적용하게 만들었고, 자본의 전유처럼 사고에서도 전유하게 되었다. 즉 우리 입말은 영어의 하부로서 토지에 사는 인민의 보조물일 뿐이었고, 요상하게도 외래 종교의 경전이 이런 지배방식의 중심을 이루었다.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보다 더 많이 교회를 세웠다.

들뢰즈가 말한다. 참주는 하나(지배방식)가 오고 그리고 갑자기 모든 분야에서 참주파들이 들어와서 장악한다고 하였는데, 아마도 골짜기에도 교회가 생기는 것으로 보아 우후죽순 생겨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제국은 보다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토지체에서 산업화로 전향시켰는데, 산업화의 방식이 일제의 잔재와 같은 방식일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참주는 일제 제국주의 시대에 인민을 전쟁물자 생산의 도구에서, 미제 제국의 산업화의 도구로 전환시켰다. 토지의 인구를 산업화의 도시로 몰아가면서 제국의 식민체제는 제도상으로 확장되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관점이 있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저 곤륜산맥에서 환시대로부터 단군세기라는 고조선의 시대는 토지의 시대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 좋은 토지를 찾아 온 종족들은 동쪽의 땅이 살만하다는 것을 느꼈으리라. 적어도 삼국의 시대에는 철기를 잘 다루는 쪽이 우월한 지위를 차지했을 것이고, 산맥들로 분리되어 있는 토지에서 황제제가 아니라 서양의 영주들과 군주제에 맞닿아 있는 고려시대의 군주제에서, 유학의 제도와 상층의 사대부 무리들이 형성되면서 조선시대의 군주제를 이끌어 나갔을 것이다. 이런 군주제는 토지를 토대로 하였기에 인민의 소중함도 그나마 느꼈을 것인데, 말기에 상층의 주도세력(majeur)이 인민의 흐름에서 벗어나 일제에 협력하거나 또는 그들에게 부역하기에 이르면서, 우리 스스로 근대화와 부르주아 형성의 길을 놓쳤다고들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라 한다. 그래도 상층의 일부와 인민들도 일제에 부역하지 않아서 입말과 삶의 등록방식이 그나마도 남아있었고 해방되었다.

미제에 부역하는 자들이 입말을 영어로 바꾸기 위해 우리 입말을 살려두는 척하면서 제도를 제국의 하부제도로 변형하였다. 일제와 미제의 방식을 우리 스스로 수용하거나 또는 우리 방식으로 변형할 시간과 노력을 갖기도 전에, 이미 일제에서 익숙했던 상층의 부역자들이 미제로 사고방식으로 갈아탔다. 이 갈아타기는 기독교를 이용했다. 영어란 곧 크리스트교 경전의 영어가 언어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우리말도 그 번역어가 주인이 되었다. 지식인들은 우리식(?)으로 진리와 학문의 발전을 위한다고 일본에서 서양으로 갈아탔지만, 자기 터전 없는 지식은 독일식에서 미국식으로 바꾸었다고들 한다. 그런데 미국은 독일지식인을 수용하여 만든 도구주의 입장을 미국의 것이라고 여기지만, 독일식에다가 영국 공리주의를 보탠 미국식 철학을 만들었다. 이런 것을 우리에게 강요한 것이다. 서울대가 렘프레이트의 “철학사”를 번역한 것도 같은 일방향(bon sens, 양식)이다. 이런 제국으로서 미국은 로마제국의 식민지 지배방식을 그대로 따라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제3세계를 지배하려 하였다. 일제와 미제를 벗어나는 길은 없는가?

우리는 자연의 이법 속에서, 그리고 우리 역사 속에서 “뭣”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환과 단의 나라, 고조선의 이야기기를 지층을 통하여 창안하고, 불교 천 년과 유교 오백 년의 이야기도 우리 토지 위에서 이루어진 것을 이어가면서, 새로이 전개되었던 20세기의 근대화를 넘어서 21세기 규소의 시대에 맞는 입말과 문화, 여러 학문들을 흥미진진하게 혼성(조성, la composition))해야 할 것이다. 그 노력의 과정에서 행복도 찾을 것이고,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훌륭한 인물들과 호걸과 군자들도 만날 수 있으며, 현자와 선인도 배출할 수 있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 것이다. 그런 시기가 도래했다. 과거의 한문으로 된 우리 이야기를 더 많이 번역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새로운 이야기를 또 생산하고 창조하여, 흐름들을 연결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무능하고 사적 이익만 챙기고, 강압적인 윤석열이라는 인간이 얼치기 참주 짓을 하고 있다. 뭐, 세상에 회자되는 이야기로 윤석열은 박근혜의 무지하고 무능함, 이명박의 이기적이고 사악함, 전두환의 기괴함과 요사함을 겹쳐 놓은 인물이라 한다. 이를 퇴진시켜야 한다. 선거라는 소환권을 가지고 끌어낼 수 있는 기회이지 않는가? 인민은 언제나 토대이며 최종심급이다. 항상 소환권이 있어야, 참주가 아닌 착한 위정자를 만들 수 있는데, 그런데 소환권이 없으니 얼마나 답답한 노력인가? 그래도 지금까지 120여 년 동안에 우리에게 각인된 것과 등록된 것을 많이도 메꾸었다. 이것들을 엮어서 혼성하면서(composer), 우리 스스로 제도 상 필요한 인물을 선출해야 할 것이다.

인민은 토지와 같은 토대이기도 하고, 인민이 산업과 기술을 실질적으로 수행하기도 하고, 산업사회와 제도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야 국가든 공산사회든 이루어질 것이며, 이런 노력으로 만든 체제에서, 프랑스 혁명가인 루이 블랑이 말했듯이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서, “필요에 따라” 필수품을 받는 즐겁고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야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학습 수준과 노력하는 활동은 이런 나라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된다.

누가 이 나라에 눈 먼 돈이 많다고 했는가? 그 말하는 자가 도둑이며 악마이다. 우리 전통에는 청백리가 있고, 서양에서 귀족의 의무(노블레스 노블리제)가 있다는 것은 신의 세계 또는 신앙과 무관하다. 제국의 원리가 있다고 가르치는 크리스토스 신앙은 서양에서도 서서히 물러나고, 세계사의 부분으로서 역사와 사회, 정치 경제가 바뀌고 있듯이, 규소의 시대에 걸 맞는 삶의 터전과 체제를 새로이 혼성(다양한 분야의 조화로운 협약과 연대)해서 만들 능력과 재원이 인민들에게 충분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권능으로 상층의 억압 된 표면을 뚫고 솟아나는 용출선, 곧 저항이다. 이런 저항들이 용출선을 변곡점으로 만드는 것도 인민이다. 인민이 스스로 변곡점의 마루를 만드는 것이 혁명이며 최종심급이다. 혁명의 미래를 성취한다고 말하는 자는 사기꾼에 가깝고, 들뢰즈가 보듯이, 혁명은 과정이며 변화이다. 어쩌면 조국혁신당이 이 시대의 용출선처럼 표면 위로 솟아났다. 문화에서도 삶의 터전에서도 용출선이 도처에서 솟아나고, 윤석열을 탄핵하려는 변곡점을 거치는 과정이 변혁(變革)이며, 이 변역(變易)에 수적으로 다수이나 권력 상으로는 소수자가 인민이 있다. 벩송은 자유가 간헐적으로 솟아난다고 했는데, 들뢰즈 식으로 보면 혁명은 간헐적으로 솟아나 표면을 매끄럽게 흐른다.

인민이 스스로 일어나는 저항, 항거, 봉기, 혁명은 인민의 미덕이다. 이를 혼란, 소요, 사태, 반역이라고 강압하고 억압하는 체제는 사악한 체제이다. 현대에서 이런 못된 말을 하는 자들은 마남사냥의 시대에서 교황청보다 사악하고 기괴한 악마들이다. (5:25, 57NLIJ: 6:36NLJ)

***덧글 ***

# 달리 사유하기.

오늘 점심시간에 언론을 보니, 도주 이종섭의 귀국과 회칼 황상무의 사퇴를 건의한 것이 한동훈이라 한다. 그리고 한동훈은 민심을 반영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아직도 인민이 최종결제권자임을 무시하고는 민심을 반영했다고 한다. 인민은 토대(심층)이자, 최종심급이면서도, 심급의 과정에서 범위를 확대해가는 결재권자이다.

윤석열은 참주행세를 한다. 참주도 아니면서 말이다. 참주(황제)는 제국을 가진 쪽에서 참주이지, 결제 받고 지배 받는 나라에 참주란 없다. 그는 참주의 지시에 따른 식민지 지배의 총독 역할을 할 따름이다. 이 총독이 자기 나라를 제국에 맡기려는 점에서 부역자이고, 이 나라를 제국에 넘겨주는 자들은 매국노들이다. 윤석열은 부역자 또는 매국노의 길을 갈 것인가? 인민이 이를 소환하고 심판하는 최종심급에서 그의 지위를 박탈할 것인가? 박탈과 더불어 친인척의 부정 취득의 재산을 환수하는 것은 인민의 손에 달려 있다. 극우들은 미국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그들을 제국의 부역자이기에, 심판대 위에 세워야 한다.

반영이란 중국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뜻으로 물 그릇을 들여다보는 것을 감(監)이라 하고, 역사를 통시태로서 흐름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거울을 보는 감(鑑)이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자치통감(資治通鑑)이 관리 등용의 과목으로 나중에 들어왔다고 한다. 유럽의 중세에서 비추어 보는 것을 스뻭뀔라시옹(speculation)이라 하는데, 사변(思辨)이라 번역했다. 스뻭뀔라시옹은 라틴어 스펙쿨라시오(speculatio)에서 온 (크리스트교 지배하의) 중세의 용어이며, 관찰하다 또는 거울에 비추어보다는 의미라 한다. 상층(재배층)이 심층(인민)을 내려다보는 것이 관찰과 거울 비추어보기인 셈이다. 한동훈도 그 용어를 썼다는 의미에서 서양 중세의 크리스트교 지배 하의 방식을 드러낸 것이다. 인민의 의사를 존중하고, 겸허히 그에 따르겠다고 해야지. 조선시대 용어로 이종섭을 압송하고 황상무 파직해야지.

인민이란 용어는 로마시대 네 구역 중의 하나에서 생긴 용어라고 하는데, 다수의 인민(권력의 소수자)은 황제(참주)제에 묻히어 표면 밑으로 침잠하여 흘렀다. 성직자들이 인민을 졸로 보고 십자군을 독려하던 시대에, 프랑스에서 알비파의 거센 저항에서 있었으나 도시 자체가 몰살당했다(19세기의 중국에서 마치 태평천국의 항쟁처럼). 표면으로 저항과 항거는 르네상스의 지식인들, 브르노와 갈릴레이에게도 있었다. 시간이 필요하다. 인민이 표면 위로 오른 것은 “빛의 시대(Les Lumières)”(계몽으로 번역한 것은 인민을 교화의 또는 훈육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이다. 즉 빛이 신의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연의 보편편재라는 실재성을 깨닫는 시대에서야 가능했다. 사회에서 또는 제도에서 보편편재는 인민에서부터라는 자각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인민이 수적으로 다수이지만 폴리스(성내에서)의 사대부 또는 부르주와에 비해 힘이 없었기에 소수자(mineur)라 불렸다. 통시적으로 인민이 인구 수에서 소수인 적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역사적으로 그 인민이 빛의 보편편재의 실재성을 드러낸 것은, 지식분자들이 제3신분임을 자처하였고, 프랑스대혁명을 일으키면서 가능했다. 이 혁명의 4년을 지속하고, 다수자(majeur, 귀족층)에 의해 역전 당하고 난 뒤, 인민은 또 다시 표면 밑으로 흐르고 있었다. 4년 이후 표면의 균열을 내고 나온 용출선이 있었으니, 바뵈프(Babeuf, 1760-1797) 등이 결성한 “평등당”이었다. 이들도 혁명파들처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이후로 소위 말하는 저항운동의 조직체(여러 계절사)들이 있어왔고, 우리나라에서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극우는 이들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지만). 인민(소수자, 인구의 다수)의 흐름은 계속해서 흘러, 프랑스 19세기는 “혁명의 세기”가 되었다. 이 과정들은 인민의 ‘반영’이 아니라, 인민의 저항, 분출, 항쟁, 발산, 혁명이었다. 프랑스에서 누가 감히 소요니 사태니, 반역이라 말하겠는가?

여전히 구체제 또는 참주제의 잔당에게는 인민의 발산이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정지된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인민은 빛처럼 움직이며 펼치고 퍼져간다. 그 인민은 심급의 과정이기도 하고, 결국에는 최종심급이다. 이번 총선에서 인민의 결제가 끝나지 않을 것이고, 인민의 역사적 과정은 계속 중일 것이기에, 5년의 권력 윤석열과 그 하수인들이 겁을 먹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도 안다. 인민의 결제가 대선, 총선, 지선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결재권뿐만 아니라 소환권, 헌법 제정의 발의권까지 인민이 언젠가는 가질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 인민은 언제 어디에나 있으며, 빛의 보편편재처럼 인민의 권능 발현은 인간이 각성해 감에 따라 이루어지리라. 그 각성 속에 자유가 있다. (8:09, 57NLJ)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헤겔미학산책38-낭만적 예술 장르가 가능한가?[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38-낭만적 예술 장르가 가능한가?

1) 낭만적 예술 장르

헤겔은 예술의 역사적 형식을 예술이 표현하려는 정신과 예술 작품 사이의 기호적 연관관계를 통해서 규정했다. 세 가지 기호의 형식 즉 상징, 현상, 가상에 따라 세 가지 예술 형식이 출현했다. 그것이 곧 상징주의 고전주의 낭만주의이었다.

 

헤겔은 심지어 예술 장르조차 세 가지로 나누어, 상징적 장르, 고전적 장르, 낭만적 장르로 구분했다. 그것은 작품과 정신의 관계와 유사하게 질료가 의미에 대해 어떤 관계를 지니는가에 따른 것이다. 앞에서 건축의 질료인 무규정적 매스는 그 의미를 자기 밖에 지니므로, 상징적 장르다. 조각은 구체적 물질성이 질료이니, 그 자체에서 정신적 형상을 표현할 수 있다. 조각은 고전적 장르이다.

 

그렇다면 낭만적 예술장르에서 질료는 무엇이며, 그것은 의미와 어떤 연관성을 갖는가?  그것은 낭만적 예술 형식과 어떤 연관성을 지니는 것일까?

 

낭만적 예술 장르로 헤겔이 포괄하는 장르는 회화, 음악, 그리고 시문학이다. 어떻게 보면 대부분의 예술 장르가 낭만적인 장르에 속하게 된다. 이런 다양한 장르는 언뜻 보기에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어떤 하나의 공통적인 질료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의문조차 든다.

 

2)

헤겔에서 회화의 질료는 색채이고, 음악의 질료는 음이다. 시문학의 질료는 음소나 문자와 같은 것이 아니라 언어적 관념[표상]이다. 일반적으로 보면 색채나 음은 물질적인 것이다. 반면 언어적 관념은 물질적인 것에 대립하는 관념이니, 그 사이에 어떤 공통성이 전혀 있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헤겔의 자연철학적 관점에서는 생각이 달라진다. 헤겔에서 색채나 음은 언어적 관념은 아니지만 일종의 관념적인 것이다. 우선 색채를 보자. 색채는 빛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사물의 표면에 반사되면서 색채가 된다.[1] 색채의 원천이 되는 빛이 물체의 질량에 대립하는 순수한 에너지라는 점에서 헤겔이 색채가 이미 관념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음도 마찬가지다. 음은 사물 자체의 울림[Klang]이며, 그것은 마치 빛과 같은 것인데, 사물에 외적으로 존재하는 빛이 아니라 사물 자체에서 나오는 빛 즉 진동[Erzittern]이다. 사물은 진동 속에서  자기를 상실하지만 다시 자기를 회복하니, 헤겔은 이런 진동을 물질의 관념적 운동이라 규정한다[2].  

 

헤겔은 색채와 음을 언어적 관념과 마찬가지로 관념적인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것들 사이에 일정한 단계적 구분이 존재한다. 색채는 빛 자체가 아니라 빛이 물체의 표면에 반사된 것이다. 그러므로 색채는 물체의 표면 공간을 떠날 수 없으며, 색채는 표면 공간에 의존하고 그것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3]

 

반면 물체의 진동인 음은 스스로 소멸하면서도 자기를 보존해 나가는 시간적 존재이며[4] 따라서 색채보다 더 발전된 의미에서 관념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물질은 외재성{Aussereinandersein:  병존성}을 벗어나서 탈자적[Aussersichsein: 소멸성] 존재가 된다. 이런 탈자적, 시간적 존재조차 여전히 물질의 진동인 한에서, 물질성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언어적 관념에 이르러 음소나 문자와 같은 언어의 물질성은 관념을 지시하는 기호에 지나지 않고, 그것이 지시하는 관념은 물질성으로 완전히 벗어나 자유롭게 된 순수한 관념적 존재가 된다. 이런 관념성은 공간성뿐만 아니라 시간성마저 상실하고, 관념과 관념은 오직 논리적[언어적] 관계만 갖는다.

 

3)

낭만적 질료라 규정한 색채와 음, 언어적 관념이 관념적인 것이라는 공통성을 지닌다고 해서 단순히 그런 공통성이 그런 질료를 낭만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근거는 아닐 것이다. 관념적인 것이 낭만적인 것이 되어야 할 이유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낭만주의 예술형식의 경우 그 기호는 가상이라고 규정되었다는 것을 상기해 보자. 가상이라는 것은 현상과 같이 그 자체로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정하면서, 의미를 지시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자기 부정성은 달리 말하자면 자기 내 복귀를 말한다. 이를 통해 무한한 주관성으로서의 정신이 자기를 드러낸다.

 

구체적으로 말해 낭만주의 예술 형식에서 개별적 사건이나 특칭적인 주관성은 실제로 존재하는 대로 리얼하게 제시되지만 이것은 그 자체로서 부정되는 가운데 정신 드러낸다. 개별적 사건이나 특칭적 주관성은 생성과 소멸이라는 운동성 속에 제시되기에 가상이라 규정된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보카시오의 데카메론과 같은 모험 소설이나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같은 성격 희곡일 것이다.  

 

낭만주의의 말기 즉 근대 자본주의 시대에 개별적 사건이나 특칭적 주관성이 긍정적인 방식으로 제시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런 긍정성은 무한성, 즉 자기복귀라는 자기 부정적 운동을 잠재적 배경으로 깔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는 대체로 외적 자연, 즉 이런 자연의 개별화되고 특칭적인 것으로 된 대상들이 표현되기도 하지만, 이 경우 이것들은 아무리 충실하게 취급되더라도 이 경우 이런 대상들에게는 자기 자신에서 정신적인 것이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이 가시화되어야 한다. 그런 대상은 이미 그 예술적 실현 방식을 통하여 정신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또 대상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생동적이고, 외면성의 최종적 극단에조차 심정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함, 한마디로 내적 관념적 요소를 가시화한다.” [5]

 

이런 가상 개념을 생각해 볼 때, 헤겔이 색채와 음, 언어적 관념과 같은 관념적 질료를 낭만적 질료라고 규정했다면 그 이유는 그런 관념적 질료가 자기 부정적이거나 자기 복귀라는 가상적인 성격을 지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낭만적 질료에 대해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주관적인 것이 … 이 질료 속에 이입된다면, 내면은 내면으로서 비치기 위해 이 질료에서 한편으로는 공간적 총체성을 제거하고 또한 공간의 직접적 현존재를 그와 반대되는 것으로 즉 정신에서 야기된 가상으로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형상 및 그 외적 감각적 가시성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내용이 요구하는 갖가지 특칭화하는 현상방식들을 추가로 도입해야 할 것이다”[6]

 

여기서 헤겔은 낭만적 정신이 무한한 주관성이라는 전제 아래서 이런 무한한 주관성을 예술적 질료가 표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그 질료에서 공간성을 제거하고 ‘정신에서 야기된 가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가상성 외에도 갖가지 특칭화하는 현상방식 즉 특수 기법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하는데, 역시 전체의 핵심은 가상 개념에 있다. 낭만적 질료가 되려면 가상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4)

하지만 관념적인 질료가 가상적인 근거가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관념적인 것이 가상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가상성이란 자기 부정성, 자기 내 복귀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데, 관념적인 것은 이런 개념과 필연적 연관성을 지니는 것일까?

 

여기서 헤겔의 관념성에 대한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헤겔이 물질은 외재적[Aussereinandersein]인 것이다. 그것을 극복하여 상호 내재적이 되면 관념적으로 된다. 즉 어떤 것이 자기에 대립하는 타자에 의해 규정되면, 이 경우 타자는 자기의 부정이며 자기는 이 타자의 부정, 즉 이중 부정이 되면서 관념적인 것으로 된다.

“여기에 정립되는 관념성은 이중적인 부정으로서 변화를 의미한다. 물질적 부분이 상호 외부적으로 존립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마찬가지로 부정되니, 그것의 상호 외부적 존재와 그 응집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 관념성은 서로를 지양하는 규정성의 교체로서의 관념성, 물체의 자기 내부에서의 진동 곧 음이다.” [7]

 

이처럼 자기가 타자에 의해 규정되는 경우 이제 의미는 개별적인 것 그 자체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관념적인 것은 오직 상호 관계를 통해 타자를 통해서 자기가 규정되니, 이것이 관념적인 것에서부터 가상적인 것이 출현하는 근거가 된다. 관념적인 것은 자기 부정을 통해서 자기 내로 복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축이나 조각에서 물적 질료는 그 의미가 상징적이든 고전적이든 간에 개별적 질료가 그 자체로서 어떤 의미를 지닌다. 개별적 질료는 서로 독자적인 것이며, 비록 외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하더라도 그 관계는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관념적 질료인 색이나 음, 그리고 언어는 그 자체로서 고립적으로 규정되지 않으며 항상 타자에 대해서 반성적으로 규정된다. 그러므로 이런 질료는 개별자 자체로서는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것은 항상 서로 대립하는 질료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예를 들어 빨강색은 파란색이나 노랑색에 대해서 규정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빨강색은 이런 파란색이나 노랑색과 관계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헤겔은 회화의 근본적 성격을 설명하면서 색채의 마법을 서술한다. 이 색채의 마법이란 곧 여러 가지 색채가 상호 대립과 조화를 통해 전체적으로 정신적 형상을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음악의 음도 마찬가지다. 도미솔은 각자 고유한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다. 도미솔은 서로의 관계를 통해서 규정되며 따라서 각자의 의미는 이런 음들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헤겔은 건축을 얼어붙은 음악이라 했듯이 음악은 음들로 이루어진 건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개별적 질료 사이의 반성적 관계는 언어적 관념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개별 단어는 항상 다른 단어와의 관계 속에서 규정된다. 단어가 그런 관계 속에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구조주의 언어학의 등장 이래로 일반 상식이 된 것으로 보인다.

 

5)

물론 색채와 음, 언어적 관념 사이에서 각각이 갖는 상호 관계는 다르다. 색채는 다른 색채와 공간적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음과 다른 음은 시간적 관계 속에 있다. 색채나 음에서 그 관계는 마치 역학적인 인력과 척력의 관계처럼 대립과 조화, 또는 비례라는 단순한 수적인 관계에 머무른다. 이런 관계는 감각적 감정을 건드릴 수는 있지만, 이것을 통해 구체적 사태를 그것도 생성 소멸하는 운동 속에서 그려낼 수는 없다.  

 

반면 언어적 관념에서는 이제 주어와 술어라는 고유한 언어적 논리적 방식이 출현하게 된다. 이런 관계는 가장 관념적인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사태를 그려낼 수 있고 그 사태를 운동하는 것 속에서 그려낼 수 있으니, 예술 가운데 가장 풍부한 질료가 될 수 있다.  

 

이처럼 관념적 질료는 반성적 상호 관계 속에 있다. 그것은 이제 그 자체로서 규정되지 못하며 타자에 대해서 규정된다. 그러므로 관념적 질료는 자기 부정성이나 자기 내 복귀라는 성격을 지니게 되니, 헤겔은 이런 관념적 질료를 가상적 질료라 하면서, 낭만적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1] 이 빛은 물질적인 것이지만 이미 물질적인 것이 “자기 내로 복귀한 것”이니, 헤겔에 따라면 빛은 “물질적 관념성”, “불가분적이고 단순한 탈자태[Aussersichsein]”, “물질의 자아[Selbst der Materialitaet]”이다. (헤겔, 철학강요, S. 280)

[2] 이 진동은 “물체에서 나타나는 물체의 관념성[am Materiellen als dessen Idealitaet]” 또는 “역학적인 영혼성[mechanische Seelenhaftigkeit]”이다. (헤겔, 철학강요, S. 297)

[3] 아래 구절을 참조하라. “동시에 빛과 상이한 어두운 것[물체]은 독자적으로 존립하는 한, 빛은 이런 일단 불투명한 것의 표면에 관계한다.” (헤겔, 철학강요, S. 280)

[4] 아래 구절을 참조하라. “규정성의 특수한 단순성, 이 우선 내적인 형식은 물질적인 외재성[Aussereinandersein] 속에 잠겨 있던 것을 뚫고 지나가면서 그의 외재성이 독자적으로 존립하는 것을 부정하는 가운데 자유롭게 된다. 이것을 통해 물질적 공간성이 물질적 시간성으로 이행한다.” (헤겔, 철학강요, S. 297)

[5] 미학강의 3, 18쪽

[6] 미학강의 3, 18쪽

[7] 헤겔, 철학강요, S. 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