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강해(58)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58)

 

  1. 정의의 실현조건 : 철학과 철학자 왕(474c-502a)
  2. 철학자에 대한 정의 : 이데아론에 의거한 규정(474c- 제5권 끝 480a)

 

1) 형상(이데아)론(474c-476d)

 

* 이데아론을 다루기에 앞서 살핀 이상국가의 가능성과 관련한 소크라테스의 언급을 요약하면 결국 “제2권 369a에서 제4권 427c까지 ‘말로 세워진 나라’(gignomenē polis logō) 이른바 로고폴리스(logopolis)는 그 자체 본(paradeigma)으로서 현실구현이 불가능하지만, 철학자를 그 나라의 통치자로 임명할 경우 최대한 그 본에 가깝게는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제5권 502c부터 제7권 540e까지 철학자의 자질과 교육과정 등 그 본에 최대한 닮은 나라 즉 철학자 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구체적으로 다룬 다음 그 철학자 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비로소 ‘아름다운 나라’(kallipolis)라고 명명한다.(527c). 사실 <국가>에는 이상국가라는 말 자체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플라톤 <국가>의 주제를 나눌 때 일반적으로 제2권 369a에서 제4권 427c까지의 내용을 ‘이상국가의 수립’으로 불러 구분하고 그 후 철인 통치자와 교육과정까지를 포함해 <국가> 내용 전체를 통틀어 ‘이상국가론’이라 부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른바 말로 세운 로고폴리스도 플라톤의 이상국가이고 제7권에서 명명된 ‘아름다운 나라’(kallipolis) 또한 그의 이상국가라고 부를 수 있다. 다만 전자의 논의가 후자의 논의를 위한 토대가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자에 철학자 통치론이 추가된 후자의 나라야말로 플라톤이 생각한 최종적인 의미에서의 실질적인 이상국가라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요컨대 <국가>에서 이상국가의 실현 가능성과 관련하여 플라톤이 지닌 입장을 정리하자면 전자의 이상국가는 본으로서 현실 불가능하지만, 후자의 이상국가는 최대한 그 본을 닮은 나라로서 최대한 가까운 한도까지 실현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유념할 것은 그 실현 가능성이 어떤 단일한 조건에서 어떤 하나의 사건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아니라, 복잡한 구조와 제도를 갖춘 나라의 경영 상태를 어떻게 최선으로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와 관련한 가능성이라는 점이다. 이점을 고려하면 그 가능성과 관련한 실질적인 물음은 단지 가능한가 아닌가가 아니라, 가능하되 어떻게 얼마나 더 본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가의 문제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필수적인 가능 조건으로서 철학자 왕의 문제는 결국 철학자 왕의 수준, 즉 바람직한 철학자 왕의 자질과 능력이 무엇이고 그 능력의 최고치는 어떻게 담보될 수 있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 이에 따라 소크라테스는 세 가지 파도와 관련한 논의를 모두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철학자 통치론을 다루되 철학자가 어떤 자질과 능력을 지닌 사람이기에 나라의 통치자로서 적합한지부터 본격적으로 논의한다. 여기서 철학자가 좋아하는 진리로서 형상이 제시되고 드디어 이데아론이 다루어지기 시작한다.

 

[474c-476d]

* 소크라테스는 이제 어떤 사람들이 철학에 발을 들이고ἅπτεσθαι 나라를 인도하는 것ἡγεμονεύειν이 자연적 성향에 적합한지προσήκει φύσει부터 아래와 같이 해명한다.

* 누군가가 뭔가를 사랑한다φιλεῖν고 주장할 때 그 주장이 옳으려면, 그가 사랑하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그 일부가 아니라 전부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소년을 좋아하는 사랑꾼φιλόπαιδα은 한창때의 아이들 모두에 매료되어 관심을 가지고 누구도 내치지 않다. 포도주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명예를 사랑하는φιλότιμος 사람들 또한 어떤 포도주이건 어떤 지위이건 가리지 않고 욕구한다.ἐπιθυμηταί 이렇듯 뭔가를 욕구하는ἐπιθυμητικός 사람은 그것의 모든 종류를 욕구하는 사람이다.(474a-475b)

*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φιλόσοφος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지혜σοφία는 욕구하고 어떤 지혜는 욕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혜를 욕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배울 거리τὰ μαθήματα에 대해서도 그 모든 것을 선뜻 맛보기를 원하고 기꺼이 배우려 하며 그래도 늘 부족해 하는ἄπληστος 사람, 그런 사람을 우리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475c)

* 이에 글라우콘이 “구경하기를 사랑하는 사람들οἵ φιλοθεάμονες, 듣기를 사랑하는φιλήκοος 사람들도 구경거리, 들을 거리가 있으면 어디든지 빠짐없이 찾아 돌아다니며 그 비슷한 것들이나 잡기술τεχνύδριον을 배우려 드는데 그렇다면 이 사람들도 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인지”를 묻는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그들은 그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과 닮은 사람들일 뿐 진정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하고 진정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진리 구경하기를 사랑하는 사람들’ἀληθείας φιλοθεάμονας이라고 말한다.(475d-e)

* 그러자 글라우콘은 ‘진리 구경하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다. 그 설명을 위해 소크라테스는 우선 아래와 같이 ‘그 자체로 하나인 형상’과 그것들이 온갖 곳에 나타나서 ‘여럿으로 보이는 것’을 구분한다. “아름다움καλός과 추함αἰσχρός, 정의로움δίκαιος과 부정의함ἄδικος, 좋음ἀγαθός과 나쁨κακός 등 모든 형상εἶδος 각각이 그 자체로 하나’αὐτὸ ἓν ἕκαστον인데, 그 형상들이 행위πρᾶξις들이나 물체σῶμα들과 어울림κοινωνία으로써, 그리고 자신들끼리 서로ἀλλήλων 어울림으로써 온갖 곳에 나타나서 각각이 여럿πολλὰ으로 보이는 것φαίνεσθαι이다.”(476a)

*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기초로 ‘진리 구경하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전자)과 ‘그저 감각으로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후자)의 차이를 설명한다. 요컨대 전자의 사람들은 위에서 언급된 아름다움과 추함, 정의로움과 부정의함 등 ‘그 자체로 하나인 형상’들을 볼 수 있는 사람들로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φιλόσοφος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유일한μόνος 사람들이다. 그리고 후자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소리φωνή나 색깔χροάζω, 모양σχῆμα, 그리고 이런 것들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을 반길 뿐, 그들의 지적 상태διάνοια로는 아름다움 자체αὐτὸ τὸ καλὸν의 본성은 볼 수도ἰδεῖν 없고 반길 수도ἀσπάσασθαι 없는 사람들이다. (476b)

* 아름다움 자체에 다가가서 그것을 그 자체로서καθ᾽ αὑτὸ 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σπάνιος.(476b) 누군가가 후자의 사람들 즉 ‘아름다운 것들ὁ καλὰ πράγματα은 믿으면서νομίζων ’아름다움 자체‘αὐτὸ κάλλος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아름다움 자체’에 대한 앎γνῶσις으로 이끌고 갈지라도 그를 따라갈 수조차 없는 사람은 꿈ὄναρ을 꾸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전자의 사람들 즉 아름다움 자체가 있다고 생각하고, 아름다움 자체와 그것을 나누어 가진 것들τὰ μετέχοντα을 모두 볼 수 있으며, ‘그것을 나누어 가진 것’이 ‘그것 자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것 자체’가 ‘그것을 나누어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은 깨어 있는 상태ὕπαρ로 살고 있는 것이다.(476c-d).

* 전자의 사람들 지적 상태διάνοια는 아는 사람의 것으로ὡς γιγνώσκοντος 앎γνώμη이라고 부르고, 후자의 사람들 지적 상태는 믿음을 갖는 사람의 것으로ὡς δοξάζοντος 믿음δόξα이라고 불러야 옳다.(47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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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c ‘어떤 사람들이 철학에 발을 들이고 나라를 인도하는 것hēgemoneuein이 자연적 성향에 적합한지’ : 자연적 성향에 적합하다는 것은 그 성향에 맞는 것을 자기 일로 삼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말한다. 이상국가의 분업 원리도 모두 그 원칙에 입각해 있다. 여기서 철학자는 자연적 성향에서 무엇보다 철학에 적합하지만, 나라를 인도하는 것 즉 통치에도 적합하다고 언급된다. 즉 철학자는 철학을 좋아하지만, 자신의 자연적 성향 그대로 통치하기도 좋아하고 또 그것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국가> 다른 곳에서는 그 반대로 철학자는 ‘통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521b)이고 ‘정치적 관직을 깔보는 삶’(521b)을 사는 사람들이어서 그들로 하여금 나라를 통치하게 하려면 강제가 요구되는 사람들(521b)로 나온다. 그렇다면 이러한 플라톤의 말들은 서로 모순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철학자가 통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관직을 깔본다는 내용은 통치를 시민의 이익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 정치 권력을 쟁취의 대상으로 삼는 자들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즉 철학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이 되는 통치행위는 당연히 싫어하고 그러한 권력 지상주의자들이 탐하는 관직을 깔본다. 그러한 통치는 동족 간 내란을 일으켜 모두를 불행에 빠뜨리기 때문이다.(521a) 그러나 바람직한 통치자는 한 집단의 행복이 아니라 시민 전체의 행복을 도모하고(420b) 시민과 함께 즐거움과 고통을 공유하는 사람(462b), 또 성향상 철학자가 그러한 통치에 가장 적합한 사람들이므로 통치 권력을 기꺼이 감당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자는 정치 생활 보다는 철학 생활하기를 더 좋아하므로 누구라도 선뜻 먼저 나서기보다 서로에게 떠맡길 수 있어 일종의 자율적 강제의 형식으로 통치의 수고를 돌아가며 떠맡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강제는 싫어하는 것을 강제로 강요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꺼이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으나 선뜻 나서지는 않는 사람들에 대한 자율적인 내부 규제의 성격을 갖는 것이라 하겠다. 요컨대 철학자에게 강제는 없다. ‘강제’라는 표현은 철학자들이 통치 적합자임에도 자칫 이기적 권력을 탐하는 자들로 비칠 수 있음을 변명하기 위한 일종의 레토릭(rhetoric)의 성격이 강하지만 어쩌면 철학과 정치 참여 사이에서 평생을 고민해온 플라톤 자신의 내적 심리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 475d ‘진리 구경하기를 사랑하는 사람들’ : 요컨대 철학자는 진리를 좋아하고 사랑하여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사랑한다’거나 ‘추구한다’는 것은 모종의 성취 결과를 이룬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있음’, ‘추구하고 있음’이라는 과정 그 자체 현재 진행형의 성격을 갖고 있다. 사랑을 쟁취했다는 말도 쓰지만, 사랑을 쟁취한 사람이 진정 원하고 목표로 하는 것은 쟁취 그 시점이 아니라 그 사랑을 현재 진행형으로 일관되게 유지하고 키워 나가는 것이다. 철학이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면 철학 역시 어떤 목표에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현재 진행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고 설사 진리라는 확신이 있더라도 그에 머물지 않고 늘 되물어 보고 되돌아보면서 보다 진일보한 진리에 대한 갈망으로 지적인 긴장을 잃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그 자체가 우리 모두의 철학함의 진정한 목표라 할 것이다.

* 476d 지적 상태(dianoia) : dianoia는 추론적 사고(思考)(thinking), 사고 내용(notion, thought expressed), 사고 과정(process of thinking), 이해(understanding), 사고 기능(thinking faculty), 지적 능력(intellectual capacity)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지적 이해의 상태 내지 내용’을 의미한다. 나중 선분의 비유(509c-513e)에서 자세히 다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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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차 언급했듯이 <국가> 제5권에서 제7권까지의 내용은 이데아론, 철인 통치론, 좋음의 이데아, 선분·태양·동굴의 비유, 변증술과 철학자 교육과정 등 플라톤 철학의 정수라고 불릴만한 핵심적인 주제들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플라톤 <국가> 관련 연구서들은 물론이고 서양철학사 관련 책들이라면 모두 플라톤 철학을 소개하면서 거의 빠짐없이 이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만큼 이 주제와 관련한 논의들은 개요 수준에서부터 전문적인 연구 수준에 이르기까지 자료들이 매우 풍부하다. 이 점을 고려하면 다행하게도 최소한 이 주제들과 관련하여 우리 강해에서 기울여야 할 노력은 그만큼 덜어낼 수 있다. 그래서 이데아론을 비롯하여 제5권에서 제7권까지 우리가 다룰 플라톤 철학의 주요 주제들에 대해 우리 강해는 앞으로 아래와 같은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하려고 한다. 우선 지금까지 해왔듯이 기본적으로 <국가> 텍스트의 해당 내용을 요약하고 정리하는 방식으로 소개하되, 위 주제들과 관련하여 철학사를 통해 많이 알려진 일반적인 설명은 줄이는 대신 주요 논쟁점과 더불어 플라톤 철학 전체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간과되어온 몇 가지 점들을 중점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 그럼 텍스트 순서대로 <국가>에서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플라톤의 이데아(idea)론’ 또는 ‘형상(eidos)론’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플라톤의 형상은 철학자가 어떤 사람이기에 통치자로서 적합한가에 대한 아래와 같은 도입부의 대화를 통해 제기된다. 우선 소크라테스는 철학자 즉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을 ‘모든 배울 거리를 전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글라우콘이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온갖 것을 기웃거리며 배우기를 좋아한다면 그들과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즉 철학자는 ‘진리 구경하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답하고 그런 연후 ‘진리 구경하기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저 감각으로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아래와 같이 대비해가면서 그 둘 간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그 과정에서 철학자가 사랑하는 진리를 담지하는 대상으로서 형상이라는 것이 처음 소개된다.

* 물론 플라톤의 형상이 <국가>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국가>에서 형상은 이곳에서 처음 다루어지기 시작하여 선분·태양·동굴의 비유, 좋음의 이데아, 변증술로 이어지면 깊이를 더해 가지만 그 주제가 플라톤 철학의 중심 주제인 만큼 <파이돈>, <파르메니데스>, <소피스테스>, <티마이오스> 등 플라톤의 다른 대화편에서도 두루 다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들을 바탕으로 플라톤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통일적으로 이해하기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플라톤의 대화편 자체가 체계적인 논의가 아닌 데다가 대화편마다 이데아에 대한 플라톤의 언급들 자체가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불분명한 구석 또한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플라톤 전문 연구자들 사이에서 말이 ‘플라톤 이데아론’이지 그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고 그 해석 또한 학자마다 천차만별이다. 특히나 오늘날 분석철학과 언어철학의 발달에 따라 관련 텍스트에 대한 미시적 언어 및 논리 분석이 크게 증대되고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대두되면서 현대철학에서는 아예 플라톤의 원초적인 의도와 관점이 아예 공중 분해된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텍스트를 직접 접하거나 전문 연구서를 보기보다는 서양철학사 등 플라톤 이데아론을 다룬 개괄서들을 통해 일반적인 개요 수준에서 그 내용을 접하고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과연 <국가> 텍스트에서 플라톤의 형상은 어떤 관점에서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을까?

* 우선 형상(eidos : 形相)이라는 말은 ‘보이는 것’, ‘외모’, ‘형태’, ‘종류’, ‘개념’ 등 여러 가지 뜻을 지니는 일상어로서 앞에서도 여러 번 사용된 말이다.(402c-d, 434d, 435b 참고) 그러나 약간의 논란이 있는 402c eidē의 경우를 제외하면(강해 40참고) <국가>에서 플라톤이 eidos를 본격적으로 ‘형상’(形相)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하기 시작한 곳은 이곳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이다. 그리고 ‘이데아’(idea)라는 말은 eidos라는 말과 함께 eidō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로서 eidos와 같은 뜻을 가진 말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이곳에서 그 형상을 언급하면서 ‘그 자체로’(kath’ hauto, kata auto), ‘자체’(auto)라는 말을 여러 번에 걸쳐 사용하고 있다. 특히 소크라테스는 auto를 형용사에 정관사 to를 붙여 명사화한 것과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점차 밝혀지겠지만 이 말들은 소크라테스가 거의 공식이라 할 정도로 형상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예, 아름다움 자체(auto to kalon), 정의 자체(auto to dikaion) 등)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그 형상을 ‘각각 그 자체로 하나’(auto hen hekaston)이자 ‘각각의 있는 것 자체’(auto hekaston to on)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언급들은 우선 플라톤의 형상이 파르메니데스적인 일자성(一者性)을 갖고 있다는 것 즉 형상이 어떤 타자와도 무관하게 독립적이고 그 자체로 실재하며 늘 한결같고 불변하는 하나임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 하나가 각각 하나라고 함은 그 형상이 파르메니데스의 일자와 달리 ‘여럿’(polla)임을 나타낸다. 즉 플라톤의 형상은 다(多)의 진상으로서 각각 일자성을 갖고 있으며 그에 따라 그 자체로 독존적으로 실재하는 ‘있는 것’(to on)이다.

* 형상의 실재성을 표현하는 그리스어 on은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einai의 중성 분사형으로 being의 뜻을 갖는 말이다. 그런데 그리스어에서 ‘있음’을 나타내는 einai동사는 영어의 be동사가 그러하듯 ‘있음’이라는 존재를 나태는 용례만이 아니라 ‘~임’이라는 술어적 용례로도 쓰이고 나아가 ‘다름 아닌 정말 그것 맞음’이라는 진위적 용례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플라톤이 형상을 ‘to on’으로 언급하고 있음은 형상이 그 자체로 ‘실재하는 것’이자 ‘~인 것’이며 동시에 ‘정말 ~인 것으로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현대의 일부 학자들은 플라톤이 이 세 가지 용례 중 어떤 용례로서 to on을 사용하고 있는가에 대해 온갖 경우를 들어 세세하게 분석하고 있지만, 그리스어 자체가 그 세 가지 용례를 모두 포함하는 데다가 플라톤이 그 말을 사용하면서 용례의 특수성을 따로 설명하지 않는 한, 그러한 분석이 별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다. 플라톤을 이해하려면 그가 사용한 용례의 허점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가 왜 그 모든 용례로 그 말을 사용하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

* 플라톤은 그 형상들의 실례로 이곳에서 ‘아름다움’과 ‘추함’, ‘정의로움’과 ‘부정의함’을 들고 있다. 그런데 형상들이 존재하는 곳이 믿음(doxa)이 대상으로 하는 현상계가 아니라 진정한 앎epistēmē이 대상으로 하는 예지계라는 점에서 과연 ‘추함’ 이나 ‘부정의함’도 형상인가 그것은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의 ‘결핍에 불과한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특히 to on의 진위적 용례가 to on의 참됨을 뜻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곳 바로 뒤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오류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분명 이 점은 논란거리이긴 하다. 다만 이곳의 언급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추함’과 ‘부정의함’ 또한 ‘정말 다른 것이 아니라 순전히 그 자체로 추한 것, 부정의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오류 불가능성 또한 ‘정말 추한 것, 부정의한 것에 틀림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할 것이다.

* 그런데 이렇듯 플라톤이 예로 들은 형상의 실례를 통해 형상이 무엇인가를 접근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른다. 왜냐하면, 이곳 <국가>에서도 ‘아름다움’, ‘추함’, ‘정의’, ‘부정의함’ 등 뭔가 윤리적이거나 미적인 것 이외에 감각계 인공적 사물인 ‘침상’의 형상(597c)도 언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있음’, ‘없음’, ‘운동’, ‘정지’ 등 범주적인 것들(<파르메니데스 129d-e, 139b, <소피스테스> 254b-255e, <티마이오스> 35a 등)을 비롯해 ‘하나’, ‘둘’, ‘홀수’, ‘짝수’, ‘원’, ‘직선’, ‘도형’, 다름’, ‘같음’ 등 수학적이거나 논리적인 것들(<대히피아스 300d-302b, <파이드로스> 104a-c, 104e, <에우튀프론> 12d, <메논> 74b, 74d-e 등) 그리고 ‘눈’, ‘불’, ‘벌’, ‘흙’, ‘공기’, ‘물’, ‘불’ 등 자연물들(<파이드로스> 103c-105d, <메논> 72b-c, <티마이오스> 51b 등)도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침상의 예처럼 형상의 그림자인 것들로 인간이 만든 인공물의 형상은 그 자체로 불가능한 것이어서 침상의 경우 그냥 비유로만 사용된 것이라 이해한다 해도 플라톤이 언급한 위와 같은 형상들의 다양한 예들은 과연 플라톤이 생각하는 형상이 무엇인가에 대해 실로 많은 논란과 의문을 수반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위와 같은 예들 대부분이 무언가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 이러저러한 구체적인 사례들로 정의하는 것을 부정하는 과정에서 예시된 것임을 고려하면 플라톤의 형상은 모든 경우에서 늘 필연적으로 변화가 수반될 수밖에 없는 감각적인 성질을 갖고 있지 않은 것, 즉 ‘언제나 동일하게 한결같은 상태로 있는 것’(aei kata tauta hosautōs onta)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우리의 일상의 경험에서도 가까운 예로 일정한 음의 수적 비례 등 수와 논리, 자연의 법칙을 구성하는 수많은 이론적 원리들이 수많은 아름다운 악곡들 배후에 그 자체로 실재하는 것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그리고 이 부분에서 소크라테스는 형상들과 행위들 또는 물체들과 어울림(koinonia)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장차 또 자세히 다루어지겠지만 이른바 감각적 물질세계에 대한 형상의 관여(metechein)로 설명되면서 실상의 세계, 예지계로서 형상계와 그 그림자의 세계로서 현상계의 내적 관계를 규정하는 토대가 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형상들) 자신들끼리 서로 어울려’라는 부분은 예지계 형상들끼리의 문제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에 대한 별도의 추가적인 설명도 없다는 점에서 많은 논란과 해석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형상들이 어울린다고 하면 형상들에게 어울리는 측면이 있어야 가능한데 형상들 각각은 어떤 것들과도 관계 맺지 않는 자체적이고 독립적이며 불변의 것으로서 관점이나 측면에 따라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플라톤은 이곳에서 형상들의 결합과 관련하여 별도의 설명을 하지 않는 대신에 이후에 저술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소피스테스>에서 그 문제를 독립적인 주제로 삼고 있어 우리는 <소피스테스>(250a-259d)를 통해 그 의문의 실마리를 부분적으로나마 풀 수 있다. 그곳에서 플라톤은 존재(ousia)와 운동(kinesis) 그리고 정지(stasis), 같음(tauton)과 다름(thateron)을 형상의 예로 들면서 운동과 정지 모두 일단은 있는 것으로서 존재성을 갖는 한, 존재에 의해 포괄된다고 말한다. 즉 운동도 정지도 존재와 일정하게 결합(koinonia)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존재는 그러면서도 이들 각각의 것과 다른 어떤 것이므로 이들 각각은 또 서로 다른 것으로 ‘다름’과 결합해 있을 뿐만 아니라 각기 그 자체로 자기 동일적이므로 ‘같음’과도 결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서 철자의 비유를 통해 형상들의 결합을 설명한다. 즉 자음 모음은 각각 그 자체 하나의 유(類, genos)이자 형상으로서 서로 결합하여 글자를 이루고 글자는 다시 어울려 단어를 이룬다. 예를 들어 삼각형의 형상이 있다면 그것은 3의 형상과 선분의 형상 등이 일단 어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삼각형의 형상에서 3의 형상과 선분의 형상 각각이 결합했다 해서 그것들 각자의 일자성을 잃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 자체로 자체성을 보전하면서 유와 종의 관계를 갖고 서로 결합한다. 물론 이것들은 무한대의 경우 수로 결합하거나 나누어지지도 않는다. 존재와 정지는 결합할 수 있되 정지와 운동은 결합할 수 없듯이 철자들이 아무런 철자술(grammatikē, 253a) 상의 규칙 없이 아무 자음과 모음들끼리 임의로 결합할 수는 없다. 이른바 최고류에 해당하는 형상은 종차를 이루어가며 가장 위쪽으로 섞이고 모이면서(synagein) 드러나는 형상이고 반대로 그러한 최고류의 형상이 분할(diairesis)되어 더 분할 될 수 없게 되면 그것이 최하종으로서 이를테면 철자에 해당하는 원자적 형상(atomon eidos)이 될 것이다. 그리고 존재하는 세계에서 이러한 결합과 분할의 내적 관계와 규칙을 훤히 들여다보고 알 수 있는 능력이 곧 철학자가 최종적으로 습득해야 할 변증술(dialēktikē)이다.

* 이러한 형상들의 결합은 말년의 저작 <티마이오스>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우주 제작과정을 그리고 있는 <티마이오스>에서 우주 제작자 데미우르고스는 이른바 형상들의 세계를 본(paradeigma)으로 삼아 그것을 보고 실제 자연 세계를 만든다. 이 경우 데미우르고스가 바라보는 형상들 가운데에는 개별 형상들도 있겠지만 ‘여럿이 조화롭게 어울린 자연 세계의 본’으로서 복합적 특성을 갖는 ‘결합된 형상들’ 또한 존재할 것이다. 우주 제작자 데미우르고스는 따로 자신이 본을 구상하지 않고 순전히 그 형상계의 본만을 보고 우주를 제작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이 본으로서 제작 전에 주어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 가운데 데미우르고스가 우주를 제작하는 목표가 ‘좋은 우주’ 즉 ‘여럿들의 조화와 공존’에 있는 한 우주 전체에 섞여 그것을 통일적으로 관철하는 우주 세계의 본으로서 ‘좋음의 형상’ 또한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가>에서 앞으로 제시될 ‘좋음의 형상’은 형상계의 모든 형상들의 총체적인 결합과 관련한 형상으로서 우주 제작자가 가장 중시해야 할 본이라 할 것이다.

* 그러나 플라톤의 형상론은 그 이후의 철학사를 통해 예지계와 현상계를 가르는 두 세계 이론(Two worlds theory) 즉 이원론적 세계관의 토대로만 주목되면서 플라톤으로 하여금 현실 세계는 그저 가상의 세계에 불과하고 반대로 추상적이기 그지없는 천상의 세계만을 실상의 세계로 생각하는 철학자로 평가되게 만들었다.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만 봐도 플라톤의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이후 자연과학의 발전에 따라 형성된 근대 인문주의 내지 과학주의적 관점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철학사적 전통에서 플라톤 철학이 왜 ‘현상 구제론’ 즉 현실을 구제하기 위한 철학으로 불리고 있는지를 해명하지 못한다. 플라톤의 형상론을 접하는 사람이면 보통의 경우 대부분 앞서 말한 두 세계 이론부터 떠올리지만, 현상 구제의 관점에서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형상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럿(多) 즉 복수의 형상들이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플라톤이 형상론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초점은 기본적으로 존재 세계에서 오직 부동의 일자만을 주장하는 종래의 파르메니데스주의를 혁파하고 존재 세계가 본래부터 여럿의 세계이자 운동하는 세계임을 천명하는 것이었다.

* 익히 알고 있듯이 플라톤 당대 혼란기 아테네를 지배하고 있었던 철학 사조는 파르메니데스주의를 이어받은 엘레아의 철학이었다. 아테네 철학은 소박한 물활론에서 시작하여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유전론(panta rhei)을 거쳐 파르메니데스 사상이 큰 영향을 미치면서 급기야 엘레아주의자들의 주도하에 전통적으로 당연시되어온 자연(physis)과 관습(nomos)의 유기적 통일, 여럿과 운동이 철저히 부정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여럿과 운동의 부정은 그 자체로 현실 세계 다양한 존재자들의 존재성과 그것들의 운동과 변화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학적 인식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전란에 허덕이는 당대 아테네 사람들에게 극복의 근거나 방향을 제시하기는커녕 그들을 아예 극단적인 허무주의와 회의주의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한 상황에서 덕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른바 소피스트들은 엘레아적 논리주의를 이용하여 권력 지향적인 귀족들에게 궤변적 수사술과 처세술을 가르치며 사적인 이익을 취했고 그런 방식으로 귀족들과 신흥 부유층으로 형성된 기득권 세력의 고착화에 기여했다. 물론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현실과 지적 풍토를 극복하기 위해 엘레아주의에 대항하여 여럿과 운동의 철학적 기초를 제시하려는 노력들이 없지 않았다. 특히 원자론자들은 엘레아주의자들을 의식하여 파르메니데스적 일자성에 부합하는 이른바 원자(atom)의 존재를 상정함과 동시에 그러한 원자들이 운동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원자들을 둘러싼 허공(kenos) 즉 없는 것(無)의 존재도 과감하게 받아들였다. 요컨대 그들은 철학적으로 존재 세계가 여럿이자 운동하는 세계임을 밝히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원자론은 그런 방식으로 일정 부분 여럿과 운동을 구제할 수는 있었으나 플라톤이 보기에 그 운동의 기계론적인 성격은 그리스적 세계관의 토대로서 자연과 관습의 유기적 통일을 위한 합목적적 가치 지향을 뒷받침할 수 없는 것이었다.

* 그래서 플라톤은 여럿과 운동의 근거도 확보하고 운동과 변화의 합목적적 가치지향도 가능할 수 있도록 고정치는 고정치대로, 운동치는 운동치대로, 관계치는 관계치대로 각각에 정당한 존재론적 기초를 부여하여 존재 세계에 파르메니데스적 일자들이 여럿이 있음과 동시에 그것들이 운동하는 것임을 밝히고 덧붙여 존재 세계의 총체적인 합목적적 가치의 지향 푯대로서 최고의 유적 형상이자 본으로서 ‘좋음’(to agathon)의 형상이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플라톤의 형상론은 자연 세계 여럿의 존재와 인식의 근거로서 파르메니데스적 일자성을 형상들 각각에게 부여하여 여럿이 각각 그 자체로서 실재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일차적으로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형상들의 세계에서는 운동치가 자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플라톤은 그에 이어 운동치는 고대 이래로 그랬던 것처럼 물질적 존재자들의 근본 속성으로 받아들이되 다만 그것들이 형상을 분유(metechein)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여 물질적 존재자들의 구분과 식별을 위한 최소한의 존재성을 확보하였던 것이다. 즉 플라톤은 고정치는 형상계에, 운동치는 물질적 현상계에 두고 그것들이 존재 세계에서 상호 관여의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존재 세계가 일정하게 여럿을 보전하면서도 상호 섞일 수 있는 관계치의 근거도 함께 마련한 것이다. 이로써 여럿이자 운동하는 현실이 존재론적으로 구제된 것이다. 이제 화살이 정지해있지 않고 날아가는 것이, 토끼가 거북이를 앞질러 달려가는 것 또한 더 이상의 가상이 아니고, 여러 가지 것들의 차이를 식별하고 구분하여 사물과 사태의 다양한 측면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 또한 더 이상의 허튼짓이 아니다.

* 그러나 현상계 존재자들은 형상의 분유치만 갖고 있으므로 한결같이 고정적이지 못하고 물질성의 크기에 비례하여 불완전한 분유치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현상계의 존재자들을 대상으로 인식과 학술을 도모할 경우 형상 수준의 진리성 즉 에피스테메까지 이르지 못하고 믿음(doxa)이나 확신(pistis) 수준에만 머물러 있을 뿐이다. 요컨대 그것들에 대한 학술적 성격은 본질적으로 ‘그럴듯한 수준의 설명’(eikos logos) 즉 개연성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상계에서도 물질성을 최소로 갖고 있거나 물질성이 갖는 연장성만 지니는 존재가 있다. 그것이 곧 수 또는 도형 다시 말해 수학적 기하학적 대상이다. 그러므로 지성(nous)을 통해 형상에 대한 에피스테메를 획득하는 변증술을 제외하고 자연 세계에 대한 학술로서 가장 에피스테메에 근접하는 일반 학술은 오직 수학과 기하학 그리고 수학적 논리학뿐이다. 그러므로 수학과 기하학은 가정(hypothesis, 510c-d)도 수반하고 형상이 갖는 완전한 고정치까지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분유치로서는 최고 수준의 고정치를 인식할 수 있는 학술인 만큼, 자연 세계를 탐구하는 모든 학술의 최선의 방법론적 토대가 된다. 이를테면 건축술, 조타술, 제화술 모두 최대한의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학과 기하학이 반드시 필요하고 오늘날 물리학과 생물학을 비롯한 개별과학 역시 본질적으로 수학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른바 자체성(kath’ hauto)은 변증술을 통해 형상 인식의 진리성을 나타내는 말이고 자기동일성(tauton)은 추론적 사고(dianoia)로서는 최고 단계 즉 최고 수준의 분유치를 지니는 대상에 대한 인식, 다시 말해 수학과 기학학적 인식의 진리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래서 철학자의 교육과정에도 수학과 기하학은 변증술을 익히기 위해 반드시 이수해야 할 전 단계 과목으로 제시된다.

* 가장 완전한 앎으로서 형상에 관한 앎은 변증술 즉 철학을 통해서만 획득되는 것이라면, 당대의 일반 학술들(technai)(511b-c) 이를테면 오늘날 우리가 일컫는 일반 개별과학 내지 자연과학들에게는 대상의 자기동일성을 획득하는 것이 학적 인식의 최고 목표가 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자기동일성은 기본적으로 현상계 진리성이므로 진정한 앎이 갖는 자체성에 미치지 못하는 본질적으로 개연적 진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일반 학술로서 오늘날 개별과학 내지 자연과학은 절대지에 이를 수 없고 늘 그 절대지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통해 절대지에 근접하는 지식만 얻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자연학이 갖는 개연성에 만족하지 못해 형상을 자연세계 개체에 끌어들여 자연학의 진리성을 확보하고 이른바 경험과학의 기초를 제공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 자신도 예상치 못한 갈릴레오 역학과 그 이후의 이론 물리학의 등장, 그리고 그것의 진리성은 그의 이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몇 가지 기본적인 사항만 고려하더라도 2,500년 전 제기된 플라톤의 형상론이 말을 너머 진상에 대한 직관적 깨달음을 강조하는 사상이나 종교는 물론, 오늘날 자연과학 내지 개별과학의 학문적 성격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는 것인지는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확인하지만, 플라톤의 형상론은 본질적으로 현상계의 학술적 해명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된 것, 즉 현상계의 구제를 위해 제시된 이론이다. 그런 점에서, 지적 위계에서 본다면 형상계가 최상이지만 플라톤이 기울인 관심의 위계에서 보면 현상계 즉 현실에 대한 관심이 최우위에 있었던 것이라 말할 수도 있다.

* 실제로 이같이 형상의 인식과 현상계의 인식을 구분하는 위계적 구도를 현상계에서 똑같이 보편-개물의 구도로 적용할 경우. 오늘날 일반 학문의 기본 구도와 성격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를테면 오늘날의 학문은 현상계 소여들을 귀납하여 보편적 개념으로 일반화하고 그 보편 개념들의 정합 관계를 통해 사물과 사태에 대한 개념적 인식을 도모하는데, 플라톤의 인식론 또한 보편 실재로서 형상들이 관여의 방식으로 개물들에 결합된 형상적 분유치들(현상계 사물의 공통 속성들을 일반화한 개념들)을 토대로 감각적 개물들에 대한 최소한의 개념적 인식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그 기본 구도는 서로 비슷하다. 현상계 인공물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보편이 드러나는 방향이 다를 뿐이다. 오늘날 학적 인식의 관점에서는 현상계의 사물들에 대한 일반 개념들은 개물들이 갖는 공통적 속성의 귀납적 일반화를 통해 위쪽의 방향으로 모여져서 주어지는 데 비해, 플라톤의 인식론에서는 그 반대로 실재하는 형상(아름다움 자체)이 위에 있고 개체들(아름다운 것들)은 그것들이 아래쪽으로 분유되는 방식으로 존재성을 획득하고 그것으로 인식된다는 것이 다르다. 그러나 이른바 형상이든 개념이든 이른바 보편자를 통해 개별자에 대한 인식과 식별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즉 플라톤의 형상론에서 ‘형상과 현상의 관계’와 현상계 내에서 ‘개념과 개체의 관계’는 마치 하나는 보편-개별 관계의 원상이고 하나는 보편-개별 관계의 모상인 양 구조적으로 닮아 있어, 비록 현상계의 인식이 분유치에 대한 개연적 설명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오늘날 학적 인식의 관점에서 현상계에서 사물들에 대한 개념적 인식과 그것의 정합적 체계화가 구조적으로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 그러나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비록 형상에 대한 인식이 참된 앎이고 그것에 이르는 학술이 변증술이자 철학이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그렇게 해서 획득된 앎의 내용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플라톤 자신 대화편 어느 곳에서도 자세히 말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굳이 그 내용이 있다면 형상들의 실례 정도, 그것도 불분명한 수준 정도의 밖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게다가 그 자신을 포함 누군가 그것에 대한 앎을 획득했다는 언급도 없고 그저 철학자가 그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할 뿐이다. 이것은 플라톤 철학에서조차 형상계와 관련해서는 여러 형상들이 있다는 정도 외에 철학자가 아닌 일반적인 학자 수준에서 알 수 있는 것이 따로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요컨대 이런 측면에서 보면 결국 형상계에 비교하여 비록 낮게 평가되고 있으나 바로 그 현상계가 일반 학술 차원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학적 인식의 실질적인 중심 영역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플라톤 또한 결코 현상계 영역을 허투루 다루고 있지 않다. 사실 이곳 형상론도 정의로운 국가를 논의하기 위한 이상적 푯대이자 토대로 제시된 것이다. 이것은 얼핏 세계를 물자체가 존재하는 예지계와 현상계로 나누고 실질적인 학적 인식을 현상계에 대한 오성(Verstand)의 인식으로 국한한 칸트(I. Kant)의 비판적 인식론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칸트의 실천철학에서도 신은 위계상 지고의 존재임에도 현실의 도덕을 성립시키기 위해 요청(Postulat)되는 형식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그에게서 신학은 위계상 최고의 학문임에도 도덕론에 부수되는 것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 다양하고 흥미로운 논쟁점을 갖고 있는 영역이 또 플라톤의 현상계이다. 바로 그 현상계에 대한 논의가 이곳 형상계에 대한 논의에 이어서 다루어진다. -끝-

다음 주제: 1. 철학자에 대한 정의 : 이데아론에 의거한 규정(474c- 제5권 끝 480a)

(2) 현상계와 믿음(doxa)(474c-476d)

나라의 이유: 레종 데타(Raison d’État) ① [내게는 이름이 없다]

나라의 이유레종 데타(Raison d’État)

 

행길이(한철연 회원)

 

1

이따금 나라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올바른 나라란 무엇이고정의로운 나라란 어때야 하는지가 궁금했다이에 대해선 여전히 궁금하지만조금 더 알고 싶은 건 나라의 이유다나라가 좀 더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올바른 나라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묻게 되었지만계속 묻다 보니 굳이 나라가 있어야 할까?’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이다찾아보니 나라 없이도 잘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의외로 많았다믿었던 나라에 발등 찍히는 일이 많은 요즘나라 없는 이들이 부러워 보이기도 한다그렇긴 해도 나라가 없어 설움받았던 우리와 세계 곳곳을 떠도는 난민들의 고초를 떠올리면 나라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존재 이유를 묻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하다근본적 물음은 새로운 길로 이끌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대답의 행로가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도 없고간혹 그 대답이 우리를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여기에 끄적이게 될 글들은 나라의 이유를 탐문하는 과정의 기록들이다일단 나라가 생긴 이유를 통해 나라가 있어야 할 이유나 없어도 될 이유를 짐작해 보고자 한다. ‘올바른 국가란 무엇인가라든가 국가의 목적은 무엇인가’ 등과 같은 거창한 물음에 대한 답은 우선 미뤄두기로 한다그런 얘기라면 이미 빛나는 지혜를 지닌 수많은 사람들이너무도 일찌감치참으로 훌륭하게 풀어 놓았다여기서는 그저 내가 이곳 저곳에서 보고 들었던 나라에 대한 이야기들을 헐렁하게 늘어놓고자 한다누구에게는 전인미답의 이야기들일 수 있지만누군가에게는 뒤늦은 담론일 수도 있다후자라면 비판적 가르침을 부탁드린다.

여기 써 내려 간 모든 이야기는 작은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각 파편들의 이야기는 독립되어 있는 동시에 서로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때로는 사료나 민족지적 자료에서 뽑아낸 이야기를 쓰기도 하겠지만경우에 따라서는 추정과 상상을 길잡이로 삼아 자료의 공백을 채워보기도 할 것이다근거 없는 허무맹랑한 얘기가 될 공산이 크다따라서 앞으로의 이야기는 눈동자가 발가락에 붙고머리와 꼬리가 구분되지 않으며상상이 근거를 압도하는 터무니 없고도 어처구니 없는 형세로 전개될 수도 있다.

감히 이 글을 읽는 독자의 태도에 대해 첨언한다면눈썹의 힘은 풀고비스듬히 누운 채곁눈질로 읽는 것이다읽다가 지겨우면 저만치 치워뒀다가 다시 읽어도 무방하며재미 없으면 슬쩍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도 좋다뒤에서부터 읽어도 되고 중간부터 읽어도 상관 없다어차피 모든 이야기는 나라가 있게 된 이유와 없어도 될 이유에 관해서이거나지금은 없으나 어쩌면 있었을지도 몰랐던 나라에 관한 이야기들로 대략 흘러들어갈 것이다흘려 듣다가 문득 비판적 눈길을 던져준다면 더욱 감사하겠다나라 없던 시절족장의 말을 공공연히 흘려들으며 그들의 위세를 견제했던 부족민들처럼(이 얘기가 궁금하면 계속 읽어 주세요ㅎㅎ).

마지막까지 읽어도 나라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이렇다 할 답은 아마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오히려 나라에 관해 늘어 논 여러 가지 이유들로 머리만 복잡해 질지도 모르겠다나라에 살 이유나라에 안 살 이유나라가 생긴 이유나라가 없어진 이유나라가 있어야 할 이유나라를 없애야 할 이유나라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이유나라 안에서 나라 없는 듯이 살아도 될 이유…….

헤겔미학산책 17-신의 비애, 희극과 풍자[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 17-신의 비애, 희극과 풍자

 

1) 비애감

그리스 도시 국가는 곧 민족 국가였다. 그리스 국가는 국가와 혈연, 국가와 개인 사이에 직접적 결합 또는 상호 균형을 통해 존재했다. 물론 이 균형은 서로 대립된 두 원리 사이에 서로 침범하고 다시 서로를 회복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동적인 균형이었다.

 

그리스 국가가 후기로 가면서 내적으로는 개인의 자각이 발전하면서 내적으로 개인은 국가에 대한 관습적 복종에 의문을 품으면서 국가를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이런 모습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선동한 알키비아데스의 모습에서 잘 나타난다. 외적으로는 페르시아 전쟁 시기 이루어졌던 도시 국가 동맹은 해체되고, 펠레폰네소스 전쟁과 같은 분열에 처했다.

 

내적이거나 외적인 분열을 거쳐가면서 고대 국가는 새로운 국가로 발전하고 있었으니, 그 첫 걸음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내디뎠다. 하지만 그가 젊은 나이로 죽음으로써 그가 맡았던 역사적 역할은 로마가 담당하게 되었다. 마침내 로마는 외적으로는 거대한 통일 제국을 형성했고, 내적으로는 만민법을 통해 개인에게 자유로운 법적 인격을 부여했다. 하지만 이는 황제의 자의적인 지배 아래서 이루어진 통일과 자유이었다. 이런 시대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새로운 정신의 출현을 알렸다.  

 

그리스 국가의 분열에서 알렉산더를 거쳐 기독교 공인 이전의 로마 제국에 이르기 전까지의 시대를 흔히 헬레니즘 시대라고 하지만, 헤겔은 이 시대를 고전 시대의 몰락기로 본다. 새로운 사회가 배태되고 있던 로마 공화정 시대와 초기 로마 제국까지 고전 시대의 몰락기에 집어넣는 것은 이상하지만 로마 제국 기독교 공인으로부터 새로운 정신이 출현하는 헤겔의 시대 구분에서는 불가피하다.

 

고전주의 시대가 전성기에서 몰락기로 전환하면서 고전적 예술 형식은 몰락하는데, 헤겔은 이런 몰락의 징조를 신상 즉 조각 입상에 어려 있는 비애감을 통해 발견한다. 조각 입상은 고요하게 머무르는 가운데 비애감을 느끼게 한다.

위의 작품은 AD 130-138년 경 작품, 로마 하이드라누스 황제의 애인으로 알려진 안토니우스 상이고, 지금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한다. 이 작품에서 헤겔이 말한 비애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전성기 시대의 작품에서도 고요한 가운데서도 얼핏 이런 비애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은 이 비애감은 그리스 신이 지닌 개별성 때문이라고 본다. 이 개별성 때문에 신들은 상호 투쟁할 수밖에 없고, 이런 투쟁 속에서 개별적인 신들 자신이 더 높은 최고의 신에 의해 몰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 이 운명이 조각입상에 어린 비애감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슬픔은 그들의 운명을 형성하니 까닭인즉 그것은 무언가 한층 더 높은 것이 그들 위에 있다는 점, 그리고 특수함으로부터 그들의 보편적 통일로 향하는 이행이 필연적이라는 점을 지시하기 때문이다.”[1]

 

2) 희극

헤겔은 고전 예술의 몰락 과정을 그리스 말기와 로마 시대로 구별하여 서술하는데, 그리스 말기 예술의 전형적 특징은 희극에서 잘 드러난다. 반면 로마 시대의 전형적 예술은 풍자이다. 희극이든 풍자이든 이제 예술의 핵심적 주제가 되는 것은 실체적 신이 아니라 주관적인 개인이다. 이 주관적 개인은 그 이전 시대 관습의 지배 아래 있던 개인도 아니며, 그렇다고 근대의 무한한 주관성으로서 개인도 아니다. 이 개인은 자기 자신에 눈을 뜨고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 시작하는 개별적 개인이다.

 

그리스 말기에 등장한 희극은 개인의 주관적 자유가 발전하면서 국가에 대한 관습적 복종이 해체되면서 나타나는 현실을 타락으로 생각한다. 작가는 개인의 주관적 자유가 전개되는 일상적 삶을 자기를 전도하고 자기를 해체하는 아이러니한 것으로 간주한다.

 

예술은 이런 일상적 삶에서 개인의 자기 전도와 자기 해체를 노골적으로 폭로하는데, 작가는 이런 폭로를 통해 자기의 주관적 자유가 자기 부정을 통해 다시 말하자면 이런 일상적 삶의 자기 파괴를 통해서 실체적 정신에 대한 복종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오염을 겪는 어리석은 현실을 밝히는 방식은 현실이 자체 내에서 자기를 파괴하는 식이다. 이는 현실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Richtigkeit]을 스스로 파괴하는 것을 통해서 이런 현실의 반영상[Widerschein]으로부터 진정한 것을 자기에게 확고하고 지속하는 위력으로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며 어리석고 비이성적인 현실의 측면에 자체 내에서 진리에 직접 대립하는 힘을 박탈하기 위한 것이다.”[2] 

 

헤겔은 이것이 아리스토파네스가 희극을 다루었던 방식이라 하는데, 여기서 희극은 여전히 실체적 정신에 대한 복종이 회복되기를 기대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그리스 정신의 한계 내에 머물러 있다.

 

3) 풍자

로마 시대 가장 번성한 예술은 풍자이다. 풍자 예술에서 작가는 현실에 대립한다. 현실에서 개인은 이기적 목적과 세속적 욕망을 통해 살아간다. 작가는 고결한 덕성이라는 입각 점에 서서 그에 대립하는 현실에 대해 분노하고 폭로하고 비판한다.

 

하지만 작가가 서있는 덕성조차도 사실은 개인적 목적의 일반화로부터 나온 것이니, 세속적 현실과 다를 바 없다. 그런 덕성은 실체적인 정신과 구분되는 주관적 정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헤겔은 이런 대립관계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풍자는]… 주관으로서의 자신에게서 기인하는 주관이 추상적 지혜 속에서 선과 덕에 대한 인식 및 의지를 갖고 타락한 현재에 대해 적대적으로 대립하도록 만든다. 이런 대립은 해결 불가능하니, 왜냐하면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경직된 부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대립으로부터 양 측면의 산문적 관계가 형성된다.”[3]

 

그리스 희극에서는 여전히 도시 국가의 정신을 회복하려는 시도가 들어 있다. 하지만 로마 시대 풍자에 이르게 되면 도시 국가와 같은 실체적인 것은 사라져 버린다. 남아 있는 것은 개인적 주관일 뿐인데, 풍자가 아무리 일반적 선과 덕을 표방하더라도 주관성을 넘어가지 못한다.

 

고전적 예술 형식에서 예술적 형상의 의미는 이념 자체 즉 정신이었다. 이제 풍자에 이르게 되면, 정신적 의미가 사라지고 예술을 통한 현실에 대한 비판은 곧 개인적 덕성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니, 이런 점에서 헤겔은 이런 관계를 산문적인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상징주의 예술 형식은 원래 의미와 형상의 괴리에서 출발하여 양자의 유사성을 향해 나가며 유사성이 발전하면서 끝내 정신적 의미가 사라지고, 작가가 개인적으로 설정한 의미로 전락하면서 비유라는 예술 형식이 출현했다.

 

반면 고전주의 예술 형식은 의미와 형상의 일치에서 출발하면서 점차 양자의 괴리가 등장하게 된다. 이제 풍자에 이르러 예술적 형상의 의미는 정신적 의미가 사라지고, 주관적 의식 속에 현존하는 의미[즉 덕성]로 대체되니, 여기서 고전적 예술 형식은 해체된다.

 

4) 운명

실체적 정신을 상실한 개인은 상호 대립 속에서(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개념에서 보듯이) 그 스스로 자신을 통일하는 원리를 생성한다. 그것이 곧 “내적으로 추상적이며 비형상적인 것” 즉 “필연성과 운명이다.” 그런 운명은 개별적 인격을 강제하는 것이지만 그 자체로는 “불가해하고 비개념적인 것”[4]이다.

 

알 수 없으나 필연적인 운명의 힘은 “그 자체로는 어떤 형상화나 개성을 갖지 않은 것이다.” 운명은 로마 황제의 절대적인 자의를 배후에서 지배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힘을 발휘한다. 로마 황제는 이런 필연적 운명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이제 고전주의 시기 말기에 이르러 세속적 현실과 불가해한 운명이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한다. 운명이 지배하는 시대, 이런 운명은 더 이상 자기를 표현할 수 없으니, 마침내 예술은 출현하지 않는다. 헤겔은 로마를 지나가 새로운 신이 출현하면서 다시 예술이 부활하게 된다고 말한다.


[1] 미학강의 2권, 116쪽

[2] 미학강의 2, 127쪽. 번역은 필자가 수정

[3] 미학강의 2, 130쪽. 번역은 필자가 수정

[4] 미학강의 2권, 116쪽

헤겔미학산책16- 고전적 예술 형식[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 비평]

헤겔미학산책16- 고전적 예술 형식

 

1) 자기 관계

상징적 예술 형식에서 설명했듯이 정신이 추상적이고 무규정성 상태에 머무르고 있을 때, 그 정신을 표현하는 예술 형식은 수수께끼와 같은 상징이었다. 왜냐하면 이런 추상적 무규정적 정신은 자각될 수 없는 것이기에 형상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러 정신 즉 민족 국가 또는 도시 국가는 자신을 개별적으로 구체화한다. 이런 정신은 자각이 가능하게 된다. 자각은 이제 감각적인 형상으로 표현되니 그것이 곧 정신의 닮은 꼴 또는 정신이 비추어진 영상이다. 헤겔은 이런 영상을 현상적 기호라 부른다.  

 

헤겔은 정신의 감각적 형태 즉 정신의 영상은 인간적 형상이 아닐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정신이 인간의 집단 의지를 의미하는 한 그런 정신은 인간 자신의 표정과 자세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고전주의 시대에 들어와서 예술 작품에서 동물적 형상은 사라지거나 아테네 여신의 어깨에 있는 부엉이처럼 점차 부차적인 요소로 전락한다.[1] 

 

정신의 닮은 꼴, 정신이 비추어진 모습 즉 영상 또는 현상이 곧 고전적 예술 형식이다. 여기서 고전적 예술 형식의 근본적인 원리가 밝혀진다. 그것은 곧 형상과 그것이 의미하는 정신의 일치이다. 이런 일치는 다시 말하자면 곧 형상은 정신의 ‘자기 관계’이며, 정신이 ‘자기를 해명하는 것[das sich selbst Deutende]’, 정신이 ‘자기 자신을 의미하는 것[das sich selbst Bedeutende]’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헤겔은 이런 일치, 자기 관계로부터 고전 예술의 다양한 느낌을 끌어내는데, 이 느낌에 대한 헤겔의 표현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곧 밝음과 명료성, ‘거침없는 자유’ 와 자립성, ‘무한한 확실성과 고요[Sicherheit und Ruhe]’,  ‘근심 없는 지복[Seligkeit]’과 명랑성[Heitrlichkeit]과 같은 느낌이다. 헤겔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한다.

 

“영원한 진지함, 동요 없는 평안이 신들의 이마에 왕관을 올린다.”[2]

 

“정신은 전적으로 외적인 형상 속에 침잠한 채로 나타나며, 또한 동시에 그런 외적인 형상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내에 침잠해 있다. 그것은 마치 가사적인 인간 사이에서 불멸하는 신이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3]

 

2) 이상화와 미

정신과 형태가 일치한다면 이를 통해 형태를 이루는 개별적 요소는 서로 분리되지 않고 유기적인 연관을 맺는다. 흔히 그리스 예술에서 이런 유기적 연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곧 황금 분할의 비율이라 하는데 헤겔은 단순한 수적인 규칙보다는 오히려 이런 비율이 정신적인 것을 표현한다는 점을 주목한다. 예를 들어 헤겔은 그리스 조각 작품의 두상이 지닌 비율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얼굴은 입과 광대뼈가 들어가고 이마가 나옴으로써 정신적 특성을 얻는다. 이를 통해 앞으로 나온 이마는 필연적으로 두개골의 전체 구조를 규정하는 요소가 되는바, … 오히려 이마에서 코를 지나 턱밑까지 하나의 선이 그어지고 이 선은 뒷머리에서 이마의 정점으로 이어지는 두 번째 선과 직각을 혹은 직각에 가까운 각을 형성한다.”[4]

형태가 이처럼 유기적 연관을 맺게 되면서 이런 유기적 연관과 무관한 개별성에 속하는 형태의 측면은 순화되고 그 결과 형태는 이상화된다. 이런 이상화된 인간의 모습은 곧 영웅의 모습이다.

 

“우리는 신들의 구체적 개별성에서 유한자의 갖가지 궁핍으로부터 초연한 정신적 기품과 고결이 드러난다는 것을 본다. 순수한 내면 존재, 각종 규정성으로부터 추상적 해방은 어쩌면 숭고성으로 이끌릴 법도 하지만 …정신의 숭고성마저도 아름다움 속으로 직접 이행한다. … 이 점이 신들의 형상에서 고결의 표현 곧 고전적 의미에서 미적 숭고성의 표현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든다.”[5]

 

헤겔에서 미는 여기에서 보듯이 조화와 균형, 비례를 의미하니, 예술 가운데 오직 고전적 예술만이 이런 미적인 것을 가지게 된다. 그 외 상징적 예술과 낭만적 예술에서 정신의 표현은 오히려 미적인 것과 충돌하게 된다.

 

3) 총체성의 결여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고전 예술은 자기 연관, 유기적 통일성과 미라는 보편성의 측면만 갖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개별성의 측면을 가지니, 이런 개별성은 추상적인 개별성이 아니라(그런 개별성은 이상화하는 가운데 제거된다) 보편성을 표현하는 개별성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아폴론 신은 월계수를 쓰고 리라를 든 모습으로 묘사되거나 아테네 여신은 투구를 쓰고 창과 방패를 들고 나온다. 여기서 월계수나 리라, 그리고 투구와 창 방패는 그 자체로는 개별성이지만 그것이 아폴론이나 아테네 신의 본성을 드러내는 징표로 사용될 때, 헤겔은 이를 특수성이라 한다. 여기서 보편적 신성과 개별성은 매개 없이 직접적인 결합으로 결합되어 있다.

 

개별성과 보편성과 직접 매개 없이 결합되어 있으므로 그런 특수성이 이루는 전체 집합은 유기적인 통일성을 형성하지 못한다. 이로부터 헤겔은 그리스 신들이 지닌 다양한 한계를 제시한다.  신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은 상당히 혼란스럽고 중첩되며, 불완전하다. 

 

하나의 신도 여러 특수한 징표를 갖는다. 예를 들어 아폴로 신은 리라 외에 활을 들고 나오기도 하고, 아테네 여신은 투구를 쓴 것 외에 어깨에는 올빼미가 앉아 있기도 한다. 동일한 본성을 여러 신들이 대변하니, 군신으로 아레스와 헤파이토스가 분열하며, 빛의 신은 아폴론과 헤르메스로 분열하며 여신은 아르테미스, 아테네, 아프로디테로 분열한다. 또한 여러 신들 사이에는 아직 어떤 통일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제우스는 신들의 통일성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개별적인 한 신에 불과하고 그의 명령은 다른 신들을 완전하게 굴복시키지 못한다. 신들 사이에는 끊임없는 불화가 존재하며, 제우스조차 이 불화 속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이것이 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푸스의 의미이며 신들의 잡다성은 로마에서 만신전의 형태로 여전히 유지된다.  

 

4) 상호 균형

그리스 정신이 보편성과 개별성이 직접적으로 결합된 결과 여기서 그리스 정신은 다시 두 가지 대립된 원리의 결합으로 나타난다. 보편성이 국가의 원리라면, 개별성은 곧 혈연의 원리이니, 그리스 도시 국가는 시민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면서도 여전히 혈연의 원리인 민족성을 버리지 못한다. 즉 민족 국가이다.

 

두 가지 원리가 직접 결합된 결과 두 원리는 상호 균형을 이룬다. 이런 상호 균형은 정적인 방식이 아니며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일어나는 균형이니, 여기서 두 원리가 서로를 침해하고 그 결과 서로의 몰락에 의해 다시 균형이 회복되는 운동이 일어난다.

 

그리스 정신의 특징인 특수성은 앞에서 말한 신의 징표로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런 특수성은 그리스적 인물이 지니는 특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와 그에 대립하는 클레온은 모두 그리스적 정신이 지니는 특수성을 대변한다. 안티고네는 그 가운데 혈연의 원리를 대변하며, 클레온은 국가의 원리를 대변한다.

 

그들은 자신이 대변하는 특수성을 직접 매개 없이 대변하므로 단호하고 영원히 이를 대변한다. 그 때문에 각자는 자신이 대립하는 원리에 의해 파멸에 이른다. 국법을 어기고 혈연인 오빠를 묻어준 안티고네는 클레온의 명령에 의해 감옥 속에서 죽는다. 조국의 배반자를 처단하려는 클레온은 가족의 원리를 위배하면서 그의 아들과 아내가 죽게 된다. 이런 상호 파멸을 통해 서로 대립된 두 원리는 다시 균형을 회복하게 된다.

 

4) 신과 인간

보편성과 개별성의 직접적 매개 없는 결합은 예술 작품 속에서 보편적 신과 개별적 인간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신 모습 자체가 인간의 모습을 닮았으며 인간적 영웅은 곧 신적인 존재가 된다. 인간과 신은 함께 살아가며 인간의 행위가 신의 행위를 촉발하며, 거꾸로 신의 행위가 인간적 행위를 유발한다. 신은 인간의 삶 속에 들어와 수시로 개입하며 심지어 인간이 신의 세계 속으로 끌려들어가기도 한다.

 

이런 상호 침투와 중첩에도 불구하고 신과 인간이 영원히 구분된다. 신이 인간적인 삶 속에 개입하더라도 그것이 신의 신성을 해치는 것은 아니며, 인간이 신의 개입을 요구하더라도 그 책임은 항상 인간 자신에게 돌아간다.

 

헤겔은 이런 예로서 서사시 일리아드에 나오는 여러 얘기를 소개한다. 그리스 진영에 퍼졌던 흑사병은 아가멤논이 아폴로 신전의 제사장 크리세스의 딸을 포로로 하고 크리세스의 간청에도 풀어주지 않자, 아폴로의 분노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또한 헤겔은 아킬레스의 죽음에 관한 오디세이아의 서술을 소개한다. 

 

“그리스인들은 종일토록 싸웠으며 제우스가 싸우는 자들을 뜯어 말렸을 때 그들은 비로소 고귀한 시신을 배로 옮겼으며 또한 울먹이면서 시신을 씻고 향유를 발랐소. 그러자 바다에서 신의 울부짖음이 일었는데”  “어머니[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가 죽은 아들을 맞이하기 위해 불사의 바다 님프들과 함께 바다에서 나왔소”[6]

 

헤겔은 이 인용문 끝에 아킬레우스에게 다가간 것은 인간적인 것 즉 흐느끼는 여인인 어머니이며 또한 이는 그들 자신의 본 모습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의 행위 자체가 신의 행위로 서술되어 있다는 것이다.

 

5) 예술과 종교

그리스 예술의 기본 원리는 예술과 종교의 관계에서도 관철된다. 예술과 종교는 동일한 그리스 정신의 원리를 표현하지만 그 표현방식은 다르다. 종교는 마음 속의 환상을 통해 표현하며 예술은 물질적 형상을 통해 표현한다. 마음속의 환상과 물질적 형상은 서로 대응하니, 예술과 종교는 서로 상응한다.

 

우선 예술은 표현을 위한 소재를 종교 속에서 찾는다. 예술이 신과 신화를 표현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념을 표현하기 위한 소재일 뿐이며 예술이 봉사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곧 그리스 도시 국가이다.

 

민중은 이미 이념에 관한 어떤 환상을 마음 속에 가진다. 하지만 이는 무의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니, 이런 환상이 물질적 형상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민중은 자기 마음 속의 환상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종교는 예술을 통해 비로소 자기를 표현할 언어를 발견하니, 예술가는 민중에게 예언자이며 교사가 된다.

 

예술가는 소재를 종교에서 찾으니 이미 종교적으로 전승된 것을 바탕으로 한다. 이런 종교적 전승이 없다면 예술은 성립할 수 없다. 하지만 예술가는 이런 전승된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는 이런 전승된 것을 소재로 이념을 현상화하면서 이를 아름다운 형상으로 만들어내니, 이런 작업은 한편으로 예술가의 독창적인 창조에 속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에는 이미 전승된 것을 조탁한 것이라 하겠다.

 

그리스 예술 형식에서 인간과 신이 중첩되어 있듯이 예술과 종교 역시 중첩되어 있다. 그리스 종교는 <정신현상학>에 나오는 헤겔의 표현을 빌리자면 곧 예술 종교이다.


[1] 인간적 형태를 취한다고 해서 의인화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지혜가 아테나 여신으로 표현될 때, 아테나 여신은 지혜의 의인화가 된다. 하지만 고전 예술에서 지혜는 아테나 여신이 지닌 여러 속성 중의 하나이며, 아테나 여신은 그 자체가 하나의 주체로서 활동한다. .

[2] 미학강의 2권, 91쪽

[3] 미학강의 2권, 91쪽

[4] 미학강의 2권, 415쪽

[5] 미학강의 2권, 89-91쪽

[6] 미학강의 2권, 87

헤겔미학산책15-피디아스와 라오쿤[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15- 피디아스와 라오쿤

 

1)

헤겔은 미학강의 2권에서 그리스 조각을 설명하면서, 느닷없이 영국의 외교관 엘진 경을 거론한다. 그는 1789년에서 1803년 사이에 터키 제국에 파견된 영국 외교관으로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을 떼어내어 영국으로 가져온 인물이다. 

 

헤겔은 언급하기에 사람들(특히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이 그렇다)은 그를 약탈자라고 비난하지만, 그 자신은 오히려 가만 두었으면 이슬람 지배 아래 파괴되었을 예술품을 구출하였다고 평가하겠다고 말한다. 엘진 경의 약탈물은 지금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는 그의 약탈 때문에 파산했으니[1] 신으로부터 충분히 처벌받았다고도 하겠으나, 엘진 경의 콜렉션은 헤겔이 고전적 예술형식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점은 미학강의에서 헤겔 자신이 이렇게 말하는 데서 잘 알 수 있다.

 

“이 시대 작품들에서 이구동성으로 평가되는 것은 형식과 자세의 매력과 고상함이 아니며 피디아스 이후의 시대에서처럼 이미 외부를 향하는, 그리고 감상자의 측면의 만족을 목적으로 삼는 우아함이 아니며, 제작의 섬세함과 대담함 또한 아니며 오히려 일반의 찬사가 주목하는 것은 이 형상들이 갖는 자립성과 자기 관계성이다. 그리고 특히 자연적 질료적인 것을 완전히 꿰뚫고 지배하는 자유로운 생동성을 통해 경탄은 정점으로 치달았다.”[2]

 

결론적으로 말해 엘진 경의 약탈물이 들어오면서 그리스 예술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 이전 그리스 예술은 매력과 고상함, 우아함 등 때문에 만족을 주었으나, 이제 자립성과 자기 관계성, 자유로운 생명성 때문에 경탄을 주고 있다고 한다.

 

2)

여기서 엘진 경의 약탈물이 미친 영향을 이해하려면, 그 작품의 유래를 이해해야 한다. 엘진 경의약탈물은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에 부착된 조각품이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가 그리스 동맹을 이끌고 페르시아 전쟁에서 이룬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페리클레스가 BC 5 세기경 건축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 신전 건축을 지도했던 인물이 바로 그리스 조형 예술 역사에서 정점을 이룬 피디아스의 작품이 아니었던가? 그런 점에서 엘진 경의 약탈물은 그리스 조형 예술의 최고작품을 대변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이전 시기 그리스 조형 예술을 대변했던 작품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그 이전 시기 그리스 조형 예술의 대표작은 빙켈만에 의해 평가되어 신고전주의 시기 모범이 되었던 작품인 Apollo BelvedereLaocoön 군상,  Belvedere Torso, Antonous Mondragone과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BC 3세기 그리스 몰락기에서부터 AD 2세기 헬레니즘 시대의 작품이며 지금 대부분을 교황청이 소유하고 있다.

 

두 시대의 작품을 비교해 보기만 하면 헤겔이 왜 미학강의에서 위와 같은 말을 남겼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엘진 경의 약탈물 중의 하나를 보자. 이것은 파르테논 신전 페디먼트에 부착된 것으로 엘진이 가지고 와서 지금 대영박물관에 보관하는 조각상 중의 하나다.

 

이것과 비교하여 전성기가 지난 BC 4세기 작품을 보자. 이것은 그 시대 크니도스에서 만들어진 이후 AD 1세기 로마 시대 복사한 것으로 교황청에서 소장하고 있는 크니도스의 비너스 상이다.

전성기 작품은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과 자립성이 지배하고 있다. 반면 몰락기 작품은 헤겔 말대로 우아하고 고상하며 특히 약동적이다. 물론 전성기 작품 속에서도 몰락기 요소를 찾을 수 있으며, 몰락기 작품 속에서도 전성기의 요소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지배적인 것은 전 후 시대 서로 다른 것이었다.

 

3)

고전주의 작품은 처음에는 주로 16세기 들어와 로마에서 발굴된 것을 통해 알려졌다. 당시 아테네는 오스만 터키의 지배 아래 있었으므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발굴된 것은 앞에서 말한 로마 교황청 소장품과 같은 것인데, 르네상스 이래 사람들은 그런 작품의 주로 표면적인 모습에 주목했다.

 

그 결과 르네상스 시절 고전 예술은 세속적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지닌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것은 인간의 순간적으로 운동하는 모습이 그대로 포착된 리얼한 것이었으며, 보는 사람의 욕망을 자극하고 해방하는 힘을 지녔다. 헤겔의 말대로 우아하고 고상하고 매력적인 모습은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 보티첼로의 비너스 상에서 너무나도 잘 드러난다.

 

 

고전 예에 대한 이런 이해에 방향을 바꾸어 놓은 사람이 빙켈만이다. 빙켈만은 18세기 초 직접 로마로 가서 교황청이 소장하고 있는 발굴품을 직접 보면서 그 핵심을 ‘고귀한 단순성과 고요한 위대함’이라는 개념으로 규정했는데, 그로부터 그리스 예술을 파악하는 고전주의적인 관점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리스의 뛰어난 미술 작품들이 자세와 표현에서 보여주는 가장 일반적이고 현저한 특징은 결국은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이다. 아무리 바다의 표면에 거친 풍랑이 인다 해도 깊은 심연 속은 언제나 고요를 지킴과 같이, 그리스 조각상들은 격정의 한가운데 있다 해도 위대하고 초연함을 지키는 영혼을 재현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평가했을 때 토대가 되었던 작품은 교황청 소장 라오쿤 군상이었다. 그는 이 라오쿤 군상[3]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러한 영혼은 라오콘 군상, 특히 라오콘의 얼굴에서 격렬한 고통에 맞서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의 육체의 모든 근육에서 고통이 드러난다. 굳이 얼굴과 다른 신체 부위를 보지 않고 고통으로 수축된 그의 복부만을 보더라도 충분히 고통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을 느낄 있다. 그러나 고통은 얼굴 표정이나 다른 몸짓이 격렬하기 때문에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다. 라오콘 상은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라오콘처럼 끔찍한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라오쿤 군상의 표면적 모습은 고통으로 가득 찬 인간의 비명을 지르는 순간을 표현한다. 그 표면적 모습만 보면 이 군상은 오히려 그리스 예술의 후기 즉 몰락기에 나타나는 모습에 가깝다. 그런데도 빙켈만은 이런 모습 속에서 고통에 맞서 자기를 유지하는 고귀함과 고요함을 보니, 빙켈만은 표면적 모습에 감추어져 있는 심층적 모습을 간취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하겠다.

 

위대하고 고귀한 영혼은 조화롭고 고요한 상태에서 발견된다. 라오콘 상이 고통만을 묘사한다면 그것은 파렌티르소스일 것이다. 그러나 조각가는 영혼의 독특함과 고귀함의 성질을 통일하기 위해서 라오콘을 극한 고통 가운데 두면서도 고요한 상태와 맞닿아 있는 동작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영혼의 평정은 유일하고 독특한 성격에 의해 나타나야 하고 형태에 고요와 움직임을 동시에 부여해야 한다. 그것은 지루하거나 둔감하지 않은 고요함이다.”

 

빙켈만은 고전 예술의 영향을 받은 르네상스 작품 가운데 보티첼리보다는 오히려 라파엘로를 높이 평가한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시스티나의 마돈나 상과 같이 라파엘로의 그림에서는 고귀함과 고요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래 시스티나 마돈나 상 가운데 마돈나의 얼굴 모습을 보라.

 

4)

헤겔이 빙켈만의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가는 그가 고전 예술을 평가하면서 제시하는 개념을 통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고전 예술의 대표적 특징으로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고요함과 자립성을 갖는다고 하는데, 그런 개념은 빙켈만으로부터 유래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헤겔은 고전 예술이 단순히 고요함과 자립성만 지니는 것은 아니라 한다. 고전적 예술은 또 하나의 특성을 동시에 지닌다고 본다. 즉 생동성이다. 어느 시대에도 두 요소가 다 존재하지만 그 가운데 자립성은 전성기 시대 지배적이었고 생동성은 오히려 몰락기에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헤겔은 <미학강의>에서 이행기를 거친 이후 고전 예술의 발전을 두 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1] 터키 외교관 시절 엘진은 사비를 들여 그리스 미술품을 발굴했고 특히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조각품을 떼어냈다. 엘진의 약탈물은 1803년 영국으로 보내졌으나 수송 도중 배가 침몰하여 이를 인양하는 데 많은 돈이 들었다. 그는 프랑스를 거쳐 귀국하다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으로 전쟁포로가 되었다. 나폴레옹에 탄원한 끝에 석방되어 1806년 귀국했다. 귀국해서 그는 자신의 부인이 자기의 친구와 바람이 났다는 것을 알고 이혼 소송을 하느라 많은 돈이 들었다. 그 때문에 처음에 사설 박물관을 세우기 위해 들여왔던 조각품을 영국 정부에 판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가 들인 전체 비용의 반 값으로 판매했으니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그는 나폴레옹에 탄원하는 중 그가 했던 발언 때문에 영국 정부로부터 상원의원과 귀족이라는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는 그를 추궁하는 빚쟁이를 피해 1820년 프랑스로 도피하여 1840년 파리에서 죽었으니, 약탈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받았다고 하겠다.

[2] 미학강의 2권, 409쪽

[3] 라오쿤 군상은 트로이의 신관 라오쿤과 그의 두 아들이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바다 뱀에 물려 죽는 모습을 조각했다. 이 작품은 로도스 섬 출신 세 명의 그리스 조각가가 제작했다고 알려지며, BC 2세기 경 제작된 원본을 로마 황제 시대 복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논평> – 고(故) 남기호 교수의 철학적 작업에 관해서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 비평]

<야코비와 독일 고전철학> 논평

–고 남기호 교수의 철학적 작업에 관해서

 

이 글은 2024년 1월 11일 한철연 신년회에서 진행한 『야코비와 독일 고전철학』(故 남기호 회원 저) 북콘서트에서 논평한 내용입니다. 헤겔과 야코비를 중심으로 전개한 남기호 교수의 학술 작업에 대한 평가를 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남기호 교수를 잘 알지 못하지만, 가끔 학회나 논문을 통해 엿보게 되는 치열하게 철학을 연구하는 모습, 그것도 현실의 삶과는 무관한 것과 같은 형이상학을 그리고 이 시대는 거의 죽은 개로 버려진 헤겔 철학을 연구하는 모습은 나에게는 아주 감동적이었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철학을 쌓아 올릴 나이에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난 남기호 선생을 생각하면 마음 속에서 철학의 순교자라는 말이 떠오른다.

남기호 선생의 철학적 고투를 가슴에 새기고 그가 노력하여 얻은 성과를 정리하여 그 위에서 우리의 갈 길을 열어나가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의무가 아닌가 해서 비록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여기 그의 철학적 성과를 정리하여 놓고자 한다.

 

1) 남기호 교수의 철학적 작업

필자가 알기로 남기호 교수는 그 동안 두 권의 연구서를 냈다. <헤겔과 그의 적들(도서출판 길, 2019)>과 <독일 고전 철학의 자연법>(도서 출판 길, 2020)이다. 위의 두 연구서는 법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 남교수는 그 동안 여러 논문을 작성했고 그 중 헤겔 관련 논문을 제외하면 대부분 논문이 야코비와 관련된 논문이다. 아마 야코비 관련 논문들이 이번 유고집으로 발간된 책 <야코비와 독일 고전철학>으로 집성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발간된 두 권의 책에서 주로 논의되는 것은 헤겔 당시 독일에서 전개된 계몽주의의 자연법 사상과 낭만주의의 역사법 사상 사이의 논쟁이며, 이번 책에서 주로 논의되는 것은 낭만주의자인 야코비가 전개한 독일 고전철학자(레싱, 칸트, 피히테, 셸링, 헤겔 등)에 대한 비판이니 남교수의 철학적 문제의식 속에는 낭만주의와 합리주의 사이의 대결이 가로놓여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논의 가운데 남교수의 입장은 대체로 헤겔의 자연법과 이성적 인식을 옹호하는 입장이지만, 남교수는 헤겔을 단순히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계승자로 보지 않고, 야코비를 비롯한 낭만주의의 비판을 수용하면서 합리주의를 발전시키려 했다고 파악한다.

독일 낭만주의는 적어도 1807년 나폴레옹의 독일 점령 이전에는 프랑스적 민주제를 옹호하며 독일 봉건제도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나, 나폴레옹 해방 전쟁을 거쳐가면서 점차 보수화된다. 중세를 낭만화하며, 오스트리아 메테르니히의 반동체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거로 전락하고 만다.

헤겔은 1802년까지만 해도 낭만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 있었지만 1803년 이후 비판적으로 전환하며 그런 비판은 1807년 발간된 <정신현상학>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이 시기가 낭만주의가 보수화되는 시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헤겔의 비판이 어떤 맥락에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겠다. 

헤겔과 낭만주의의 대결은 헤겔이 베를린 대학에 있을 때 더욱 치열하게 되니 그 한 가운데 잔트 사건이 있다. 그 사건에 대한 헤겔의 입장은 1821년 <법철학>에서 잘 드러난다.

 

2)

헤겔의 낭만주의 비판은 지금까지 주로 셸링 철학과의 관계에서 논의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남교수의 연구 덕분에 셸링 이상으로 야코비가 문제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같다. 이 점이 헤겔 연구에서 남교수의 중요한 철학적 기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낭만주의는 자연 속에서 신을 추방하는 근대 자연과학과 계몽주의의 흐름에 대립하면서 자연 속에서 신의 존재를 다시 회복하려는 시도 가운데 출현했다. 독일에서는 괴테의 질풍노도의 시기에서 시작된 낭만주의는 그 후 크게 보아 세 가지 흐름으로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셸링이며 다른 하나는 야코비이며 또 다른 하나는 프리드리히 슐레겔이다.

셸링은 스피노자적 자연 개념을 끌어들여 실체적 통일을 자연의 무한한 생산력을 통해 파악하려 했다는 점에서 합리적 이성을 넘어서지는 않았다. 그에 반해 야코비는 심지어 셸링적 자연 개념조차 초월적 인격 신을 이성으로 끌어내린다고 비판하며 신은 오직 신 자신의 계시를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에 반해서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지적 직관과 이성의 역할을 상호 보완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즉 지적 직관을 통해서만 이성의 활동을 신의 인식으로 인도될 수 있으며 이성의 비판 없이는 지적 지관은 망상으로 전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점을 고려할 때, 남교수가 헤겔을 파악하는 데서 하필이면 야코비에 대해 특별하게 주목했는가가 문제가 될 것이다.[1]

 

필자는 야코비를 직접 연구한 적은 없으나 남교수의 책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야코비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이해에 의거해 볼 때 야코비의 근본 입장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즉 신은 초월적 인격적 존재이며 자유로운 의지를 발휘하는 자이니, 신에 대한 합리적 개념을 통한 어떤 인식도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야코비는 인간이 신에 대한 접근은 인간적 이성이 아니라 인간이 귀속하는 이성 즉 오직 신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계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남교수에 따르면 야코비는 칸트나 헤겔보다는 오히려 셸링에 대해 더 비판적이며, 양자 사이의 대결은 특히 치열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교수는 셸링에 대한 야코비의 비판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살아 있는 신의 현존이 증명되어야 한다면, 이 신은 그 근거로 의식될 만한 어떤 것으로부터 연역되어야 할 것이다. 마치 신이 자신의 원리로부터 진화하듯 말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신의 근거로 간주된 그 어떤 것이 신보다 먼저 그 위에 있게 될 것이다. 이는 불합리하다. 만약 신의 현존 증명이 살아 있는 신의 이념만을 연역하는 것이라면 이는 또한 살아 있는 현실적 신 자체의 증명일 수 없음을 물론이고 기껏해야 자신의 인식적 필요를 충족하려는 인간 정신의 주관적 산물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2]

 

이상은 야코비가 신이 자신의 근거로부터 자신을 전개한다는 셸링의 주장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3)

이번 발간된 책에서 남교수는 이 책에서 다른 누구보다도 헤겔과 야코비 사이의 대결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자의 대결에서 다루어진 논점은 주로 헤겔의 저서 <믿음과 앎>(1802년)이라는 글에서 나온다. 이 글을 셸링이 헤겔과 함께 발간한 <철학 비판 저널>에 실린 글이다.

이 글에서 헤겔은 야코비적 이성(즉 계시)이 신성의 사원을 세우는 것과 동시에 악마에게 예배당을 지어준다고 비판했다. 즉 계시로 얻어지는 지식이 진리인지 허위인지 가려낼 방법이 없다는 비판이다. 그런데 야코비는 이런 비판에 대해 거꾸로 이성을 통해서는 신에 도달할 수 없다면서, 헤겔을 이솝의 소처럼 커지려고 배를 부풀리다 터져 버린 개구리의 우화에 빗댄다. 

야코비는 여기서 형용사적 이성과 명사적 이성을 구분한다. 형용사적 이성은 인간에 속하는 이성이며, 명사적 이성은 인간이 그에 속하는 이성이다. 전자의 이성은 “자연 사물을 제약되고 매개된 필연적 사슬 속에서 인식하는 것”이기에 초자연적 무제약자는 이러한 이성을 통해서는 파악할 수 없다고 한다.

 

“오성적 이성을 지닌 인간은 동시에 피조물로서 이러한 신적인 이성에 속하고 있기에 매개들의 무한한 사슬을 넘어 단적으로 주어지는 모든 현존의 근원을 예감할 수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인간에게도 자유가 가능한 것이다.“[3]

 

야코비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신적인 이성에 인간이 귀속되어 있기 때문이니, 인간의 자유는 곧 신적 이성의 존재를 입증한다고 본다.

 

남교수에 따르면 헤겔은 그 후 야코비와 삶에서나 철학에서 야코비와 화해를 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고 본다. 한편으로 헤겔은 1807년 밤베르크 시절 니트함머의 중재를 거쳐 야코비와 개인적으로 화해한다. 이런 화해는 남교수에 따르면 프로테스탄트에게 주어졌던 정치적 개혁 과제의 공감과 야코비의 감화력 있는 인격 때문이었다고 한다[4]. 그 결과 1812년 야코비가 죽자 헤겔은 그의 학문적 기여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헤겔은 평생에 걸쳐 철학적으로는 야코비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남교수에 의하자면, 야코비의 비판을 수용하여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키려 시도했다. 남교수는 이런 전환을 통해 헤겔은 ‘매개적 직접성의 철학’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즉 존재는 매개되어 있으면서도 그 매개 자체가 지양되어 있다는 것이다.

 

“매개 없는 직접지도 거짓이지만 매개 속에서 이 매개 자체를 지양하지 않는 절대자의 사유도 거짓이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헤겔은 후에 자신의 철학백과요강 앞부분에서 야코비의 철학을 이전 형이상학과 근대 경험론 및 칸트의 비판철학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이른바 직접성의 변증법이라 할 만하다.”[5]

 

직접성 즉 계시는 야코비에게서는 순수한 예감, 또는 동경의 형태로 출현한다. 그렇다면 이런 직접성은 헤겔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출현할까? 그의 저서 <야코비..>에서 이 부분의 서술은 아주 간략하게만 다루어졌다.

 

4)

남교수가 헤겔 철학의 핵심으로 파악하는 매개된 직접성의 철학은 아마도 남교수가 쓴 논문 <매개된 직접서의 변증법>(시대와 철학 27-3, 2016)에서 좀더 상세한 설명을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에서 남교수는 헤겔이 <철학백과요강>에서 전개한 객관적 사유의 발전을 다루었다. 간단하게 이 논문에서 남교수의 설명을 따라가 보자.

우선 객관적 사유의 첫 번째 형태는 몰의식적 직접성의 사유이다. 그것은 직접적 접촉에 따른 사유이거나 자명한 자기 연관 속에 일어나는 사유이다. 전자는 경험적 사유를 지칭하며 후자는 아마 형식 논리학적 사유를 말할 것이다. 종전의 형이상학은 형식 논리학적으로 파악된 속성을 절대자의 술어로 파악하면서 절대자를 인식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형이상학은 절대자는 모든 술어를 넘어선 존재라는 점을 간과한다.

 

두 번째 객관적 사유의 단계는 매개적 사유이다. 직접적인 존재 자체가 이미 매개되어 있다는 주장인데 대상은 사유의 범주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 칸트의 비판철학이 그 전형적인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헤겔은 칸트는 이런 범주 자체를 이미 직접 주어진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고 한다. 칸트는 이런 범주 자체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더구나 범주가 구성하는 것은 경험인데 이 경험은 어떤 대상으로부터 주어지지만 칸트는 이 경험을 넘어선 그 대상은 인식할 수 없는 물 자체이다. 결국 두 번째 매개의 단계는 무지에서 무지 사이에 걸쳐져 있는 인식에 불과하다.

헤겔은 객관적 사유의 세 번째 단계를 설정한다. 이것이 바로 야코비의 직접지이다. 즉 무한자에 대한 신앙을 통해 얻어지는 계시적 인식이다. 헤겔은 직접지를 세 가지 관점에서 설명한다.

우선 이런 직접지는 경험적 내용을 형이상학화한 결과물일 수 있다. 즉 인간적 인식이지, 신의 계시라고 확립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이 직접지는 매개적 앎과 대립하면서, 그 자체가 하나의 독단이 되고 있다.

 

헤겔은 한편으로 야코비를 비판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야코비의 개념을 자기 나름으로 재구성하면서 자기의 철학으로 나가는 데, 논점은 감각적 경험과 지적 직관 사이의 관계에 있다.

야코비에게서 감각적 경험과 지적 직관은 직결되어 있다. 즉 감각적 경험이 곧바로 자기를 넘어서는 지적 직관이 된다. 야코비는 이 관계를 매개로 파악하지 않고, “매개를 배제하면서 동시에 비약을 통해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헤겔은 야코비의 이런 주장은 오히려 직접지가 매개된 지식임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즉 지적 직관이 경험을 매개하여 출현한다는 것이다.  

 

“무한자에 관한 이 객관적 사고는 개별적 유한자와 분리되는 비약이 아니라 이 유한자를 전제하며 동시에 이를 넘어서는 고양함의 결과일 뿐이다. 이렇게 신에 관한 직접지는 유한자[감각적 경험]와의 매개를 전제할 수밖에 없다. “[6]

 

남교수에 따르면 야코비가 매개의 지점을 간과한 것은 야코비가 매개가 지양되어 직접성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한다.

 

“이는 학문적 매개에서 직접성이 지양될 뿐만 아니라 또한 동시에 직접성을 지양하는 이 매개 자체가 지양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선입견이다.”[7]

 

5)

그렇다면 헤겔에게서 매개 자체가 지양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남교수에 따르면 바로 그것이 곧 헤겔에게서 가상의 역할이라 한다.

 

“세계 내 유한한 존재들은 단지 가상일 뿐이요 이 현상적 유한자들의 “매개 속에서 매개 자체를 지양하는 것”이 바로 “본질적 사유의 참다운 본성”이다.”[8]

 

헤겔에 따르면 참다운 이성은 매개 자체가 지양된다는 것을 통해 직접지에 이르는 것이다.

 

“객관적 사유는 그 유한성을 넘어 어떤 타자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과 매개된” 직접성으로서 무한자까지도 사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9]

 

이상에서 남교수의 평생에 걸친 철학적 고투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그 핵심 개념은 매개된 직접성의 개념에 있다. 하지만 매개된 직접성이란 무엇일까?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보이는 경험이 사실은 매개된 것이라는 말일까? 예를 들어 오늘날 경험이라는 것은 이미 일정한 개념틀을 전제로 하는데, 그 개념틀은 역사적으로 발전된 것이다.

아니면 매개가 그 한계를 드러내면서 지양되고 다시 직접적 계시가 요구된다는 말일까? 매개가 한계를 드러낸다는 것은 매개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지엽적인 것에 그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매개가 본질적인 것을 향하도록 만드는 데에는 이미 일정한 방향성이 내적인 직관을 통해 주어져야 한다.

많은 논의가 필요한 개념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그런 논쟁을 전개하기보다는 남교수의 철학적 입장이 야코비를 통해 헤겔의 매개된 직접성의 개념에 이르는 길이었다는 사실만을 밝히고 끝내기로 하자.


 

[1] 물론 남교수의 스승인 발터 예슈케 교수의 영향도 배제할 수는 없겠다. 발터 예슈케 교수는 헤겔의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야코비의 연구자이기 때문이다.

[2] 남기호, 207쪽

[3] 남기호, 302쪽 참고

[4] 남기호, 311쪽 서술을 참고로 하라.

[5] 남기호, 309쪽

[6] 남기호, 매개된 직접성의 변증법, 153쪽

[7] 남기호, 매개된 직접성의 변증법, 154쪽

[8] 남기호, 매개된 직접성의 변증법, 154쪽

[9] 남기호, 매개된 직접성의 변증법, 155쪽

헤겔미학산책14- 호머에서 신과 인간[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14- 호머에서 신과 인간

 

1) 고전 시대

앞에서 언급했지만 헤겔에서 예술은 정신의 표현 기호이다. 이 정신은 마침내 절대 정신으로 발전하는데, 그 토대는 바로 국가이다. 이 국가는 사회적 상호 관계 위에서 출현한 사회 정의나 공동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개별적 의지의 통일체이니, 루소의 말을 빌리자면 즉 일반의지이다.

상징적 예술 형식의 토대가 되었던 동방 국가(인도, 페르시아, 이집트의 국가)나 고전적 예술 형식의 토대가 되는 고전 시대 국가(앞으로 고전 국가로 통칭하기로 하자)가 도시 국가에서 출발해서 하나의 제국을 형성했다는 것은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헤겔은 양자 사이에 근본적 차이를 설정했는데, 그 차이는 무엇일까?

그 차이는 동방 국가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억압이 일반적이었지만 고전 국가에서는 자유가 존재했다는 데 있다. 즉 고전 국가에서는 평민의 자유가 보존되었고 이주민에게 일정한 권리가 인정되었으며, 도시 국가와 도시 국가 사이에서도 상대적 평등이 인정되었다. 물론 이런 자유나 평등은 정점에 이르렀을 때를 말하며, 그 과정에서 억압과 불평등이 존속했으나, 동방 국가가 결코 도달하지 못했던 자유나 평등에 마침내 도달했다는 점에서 그렇게 평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평가되는 역사적 근거는 고전 시대에서 적어도 그 전성기에서는 왕과 귀족에 대한 평민의 투쟁을 통해 민주제와 공화제가 출현했다는 사실에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1] 같은 도시국가에서 출발했음에도 이처럼 차이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고전 시대가 민주제와 공화제로 나갈 수 있었던 역사적 원인을 밝히는 것은 이 글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니 생략하기로 하자.

헤겔은 고전 시대에 찬탄함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를 지적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대체로 두 가지 한계가 언급된다. 우선 고전 시대에서 개인의 자유가 출현했다고 하더라도, 그 자유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전 시대에서 개인은 자발적으로 공동체의 의지인 국가에 복종했지만 그것은 근대에서와 같이 자각적으로 복종한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관습적으로 형성된 민족 의식[2] 또는 위대한 영웅에 대한 감정적 신뢰를 통해서 복종했다는 것이다.[3]

또 하나 헤겔이 강조하는 한계가 있다. 고전 시대[여기서는 로마 공화정까지만 다루어진다]의 도시 국가 사이에는 협력과 대립의 관계가 무상하게 변천했는데 그런 가운데 한번도 동방의 국가가 도달했던 것과 같은 통일체에 이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고전 시대의 도시 국가는 그리스에서처럼 공동의 동맹을 만들어내거나 로마 공화정에서처럼 자율권을 인정하면서도 그리스 동맹 도시보다는 발전된 형태 즉 동맹 도시 시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는 관계가 맺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로마의 동맹 관계조차 후일 로마 제국이나 그 이전 동방 국가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통합에 이르지는 못한다. [4]

 

2) 신들의 전쟁

고전 시대 사회가 지니고 있는 이런 한계 때문에 헤겔은 고전 시대의 정신을 개념적으로 설명하면서 여기서 개별성이 출현했으나 그 개별성은 일반성과 직접적으로 결합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본다. 이런 매개가 결여된 ‘직접적 결합’이라는 원리가 고전 시대 시대 정신을 규정하니 우리는 이런 특징을 예술적 표현에서 찾기 전에 먼저 종교적 표현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은 그 점을 아래와 같이 서술한다.

“정신적인 것을 내실로 삼고 자연적인 것은 단순한 출발점에 불과한 것이 그리스 신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리스 신은 아직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신[기독교 신]은 아니며 인간적 한계를 지닌 특수한 신이고, 외부 조건에 좌우되는 특정 개성을 지닌 정신이라고 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개체의 형태를 띠는 것이 그리스 신이다. 신의 정신이 아직 여기서는 스스로의 정신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형태로 그곳에 놓여 있다. 다만 눈에 보이는 감각적인 것이 신의 실질을 이루는 것은 아니며, 그것은 표현을 위한 요소에 불과하다.”[5]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 신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상징 시대처럼 동물 신의 모습이나 아니면 이슬람의 카바(흑색 돌)와 같은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신 개념에 대한 헤겔의 이해를 엿볼 수 있는데 신의 본질이 바로 인간 공동체의 의지 즉 일반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그리스에서 신이 본성은 이성적으로 자각된 것은 아니고, 감각적 수준에서 직접적으로 자각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신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어떤 모습을 취하는가는 우연하다. 이런 우연성은 상징주의 시대 자연 신의 모습에서 빌어오든가 아니면 지역적으로 전래하는 신으로부터 빌어온다

하지만 그 우연성만 본다면, 전래의 상징적 신이 수용되었다고도 볼 수 있으나, 이미 구 시대 신의 형태는 새로운 신의 형태로 변형되었다. 구 시대 신은 더 이상 자연력을 의미하지 않으며 이제 정신적 힘을 의미하게 된다.

구 시대 신은 자연적인 것이며 불명료하고 우연적인 것이며 환상적인 것이지만 새로운 신은 정신적인 것이며 명료한 것, 필연적인 것이고 실체적인 것이다. 그리스 신화는 구 시대 신과 새로운 신 사이의 투쟁[6] 또는 신의 변용[7]을 그려내고 있다.

신의 이런 차이에 관해서 헤겔은 예를 들어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거론한다. 프로메테우스는 구 시대 자연신인 티탄 족의 신인데도 인간을 위해 불과 기술을 가져다 준다. 헤겔은 이 사실은 얼핏 불합리해 보이지만, 이런 신화에서 신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헤겔은 이때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에 나오는 설명을 소개한다.

여기서 플라톤은 에피메테우스가 모든 생물에게 살아가기 위한 고유한 기술을 나누어주었는데 프로메테우스가 나중이 보니 인간에게 줄 기술은 더 이상 없었다. 그래서 그는 헤파이토스와 아테네로부터 불의 기술과 직조의 기술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고 하면서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인간 사이에 끝없는 분쟁이 벌어지니 제우스는 어쩔 수 없이 헤르메스를 통해 정의를 선사했다고 설명한다.

헤겔이 주목하는 것은 플라톤의 이런 설명을 통해 볼 때 불과 직조의 기술은 아직 실체적인 것에 속하지 않는 단순한 생존의 기술, 자연의 힘에 속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비록 프로메테우스가 욕구의 만족을 위한 기술을 주었지만 프로메테우스 자신은 구 시대 신에 속한다는 것이다. [8]

헤겔은 이런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통해 구 시대 신인 프로메타우스와 새로운 신인 제우스, 헤르메스의 차이를 분명하게 부각한다.

 

3)신과 인간

더구나 신이 지닌 우연적인 모습은 이제 정신적 힘의 표현이 되므로, 단순한 인간이 아닌 이상적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신은 개인적 의지가 아니라 공동체적 의지이기 때문이다. 헤겔은 이런 이상적 인간의 모습을 곧 “아름다운 개체의 형태”라고 말한다.

신이 자기를 이런 아름다운 개체의 형상으로 드러낼 때 헤겔은 이를 “그것이 신의 실질을 이루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즉 그것을 마치 상징주의 시대에 자연 속에 신이 존재한다고 보는 범신론적인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본다면 자연이라는 기호를 상징적으로 즉 마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징 시대 신상이 신이 현존하는 숭배의 대상이 된다.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 헤겔은 이를 어디까지나 신의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표현이란 곧 이 시대 예술을 의미하는 자기를 이중화하여 드러내는 예술적 기호라는 의미이다. 달리 고전 시대 신상은 숭배의 대상은 아니다.

고전 주의 시대 신상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작품으로 간주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신의 현존으로 간주되니, 양자는 직접적으로 결합되어 있을 뿐이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 서사시에서 인간의 행위와 신의 행위가 중첩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편으로 인간적 사건이 신의 행위로 설명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신의 행위는 인간의 감정을 반영한다.

헤겔은 예를 들어 호머 일리아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장면을 거론한다. 아킬레스의 친구 파틀로클로스와 트로이의 헥토르가 싸울 때, “어슴푸레한 어둠에 몸을 감춘 신(아폴로)가 혼전을 틈타 그에게 다가와 등과 어깨를 내리치며 투구를 벗겨 내고” “그의 손아귀에 있는 청동창 역시 부러뜨리며 그의 어깨에서 방패를 끌어내리고 갑옷을 벗긴다.” 이어서 호머는 비로서 에우포르보스가 창으로 파트로클로스의 뒤에서 어깨 사이를 찌를 수 있었다고 서술한다. 그리고 헥토르가 신속히 다가와 창으로 복부의 약한 부분을 깊숙이 찌른다. 이런 서술을 보면 인간의 행위가 신의 행위로서 기술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서사시가 아니더라도 그리스 신화에 보면 인간의 행위와 신의 행위가 서로 중첩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헤겔은 호머의 이런 서술을 이렇게 설명한다.

 

“왜냐하면 호메로스가 특수한 사건들을 그러한 신의 등장을 통해 설명하는 모든 경우에, 신들은 인간 내면 자체에 내재하는 것 즉 그의 고유한 열정과 고찰의 힘이거나 그가 처한 상황의 일반적 힘들 즉 인간에게 닥치는 것과 이 상황의 귀결로 그에게 발생하는 것의 힘이자 근거이기 때문이다.”[9]


 

[1] 헤겔은 역사철학강의에서 그리스 로마 사회에 대해 각기 이렇게 서술한다.

“사람들이 왕에 복종하는 것은 카스트 제도에 바탕한 상하 관계에 의한 것도 … 아니고, 가부장제 지배에 의한 것도 아니고, 명문화된 법적 지배의 강요에 의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함께 살아 가려면 … 복종할 필요가 있다고 모두가 느꼈기 때문이다. 왕은 … 개인적 위엄이 있었다.”(역사철학강의, 227쪽)

“로마에 이르러 겨우 자유라는 일반원리 또는 추상적 자유가 나타나게 된다. 그것은 한편으로 추상적인 국가와 정치와 권력을 구체적 개인 위에 두고, 개인에게 철저한 종속을 강요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일반적 권력에 대립하는 인격을 창출한다. 인격이야 말로 법의 근본적 기초이기 때문이다.”(역사철학강의, 275-276쪽)

[2] 이 민족의식은 씨족이나 부족을 통해 형성되는 혈연적 일체감과는 구분된다. 도시국가에서 다양한 씨족, 부족은 해체되며, 그 사이에 다양한 혼인이 교차되면서 역사상 민족이 형성된다. 예를 들어 아테네 민족이라든가 로마 민족 등이다.

[3] 이 점에 관해서는 헤겔의 다음 글을 참조로 하라.

“국민은 전쟁터에서 왕의 용병으로 싸우는 것도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내몰려서 예속미으로서 마음에도 없이 싸우는 것도,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것도 아니다. 그는 존경하는 주군을 따르는 자로서, 주군의 전공과 명예의 증인으로서 또 필요하다면 주군의 호위로서 싸운다.”(역사철학강의, 228쪽)

또는 미학강의에 나오는 다음 글도 참조하라.

‟그리스 인륜적 삶에서 개인은 독자적이며 내적으로 자유로웠으되, 현실의 국가에서 현전하는 일반적 관심 … 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았다. 인륜의 일반성과 내적, 외적으로 추상적인 개인의 자유는 그리스적 삶의 원칙에 적합하게 평온한 조화를 이루었으니” (미학강의 2, 27쪽)

[4] 헤겔은 그리스 사회에 대해 로마 사회가 가지는 차이에 대해서도 간과하지 않는다. 로마 사회는 후일 제정으로 넘어가면서 한편으로 자유로운 인격이 출현하며, 다른 한편으로 로마법의 지배가 출현한다. 동시에 이 시대 기독교가 출현하는데, 헤겔은 그 핵심 원리를 추상적 법과 추상적 자유의 관계에서 찾는다. 헤겔은 이런 추상적 법과 추상적 자유의 원초적 형태는 이미 로마가 출현할 때부터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간주한다.

헤겔은 그 역사적 원인을 로마가 주변의 민족국가로부터 추방된 자 또는 도덕들로 이루어진 도시에서 출발했다는 데서 찾는 것으로 보인다. 그 역사적 원인이야 어떻든 헤겔은 로마의 정신을 그리스 정신과 구별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 원리가 지배하는 곳에서 정신은 기쁨과 명랑함과 만족으로 충만한 형태를 취해 추상적 세계에 틀어박히는 일이 없다. …그 때문에 개인의 덕도 공동체 정신이 넘치는 예술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추상적이고 일반적 인격과 같은 것이 거기에는 아직 없었다.”(역사철학강의, 275쪽)

그리스 시대 개인은 관습적으로 길러지는 덕성[arete]을 통해 공동체적 의지로 통합되었으나, 로마 시대 개인은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추구하니 이런 욕망을 공동체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법의 원리가 출현한다. 이 법은 강제적 힘에 의해 강요되니, 이게 바로 로마 시민의 덕성(즉 virtue)이다.

“주관의 내면성이라는 원리는 우선 자신을 충족시키는 내용을 밖에서부터 지배자 내지 통치자의 특수한 의사라는 형태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역사철학강의, 277쪽)

그러나 헤겔은 그리스 사회와 로마 사회 사이의 차이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듯 보인다. 적어도 공화정으로 나가는 시기 그리스 사회나 로마 사회는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로마가 제정으로 변화하는 것은 그 시대 역사의 종합적 결과이지, 본래 내재하는 속성의 발현이라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어떻든 고전적 예술 형식을 논하는 자리에서 로마의 예술은 후기 즉 그리스적 전성기의 해체기에 주로 다루어진다.

[5] 헤겔, 역사철학강의, 240쪽

[6] “반면 티탄들은 추방당하여 지하에 거주해야 하며 혹은 오케아노스가 그렇듯 밝고 명랑한 세계의 어두운 가장자리에 머물거나 기타 다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헤겔, 미학강의 2권, 67쪽

[7]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이제 단순한 자연욕구와 그 만족에 제한되는 인간의 행동이 뒷전에 밀려감을 발견한다. 자의식적 정신에서 발원하는 법을 통해 규정되지 않는 옛 정의는 즉 테미스와 디케 등은 무제한적 타당성을 상실하며, 또한 반대도 마찬가지이니 단순한 지역성은 비록 그것이 여전한 역할을 하지만 보편적 신의 모습으로 변신하니, 그들에게서 지역성이 그저 흔적으로 잔존할 뿐이다.”헤겔, 미학강의 2권, 69쪽

신들의 변용에 관한 구체적 예를 들자면, 포세이돈은 오케아노스와 같이 바다의 신이지만, 그에게는 트로이의 건설자이고 아테네의 수호자라는 새로운 특성이 부여된다. 아마도 해양 무역을 보호하는 신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아폴로는 태양의 신으로서 헬리오스의 자취를 가지고 있지만, 그는 또한 질서의 신이 된다. 에베소의 여신 디아나는 자연의 생산적 힘을 상징하는 옛 신이지만 원래 달의 신을 의미하는 아르테미스는 이제 동물을 사냥하여 인간을 보호하는 신이 된다. 그리고 아프로디테는 소아시아 지역에서 대지의 여신이었지만 그리스에서 미와 사랑의 여신으로 변모한다.

[8] 헤겔, 미학강의 2권, 61쪽 서술을 참조하라.

[9] 헤겔, 미학강의 2권, 111쪽

헤겔미학산책13-벤야민의 알레고리론[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13-벤야민의 알레고리론

 

1)

헤겔은 상징적 예술형식을 다루면서 마지막 3절에서 비유법을 다룬다. 1절과 2절에서 다룬 상징, 숭고의 개념은 이념이 추상적이고 무규정적인 시대에서 출현한 예술의 형식이었다. 그러나 3절에서 다루는 비유법은 상징적 예술형식이 해체되어서 다른 시대의 예술형식에서 종속적인 형태로 사용되는 것을 다룬다.  

상징이나 숭고의 경우, 예술작품의 의미는 이념, 절대정신이었다. 여기서 기호 즉 작품과 그 의미 즉 이념 사이의 관계는 직접적이고 무의식적이다. 작가는 무의식적 환상 속에서 의미를 파악하니, 마치 기호와 의미 사이에는 신비한 연관이 있어 작품은 마치 직접적으로 그 의미를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며, 그 연관은 대체로 수수께끼적인 특성을 지닌다. 본격적 상징에 이르러 양자 사이에 매개가 유사성이 되기는 하지만, 아직 그 매개를 작가 자신이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

그러나 비유법에서 이제 이념 즉 절대정신이 아니라 작가가 표현하려는 개인적인 의미일 뿐이다.  그 의미는 작품에 대해 외면적으로 관계하며 그 연관은 작가 개인의 주관적 파악에 의존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체계화를 좋아하는 헤겔은 이런 비유법조차 체계화한다. 그는 먼저 비유만 제시되고 그 의미는 간접적인 추론에 의존하게 만드는 형태로서 우화, 비유담, 교훈담, 속담, 변신담을 거론하며 이어서 비유와 더불어 그 의미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제시되는 형태로서, 은유와 이미지(풍유) 그리고 직유를 구분한다. 전자나 후자는 비유와 그 의미 사이에 유사성과 같은 합리적 연관이 매개가 된다. 마지막으로 헤겔은 작가가 억지로 또는 자의적으로 양자는 연관시키는 형태로서 교훈시나 서술시(전원시)에서와 같은 비유법을 들고 있다. 이 마지막 형태에서 처음 상징에서 감추어져 있던 기호와 그 의미 사이의 무차별성이 마침내 폭로되면서 상징적 예술형식은 해체되고 만다.

비유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는 목적이라면 헤겔이 제시하는 비유법 설명을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헤겔은 친절하게도 풍부한 예까지 소개하고 있으니, 비유법을 학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설명은 좀 개념적이지만, 그 내용은 요즈음 문학 교과서에서 소개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만 말해 두자.

 

2)

비유법의 종류를 구분하는 자체는 철학적으로는 별로 흥미롭지 못하지만, 비유법과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문제는 그냥 지나갈 수 없으니 즉 알레고리와 상징의 개념에 관한 논쟁이다. 논쟁의 출발은 괴테였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괴테 이전에 상징은 헤겔에서 보듯이 기호라는 말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상징은 의미를 지시하지만 그 지시 연관이 무매개적이어서 신비하고 수수께끼와 같은 것이었다.

반면 괴테는 초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이탈리아 여행 이후 1800년 전후로 고전주의로 전향하면서[1], 상징이라는 개념에 자기만의 의미를 부여했다. 즉 상징은 그 의미인 이념을 직접 표현하는 형상을 말한다. 상징은 이념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어서 이념과 구체적 형상은 진정한 통일을 이룬다. 괴테를 이를 “감각적 현상과 초감각적 의미의 합일”[2]로 표현했다. 또는 “인간 정신이 가장 내밀하게 자연과 결합되어 온전한 형상으로 창조한 대상”이라고 말한다.[3]

괴테는 상징을 고전적 예술의 대표적인 도구로 파악하면서, 그의 이전 바로크 시대 예술의 도구인 알레고리[4]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괴테는 알레고리를 개념에 대해 외면적인 관계를 갖는 것으로 파악한다. 상징이 이념의 무한한 풍부성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알레고리는 개념의 외면적인 한 측면만 파악하는 단편적인 것에 그친다. 그러므로 괴테는 진정한 예술에 이르는 길은 알레고리가 아닌 상징이라고 하였다.

“시인이 보편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해 특수한 것을 찾아내는가 아니면 특수한 것 속에서 보편적인 것을 직관하는가 하는 것은 판이하게 다르다. 전자에서 알레고리가 생겨나는데, 그 경우 특수한 것은 단지 보편적인 것을 예시하는 사례나 표본으로서만 그 의미가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가 본래 시문학의 본성이라 할 수 있는데, 시문학은 그 본성상 보편적인 것을 염두에 두거나 가리키지 않은 채 특수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5]

 

3) 벤야민과 알레고리

괴테는 알레고리와 상징, 바로크 예술과 고전주의를 예술적 가치의 측면에서 비교했다. 그에 반해서 벤야민은 예술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면서 알레고리의 개념을 자본주의 시대 예술의 근본적인 특징으로 파악한다. 벤야민의 알레고리 개념은 그의 실패한 교수자격취득 논문 『독일 비애극의 기원』에서 설명된다.

벤야민의 이런 시도는 각 시대 예술의 형식을 기호의 형태를 통해 파악하려는 헤겔의 시도를 닮았다. 그런데 헤겔은 알레고리를 한 시대의 특별한 예술 형식으로 말한 적이 없고 자본주의 시대의 예술 형식은 가상이라는 개념에서 발견하므로, 벤야민의 시도는 특별한 흥미를 끈다.

  우선 벤야민은 알레고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알레고리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단순히 사회적 관습이나 자의적 연관에 토대를 두는 것이 아니라고 보면서 거기에 고유한 객관적인 토대가 있다고 본다. 즉 알레고리는 서로 분열된 두 개의 개념 체계 즉 구조가 중첩할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구조 속의 어떤 요소가 다른 구조 속에서 등장하여 다른 구조로부터 의미를 얻게 되면 알레고리가 된다.

벤야민은 17세기 바로크 시대 예술의 특징이 바로 이런 알레고리의 사용에 있다고 한다. 그는 바로크 시대 대표적인 예술로서 비애극-그는 이를 고대 비극과 구분하여 비애극이라 하는데-을 거론하면서 고대 비극과 구분되는 근대 비애극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분석해 이런 알레고리의 형식을 발견하려 한다.

이 비애극[6]의 표면적 구조는-상세한 것은 나중에 고대 비극을 논할 때, 소개할 예정인데- 일종의 궁중암투이다. 여기서 서로 투쟁하는 두 세력 예를 들과 왕과 신하가 서로 야심을 부리는 가운데 몰락하고 만다. 표면적인 이런 구조의 배후에는 죽음과 부활 또는 구원이라는 기독교 신학적 구조가 매개되어 있다. 즉 왕과 신하의 상호 몰락은 곧 신이 세상을 구원하는 섭리의 역사였다는 것이다.

세속적인 세계의 필연적인 몰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비애극은 멜랑콜리의 정신을 보여준다. 이런 멜랑콜리는 단순한 우울이 아니며 구원과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비애극의 기본 구조는 세속 세계와 신의 세계 사이의 이원적인 중첩이며 그 때문에 벤야민은 세속적인 사건 각각은 신적인 사건에 대한 알레고리로 작용한다고 본다.

 

4) 멜랑콜리의 정신

이런 이원적 구조의 중첩은 비단 바로크 시대 비애극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7]. 바로크 시대는 역사적으로는 절대주의 시대이며 근대 자본주의가 출현할 무렵이다. 이 시대 예술 대표적인 예술은 회화와 건축에서도 발견된다.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뒤러의 작품 멜랑콜리아를 보자.

 

과학이 발전하고 지리상의 발견이 이루어지고 세속적 행복이 증가하는 가운데 등장하는 멜랑콜리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세계의 분열이었다. 현실 세계는 배후의 어떤 세계에 의해 지배되지만, 인간은 그 힘을 알지 못하고 다가오는 몰락의 운명 앞에 두려워한다.

이렇게 분열된 세계는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적 특징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역시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로 분열되어 있다. 전자는 표면적인 경쟁의 질서이다. 여기는 개인의 자의가 지배한다. 후자는 시장 및 가치법칙의 질서이다. 이것은 심층적이면서 표면의 질서를 배후에서 지배하는 필연적인 법칙이다. 벤야민은 바로크 시대 예술을 지배하는 알레고리의 형식은 곧바로 자본주의 시대 즉 소외된 시대예술의 일반 형식으로 간주한다.  

벤야민은 이런 알레고리 형식과 멜랑콜리의 정신을 19세기 부르주아 문화의 절정기에 등장한 보드레르의 도시 산책에서도 발견하며, 나아가서 20세기 등장한 대중 예술인 영화 예술 속에서도 발견한다. 벤야민의 이런 주장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이 글에서는 주제로부터 너무 벗어나니 생략하기로 하자.

 

5) 알레고리와 가상

벤야민은 알레고리를 자본주의 시대 예술 형식으로 보았는데, 이점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필자가 보기에 벤야민이 알레고리의 형식을 자본주의 시대와 연관시킨 점은 문제가 있다.

알레고리가 두 개의 세계가 중첩되면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서로 이질적인 문화가 접속하는 시기나 장소에는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다. 자본주의 역시 표면과 배후가 중첩된다는 점에서 알레고리가 사용될 수 있기는 하지만, 알레고리는 그 외의 다른 시기나 지역에서도 충분히 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질적 문화가 충돌하는 헬레니즘 시대에 다양한 곳에서 이런 알레고리적 형식이 출현했다.

자본주의적 알레고리는 멜링콜리의 감각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 알레고리는 그런 감각을 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알레고리는 자본주의 시대 일반적 예술 형식으로 규정하려면, 멜랑콜리적 알레고리로 제한해야 한다.

헤겔은 중세 이후 발전하는 자본주의 시대를 낭만주의 시대라 이름 붙였는데 이 시대 고유한 예술형식으로서 가상이라는 형식을 제시한다. 헤겔이 말한 가상이라는 형식과 벤야민이 말한 알레고리의 형식은 구분된다.

헤겔의 경우 가상은 단순히 중첩되는 것을 넘어서서 그리스도의 죽음처럼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이념적인 것을 지시하는 기호를 의미한다. 자본주의적 상호 작용의 관계에서 개별자는 몰락하며 그런 몰락 속에서 보이지 않는 손, 가치 법칙의 지배를 입증하니, 헤겔이 말한 대로 가상이라는 개념이 오히려 이 시대 절대정신 즉 이념을 적절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1] 임홍배에 따르면 괴테의 상징 개념은 1797년 8월 16일 <쉴러에게 보낸 편지>에서나, 1797년 쓴 <조형예술의 대상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잘 보여준다고 한다. 임홍배, <괴테의 상징과 알레고리 개념에 대하여>, 비교문화 45집, 2008. 6 참고.

[2] 가다머, 진리와 방법, 튀빙엔, 1990, 임홍배, 위의 논문, 100쪽에서 재인용

[3] 괴테, 조형예술의 대상에 관하여, 1797, 임홍배, 위의 논문, 100쪽에서 재인용

[4] 우선 알레고리란 무엇인가를 설명해야 한다. 알레고리란 그리스어로 ‘다른 것을 말하다’라는 뜻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어떤 말이 표면적인 의미와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할 때를 말한다. 어떻게 보면 모든 비유법이 어떤 다른 것을 지시하므로 알레고리이지만 보통은 좁은 의미에서 사용된다.

알레고리란 관습적인 차원에서 어떤 것이 다른 것을 지시할 때 성립하는데, 그런 점에서 알레고리는 유사성에 기초한 은유{도상}나 인접성에 기초한 환유(지표)와 구분된다. 유사성이든 인접성이든 직접적인 연관을 지닌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반면 알레고리와 그 의미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간접적인 관련만 존재한다.

[5] 괴테, 조형예술의 대상에 관하여, 1797, 임홍배, 위의 논문, 102쪽에서 재인용

[6] 당시 비애극의 대표적인 예로서 안드레아스 그뤼피우스의 『레오 아르메니우스』를 보라. 드라마는 성탄절 하루 전 정오에 시작하며 작품 소재는 비잔틴의 최고 군사령관 미하엘 발부스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한 황제 레오(AD 813-820 까지 통치)의 살해이다. 또한 프랑스 절대주의 시대 극작가 라신느의 희곡 『파에드라』에서도 유사한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7]

이름 없는 자기중심적 사람의 정체성 비판 무명인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이 글은 한글본 [유일자와 그의 소유]( 슈티르너 지음, 박종성 옮김, 부북스, 2023. 2쇄[학술원 우수 학술도서])를 읽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여, 짧은 영어본을 번역한 것입니다. 울피 란트스트라이허(Wolfi Landstreicher)의 글 [이름 없는 / 자기중심적 사람의 정체성 비판 / 무명인](Nameless An Egoist Critique of Identity Unknown”)

이 글에서 인용하는 슈티르너의 글은 독일어 원본을 인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인용한 슈티르너가 쓴 [슈티르너 비평가들]이란 글은 [유일자와 그의 소유]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의 비판의 반비판입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유일자와 그의 소유]의 “옮긴이 해제”와 “옮긴이 말”을 참조하길 바랍니다. 아울러 “자기중심적 사람”(egoist)이란 용어에 대한 설명도 [유일자와 그의 소유]의 “옮긴이 해제”를 참조길 바랍니다.

 

Nameless
An Egoist Critique of Identity
Unknown

 

이름 없는
자기중심적 사람의 정체성 비판
무명인

 

울피 란트스트라이허 지음 박종성 옮김

2017

 

그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nichts) 때에만 그리고 그대의 이름만 언급될 때에만, 그대는 그대로서 인정된다(wirst anerkannt). 그대에 대해 무엇인가를(etwas) 말하자마다, 그대는 그러한 어떤 것(인간, 정신, 기독교도 등등)으로서만 인정된다.

– 막스 슈티르너 『슈티르너 비평가들』(Rezensenten Stirners, 1845)

 

사람들이 정체성(identity)과 개성(individuality)을 얼마나 자주 혼동하는지가 재미있습니다정체성은 동일성”(sameness)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일성은 나와 동일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개인들을 서로 충돌하는 동일한 원자(identical atoms)로 생각하는 것은 확실히 가능합니다(마르크스주의자는 이것이 개인주의자가 말하는 것이라고 가정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원자조차도 당신이나 내가 그들을 원자로 생각하고 그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할 때만 동일해집니다원자화는 나의 유일한(unique) 개성을 부정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는 과정이며이 과정에서 동일시(identification)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슈티르너는 당신과 나즉 지금 이 순간 육체가 있는 모든 개인을 유일자”(der Einzige)이라고 불렀습니다『슈티르너 비평가들』에서 그는 유일자 그저 이름일 뿐이며그 이상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말하고 쓰려면 이름을 사용해야 했습니다그러나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유일자는 … 전혀 개념의(옮긴이내용이 없다유일자는 불확정성 그 자체(Bestimmungslosigkeit selber)이다 … 내가 내 세상에서 살기 전에네가 네 세상에서 살기 전에유일자에 내용을 부여하는 것은 그것에 정체성과 동일성을 부여하고 유일한unique 것으로서의 유일자를 파괴하는 것입니다유일자)에 개념적 내용(conceptual content)을 부여하는 것은 유일자를 부조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유일자이면서도 정체성과 다투어야 합니다예를 들어 선술집에 들어갈 때수표를 현금으로 바꿀 때경찰들이 제지할 때신원을 밝혀야 하는(identify myself) 진부한 일이 있습니다이러한 모든 경우들에 누군가는내가 그러한 경우들의 규칙들에서 요구하는 것과 동일한지 확인하기 위해 특정 법적 권한(authority)을 위임 받았습니다나도 술 마실 나이가 된 사람과 같은 사람일까요나는 수표를 현금화할 권한이 있는 사람과 같은 사람일까요나는 미납 증서가 없는(no outstanding warrants) 사람과 같은 사람일까요이러한 각각의 정체성들은 내가 따라 생활해야 할 개념들입니다그리고 그렇게 생활하지 않으면그 자기 생활의 결과를 감수하게 됩니다그러나 사실어느 누구도 이러한 것들과 동일하지 않습니다비록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러한 각각의 과제들(어느 정도의 음주어느 정도의 현금 필요경찰들과 어느 정도 멀리하기)을 충족할 수 있다고 해도나는 어떤 그러한 대의들도 아닙니다그리고 나에게 이러한 기준을 부과하는 사람들은 나의 유일한 나(unique self)에 추상 개념들을 강요하고그들의 규칙들과 자신만의 일관성에 대해 사회적 요구 사항을 따르도록 강요한다는 점에서 나의 적들입니다그들은 나의 자기소유성(ownness)과 더불어 나의 유일성(uniqueness)을 훼손하려고 합니다.

게다가모든 지배적 사회 질서는 개인들을 인종성별국적성적 취향 등의 범주적 정체성(categorical identity)에 따라(in terms of) 처리하도록 설정되어 있을 뿐입니다이것들은 모두 허구이지만사람들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이러한 범주들은 개인을 노예화하고개인을 배제하고개인을 제한하고(placing restrictions on), 개인을 구타하고 살해하는 등의 구역질날 정도(ad nauseum)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그러한 범주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학대를 경험한 이들이 이 학대와 가해자들에 맞서 싸우기 위해 연합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습니다(makes sense).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연합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단결이 학대를 뿌리 뽑으려는 공유된 욕구에 기초를 두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이 학대를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된 범주적 정체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들은 그들이 파괴하려는 질서의 적들이 아니라인정과 정의를 원하는 질서의 희생자들로서 단결하기로 선택합니다사회 질서는 유일한 개인(unique individuals)이 아닌 범주들만 인식할 수 있을 뿐입니다정의는 측정하고 무게를 달 수 있는 것즉 비교하고 동일시할 수 있는 것만 다룰 수 있습니다정체성동일성집단에 속함은 사회적 인정과 정의에 대한 요구 사항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입니다나의 유일성을 알고 있는 자기중심적 사람(egoist)으로서의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는 것처럼 범주적 정체성과 그걸로 즉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적으로서 다르게 반응합니다내가 다른 사람들과 연합한다면그들은 내 자신의 목표와 힘을 향상시키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가 아니라내 자신과 내 연합을 위해 정체성과 정치를 파괴하는 것입니다하지만 나는 도덕주의자는 아닙니다나는 정체성이 항상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어떤 의미에서는 정체성의 용도를 잘 찾을 수 있습니다사실나는 내가 라고 말할 때마다정체성을 사용합니다. 이 말에서 나는 여기에서 지금의 내 자신곧 나의 직접적이고 구체적 나를 과거 내 자신의 나 개념과 동일시합니다유일하기 때문에(내가 구체적으로 여기에서 지금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과거 내 자신의 나 개념과 동일하지 않지만과거 내 자신의 나 개념과 동일시하는 정도까지 나 자신을 과거 내 자신의 나 개념과 결합하기로 선택합니다왜냐하면 내가 만난 타인의 과거 모습들과 타인을 동일시하는 것이 타인의 힘을 향상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과거 내 자신의 나 개념은 나의 세계와 관련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과 상호 작용하는 데서 나에게 중요한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여기서정체성은 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그러나 여기서도나는 범주적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개인적 정체성즉 내가 사용하기 위한나의 자기 향유(self-enjoyment)을 향상시키기 위한 개념적 도구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서나 자신을 위해 만든 등식(equations)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약 내가 개념적 도구들을 나 자신이라고 여긴다면나는 나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최근에나는 자신을 개인주의허무주의자자기중심적허무주의자(egoist-nihilists)라고 묘사하면서 지배 질서에 대한 다양한 공격을 주장하는 개인들(분명히 소그룹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보이는)의 성명서(communiqués)을 접했습니다스스로 통치자의 질서에 반역하고 공격하는 자는 틀림없이 나의 동지입니다나는 개인의 행동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그의 모든 결정에 동의하지 않더라도개인과 친밀감을 느낍니다그런데 왜 자기 자신의 삶에서 자신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단체 이름을 사용하여 단체 정체성(group identity)을 만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어쨌든 개인의 행동에 대해 주장할 필요성을 느끼는지 궁금합니다내가 지배 질서를 공격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법에 위배되는 행동을 선택한다면이 선택은 지금 여기에 있는 내 삶의 직접성에서 비롯되며나는 누구에게도 설명할 의무가 없습니다그뿐만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다른 행동에서 영감을 얻을 필요도 없습니다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내 자신의 삶이고 내 자신의 기회입니다반항적 행동이 반항적 마음을 격렬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은 자신의 분노와 기쁨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그런 다음 그는 자신의 행위를 주장하기 위해 글을 쓸 수도 있지만그렇게 할 필요는 없으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큰 지혜입니다그러나 여기서 내가 가장 의문시하는 것은 이런 방식으로 행위를 주장하는 개인이 정체성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이것이 그들이 자신의 이름을 붙여야 하는 이유입니다(이 이름들 중 일부는 아름답고 시적이기 때문에 정체성을 나타내는 호칭(labels)으로 남아 있습니다). 서명된 성명서(signed communiqué)는 그 행동을 수행한 유일한 개인들에 대한 행동의 즉각적이고 순간적 의미를 청중에게 그 행동을 설명하기 위한 영구적 의미로 대체합니다영구적 의미와 함께 영구적 정체성이 생기고 유일한 개인들은 이러한 결정된 형태 속으로 사라집니다스스로 행동하는 유일한 개인은 이름이 없습니다(nameless)유일한 개인 이름이 없습니다왜냐하면 유일한 개인이라는 존재는 의미가 완전히 비어 있지 않거나 그를 표현한다고 생각되는 이름에 비해 너무 직접적이고 덧없기 때문입니다그가 행동하기로 결정했다면정체성 없이 익명으로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만약 유일한 개인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선택하거나그것을 대화나 토론의 문제로 만들기로 결정하거나자신들이 반항하는 데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로 선택한다면유일한 개인이 이 일을 익명으로 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방법을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자신의 유일성으로 행동하는 개인은 자신의 행동과 동일시할 필요가 없으며그가 그렇게 하는 순간 그는 완전히 그 행동에 빠져 있었습니다어쨌든자신의 행위를 주장하는 것의 완전한 의미들은 자신의 반란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과 느끼는 연대감과 친밀감(solidarity and kinship)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지속적 논쟁의 문제가 되어야 합니다.

정체성은 당신이 무엇인지(what you are) 규정하는 것입니다내가 말했듯이그러한 규정을 가지고 노는 것이 타당할 수 있는(또는 즐거움을 줄 수 있는순간들이 있습니다하지만 이러한 규정들이러한 정체성들은 결코 내가 될 수 없습니다그러나 그것들은 나를 하나의 역할이나 일련의 역할이라는 감방에 가두는 감옥이 될 수 있습니다그리고 내가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이 역할을 거부해야 합니다내 이익에 도움이 될 때 가끔 쓰는 가면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물론내가 그 역할에 맞지 않으면나는 예측불허가 되고나는 덧없어지고나는 제도와 제도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슈티르너는 『슈티르너 비평가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슈티르너는 유일자라고 이름을 붙이고 동시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이름은 유일자라고 이름 붙이지 않는다.”(Stirner nennt den Einzigen und sagt zugleich: Namen nennen dich nicht) 정확하게 유일한 개인으로서 나는 이름이 없습니다정확히 그와 같은 나는 정체성이 없습니다나는 그야말로 지금 여기에 있는 나 자신입니다(I am simply myself here and now).

 

Wolfi Landstreicher
Nameless
An Egoist Critique of Identity
Unknown


 

헤겔 바깥의 헤겔 ―오늘의 우리 현실과 헤겔― ② [시대와 철학]

헤겔 바깥의 헤겔

―오늘의 우리 현실과 헤겔― ②

 

문성원(한철연 회원, 부산대 철학과)

 

이 글은 2023년 11월 18일 부산대에서 열린 한국헤겔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저자의 기고로 게재합니다. 앞에 이은 두 번째 글입니다.

 

 

 

1. 많은 분이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짐작합니다만, 청년 시절 제게 헤겔은 무엇보다 ‘자유’의 철학자였습니다. 세계사는 “자유의식의 진보의 역사”라는 말이 강한 인상으로 남았지요. 진보의 순서를 문명권에 따라 공간적으로 배치한 것이나 물질적·경제적 동인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것 따위는 맑스 같은 후대의 사상가들에 의해 극복되는 시대적 한계로 여겨졌죠. 이런 지연 효과를 고려하면, 자기의식의 원리에서 출발한 자유는 산업화로서의 외화와 그것의 자주적 전유를 그 전개 형태로 담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럴 경우, 자유는 산업화와 자주를 아우르는 근본 틀로 취급될 여지를 갖겠지요.

2. 그런데 이 ‘자유’는 최근에 우리가 여러 번 목도했다시피 내용 없는 공허한 울림으로 되뇌어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 자유가 운위되는 양태는 매우 자의적어서, 실제로는 자신의 좁게 겨냥된 과녁만을 노릴 뿐, 주변의 중요한 문제들을 수습하거나 해결하는 데는 무책임하며 그런 의미에서 역설적으로 자유롭죠. 흔히 말하는 대로 아집과 무지와 무능의 소치라 하겠습니다. 다만, 저는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데에는 애당초 자유 개념과 결부되어 있는 자기 중심성 탓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에서 자유는 보편적 권리로서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합니다만, 알다시피 이때의 보편은 실상 시대적으로 또 집단적으로 한정된 ‘보편’이죠. 게다가 우리가 익히 보다시피 그런 특정한 잣대마저도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덕택에 지금 우리는 권리와 법이 그야말로 ‘자유롭게’ 전횡되는 현실을 아프게 경험하고 있는 것이지요.

3. 이런 모습이 자유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보이는 부정적 면모일 따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늘날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구태일 겁니다. 이념의 외화와 자기복귀라는 틀이 한 때 호소력이 있었던 건 그것이 자기 확인과 자기 확장에 대한 사회의 전반적인 열망에 부응했기 때문이겠죠. 물론 아직도 그런 생각을 고집하고픈 집단이 있겠으나(아마 북한―적어도 현재의 주도적 지배층―의 경우는 여전히 이런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그동안 드러난 숱한 문제들을 도외시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주체는 단일하지 않을뿐더러 궁극적으로 단일해질 수도 없다는 것, 각각의 주체는 재현의 실패를 지시하며1 그런 실패가 계속되는 한에서 요구된다는 것, 또 주체의 자유란 이 같은 실패가 일회적이지 않게 하는 선택의 기제이고 이것이 바로 자유의지―집단적 자유의지(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를 포함해서―의 실체라는 것, 등등이 그간의 사태에 대한 반성을 통해 도출된 일반적 결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4. 그렇다고 자유의 여지를 확대하고 공고히 하려는 활동이 중요하지 않다는 소리는 아니에요. 확실성을 보장받으려는 과도한 목적론적 구도를 포기하고 자기중심적 외화가 초래하는 감당하기 어려운 결과들을 충분히 경계한 채로 그러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볼 뿐입니다. 그리고 그러할 때, 시대에 뒤떨어진 목표에 얽매인 상태에서가 아니라면 과연 ‘자유’가 주도적 모토로 내세워질 수 있는지, 오히려 퇴행적 발상에 이용당할 소지가 많지 않은지 의심스러워 하는 것이죠. 더러 얘기되듯 누구의 자유인가, 어떤 자유인가를 구체적으로 문제 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유 자체의 본질에 대해서, 자유 개념의 특성에 대해서 따져보는 일이 필요하다는 겁니다.2

5. 외화로서의 산업화와 자기복귀로서의 자주를 주된 계기로 삼아 지나간 일들을 꿰어보려 했다고 해서 미래에 대해서도 같은 틀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죠. 오히려 그동안 불거진 예기치 못했고 해결의 실마리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어 보는 일이 긴요할 겁니다. 그 같은 과정을 통해 새로운 문제틀의 수립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 테지요.

 

 

1. 여러 문제 가운데 제가 특히 흥미롭다고 여기는 우리 현실의 사안으로는 무엇보다 세대 문제를 들고 싶군요. 그중에서도 근래에 두드러진 세대 간의 불평등 논란이 관심을 끕니다. 세대의 문제는 시간적 추이와 관련된 문제고 그런 점에서 변화, 발전의 문제이기도 할 테지만, 변화의 속도가 느린 사회에서는 신세대와 구세대의 갈등이 일반적인 형태로 논의될 따름이었겠죠. 혁명적 격변의 시기에도 체험의 단절적 변화가 세대의 구분에 새겨지겠으나, 우리의 경우는 유례를 찾기 힘든 압축적인 산업화와 민주화의 경험을 한 탓에 세대 간의 특성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2. 이제 산업화 이전 세대는 거의 사라지고 있다 하겠고, 70년대까지 젊은 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확연히 노년층에 접어든 산업화 세대와 87년을 전후한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라 할 이른바 386(이 이름이 등장했던 1990년대초 당시에 386이었지 현재는 586을 거쳐 686에까지 이른) 세대, 그리고 민주화 이후 성장기를 보낸 X, Y, Z의 알파벳 세대 등 갈수록 구분도 촘촘해지는 세대들이 오늘을 함께 살아가고 있죠. 여기서 특히 세기의 전환기를 어려서 겪은 이들, 대체로 1980년대 중반쯤에 태어난 Y세대에 해당하는 이들을 M(밀레니엄) 세대라고 하고, 이들과 1997년 외환 위기 이후에 태어난 Z세대를 묶어서 MZ 세대라 부르는 것 같군요. 그런데 불평등과 관련한 논란의 초점은 현재 사회의 중심 세력이라 할 386세대와 2,30대 청년층을 이루는 MZ세대 사이에 있는 듯합니다.

3. 『불평등의 세대』라는 책을 쓴 사회학자 이철승 교수는 한국의 세대를 ‘자원 동원 네트워크’라고 이해합니다.3 단순히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는 집단 이상이라는 거죠. 특히 그는 386세대가 성공적으로 이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한국사회의 주도층이 되었으며, 그 다음 세대들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철승 교수가 드는 386세대의 성공 요인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어요. 첫째, 베이비 붐 세대라서 수가 많다는 점, 둘째, 민주화 운동에 힘입어 균질성과 응집력을 획득했으며 학생-시민-노동조직의 연계를 이루어 내었다는 점, 셋째 이른바 세계화에 편승한 고도성장기에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는 점. 그런데 다른 한편, 이 세대는 세계화의 신자유주의 바람에 휘말리고 만 탓에―IMF 외환위기가 그 단적인 징표겠죠― 시장이 야기하는 불평등한 ‘신분의 위계화’에 빠져들게 되었고, 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결국 ‘권력의 과두제화와 독점’에 안주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청년 세대가 불만을 가지고 반발하는 주요 이유라고 할 수 있을 테죠.4

4. 이철승 교수는 386세대와 다른 세대의 소득격차가 커져가고 있고, 세대간 정치권력의 분포 비율 면에서도 이 세대 이후 젊은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여러 통계 도표를 통해 제시합니다.5 하지만 여기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지요. 그 주된 논거는 세대간 불평등에 비해 모든 세대 내의 계급간·계층간 불평등이 더 심하며, 따라서 우리 사회의 불평등 및 갈등의 주요 원인은 세대 격차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세대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이용하려는 세력이 문제라는 것이지요.6 저는 이 논란에서 어떤 편을 들 만큼 우리 사회의 실증적 사실에 밝지 못합니다. 양측이 내놓는 통계들은 나름으로 자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설득력이 있다고 보여요. 다만, 세대내의 불평등 역시 크다고 하더라도 386이라는 1960년대 출생 세대의 경제적·정치적 비중이 다른 세대가 같은 연배일 때에 비해 다소 큰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이런 차원과는 조금 다른 결의 사태에 주목해 보고 싶군요.

5. 저출산의 문제야말로 심각한 세대의 문제이고 또 세대간의 문제가 아닐까요? 노령층을 부양해야 할 젊은 세대의 부담이 늘어난다든가 한국 사회의 소멸이 우려될 지경이라든가 하는 얘기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예상되는 결과 이전에 자식 세대가 출산을 기피하게 만든 부모 세대의 책임을 먼저 문제 삼아야겠죠. 그리고 지금의 청년 세대가 처한 상황의 엄중함에 주목해야 할 줄 압니다. 저는 이것이 앞서 말한 공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산업화가 낳은 문제들이 집약되어 나타난 증상이 저출산이고, 여기에 대한 대책의 부재가 사회 발전 방향과 비전의 공백으로 이어지며, 이것이 윤석렬 정권의 탄생과 같은 현상을 낳았다는 것이지요.

6. 저는 몇 해 전에 저출산이 ‘생물학적 파업’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7 작년에는 영국의 BBC가 ‘한국은 출산 파업 중’이라는 표현으로 우리의 저출산 사태를 보도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8 사전의 협의도 주도하는 조직도 없는, 그런 점에서 무의식적이지만 집단적인 저항인 셈입니다. 무엇보다 오늘의 청년 세대를 낳은, 그리고 현 상황을 만든 세대를 향한 (아마 오늘의 발표자들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은데) 항의겠지요.

7. 산업화한 국가들 대부분이 저출산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 변명거리가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지난 몇 세기에 걸친 급속한 인구 증가를 생각하면 장기적으로는 인구수가 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지 모르죠. 하지만 인류세의 위기를 개체수 조절로 극복하는 선구적 모습을 보인다고 자위하기에는 출산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들이 너무 팍팍하고 출산율의 저하가 너무 가파릅니다. 그 원인들에 대해서는 차고 넘칠 만큼 많은 논의가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이러한 사태가 급속한 압축 성장의 대가라는 점이죠. 극심한 경쟁과 수도권 중심의 과밀집 등이 저출산의 원인으로 흔히 지목되는 그 결과지요. 여기에 덧붙여 저는 축약된 과정 탓에 욕망에 대한 반성과 조절의 기회가 없었거나 부족했다는 것도 무시하지 못할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서구의 68혁명에 해당하는 계기가 생략되어 버렸다고 할까요. 이런 면을 고려하지 않으면, 늘어난 소득에도 불구하고 더욱 돈에 모든 가치 평가의 기준이 집약되는 오늘의 분위기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이 점에 대해서도 386세대는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거예요. 비록 압축적 과정 때문에 오히려 지연된 민주화라는 과제에 치여 스스로는 어쩔 수 없었던 면이 있다고 해도 말이죠.

8.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이 ‘어떻게’는 오늘 우리의 주제인 헤겔 철학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아마 헤겔이라면 혹 압축적 산업화에 대립하는 계기로 탈성장을 내세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긴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탈성장 담론이 자리잡을 여지는 얼마나 될까요? 그것은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으로 여전히 고초를 겪고 있는 한반도 주민의 일부가 그 반대의 극을 추구하기 위해 영세중립국을 내세우는 일9보다는 더 현실적인 시도일까요?

9.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2018)에는 두 개의 원작이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1983)가 직접적 원작이지만, 무라카미의 그 단편이 제목에서부터 윌리엄 포크너의 “Barn Burning”(1939)을 염두에 둔 것인 데다가, 이창동 감독 자신도 포크너의 그 작품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예 영화 한 장면에 그 소설이 실린 포크너의 책이 등장하기까지 합니다. 주인공인 종수(유아인 분)가 포크너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그 말을 들은 벤(스티브 연 분)이 그 책을 구해 카페에서 읽고 있는 것으로 나오죠. 그거야 어쨌든 이 세 작품은 다 같이 헛간(<버닝>의 경우 비닐하우스)을 태우는 걸 모티브로 하고 있어요. 하지만 세 작품의 배경이 다르듯, 태운다는 행위의 의미도 조금씩 다릅니다.

10. 포크너의 헛간 불태우기는 소작농의 저항을 표현하죠. 지주에게 헛간은 대단한 재산은 아니지만 쓸모없는 것도 아닙니다. 몰래 불 지르고 적당한 손해를 입히기에 적합한 장소지요. 그래서 그 일은 추적당하고 재판받는 자못 심각한 사태에 이르기도 합니다. 반면에 무라카미의 경우에는 헛간은 “태워지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묘사되죠.10 적어도 그것을 태우는 소설 속의 부유한 젊은이에게는 말입니다. 그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헛간, 그러니까 완전히 무가치한 것은 아니지만 사라져도 별 지장이 없는 헛간을 골라두곤 마음 내킬 때 몰래 태웁니다. 아니, 그렇게 한다고 얘길 하죠. 소설에서 이 헛간은 그가 별 부담 없이 사귀는 젊은 여자와, 그러니까 있어도 없어도 좋을 그런 여자와 암시적으로 겹칩니다. 이창동의 영화 <버닝>에서도 비슷해요. 돈 많고 세련된 젊은이 벤(스티브 연 분)이 주기적으로 태운다는 비닐하우스와 그의 일시적 애인인 해미(전종서 분)가 겹치죠. 그런데 큰 차이는 <버닝>에서는 태우는 행위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11. <버닝>의 주인공 종수는 무라카미 소설의 화자(話者)와 마찬가지로 소설가(정확히는 소설가 지망생)이기는 하지만, 쿨한 분위기의 전자와 달리 농촌 출신의 투박함을 잃지 않은 청년이지요. 그래서 그는 태워짐에 분노하며 결국 태우는 자를 태웁니다. 쓸모없음을 처리하는 자를 처리하죠. 물론 영화 마지막의 이런 장면들은 종수가 쓰는 소설 속의 사태라고, 그러니까 종수의 희망이 영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능할 겁니다. 어떻든 <버닝>은 이렇게 저항을 재도입하죠. 포크너가 묘사한 소작농의 저항은 이제, 사회가 꼭 필요로 하지 않는 잉여적 존재로 전락할 위험에 놓인 청년 세대의 저항이 됩니다. 이 저항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우리 현실에서도 아직 그렇죠. 출산율 저하는 어쩌면 소극적 저항으로 보이지만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의 미래를 태우는 극단의 저항으로 연결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1. “보통 사람도 자동차나 PC 같은 개인 소유 기계는 통제할 수 있겠지만, 대형 기계 시스템에 대한 통제권은 극소수 엘리트의 손에 쥐어지게 될 것이다. 오늘날과 비슷한 상황이지만, 거기엔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진보된 기술 덕분에 엘리트는 대중에 대해 더 강화된 통제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노동이 불필요해진 탓에 대중은 불필요한 존재, 즉 체제에 떠넘겨진 쓸모없는 짐더미가 되어 버린다.”11 이것은 ‘유나바머’ 테어도르 카진스키의 선언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십수년간이나 미국 몬태나주 숲 속에 숨어 지내며 기술문명을 중단시키려는 목적으로 십여차례에 걸쳐 폭탄 테러를 저지르다 1996년 체포되었던 인물이죠(무기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에 금년 6월 숨을 거뒀지요). 카진스키에 견해에, 특히 그의 반기술주의 방법론에 찬성하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의 문제의식에는 동조할 수 있는 부분이 꽤 있다 싶어요.

2. 사실, 청년 세대의 집단적 불안감에는 자신들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이전과는, 그러니까 소외되고 착취를 당하더라도 스스로의 활동에 분명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었던 시절과는 크게 달라진 점이 아닌가 해요. 코인에 대한 열풍도 외모에 대한 지나친 관심도 이처럼 가치의 기준이 불확실해진 데 따른 것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그렇다면 이런 불안감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은 헤겔 철학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유감스럽게도 여기에 대해 제가 자신 있게 답을 내놓을 처지는 아닌 것 같군요.12 저로서는 이렇게 어설프고 산만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으로 그치고 다른 분들의 발표에 귀를 기울여야 할 듯합니다.

3. 끝으로 덧붙이자면, 저의 이 부족한 발표에 ‘헤겔 바깥의 헤겔’이라는 제목을 붙여본 데에는 오늘의 상황이 헤겔 철학의 태생적 배경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젝은 “헤겔을 넘어선 헤겔”13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던데, 아마 외적 조건보다는 내적 특징의 발전과 연속성에 더 무게를 둔 것이겠죠. 저는 오늘날의 철학은 외부에, 바깥의 변화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설명과 의미 부여의 틀을 짜나가야겠죠. 그것이 제가 주제넘게 떠올려 보는 오늘의 헤겔 모습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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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헤겔 레스토랑』, 앞의 책, 469쪽 참조.

  2. 외람되지만 저는 오래 전부터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졸저 『배제의 배제와 환대』, 동녘, 2000 참조.

  3. 이철승, 『불평등의 세대』, 문학과지성사, 2019, 33쪽 이하 참조.

  4. 이 책이 조금만 더 늦게 나왔더라면(출간일은 2019년 8월 9일인데요), 조국 사태를 이 불만 표출의 대표적 사례로 연결시켰을 법합니다.

  5. 이철승, 『불평등의 세대』, 문학과지성사, 2019, 125쪽 이하, 또 70쪽 이하 참조.

  6. 대표적으로 신진욱, 『그런 세대는 없다』, 개마고원, 2022 참조.

  7. 졸저, 『철학의 슬픔』, 그린비, 267쪽.

  8. https://m.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208262158001#c2b

  9. 「한반도 영세 중립화 선언」 참조.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Tw8byRcRmOEwZHZeg2TBgsPN7LBrsOaupmykENb-cgnZ74Q/viewform

  10. 무라카미 하루키, 「헛간을 태우다」, 『반딧불이』, 권남희 옮김, 문학동네, 2014, 68쪽.

  11. 테어도르 카진스키, 『산업사회와 그 미래』, 조병준 옮김, 박영률출판사, 2006, 111쪽.

  12. ‘만듦의 문명’에 대비되는 ‘즐김의 문명’에 대한 전망과 기대는 제가 단편적으로나마 곳곳에서 계속 피력해 온 것이지만, 이 자리에서 거론하기는 어렵겠습니다.

  13. “Hegel beyond Hegel” ― 이것은 그의 책 『분명 여기에 뼈가 있다』(정혁현 옮김, 인간사랑, 2016. 원서는 Absolute Recoil, Verso, 2014)의 3부 제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