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ries by 태양 윤

유림의 정신으로 독립의 길을 걷다, 심산 김창숙 [길 위의 우리 철학] – 19

김세리   조선에 한 선비 있으니 벽옹 김창숙이라. 머리는 희었으되 마음은 일편단심 나라 구하려는 생각 그것 말고 무어 있을까. 차라리 독립을 위해 죽은 귀신 될지언정 신탁통치 노예는 절대로 되지 않으리. 인생이란 언젠가 죽게 마련 죽으면 죽었지 욕되게는 살지 않으리.   김창숙(金昌淑,1879∼1962)이 노년에 쓴 「신탁 통치」라는 시이다. 자신의 의지, 털끝하나 굽히지 않겠다는 결의가 칼날 같다. 나라의 운명이 […]

한국 현대 철학의 주목받지 못한 변방, 함석헌 [길 위의 우리 철학] – 18

유현상   둘리네 동네의 어느 골목 가느다란 봄비가 내리는 날 도봉구 쌍문동으로 향했다. 그런데 쌍문역 4번 출구로 나와 조금 걷다보니 이곳이 바로 둘리네 동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갑자기 생각난 것은 아니고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희동이가 길 안내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 동네는 8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무대이기도 […]

이항로의 위정척사, 당신들만의 진리 [길 위의 우리 철학] – 17

구태환   1. 두물머리에서 북한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북한강 지류인 벽계천(檗溪川)이 흐르는 계곡이 나온다. 이 계곡을 따라 한참 들어가면 말 그대로 ‘궁벽한’ 마을이 나온다. 지명이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인 이곳은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가 태어나고 죽은 곳으로서, 그의 생가가 남아 있고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그는 61세에 강원도 홍천의 삼포라는 곳으로 잠깐 이사했을 때와,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있던 […]

서재필과 개화운동, 계몽을 통해 근대를 꿈꾸다 [길 위의 우리 철학] – 16

박영미   독립문, 자주독립의 열망 독립문역사거리, 사통팔달의 분주한 길 남쪽에 멀찌감치 서서 사방을 돌아보면 북쪽에는 북한산이 양쪽으로 안산과 인왕산이 들어온다. 시선을 조금 내리면 바로 앞에 고가도로에 가려 한 눈에는 볼 수 없는 독립문이 있다. 길을 건너 가까이 가본다. 독립문 뒤로 서재필 동상, 독립관, 3.1운동 기념탑, 그리고 서대문형무소가 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외세의 침탈에 저항한 […]

밑바닥에서 진리를 찾은 이- 장일순 [길 위의 우리 철학] – 15

구태환   1. 원주역과 장일순의 얼굴 열차가 정차하는 역에는 그곳을 거치는 사람들만큼 많은 사연이 쌓이게 마련이다. 전국적으로 도로망이 촘촘해진 지금에야 열차보다 편리한 것이 고속·시외버스이지만, 예전에 큰 도시로 가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은 열차였다. 그리고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열차 시간을 알아보고 좌석까지 예매하지만, 예전에는 열차 시간을 알아보거나 열차표를 예매하기 위해서, 그리고 벗이나 자녀를 배웅하고 맞이하기 위해서 가야 […]

큰 이룸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간 삶의 철학자, 도산 안창호 [길 위의 우리 철학] – 14

  배기호   도산공원 가는 길   춘분, 추분과 더불어 낮과 밤의 길이가 동등한 날에 이른 점심을 먹고 도산 안창호의 자취를 찾아 집을 나섰다. 바깥은 안창호가 살았던 시대만큼이나 우울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은 날씨. 걸음을 돌려 우산을 챙겨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평일 한낮인데도 지하철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3번 출구를 통해 밖으로 […]

시대정신을 찾는 여정의 첫 발걸음: 신채호와 서울 [길 위의 우리 철학] – 13

  1880년 겨울 지금의 대전에서 태어났고 세 살부터 청주에서 자란 신채호는 어린 시절부터 그 지역의 전통적 지식문화의 세례를 듬뿍 받고 자랐다. 몰락한 사대부 집안이었지만 엄격한 유학적 기풍을 고스란히 지닌 가문 분위기도 여기에 한몫했다. 조정에서 정3품 벼슬까지 지낸 할아버지에게 전수받은 한학으로 학문의 맛을 본 신채호는 열 살에 행시(行詩)를 짓고 열네 살 즈음에는 사서삼경을 독파할 정도로 공부에 […]

태백산에서 최후를 맞은 서양철학 1세대, 박치우 [길 위의 우리 철학] – 12

1. 총을 들어야 했던 철학자의 운명   5병대 7병단 1군단 김생 김달삼 이호제 박치우 서득은 여러 슬기로운 지휘관들의 피 아직도 눈 위에 임리하고 청옥산 태기산 일월산 국망봉 백암산 준령들의 산정 위 피바람 불어 끊이지 않는 저 험준한 태백산 전구의 이름과   임화가 1952년 7월에 쓴 시, ‘기지로 돌아가거든’의 한 구절이다. 휴전회담이 시작되었지만 전쟁이 지루하게 이어지던 상황에서 […]

구도와 구세의 길, 운명적 불화 – 한용운 [길 위의 우리 철학] – 11

한용운의 발자취를 찾노라면 동분서주도 모자라 남분북주를 해야할 판이다. 고교시절 방영된 국경일 기념 드라마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겨 당시 윤동주 시인과 함께 나의 필통 데코레이션을 담당한 인물이었지만 3.1운동과 님의 침묵에 관한 잔상 이외에 그에 관한 지식은 전무했기 그의 발자취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불충분하다. 어떤 운명인지 충청도에서 자라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강원도와 인연을 맺은 뒤 […]

현상윤, 최초의 근대적 체제의 조선사상사를 짓다 [길 위의 우리 철학] – 10

윤태양   1. 1945년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했다. 일제치하에서는 그토록 어려웠던 ‘민립대학’의 설립이, 광복과 함께 속속 진행되기 시작했다.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도 1946년 9월, 대학으로 승격되었다. 초대총장 현상윤(玄相允, 1893~1950?)은 1946년 2월 보성전문학교 교장으로 취임해, 대학 승격과 함께 총장이 되었다. 지금 고려대학교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대학원 건물 앞 두 동상 중 서양식 옷차림에 동그란 안경을 낀 인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