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 – 17회|6. 다시 강의실로 (2) [이종철의 에세이 철학]

Spread the love

17회

       6. 다시 강의실로 (2)

 

3, 4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전공 강의인 칸트 수업 역시 내가 공을 많이 들였다. 이 수업은 지방의 소도시에서 진행이 되었지만 나는 1주일에 한 번씩 여행하는 기분으로 다녔다. 두세 번의 수업을 통해 강의의 대략적 틀을 잡았고, 이번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칸트 철학의 내용을 다루게 될 것이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 도시에서 자취를 한다.

칸트 철학은 근대 철학에서 대단히 중요한 철학자다. 그의 철학은 하나의 거대한 호수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 이전의 철학이 그의 철학으로 몰려들고, 그 이후의 철학은 그로부터 흘러나가는 호수의 이미지에 그의 철학이 딱 어울린다. 칸트의 철학으로부터 철학은 본격적으로 아카데미권에 정착을 한다. 그 이전의 철학은 아마추어들의 철학, 거리의 철학, 살롱의 철학이었지만, 칸트의 철학은 비로소 프로의 철학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체계화시킬 수 있는 가를 보여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학생이라면 높고 험한 산을 등정하듯 칸트의 철학과 대결을 해야 한다. 근대를 경험한 지금 칸트 철학은 저 근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철학 중의 하나이다.

두 차례 정도 지나고 보니까 이제 나의 칸트 강의에 학생들이 점점 몰입하는 느낌이 느껴진다. 강의하다 보면 느낌과 시선이 몸에 와 닿는 순간을 경험한다. 학생들 책상 위에는 백종현 선생이 번역한 하늘색 바탕의 하얀색 장정으로 만들어진 두툼한 『순수이성비판』 한글 번역본이 올라와 있고, 이 『순수이성비판』 해설서로 잘 알려진 고트프리드 회페의 번역본을 올려놓은 학생도 보인다. 20년 전 우리가 칸트 철학을 공부할 때는 활자가 빽빽한 최재희 선생의 번역본을 사용했고, 해설서도 별로 마땅한 것이 없어서 아주 기본적인 번역서를 가지고 공부했다. 내가 앞자리에 앉은 학생에게 질문을 한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이라고 했을 때 그것이 무슨 의미지요? 무엇이 순수(Rheinheit)이고, 무엇이 이성(Vernunft)이고, 무엇이 비판(Kritik)을 의미하나요?” 철학과 3.4학년 대상으로 진행하는 수업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런 질문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지 학생이 다소 당황한다.

“아, 선생님. 죄송하지만 제가 그걸 알고 싶어서 이 수업에 들어온 겁니다.” 이 학생이 재치 있게 내 질문을 얼버무린다.

“물론 그렇겠지. 그래도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철학과 3.4 학년이면 이 정도는 대답할 수가 있지 않을까?”

“칸트는 혹시 결백증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나치게 순수를 따지고, 원칙을 따지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런 합리적 추정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의 주민들이 그의 산책 시간에 맞춰 시간을 맞추었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아주 규칙적으로 산책을 했다고 하잖아요.” 간단한 직관이지만 이런 생각을 따지고 들다 보면 얼마든지 칸트의 사상에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학생들에게 칸트 철학의 문제의식과 배경, 그리고 그가 시도하고자 한 사유의 혁명의 내용 같은 것을 개론적으로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전체에 대한 그림이 그려져야 그의 철학의 세부적인 미로를 탐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관념론의 시대를 연 칸트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철학적 딜레마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한편으로는 대륙의 합리론(rationalism)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의 경험론(empiricism)이다. 예나 지금이나 섬나라인 영국과 대륙 간에는 이질적인 흐름이 강하다. 단일 유럽 공동체(EU)를 만들어보자고 외쳤지만 결국 영국이 탈퇴한 것은 대륙과 독립적으로 유지해온 오랜 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상업과 해양 무역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거래를 하다 보면 서로 다른 거래의 관행이나 규칙 그리고 법규 등의 차이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타협하고 조정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처사이다. 그리고 그런 일은 어떤 독단적인 이성보다는 경험과 상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에는 일찍부터 경험주의적 전통이 발달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중세의 오랜 기간 유럽인들의 사고를 지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역 논리를 깨고 경험 논리에 기초한 ‘노붐 오르가논’(새로운 논리)를 주장한 것도 이러한 사회·문화적 배경에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반면 프랑스나 독일로 대변되는 대륙의 합리론자들은 우연적이고 상대적인 경험보다는 수학적 논증처럼 순수하고 필연적인 이성의 논리에 익숙했다. 일찍이 근대 철학의 지평을 연 데카르트가 그랬고, 그 뒤를 이은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모두 연역 논리를 강조했다. 합리론자들은 여전히 실체니 영혼이니, 신이니 존재니 하는 전통 형이상학에서 사용하는 개념들을 쓰고 있었다. 사유하는 자아(Cogito)를 정립하면서 신을 밀어낸 데카르트에게도 신은 유한 실체인 코기토를 보증하는 무한실체이다. 실체(Substance)란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서 다른 어떤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대륙의 합리론자들은 이런 실체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가지고 갈라진다. 가령 데카르트에게 실체는 무한실체인 신과 유한 실체인 연장(res extensa)으로서의 물질과 사유(res cogitans)로서의 정신인 3가지 실체가 있다. 스피노자는 자기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원인(Causa sui)이자 무한실체인 신일 뿐이고, 사유와 연장은 이 신을 표현하는 속성으로 간주한다. 스피노자 보다 다소 늦은 라이프니츠는 모나드(Monad)라는 개념을 끌어들여 다원론을 주장한다. 모나드는 우주에 무수히 많이 존재하는 실체이다. 이러한 모나드들은 창이 없지만, 우주를 반영하는데 존재 등급에 따라 하이어라키(hierachy)를 이루고 있다. 일종의 형이상학적 가설이라고 할 수 있는 합리론자들의 실체설은 존재에 대한 각기 다른 설명이 될 수는 있지만 증명이 불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칸트는 이를 독단론(Dogmatism)이라 비판한다.

경험론자인 로크도 외계의 알 수 없는 실체 X를 말한 적이 있다. 반면 버클리는 알 수 없는 것을 왜 전제하냐고 하면서 그것을 표상하는 지각으로 환원시켜 버렸다. 여기서 “지각이 곧 존재이다.”(Esse est percipi)라는 버클리의 유명한 명제가 나왔다. 20세기 유명한 초현실주의 작가인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을 보다 보면 버클리의 의식이론의 영향이 곳곳에서 보인다. 데이비드 흄은 이 실체를 아예 지각의 다발(bundle) 정도로 생각했다. 그에게 실체는 합리론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아무런 필연성이 없는 것이다. 합리론자들은 영혼을 하나의 불멸의 실체로 가정했지만, 데이비드 흄은 그런 불멸은 없고 단지 수많은 기능으로 역할하는 지각의 다발만 존재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흄의 이야기를 그대로 밀고 나가면 인간 영혼의 정체성 혹은 동일성을 주장하기가 어렵다. 흄의 주장은 결국 회의주의(Sceptism)로 이어지고 만다. 합리론이 ‘독단’에 빠졌다면 경험론은 뿌리치기 힘든 ‘회의’에 빠졌다. 경험론과 합리론은 서로 다른 사유 전통을 유지하고 있고, 서로 간에 대화도 거의 없었다. 칸트는 이렇게 상반된 사유의 다른 전통이 안고 있는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를 자기 철학의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경험론과 합리론의 각기 다른 모습에 대해 학생들도 수긍하는 눈치다. 내가 “이해가 됩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예. 아주 재미가 있습니다.’라고 맞장구를 친다. 그들 역시 칸트가 처한 문제 상황이 충분히 공감된 것이다. 문제 상황을 이해하면 해결 방식도 찾을 수가 있다. 많은 경우 문제를 문제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 상황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서문에는 이에 관한 유명한 예가 설명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숫 염소의 젖을 짜려고 하니까 다른 사람이 그 밑에 통을 받치더라는 것이다. 숫 염소에게서 젖이 나올 리도 만무지만 그것을 모르고 그 젖을 받겠다고 통을 받치는 사람은 또 무엇인가? 많은 경우 철학적 문제들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칸트가 풍자한 것이다. 20세기의 뛰어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상황을 빗대 ‘파리통 속의 파리’로 묘사한 바 있다. 부처도 인간의 실존을 고통으로 보고,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 고통을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를 제일의 과제로 삼았다. 그가 말한 불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는 고통의 원인과 처방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나온 연기(緣起)와 무아(無我)는 불교의 핵심 사상이다. 마찬가지로 칸트에게서도 중요한 것은 이 딜레마적인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푸는 해결 방식이었다.


이종철(철학박사)은 『철학과 비판』(도서출판 수류화개)과 『일상이 철학이다』(모시는 사람들) 그리고 『문명의 위기를 넘어』(공저, 학지원)를 썼다. 그는 『헤겔의 정신현상학』(J. Hyppolite, 1권 공역/2권, 문예출판사), 『사회적 존재론』(G, Lukacs, 2권/4권(공역), 아카넷), 『나의 노년의 기록들』(A, Einstein, 커큐니케이션스북스)등 다수의 번역서들을 냈다. 현재는 연세대 인문학 연구소 전문 연구원이자 인터넷 신문 ‘브레이크뉴스’와 ‘내외신문’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NGO 환경단체인‘푸른 아시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0 replies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