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에게 천리마란…[철학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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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 철학이란 미지 세계에 대한 탐험이 아니다. 이미 축적된 가치와 세계에 대한 확인이며 체득이다. 그런데 이것을 확인하고 체득하는 방법을 몰라 방황하기도 한다. 스승이 필요한 이유다. 동양에서 사승관계를 중시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도통론(道統論)도 나왔다. 인생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때론 어떠한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좋은 스승 찾아 수 십리 수 백리 길을 찾아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교육여건 따라 아파트 가격 형성이 천차만별인 것은 요즘 불거진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처음 사학(私學)을 개창했다고 하는 공자의 제자가 3천명이라 하기도 하고 72명이란 소리도 있다. 기준을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니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 다만 수제자 그룹에 속하는 이들을 일반적으로 72명이라 말한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인자(仁者)도 있고, 현자(賢者)도 있고, 오합지졸(烏合之卒)도 있다. 거렁뱅이도 있고, 깡패도 있고, 재력가도 있다. 말재주 좋은 재변가도 있고 어눌한 답답이도 있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위정자가 본 제자와 스승 공자가 본 제자,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본 제자의 모습은 같지 않다. 당대 위정자들과 일반 사람들이 현명하고 능력 있는 제자라고 평했어도, 공자가 보기에는 무능하고 똑똑하지 못한 제자일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자공(子貢)이다. 자공은 대단히 유능한 사람이다. 정치적 수완도 뛰어났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했다. 주변에서는 공자보다 낫다는 얘기도 자주 했다. 그때마다 자공은 부담스러워하며 더욱 겸손했고 더 노력했다. 이쯤 되면 스승으로부터 인정받을 만도 했지만, 공자가 본 자공은 늘 부족한 사람이었다.

반면 안연(顔淵)은 누가 뭐라 해도 부족한 사람이다. 위정자나 일반 사람 눈엔 그랬을 것이다. 오로지 학문에만 열중한 나약한 제자였다. 늘 스승의 말씀에 “Yes!”란 말만했지, 감히 “No!”라고 대꾸한번 못했다. 거기다가 본인은 물론 처자식의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무능자중의 무능자였다. 그래서 그는 위정자들이 인정하는 재능 있는 사람은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가 본 안연은 최고로 능력 있고, 최고로 똑똑한 제자였다. 어디를 가도 안연을 제일 먼저 챙겼고, 스승보다 먼저 저세상 사람이 되었어도 공자는 그의 이름을 달고 살았다. 권력자들에게 추천권을 행사할 때도 으레 죽은 안연을 추천했다.

사마천(司馬遷)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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