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역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청춘 [청춘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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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건국대학교 강사)

장맛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오후, 내 초라한 서재의 맨 위 칸에 있는 오래 묵은 시집을 꺼내들었다. 오월의 철쭉이 작열하는 태양에 녹아 꽃대마다 축 늘어진 그 시절에 내 마음 속에 톱밥난로를 지펴주던 한편의 시, 대구의 어느 산자락의 병동에서 만난 전라도의 어느 문과대학을 다니던 국문학도가 암송하며 읊어주던 ‘沙平驛에서’(곽재구, 창작과비평사, 1983)라는 시를 펼쳐본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내리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가 본 시인은 참으로 따뜻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의 시에는 철과 철이 맞부딪쳐 쨍쨍 거리는 험한 세상 속에서도 한 송이 꽃, 한 포기 풀과 같은 생명이 살아 있으며, 온갖 거짓 구호가 난무하는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울림이 있었다. 시인은 어두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며 잊혀져간 사람들 – 동명동 청소부 박득세, 권투선수 김득구, 스무살 첫사랑 영자, 대인동 창녀들, 엄경희, 조경남, 그리고 어머니 – 등을 하나 둘 씩 호명하며 그들을 기억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시인은 이 땅에 하찮게 널려 있는 들쑥 꽃, 칡 꽃, 달맞이 꽃 등과 돌각담, 소고기국, 개똥벌레 등을 그의 시에 담으며 그것들의 살아 있는 생명력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뼈아픈 이 땅의 역사를 가슴에 품으며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시인은 절망의 강기슭에 배를 띄우며, “이 땅의 어둠 위에 닻을 내린 / 많고 많은 풀포기와 별빛이고자”(절망을 위하여) 했으며, 사람이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날을 기다리며, “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 / 그리워진 서로의 마음 위에 / 물먹은 풀꽃 한 송이”(바닥에서도 아름답게)이고자 했던 참으로 맑은 시인이었다.

빨리 가고자 하면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낯설은 간이역 대합실에서 톱밥난로에 의지해 추위를 녹이는 사람들이 막차를 기다리는 풍경은 지금은 잊혀진 추억이 되었다. 완행열차가 사라지고 쾌속으로 달리는 고속열차가 생겨난 지금은 밤낮 없이 바쁘게 사람들을 이리저리 실어 나르고 있다. 정거장도 없이 직행으로 달리는 고속열차 안에서 보는 차창 밖의 풍경은 사물을 정지시켜 볼 수 있는 우리 눈보다 더 빨리 지나간다. 빨리 지나가는 풍경에 익숙해진 우리 눈은 우리 곁의 사람들과 사물들도 무심코 지나친다. 보다 깊게, 보다 자세히 보고자 하지 않으며, 지나가는 것은 숫제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들은 우리의 생활에서 불필요하다는 것을 빨리 잊고 싶어 하는데, 그것은 아마 우리의 시대가 떨쳐 버렸으면 하는 아픔과 고통이 아닐까 생각한다.

청춘이 시대의 아픔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때라면, 시인은 그 아픔을 언어로 옮기는 사람이다. 청춘이었던 시인은 시대의 아픔을 체험하며 그것을 따뜻한 언어로 승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막차를 기다리는 간이역 대합실에서 시인은 송이눈이 내린 창밖 풍경을 보며, 톱밥난로에 의지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모습을 본다. 고단한 삶에 지친 꾸벅꾸벅 조는 사람과 쿨럭쿨럭 기침앓이를 하는 사람들을 본다. 모두들 사연이 많은 사람들이라 내면 깊숙이 할 말은 가득해도, 난로에 의지해 시린 손을 녹이며 침묵하고 있다. 세파에 시달려 침묵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말없는 표정과 몸짓을 시인은 그의 언어 속에 담으며 내면에 담긴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위로한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청춘의 시절은 저마다의 익숙한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자기를 발견하고자 여행하는 시기이다. 고향을 떠나온 청춘이 낯선 환경에서 느끼는 삶의 애환은, 산다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때론 술에 취한 듯 살아가며, 가끔은 하루의 노동을 바꿔 마련한 봇짐 하나 들고 떠나왔던 곳을 찾아 간다. 나를 기억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을 통해 살아가는 의미를 다시 확인한다. 여행을 떠나는 청춘이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 있다면, 그 세상의 모든 곳은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고향일 것이다. 억압하는 것이 없는 세상 속에서 청춘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희망으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이 만만하지 않고, 세상이 녹녹하지 않기에 뜨거운 가슴을 안고 사는 청춘은 세상을 향해 외치며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한다. 청춘이라면 마땅히 침묵보다는 세상을 향해 소리쳐 외치는 것이 어울리지만, 고단하고 긴 여행에 지친 청춘들은 희망보다는 체념을 먼저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런 청춘들을 향한 세상의 숱한 교훈들은 그것이 인생이라고 가르친다.

고향을 떠나 타지의 변방을 돌고 있는 나는 조그만 간이역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청춘이다. 지나간 상처의 흔적이 아물어 아픔과 고통이 가슴에서 머리로 올라갈 즈음에 나의 청춘의 여행도 서서히 끝날 것이다. 시를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아마도 가슴 치는 아픔과 고통이 머리 위로 올라가기 전까지 일 것이다. 그 때 즈음이면 내면의 할 말은 가득해도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나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슴의 아픔과 고통이 머리 위로 옮겨 가면서 청춘은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지만, 때때로 찾아오게 될 두통은 나의 아픈 청춘이 잊지 말고 자신을 기억하라고 보내는 메시지일 것이다. 언젠가는 햇볕이 밝게 드리우는 고향의 언덕으로 창을 내고 맑은 냇물을 떠서 차를 다리고 즐겁게 손님을 맞이할 것이라는 약속을 잊지 말라는 청춘의 메시지. 그 약속을 지킬 때 즈음이면 아마도 지금 빠지고 있는 나의 머리칼도 다시 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때가 되면 언젠가 단오 날에 창포물에 머리를 감듯이 나는 나의 아픈 청춘을 흐르는 시냇물에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청색의 화려한 줄무늬를 달고 고속열차는 어디로 급히 가는지. 오늘도 차장들은 고단함에 지쳐 힘겨운 청춘들을 불러 줄 세우고 한 가득 열차에 담아 기적 소리도 없이 달린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고속열차는 어디쯤에 저 청춘들을 내려놓고 마지막 숨 가쁜 기적을 울릴지 나는 알지 못한다. 장맛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오후, 내 서재가 있는 창밖으로는 한강이 내려다보이고 짙은 색으로 뒤 덥힌 급류를 유영하는,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 수 없는 나뭇가지와 풀들을 본다. 이 글을 쓰고 나면, 아직 다하지 못한 나의 청춘과 이별해야 할 것 같은 나는 대합실이 사라진 간이역을 생각하며 아직 오지 않은 막차를 기다린다. 시인이 톱밥난로 속으로 던진 한줌의 눈물의 의미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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