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거라투스트라, 영화 ‘토리노의 말’을 보다[자거라투스트라 시장에 가다]
세상의 어머니여! 모든 아이들을 보호할 것인가, 우리 아이를 위험에 내놓을 것인가
김 경 원(문정중학교 교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대립과 세계 기아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아기를 낳지 않는다 했던 여자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자연 번식(?)에도 성공하였다. 중고등 시절, 선생님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으며 딴 짓과 자습 빼먹기를 밥 먹듯이 하던 여자는 먹고 살 방도를 위해 젊은 시절을 헤매다 양심도 없이 뒤늦게 교사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대한민국의 유부녀 여교사가 된 것이다. IMF 시절에는 먹고 사는 문제로 소심해질 대로 소심해진 국민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적도 있었지만 요즘 내 주변의 사람들은 부쩍 나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지난 달에 부산에서 만났던 초면의 남편 선배는 요즘 구독하는 신문에서 보니 학교가 정말 심각하다며 나를 딱하다는 듯이 쳐다보았고 최근 만난 큰시누이는 내 손을 두 손으로 움켜잡으며 힘들어서 어떻게 사냐고 했다. 뭐 그냥 그 자리에서 울어야 할 분위기였는데 안타깝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물론 내 주위에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어울리는 여러 가지 심란한 에피소드는 많다. 내 주변의 소심한 동료는 수업이 끝나면 교무실에 돌아와 한참을 넋나간 표정으로 앉아 있는다. 그 선생님은 말 안 듣는 악동들의 교실에서 벗어난 충격(?)으로 점심시간이 지나는 것도 잊고 (정말 나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리 앉아 있는 것인데 그러한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 어떤 선생님은 자다가도 수업 시간에 힘들었던 장면이 생각나 벌떡 일어나 당시에 억울하게 당했던(?) 장면을 떠올리며 분노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주변 학교의 즐거우신(?) 학생들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활약상도 우리 학생들을 통해 종종 나의 귀에 들어오기도 한다. 킥복싱을 배운 학생과 학부모 혹은 자해하는 학생에 의해 위협을 당한 교사의 이야기는 같은 교사로서 학생들 앞에서 듣기에 민망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본인도 교직 생활 10여년 동안 무협의 세계에서 생활하며 나름대로 몇 가지 어려웠던 에피소드는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나의 이야기를 쉽게 털어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냥 들으면 매우 버릇없고 나쁜 인간 말종들의 이야기로만 들리기 때문이다. 혹은 학생 장악력에 문제가 있는 여교사의 하소연으로 들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섬세하게 그 상황의 뒷면까지 보면 어려운 가정 형편에, 가족의 해체에, 잘못된 입시 위주 경쟁 교육에, 믿고 의지할 데 없는 외로움에, 권위적인 교사 및 학부모들이라는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면 우회 도로로 해결 방법을 찾게 되기도 한다. 최근 언론 지면에는 학교에 학생들을 장악할 남교사가 너무 없었다거나, 가해 학생에게 너무 처벌이 미약했다거나, 학교 문제라고 해서 외부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거나 사회적으로 교사들이 체벌 등 강제적으로 학생을 장악할 방법이 없었다는 반성들이 들끓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남교사를 확충하자거나 가해 학생에게 강력하게 처벌하자거나 경찰의 적극 개입을 인정하거나 교사들에게 강력한 제제 주단을 주자는 등의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그 조치에 경쟁 위주의 교육 제도 시정이나 가족 복지에 대한 배려는 들어 있지 않다.
오늘도 인터넷에는 단골 기사인 학교 폭력 관련 기사가 새로 올라와 있다. 10만원 때문에 친구를 죽인 혐의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면서도 태연히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었다는 고등학생의 이야기가 우리의 흥미를 자극한다. “요즘 애들은 쯧쯧쯧…….”, “이런 애들은 콱 죽을 때까지 콩밥을 먹여야지.”, “이게 인간이야? 괴물이지!” 등등 강력한 대응이 자신의 도덕성을 입증하는 양 우리는 한 두 마디씩 어찌 이럴 수 있느냐고 성토하곤 한다. 그러면 우리는 깨끗하다. 이러한 괴물을 낳은 사회의 일원이지만 우리는 분명 깨끗할 것이다. 후속 기사에 따르면 이 아이의 아버지는 일찍이 도박에 빠져 집을 나가고 엄마가 홀로 일을 하여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과거에는 가정폭력에 시달렸고, 현재는 폭력적인 가난 앞에 노출되어 있던 이 아이의 엄마는 분명 비정규직이었을 것이고 늦게까지 일하느라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었을 거라고 말하면 그것은 세상을 너무 비관적으로만 보는 것일까?
도대체 어떻게 하면 학교 폭력을 없앨 수 있을 것인가?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아이들을 학교 폭력으로부터 보호할 것인가? 엄마로서는 눈물 나는 일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교사인 나조차도 학교 폭력으로부터 내 아이를 완전하게 보호할 수 없다. 단지 운 좋게도 친절한 담임 선생님과 좋은 단짝 친구와 너그러운 일진을 만나길 기도할 뿐……. 혹은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총알도 피하는 유연성이 우리 아들에게 허용되길 바랄 뿐이다.
이기적인 엄마들 입장에선 우리 아이만 이 혼란한 세상에서 쏙 빼서 보호할 수 있은 방법이 있으면 좋으련만 세상은 쉽지 않아 나의 아이의 친구와 그 친구의 친구와 그 친구의 친구의 친구까지 안전하고 행복해야 비로소 나의 아이까지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정말 절실하게 나의 아이의 친구와 그 친구의 친구와 그 친구의 친구의 안위까지도 내 아이의 안위를 걱정하듯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무한한 친구의 친구의 가정이 어떠한지 아버지는 도박을 끊으셨는지 어머니는 정규직으로 전환되셨는지가 진심으로 궁금하고 걱정이 되는 것이다.
“신이 세상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듣는 엄마들 부담스러운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여자들은 결코 자신의 자식만을 보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아이들을 보호하든지 아니면 자신의 자식을 위험 속에 내놓든지 둘 중 하나다.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Feel free to contrib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