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 필요에 따라” [천 하룻밤 이야기]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 필요에 따라”
산다, 뭘 하며 살지: 삶과 함 –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 필요에 따라” 2025 09 23 추분(秋分): 지구 온난화일까, 거의 추분 나흘 전까지 밤에도 20도를 넘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삶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 중의 하나가 학문이다. 그 학문의 체계화에는 철학이 있다. 철학은 한편으로 문제 해결에서 개인들 각각 편하게 살기 위한 방식도 있고, 다른 한편 공동체의 문제 해결을 위해 개인들 사이의 몫을 내놓는다. 이 문제라는 것을 화두라고 부를 수 있다. 화두 또는 형이상학적 문제를 푸는 데는 일상적으로 눈으로 보고 또는 귀로 들어서 따라 하기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살아온 과정에 느낀 심정성이란 것도 있다. 지자들은 후자의 심정성이 인간 종으로서 당연히 있다고 느끼고 더 이상 말로 표현하지 않거나, 중경과 선후에 따라 뒷전으로 밀쳐둔다. 그런데 첫째의 지식에 관하여 눈과 귀는 개인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영향과 결과를 미친다고 여긴다. 게다가 이것을 잘 아는 자는 자기 이익을 챙기기 쉽다고 여긴다. 지자의 길은 현자의 길보다 중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 어릴 적에 할배들이 모인 사랑방 이야기에서 천문 지리를 통달해야 세상에 나가는 것이고(출세간, 出世間), 그렇지 않은 경우에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다고들 했다. 한 해의 길이와 한 달의 길이 사이에서 기준이 다른 것들, 원의 길이와 원의 지름 사이의 비례, 하도와 낙서니, 천원지방(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임) 등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무엇인가 신기한 이야기를 잘 알아야 출세간 하는 줄 알았다. 그럼에도 농사를 짓는데 제일 중요한 것이 절후(해의 길이, 양력)라고 하면서도, 제사를 지내는 것은 음력(달의 크기, 음력)으로 하는 것에까지 다른 점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한다. 어떤 현상 또는 사실들이 풀이 방법이나 추리 방식에 따라 달라서 서로 사맞디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랑방에서 한쪽과 다른 쪽 사이 견해가 서로 다를 때,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은 쪽으로 결정 나는 것 같은데, 실재로는 답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우선 정한 선후와 중경을 따르는 것 같다. 중등 시절인가, 중국 백만 대군이 백두산에서 오줌을 누면 우리나라가 떠내려간다든지, 중국인구가 몇 억이 모여 한꺼번에 뛰어서 구르면 지구가 흔들거린다고 들었을 때, 어린 마음에 중국이 무섭구나 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에 물리학을 배우면서, 이 걱정은 사라졌다. 백두산 꼭대기에 백 만 대군이 같은 자리에 올라설 수 없다는 것이고, 억대의 인구가 한자리에 모일 수도 없고 그들이 한자리에서 뛰어 구르지 않고 흩어져서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이 정답은 아르키메데스가, ‘지렛대와 지지점을 주면, 지구를 들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철학사들을 읽으면서 서양 중세에도 이런 걱정을 했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바늘 꼭대기 천사가 얼마나 앉을 수 있느냐는 것인데, 선승들이 들었으면, 점에서 위치와 크기가 없는 데 점에 무한한 상징들이 앉을 수 있지. 원이 무한히 줄어들면 점이 되고, 줄어서 무한히 작아지면 그 점이 없어질까? 점이 무한히 크다고 생각하면 점은 둥근 우주가 되는 것인가? 상상작용은 지식을 만들기도 하지만, 허구와 미신을 낳는다는 소(小)소크라테스 학자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중세 유명론에서 상상작용의 상징이 실재한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우주의 무한성은 아직도 허구일 것 같다. 우주의 크기가 눈의 관찰을 넘어서 빛으로, 그리고 빛이 오는 거리를 350억 광년거리라고 측정(추정?)한다고 하지만, 그 과학적 측정이 상상작용만큼이나 허구(fiction)으로 보이는데, 실재라면서 천문학의 기술을 믿는 이들은 비허구(non-fiction)라고 한다. 인간 종은 지구라는 삶의 터전위에서 문제거리가 중하고 먼저이다. . * 구석기 이래로 실재하는 사물들에 대해 수를 세는 노력은 있어왔다고 한다. 기록 상으로는 구석기 말기에 뼈나 나무 위에 빗금친 기호(le signe)들을 숫자를 세는 표기법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숫자로서 기호가 표시된 것은 신석기 시대에 공동체가 형성되고 난 뒤에 나타난다고 한다. 이 숫자의 기호가 수를 셈하는 산술로서 상징이 되는 데는 인류에게 시간이 더 필요했다. 어쨌든 고대 수학을 연구하는 이들은 개수를 세는 방식이 먼저였고, 그리고 셈법을 간소화하고 정확하게 하는 방식에서 산술학에서 말하는 수의 용어가 성립했다고 한다. 산술학에서 수는, 사과 한 개, 두 개; 대추 한 개 두 개의 한, 두와 다르다는 점이다. 한, 두는 수의 1, 2와 다르다는 것을 학술적으로 논의한 것은 그리스 철학사에서 퓌타고라스학파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수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이전에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이집트 문명에서 숫자와 수의 구별이 있었다고, 고대 문헌적 자료를 통해 해명하였다. 그런데 수학자들이 수의 셈에서 10진법과 하늘의 운행에서 나왔다고 여기는 60진법 사이에서 전자가 후자로 발전하는 또는 달리 생각하는 방법이 연속적인지 불연속적인지를 아직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두 개에서 2라는 추상의 상징을 생각해낸 과정을 분명하게 밝힐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사과 한 개와 배 한 개를, 두 개라고 하는 실재적인 것과 2라는 추상의 수는 별개인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서 실재적인 것은 현실적으로 바구니에 담는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개수의 둘은 바구니에 담을 수 있는 숫자에서 나온 것이다. 상징의 2는 사과와 배가 없이도, 그리고 바구니가 없어도, 생각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수학 역사가들이 말하듯이 수와 숫자는 다르고, 셈법과 산술학은 다르다고 할 것이다. 이런 사유방식의 차이가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다루어졌을 것이고, 문헌적 체계로서 플라톤 먼저고 그 다음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일 것이다. 라파엘(1483-1520)이 그린 “아테네 학당”의 그림은, 플라톤의 하늘, 아리스토텔레스 땅, 즉 하늘과 땅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천문지리의 이야기는 서양에서도 이어져 왔다. 셈법의 하나, 둘, 셋, 다섯, 열, 스물 등은 대상과 연관이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셋 또는 다섯을 두 사람이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라고 하면, 딱 떨어지는 셈법이 없다. 문제거리를 해결하는 것이 현자 또는 지자일진데, 긴 세월에 걸쳐서 풀 수 있는 방법들을 만들어갔을 것이다. 셈법과 달리 산술학이 편리하고 유용하다는 것은 점점 알아채고 있었다. 현실적인 것, 기호적인 것, 상징적인 것 사이에서 현자들이 차히를 알았음에도 하나로 설명하는 체계를 만들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지자들은 분할의 방법을 사용하여, 이 범위 속에서 이렇게 저 범위 속에서는 저렇게, 다른 범위 속에서 달리 체계를 만들어야 편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후세 철학자들이 차히의 발생과 원인을 생각하기보다, 차이들 사이의 범주(항목들)와 체계를 만드는 작업의 노력을 학문의 길로 삼았을 것이다. 그리스 아테네 철학이후 2천 5백여년 동안에 차이의 범주들을 기준으로 삼아 구성론(le constitution)과 구축론(construction)이 있었고, 그럼에도 잘 설명이 안 되지만 차히의 발생에서 조성론(composition)이 있다는 것도 끼여 있었다. 아마도 현대수학들의 논의에서 수학 역사가들이 단위 형성에 관한한 논리주의, 형식주의, 직관주의라는 방법론의 방향을 설명하는 것에 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생성론이란 방법이 있다면 이는 자연주의 일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과 한 개와 대추 한 개를 현실적으로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수의 실재적인 것과 개수의 현실적인 것은 다르다. 그런데 1+1= 2라고 할 때 두 개의 2는 1의 동등성이 실재하는 것을 여긴다. 게다가 2를 분할하면 동등한 1이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럼에도 고대에서는 그 1이라는 단위가 실재한다고 여기는 것이, 플라톤주의에서 이데아론의 실재론이고, 유일 신앙에서 하늘나라에서 부활의 대상이 실재론이고, 나아가 칸트의 도덕형이상학의 규범과 헤겔의 절대지 등도 실재론이고 현상학에서 선험적 현상도 실재론이라 한다. 이에 비해 프랑스 철학사가들이 19세기말에 칸트와 헤겔의 영향으로 관념론자들이 말하는 인식 대상의 관념이 실재한다고 하는 것이 허구(une fiction)이라 하는 이유가 있다. 이 시기에 산술학과 논리학의 대등을 논하는 것도, 관념론의 사유 논리와 같은 계열의 체계화로서, 사유에는 하나의 통일성이 있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그런데 중세 보편논쟁에서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전칭긍정명제가 실재하지 않은 추리에 의한 귀결이라고 여기고 착각이라고 불렀으며, 모든 S가 P이다에서 모든 S가 보편이니 절대니 하는 것은 하나의 신이 전체이면서 보편이라는 독단(le dogme, 억측)일 뿐이라고 한다. 그 1(하나)은 입에서 나오는 소리(vox, la voix)와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유명론의 학문이 퍼져나가자, 신학은 다시 범주보다 체계를 세웠다고 하지만, 즉 아퀴나스가 보편논쟁을 정리했다고 하지만, 이에 대립하는 학자들은 그 신학자들의 독사(le doxa) 정도로 여겼다. 독단은 인간의 삶의 편안과 안녕을 위해 기호의 편의를 현실적으로 적용함에서 합리적인 부분만을 경계삼아 유용성과 실용성을 강조한 것이고, 개인들의 탐욕과 이기심을 부추기고, 집단적 오성(지성, 이성)인 것처럼 위장(포장)한 것이리라. 수학사는 흥미 있게도 하나라는 숫자는 범주와 체계 속의 단위(1)와도 다르고, 추상하여 1이라는 것과도 전혀 다르다고 한다. 게다가 1(추상)은 원주의 길이를 무한히 작게 잘라서 나온다고 여기는 점과도 다르다. 어쩌면 실재성이란 단위를 설정하기 이전에 아페이론과 같은 것이고, 그것은 방황하는 흐름이고, 경계가 없는 덩어리이고, 게다가 무어라고 정의할 수도 규정할 수도 없는 실재적인 것이며, 세상의 여러 다양한 것들 생성하게 하는 자연 또는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단위는 우주를 단위로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흐르고 변한다. 프랑스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브랑슈비끄(1869년–1944)가 원시 문화에서 숫자의 성립과 개념작업을 생각하면서, 원인(아이티아)과 범주(카테고리)는 서로 다른 길이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사유였을 것이다. – 아마도 발생과 현상이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실재성은 발생에 있으며, 현상은 현질적이지만 실재적이 아니다. * 유명론이 하나의 보편성과 절대성을 주장에 대한 허구라는 이야기에 대해, 근세철학에서 데카르트 이후로는 유명론의 언급조차도 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정수에서 무한이 절대적 무한과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고 데카르트가 말한다. 마치 신이 모든 무한을 포함하는 무한성인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데카르트의 좌표 상으로 무한히 길이를 연장(l’étendue)하면 무한이 있고, 그 무한은 실재하는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 데카르트는 이 무한성을 이해하는 인간의 사유가 타당(정당)하다고 하였고, 무한의 사유가 당연히 인정된다고 여겼다. 신은 무한하다. 무한성은 실재한다. 여기에 논리학이 끼어들면 무한한 전체(전칭긍정 명제의 주어)를 알면 그에 속하는 부분들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데카르트이후 200여년 만에 그 무한이 인간의 사고가 만든 무한이라는 것을 비유클리트 기하학이 제시할 것이고, 다른 무한을 증명할 것이다. 이런 여러 무한들도 모두 실재성이라고 주장하고 싶었지만, 칸토어 이후에는 무한의 종류들도 많아졌다. 그러면 우리가 사유하는 무한들 말고도, 모두를 체계 속에 넣어서 하나의 통일성을 갖는 무한, 그런 무한이 있을까? 아직 무한성이 비결정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실재성은 흐름 또는 생성(자연)이라는 이법이 성립한다. 흐름을 마름질하는 방식에 따라 상상작용은 흐르는 덩어리를 달리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 등이 주장하는 하나의 원리(정의)가 다른 것(원인 생성)들의 잣대가 되는 것처럼 생각해왔다. 천문학이 우주전체에, 진화론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등 종의 다양성에도, 통일장이 극미립자의 역학에서도 공리와 정의처럼 먼저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각 학문은 한계 안에서 정합적이고 그에 맞는 대상(이미지작용)에 규약적일 뿐이다. 그럼에도 전체에 통일성(l’unité)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모든 것은 하나의 통일성 속에 있다고 여긴다. 이 통일성이 단위가 아닌가? 그 단위가 고정되고 불변하고 완전하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 단위가 흐르고 변화하고 움직이고 생성하는 중인 덩어리를 임의적으로 잘라 범주를 정한 것이 아닌가?. 수학의 범주와 체계화는 아직도 진행 중에 있고, 각 진행의 방식에 따라 세계 또는 자연을 구성, 구축, 조성, 생성 등에서 이유와 방식들은 여러 가지로 구분하는 중이다. 수학의 문제를 푸는 방식은 50가지가 넘는다는 오일러의 발언은 경계(페라스)를 설정하는 방식에 따라 수학들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아마도 그 보다 더 많은 방식이 심리(프쉬케) 또는 영혼을 다루는 방식에도 있을 것이다. 요즘 급부상하는 AI가 이미지를 습득하고 다른 방식은 영혼(두뇌)을 다루는 새로운 한 방식일 것이다. 셈법에서 산술학, 측지술에서 기하학, 복리 이자계산에서 지수와 로그함수, 실재성의 무작위 재단하는 방식에 따라 부정방정식과 대수학, 우연이라기보다 우발적 사건들의 발생에 대한 주사위놀이와 같은 계산에서 확률론과 통계학, 기후 변화와 지진 활동의 발생에서 복잡계이론, 집합론과 파라독사 이후 무한계 등에 이르기까지 수학들(Les mathématiques)의 발전과 확장이 있어왔다. * 이와 마찬가지로 사유 방식의 천차만별의 차히들의 등장(생성)만큼이나 영혼학(프쉬케학, 심리학)의 영역(분과)들이 생겨났다. 여기서 상층의 정신과 생명체의 영혼 사이에서 새로이 응용할 용어로서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영국의 마음(the mind)과 어원을 같이 하는 심정성(la mentalité)의 용어를 수용한다. 정신과 영혼 사이에서 데카르트이후 “빛들세기”에서 정신은 추상과 보편을 실재성으로 삼는데 비해, 영혼은 자연과 발생을 실재성으로 삼는 차히를 드러낸다. 이로서 화학이 구화학(al-chimie)에서 벗어나고, 생물학이 보편과 추상과 별개로 실재성의 학문임을 드러낸다. 대부분의 정신주의자들은 자연의 생성과 생명의 진화에는 법칙을 발견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학문이 아니라 우발성의 개연성에 머문다고 보았다. 생명은 원래 아자르(hasard)이고, 신의 활동도 아자르라고 하게 되면서 정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원리와 법칙을 상실할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이 또는 무슨 통일성이 절대와 완전으로부터 자연과 생명에 적용가능한가? 이런 물음은 신이 생명에 대해 무엇을 적용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추상의 산물로 여기는 신은 생명과 자연에 대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해놓은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회에서는 신의 권능과 역할이 있는가? 사회와 공동체는 인간 활동의 영역이다. 정신의 실재성, 관념의 실재성을 믿는 이들은 신의 권능과 역할이 자연과 생명에게는 유보하더라도 인간 사회와 국가의 체계는 지배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신앙이 국가와 국민이라는 일반화의 정립이 실재성이라고 하고, 국가의 기능과 국민의 역할을 실재성이라 한다. 이런 우화적 이야기가 역사 속에서 전통과 풍습 속에서 이어져 왔다. 그렇다고 추상성과 보편성을 반박하듯이, 일반화에서 대상화를 이룬 개념들이 실재성이라는 것을 반박하기는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일반화의 대상들을 현실적으로 대응시킬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물의 셈에서 개수(nombre)와 거리에서 길이(étendue) 등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서 이런 사물들과 거리들이 실재하는 것인가에 대해 논의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다. 즉 추상관념들은 실재성이 아니지만, 추상관념이 적용하는 일반 대상들로서 개념들이 실재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일반화의 두 길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추상관념이 개념화에서 개수는 세는 것과 같은 일반화가 있고, 다른 하나는 더미 또는 여럿에서 일반화를 합의하는 방식이 있다고 한다. 전자에서 대상은 개수를 세는 수학과 물리학의 편리에서 오는 것인데 비해, 후자에서는 공동체에서 훌륭한 일, 장한 일의 일반화이다. 플라톤주의와 논리주의는 전자의 일반화가 먼저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19세기말 20세기초 심리학의 발달과 언어학의 발달은 전혀 다른 길을, 후자의 길을 보여주었다. – 맑스의 가치, 니체의 가치, 심정성의 가치는 후자의 길에 가깝다 – 앞에서 언급한 셈칙과 산술학 그리고 기하학의 발달과정의 언급에서 일반화는 현실적 대상에서부터였다고 했다. 수학에서 일반화는 언어의 용어 성립에서도 비슷한 길을 걸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언어학자가 아니라 일부 입말학자는 공동체의 삶에서 명사가 동사보다 먼저 생겼을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명사에서 동사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여기서 명사는 고정이 아니라 변화하는 과정들 일체이다. 소크라테스는 대상의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소크라테스로서 살아간 과정과 행위의 일체를 말한다. 그 명사로서 용어는 과정의 일체로서, 그의 삶의 일반화에 대한 용어로서 일반화라는 것이다. 사자가 먼저이고 용맹하다는 다음이며, 날래다는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이런 용어 성립에서 명사, 성질(특성) 형용사, 동사로서 규정하고 다른 것과 경계를 그었다는 것이다. – 이 가설은 벩송의 꼴레쥬 드 프랑스 강의록에서 나온다. 일반화에서 전자의 일반화에는 관념 또는 추상의 상징이 실재성이라는 이론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 후자의 일반화는 삶의 과정에 대한 표현과 합의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신석기 시대의 종족들의 공동체에서 언어가 문법화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 이야기에 암시를 주는 것은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화용론에 있을 것이다. 작업장에서 벽돌 장인이 “벽돌”이라고 외치면, 벽돌을 쌓는 것인지 던지는 것인지는 같이 작업하는 동료와 약속 또는 합의에서 이루어진 활동에서 용어이라는 것이다. 삶의 터전에서 일반화의 용어로서 먼저 등장한 것은 삶의 터전의 합의와 조성에서 있을 것이다. 단어와 대상, 문자와 그림의 연관으로 보았던 비트겐슈타인이 1차 대전이 끝나고, 왜 고향 땅으로 돌아가 유치원 애들을 가르치면서 언어 형성에 관심을 기울였을까? 이 시기에 인류학과 입말학(언어학)은 논리학의 구조와 틀(체계)과 달리 생성하는 용어와 개념을 다루는 방식을 고민했다. 앵글로색슨이 인식의 우선으로 용어와 개념이 먼저 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그것들이 먼저 있는 것이라고 실재성을 주장하기에 이르렀지만, 프랑스 쪽에서 언어학은 논리학과 달리 입말이라는 점을 보았다. 중세 말기의 개념이 기호와 목소리로 되어 있다고 하면서 추상은 실재성이 아니라고 하였듯이, 20세기의 언어학에서 그 입말은 소리와 이미지로 되어 있다고 보았다. 벩송은 사유의 재료들이 이미지들로 되어있다고 보았던 심리학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언어는 몸짓, 행동, 말씨 등을 포함한다. 그 언어의 실행에서 논리가 먼저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에 비해 논리학과 수학과 별개로 입말이 있고, 입말의 일반화가 있다. 소쉬르가 설명하는 입말의 경우에, 실재하는 대상으로서 소나무가 있고, 이 소나무와 별개로 현실적으로 청각 이미지(ㄴ, ㅏ, ㅁ, ㅜ)가 있으며, 이것을 듣는 이는 머리 속에 그리는 소나무 이미지가 있다는 것이다. 청각이미지와 상상이미지는 각각의 개인이 갖는 이미지가 있다는 것이다. 카나다의 꼬마가 나무를 단풍나무로, 프랑스 파리의 꼬마가 떡갈나무로, 강원도 인제에 사는 꼬마가 미시령의 소나무를 생각(이미지를 그리며 상상)하는 것은, 그 꼬마들의 삶의 터전의 사유이다. 청각이미지를 시니피앙(기표), 사유(상상) 이미지를 시니피에(기의)라고 한다. 이 두 가지는 대상의 실재성과 전혀 관계없는 이미지들이라고 소쉬르는 못 박았다. 그런데 이 두 이미지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는 그 각각들이 살아온 과정의 이미지들을 일반화 한 것이다. ‘부산’은 우리나라 사람의 청각이미지이고 ‘푸산’은 미국인들의 청각이미지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아는(상상하는 사유하는) 한반도 남쪽 항구의 부산에 대한 서술은 다르다. 그러면 진실은 부산을 죽 살아온 사람의 이미지 작업들의 일체일 것이다. 살고 있는 이 부산의 일반화가 먼저이고, 살지 않았던 사람들 각각의 대상 이미지는 나중의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한 가지를 더 보태어 보자, 이런 과정의 일반화에는 삶의 추억들의 일반화를 포함하며(추억이미지), 길게는 한반도 역사를 포함하는 일반화의 기억도 있을 것이다(기억이미지). 심리학과 입말의 결합에서 부산이라는 덩어리를 잘 표현하는 것은 추억들을 포함하는 기억을 잘 살리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이런 부산의 대상화가 실재성이라고 부른다. 소크라테스의 실재성의 과정의 일체를 말하는 것과 같다. 이에 비해 부산의 이야기를 듣거나 또는 한두 번 체류하여 아는 부산의 이야기는 일반화도 아니고 개념을 사용한 설명의 편리일 뿐이다. 게다가 ‘푸산’이라고 하는 개념화는 이 발화자의 자신의 삶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으면서 개념의 일반화를 빌려온 것이다. 종교의 신학에서 하늘나라, 천국, 극락 등의 개념은 어떤 실재성의 일반화 용어에서 빌려왔을까를 생각해 보라. 실재성은 시간의 과정에 있으며, 그 과정을 합의 또는 평결에 의해 일반화에서 오는 것이 먼저이다. 이런 관점을 철학사에 비추어보자. 이오니아학파의 자연과 엘레아학파의 존재 사이에 어느 것이 실재를 드러낸 것인가? 사람들은 존재가 실재이고 자연은 변화하기 때문에 가상 또는 현상일 뿐이라고 한다. 현대철학 사가는 이런 사람들을 플라톤주의, 논리주의, 유일신앙주의에 포획된 사람이라 한다. 실재성은 지구 형성과정을 포함하는 자연의 변화가 실재성이고, 그 시대에 맞는 일반화라는 것을 만든 것은 인간이 인간의 편리(유용)와 탐욕(이기심)에 맞추어 규정하고 정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사유가 19세기말 20세기초에 심리학과 인류학의 발달과 더불어 이미지 실현(상상작업, l’imagination)으로 나타난다. 추상관념은 실재성이 아니라는 것은 중세 유명론이었다. 그리고 현실에서 편리를 위한 언어와 논리의 과학적 규정이 실재성과 연관이 없다는 것은 소쉬르의 입말에서 설명한다. 그럼에도 현실성이 실재성이라고 또는 신실재론이라고 표현하는 이들은 현실에 드러난 현상의 실재성이 역사와 과정 속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추상과 논리에 인습을 인정하며 유용성과 실용성의 이익에 우선하는 현실에서, 제국의 논리와 명령체계에 포획된 현실에서, 안주하는 것이다. 극우들이 국민주권과 최종심금을 무시하고 그들만의 자유와 인권을 부르짖으면서 인민주권에 저항한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들은 역사적 과정에 자기들의 관념과 개념의 정당성을 위하여, 이익과 착취를 위하여, 전쟁과 공포를 조장했을 뿐이다. 역사에서 그 자유와 인권을 인민이 극우(왕권, 교권, 제국권)에게 저항, 항쟁, 혁명하면서 겨우 찾아가는 중이다. 실재성은 삶의 터전에 과정에 있다. 보편과 절대의 체계로부터 인권이든 자유는 없었다. 말뿐이다. 낙수효과는 없었다. 이런 관념과 개념으로부터 현실성에 맞는 실재성을 도출하는 것은, 논리적 착각이며, 일반화의 허구이다. 이 허구의 극한에 유일신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오니아학파의 세계(코스모스) 이래로 “하나”는 실재하는 덩어리, 즉 아페이론이다. 이것은 변화중인 자연이며, 지속하는 우주이다. (7:04, 58TMC) |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철학의 세계』(2023),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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