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마스, 『세상은 더 나아져야 한다』(2024) – [5] [내게는 이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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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세상은 더 나아져야 한다(2024)

Es musste etwas besser werden

Gespräche mit Stefan Müller-Doohm und Roman Yos

 

행길이(한철연 회원)

 

[5]

 

3. 실증주의 비판에서 기능주의적 이성 비판으로

 

□ 자이제 실증주의 논쟁(Positivismusstreit)’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이 논쟁도 교수님의 하이델베르크 시절에 해당하죠교수님께서 당시 쓰셨던 글들특히 『사회 과학의 논리』에 관한 글들을 읽어보면변증법적 방법론을 주로 옹호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석학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계셨다는 인상을 받습니다그리고 이와 동시에 이해 사회학의 방법론을 전면에 내세우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 솔직히 그때는 그런 관점에서 인식하지는 못했지만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말씀이 맞습니다어쨌든 저는 혼란스러웠던 소위 실증주의 논쟁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참고로 포퍼는 이 명칭에 대해 정당하게 반대했죠좋은 결과란 바로 그 논쟁 이후로 사회 연구 분야에서 오직 분석적 정통성만을 배타적으로 고집하던 분위기에 맞서다양한 질적 연구 방법론들이 확고히 자리 잡았다는 점입니다이와 관련해서 언급하자면울리히 외버만(Ulrich Oevermann)의 객관적 해석학(objektive Hermeneutik)’은 제가 그때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지만참 흥미로운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어쨌든 그 논쟁 이후로 사회적 데이터를 어떻게 다루고 처리하는지와는 별개로해석학적인 접근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 그렇지만 그때 선생님께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변증법적 비판이라는 사회과학 연구 방법론과 더불어 가다머의 해석학을 옹호하셨죠그것이 법칙에 구애받지 않는 또 다른 유의미한 방법이라는 이유에서 말이죠.

 

■ 그렇게 설명할 수도 있겠네요하지만 이제 와서 비로소 제가 당시 제대로 설명했어야 할 두 가지 문제를 더 잘 이해하게 됐습니다그때 저는 사회학자의 위치를 성찰적 관점에서 관찰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점은 언급했지만선행적인 해석학적 참여가 관찰 행위에 미치는 사후적 결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못했습니다이런 식의 해석학적 참여를 통해 성찰적 설명의 단계가 따로 형성되며이는 경험적분석적 서술과 방법론적으로 구별되거든요당시에 그 점은 배경에 머물러 있었습니다다른 하나는 변증법의 적용 영역에 대한 언급을 빠뜨린 것입니다변증법은 근대 사회에서 진행되는 위기를 재구성하는 방법인데 이점을 명확히 하지 못했어요이 두 가지는 제가 의사소통 행위 이론을 통해 나중에야 비로소 명확히 알게 됐습니다왜냐하면 일상적으로 실천되는 상호작용이 예/아니오의 입장 표명과 그에 대한 비판즉 입장을 표명하고 그것의 근거를 묻고 답하는 과정을 거쳐 유지된다는 점을 비로소 깨달을 때사회학적 관찰자가 [생활세계에서 물러나 있는 게 아니라사회 자체 내에서 관찰 대상 영역과 공유하게 되는 합리적 잠재력을 발견하게 되거든요이 합리적 잠재력은 사회학적 관찰자인 나 자신과 관찰 대상인 사회가 공유하는 것입니다이 점을 설명하려면 제가 좀 더 길게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좋습니다!

 

■ 먼저 사회 이론의 성찰적 구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행위 이론에 입각한 사회학은 관찰된 주체들의 의견가치 지향의도소망과 관심간단히 말해 그들의 견해와 그런 생각을 표명하는 행위 맥락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동일한 개념 수준에 있는 가설들[개별 주체의 주관성을 바탕으로 사회 현상을 기술하려는 가설]을 활용하여 설명하는 것에 만족합니다사회 이론은 이와 다릅니다사회학적 관찰자가 그 대상을 해석학적으로 파악하고 사회적 사실로 서술하려면대상 영역에서 발견되는 명제적 내용비판적 타당성 주장 그리고 수행적 태도의 교환에 가상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한 상태에서 접근합니다이런 관찰자는 이런 관점을 활용하여 자기 입장에 따라 비판적 입장을 표명하고 정당화할 수 있게 됩니다왜냐하면 모든 사회적 사실은 [사람들이 상호의사소통을 통해 만들어낸 다양한 언어의미규범문화적 코드 등과 같은상징적으로 구성된 삶의 형식의 한 부분으로서양측[관찰자와 관찰 대상]이 공유하는 이유의 공간 속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적(deskriptiv)으로 접근하는 사회학 역시 이 공간 안에 존재하지만대상 영역에서 마주치게 되는 근거입장견해들에 대해서는 즉각 대상화하는 태도를 취합니다즉 그것들을 단순히 주관적 표현으로 간주하면서 기술하고 있던 주체들에게 귀속시킵니다그렇게 되면 그 근거들은 그들의 근거가 될 뿐, ‘우리의 근거가 되지는 못 하게 됩니다그러나 근거라는 것이 단순한 주관적 의견이나 동기로서 의도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그것은 상호 주관적 타당성을 요구합니다.

대상화의 관점을 가지고 기술하는 태도를 취하는 사회학자의 관점에서는 관찰된 근거들은 그 자체로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오직 해당 개인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힘이 있는가라는 점에서만 의미를 갖습니다이에 반해 사회 이론(Gesellschaftstheorie)은 연구 대상 영역 내에서 통용되는 타당성 주장(Geltungsansprüche)과 이성적 잠재력(Vernunftpotentiale)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입장을 고수합니다개인과 사회의 행위 지침이 되는 자기 이해를 합리적으로 재구성하는(rational zu rekonstruieren과제를 수행하기 위함입니다참여자들의 근거는 그것을 [참여자의 관점을 가지고판단하지 않고서는 그 자체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사회 이론가는 행위자들의 자기 이해라는 지평에서 기술된 견해동기행위들이 어느 정도 합리적인지를 이해할 수 있지만동시에 사회 전체를 조망하는 단지 가상적으로만 참여하는‘ 이론가 자신의 시각에서 그것들을 평가즉 비판적으로 가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관찰자를 관찰적 실천에 가상적으로 참여하는 자로서 반성적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사회적 사실에 접근하기 위한 해석학적 기본 전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사회 이론가(Gesellschaftstheoretiker)는 기술 사회학자(beschreibender Soziologe)와는 다르게 이러한 가상적 참여를 중단하지 않습니다오히려 관찰적 실천들 속에서 작동하는 이성적 잠재력즉 관련 당사자들에게 근거로 간주되어 사회적 사실을 형성하게 하는 그 근거들에 대해 스스로 입장을 표명하게 하죠왜냐하면 사회 이론가 역시 자신이 관찰하는 행위들과 동일한 근거들의 공간 안에 존재한다고 전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사회학자는 오직 이러한 전제하에서만 대상 영역에서 발견된 어떤 견해나 학설(Lehre)을 이데올로기적이라고 기술할 정당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이러한 조건[사회학자가 관찰자의 객관적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 근거들의 공간에 참여자로서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전제 조건]에 대해서는 지금 더 깊이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다음 6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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