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형이상학 산책40-견인력과 반발력의 동일성[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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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형이상학 산책40-견인력과 반발력의 동일성

1)

견인력과 반발력은 일자들의 관계를 매개하는 힘이다. 이 힘은 대자 존재로서 일자와 그 일자가 관계 맺는 공허를 전제로 한다. 이 힘은 근대 초기 질량을 지닌 물체에 작용하는 힘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견인력은 중력을 통해 이해됐지만, 반발력은 쉽게 찾아내기 힘들었고, 결과적으로 근대 물리학에서 하나의 아포리아가 됐다. 라이프니츠가 활력(에너지) 개념을 제시하고 맥스웰이 에너지 보존 법칙을 수립하면서 견인력과 반발력의 균형이라는 변증법적 테제가 확립됐다. 만일 우주에 하나의 힘만이 존재한다면, 우주에서 운동은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견인력만 있으면 우주는 한 점으로 수축하고 말 것이며, 반발력만 있으면 우주는 무한히 확산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리학적으로 이 테제가 과연 맞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우주 전체의 에너지를 완벽하게 계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물리학자가 우주에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를 설정하는 것도 그런 테제를 전제로 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일단 헤겔은 대자 존재 즉 내적인 통일성을 지닌 일자라는 개념으로부터 개념적으로 견인력과 반발력의 통일이라는 원리를 끌어내니, 이제 헤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견인력과 반발력의 통일이라는 원리에 이르렀는지를 살펴보자.

2)

견인력과 반발력의 통일에 관한 헤겔의 테제는 대자 존재를 다루는 1권 2장 3절의 마지막 C-c 항에서 다루어지며(초판에서는 C-2항), 헤겔은 양자의 통일을 통해 양적인 것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현존을 다루는 2장을 마치고 양을 다루는 3장으로 넘어간다.

C-c 항에서 헤겔은 ‘견인력과 반발력의 관계’(초판에서는 제목이 ‘견인력과 반발력의 균형’이다)에서 양자를 자립적인 힘으로 보는 칸트의 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앞에서 소개했지만, 칸트는 물체의 침투 불가능성이라는 표상으로부터 반발력을 끌어내고 물체의 연장성(충만성)이라는 표상으로부터 견인력을 끌어냈다.

칸트는 양자를 물체를 이루는 두 표상으로부터 끌어내면서도 양자 사이에 연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즉 “견인력이 없이 반발력만으로는 어떤 물체도 존재할 수 없으므로 견인력을 요구했다.”(칸트, 자연과학의 최초근거, 53쪽, 헤겔 논리학에서 재인용) 간단히 말해 반발력은 확산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므로 반발력만 있다면 물체는 확산해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즉 반발력은 견인력을 전제로 삼는다는 것이다.

칸트 자신은 반발력을 견인력의 전제로 삼았으나, 견인력을 반발력의 전제로 삼지 않았기에 일방적이다. 그러나 헤겔은 칸트의 논리로부터 곧바로 견인력도 반발력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끌어냈다. 즉 견인력이 존재하려면 반발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헤겔의 논리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만일 견인력만 있다면, 견인력은 수축하는 방향을 작용하므로 우주는 하나의 점으로 수축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 자신은 이 두 가지 힘은 서로 타자를 전제하고 타자를 요구하지만, 자립적이고 서로의 관계는 외면적이라 보았다. 그러나 헤겔은 서로 전제하고 요구되는 것들의 관계는 내적이고 각자는 타자를 매개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3)

헤겔에서 견인력과 반발력은 이처럼 타자를 매개로 존재하지만, 헤겔은 결국 이것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매개라고 한다.

“견인력은 반발력을 매개로 견인력이 되며, 반발력은 견인력을 매개로 반발력이 된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타자를 통한 자기와 매개는 사실상 부정되며 이런 규정의 각자는 자기 자신과 그 자신의 매개가 된다.”(논리학 2판, GW21, S. 164)

여기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매개”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말을 설명하면서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각자는 자기 자신을 전제로 하는데, 즉 그 자신이 전제하는 것[타자]에서 다만 자기에 관계한다.”(논리학 2판, GW21, S. 164)

그것은 타자 속에 이미 자기 자신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두 가지 규정이 각자 독자적이면서 이처럼 자기를 자기가 전제한다는 것은 각자가 타자를 자기 안에 계기로서 포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논리학 2판, GW21, S. 164)

따라서 “자신이 전제하는 것[타자]에서 다만 자기 자신과 관계하게”(논리학 2판, GW21, S. 164) 된다. 즉 타자와 매개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과 매개하는 것이다.

핵심은 곧 타자 속에 자기가 들어 있다는 것 다시 말하자면 반발력 속에 이미 견인력이 들어 있고, 견인력 속에 반발력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4)

여기서 일자와 다수의 일자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일자가 가능하다면, 다수의 일자도 가능하다. 어떤 일자는 그 자체가 우연적인 대자 존재니, 다른 우연적 대자 존재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뭇잎이 대자 존재적인 일자인 한에서는 여러 나뭇잎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거꾸로 다수의 일자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미 그 다수가 일자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만일 그것이 현존이라면 현존은 다른 현존으로 이행하는 것이지 공허 속에 공존하지 못하므로, 다수 일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일자인 경우에만 다수 일자가 생겨날 수 있다. 만일 다수의 동전이 있다면 이 동전은 단순히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대자 존재의 산물인 일자이어야 한다.

일자가 견인력에 의해 생겨나고 다수 일자가 반발력의 산물이라면, 일자와 다수 일자가 순환하니, 마찬가지로 견인력과 반발력도 순환한다. 반발력은 견인력을 통해, 견인력은 다시 반발력을 통해 생겨나니 견인력이 타자인 반발력에 의해 매개된다면, 더 나가서 자기 자신인 반발력에 의해 매개된다고 할 수 있다.

“반발력을 통해서 다수의 일자가 일자로서 자기를 드러내고 유지하며, 반발력을 통해서 다수의 일자 자신이 존재한다. 다수 일자가 존재하는 것이 반발력 자체다[반발력을 가능하게 한다]. 반발력은 다른 현존에 대립하는 상대적 현존이 아니라[현존과 현존의 관계에서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다만 자기 자신에 관계한다.” (논리학 2판, GW21, S. 164)

다수의 일자를 정립하는 것이 반발력인데, 다수의 일자가 있어야 반발력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견인력은 반발력을 통해 이 반발력은 견인력을 통해 생겨나니, 견인력은 타자인 반발력에 의해 매개된다고 할 수 있고 더 나가서 자기 자신 즉 견인력 자신에 의해 매개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견인력은 자신을 전제해서 다른 일자들의 규정 속에 관념적으로 존재한다. … 다수 일자는 관념성[일자라는 것]을 반발력 규정에 대립해서 견인력에 관계해서 비로소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 견인력은 전제되고 있고, 다수 일자에서 본래 존재하는 관념성이다. 왜냐하면, 다수 일자는 일자인 한-견인력을 가진 것으로서 표상된 것이 함께 포함되어 있으므로- 서로 구별되지 않으며,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논리학 2판, GW21, S. 164)

즉 일자를 정립하는 것은 견인력인데, 일자가 있어야 견인력 자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5)

이제 각자가 타자와 대립한다는 점에서 보면, 각자가 타자를 매개로 하고 또는 자기 안에 타자를 포함하고 있어서 타자에 대립하는 것은 곧 자기에 대립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각자는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타자로 이행하며 그 자체에서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를 자신의 타자로 정립하는 것이다.”(논리학 2판, GW21, S. 164)

“여기서 ‘자기를 전제하는 것’(견인력)이 ‘자기를 자기의 부정태로서 정립하는 것이며’ 즉 반발력 즉 ‘그런 것 속에 전제된 것은 전제하는 것 즉 견인력과 동일한 것이다.”(논리학 2판, GW21, S. 164)

이제 헤겔은 견인력은 곧 반발력이 되고 반발력은 곧 견인력으로 되니, 양자는 서로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견인력과 반발력은 서로 불가 분리적이며 서로 동일하다. 이런 견인력과 반발력의 동일성을 헤겔은 이렇게 설명한다.

“일자 자체는 탈자화이며 자기를 타자로서 즉 다수 일자로 정립하며, 다수 일자는 동시에 자체 내로 함몰하여 자기를 타자로서 즉 일자로 정립한다.”(논리학 2판, GW21, S. 164)

그러므로 일자가 있다면(견인력), 동시에 그것과 구분되는 다른 일자도 있게 되며(반발력) 여러 일자가 있다면(반발력) 각 일자가 자기를 일자로 유지한다(견인력).

“다수 현존하는 일자를 견인력하는 것은 그 다수 일자의 관념성이며 일자를 정립한다. 그렇게 일자가 정립하는 가운데 다수 일자는 부정하면서 일자를 산출하는 것이 되어서 자기 자신을 지양하며, 일자를 정립하는 것으로서는 그 자신에서 자기를 부정해서 반발력이 된다.”(논리학 2판, GW21, S. 164)

“따라서 탈자(반발)과 자신을 일자로 정립하는 것(견인)은 불가 분리적이다.”(논리학 2판, GW21, S. 164)

6)

이상 헤겔에서는 견인력과 반발력을 세 단계로 설명했다. 우선 ‘양자를 자립적인 힘으로 가정’하는 칸트의 주장에서 출발하여 ‘각자는 타자를 매개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서 ‘다시 자기 매개를 통해 존재하는 것’으로, 마지막으로는 ‘양자의 동일성으로’ 설명했다. 헤겔의 논리 전개는 일반적으로 견인력과 반발력에 관한 표상을 통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에 대해 외부적으로 반발력하는 것은 그 물체의 내부에서 견인력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만일 견인력이 없다면 반발력 자체가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자기가 단단하지 못하면 외부 충격에 깨어지고 말지 반발력하지는 못할 것이다. 반면 우리는 표면의 반발력만을 생각하지 그 내면의 견인력을 보지 못한다. 헤겔은 그 내면의 견인력이 없이는 표면의 반발력도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거꾸로 하나의 물체가 외부적으로 다른 물체를 견인력하는 것은 거꾸로 그 물체 내부에서 반발력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자주 끌어들이는 힘만을 보지만, 사실 자기 내부에서 반발력이 없다면, 외부의 물체를 끌어들이지도 못한다. 만일 타자를 끌어들이려 한다면, 자기 자신만을 고집하며 고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견인력과 반발력이 사실 서로 대립하는 것이지만, 양자는 동일하다는 것으로부터 이제 질적인 존재는 자기를 넘어서 양적인 존재로 이행한다. 양적인 존재란 곧 여러 일자가 견인력과 반발력의 이중적 관계 속에서 결합한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자들의 관계는 공허 속에서 일어나는 관계다. 즉 양을 이루는 개념은 두 가지 축에 의존한다. 즉 일자와 공허, 그리고 견인력과 반발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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