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 – 2회. 다시 찾은 길 (2) [이종철의 에세이 철학]
두 번째 글.
1. 다시 찾은 길 (2)
첫 시간을 비교적 무난하게 끝내고 나서 다시 강사실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이미 강의를 끝낸 후배 학자들 몇몇의 얼굴이 보인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반가운 얼굴들이다.
“형! 점심 먹으러 가자.”
오랜만에 들어보는 반가운 호칭이다. 사회에서는 항상 그 사람의 명함에 적힌 직급이나 성을 가지고 부른다. 하지만 대학은 그냥 형 동생이나 선 후배로 지칭한다.
“그래, 오랜만에 함께 식사하자.”
그 사이 바로 2명이 더 붙어서 4명이 함께 식사하러 밖을 나섰다. 따로 교수 식당이 없는 이곳에서 점심 때 학생들 틈에 끼여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고역이다. 우리는 한 후배의 차를 타고 대학 바깥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이곳 소도시는 시내를 벗어나면 다 촌이고, 한가롭다. 곳곳에 맛있는 음식점들도 많아서 맛집 여행하듯 찾아 다닐 수 있어서 좋다. 다들 새벽같이 나와서 이때쯤이면 약간은 허기가 들 때도 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상태라 날씨가 쌀쌀했다. 우리는 추어탕이 어떤 가라는 말에 이구동성으로 좋다고 했다. 마침 대학에서 몇 킬로 떨어지지 않은 곳에 추어탕을 잘한다는 집이 있어서 그리로 갔다.
학자들끼리 식사를 하다 보니 많은 경우 이야기 주제도 학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형! 지난달 <학술 진흥 재단>의 연구 프로젝트 신청했어요?”
“그래,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보니 나도 억지로 하나 신청했어.”
“요즘은 그것도 신청자가 많아서 경쟁이 심하다고 해요.”
그래서 그런지 3월 말이 되면 전국 대학의 수많은 강사들이 이 프로젝트 신청하느라 정신이 없다. 오래전 대학 다닐 때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역이 하나 있고, 그 앞쪽으로 이른바 방석집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등록금 철이 되면 주방 아줌마들도 화장 이쁘게 하고 손님 받느라 바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학술진흥재단의 연구 프로젝트 신청이 공지되면 한국의 대학가들 역시 그와 비슷한 형국이다. 이 프로젝트라도 따야 그나마 쥐꼬리 같은 강사료를 벌충할 수 있고 품위 유지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점심을 마치자 바로 오후 수업에 들어가는 강사들도 있지만, 나처럼 오전 수업만 마친 강사들도 있다. 휴게실은 강사들을 위해 대학에서 배려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강의 준비를 할 수 있고, 프린터와 인터넷도 활용할 수 있다. 봉지 커피나 각종 1회용 차들도 구비되어 있어서 강의 중간에 마실 수 있어서 좋다. 사실 모교의 강사들이기 때문에 이런 배려를 해주지만, 출강하는 대부분의 대학들에는 이런 서비스가 거의 없다. 그래서 교정에 차를 세워 놓고 강의 준비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나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4시 반에 서울 본교로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소파에서 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이렇게 누워 있는 것이 참으로 편안한 기분이다. 이럴 때는 이상하게 내 생각이 과거로 돌아간다. 내가 대학에 들어온 지 벌써 30년이 가까이 흘렀다. 그사이 나는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과 모험심, 도전 의식 등으로 좌충우돌 많이 헤매고 다녔다. 내가 법대를 졸업한 다음에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을 한 것도 아마 이런 지적 호기심의 연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법학이 주는 미래의 안정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법학은 자유 분망하고 비판적인 나의 사고를 담기에는 너무나 고루한 느낌이 들었다. 대학 4년 동안 지녀왔던 이런 나의 생각에 약간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의 인생에도 하나의 전기가 된 10.26 사태가 발생한 것은 1979년 가을이었다.
3회에 계속.
이종철(철학박사)은 『철학과 비판』(도서출판 수류화개)과 『일상이 철학이다』(모시는 사람들) 그리고 『문명의 위기를 넘어』(공저, 학지원)를 썼다. 그는 『헤겔의 정신현상학』(J. Hyppolite, 1권 공역/2권, 문예출판사), 『사회적 존재론』(G, Lukacs, 2권/4권(공역), 아카넷), 『나의 노년의 기록들』(A, Einstein, 커큐니케이션스북스)등 다수의 번역서들을 냈다. 현재는 연세대 인문학 연구소 전문 연구원이자 인터넷 신문 ‘브레이크뉴스’ 와‘ 내외신문’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NGO 환경단체인‘푸른 아시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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