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이정은 지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통치자는 어떻게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가』(2022) [EBS 오늘 읽는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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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통치자는 어떻게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가』 (2022, 저자: 이정은)

 

박종성(건국대학교 초빙교수)

 

  • ‘인민의 역량은 군주의 역량으로 인민을 이끌겠다는 인민의 결단이다!’

이정은 교수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통치자는 어떻게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가』에서 알 수 있듯이, 부제가 “통치자는 어떻게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가”이다. 이 글은 바로 그 부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통치자는 누구인가? 군주이다. 그러니까 부제를 다시 설명하면 “군주는 어떻게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가”이다. 16세기에, 군주국과 공화국에 대한 논의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국을 주장했고, 공화국을 주장한 사람은 헨리 8세 시대의 대법관 토머스 모어였다. 이와 같은 군주국과 공화국에 대한 논의는 1세기 후 필머와 로크로 이어진다.

다시 “군주는 어떻게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가”라는 문제 의식으로 돌아가자. 마키아벨리는 군주국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토를 획득하는 방법에는 타인의 무력을 사용하는 경우와 자신의 무력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요소로는 행운(fortuna)에 의한 경우와 역량(virtú)에 의한 경우가 있습니다.”(115쪽, 강조는 필자) 타인의 무력은 외국군이나 용병을 의미한다. 이들은 자신의 조국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무력, 곧 자국 군대를 주장한다. 그런데 자신의 무력 이외에도 “타인의 호의”가 상황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그는 이와 같은 경우를 행운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그 당시 지배적이던 교황이 주던 권력 집단의 호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민의 호의’, ‘동료 시민의 호의’를 주장한다. 다시 말해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의 아들이 체사레이고 체사레의 조카인 로렌초의 작은 아버지가 레오 10세 교황이었다. 곧 체사레와 로렌초는 행운의 아들이었다. 마키아벨리가 행운보다는 역량을 강조하는 것은 행운의 성질 때문이다. 곧 행운의 변덕 때문이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일개 시민이 군주가 되기 위한 2가지 방법을 이야기 한다. 하나는 “전적으로 사악한 수단을 사용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동료 시민의 지지를 얻는 방법”이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전적으로 사악한 수단을” 사용하는 이들에게 역량을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동료 시민을 죽이고, 친구를 배신하고, 신의가 없이 처신하고, 무자비하고, 반종교적인 것을 덕이라고 불러줄 수는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권력을 잡을 수는 있어도, 영광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122쪽, 강조는 필자) 따라서 그가 주장하고 싶은 군주국은 “동료 시민의 지지를 얻는” 군주국이다. 다시 말해 그가 주장하는 군주국은 ‘시민형 군주국’이다. 그러니까 이정은 교수가 말하듯이, 마키아벨리가 주장하는 군주국은 교황의 지지라는 ‘남다른’ 행운이 아니라, 오히려 ‘인민의 지지’라는 ‘일반적’ 행운에 기초한 군주국이다.(123쪽, 강조는 필자) 그렇다면 ‘인민의 지지’라는 ‘일반적’ 행운의 좀 더 구체적 내용은 무엇일까? 마키아벨리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군주가 타인을 해치지 않고 명예롭게 행동하는 것만으로는 귀족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인민은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인민의 목표가 귀족보다 더 명예롭기 때문인데, 가령 귀족은 그저 억압하려고만 드는데, 인민은 억압당하는 데서 벗어나는 것에 초점을 둡니다.”(124쪽, 강조는 필자) 이제, 다시 부제로 돌아가 보자. “군주는 어떻게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가”라는 부제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인민의 ‘억압에서의 해방’이다. 인민의 ‘억압에서의 해방’은 ‘남다른’ 행운이 아니라, 오히려 ‘인민의 지지’라는 ‘일반적’ 행운이다.

정리하면, 나라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는 군주국을 건설하려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런데 안전과 평화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인민에게 평등과 자유를 누리게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인민의 호의가 없이는 군주의 통치는 가능하지 않다. 인민의 역량은 군주의 역량으로 인민을 이끌겠다는 인민의 결단이다. 이러한 군주와 인민의 상호관계를 다시금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보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고전을 읽는 이유일 것이다.


서평자 박종성: 건국대학교 철학과에서 막스 슈티르너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건국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고, 칼 맑스와 슈티르너 사상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 최근(2023)  슈티르너의 저작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국내에서 처음 번역하여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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