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슈티르너: 에고이즘의 위대한 철학자-4 <정치적 슈티르너>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정치적 슈티르너>
박종성(한철연 회원)
– 차 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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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ein Olav Nyberg [노르웨이 아그데르 대학교(노르웨이어: Universitetet i Agder) 부교수]의 글, Max Stirner: The Great Philosopher Of Egoism(2021)을 번역한 글입니다.
앞서 우리는 입센처럼 슈티르너도 국가를 “개인의 저주”로 여겼다고 언급했습니다. 국가를 저주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독특한 일이 아닙니다. 국가는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는다”, “사람들을 계급적으로 억압한다”, “신의 의지에 어긋난다”, “환경을 파괴한다”, “누군가의 국가/인종 등등을 억압하고 있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잊지 마세요 – 등등
모두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상(ideal)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를 저주합니다. 그들의 불만은 국가가 이상의 자유로운 전개를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슈티르너와 입센은 국가가 그들 자신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에 국가를 저주합니다.
슈티르너는 -개인과 보편이라는 두 가지 반대 방향을 식별합니다. 문제는 누가 이길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한쪽에는 자신의 의지와 개인적 목표를 요구하는 개인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평등을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보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양측이 “자유”를 규정하는 방식은 얼마나 다를까요? 개인은 개인을 지배하는 권력을 요구하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개인의 움직임이 방해받지 않을 때, 개인은 개인의 자유를 찾습니다. 반면에 보편은 보편이 무한할 때 자유를 찾습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가 스웨덴으로부터 해방된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건 이후 노르웨이 개인들은 더 많은 자유를 얻었습니까? 아닙니다, 어쨌든 그것은 오해일 것입니다. 해방된 것은 국가이었습니다. 국가는 더 많은 권력을 얻었습니다. 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단순한 지배자의 교체1였습니다. 스웨덴 왕의 통치를 받은 후, 이제 노르웨이인들은 자신의 왕권을 노르웨이에만 바치는 왕의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의 해방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베트남은 제국주의자들로부터 해방되었지만, 남베트남 개인들은 -새롭고 더 엄격한 주인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란은 미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란은 해방되었지만 살만 루슈디(Salman Rushdie)2와 같은 사람들은 목숨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슈티르너의 동시대 사람들 중, 특히 브루노 바우어는 보편을 해방하는 방법에 대한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특히 “인간”(Man)을 해방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그는 구체적 개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적대감은 민족 해방의 경우보다 피상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슈티르너는 “인간”의 해방이라는 발전을 세 단계로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가져온 것이고, 나머지 두 개는 슈티르너와 동시대의 정치 비평가들에게서 따온 것입니다.
- 인간 최초의 해방은 1789년 혁명 중에 일어났습니다. 개인의 권력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 어느 누구도 개인으로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시민(citšyen), 즉 국가의 시민입니다. 이것을 정치적 자유주의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해방은 그들 모두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지닌 그 어떤 실제적이고 구체적 존재들(슈티르너가 부르는 대로 “자기중심적 사람들”(egoists”)의 해방이 아닌, 인간(Man)의 해방으로 제시되기 때문에 -1789년 혁명은 완전한 해방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소유의 분배는 국가에 의해 통제되어, 가진 자를 가지지 못한 자로부터 보호합니다. 소유는 자기중심적 사람들의 영역에 맡겨져 있으며, 인간(Man)이나 인류의 통제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 그러므로 – 인간(Man)을 해방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자기중심적 사람들이 소유에 대해 획득한 권력을 제거해야 하고, 이를 인류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공산주의, 즉 사회적 자유주의로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이는 미끄러운 경사면의 시작일 뿐입니다. 브루노 바우어가 이끄는 인본주의자들은 사회적 자유주의 아래에서도 여가 시간이 여전히 개인적 관심사, 즉 자기 중심성을 위해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몹시 싫어합니다.
- 따라서 이러한 사악한 자기중심적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인간의 완전한 해방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여가 시간 역시 “인간다워”야만 합니다. 모든 것은 “인간”을 중심으로 조직되어야 하며, -모든 자기 자신의 관심사와 개인적 관심사는 제거되어야 합니다.
이 “인간적 자유주의”는 에인 랜드의 『성가』(Anthem)에서 주인공이 깨어난 사회와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여기서 랜드와 슈티르너는 공통의 비평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즉 랜드는 소설을 통해 비평을 수행했고, 슈티르너는 이러한 추상적 존재들, 즉 이러한 정신과 유령의 해방에 반대하는 “귀류법”(reductio ad absurdum)3 논증을 통해 비평을 했습니다!
포이어바흐는 신을 인간으로 바꾸었지만, 바우어는 인간을 나의 구체적 나(my concrete I)로 바꾸고 싶었다고 슈티르너는 말합니다. 다음을 기억하세요: 헤겔주의에서 보편은 보편의 구체적 표명 없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슈티르너는 “내가 없으면 인간은 완전히 절망적이다(der Mensch ohne Mich verloren ist).”고 말했습니다.4 그래서 그[포이어바흐와 바우어;옮긴이]는 “인간”을 슈티르너나 어떤 다른 구체적 개인의 정체성(the identity)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등을 돌립니다.
옮긴이 박종성: 건국대학교에서 슈티르너의 유일자 개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유일자와 그의 소유』(2023년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이데올로기와 문화정체성』(공역)이 있다. 논문으로는 「유일한 사람의 사랑」, 「슈티르너의 ‘변신’ 비판의 의미」, 「식민지 조선에서 슈티르너 철학의 변용과 그 의미 및 한계-염상섭의 「지상선을 위하여」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현재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이고 건국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 한글본 2쇄, 『유일자와 그의 소유』, 박종성 옮김, “그리고 가장 높은 본질은 신성한 삶의 방식이 더 이상 어떤 ‘신성한’ 것이라 불리지 않고, 오히려 어떤 ‘인간다운’ 것이라는 다른 본질이 되었다. 도덕이 승리했다면, 그다음에 완전한 — 지배자의 교체(Herrenwechsel)가 일어났다.” 92쪽.
- 1988년 《악마의 시》의 출판은 예언자 무함마드에 대한 불경스러운 묘사로 원리주의 이슬람 세계로부터 많은 비난을 불러 일으켰다. 1989년 2월 14일 이슬람 시아파 루홀라 호메이니가 그의 책을 “이슬람에 불손한” 것으로 규정하며 루슈디의 처형을 명령하는 격문인 파트와(fatwa)를 내걸었다. 더 나아가 호메이니는 그를 이슬람을 떠나길 시도하는 배교자로 선고하고 코란에 의해 죽음으로 처벌 받아 마땅하다고 비난했다. 이는 루슈디가 소설에서 이슬람교를 희화화하고 무함마드의 부인들을 창녀로 묘사한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호메이니는 모든 ‘독실한 무슬림’들에게 공개적으로 루슈디 뿐 아니라 책을 출판한 이도 처형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고 나서 2월 24일 호메이니는 루슈디의 목에 3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루슈디는 그로부터 약 10년 가까이 영국의 보호 아래 숨어 살았다.
- 레둑티오 아드 아브수르둠(Reductio ad absurdum): 터무니 없는 것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을 보임/귀류법(歸謬法): 오류로 귀착된다는 것을 보임
- 『유일자와 그의 소유』, 217쪽. “내가 없으면 인간도 없다”(217)는 문장은 3쇄 시에 “내가 없으면 인간은 완전히 절망적이다(verloren ist)”로 교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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