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김예호 지음, 『대학·중용: 철학의 시대에서 정치를 배우다』(2022) [EBS 오늘 읽는 클래식]
『대학·중용』,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김예호 지음, EBS 오늘을 읽는 클래식
인현정(한철연 회원)
‘도는 거시기다’
책을 읽다 보면, 국어사전을 일부러 찾게 되는 일이 있다. 아니, 한국 사람이, 아니, 배운 사람이 영어 사전도 아니고 왜 국어사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정말로, 호기심으로 네이버 사전을 즐겨 찾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사건(!)이 발생했다.
이 책의 154쪽, 저자는 「중용」의 도를 설명하기 위해 <도(道)는 거시기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책의 깨알 재미는 매 챕터 시작에 배치된 저자의 따뜻하고도 비근한 개인적 경험이라 자신 할 수 있는데) 필자는 바로 이 파격적 소제목의 문턱에서 코 찡끗 웃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영화 <황산벌>에 등장하는 계백장군의 대사를 열거하며, 도가 무엇인지 생각하기 까다로우면, 바로 ‘거시기’를 떠올리라 안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맙소사. 왜 나는 이것을 생각 못 했지? 필자 역시 수업에서 ‘도’ 개념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식적 설명은 늘 다음과 같았다: 1) ‘길’ 도, 2) ‘방법 수단’으로서 도 3) ‘말하다’의 도 4) ‘진리’, ‘보편적 이치’로서 도. 문헌의 전거를 따라, 그리고 네이버 사전의 친절한 문자 용례에 따라 이 4가지를 언급했었다. 그런데, 사실 저자가 설명하고 있듯이, “도란 동양의 철학자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적용할 수 있고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해답이자 진리”였다.
이상의 4가지는 어찌 보면, ‘진짜 도’를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그릇일 수도 있는 것이다. ‘도’가 사람이라면, 도는 우리에게 “나한테 그 4가지 없거든~”하고 놀릴 수도 있는 셈이다. 오히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거시기’의 의미(/함의), 즉 ‘범위가 매우 넓어서 모든 사물에 적용되면서도, 모든 사물의 이치를 하나로 꿰뚫고 있는 것’이 ‘도’의 의미(/함의)에 다가가게 하는, 그러니까 겁내지 않고, 쫄지 않고, 성큼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최적의 입문 표현’일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 이참에 거시기의 정체를 잡고야 말 테다’ 결심한 필자는, p → q의 범주를 q → p로 확인해 보고자 국어사전을 찾았고, 여기에서 뜻밖의 미궁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거시기’의 뜻에는 필자가 원하는 의미가 없었다. 『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우리말샘(opendict.korean.go.kr), 어느 곳에도 없었다.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 ‘하려는 말을 바로 말하기 거북할 때 쓴 군소리’, 이뿐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거시기’는 분명한 어떤 사물을 가리킬 때도 사용한다. 바로 말하기 곤란해서가 아니라 일부러 숨기려고도 사용한다. 심지어 얼른 생각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가장 적합하기에 당당하게 쓰기도 한다! 그런데 어찌 이씹세기도 아닌 작금의 사전이, 현실 용례의 정직한 반영은커녕 이토록 의미를 협소하게 표현하고 있단 말인가. 아, 그래서 저자는 중용의 도는 가깝고도 멀다 강조하고 강조했던 것일까?
필자는 혹시 스스로가 잘못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라 우려하여 일부러 <황산벌>을 찾아 다시 봤다. 총관객 수가 270만 명이었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국어사전을 만드는 거시기들이 270만 명의 의미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 살지 않고서는, 어찌 거시기의 의미를 이토록 거시기하게 만들었는지, 도저히 거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필자는 84쪽으로 돌아왔다. 그렇다. 지금 필자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대학」의 가르침처럼, 탕왕이 그랫듯, 목욕통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새겨두는 일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거시기들을 거시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날로 새롭게 하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
2024.07.15
서평자 인현정: (사)한철연 연구협력위원, 세종대와 이화여대에서 (동양)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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