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충동을 연습하기 – 왕의 망상(?)과 나의 슬럼프’ : 김성민과 김성우가 쓴 책 『증상을 즐겨라! 슬럼프를 환영하라!』에 대한 서평 [최종덕의 책과 리뷰]
‘혁명의 충동을 연습하기! – 왕의 망상(?)과 나의 슬럼프’ :
김성민과 김성우가 쓴 책 『증상을 즐겨라! 슬럼프를 환영하라!』에 대한 서평
서평자 : 최종덕(독립학자, philonatu.com)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새기고 등장했을 때부터 ‘아, 이 사람은 라캉 정신분석학의 대상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그의 주변 사람들에 주술과 미신에 취한 사람들이 많다는 데 있다. 정치인을 포함한 다수의 권력자가 점집을 찾는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신과 권력을 혼재시킨 개인적 망상들이 그들 사이에서 묵시적 합의로 변질되면서 거대한 집단적 주술 상징계로 정착된 것이 한국 권력사회의 특징이다. 이제는 그들 각각이 믿고 있는 미신을 실행할 수 있는 실질 권력을 누가 더 많이 가지느냐의 암투일 뿐이다. 왕의 망상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주술적 집단 상징계로부터 보호받은 셈이다. 그리고 왕의 망상이 강할수록 뭇사람들의 상상은 갈가리 찢기어진다.
‘망상’과 ‘상상’은 개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정신·심리적 표상이지만 현실에서는 처절한 차별을 낳는다. 왕의 망상이 지배하는 집단 상징계를 벗어나서 개인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을까? 전통이나 종교 등의 집단상징을 탈출하여 개인의 상상력을 펼치고 싶은 것은 젊은이의 당연한 권리이며 당당한 욕망이다. 불행히도 이런 욕망은 거대 조직의 칼날에 베이고 찔리면서 무참히 부서지고 만다. 그렇다면 개인의 상상계가 집단의 상징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래서 많은 젊은이는 화가 나고 저항도 하지만 풀이 죽고 우울해지면서 슬럼프에 빠진다.
그런 슬럼프에 기죽지 않는 아주 신나는 대안이 최근 출간된 책 한 권에서 묘사되고 있다. 철학자 김성민과 김성우가 같이 쓴 책 『증상을 즐겨라! 슬럼프를 환영하라!』 라는 제목의 책이다. 슬럼프를 단죄하고 거부할 수 있다는 각종 묘수를 적은 책들이 많이 나왔지만, 그런 묘수 자체가 주변 권력이 만들어 준 허망한 처세술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이 책의 매력은 말로만 달콤한 처세술이 아닌 삶의 프레임 자체를 섭동시키는 정신적 북돋음을 준다는 데 있다.
책의 저자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해석하는 문화비평가이자 탁월한 현대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지젝의 철학을 우리 한국인 정서에 맞춰 아주 흥미롭게 풀이한다. 한국에도 몇 차례 방문하여 시민강좌를 했던 지젝이 구축한 해체와 주체의 연결망을 엄숙한 사유 대신에 삐딱한 시선으로 현실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하라고 이 책은 말한다. 저자는 앞서 말한 망상과 상상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그 두 현실이 서로 얽혀 있음을 말하는데, 하나는 권력자의 주술 망상이 일상인의 생활 상상을 파괴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상상계가 거대 사회의 상징계 안에 갇혀 회돌이 되는 현실다운 현실을 말한다. 그 의미를 아주 간단히 묘사해 보자.
일상을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거나 아니면 나를 평가하는 주변 환경에 짓눌려 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슬럼프란 주위 평가가 나를 압도하면서 짓눌려진 나의 신경증적 생활의 증상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우리는 슬럼프로부터 탈출하기를 추구하지만, 불행히도 그 방법을 모르고 있다. 모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슬럼프로 돌진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역설적이게도 나에 대한 죄의식까지 추가로 붙여 다니고 있다.
당신이 슬럼프에 빠진 이유는 당신 개인에게 있지 않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개인이 속한 집단의 현실은 구성원에게 인정욕구를 비롯한 갖가지 욕망을 실현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그렇다면 개인의 슬럼프를 제거하기 위하여 환상을 떨구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겠으나 그런 생각조차도 환상 프로그램의 일부라는 것을 이 책은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집단의 현실이라는 것은 서평자의 표현일 뿐이고, 이 책의 저자는 집단이라는 말 대신에 지젝의 표현 그대로 “큰 타자”big others라는 용어를 쓴다. 욕망을 갖는 개인들을 “작은 타자”라고 한다면 개인들의 전체 사회를 “큰 타자”라고 표현한 것이다.
저자는 큰 타자라는 전체 사회의 환상을 비판하지만 동시에 그런 환상을 제거할 수 없는 지젝의 존재론적 고민을 뼈아프게 통감한다. 예를 들어 충성심이나 민족주의 같은 관념의 이데올로기로부터 강남이나 학벌 혹은 소비와 부동산 같은 물질의 계급주의가 그런 큰 타자에 부수된 환상이고, 그 환상이 현실이라고 한다.
큰 타자 안에서는 욕망의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현실을 벗어나기 위하여 현실 존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을 확 전도시켜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마찬가지로 슬럼프를 벗어나려면 슬럼프에서 무작정 튀어나오려고 갖은 애를 쓰기보다 슬럼프를 응대하는 시차의 시선을parallax 뒤집어엎어서 세상 보는 각도를 삐딱하게 보라고look awry 말한다. 그런 삐딱함의 시선이란 지젝의 의미를 좆아서 욕망의 굴레로부터 “충동의 혁명”을 가져오는 실질적인 계기라고 한다. 집단 환상의 마력이 강력하므로 시차를 갖고 삐딱하게 보기도 쉽지 않을 진데, 혁명의 충동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 작은 혁명들을 연습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개인 슬럼프의 통증을 겁내 하지 않게 되며 전체 권력의 마취와 도취에서 깨어날 수 있다고 이 책은 강력하게 말한다.
책의 저자는 상징계와 상상계 사이의 관계를 아주 진지하게 다루면서 우리들 현존하는 삶의 통증을 치유하는 구체적 존재목록을 제시하고 있다. 그 목록 안에는 꿈과 욕망, 슬럼프와 히스테리, 강박증과 도착증, 충동과 혁명 등의 심적 현상과 증상 등이 적혀있다. 이 책은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분석에서 그치지 않고 지젝의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서 약을 사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아주 친절한 철학적 레시피이다. 레시피의 첫 페이지는 ‘큰 타자’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버리는 연습에서부터 시작된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더더욱 기분 좋은 일은 이 책에 전개된 의미 해석과 정신 분석이 여러 편 감성의 시를 읽는 느낌으로 써졌다는 점이다. 분노와 좌절이 증폭된 요즘 시대에 소소하지만, 전환적인 기운을 나에게 심어준 책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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