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42-내밀성(숭고함)의 회화[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산책42-내밀성(숭고함)의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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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의 동굴 벽화부터 따진다면 회화의 역사는 아마 가장 오래되었을 것이다. 회화는 고대, 그리고 고전 시대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출현했다. 그런데도 헤겔은 마치 고대나 고전 시대에는 회화가 없었다는 듯이 낭만주의 시대 이후부터 회화를 다루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고대, 고전 시대 예술은 일반적 정신을 표현하려 하지만,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와서 구체적 현실에 대한 관심이 등장했다. 회화는 질료의 특성상 고대, 고전 시대의 관심을 충족하기 어려웠다. 그 당시 무덤 벽화나 도자기 그림은 다만 장식적이고 종속적인 역할만 담당했다. 그러나 낭만주의 시대에 회화는 구체적 현실을 표현할 수 있는 예술 장르로 주목 받으면서 예술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낭만주의 시대 회화가 특히 고전 시대의 신화적 인물을 다루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르네상스 회화나 신고전주의 시대 회화가 그렇다. 그러나 그런 회화는 그 표현 내용을 더 이상 고전적인 방식으로 다루어지지 않으며 고전 시대 신화조차도 낭만주의적 방식으로 즉 그 특칭적 주관성과 개별적 사건을 중심으로 표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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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회화의 내용을 설명할 때에는 낭만주의 시대 출현한 회화를 주제에 따라 세 가지 주제로 구분한다. 그것은 종교적 내밀성[innigkeit][1]과 실체적 내밀성, 그리고 현실 자체이다. 회화의 역사적 발전을 설명할 때는 시대적으로 세 단계에 걸쳐 구분한다. 이 세 단계는 중세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낭만주의 시대가 발전하는 역사와 대체로 일치한다. 고딕 시대까지, 르네상스에서 바로크까지, 그리고 계몽주의 이후의 시대이다. 주제와 시대의 관계는 세 가지 주제별 분포 곡선이 약간 중첩되면서 시대적으로 중심을 이동하는 방식으로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시대적 구분보다는 주제별로 구분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
첫 번째 주제는 종교적 내밀성을 다룬다. 이는 인간인 동시에 신적인 존재의 주관성을 말한다. 즉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 성인에게서 나타나는 주관성이다. 그 주관성의 내용은 성령의 정신이다. 성령은 곧 무한한 사랑의 정신이니 이는 주로 성서나 실제 역사에 나오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표현된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역사적 현실의 리얼리티를 살리면서, 신성한 존재의 내밀한 주관성이 표현된다.
언뜻 보면 신성한 존재의 모습은 고전 시대 영웅의 모습과 닮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나 마리아, 성인 등의 내밀한 사랑의 정신이 회화에서는 그 외면적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고전 시대 영웅의 모습이 이상화된 표현이라고 한다면, 여기서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건 속에서 사랑의 정신이 표현된다.
전자가 고요함과 지복에 머물러 있다면 여기서는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고통을 매개로 한다. 이런 회화는 신성한 존재를 “인간의 죄악과 회한과 참회, 비열과 사악과 대비하여” 나타내거나 역으로 “경배자를 통해 가시화한다”[2].
헤겔은 고전적 영웅의 정신과 낭만적 종교적 내밀성을 비교하면서 전자의 예로 니오베와 라오쿤의 고통을 들고 있다. 니오베와 라오쿤은 신체적 고통 속에서도 “회한과 실망 속으로 스러지는 대신” “자신을 위대하게 보존한다”. 이런 자기 보존은 실체적 명령을 수행하는 것일 뿐, “공허하며” “차가운 체념이 화해와 만족을 대신하며” 이 속에서 개인은 이 속에서 “자기가 집착했던 것을 포기하며” 그것은 “경직된 침착함일 뿐이며 운명에 대한 만족 없는[erfullungslos] 순응일 뿐이다”.[3]
반면 종교적 사랑의 정신은 신체적 고통이 아니라 내면의 고통을 표현하며, 감각적 고통을 참는 의연함이 아니라, 내면의 참회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런 사랑의 감정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감당하기 벅찬 지복의 감정으로 남는다.”[4] 낭만적 회화에서 사랑의 정신과 개인적 특성은 서로 자유롭다. 가장 개인적이면서 가장 사랑의 정신으로 충만해 있으니, 그러면서도 양자는 서로 하나로 합일되어 있다.
“그러므로 개인적 특성은 … 낭만적 예술 원칙에 따라 자유로워지며, 그럴수록 더 특성적으로 표출된다. 그런데도 이 특성적인 것은 내밀한 사랑을 흐리게 할 수도 없고 또 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사랑도 … 특성적인 것 자체에 매임이 없이 자유롭고 또한 그자체로서 진정 독자적인 정신적 이상을 형성하기 때문이다.”[5]
헤겔은 종교적 내밀성을 표현하는 대표적 회화로 주로 르네상스 시대 종교화를 들고 있다. 그 대표적 작품은 라파엘로의 시스티나 성모상일 것이다. 헤겔은 특히 성모의 자애로운 모습 외에도 십자가 아래 성 식스토스 1세와 성녀 바르바라의 기도하는 모습과 대비되어 있다는 것을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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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회화에서 두 번째 주제는 실체적 내밀성을 다룬다. 여기서 개인은 성스러운 존재가 아닌 세속적 존재이다. 그의 주관성 역시 무한한 내밀성을 지니고 있으나 그것은 종교적 내밀성처럼 사랑이나 자애, 경건성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 내밀성은 인간의 특정한 성격으로 나타난다. 이 성격은 긍정적인 성격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부정적인 성격도 있으니, 그것이 무한하다는 점에서는 종교적 내밀성에 못지 않는다. 르네상스 화가는 종교화에도 뛰어나지만 이런 실체적 내밀성을 표현하는 데도 탁월하다. 헤겔은 그 대표적 예로 무리요의 ‘거지 소년’을 들고 있다.
이런 내밀함은 군중의 혁명적 열정이나 전쟁이나 학살로 받는 고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곧 들라크루아의 작품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일 것이다.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이라든가, 고야가 그려낸 전쟁의 참화도 그와 마찬가지다.
회화의 경우 실체적 내밀성은 개인적 주관보다는 오히려 자연이나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도 출현하니 “격랑을 일으키는 무한한 위력을 지닌 바다의 고요한 그 깊이”라든가 “폭풍우가 몰아쳐 울부짖고 솟구치면서 거품을 내며 부서지는 파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헤겔이 묘사한 것과 가장 닮은 화가라면 폭풍우 치는 바다를 자주 그린 윌리엄 터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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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회화의 세 번째 주제는 현실의 긍정적 모습이다. 즉 “전적으로 우연적일 뿐만 아니라 저급하고 천박한 것으로도 보일 수 있는 인간의 삶의 장면들”이다. 예를 들어 아무리 사악한 포주라도, 또는 단순히 식탁을 장식하는 꽃병이라도 이제 관심의 대상이 된다.
과거에는 이런 주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주제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그러나 낭만주의 시대 끝에 특히 근대 부르주아 질서가 형성되는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와서 이런 우연적이며 천박한 것에 대한 관심이 지배적으로 된다.
흔히 이런 예술은 사실주의로 간주되며, 여기서 구체적 현실을 얼마나 잘 모방할 수 있는가가 예술평가의 기준으로 된다. 하지만 헤겔은 이런 우연적이고 천박한 것에 대한 관심은 현실을 모방하려는 욕구 때문에 나온 것이라 보지 않는다. 이런 관심은 이 시대 정신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즉 이 시대 정신은 가장 구체적인 것 속에 가장 일반적인 정신이 존재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것 자체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초월해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예술은 구체적인 것을, 그것이 아무리 무의미하고 천박하더라도 더욱 구체적으로 파악하려 했으니, 사실 그것은 그것을 넘어 존재하는 초월적 정신에 대한 관심인 것이다. 마치 근대 자연과학자가 자연 속에서 신의 흔적을 찾기 위해 자연을 연구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예술작품이 이른바 자연성과 자연의 기만적 모방이라는 관점에서 경탄될 만하다고 부추겨지더라도 이를 통해 [진정한] 향유가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부추김은 본래적 핵심을 호도하는 는 기만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 경우 모방의 경탄은 자연작품과 예술작품의 외적 비교에서 귀결할 뿐이며 … 여기서 … 본연의 내용과 예술적 요소는 표현된 사태가 사태 자체와 일치하는가 즉 실재에 영혼이 깃든 것인가 때문이다.”[6]
4)
우연적이고 무가치한 현실 속에서 영적 생기를 발견하려는 시도로 헤겔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것은 독일과 네델란드 풍속화이다. 우선 이런 풍속화가 다루는 대상을 보자. 네델란드 풍속화는 “자연의 대상들과 자잘한 현상들, 가정생활의 품위, 평온함과 안빈낙도, 국경일의 행사, 축제와 행렬, 농부의 춤, 놀이공원에서의 재미, 흥청거림에서 얻는 기쁨” 등을 소재로 삼는다. 헤겔은 이런 작품이 단순히 세속적인 것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세속적인 것 속에서 구체적으로 경건하며, 그 부에 오만함이 없이 만족하며, 가정과 주위에 대해 담백하고 기품 있고 순수하게 머물며, 그들의 모든 상태들을 철저히 염려하고 즐기는 가운데 독립성 및 진취적 자유로써 자신을 지킨다”[7]
한마디로 말해서 세속적 삶 속에 정신의 생동성이 살아 있다는 것인데, 이 정신적 생동성은 바로 종교 혁명과 해방, 그리고 세계 무역, 바다의 간척 속에서 활동했던 네델란드인의 올바른 대담성과 끈기, 충직하고 평온하고 인정 있는 시민성을 표현한다고 한다.
이런 순간적 현실로 들어갈수록 단순히 공간적 형태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는 없다. 이런 순간적 현실은 색채의 마법을 통해서 표현될 수 있으니 헤겔은 네델란드 풍속화가 보여주는 이런 기법에 대해 주목한다.
“이 회화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최대한의 예술적 진리로 발전시킨 것은 한편으로는 ..선술집의 광경들, 결혼식 및 기타 농부들의 잔치…등에서 표현된 빛, 조명, 그리고 채색 일반의 마법 및 색채 마술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철저히 생동적인 성격의 특성화이다.”[8]
여기서 다시 헤겔은 색채의 마법을 강조하는데, 이는 앞에서 회화의 질료적 특성을 설명하면서 제시했던 바로 그 색채의 음악과 색채의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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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색채의 마법과 음악을 통해 구체적 형상을 창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색채의 마법은 단순히 색채원근법을 통해 입체적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만은 아니다. 색채의 음악은 동시에 감정을 생산하니, 이를 통해 회화의 특칭적 주관성의 원리를 실현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헤겔이 칸딘스키가 주장했던 것처럼 회화가 형상의 창조를 넘어서서, 색채 자체의 음악으로 나간다고 보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색채가 색채의 음악으로 발전하면서 이제 회화 장르를 넘어서는 음악 장르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1] 헤겔이 자주 사용하는 내밀성[innigkeit]라는 말의 의미를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내면성 또는 심정성을 의미하면서도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곧 자기 내 복귀라는 운동성을 의미하며, 따라서 항상 무한성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무한성은 한없이 크거나 작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 내볼 복귀하여, 자기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며, 따라서 규정성을 결여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칸트적으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숭고성 가운데 특히 역학적 숭고성에 해당한다.
[2] 미학강의 3권, 53쪽
[3] 미학강의 3권, 47쪽
[4] 미학강의 3권, 48쪽
[5] 미학강의 3권, 49쪽
[6] 미학강의 3권, 69쪽
[7] 미학강의 3권, 135쪽
[8] 미학강의 3권, 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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