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산책 2- 구성 개념과 반성 개념[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형이상학 산책 2- 구성 개념과 반성 개념
1)
개념에는 다양한 차원의 개념이 있다. 우선 추상적 개념이 있다. 예를 들어 꽃이나 사람 등의 개념은 개별자에서 일반성을 추상하여 생겨난 개념이다. 이에 대해 너무 상식적이라 더 설명할 게 없다.
수적 개념에 관해 헤겔은 간단하게 설명했다. 헤겔에서 모든 추상적 개념은 양적인 것이다. 개별자는 이런 추상적 개념의 특정한 양에 속한다. 예를 들어 덥고 추운 것은 일정한 온도를 갖는다.
어떤 양을 다른 양으로 규정할 때, 이 다른 양이 곧 척도이다. 가장 일반적인 척도 즉 척도의 척도가 되는 것이 곧 수이다. 상품의 교환가치를 일반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화폐인데, 수는 바로 이런 화폐와 같다.[1]
2)
판단론에서 말하는 논리적 범주는 어떨까? 칸트는 12개의 판단표를 만들어 각각에 하나의 범주를 부여했다. 형식논리학에서 판단은 4개뿐인데, 칸트는 이를 12개로 확장했다. 그것은 칸트에게서 판단은 동시에 인식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2]
이렇게 확장한 이유야 어떻든, 범주도 꽃이나 사람과 마찬가지로 추상적 개념일까? 개별 긍정 판단의 범주니 특칭 부정 판단의 범주니 하는 것은 판단의 일반적 형식이라는 점에서는 추상적 개념일 수 있겠지만, 범주가 의미하는 것 자체는 추상 개념이 아니다.
범주는 칸트에서 경험을 구성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여기서 구성되는 경험은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경험이다. 범주가 여러 경험을 구성할 때 그것은 단순히 어떤 추상적인 개념을 끌어내는 구성은 아니다. 범주가 구성한다는 것은 다양한 경험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경험의 관계는 범주적 관계 외에도 많다. 우선 시공간적 관계를 들 수 있겠다. 칸트는 시공간적 관계 역시 경험을 구성한다고 보지만, 이는 범주와 달리 감각에 속하는 것이다. 반면 범주는 사유에 속한다. 칸트는 사유에 속하는 경험의 관계는 모두 주어와 술어의 관계 즉 판단의 형식을 취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판단의 형식 속에 집어넣을 수 없는 경험의 관계도 있을까? 그런 것이라면 물 자체 즉 인식 밖에 속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칸트의 생각으로 보인다.
3)
칸트에 따라 헤겔 역시 범주를 판단 즉 주어와 술어의 관계를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헤겔은 범주에는 고유한 내용(Gehalt)이 있다고 했다. 헤겔이 설명한 범주의 내용을 살펴 보면, 그것은 칸트가 각 범주에 부여한 도식과 동일한 것을 다르게 설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칸트는 인과 판단의 도식은 두 개의 관념이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헤겔에서 가언 판단은 칸트의 인과 판단에 해당하는데 주어와 술어인 두 관념이 법칙적인(반복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주어와 술어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계사(‘이다’ 즉 존재)로 표현된다. 헤겔에서 범주는 판단의 계사 ‘존재(이다)’가 각 판단 형식에서 가지는 구체적 의미에 해당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범주는 존재[계사]의 개별적 의미가 된다. 존재는 주어 술어의 관계인 범주를 추상적으로 지칭하는 범주의 일반 개념에 해당한다.
4)
그런데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흔히 반성 개념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칸트는 반성 개념의 모호성이라는 장에서 라이프니츠의 반성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때 칸트는 라이프니츠로부터 네 가지 반성 개념을 끌어내는데, 구체적으로는 ‘동일성과 차이’, ‘일치와 모순’,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형식과 질료’를 들고 있다.
과연 이런 반성 개념도 추상적 개념에 속하는 것일까? 아니면 논리적 범주와 같은 경험을 구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일까? 다른 추상적 개념은 독자적으로 성립한다. 그러나 반성 개념은 항상 상대적이다. 예를 들어 동일성은 차이에 대해 규정되며 거꾸로 차이는 동일성에 대해 규정된다.
또한 이런 반성 개념은 칸트가 말한 12개 판단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니, 경험을 구성하는 구성적 개념 또는 존재의 의미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대체 이런 반성 개념은 무엇을 의미하고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5)
반성 개념의 특징은 상대적으로 규정된다는 사실에 있다. 그런 점에서 이런 반성 개념은 좌우, 상하, 고저 등과 같은 상대적 개념에 속한다.
이런 상대적 개념과 칸트, 라이프니츠, 헤겔 등이 논의한 반성 개념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상대적 개념은 두 개념의 비교에서 나온다. 비교가 이루어지는 어떤 수준이 존재하며, 이를 우리는 개별 개념이 속하는 공간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좌우 상하 고저는 어떤 양(공간, 차원 등)에서 이루어지는 비교에서 나온다. 이때 비교의 대상은 개별 대상이다.
반면 앞에서 언급한 반성 개념은 어떨까? 위의 네 가지 반성 개념 가운데 우선 동일성과 차이를 보자. 여기서는 주로 판단에 사이의 관계가 논의된다. 예를 들어 ‘이것은 빨강색이다’와 ‘이것은 노랑색이다’라는 두 판단을 보자.
여기에는 어떤 전제가 있다. 예를 들어 노랑색은 어떤 특정한 색깔의 체계 내에서 성립한다. 그것은 삼원색 속의 노랑색일 수도 있고 무지개 색 속의 노랑색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삼원색의 체계에서 노랑색은 빨강색의 부정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이것은 노랑색이라’는 판단은 ‘이것은 빨강색이라’는 판단을 부정하면서 생겨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삼원색의 체계에서 주황과 노랑은 동일한 색이며, 따라서 ‘이것은 노랗다’와 이것은 주황색이다라는 판단은 동일한 판단이 된다.
서로 부정적인 관계에 있는 두 술어로 이루어진 판단 사이에는 차이가 출현한다. 서로 동일성의 관계에 있는 두 술어 사이에 이루어진 판단 사이에 동일성이 성립한다. 동일성은 차이에 대해 성립하며 차이 역시 동일성에 대해 성립한다. 그러므로 동일성과 차이는 반성 개념이 된다.
6)
동일성과 차이라는 반성 개념은 질적 판단에서 긍정판단에서 부정판단으로 이행하는 사유의 기능 즉 부정의 기능에서 나온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부정의 관계가 곧 대당(對當) 관계라고 한다. 이런 대당 관계는 직접적인 추론에 속하는 것이니, 부정적 기능은 곧 추론의 기능이라고 하겠다.
논리적 범주가 주어 술어의 관계를 구성하는 판단능력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동일성과 차이라는 반성 개념은 판단과 판단의 관계 즉 추론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 수는 러셀이 ‘집합의 집합’ 개념으로 설명했다. 즉 2는 쌍으로 이루어진 것들 예를 들어 젓가락, 신발, 쌍둥이 등의 집합의 한 원소이며 그 집합의 대표이다. 3은 트리니티, 삼각형, 삼각대 등의 집합의 한 원소이며 그 집합의 대표이다. 수는 이런 대표자들의 집합이다. 러셀의 수 개념에서부터 수가 연속성을 가진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다. 반면 수를 척도로부터 도출하는 헤겔적 개념에서 수의 연속성이 올바르게 표현되지 않을까?
[2] 예를 들어 질적인 무한 판단은 부정의 부정 판단이니, 형식 논리학에서는 긍정 판단과 동일하다. 하지만 칸트는 무한 판단에 고유한 인식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를 독자적인 판단으로 인정한다. 또 긍정 판단, 개별 판단, 정언 판단, 가능 판단은 모두 형식 상 동일하다. 하지만 칸트는 각각에게 다른 인식적 의미를 부여한다. 관계 판단에서 선언 판단, 가언 판단 등의 경우 인식적으로 단일 판단으로 보는 칸트와 달리 형식 논리학에서 두 개의 복합 판단으로 인정된다. 양상 술어는 판단에 대한 술어이다. 그러므로 형식 논리학은 인식적 고유 의미를 부여하는 칸트와 달리 이미 추론으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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