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퍼와 정신분석 2 – ‘다리’ [흐린 창가에서 – 이병창의 문화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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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와 정신분석 2 – ‘다리’

 

1)

시기적으로 볼 때 1906년 호퍼가 뉴욕 미술학교를 졸업한 이후, 1924년 호퍼가 상업적 삽화가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그림에 전념할 때까지 흔히 호퍼의 독창적인 그림이 형성되는 준비 기간으로 간주된다.

 

이 시기 초반 1906년부터 1911년까지 세 차례 프랑스에 건너갔는데 그때마다 오래 머무른 것은 아니며 당시 파리에 모여든 예술가들과 다양하게 교제했던 것도 아니지만, 이 시기를 그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모더니즘의 예술에 상당히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이 시기에 남겨진 그림에는 밝고 경쾌한 색깔이 주조를 이루고 사물의 형태는 흔들리면서 순간적이며 자유로운 붓질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11년 이후 미국 뉴욕에 거주하면서 한편으로 그는 삽화가로서 밥벌이를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독창적인 그림에 이르기 위하여 분투하였다. 그의 그림은 곧 어둡고 무거운 색깔이 짙게 깔리고 사물의 형태는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이제 그의 그림에서 붓질의 흔적이 거의 발견될 수 없는 정도에 이른다.

 

호퍼는 이와 같이 인상파적인 그림 기법을 벗어나면서 자신의 독창성에 이르게 되지만 그런데도 이 파리 시기부터 호퍼가 관심을 가지는 그림의 소재는 다른 유럽 모더니스트 화가와는 단적으로 구별된다.

 

2)

호퍼가 이 시기부터 상당기간 지속적으로 관심을 지녔던 소재 중의 하나가 ‘다리’이다. 그는 파리의 세느강을 가로지르는 여러 다리를 그렸을 뿐만 아니라(대표적으로’파리의 다리’1906 ‘왕궁 다리’1909), 미국에 건너와서도 대표적으로 ‘퀸스보로우 다리’(1913)를 그렸으며, 다리에 대한 그의 집착은 심지어 1946년 그린 ‘도시로 다가가면서’라는 그림에서도 남아 있다.

 

그 중 우리의 시선을 일차적으로 끄는 것은 파리의 다리(1906년)이다. ‘파리의 다리’는 파리에 처음 도착한 직후에 그린 것이어서 아직 프랑스적 영향이 보이지 않는다. 이 그림에서 색깔은 호퍼의 초창기 그림에서 나오는 짙고 어두운 색이며, 우람한 다리의 교각과 강변의 산책로만 보인다.

 

왼쪽 끝에는 두 그루의 튼실한 나무 그루터기가 보이며 다리 밑을 흐르는 강물이 오른쪽에 조금 눈에 뜨인다. 그림을 가득 채운 것은 아치형 다리이다. 다리 밑은 어둠이 깔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산책로 난간과 교각 아래 부분만이 빛을 받아 반짝인다.

 

이 그림에서 다리의 형태적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시도는 헛된 것일 것이다. 호퍼는 이 다리를 어떤 이유로 그렸던 것일까? 이상하게도 전체와 어울리지 않은 붉은 색 원반의 도로 표지가 다리 교각을 향한 왼쪽 시선을 가로막는다. 이런 표지판이 다리 아래 산책로에 서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아마 이 표지판은 호퍼가 환상을 통해 그림 속에 집어넣은 것이 틀림없다.

 

붉은 표지판은 통과를 금지하는 신호이니, 그것은 무언가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는 듯하다. 다리 자체가 접근을 금지하는 것일 수는 없다. 다리는 어딘가로 건너가는 것이니, 그렇다면 이 표지판이 금지하는 것은 바로 이 다리가 건너가는 그곳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런데 1906년의 이 다리 그림에서는 이 다리가 어디로 건너가는 것인지를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3)

이런 의문 때문에 우리는 다리를 그린 다른 호퍼의 그림도 심상치 않은 눈으로 보게 된다. 파리 시기 호퍼는 여러 다리 그림을 그렸다. 아마도 파리의 다리란 다리는 모두 그린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 가운데 하나 1909년 왕궁다리를 보자. 그림 ‘왕궁 다리’는 왕궁(과거 불탄 왕궁의 남은 부분인데, 지금은 김나지움 건물로 쓰인다)과 이어지는 다리이다. 앞의 두 다리와는 달리 전반적으로 인상주의적인 색갈이나 붓질이 지배적이지만 여기에서조차 다리 자체는 그렇게 흥분할 만한 심미적 아름다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왼쪽의 다리는 오른쪽에 솟아있는 왕궁과 대조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왕궁의 압도적인 무게를 고려하자면, 구도상 다리가 주는 무게는 상당히 약하다. 그래도 이 그림에서 다리는 오른 편으로 약간 기울어져 약간의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림의 하단은 세느 강물이 흐르고 있다. 강물은 색깔이나 형태에서 생동감을 주기보다는 조용하다. 심연처럼 시퍼렇지도 않고 상당히 흐리지만 밝은 색이다. 다리는 이런 강물을 왕궁으로 간다.

 

3)

‘왕궁 다리’에서 보이는 안정된 구도는 ‘퀸스보로의 다리’에 이르면 전혀 달라진다. 아직 약간의 인상주의적 화풍이 남아 있고, 더구나 전체 구성은 ‘왕궁 다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왼편의 다리와 오른편의 집이 그림의 중심을 차지한다. 그 하단에는 강물이 흐른다.

 

그런데 퀸스보로우 다리는 이 그림에서 거의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급속하게 기울어진 철교는 마치 그 위에서 기차가 굉음을 내며 달리는 듯하다. 그림의 하단에는 이제 그림과 평행하여 흐르는 강물이 보인다. 왕궁 다리에서 그려진 강물과 달리 이 그림에서 강물은 시커멓게 보이고, 일렁거림도 느려져서 죽음의 느낌이 든다.

 

반면 오른쪽 하단에는 마치 안개에 싸인 듯이 집이 몇 채 보인다. 앞에 있는 집(박공지붕)은 흐릿한 윤곽만 보이며 그 뒤에 있는 집(현대식빌딩)은 아예 형체 자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왕궁 다리’에서 왕궁의 상당히 안정된 모습에 비하면, 위축되고 불안정한 모습이다.

 

’왕궁 다리’와 ‘퀸스보로우 다리’를 비교해 보면, 전자가 안정된 느낌이라면 후자는 불안정하다. 압도적인 다리에 비해 다리가 다가가는 집은 너무 불안하다. 압도적인 다리는 거꾸로 흥분한 듯한 초조한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4)

이제 1946년 호퍼의 인생 말기에 그려진 다리를 보자.

이 그림에서 지하철 선로가 강물을 대신한다. 다리는 이 지하철 선로를 넘어가는 찻길로 보인다. 외편에 서 있던 집은 이제 늘어선 빌딩으로 바뀐다. 이 빌딩이나 다리 그리고 지하철, 다리를 이루는 벽 들은 지저분하고 누추하다. 창문이 닫혀 있고 단조로운 빌딩은 일단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는 느낌을 준다.

 

이 그림이 주는 느낌은 어쩌면 1906년 그려진 ‘파리의 다리’와 유사하다. 다만 ‘파리의 다리’가 육중한 다리를 강조한 것이라면 이 그림에서 강조되는 것은 늘어선 빌딩이다. 앞의 다리에는 접근 금지의 붉은 색 표지판이 붙어 있다. 뒤의 다리 밑은 죽음이 짙게 깔린 동굴과 같다.

 

다리 그림만 놓고 보면 호퍼는 파리 시절 잠깐 밝음과 가벼움, 안정감을 획득했으나 불안하고 흥분한 모습을 거쳐 다시 초기의 음울함으로 되돌아간 듯 보인다. 호퍼는 파리 시절 자신감을 가지고 다리를 건너 어떤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는 파리 이후 자신감을 잃은 듯하다. 처음 흥분한 듯하지만 곧 무기력하게 되며, 시퍼런 강물이나 차가운 지하철 선로에 의해 막혀 버린다. 호퍼의 자신감이 상실되면서 호퍼가 그린 집의 모습은 삭막한 빌딩의 모습으로 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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