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퍼와 정신분석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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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와 정신분석1-서론

 

1)

호퍼는 흔히 사실주의적 화가로 규정되어 왔다. 그의 그림은 고독한 현대인의 자화상(실비아 보르헤시)이라거나 미국 도시인의 초상화(슈미트)라 말해진다. 또는 그의 그림은 30년대 공황기를 그렸다고 한다.

 

이렇게 평가되는 이유는 누구나 그의 그림에서 쉽게 황량하고 소외되고 고독한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은 현대인이나 미국 도시인 그리고 공황기에서 지배적인 감정이었으니, 호퍼를 그렇게 평가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

 

이런 평가는 자주 호퍼 자신의 언급에서 확증을 얻기도 한다. 그는 1933년 현대 미술관 회고전에서 자신의 그림은 “자연에 관한 가장 내적인 인상을 전사한 것”이라고 했다.

 

2)

그러나 호퍼의 그림을 미국, 30년대, 현대 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이라 보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그의 그림에는 이 시대 등장한 독립성을 상실한 대중이나 풍요한 소비 사회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노동자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호퍼의 그림을 그의 시대를 반영하는 사실적인 그림으로만 본다면, 그는 이제는 상실한, 서부 개척 시대 목가적인 삶을 그리는 향수적 낭만주의 화가로 규정될 뿐이지만 그의 그림에서 아무도 이런 향수를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

 

그 때문에 그의 그림을 형이상학적 개념을 통해 해석하려는 시도가 등장했다. 그 대변자가 곧 렌너일 것이다. 그는 호퍼의 그림을 전반적으로 ‘문명과 자연의 대립’으로 규정한다. 호퍼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으스스할 정도로 무성한 숲과 그것에 대비되는 창문이 닫힌 집 사이의 대비를 본다면 그런 형이상학적 해석도 쉽게 받아들여진다.

 

호퍼의 그림에서 놓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의 그림이 가진 에로티시즘인데, 그의 그림을 이와 같이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서술할 때, 이런 에로티시즘을 설명하기 곤란하게 된다.

 

물론 원초적 욕망과 도덕적 억압 사이의 관계도 렌너가 말한 자연과 문명의 대립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의 예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그의 에로티시즘은 상당히 낭만주의적인 개념이 되는데, 이런 설명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그의 그림 어디에서도 원초적 욕망에 대한 찬가가 보여지기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의 그림 어디에서도 도덕적 억압에 대한 긍정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의 그림에서 자주 발견되는 것은 어떤 황량함과 무기력함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런 감정 때문에 그는 현대인을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기는 하지만, 그런 황량함과 무기력감은 다르게 본다면 오히려 에로티시즘과 더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3)

여기서 욕망에 관한 라캉의 개념 틀을 검토해 보자. 라캉은 성적 욕망의 구조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는데 신경증과 정신증 그리고 도착증이라는 유형이다. 그 가운데 정신증 개념 또는 실재계라는 개념은 충동을 억압하면서 이를 욕망을 통해 대체적으로 충족시키는 상징계의 와해에서 생겨난다.

 

상징계가 와해되면, 그의 욕망도 마치 바람 빠진 것처럼 빠져나가게 된다. 그의 욕망이 사라진 빈 자리를 이제 이드 즉 실재가 지배한다. 그는 실재에 고착된다. 그는 이 실재계로부터 탈출하여 욕망을 느끼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실재에 고착된 인물은 히치코크 감독의 영화 ‘사이코’에서도 등장한다. 사이코는 죽은 어머니 속에 갇혀 지내며 그가 어떤 외부의 여자에게 욕망을 느끼는 경우, 그 여성을 살해한다. 이와 같이 욕망을 상실한 실재계적인 인물은  크로넨버그의 영화 ‘스파이더’에서도 등장한다. 여기서 실재계에 갇힌 주인공의 모습은 문이 폐쇄되고 창문이 닫힌 건물의 모습으로 상징된다. 실재게를 탈출하려는 그는 망상을 통해 자기를 합리화한다. 즉 자기의 어머니는 자기 아버지의 손에 의해 이미 살해되었고 지금 있는 어머니는 아버지가 자주 가는 술집의 매춘녀일 뿐이라는 망상이다.   

호퍼에게서 등장하는 인간의 모습은 이렇게 극심한 망상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폐쇄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는 여기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을 느끼면서도 끝내 무기력하게 머무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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