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 발표회 참관기] 김성우 선생의 ‘푸코의 역사-비판 존재론으로서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에 대하여
?[2011년 4월 월례발표회]
논문 제목: 논문 제목: 푸코의 역사-비판 존재론으로서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
발표자: 발표자: 김성우
철학은 선택 가능한가?
후기: 이병창(동아대 명예교수)
1.
항상 마음속으로 묻는 물음이 있다. 그것은 철학도 선택이 가능한가(preferable) 하는 문제이다. 예술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런 선택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신은 리얼리즘 소설을 좋아하지만 나는 그런 소설이 싫어, 나는 카프카 유의 소설을 즐겨 읽지.”라고 말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물론 어떤 사람의 경우 “리얼리즘 소설은 무언가 잘못 되었어, 소설이라면 카프카처럼 써야 마땅하지”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때로 서로 다른 태도를 가진 사람들끼리 소설을 둘러싸고 얼굴을 붉힌 채 논쟁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서로의 태도를 존중하는 것으로 끝맺는 것이 상식적인 태도일 것이다.
그런데 과학의 경우는 이런 선택가능성은 인정받지 못한다. 아무도 “나는 뉴턴의 물리학을 받아들이지만, 당신이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을 받아들이더라도 상관하지는 않겠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이론들을 지닌 과학자들은 격렬한 논쟁을 거치더라도 끝내 결정적인 판단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조차 그들은 서로 돌아서서 상대방을 비판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런 선택가능성을 둘러싼 두 가지 입장 가운데 철학은 어디에 속하는가? 철학은 이런 점에서 예술에 가까운가 아니면 과학에 가까운가?
2.
필자가 이렇게 철학의 선택가능성의 문제를 이 자리에서 언급한 것은 이 글의 의도와는 매우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이 글은 본래 4월 30일 한철연 발표회에서 발표된 김성우 선생의 논문 ?푸코의 역사-비판 존재론으로서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을 둘러싸고 전개된 논의를 소개하는데 목표가 있다. 그런데 발표 이후 전개된 논쟁에서 필자에게 떠오른 가장 강력한 물음이 바로 앞에서 제기한 그런 물음이었다.
여기에 연유를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우선 발표자의 주장을 들어보자. 발표자는 이 논문에서 매우 대담한 가설을 내세웠다. 알다시피 푸코의 사유는 단계적으로 변천(또는 발전)되어 왔다. 초기 그의 사유는 고고학의 입장이다. 고고학은 다양한 담론들의 배후에 인식의 개념틀(episteme)이 존재한다는 구조주의적 가정에 기초한다. 이런 가정에 따라서 작성한 대표적인 글이 바로 『말과 사물』이다. 중기에(1970년대 초반) 푸코는 담론을 발생시키는 인과적인 힘을 발견하려 했다. 이런 시도를 그는 니체의 용어를 빌려와서 계보학이라고 명명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곧 『감시와 처벌』이다. 말년에 이르러(대개 1980년대) 푸코는 자기 배려의 윤리학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 결과 그는 『성의 역사』와 같은 대작을 작성했지만 자기의 작업을 완성하지 못하고 생을 마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논자인 김성우 선생은 푸코의 사유는 ‘역사-비판 존재론’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본다. 김성우 선생은 이런 ‘역사-비판 존재론’ 개념을 푸코가 말년에 작성한 글인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규명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한 시대 다양한 담론들의 전제가 되는 에피스테메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발생했는가를 추적하는 계보학의 개념을 재구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즉 푸코의 에피스테메가 존재라는 개념에 대응하며, 그의 계보학이 역사-비판이라는 개념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성우 선생은 이런 계보학, 다시 말해 ‘역사-비판 존재론’이 푸코의 전반적인 사유를 묶어 낼 수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푸코의 계보학은 말할 것도 없이, 고고학도 이런 ‘역사-비판 존재론’의 한 단면이며, 윤리학적 입장도 이 개념의 한 표현으로 본다.
김성우 선생이 ‘역사-비판 존재론’ 이란 개념을 끌어내어서 푸코의 사유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려 했던 시도는 정말 새로운 시도였다고 보겠다. 푸코에 관심을 가져서 푸코와 관련된 이런 저런 글들을 읽어 본 적이 많던 필자조차도 이런 ‘역사-비판 존재론’이라는 개념은 처음이기 때문에 그 참신함이 필자를 상당히 흥분시켰을 정도였다.
3.
그런데 김성우 선생이 계보학을 그저 계보학이라 하지 않고, ‘역사-비판 존재론’이라고 다시 명명한 이유는 영향 사를 밝히려는 데 있다. 그는 이런 푸코의 ‘역사-비판 존재론’이라는 개념을 하이데거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규정한다(또는 하이데거를 통해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도 한다).
여기서 하이데거의 영향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필자가 자꾸만 대답을 회피하려는 김성우 선생의 발목을 붙잡고 캐물어서 겨우 알아낸 바에 의하면(유감스럽게도 필자는 아직 이 글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체로 하이데거의 존재라는 개념이 푸코의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에 대응하며, 하이데거에서 존재의 개시(開示:eroeffenung)가 푸코에서 계보학적인 역사의 개념과 상응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대응시켜 놓고 보니, 푸코의 계보학과 하이데거의 존재론 사이에 유사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푸코의 에피스테메 사이의 상응에는 일리가 있다. 둘 다 사물 또는 존재자를 가시적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존재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존재의 개시가 계보학적인 것일까? 푸코의 계보학은 우연적인 사건들이 얽혀서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과 유사한데, 하이데거에서 존재의 개시는 상당히 운명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연과 운명은 통하는 바가 있다. 우연의 이면이 운명이라 본다면, 푸코와 하이데거의 주장은 서로 동전의 이면처럼 연관된다고도 하겠다. 사실 푸코의 계보학도 읽어보면 무언가 운명적인 것을 전제로 한 듯 보이며, 하이데거의 운명적인 존재의 개시도 그 출발점은 우연한 사건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본다면, 하이데거의 개시 개념과 푸코의 계보학 개념은 적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하이데거의 영향의 문제는 매우 신중해야 하며, 잘못하면 푸코의 계보학에 대한 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 가능성도 존재한다. 김성우 선생이 하이데거의 영향을 주장한다면, 이런 논점을 잡아서 양자의 유사성과 차이에 관해 더욱 천착해 들어갔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김성우 선생의 논문에 나타나는 것처럼 비록 이런 영향 관계를 천착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어떤 연관성을 암시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연구 성과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이 점은 아쉬운 측면이지만 앞으로 연구의 성과를 기대할만한 지점이라 하겠다.
4.
그런데 김성우 선생은 하이데거의 영향을 과장하면서, 푸코의 사상에서 구조주의적인 특징을 지워버리려 시도한다는 데서 문제가 제기되었다.
일반적으로 푸코는 후기 구조주의자라 알려져 왔다. 후기 구조주의는 전기 구조주의와는 다른 특징을 지닌다. 전기 구조주의는 구조를 일원적(unitary)인 것이며 불변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전기 구조주의는 사물의 화용(parole)적 측면을 개인의 실천에 속하는 우연적인 측면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후기 구조주의는 전기 구조주의에서 간과한 화용적인 측면에 더 주목하며 이런 화용적인 측면도 구조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고 파악한다. 또한 후기 구조주의는 사물의 구조는 가변적인 것이며, 다양체적(multiple)인 것이라 본다.
푸코가 출현할 당시 60년대 프랑스의 지성계는 구조주의가 지배할 시대였다. 구조주의는 그 이전 50년대 실존주의의 사상적인 지배력을 무너뜨리고 등장했다. 그래서 구조주의가 비판의 논적으로 삼았던 대상이 바로 실존주의였다. 그런데 푸코는 성장기에 분명 실존주의 세례를 받고 자랐다. 따라서 그런 실존주의적인 사유가 그에게 상당히 침윤되어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푸코가 대학시절 당시 지배적인 구조주의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푸코는 구조주의에 서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했고 그 결과 후기구조주의로 넘어간 것이 아닐까?
따라서 푸코가 후기 구조주의로 넘어가는 데 실존주의의 영향이 있었다면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김성우 선생처럼 푸코의 구조주의적인 사유를 부정하고, 하이데거의 영향을 극대화한다면 이는 너무 과도한 주장이 아닐까? 왜냐하면 푸코 역시 그의 시대를 지배했던 구조주의의 힘을 쉽게 벗어나기 어려웠을 테니까 말이다.
결국 논쟁은 푸코에게 미친 하이데거의 영향을 정확하게 규정하는 데 집중되었다. 영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이런 하이데거의 영향의 정도를 판정하는 결정적인 관건은 역시 하이데거의 존재 개시라는 개념과 푸코의 계보학이라는 개념 사이의 연관성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것은 개시성의 운명론적인 성격과 계보학의 우연론적인 성격의 연관성을 이해하는 문제라 하겠다.
5.
그런데 논의를 비틀어 필자를 씁쓸하게 했던 것은 바로 푸코의 계보학이 비판하는 역사 개념이 곧 헤겔의 역사 개념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푸코의 계보학이 우연론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그것에 대립되는 운명론적인 역사 개념을 헤겔에서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헤겔의 역사 개념이 운명론적일까? 오히려 하이데거의 개시 개념이 더욱 운명론적이 아닐까? 그런데 푸코는 하이데거와 가깝다고 하고 반면 헤겔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면 이것은 무언가 착종된 생각이 아닐까?
이것은 철학적인 판단의 문제이다. 앞으로 더욱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던 것은 이런 생각이었다.
헤겔에 대한 철학적인 비판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마르크스주의, 분석철학 등은 항상 헤겔을 공격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태도는 마르크스주의와 분석철학처럼 모더니즘 계열의 철학과는 전혀 다른 철학적인 태도를 지닌 포스트모더니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최근 포스트모더니즘을 연구하는 철학도들이 헤겔을 비판하는 경우, 필자에게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우선 그들의 헤겔 철학에 대한 이해는 구조주의자 알뛰쎄가 마르크스를 해석하면서 도입했던 헤겔에 대한 이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헤겔은 목적론자이면서 일원론자로 간주된다. 그게 바로 헤겔의 발전 개념이라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헤겔에 대한 필자의 이해를 상세하게 논증하고 싶지 않으며 또 그런 자리도 아닐 것이다. 다만 필자는 사람들이 알뛰쎄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그것이 헤겔의 진짜 모습이라고 간주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 자신이 헤겔을 읽고 이해하면서 비판했다면 그것 또한 괜찮은 일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려낸 모습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그것은 문제 있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 한 가지 필자는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왜 사람들은 자기의 철학을 전개하면서 항상 타자의 철학을 비판하면서 시작하는 것일까? 철학도 선택가능하다면,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항상 타자를 비판하면서 시작하려는 철학자의 태도에는 철학이 과학처럼 진리성의 기준을 갖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모더니즘 철학자들이라면 그들은 철학의 진리성을 믿으므로, 이런 논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하는 철학자들 그래서 상대주의적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자는 철학자들이 철학에서만은 유독 진리성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역설적이 아닐까?
소위 회의주의의 역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회의주의가 자기 자신을 회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자들이 타자의 철학을 비판하면서 시작한다면 이런 회의주의의 역설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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