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원의 권력과 문재인의 권력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이방원의 권력과 문재인의 권력

 

이종철(연세대)

 

매주 주말마다 하는 KBS의 역사 드라마 <이방원>이 점입가경,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다. 대단한 권력의지를 가진 태조의 5남 이방원이 드디어 조선을 설계한 삼봉 정도전을 살해하고 궁궐의 권력을 일시에 장악했다. 오늘날 식으로 표현하면 쿠데타에 성공한 것이다. 방원은 확실히 권력 게임에서 절묘한 타이밍을 잘 읽고 순발력 있게 움직이는 인물이다. 과거 포은 정몽주 선생이 고려에 대한 절개를 강조하면서 이성계의 혁명을 반대하자 방원은 거침없이 그를 선죽교에서 살해했다. 마찬가지로 방원은 조선을 설계하고 조선의 통치 이념으로 성리학을 앞세우면서 신료들의 국가를 건설하겠다고 다짐한 삼봉 정도전이 잠깐 방심한 틈을 탄 사이에 그를 살해했다. 권력 게임에서 순간의 방심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이어서 이복동생인 세자 방석을 살해하고, 이복동생의 매제도 죽인다. 권력 앞에서는 피를 나눈 것이 오히려 장애가 될 뿐이라는 것이 그의 냉정한 판단이다. 태조 이성계는 그가 이처럼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일찍이 파악했지만 차마 자기 자식을 죽일 수 없어 미적거리다가 그 자식에 의해 완전 무장 해제를 당하고 권력을 상실한 자의 온갖 수모도 겪고 있다. 그것이 부모의 업보라는 데에는 참으로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이 깔려 있다.

 

방원이 궁중 권력을 장악했지만 바로 용상에 오를 수는 없다. 이른바 권력의 정당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서 둘째 형 방과를 임시 세자로 세워 아버지 태조와 자신 사이에 완충지대를 형성해 놓고 태조의 합법적인 동의를 구하고자 한다. 하지만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한 태조가 그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는 둘째에게 자신이 당한 모욕을 씻어 달라고 하자 둘째 방과가 그에 따라 움직이려 하고, 셋째와 넷째는 저들 나름대로 방원을 죽이고 왕권을 장악하기 위해 모의를 시작한다. 드라마 <이방원>은 이번 주 딱 여기까지만 방영되었다. 잘 알다시피 이방원은 제2차 왕자의 난도 진압을 하면서 왕의 자리에 오르고, 태조는 자신의 정치적 배경이라 할 수 있는 함흥으로 돌아가 칩거를 한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면서 ‘권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갖고 이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고자 한다.

 

방원은 누구보다 왕의 권력 속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권력을 쟁탈하는 과정에서 무자비하게 정적을 살해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정치의 도덕성 운운한다면 그를 잘못 보아도 한 참 잘못 보는 것이다. 그는 “군주는 인자함을 보여줄 것인가, 잔인함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진 마키아벨리즘의 화신답게 왕의 권력을 행사하는 데 장애가 되는 모든 제도와 경쟁자들을 일거에 제거해버린다. 여기에는 쿠데타 공신들과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헌신적으로 돕고 희생을 했던 처가의 장인 민제와 처남들(민무구, 민무질, 민무휼, 민무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외척의 영향력을 차단하겠다는 것이 명분이다. 이쯤 되면 과연 방원은 인간의 탈을 쓴 야차나 다름없지 않냐, 이런 자가 어떻게 왕이 될 수 있겠냐라고 그를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도대체 왕의 권력의 정당성이 어디에 있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태종 방원은 신료 중심에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6조 직계제(왕이 6조에게 명령하고 6조가 왕에게 직접 보고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각종 제도적인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개국한 지 얼마 안 되는 조선왕조의 틀을 잡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런 맥락에서 태종 방원은 초지일관 권력을 장악하고 그 권력에 방해가 되는 제도나 인물을 제거하고 그 권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려 했다는 점에서 권력의 화신이라 할 수도 있겠다. 사실 어떻게 보면 태종 이후 세종대에 이르러 조선이 안정기에 이르고 거의 모든 면에서 태평성대를 이루게 된 것은 태종이 이렇게 밑거름을 깔아주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왕의 권력의 정당성 문제를 사적인 도덕의 차원과 동일 차원으로 생각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왕의 권력이 인자함을 표방하는 순간 백성의 삶이 피폐해질 가능성이 크다. 왕의 권력이 비록 잔인하다 해도 그 권력의 중심에 백성을 세우고 있다면 그런 권력은 얼마든지 정당성을 띨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방원의 권력 문제를 21세기 한국의 전임 대통령 노무현과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퇴임하게 될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와 대비시켜보자. 오랫동안 인권 변호사로 활약을 했던 노무현에게 권력은 억압적인 폭력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재임 기간 중 이런 권력을 해체해서 분권화하고 분리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그는 절대 권력이라 할 대통령의 권력을 총리와 나누려 했고, 서울 중심을 해체해서 지방 분권화를 시도했고, 실제로 세종시로 수도를 옮기려 했다가 반대가 심해서 그친 경험도 있었다. 그에게 권력은 늘 억압적이어서 민주주의에 반대가 되고 그 권력이 집중될 경우 언제든 독재와 파시즘으로 발전할 수 있는 부정적(negative)인 의미만 가졌다. 그의 권력에 대한 인식은 어쩌면 상당한 수준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당대의 현실에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가 판단하듯 권력이 그렇게 부정적인 의미만 가지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의 포스트 모던 철학자 미셸 푸코가 적절히 지적했듯, 권력에는 이런 부정적인(negative) 의미 외에도 생산적이고 긍정적인(positive) 측면도 있다는 것을 노무현은 몰랐다. 이런 긍정적 권력을 통해 권력이 생산하고 실현할 수 있는 가치는 수도 없이 많다. 한편으로 그런 권력은 이데올로기적인 억압 기구를 해체할 수 있고, 재벌 중심의 경제체계도 흔들어 놓을 수 있고, 오늘날 문제가 되는 법조 권력에 균열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조선의 태종 이방원이 보여준 모습은 바로 그런 생산적 권력을 통해 각종 제도적 개혁과 외척이나 공신 세력의 저항을 물리침으로써 세종이 안정적 기반 위에서 국가를 경영할 수 있게끔 해준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권력을 희화화하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한 것은 노무현의 단견이라 할 수 있다. 결국에 그는 희대의 사기꾼과 같은 이명박에게 양탄자를 깔아준 셈이 되고 말았으니까 완벽하게 실패한 대통령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노무현이 심어 놓은 가치와 철학이 촛불 혁명의 거름이 되기도 했지만, 이런 가치와 철학이 실현되는 데는 너무 많은 우회와 희생이 따른 점도 외면할 수가 없다.

 

 

이른바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의 경우는 어떻게 봐야 할까? 그는 밥상을 차려 주고 수저까지 쥐고 있었으나 그것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고, 아울러 잘못 판단해서 그 권력을 상대에게 넘겨주는 우를 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이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 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데는 조국 사태가 크게 기여했다고 하지만 사실 윤석열을 검찰총장의 자리에 앉힌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그는 이런 인사를 하는 과정에서 윤석열이란 인물이 과연 시대적 화두인 검찰 개혁에 적절한 인물인지에 대해 결정적으로 오판을 한 셈이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인사 검증 시스템을 제대로만 돌려 보았어도 어떻게 윤석열이란 인물을 고속 승진을 시켜 검찰총장이란 막강한 자리에 앉힐 수 있었을까, 그리고 조국 사태가 빚어지는 과정에서 그것이 가져올 파괴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것이 자신이 의도했던 검찰 개혁에 얼마나 방해가 될 수 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윤석열 체제가 순탄 대로를 걸을 수 있게 했는가 등을 돌이켜 생각한다면 문재인의 정치적 판단력과 권력 행사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윤석열이 정치인으로 변신해서 성장할 때마다 탄력을 받을 수 있도록 기름을 부어 주기까지 한 셈이다. 이런 면에서 그는 윤석열이나 이번에 종로구 보궐선거로 당선된 전 감사원장 최재형이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정치적 후원자인 셈이다. 문재인은 전임 대통령 그 누구보다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총선에서 무려 180석 이상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어떻게 행사할 줄 모르고 좌고우면하면서 결과적으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 개혁을 거의 시도도 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문재인은 노무현이 죽음으로써 보여준 현실도 이해하지 못한 채 양손에 쥔 권력을 어벙하게 들고만 있다가 당하고 만 것이다. 그가 이런 정치적 오류를 범한 데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그의 정치적 판단력의 부재와 더불어 권력을 도덕과 분리하지 못함으로써 권력에 대한 사적 인식의 한계가 크게 작용한 때문이다. 한 마디로 그는 대통령의 권력과 사적인 문재인의 권력 차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순돌이에 불과했다. 오래전 서양의 마키아벨리가 말해주었고, 그보다 더 오래전에 조선의 태종이 보여주었던 왕의 권력 속성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다.

 

권력은 한 가지 얼굴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장자가 비유했듯 칼과 같아서 강도가 들고 있으면 흉기로 변하지만, 주부가 요리할 때 사용하는 칼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맛있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래서 같은 칼이라도 어떤 상황과 맥락에서, 그리고 누가 그것을 가지고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모습을 달리하면서 결과도 다르게 빚어낼 수 있는 것이다. 무릇 권력을 쥐려고 하는 자는 권력이 갖는 이처럼 다의적이고 다면적인 모습을 이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행사할 수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권력의 이런 속성을 알지 못한 채 그저 동물적인 권력욕만 가지고서 권력을 소유하려고 한다면 오랜 역사가 보여주고 있듯, 그런 권력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고통에 시달린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