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과 자유에의 욕망(上) [톡,톡,씨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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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8년 5월 9일 이대 철학과 영화제에서 상영한 <토지와 자유>를 보고, 20분 정도 스페인 혁명의 사상적 의의에 대해 발표하고, ‘예스터데이’ 뒤풀이 자리에서 간략하게 토론한 글을 수정한 것이다.

 

스페인 내전과 자유에의 욕망(上)

이규성(한철연 회원, 이화여대 철학과 명예교수)

 

어느 누구도 하나의 섬은 아니다.

사람은 모두가 대지의 한 조각, 이 땅의 한 부분.

어떤 사람의 죽음 이건 나의 생명을 줄이는 것,

나 스스로 인류의 하나이기에.

그러므로 묻지를 말라.

누구를 위해 조종을 울리느냐고.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니.

[John Donne의 기도문(For whom the Bell tolls). / 헤밍웨이,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題詞]

 

  1. 파리코뮌과 스페인 혁명전쟁

 

스페인 내전(1936~1939) 기간에 있었던 무정부주의 혁명은 파리코뮌(1871)에 이어 두 번째로 일어난 직접 민주주의를 위한 혁명적 사건이었다. 그것은 민중이 자신의 해방을 쟁취하여 자유와 평등을 실현해본 사건 중의 사건이다. 양자 모두 전쟁과 혁명이 결합되어 있었다. “전쟁은 혁명의 원동력(locomotive)”(마르크스)을 제공해 왔다.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스페인 혁명은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아프리카 주둔 군부가 선거에서 이긴 민주 정권에 대한 쿠데타를 일으켜 도처에서 학살극을 벌이면서 스페인에 진군하자 이에 민중이 봉기하여 일으킨 혁명전쟁이었다. 혁명전쟁은 인류 사상사에서 <우리는 생각한다>는 집단 지성의 필요성과 의의를 환기시킨다. 그 전쟁을 통해 우리의 양심의 승패가 시험받기 때문이다. 혁명전쟁과 유사한 상황은 민주제가 안착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광주항쟁을 유발한 한국의 군사 쿠데타와 같이 정황이 되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를 숭상하는 박근혜 정권도 많은 사람의 우려와 같이 촛불시위를 타도하기 위한 은밀한 쿠데타 시도를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파리코뮌을 보자.

 

파리코뮌은 독일(프로이센)과의 전쟁에 패하여 독일군에 포위를 당한 상황에서 파리 시민이 봉건 귀족세력과 지배적 부르주아 계급에 봉기하여 만든 직접민주 공동체이다. 이 체제는 두 달간의 짧은 시기이지만 최초로 주요 생산 수단을 사회화함으로써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라는 민주주의 이상을 실현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는 민주주의 혁명파와 기존 지배세력(토지 귀족과 상공업 부르주아) 간의 근 100년간의 피 튀기는 투쟁 이후 제3공화국(1870~1940) 하에서의 1875년 헌법이 제정되면서, 이른바 자유민주주의라는 기묘한 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헌정체제로 안착된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은 부르주아의 자유주의(귀족도 자유주의 흉내를 내야 했음)와 혁명적 민주주의 사이의 타협을 의미했다. 한국에서는 원래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는 헌법에 없었으나, 독재를 옹호하는 유신헌법에 처음 등장하여, 반공 이데올로기로 남용되었다.1)  혁명파의 공화주의 정신이 반영된 프랑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철학적으로는 다수성과 통일성 간의 타협을 의미한다. 프랑스 제3공화국 헌정체제에서 다수성이라는 수와 통일적 일자 간의 대결이 의회 내의 논쟁으로 변화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진정한 자유는 다수성이 초월적 통일성을 민중의 힘 안으로 내재화하여 그 억압성을 제거하는 실천을 통해 민중의 진리로 실현된다는 것이 자각되었다. 쇼펜하우어의 언급처럼 루소는 원래 지배자의 권리를 의미했던 주권이라는 말을 민중의 권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전시켰다. 점차 <다수성>이 정치적 진리로 부상한다. 이 진리가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파리코뮌과 스페인 내란기의 혁명에서 섬광처럼 드러났다. 이 빛을 마르크스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로 표현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말은 원래 무정부주의자로 분류되는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 1806~1856)가 ‘인간’, ‘국가’ 등과 같은 추상적 보편자를 거부하고, ‘특수한 개체들(singularity)’의 사회 이상으로 제시한 것이었는데, 마르크스가 파리코뮌의 특징을 묘사하는 데에 사용했다.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Popup.nhn?movieCode=17874

파리코뮌은 파리시민이 농촌과 괴리된 상태에서 주요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연대를 실현했다. 스페인 내전에서의 인민전선가운데 혁명의 최대 세력이었던 자생적 무정부주의자들은 도시에서는 산업체의 노동자 경영, 농촌에서는 토지의 공유를 통해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이상을 갖고 있었다. 무정부주의 ‘전국노동연합(CNT)’이외에도 ‘마르크스주의 통일 노동자 당(POUM)’이 있었는데, 이 조직에 헤밍웨이, 오웰과 같은 문인들, 켄 로치(Ken Loach) 감독 《토지와 자유》에 나오는 데이빗도 가담한다. 그의 여자 친구는 담대한 자발성을 보여줌으로써 무정부주의적 인간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들이 가담한 ‘포움’ 조직도 반스탈린주의적이고 무정부적인 사회주의자들로 구성된다. 이에 반해 스페인 공산당은 소련의 코민테른 조직의 일부가 되어야 했으며, 외국에서 참여한 ‘국제여단’도 소련의 코민테른 산하의 공산주의 조직과 연계되어 있었다 한다. 이들은 무정부주의자와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숙청 토벌 대상으로 규정하게 된다. 러시아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중앙 집중적 권력 조직인 당이 국가와 인민을 대표한다는 대표성(representation)을 숭상했다. 무정부주의는 민중의 직접적 참여성과 자발성(spontaneity)을 숭상하기 때문에 이를 용인하지 않는 스탈린주의와 대립했다.

 

파리코뮌을 엥겔스는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로도 묘사했다. 이는 대다수 인민이 극소수의 지배세력을 억제하고 주권을 실현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에도 인민, 시민, 프롤레타리아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는 파리코뮌의 무정부성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면서, 이른바 중앙 지도체제를 갖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을 제기한다. 훗날 레닌주의는 그 인민독재론을 엘리트 당 조직의 영도아래 공산사회로 가는 역사의 객관적인 과도 단계로 설정한다. 레닌주의는 당 조직의 민중 대표성과 초월적 지위를 강조함으로써 민중의 자발적 자각성을 의문시하여 억압하고, 민중과의 변증법적 소통능력을 상실하는 단점을 갖는다. 스페인 내전 기에 무기 원조를 통해 개입한 모스크바 중심의 국제공산주의(코민테른)는 중앙 집중제에 의거한 조직을 통해 무정부주의와 같은 자생적 급진주의 운동을 억압하거나 흡수하는 정책을 썼다. 《토지와 자유》라는 영화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무정부주의 혁명 노선의 관점에서 당시 스탈린주의 조직과의 대립을 그렸다.

 

스탈린 지배하의 코민테른은 1920년에서 1930년대 중국혁명 과정에서도 공산당과 파시스트 국민당과의 합작을 통해, 약세의 공산당을 유지하고 혁명을 성공시킨다는 정책을 썼다. 중국 공산당의 창시자인 진독수(陳獨秀, 1879~1942)가 민주주의를 주장하다가 우경 기회주의로 몰려 축출되어, 지금까지 복권되지 않고 있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스페인 공산당도 대외적으로는 자유주의 국가와의 대립을 원치 않고 대내적으로는 민족주의를 표방한 우파 정당과의 노골적 대립을 원치 않았다. 사회개혁에서도 코민테른은 급진적 사회화를 반대하고, 부재지주 이외의 토지 몰수와 재분배를 반대했다.

 

스페인 내란기의 혁명 운동에서 좌파 세력의 분열은 혁명 실패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무정부주의적 저항세력의 민중적 순수성은 그 후 모든 저항자들과 문학 및 예술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민중성을 결여한 니체주의적 탈근대주의 철학은 이러한 지적 원천을 경시함으로써 체제내적 이데올로기로 편입되고 말았다. 자유를 향한 개체의 욕망 해방이 연대적 활동성과 분리될 때, 민중적 민주주의는 이기적 합리주의(신고전경제학의 기본 전제)의 세련된 문화적 쾌락주의에 흡수되고 만다는 것이 오늘의 교훈일 것이다. 자유를 향한 욕망의 실현에 충실할 것을 명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현실적인 것, 즉 인간현실이라면 바로 이 현실이야 말로 우리에게 진정한 실재일 수 있다. 수많은 문학 작품이 보여주듯 자유에의 욕망이라는 이 실재성에 충실한 도덕은 언제나 사회 정치적 저항과 함께 일어났다. 이러한 도덕이 진정으로 신성한 내적인 양심의 소리일 것이다. 이 양심을 부인하도록 하는 모든 체제는 인성 모독이다. 종교가 이러한 인성을 모독한다면, 스페인 혁명기의 가톨릭처럼 총통의 편에서 민중을 살해하는 신성모독의 광기를 행하는 것에 접근하는 것이 될 것이다.

 

1)  1948년 대한민국헌법 전문(前文)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은 없다. 1972년 제7차 유신헌법으로의 개헌에서부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이 첨가된다. 이 말은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용어로 정착되었기 때문에 제거되어야 한다. 다음은 1987년 대한민국헌법 전문(12월 29일 9차 개헌):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 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 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 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 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스페인 내전과 자유에의 욕망(下)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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