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니엘 블레이크 [평이의 궁시렁]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갑작스런 심장질환 때문에 40년 경력의 목수는 일을 할 수 없고, 그래서 그 훌륭한 복지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질병수당을 신청한다. 늘 그렇듯 그 훌륭한 복지시스템은 관료주의 행정 절차에 따라 언제나 규정과 원칙을 지키며 사람들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결국 질병수당 신청에서 탈락된 다니엘 블레이크.
자신의 심장질환을 국가에 증명해야 생존을 유지할 수 있고, 당장의 먹거리와 생존을 위해 구직수당이라도 신청해야 하는 상황. 연필 세대인 우리 목수는 인터넷과 자동응답전화가 너무 낯설다.
이에 비해 사람들을 위로하고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 평범하고 정직한 40년 경력의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는 정작 현대의 복지 시스템에는 적응할 수가 없다.
나, 평이도 이 주인공처럼 많이 늙어 인터넷과 자동응답전화에 적응 못하는 세대는 아니지만, 오늘따라 아니 요즘의 나의 상황과 맞물려 너무나 공감이 간다.
가방끈만 길어 강단에선 자신이 교수라도 되는 듯이 살아가지만 정작 파리 목숨에 불과한 보따리장수인 시간강사.
너무 쪽팔린 상황이라 대놓고 얘기도 못하게 짤린 나의 지금 상황은 다니엘 블레이크의 영화 속 상황과 오버랩 된다. 성적입력 기간이 하루 늦었다고 아무런 소명 기회조차도 받지 못한 채 1년 동안 모교에서 강사 위촉을 받을 수 없는 상황. 말이 좋아 제재이지 이건 그냥 해고나 마찬가지다.
교수와 전임강사들은 나름 봉사점수 감점 등으로 실직의 위기와는 전혀 관련 없는 제재를 가하면서, 정작 시간강사는 1년 동안의 강사 위촉 금지라는 어마무시한 규정을 참 손쉽게도 시행하는 대학. 난 이런 대학에서 대체 그동안 무엇을 하면서 그리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쳐왔던 것일까?
정말 바보가 따로 없다. 아마 오늘날 전태일이 만들었던 ‘바보회’를 제일 먼저 조직해야 하는 직종이 있다면, 시간강사가 1순위 안에는 들지 않을까 싶다.
바보 시간강사, 평이. 이게 바로 나의 현 상황이란 걸 뼈져리게 느낀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내게 싸워야 한다는 걸 일깨워 준다. 다니엘 블레이크가 얼핏 소심해 보이지만 실상 매우 담대하게 일자리 지원센터 벽에다 낙서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입장을 알리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 어떻게 내 삶을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이 시대의 영웅이란 아마 블레이크 같은 우리 소심한 인간들의 외침 속에서 출현할 것이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고민이다. 이미 정신승리법을 터득한 듯이 1년이라는 안식년(?)에 감사하며 견디고 있지만, 맘 속에서는 불길이 치솟는다. 그래도 아직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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