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년 최고의 문장, 박지원, 『연암집』[연암읽기]
전호근(경희대)
『연암집』은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문집으로,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일상적인 글쓰기 주제인 서(序)·발(跋)과 시(詩)·서(書)는 물론이고, 임금에게 올린 장계(狀啓)나 대책(對策), 소(疏)뿐만 아니라 「방경각외전(放?閣外傳)」 같은 소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장편 기행문으로 평가받는 「열하일기(熱河日記)」와 농사를 짓는 데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과농소초(課農小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일찍이 구한말의 창강 김택영을 비롯하여 많은 문인·학자들은 연암이 우리 고전문학의 최고봉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만큼 연암의 문장은 짝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연암집』을 읽는다는 것은 고전 애호가들은 물론이고 연구자들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도전이다. 지극히 아름답지만 또 지극히 난해하다. 또 하나, 당대 조선인들의 삶을 구구절절하면서도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연암집은 참으로 귀한 책이다. 예를 들어 「열녀함양박씨전 병서」에서 연암은 과부의 심정을 이렇게 읊는다.
“가물거리는 등잔불 제 그림자 위로할 제 홀로 지키는 밤은 지새기가 어렵더라. 게다가 처마 끝에서 빗물이 방울져 떨어지거나 창가에 달빛이 하얗게 흐르며, 낙엽이 뜰에 뒹굴고 외기러기 하늘에서 울며, 멀리 닭 울음도 끊어지고 어린 종년은 세상모르고 코를 골면 가물가물 잠 못 이루노니 이 괴로움을 누구에게 하소연하랴.” 가만히 읽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때문에 그의 글은 당시 사대부뿐만 아니라 여인과 중인들에게까지 필사되어 읽혔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군왕이던 정조(正祖)조차도 연암을 글을 읽지 못하도록 금지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파급력이 컸다는 뜻이다. 사실 연암은 혈연이나 정치적 계보로 치면 당시 신분사회의 최상층부에 있었던 주류였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 조금도 얽매이지 않았다.
오히려 연암은 당시 양반지배층의 고루하고 위선적인 관념을 선뜻 뛰어넘었던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백동수 등 서얼 출신들과 마음을 터놓고 진실하게 교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인들의 이야기를 즐겨 들었고 참외 파는 사람, 돼지 치는 사람도 서슴없이 자기 친구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떠돌이 거지나 이름 없는 농부, 땔나무 하는 사람, 시정의 왈패 등 하층민이 자주 등장한다. 상하의 위계가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감히 시도하기 어려운 글을 쓴 셈이다. 그런 점에서 연암은 진정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연암의 빛나는 문장은 바로 그런 자유로운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연암의 글은 호탕함에서는 『맹자』와 견줄 만하고 신랄한 풍자와 날렵한 비유에서는 『장자』를 넘나든다. 예컨대 맹자의 논리로 성리학적 사고에 갇혀 있는 당시의 지식인들을 매섭게 비판하고, 장자의 다채로운 표현을 빌어 시골 사람의 코고는 소리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중국의 고문을 모방하는 글쓰기에 얽매어 있었던 당시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연암의 글을 잡글이라고 비난했지만 그는 시대를 꿰뚫어 보는 예리한 감각으로 양반지배층의 위선과 가식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게다가 읽는 이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는 해박한 지식, 불한당도 여지없이 설복시키는 명쾌한 논리, 마치 눈앞에서 대상을 보는 듯 착각하게 하는 사실적인 표현, 읽고 있으면 절로 무릎을 치게 하는 절묘한 비유 등으로 많은 독자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그의 글은 읽는 사람을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하며 머리털이 쭈뼛 서게 하거나 목이 메이게 하는가 하면 무릎 치며 탄복하다가 종내 가슴이 아려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는 마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우쳐주기까지 한다. 오늘날 우리가 연암의 글을 읽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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