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김영오 선생의 단식을 반대하는가?”[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나는 왜 김영오 선생의 단식을 반대하는가?”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4달이 넘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책임이 있고,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오히려 딸의 죽음의 진상을 밝힐 수 있도록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는 유민의 아빠 김영오 선생만 37일이라는 초인적 단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있는 듯하다. 그이의 얼굴, 그이의 눈빛을 바라 볼 때 도저히 언어로 표현할 길 없는 어떤 숭고함의 비극을 느낀다. 그는 법제정이 이루어지 지지 않는 한 죽음도 불사하리라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오늘 여야는 재협상을 통해 다시 합의안을 끌어냈다. 지난 번 합의안에 비해 특별히 주목할 사항은 1-1. 항목이다. 즉 “특별검사 후보 추천위원회 위원 중 국회에서 추천하는 4명 중 여당 2인의 경우 야당과 세월호 사건 유가족의 사전 동의를 받아서 선정하여야 한다.”
이 합의안에 대해 김영오 선생을 위시한 유가족들은 당장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원하는 유가족들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정국은 다시 화해와 타협이 불가능한 파국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김영오 선생도 목숨을 거는 단식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야 합의안과 유가족들의 반대 여부와 상관없이, 나는 이처럼 죽음을 불사하는 단식을 지지할 수도 없고 허용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예민한 정국에서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만, 다음에 제시하는 몇 가지의 이유는 내가 충심으로 제시하는 것들이다.
첫째로, 선생의 뜻은 숭고하지만 생명까지 파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명을 살리자는 법을 죽음을 담보로 만들 수 없다. 선생의 결연한 입법 의지는 지금까지의 단식으로도 충분히 표현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선생에게는 죽은 딸만이 아니라, 앞으로 잘 키워야 할 딸도 있다. 그 딸에게는 언니가 죽은 것이 깊은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아빠의 똑같은 모습을 대한다면 그것은 도저히 부모로서 보여줄 모습이 아니다. 아빠의 그런 행동은 진정성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가족이라는 큰 인륜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한 개인의 목숨이 이 사회의 미래를 다 책임질 수도 없고 책임져도 안 된다. 세상의 질서는 개인의 진정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단식은 도저히 다른 수단을 사용할 수 없는 약자가 자신의 의사와 의지를 표현하는 마지막 수단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죽음을 불사하고 생명을 내 던지는 수단이 된다면 더 큰 인륜을 파괴할 수 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 안에서는 우리가 지켜야 할 인륜적 질서가 있다. 이 인륜적 질서가 파괴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겠는가? 개인의 진정성은 새로운 독단일 수 있고, 광기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 특별법은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특별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입법이 되어도 그 법에 따라 누가 어떤 의지를 갖고 조사를 하느냐가 있고, 조사의 결과를 가지고 법원에서 다툴 때도 법원이 어떤 판단을 할지 모른다. 또 그 판단의 결과를 가지고 실행에 옮길 때도 수많은 방해와 공작이 있을 것이다. 싸움은 특별법 하나로 단판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는가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첫 단추 하나에 모든 것을, 특히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걸 수는 없다.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은 앞으로도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장소에서 벌어질 것이다. 그 때마다 성숙한 국민의 비판 정신으로 장애물을 관철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특별법이 만능열쇠인 양 여기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지나치게 법을 물신화하고 신격화하는 것이다. 이제는 정파 간에 타협을 해야 할 때이다.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두 번째 합의안이 나왔다. 정치는 타협이고, 법은 그 타협의 산물이다. 이미 협상에 들어갈 때부터 성역 없는 수사권이 아닌 특검추천권을 쟁점으로 삼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여당 2인의 경우 야당과 세월호 사건 유가족의 사전 동의를 받아서 선정하여야 한다”는 합의안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이 정도의 문제로 목숨을 건 단식을 계속할 수는 없다.
셋째, 법은 도덕이나 종교가 아니다. 도덕과 종교는 모든 악을 버리고 절대 선을 취하는 근본주의를 선택할 수 있지만, 법은 정치 세력 간에 타협할 수밖에 없고 차선책일 수밖에 없다. 국가는 이런 법에 의해서 움직이는 체제이다. 아무리 숭고한 뜻을 가졌다 하더라도 한 개인의 목숨을 담보로 그런 국가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특별법이 유가족들의 뜻에 못 미친다고 하면,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의지와 정신이 성숙하지 못한 탓이다. 그것은 유가족들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야권의 정치적 역량의 한계이고, 세력이 불리한 탓이다. 그것은 입으로만 비판을 외칠 뿐 실질적인 변화의 역량 구체에는 관심 없는 이 땅의 양심 세력들의 한계 탓이다. 이런 부족한 역량과 불리한 세를 가지고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겠다고 하면, 그것은 오히려 독단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민주주의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법은 그 시대를 사는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지의 산물이다. 특별법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들의 의지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법은 도덕이나 종교처럼 최선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세계의 입법을 원하면서 죽음을 불사하는 순교의 정신을 보인다면, 그것은 이 나라를 도덕 국가, 신정 국가로 되돌리는 것이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것이다. 순결한 도덕과 종교의 정신이 잠시 우리 정신을 위안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법을 제치고 우리 사회 갈등 해결의 최종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좋든 싫든 이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그 법은 정치 세력들 간에 타협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길래 어떤 철학자는 그 시대의 법은 그 시대의 국민의 정신의 수준을 대변한다고 말한 것이다.
여야 간의 합의안에 유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시민단체와 새정련 내부에서도 다시 반발이 크다고 한다. 유족들의 반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더는 유가족들을 세월호 정국의 최전선으로 내밀어서는 안 된다. 그이의 끝없는 단식을 볼모로 현 정세에서 이룰 수 없는 조건을 더는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죽음을 불사한 단식을 영웅시하면 안 된다. 그것은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나쁜 것이며 잘못된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새정련 내부에서 타협안을 거부하는 의원들의 비겁함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당신들의 무능함으로 현실 정치의 주도권도 내주고, 세월호 정국도 지지부진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풀어야 할 것을 풀지 못한 탓으로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볼모로 잡힌 것이 아닌가? 당신들이 진정으로 타협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 전에 의원직 총사퇴를 하라. 그 길만이 실종된 정치를 되살리고, 벼랑 끝에 선 유가족들을 살리는 것이다. 이제는 도덕과 종교가 아니라 정치가 나서야 할 때이다.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단식을 반대하는 이유는 한 가지로 모아진다. 이 세계 안에, 그리고 이 세계 밖에서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생명을 내 던지는 순간, 이 사회는 더 위험한 나락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부디 이제 그만 단식을 중단해주길 바란다. 선생의 숭고한 뜻을 가지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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